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54화 (154/259)

46. 순수한 피 (2)

포르투갈 국왕 주앙 3세와의 겉치레 접견이 끝나자마자 익숙한 부둣가 광장으로 돌아온 동방인들은, 곧 그들이 예고한 대로 수상한 장사판을 깔기 시작했다.

다시 당당히 어깨 펴고 돌아다니게 된 - 곁에 꺽정이나 셀림이 있을 때면 더욱 빳빳해졌다 - 핀투는 곧장 광장 곁의 제법 큼직한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어쩌면 그대의 조상은 시나의 귀족이었을지도?’, ‘억울한 대접 참지 말고 조상 찾아 광명 찾자’ 같은, 평이한 구어체로 쓰인 자극적 문장들이 가게 앞에 붙었다. 이 또한 핀투의 솜씨였다.

그 옛날 마츠라 타카노부를 배신하고 꺽정이 편에 붙었을 때처럼, 저의 잇속 차리는 것 하나는 확실한 핀투였다. 조선 속담에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하지 않던가.

“어째 너무 순순히 넘어가는 듯한데요.”

허나 핀투와 달리, 이번 일의 성사에 저의 명운이 그렇게까지 걸려 있지는 않았던 도키치로는, 저의 직감한 바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흥, 저들이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은 것이겠지. 저기 저놈들 보라고. 목울대까지 욕지거리가 올라와 있지 않나, 흐흐.”

광장 건너편에서 핀투를 여전히 못마땅히 여기고 있는 종교재판소 사람들이 이쪽에 손가락질을 하며 무어라 수군대는 것을 비웃는 핀투였다. 꺽정이네 배로 몰래 도망쳐왔을 때의 주눅든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기야, 당수 한 사람도 감당을 못할 테지요.”

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차라리 고아에서의 그 사건 이후에 바로 이들 일당을 맞이했다면 모를까, 지금의 꺽정이 일행은 일개 기독교 군주는 건드릴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거물이 한가득이었다.

암만 보아도 그들을 이끄는 코우지오니스가 황제의 사절이라는 것은 의심스러웠지만, 그런 심증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지금껏 그와 일행을 환대한 수많은 군주들의 체통을 땅에 처박게 되는 격이었다. 더구나 시나는 멀지만 투르크는 가까웠고, 그 투르크의 왕자가 코우지오니스 곁에 딱 달라붙어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친 체하고 코우지오니스 한 사람만 버릇을 고쳐주자는 생각을 누군가 할 법도 했지만, 막상 코우지오니스 본인과 대면하게 되면, 주먹 한 번 잘못 꺼냈다가 평생 다시는 주먹을 못 들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서 꼬리를 내릴 터였다.

곧 광장 맞은편에서 이쪽을 노려보는 이들은, 하나둘씩 모이는 구경꾼들(및 잠재적 고객)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야, 도키치로야! 안쪽 준비 끝났다. 사람들 들여보내라. 핀투 선장도 들어오시오.”

우렁찬 꺽정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핀투와 도키치로 모두 그에 따랐다. 목청 한 번 가다듬은 도키치로는, 핀투가 가르쳐준 대로 외쳤다.

“자, 줄을 서시오!”

“이름이 어찌 되시오?”

“알레이수 로드리게스입니다.”

“조상 중 현달하신 분이 계시오?”

“물론이지요.”

현달한 사람이 조상 중에 있었다면 성과 이름 사이에 ‘지(de)’가 붙어 있었을 것이요, 애초에 이런 자리에 와서 저의 새 조상을 찾지도 않았을 터였다.

허나 로드리게스가 조상의 음덕으로 벌어들인 것이 틀림없는 금은보화를 스리슬쩍 내놓았으므로, 그러한 이치는 두 사람 모두 서로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토록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설령 한미한 집안 출신일지라도 저의 대에 필시 가문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대의 팔대조 나(羅) 선생께서도 기뻐하실 게요. 자, 여기 받아가시오.”

이 사람은 전조 원대에 무슨무슨 벼슬을 하다가 서방으로 흘러들어간 나안록(羅安祿)이니, 중외(中外)의 문명한 사람들은 이 사람을 한낱 양이와 같게 대접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써 주는 이탁오였다.

정확히는, 셀림의 수행원들이 - 주군 잘못 만난 죄로 - 이름 들어갈 칸만 빼고 열심히 써내고 있는 종이에 빈칸만 채워넣는 것이었다. 라틴어로 쓰인 부분은 자체(字體)가 제법 정갈하였으나, 눈대중으로 따라 그린 한문 부분은 중화의 사람이 보면 서양 오랑캐가 썼음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어설펐다.

“나중에 동쪽으로 오게 되면, 우리 쪽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주시오. 반드시 환대를 받을 것이오.”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중국 땅에서 자유롭게 통상하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민주당이나 그 아랫사람들과 교역할 수 있을 테니 서로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또 한 사람의 만족한 고객을 내보내고, 받은 재물은 그대로 핀투에게 넘어갔다.

“이대로라면 곧 배는 배대로, 선원은 선원대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흐흐.”

민주당과 함께하며 자신의 나라에 해로운 일을 한다는 데 약간의 망설임을 품고 있던 핀투였지만, 고아에서 고초를 겪고 이어서 이곳 리스본에서까지 영 좋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그런 미련은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은, 한 대쯤 제대로 콧잔등 얻어맞고 피 좀 흘려봐야 이 나라가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 생각을 고쳐먹은즉 욕심과 양심의 지향이 하나로 합치된바 실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그, 조상을 척척 찾으시는 것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지어내시는 겁니까?”

금화를 세던 중 핀투가 문득 이탁오에게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물론 전조 시기에 한인들이 몽고인 아래에서 뜻을 펴지 못하여 천하 곳곳으로 뻗어나갔으니, 아예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당당하게 저의 사기행각을 인정하는 이탁오였다.

“무릇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을 위해 지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이름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오. 허나 허례허식에 찌든 자들이 있어, 주객을 전도시켜 사람이 이름을 위해 살게끔 하기도, 죽게끔 하기도 하지. 어찌 이것이 잘못이 아니겠소? 그러므로 공자께서도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 하신 것이오.”

지금껏 온갖 기상천외한 일을 벌였고, 그러면서 제법 즐기기도 했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비로서 떳떳하지 못한 짓은 한 적 없다고 여기는 이탁오였다.

중화의 선비 자처하는 자들이라면 대개 그런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 마치 아직도 저 광장 맞은편에 서 있는 자들처럼 - 이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곳 에우로파에 어울리는 사람의 굴레를 벗어난 핀투 눈에는 어째 저의 조카뻘 될 이탁오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핀투는 학자가 아닌 뱃사람, 그것도 재물 욕심 많은 뱃사람이었으므로, 이탁오 머릿속의 생각에 대해 묻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그보다도 조금 더 중한 일을 짚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진짜 유대인들은 찾아오지 않는 듯합니다.”

“이미 유대인 대부분이 이 나라를 떠나거나 아니면 가짜 이름과 족보를 사들여 천주교인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 않았소?”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도시에 머문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저도 알 만큼 악명 높은 마라노(유대인)가 몇몇 있더랍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찾아온 자들은 향신료 무역에 처음 발 담근 자들이 그런 것처럼 요행으로 큰돈 만지기를 바라는 푼수들이거나, 아니면 콩베르수(개종한 유대인) 중에서도 잃을 재산도, 연줄도 별로 없는 잔챙이들인 듯합니다.”

동방인들 및 그와 결탁한 간악한 이단(추정) 페르낭 멘데스 핀투를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종교재판소의 뒤끝 있는 사람들은 그 대신 누가 먼저 저들에게 찾아가 시나 사람 행세를 하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이 땅에 시나 또는 그 주변에서 온 이들은 코우지오니스와 타고스 박사, 그리고 그 동행들이 전부였으니, 저들의 주장이 반드시 잘못이라 논박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미리 눈여겨보았다가 나중에 사소한 잘못이 보이면 그때 묵혀둔 죄목까지 한 번에 몰아서 덮어씌울 심산이었다. 비록 도중에 굴곡이 있을지언정, 정의는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짓 개종한 유대인들만 찾아가 저들의 ‘조상’을 인증받으리라는 당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으니, 물욕은 유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실은 무슬림이나 유대인 조상을 두었으나 레콩키스타의 혼란 속에서 스스로 진짜 조상도 모르고 철석같이 자신은 태초부터 기독교인이었노라 믿는 자들까지. 모두 같은 시나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찾아온 유대인들로서는 치른 값 이상의 든든한 방패, 머릿수라는 안전보장을 받은 셈이었다.

“뭐, 그래도 본디 목표로 했던 선단 꾸리는 일은 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상관은 없습니다만··· 어째서 재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마라노들이 가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소? 어쩌면 때를 기다려 나중에 몰래 찾아올지도.”

이탁오의 말은 절반만 들어맞았다.

카스티야와 아라곤, 카탈루냐에서 포르투갈로 도망쳐온 유대인들은, 다시 그곳에서 나머지 에우로파와 포르투갈령 식민지로 도망쳤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의 재산과 연줄은 거의 대부분 유지하였다.

유대인을 탄압하고 추방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 전체에 걸친 교역망 곳곳에 자리잡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오히려 보석이나 향신료, 신대륙의 약초 따위를 개종하거나 거짓 명의를 내세운 유대인들이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무역의 이익에 밝은 유대인들이, 이 ‘시나 귀족 족보’가 지니는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것이 설령 명백한 가짜라 하더라도, 모두가 진짜로 여긴다면 곧장 가치가 생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으므로.

그러므로 마라노 거상들이 이 족보 파는 이야기 듣자마자 만사 제쳐두고 달려오지 않은 까닭은, 곧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때를 기다리는 것인가? 곧 밝혀질 일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이탁오가 말을 마친지 불과 한두 각 뒤에 밝혀졌다.

“그, 혹시 동방에서 오신 동 림의 일행분들 되십니까?”

딱 보아도 남의 것 빌려 입은 듯한 남루한 옷 걸치고 나타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묻기도 전에, 그 옷깃 사이로 십자가 목걸이가 슬쩍 드러났다.

“저, 혹시 예수회에서 나오셨습니까?”

“아니, 그것을 어찌?”

사내가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나름 숨긴다고 숨겼던 십자가가 아주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십자가가 보입니다.”

“아.”

지금 리스본에 있는 성직자들 중, 동양인들과 연 있는 것은 종교재판소와 예수회 둘 뿐. 그리고 종교재판소라면, 그들의 적과 다름없는 동 림 일당의 소굴에 들어설 때 저렇게 허술한 변장을 할 리 없었다.

곧 소식 듣고 꺽정이가 나타나자, 사내도 저의 정체를 드러냈다.

“멜치오르 카네이루(Melchior Carneiro) 신부입니다. 이곳 리스본에 거하거나 머물고 있는 형제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 하비에르 어르신의 도우(道友) 되시는 분들이시구만.”

“동방의 형제분들로부터, 동 림께서 우리 예수회와 참된 신앙을 위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초면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과 조언을 청하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카네이루 신부가 심호흡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방금 전 리비에라 궁에서 열린 회의에서, 동방선교에 대한 후원을 중지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고아 종교재판소에서의 사건은, 이 동방인들이 설령 기독교에는 호의적일지언정 포르투갈의 권위와 동쪽 바다에서의 수위권을 인정할 의사가 없음을 여실히 보였다. 리스본에 찾아온 동 림 역시, 겉치레 인사만 하였을 뿐, 동방에서의 영향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동방에서 들려온 소식만 듣고, 곧 동인도의 향료에 이어 시나라는 거대한 부의 원천을 얻게 되리라는 장밋빛 꿈을 꾸고 있던 주앙 3세와 포르투갈 정부, 그리고 의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는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딱히 없었다. 저들이 희망봉을 돌아 에우로파의 첫 기착지로 리스본에 상륙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에기토를 지나 지중해와 북해까지 모조리 훑은 뒤에야 리스본에 당도하였으니, 그들의 무지를 이용할 수도, 에우로파 내에서의 권세를 내세우며 겁박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이 위협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일. 우선은 이미 저들에게 포섭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예수회부터 끊어내기로 주앙 3세는 결정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동방선교 후원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회 대신 다른 수도회를 후원하기로 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들과 한통속이라 알려진 동방인들, 그리고 이탈리아 연맹에 참여함으로써 동방무역에 있어서 자신의 편을 확실히 한 교황청을 견제하기 위한 수였다.

“그래서 우리더러 무엇을 도와달라는 거요?”

“예?”

동방선교의 수호자 동 림이 당연히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구려’나, ‘당장 입궐하여 국왕 폐하께 접견을 청하겠소’ 같은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던 카네이루 신부는 또 한 번 당황하였다.

“애초에 이 나라 국왕 어르신이 보태준 게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하비에르 어르신과 그 동문 스님들을 돕는 것은 그쪽에 귀의한 니탕카이네 사람들이랑 우리네 조선 사람들이 전부요. 그사이 이 나라 국왕이란 자로부터 나는 돈 한 푼 받은 적 없소이다.

그러니 그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후원 따위 끊어진들 뭔 상관이 있겠소?”

새나가는 곳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재정을 상당히 지출해 고아와 말라카에서의 선교를 후원하였던 ‘신실왕(O Piedoso)' 주앙 3세가 듣는다면 아주 기함할 소리였다.

당장 하비에르가 핀투의 배를 빌려 일본까지 갈 때 지불한 운임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 것이었고, 소소하게 따지면 하비에르의 요청에 따라 조선으로 넘어온 다른 예수회 사람들과 그들이 들고 온 귀중한 서책 등도 모두 포르투갈의 재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도둑놈이 염치 있게 은원(恩怨)을 셈해주리라 믿는 것이 바보 아니겠는가.

“당수, 잠깐만 귀 좀 내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조용히 듣고 있던 이탁오에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여기 이 신부님 호들갑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들 예수회가 큰 곤경에 처하리라 믿고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예수회가 우리 당과 아주 연이 깊다고 여기고 있기도 한 듯한데요.”

“연이 깊기는 하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쪽으론 아니지만.”

굳이 주변을 물릴 것도 없이, 그냥 조선말로 이야기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핀투 선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이곳에서 족보 장사를 하는데 막상 가장 입맛 다시고 있을 유대인 호상(豪商)들이 머리를 아니 들이민다 하더군요.”

피라미만 잡았는데도 벌써 처음 목표하였던 것은 다 이룬 셈이었지만, 그물 한 번 치면 이왕이면 월척 대어까지 잡고픈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아, 그렇지. 흐흐. 좋은 생각이오.”

이런 쪽으로는 머리 금방 돌아가는 꺽정이는, 이탁오가 넌지시 운만 뗀 것의 뜻을 금방 알아듣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 미소를 슥 지운 채 카네이루 신부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흠흠, 내 다시 생각해보니 이는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소. 마땅히 대책을 마련할 것인즉, 어르신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돌아가시기 바라오. 진전되는 바가 있으면 사람을 보내 알려드리겠소이다.”

갑자기 사람이 말을 바꾸니, 카네이루 신부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이것이 동방의 풍습인가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카네이루 신부가 나서자마자, 꺽정이는 패거리를 모두 모아, 최대한 요란스럽게 호들갑 떨 것을 명했다.

꺽정이 본인은 급히 리베이라 궁 코앞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이탁오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괜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시늉을 했으며, 도키치로는 기껏 붙여놓은 이런저런 요란한 문구를 모두 떼어버리고는, 빌린 가게 문을 닫고 바닥 꺼지도록 한숨 내쉬는 척을 했다.

(동방 사절단의 그럴듯한 직함에 넘어가 가게를 빌려준 주인은, 이러다가 진짜 고객들마저 떨어져나가는 것 아닌가 싶어 옆에서 함께 노심초사를 하였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보내고, 명색이 오스만 가문의 사내이자 술탄 자리를 노리는 셰자데로서 잠재적 적국의 허실을 살피고 온 - 즉 열심히 리스본 유람을 하고 온 - 셀림이 대체 무엇들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쪽과 그냥 그러려니 넘기는 쪽 중 무엇이 더 그의 마음을 평온케 하는 길일까 고민할 무렵.

마침내 임기응변으로 친 그물에 대어(大魚)가 걸려들었다.

“동 림 되십니까?”

“그렇소만.”

내일은 또 어떻게 뭔가 제대로 망한 사람 티를 낼 것인가 고민하던 꺽정이 패거리 앞에, 초로의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아서는 그저 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조금 부유한 상인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트리스탕 다 코스타(Tristao da Costa)라 하는 사람입니다. 페라라 대리석과 베네치아 유리, 그리고 브라질목(木) 수입 등을 업으로 삼고 있지요. 근래에는 조금 더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고 있습니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좀 바빠서 말이오. 제법 중대한 일이 터진지라.”

“그것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 조상의 계보를 밝히는 데 도움도 받을 겸해서요.”

뒤늦게 다 코스타라는 이름을 전해들은 핀투가 후다닥 달려와, 꺽정이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려 했다.

“하하, 동행분께서 사정에 밝으시군요. 그러면 바로 본론에 들어가도 되겠군요.”

다 코스타가 껄껄 웃더니, 느닷없이 목소리를 깔며 조용히 말했다.

“제 본디 이름, 하나뿐이신 신 앞에서 밝힐 수 있는 이름은 이삭 하비비(Isaac Habibi)라 합니다. 졸지에 시나 출신이 되어 버린 멘데스 집안, 또는 우리의 진실된 말로는 나시(Nasi) 가문의 이익을 대변하여 찾아왔습니다.

듣기로, 동 림께서는 지금 곤경에 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는 바가 있을 듯한데요.”

날은 벌써 한창 저무는 중이라, 제법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저 사교적인 미소를 지을뿐이었던 하비비의 표정은, 마치 흔히 ‘유대인의 사악한 미소’라 하면 떠올릴 법한 그런 음험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서 ‘옳다꾸나’ 하고서 헤벌쭉 웃는 꺽정이가 있었기에, 멀리서 보면 오히려 간악한 도적이 순진한 상인을 몰아세우고, 가진 것 다 내놓으라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러한 인상이 사실에 조금 더 가깝기도 했다. 하비비 한 사람만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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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콩키스타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 왕국 카스티야-아라곤(에스파냐)과 포르투갈만 남게 되면서 시작된 유대인 탄압은, 오랜 시간에 걸쳐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많은 ‘개종한’ 유대인들은 실제로는 수호성인 축일로 이름만 바꾼 유대교 명절을 계속 쇠는 등, 비밀리에 유대교 신앙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친족집단 내에서 유대교 명맥이 이어졌기 때문에, 조상 중 유대인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피의 순수성’ 절차는 유대교 근절이라는 목적에 있어서는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4세기 말부터 유대인 탄압을 시작한 카스티야와 아라곤, 카탈루냐 등에서 탈출한 유대인 대부분은 포르투갈로 도피했고, 대항해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들 중 상당수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포르투갈 내에서도 탄압이 시작되자,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이들은 그간 쌓은 부와 포르투갈 내 연줄을 유지한 채 포르투갈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부유했던 저지대와 독일 내 한자 도시들, 이탈리아, 그리고 루멜리아(오스만령 발칸)와 레반트(동지중해)로 이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시 새로운 탄압의 근거가 되었는데, 특히 포르투갈을 탈출한 부유한 유대인들이 오스만 투르크 영토에 정착한 뒤에도 유럽과의 무역에 계속 종사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카를 5세는 이들과 연결된 유럽 내 유대인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첩자가 될 것을 염려했고, 이에 새로운 탄압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재산을 강탈하려는 의도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1530년대에 접어들면 이러한 정책은 포르투갈에서도 도입되었고, 이전에 등장한 고아 종교재판소도 그런 맥락에서 설립되게 됩니다.

핀투와 혈연이 있다고 주장된 멘데스 집안은 후추 교역으로 성공을 거둔 유대인 가문이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깨닫게 된 가문의 상속자 베아트리스 멘데스 -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하나였습니다 - 는 1540년대에 걸쳐 집안의 재산을 처분하여 이탈리아에 새로운 유대인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고, 이탈리아 내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음을 깨닫자 일족과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게 됩니다. 멘데스라는 유럽식 이름 대신 본래의 유대인 가문 이름인 나시(Nasi)라는 명칭을 쓰게 된 이들은, 유럽의 발달한 인쇄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큰 부를 얻게 됩니다. 이후 가문을 이어받은 베아트리스 (또는 한나 나시)의 종질 겸 사위 요셉 나시는 셀림 2세의 가까운 벗으로서, 집안의 막대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키프로스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정착지를 개척하고자 각종 공작을 벌였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 이삭 하비비는, 이탈리아에서 나시 가문의 기업 경영을 담당하는 현장 책임자였습니다. 트리스탕 다 코스타는 그가 기독교인으로 위장할 때 사용했던 가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편 바오로 4세 치하에서 적발되었는데 (아마도 상당한 뇌물을 바치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Prins Salomon & Leone Leoni. 1998. “Mendes, Benveniste, de Luna, Micas, Nasci: The State of the Art (1532-1558).” The Jewish Quarterly Review 88(3/4)).

핀투가 과연 정말로 이 유대인 집안과 어떤 식으로든 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 화에 언급된 것처럼 그가 스스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술회한 것을 고려하면, 아마 연이 없거나 아주 먼 친척 정도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더 유력합니다.

하지만 핀투의 <편력기>에 담긴, 과장되거나 때로는 완전히 허황된 모험담 이면에는 당시의 종교적 분위기 자체에 대한 신랄한 냉소가 담겨 있고, 이는 핀투가 어떤 이유에서든 종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글에 묘사된 아시아는, 기독교도와 무슬림들이 당도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평화롭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곳, 즉 비폭력을 신봉하고 철저히 지키는 불교도들과, ‘신을 믿지 않을 자유’까지도 존중하는 유교 문화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전장으로, 평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이교도 말살을 위한 전쟁으로 모두를 내모는 위선적 종교인들의 싸움터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Catz, 1991. “Fernao Mendes Pinto and His Peregrinacao.” Hispania 74(3)). 만약 그가 조금 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또 허황된 모험담 대신 보다 진지한 철학적 사색으로 책을 채웠다면, 핀투의 <편력기>는 역사 속의 한 일화를 넘어 보다 큰 의미를 지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는, 출판되기도 전에 검열당해 아예 못 나왔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이 송~원대를 거치며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는 인식은 원 역사의 명나라에도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로 중국 상인들이 동남아시아 곳곳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었으나, 현실보다 훨씬 과장된 것이었습니다. 즉 이탁오가 완전히 자의적으로 거짓부렁을 지어낸 것은 아닌 셈이지요. 일례로 16세기 초 섬서 지방의 회족 신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역토지인물략(西域土地人物略)>은 오스만 투르크 내의 중국인 공동체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코스탄티니예와 알레포 등 중동 주요 도시에는 모두 ‘차이나타운’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고, 중국인 상인들의 해외 진출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도 중국인 상인 몇몇이 오간 것이 전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Chen, 2021. “Between the Islamic and Chinese Universal Empires: the Ottoman Empire, Ming Dynasty, and Global Age of Explorations.” Journal of Early Modern History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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