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거운 (3)
나일 강의 풍족한 삼각주 서쪽 끝을 이스칸다리야가 지키고 있는 반면, 그 동쪽 가장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미스르(이집트) 땅에 농지라 할 만한 땅이 얼마 되지 않으니, 농사짓는 이들과 그들을 ‘보호해 주는’ 맘루크들 등등이 빼곡하게 터전을 마련하여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헌데 작년부터 그 별 볼일 없는 삼각주 가장자리 바닷가에 사람과 두카트가 모여들더니, 어느새 신기루처럼 그곳에 그럴듯한 항구 마을 하나가 생겨났다.
개종은 하였을지언정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과 그보다 조금 더 고귀한 황금에 대한 충성은 버리지 않았던 주스티아니 등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탈리아에서 오는 객들과 운하 공사 물자, 인력 등을 맞아들이기 위해 세운 마을이었다.
“마을의 이름은 이 공사의 후원자이시며 보호자이신 우리의 위대한 술탄을 기려, 알 술레이마니야(al-Suleymaniyya, 원 역사의 포트 사이드)라 지었습니다. 아직은 작지만, 보시다시피 몇 년 안으로 번듯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조선국 제물포를 연상케 하는, 활기가 넘치다 못해 난잡한 지경에 이른 포구에서 꺽정이 일행을 맞이한 주스티아니가 환영사를 갈음하여 말했다.
“’우리의 위대한 술탄’이라 하셨소? 그렇게까지 충심 깊은 줄은 몰랐는데.”
“우리 사업에 이로움을 주는 군주는 누구든 위대하다 칭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베네치아 쪽에서 미리 언질을 받은 주스티아니는, 저의 거점 모카를 떠나 이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주변의 땅을 모조리 사들였다.
아직 그 땅의 십분의 일 정도만 팔았지만 벌써 원가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니, 쉴레이만에 대한 충성이 어찌 무럭무럭 솟지 않겠는가.
“반대편 수에즈 쪽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쪽은 그래도 초라하게나마 도시가 하나 있기 때문에 이곳만큼 수익이 남지는 않았습니다만···”
코스탄티니예를 떠나기 전 건축가 시난에게 받은 지도에 따르면, 이곳 ‘술레이마니야’에서 반대편 수에즈까지의 거리는 고작 24 페르사(약 136km)에 불과했다. 그나마 수에즈 바로 북쪽에 큰 호수 두 곳이 있었으므로, 이 호수를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운하를 뚫어야 하는 구간은 약 17 페르사(약 97km) 정도였다.
말을 타면 더운 계절에는 사흘, 그나마 선선할 때는 이틀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여하간 머무시는 동안 양쪽을 오가는 데는 불편이 없을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저희 말고도 장삿속 밝은 이들이 많아서, 벌써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거든요.”
지중해와 홍해 양쪽에서 통용되는 베네치아 두카트 금화는 사람 손을 타는 만큼 온갖 냄새를 풍기고다녔다. 그 냄새를 맡은 맘루크들은 길을 만들어 이용료를 받았고, 미스르 땅의 일개 백성들도 하나둘씩 그에 이끌려 들어왔다.
두 믿음 사이의 평화로 말미암아 노예를 가지고 있는 것도, 또 더 사들이거나 붙잡는 것도 어려워질 것을 짐작한 상인들은, 지중해 쪽에서 헐값에 기독교 노예를 사들이고 갤리선 대신 제벡(Xebec)선을 팔기 위해 수에즈와 술레이마니야로 몰려들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허풍선이와 미치광이들 머릿속에서나 나올 법한 운하의 발상이라 여겼는데, 막상 군주들이 합심하여 추진하니 모두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달려들고 있으니까요.”
뼛속까지 상인인 주스티아니 입에서 간만에 나오는 감상 어린 말. 그러나 상대가 꺽정이였으니 맞장구 대신 트집만 잡혔다.
“지금 나보고 허풍선이에 미치광이라고 한 것이지 않소? 잘 알겠소.”
“아니,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뭘, 당황하는 것 보니 속마음 그대로 내비친 것 맞구만.”
“죄송합니다, 당수!”
꺽정이 발길 닿은 곳마다 퍼진, ‘당수’라는 조선말을 용케 떠올린 주스티아니가 손을 비볐다.
“죄송하면 사과를 해야지. 당분간 우리 일행이 이곳과 수에즈 오가며 고향 돌아갈 채비를 할 텐데, 섭섭지 않게 대해주어야 할 게요.”
그 ‘채비’가 몇 달은 계속될 것을 미처 짐작지 못한 주스티아니는 결국 그리하시라 하고야 말았다. 따지고 보면 수에즈 운하 공사로 취한 이익에 꺽정이 지분이 적지 않았으므로, 재보가 마땅한 주인을 찾아 돌아간 셈이었다. (꺽정이 생각에만 그랬다.)
어찌하여 몇 달이 걸리는가 하면, 핀투 선장의 함대가 희망봉 돌아 모카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한세월이요, 에티오피아의 네구스로부터 도움 준 값을 뜯어내는 데 걸리는 것이 또 여러 달이요, 코스탄티니예에서 바예지트의 일족과 그 외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시작 한다는 말에 혹한 얼뜨기 몇몇 모아오는 데도 제법 시일이 걸렸다.
그리고 그 여러 달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던 몇몇 맘루크들이 뭔가 계획을 꾸미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도 족하였다.
꺽정이 일행이 머문 몇 달 동안에도 술레이마니야는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홍해 쪽에서 건너온 상인들과 미스르 땅의 사람들 뒤에는 지중해를 건너온 에우로파 사람들이 닿았다.
십자가가 높이 세워지고, 그 옆 급조한 미나렛에서는 새벽마다 무에진(Muezzin)이 기도가 잠보다 유익함을 외치며 사람들을 모스크로 불렀다.
그리고 그사이 ‘엘리자베트 술탄’은 아예 동인도회사 본부를 이곳에 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리즈(Liz) 말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더군요. 계구우후(鷄口牛後)의 이치지요. 그 누구도 텃세를 부릴 수 없으니 동천축사(동인도 회사)가 곧 이곳의 으뜸이 될 것이요, 또 운하가 뚫리게 되면 주변의 모든 부가 남김없이 이 땅을 지나게 될 테니까요.”
더운 바닷바람 맞으며 땀 흘리는 일꾼들을 서늘한 그림자에서 구경하던 꺽정이에게 이탁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금 올라가고 있는 저 성대한 전각이 곧 동인도회사의 거점이 될 터. 어째 인천의 망양당이나 한양 사업당보다 더 큰 것 같아 꺽정이는 은근히 부럽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리즈는 또 누구요?”
“이제 한 백일쯤 되었는데 이제야 눈치를 채신 걸 보니, 천하의 임 당수도 깜깜이인 면이 있습니다그려. 엘리자베스 소리도 하루이틀이지, 매번 그대로 불러주기엔 너무 번잡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냥 리즈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꽤 좋아합디다.”
이탁오가 엄청난 말을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툭 던지니, 오히려 꺽정이가 당황했다.
“어··· 이거 잔치라도 벌여야 하나.”
“잔치라뇨?”
“눈 맞은 것 아니오? 배필을 구했으니 축하를 해야지.”
“눈이야 맞았지만 배필은 아닙니다. 소생이나 엘리자베스 그이나, 한 사람에게 진득하게 정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꺽정이가 숙맥 보듯 이탁오를 보니, 다른 사람도 아니요 꺽정이에게 그런 눈빛 받게 된 이탁오는 자못 불쾌한 티를 냈다.
“에이,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천생연분이거나 천생연분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지.”
“우리는 말로 사귀고 글로 사귀며, 세상의 이야기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인에 의지하고 예에서 노닐기(依於仁 遊於藝)에도 바쁜데 어디 운우지정(雲雨之情) 따위가 중하겠습니까?”
“둘 다 선골(仙骨)이라도 타고났나. 나처럼 속세 찌든 천것은 도저히 모를 경지요.”
엘리자베스의 속마음, 불행한 어린 시절로 인해 도저히 남자 하나에게 오롯이 마음을 줄 수 없는 속사정과 더불어, 정말로 남자를 가까이 했다가 훗날 잉글랜드의 왕위를 노릴 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모두 알던 이탁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때 막 공사로 바쁜 동인도회사 본부 옆, 임시로 쓰고 있는 집 구석에서 리드완 파샤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모카에서 만난 바 있던 구면이었는데, 그사이 뭔 고생을 했는지 조금 삭았다.
“그래, 이야기는 어찌 잘 되셨소이까?”
안에서 대충 어떤 사업 이야기 오갔는지 잘 아는 – 당장 그 사업 구상의 절반은 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 이탁오가 짐짓 모르는 체 하며 물었다.
“지아웃딘 선생, 림 파샤, 대체 어디서 저런 자들을 찾아서 데리고 다니는 게요?”
“저런 자라니요? 명색이 일국의 공주이자 왕위 계승자입니다. 말씀 조심하시지요.”
이탁오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 지으며 리드완에게 한 소리를 하니, 이미 기세가 나일 강변 갈대보다도 더 약해져 있던 리드완은 금방 미안하다 하였다.
“여하간 그이 뜻대로 되었소. 대체 아버지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휴우, 말을 말아야지.”
운하가 뚫릴 때까지 갑자기 아래에 두게 된 엄청난 규모의 함대를 놀릴 생각은 없던 엘리자베스는 이곳저곳 돈 벌 구석을 찾고 있었다. 갤리선 노예들도 이제는 노예가 아니요, 그저 ‘계약을 맺은 일꾼’ – 물론 그 계약이 완전한 자유의지 하에 맺어졌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 으로 자유인이었기에, 어쨌든 삯을 주어야 했다.
그러므로 차차 갤리선 대신 작고 빠른 범선으로 배를 교체하는 한편, 그사이 뭔가 수익 나는 일을 하려 했는데, 때마침 리드완 파샤라는 좋은 먹잇감이 술레이마니야로 찾아왔다.
림 파샤와 그 일행이 술탄 자리가 확정된 셰자데 셀림과 아주 돈독한 사이라는 풍문 들은 리드완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집안의 사실상 영지인 가자 산작의 코앞에 이들이 머물고 있으니 찾아가서 뭔가 엮일 일을 만들라 지시하였다. 지방의 영주 노릇을 넘어, 아예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라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고작 하루 만에 동인도회사는 예루살렘 성지순례라는 매우 좋은 사업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자 산작베이의 이름을 내세워, 성지와 그 인근에서 여행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성지까지 가는 배편은 동인도회사 산하의 옛 해적들이 전담하며, 전자보다 월등히 어려운 후자의 공헌을 감안하여 이익은 동인도회사에게 거의 대부분 돌리는, 명목상으로는 아주 공정한 계약이었다.
“어떻게 그 허리 꼿꼿한 맘루크들을 꺾었는가 잠시 궁금하게 여겼는데, 이처럼 독한 이들을 대동하고 다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소. 그냥 누구 하나 보내서 그간 죽였던 성질을 드러내게 하면 되었을 테니.”
이번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 셰자데 한 사람을 모욕하는 리드완 파샤였다. 그것까지 짚어주었다가는 어째 옆의 기둥에 머리를 박을 것 같았으므로, 꺽정이와 이탁오는 침묵을 지켰다.
“뭐, 어찌 잘 풀리긴 했소이다.”
“농담을 제쳐두고 진지하게 조언하자면, 맘루크들은 시대에 뒤떨어졌을지언정 결코 어리석은 자들은 아니오. 오히려 저들이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알기에 그토록 온갖 욕심을 다 부리며 패악질을 벌이는 것이지.
반드시 저들이 뭔가 수를 쓸 것이라 예상하고 대비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오.”
“웬일로 우리 걱정을 다 해주시오?”
“어째서겠소? 이제 좋으나 싫으나 같이 가는 입장이 되었으니 그렇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땅이 꺼져라 한숨 푹 쉬는 리드완이었다.
그리고 그 한숨이 일으킨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공교롭게도 뒤에서 꺽정이 찾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임 당수, 계십니까? 수에즈 쪽에서 급한 연락이 닿았는데,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 출신 무슬림 상인 주스티아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그때 이후로 저를 어지간하면 피해 다니던 주스티아니가 이렇게 찾아올 정도라면, 반드시 중대한 일일 테다. 꺽정이도 그 퉁퉁한 다리가 뜀박질도 할 수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흉보는 대신 진지하게 물었다.
“수에즈에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에서 보낸 흑인 노예들이 도착했습니다. 네구스의 ‘성의’라고 하던데요.”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오. 적당하게만 값을 후려쳐서 상인들을 돌려보내면 될 일인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요?”
“그것이··· 수에즈에 선교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청진교 사람들도 선교를 할 수는 있겠지. 맘루크들 중에 신실한 사람이 있나 보오.”
“그게 아니라, 맘루크들이 모셔온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이 노예들 사이에서 선교를 하고 있답니다!”
무슬림 맘루크들이 모셔온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이, 두 신앙 모두 알지 못하던 오로모인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두 신앙 사이의 화합이 아닐 수 없었다.
기독교인이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늘 그렇듯, 이러한 금령은 주로 금지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힘이 셀 경우에만 엄격히 적용되곤 했는데, 지금 에우로파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에스파냐는 무슬림이든, 아프리카의 흑인이든 이교도 노예를 쉽게 구할 수 있었으므로 이 금령을 따르곤 했다.
무슬림이 무슬림을 노예로 부리는 것 역시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 역시 값싼 기독교인 노예들을 많이 구할 수 있는 루멜리아나 아나톨리아, 크림 등지에서는 잘 지켜지는 금령이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몇몇 맘루크들은, 저들이 값싼 잔지(Zanj, 흑인 노예)를 들여와 자신들을 거치지 않고 운하의 굴착과 운영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묘수 하나를 고안해 냈다.
“천주교 스님들을 데려왔다고? 잘못 들은 것 아니오? 내가 청진교니 천주교니 별반 다를 것 없으니 그만 좀 싸우라고 하고 다니긴 했지만, 벌써 그렇게까지 동조하는 자들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릴 수 없다. 그렇다면 노예가 될 만한 자들을 미리 기독교인으로 만들어버리면, 노예의 공급 또한 끊기는 셈이었다. 어디 신대륙 한구석이라면 그러한 모순을 견뎌낼 만큼 뻔뻔한 억지 논리를 만들겠지만, 이곳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이목이 쏠린 수에즈였고, 심지어 운하 공사를 후원하는 이탈리아 연맹에는 떡하니 교황청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니 실로 대단한 묘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맘루크들은 프랑스로 사람을 보내, 도미니코회 선교사 여럿을 모셔왔다. 그리고는 그들을 수에즈 항으로 보내, 네구스가 보낸 오로모인 노예들이 도착하자마자 구슬려 모두 세례를 받게끔 하였다.
오로모인들 역시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때로는 투닥거리고 때로는 교류하면서, 북쪽 사람들이 하나뿐인 위대한 신령을 모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더구나 저들이 장차 노예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되는 비책이라 하였으므로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그러면 노예로 아니 삼으면 될 일 아니오?”
“하면, 맘루크들이 좋다고 배를 끌고 와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저들과 함께하라 하겠지요. 아니면 숫제 수에즈 앞바다를 가로막고 잔지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든가요.”
느닷없이 붙잡히거나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속아서 생전 처음 보는 바다 위로 끌려나온 오로모인들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이 낯선 땅에서 삽질이나 할 것이냐, 아니면 기묘한 구경 했다 치고 이대로 돌아갈 것이냐 묻는다면 후자를 택할 터.
그사이 울루츠 알리 – 저의 갤리선 노예들이 모두 말타 섬에서 자유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배 없는 선장, 또는 엘리자베스의 비서 노릇을 하고 있었다 – 가 본사 앞에서 리드완 파샤와 임 당수, ‘엘리자베트 술탄의 가장 가까운 벗’ 등등이 모여서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저의 상전을 모셔왔다.
“무슨 일인가요?”
에우로파 사람들도 요새 흑인 노예를 많이 부린다니, 엘리자베스는 뭔가 알지 않을까 싶어 꺽정이도 반색하며 저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하도 부대끼다 보니 엘리자베스도 조선말은 제법 알아듣게 되었지만, 말하는 꺽정이의 말주변이 시원찮은 탓에 결국 이탁오가 이야기에 숭숭 뚫린 구멍을 마저 메워주어야 했다.
그렇게 자초지종을 마저 들은 엘리자베스는 씩 웃었다.
“하하, 이제 보니 맘루크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썼네요. 하지만, 그, 뭐라고 했더라, 아,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도에요.”
이탁오가 해준 <장자> 이야기에서 들었던 표현을 인용하는 엘리자베스였다.
“물론 교회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운하의 일은 보통 대업이 아니고, 당장 서쪽 모든 교회의 수장인 교황도 윤허한 사안이지요. 고작 수도사 한둘이 노예 몇몇을 개종시켰다 한들 그것을 가지고 흑인 노예 전체를 막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소?”
꺽정이가 지금껏 본 천주교 스님이라 해보아야 하비에르나 로욜라요, 만나본 진짜 스님 또한 하필이면 병해대사나 보우 같은 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꺽정이는, 스님이라면 다들 신통력 또는 신통력에 준하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당장 하비에르 신부의 서신 한 통이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맘루크들이 서쪽에서 작정하고 모셔온 스님이라면 빗대는 표현으로든 진짜로든 사자후(獅子吼) 쯤은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엘리자베스가 그럴 일 없을 것이라 단언하였으니, 아무래도 서양 사정은 서양 사람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개종이고 뭣이고 우선 죄다 끌고 오라 해도 되겠구려.”
“먼 길 찾아오신 수도사 분들께는 죄송하게 된 일이지요. 하지만 운하의 공사가 조금 중한 일이던가요. 로마 교황청과 콘스탄티노플의 술탄 이야기를 하면, 이 일대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무어라 볼멘소리는 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화근을 남겨놓지 않는 쪽이 좋으니, 그 수도사들을 정중히 이쪽으로 모셔와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좋은 이야기’라면 에우로파를 돌며 꺽정이도 많이 한 일이었다.
“그리 합시다. 뭐, 그대 말대로라면, 그리 변변한 사람은 아니겠지. 오죽하면 그토록 싫어하는 이교도의 부름을 받고 이쪽까지 왔을까.”
오래지 않아 그러한 답이 막 정비되기 시작한 가도를 타고 지협 반대편 수에즈로 향했고, 수에즈 쪽에서는 개종한 오로모인 몇몇과 함께 곧 찾아뵙겠노라 하는 답이 왔다.
그리고 ‘변변치 못한 스님’ 맞이하러 나간 꺽정이는 곧 뒷통수를 맞게 되었다.
사연은 이러하였다.
“듣기로, 저들 동방인들이 그대들 부르투갈(포르투갈)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하더군. 그렇지 않소?”
이스칸다리야(알렉산드리아)에서 바예지트가, 그 짧은 시일 동안 동방인들의 화술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는 데 탄복한 – 즉 아주 깊은 원한을 품은 – 맘루크들은, 저들끼리 작당하고는 그 대표를 마사와 항으로 보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소만, 그것이 그대들 이교도와 무슨 상관이오?”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소이까. 더구나 이번 일은 우리에게는 중할지언정 그대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니, 서로 돕는다 하여 후에 뒤탈이 남지는 않을 것이오.”
마사와 항의 포르투갈인들에게 찾아간 맘루크들의 솔깃한 말에, 포르투갈 쪽의 마음도 동하였다.
“무엇을 원하시오?”
인도양의 포르투갈인들은, 얼마 전 관대하게 평화를 허용해 주겠다는 오스만 투르크 측의 통보를 받고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있었다.
물론 오스만 투르크의 거대한 힘이, 페르시아와 지중해, 그리고 에우로파 본토 곳곳으로 흩어져 있는 동안에도 예멘과 무스카트 등지에서 얻어맞기만 했으므로, 이제 그 힘이 동쪽 바다로 쏠릴 수 있게 된 지금 오스만 측에서 선뜻 평화와 불가침을 언급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평화 끝에는 운하의 개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중해에 머물던 오스만 해군이 마침내 홍해를 지나 인도양까지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된다면, 포르투갈은 동방무역의 이익보다도 아예 동방에 저들의 설자리가 남지 않을 것을 먼저 걱정해야 하게 될 터였다.
“믿음의 힘으로 저들 동방인들을 견제하고자 하오. 아무래도 기독교인들 사이의 일은 기독교인들이 잘 알지 않겠소? 그대들 부르투갈의 성직자들 중, 인맥이 넓은 자가 있을 것이오. 그런 이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오.”
기독교인 귀족의 추천서 한 장이면 족할 일이었다.
곧 그 편지가 리스본에 닿고, 리스본에서는 다시 동쪽, 에스파냐에 머물고 있는 어느 늙은 수도사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한때 이러한 문제에 있어 아주 관심이 많았고, 불과 몇 년 전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도미니코회 수도사라 하였는데, 과연 맘루크들이 사실관계를 아주 ‘정직하게’ 써서 보낸 편지에 바로 답장이 왔다.
그리하여 몇 달 전보다는 어째서인지 무슬림들을 조금은 덜 미워하는 듯한 발렌시아 항구에서 맘루크들은 그 늙은 수도사와 그를 따르는 다른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을 배에 태우고 미스르 땅으로 돌아왔다.
영혼과 이성이 있는 인디오들을 신대륙에서 착취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신 흑인들을 노예로 쓸 것을 권하였던,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의 손이 그러한 글을 썼다는 것을 수십 년 동안 후회했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는, 이번 일로 조금이나마 속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니 다 늙은 매부리코 중의 겉모습만 보고, 과연 엘리자베스 말마따나 변변찮은 사람이겠거려니 생각하였던 꺽정이 뒤통수가 어찌 얼얼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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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리지(Lizzie) 또는 리즈라고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가는 이지와 엘리자베스가 되겠습니다. 여담으로, 이탁오의 이름 이지를 현대 보통화(만다린)로 읽으면 리 즈(Li Zhi)가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평생 여러 남자를 곁에 두면서도 결코 진지한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필 엘리자베스와 죽이 잘 맞았던 이들이 모두 여왕의 부군이 되기엔 결격사유가 컸던 것도 한몫 했지만, 작중에서 메리 여왕의 입을 통해 언급된 것처럼 엘리자베스 본인이 어린 시절 양부 토머스 시모어와의 사이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이탁오 역시 당대에는 매우 이질적인 여성관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단아 행보를 시작한 뒤 그는 과부 매담연, 비구니 명인과 선인 등 여러 여제자를 들였고, 세간에는 그가 여러 여성과 동침하며 음란한 풍속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관과 민간 양측에서 큰 비난을 받았지요. 이탁오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숫제 남녀 간의 재능에 우열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16세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가 전염병과 가혹한 처우로 급감하면서, 노예무역이 서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을 잇는 이른바 삼각무역의 핵심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지구적 차원에서 성행하고 있었고, 그 주 무대는 인도양이었지요.
잔즈(Zanj)라 불리는 흑인 노예는 이슬람 세계에서 값싼 농업노동력으로 널리 활용되었고, 9세기에는 십여 년에 걸쳐 이라크 남부를 초토화한 잔즈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농업 기반이 거의 붕괴하고 수단과 동유럽, 지중해라는 새로운 노예 공급처가 등장하면서 동아프리카 해안 노예무역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결코 단절되지는 않았지요. 이들 중 몇몇은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동북아시아까지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흑인 노예병 ‘해귀(海鬼)’들이나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유명한 야스케 등은 그 중 후대에 기록이 전하는 일부 사례라 하겠습니다.
한편, 상술한 것처럼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흑인 노예무역은, 그 시작부터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고, 그 중심에는 바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에 발을 디딘 적도 있는,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개척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라스 카사스는, 군종 신부로서 콩키스타도르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학대하고 또 학살하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원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과 신앙을 받아들일 자유, 그리고 개종한 원주민들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고,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마침내 수십 년간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논리는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들여오는 것을 정당화하게 되었지요. 그의 사상과 노예제 문제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