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71화 (171/259)

51. 큰 바람 일어나고 (4)

조선 팔도가 근년 사이 은으로 말미암아 천지개벽을 하는데, 경기도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통상 이맘때면 논밭에 오곡이 슬슬 여물 채비를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꺽정이가 양주 아버지네로 귀국 인사 올리러 가는 길에 보니 밭두렁마다 심어진 것은 배추나 무 따위요, 곡식 심은 곳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가 오죽 심한 것이 아니라, 이번 생에나 전생에나 농사와는 연 없던 꺽정이 눈에도 유별나게 보였다.

“어째 온통 남새(채소)뿐이군. 삼 년 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근래 삼남에서 워낙 오곡이 풍성하게 나니 경기 일대에서 미작(米作, 쌀농사)보다는 부작(不作, 농사를 관둠)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랍니다.”

꺽정이 옆에서 경마 잡힌 말 타고 가던 이이가 저의 버릇 못 버리고 설명을 하였다.

수중에 은조각이나마 들어오면 곧장 이밥 해먹는 것이 귀천 불문하고 조선 사람의 뼛속 습성이라지만, 그러한 욕심보다도 삼남의 소출이 더욱 빨리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니 일손은 귀하고 도성과 송도가 가까운 경기도에서는 차라리 소채(채소) 농사를 짓는 쪽이 나았다.

우순풍조(雨順風調)는 여전히 옛말로,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고 흉년도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출이 늘어나는 까닭인즉 대개 이러하였다.

첫째로 각지 관아에서 곡식과 포목을 쌓아두어 쥐와 좀의 잔칫상을 열어두느니 차라리 은을 비축하는 쪽이 낫다 여기면서, 자연스레 한 해 농사짓는 만큼 그대로 시중에 돌게 된 것이 있었다.

“허나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으니, 바로 삼남의 몇몇 사족들이 개창(開創)한 농계(農契)였습니다.”

한전법으로 인해 농지를 처분하게 된 사족들 중 몇몇은, 저들의 옛 전답을 싸게 파는 대신 그것 사들인 주변 농군들을 하나의 계(契)로 묶었다.

‘내 근래 초당(허엽) 선생의 상학(商學) 논변을 보았는데, 이르기를 만민이 각자 장기(長技) 있으니 이것에 힘쓰면 같은 수의 사람과 같은 양의 자본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더군. 무릇 사족이 자네들 농군에 비해 장기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훌륭한 이들을 널리 사귄 데 있지 않겠는가?’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동문수학을 했든, 아니면 친인척이든, 호남에 사는 유학(幼學) 아무개의 계와 영남에 사는 진사 모씨(某氏)의 계가 손을 잡고 동시에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리하여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운이 없어 소출이 적게 나오면 다른 쪽에서 보전해주니, 양측에 동시에 흉년이 들지 않는 한 이익과 안전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었다.

또한 영세한 이들 하나하나가 알아서 농삿일 힘쓰는 것보다 여전히 목소리 큰 선비 하나가 나서서 일손도 모으고 아전들에게 고루 인정도 베푸는 쪽이 훨씬 효험 좋았다.

“아마 이쪽도 대개 마찬가지겠지요.”

“그러고 보니 서쪽에서 가져온 용한 약초가 여럿 있었는데, 이쪽에 심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네구스의 명에 따라 졸지에 머나먼 동쪽까지 오게 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천지가 다시 창조되기 전에는 이 조선 땅에서 절대 부나(커피)를 재배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부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려면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안 되는데, 조선 땅은 둘 다 해당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에스파냐 용병 고용하러 찾아온 진량사의 쇼 칸이, 저들이 새로 ‘찾아낸’ 우후우지쿠니(대만)에 수미산처럼 높은 산이 있으니 그 산기슭 오랑캐를 쫓아내고 재배하면 어떻겠느냐 제의하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기껏 들여와 놓고서 아무 이득 못 얻는 억울함을 당할 뻔하였다.

허나 그 외 나머지 약초들, 예컨대 리스본에서 뜯어낸 그 토란이나 마의 일가붙이 같은 약초(감자)는 심어볼 만도 할 듯했다.

“지시를 하시려면 서 별감이나 제 누이동생에게 하시지요. 저는 그쪽은 아니 맡고 있습니다.”

이이가 좋다고 설명할 때는 언제고, 저의 일감 생길 듯하니 또 화들짝 놀랐다. 삼 년 간 명희가 민주당 당무를 여럿 맡게 되면서, 남정네 나서야 할 일이라든가, 아니면 뭔가 복잡하게 계산해야 할 일이 생길 때면 바로 저의 오라버니를 불러다 쓰곤 했던 것이다.

오라버니 성정을 잘 아는 명희가 슬슬 이이의 속을 긁으면서 일을 떠넘기면, 이이는 그 수를 알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덥석 맡아버리곤 했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사연으로 바쁘던 차, 꺽정이가 돌아오면서 더욱 일감이 늘어나 버렸던 것이다.

“그리 바쁜 사람이 이렇게 외유나 나오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걸.”

“바쁘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외유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날 흑의영에서 벌어진 연회에서, 두리손 놈과 당당히 대면하며 장차 한바탕 다툴 것을 서로 약조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러므로 비록 한양 코앞인 양주라지만, 꺽정이 홀로 그곳에 보냈다가 또 뭔가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 꺽정이를 노릴 만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간만에 옛 이야기나 할 겸, 이지함이나 명희가 꺽정이 옆에 붙어서 가려 했는데, 웬일로 이이가 먼저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제 안사람 될 상씨가 얼마 전 청하기를, 조선국은 유구에 비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명승(名勝)도 많으니 산천유람을 함께 가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때마침 이런 기회가 찾아와 함께 바깥바람을 쐬게 되었으니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명희와 신씨 부인의 부추김 받은 쇼 잇시가 얼마 전, 이이의 방에 주안상 들고 쳐들어간 이래 두 사람은 마침내 제대로 정혼을 하게 되었다. 비록 폐서인되었다지만 아예 연을 끊은 것은 아닌지라 류큐 쪽에서도 적당한 명분 찾아 예물 정도는 보내려 하였는데, 그 일정만 합의되면 정말로 혼사가 곧 치뤄질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정작 가약 맺을 상대인 이이가, 꺽정이조차 고개 절레절레 흔들 만큼 남녀 사이 일에 어둡다는 점이었다.

당장 지금도,

‘내 저 사람 이럴 줄 알았다. 신불(神佛)도 무심하시지.’

하는 눈빛을 너울 너머로 형형히 드러내는 계월당 상씨가 이이 뒤에 뻔히 서 있건만 저런 말을 당당히 하고 있지 않던가.

돌이켜보면 이이는 자라오면서 주변에서 제대로 된 내외(內外)를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축에 드는 쪽이 역적 누명 쓰고 산중에 몰래 숨어 살던 이지함 부처(夫妻)요, 나머지는 어머니 신씨나 누이동생 명희였다. 저의 형과 누이들은 일찍 혼인하여 강릉이나 다른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묘한 구석에서 헛똑똑이 기질이 있는 이이라지만 남녀 사이 정분 나는 데 깜깜한 것은 저의 탓만은 아니었다.

허나 그것을 감안해도, 남녀간에 오붓하게 소풍 나가자는 제의를 먼저 받았는데, 그 제의 따른답시고 임 당수 양주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황 사저(황진이)께 행여 사내도 문하에 받아주시느냐 물어봐야겠군.”

“예?”

“그런 게 있다.”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지금도 족히 바쁩니다. 당장 요 며칠도 스승님과 밤 새다시피 했는데요.”

꺽정이와 두리손의 그 대담 이래로, 꺽정이 하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제 일로 돌아갔다. 이탁오는 에우로파 사람들과 함께 북경으로 향하고, 도키치로는 금의환향할 생각으로 진짜 비단옷까지 한 벌 맞춘 뒤 사카이로 가는 배를 탔다.

그리고 서림은 레가스피와 함께, 사업당에 새로 고용된 에스파냐 용병들 – 그들이 ‘동방의 엘도라도’ 따위는 없음을 깨달은 것은, 문기에 서명한 뒤의 일이었다 – 을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는 일에 바빴다. 몇몇은 그들의 동포들이 한때 침략했던 류큐로 향했고, 또 오와리 국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도 제법 좋은 계약을 제안해왔다.

한편, 이이와 이지함 두 사람은 대계의 그 다음 수순을 논의하느라 밤잠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그리 어렵냐? 청석골 시절부터 재밌게 하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그때고, 지금은 저도 나이가 스물을 넘겼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수 탓도 없지 않고요.”

“내가 뭘 했다고?”

“논의는 티끌만큼도 거들지 않으면서 온갖 참견은 다 했지 않습니까.”

세간에 나이 지긋하고 박식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율곡 선생’쯤 되므로 ‘참견’이라 불러주는 것이지, 꺽정이가 두리손과의 대담 이후에 두 사람 앞에서 꺼낸 말은 어지간한 서생은 맨정신으로 거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카를로스라는 에스파냐 상왕이 말한 바 있지 않습니까. 정학(正學)의 기틀을 잠시 벗어나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논변입니다. 물론 그러한 순서가 마치 천리(天理)로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면 이 또한 잘못이겠지만요.”

의민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은, 결국 그 옛날 청석골 아랫말에서 이이가 말하던 ‘천하위공(天下公物)’로 나아가고 있었다. 허나 그러한 흐름에는 반드시 거스르는 자도, 또 꼭 그쪽으로만 흘러가라는 법 있느냐며 반박하는 자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들을 한 군데 모아 단번에 처리하면 깔끔하고 좋지 않겠느냐. 그것이 꺽정이가 처음 수락산 털러 가기 전 패거리 모아놓고 궁리한 결과 나온 결론이었다.

헌데 문제는, 어떻게 저들을 ‘단번에 처리할’ 것이냐였다. 두리손이 그저 민주당을 고깝게 여기는 자들을 모으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반대되는 새로운 주장을 개진하고, 그 깃발 아래에 하찮지만 그 수는 하찮지 않은 선비들, 그리고 아예 그 수를 짐작할 수도 없는 백성들까지 끌어모으려 하면서 일이 꼬였다. 꺽정이네가 낸 꾀가 생각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버린 셈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야 호기롭게 웃어 넘겼지만,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저와 스승님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걸림돌이 많이 있고, 그 걸림돌은 생각보다도 더 뿌리가 깊게 박혀 있으며, 임 당수가 원하는 것처럼 깔끔하게 그것을 치워버리는 수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재조론을 운운한다 하여 모조리 잡아 가두거나 죽일 수는 없었다. 바로 그것을 막기 위해 두리손이 지금껏 남치근과 그 일당을 끌어들인 것이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는 세상 만들겠노라 했던 것이 꺽정이와 민주당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저들이 어설프게 반정(反正) 운운하며 한양으로 군사를 몰고 들어온다면 그때는 그저 일부는 때려잡고 일부는 타일러 포섭하면 될 일이었다. 두리손이 그저 그런 놈팽이로 남았더라면 필시 꺽정이 돌아오기 전 서둘러 그런 어설픈 수를 썼을 텐데, 그 옛날 수락산에 있던 두리손이라면 모를까 흑의영 잔치판에 찾아온 두리손은 어지간해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터였다.

반대로 그렇게까지 하기 전까지는 이쪽에서 먼저 흑의군과 에스파냐 용병들을 끌어들여 난리를 벌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저쪽이 끌어들인 것은 명색이 관군 아니던가.

“그놈이 이곳저곳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으니, 우리도 얻으면 그만 아닌가?”

“저쪽에서 예전처럼 근왕(勤王) 같이 백성들에게 안 와닿는 말을 꺼냈다면 모를까, 재조론은 외려 우리가 내놓았던 그 어떤 의권의 논변보다도 더 깊이 울리는 면이 있습니다.”

“거 참.”

재조론을 어느 한두 선비가 만들었다면, 이지함의 그 소소한 계책으로 누구인지 밝혀내고, 아예 양지로 끌어내어 면박을 주든 할 수 있었을 테다. 재조론은 민주당뿐 아니라 탕평당에게도 영 불편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허나 그것이 아니라, 조선국 열린 이래 어쩌면 의민당 이후 두 번째로 여러 사람들 마음을 한데 끌어모을 만한 논변이, 무수히 많은 이들 머리와 손을 거쳐 만들어졌으므로, 일망타진도 말처럼 쉽지 않게 되었다.

“뭐, 혹시 아느냐. 이러다가 뾰족한 수라도 나올지.”

한참 이이로부터, 꺽정이 저가 생각하는 ‘시대 훔치기’가 초장부터 어렵게 되었다는 하소연 듣던 꺽정이가 끝내 무안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머쓱해진 꺽정이가 입을 닫으니, 행렬은 제법 조용히 양주 읍내로 향하였다. 잘 닦인 길 위에, 말발굽과 사람 발소리만 울릴 뿐.

헌데 그 소리 중 이 땅에 아직 익숙지 않는 군화소리가 섞여 있었으니, 꺽정이 일행을 따르는 흑의군 몇몇 뒤에 에스파냐 병사들이 함께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엄밀히 따지면 꺽정이네 사람이 아니라, 임 당수의 집안에 빌붙을 구석 마련코자 꺽정이를 따라다니기로 한 용병들이었다.

꺽정이 일행이 서방에서 기회 닿을 때마다 금화를 흩뿌리고 다닌 것은 꽤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동방의 엘도라도’ 소리가 나온 데도 그런 소문이 한몫 하였다. 그러나 이는 오해에 오해가 겹친 것이었다. 주로 꺽정이 본인 때문에, 이들 ‘동방 사절단’은 에우로파의 이름난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도 저들 돈 흩뿌리며 호강할 겨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쓸 돈은 있고, 쓸 틈은 드무니, 하루이틀 사이에 바짝 뿌리고 바짝 놀 수밖에. 심지어 그 돈의 태반은 꺽정이가 로마 근교에서 카를로스에게 뜯어낸 레가스피의 몸값이었다.

그러니 에스파냐 사람들이 본 ‘동방의 황금’은 실제로는 누에바에스파냐와 페루에서 건너온 저들 국왕의 황금인 셈이었다.

허나 그런 사정 뒤늦게 깨닫고 후회한들 무엇하리오. 그나마 똑똑한 이들은, 민주당에서 엄청난 부(富)를 만진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쪽에 단단히 달라붙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명한 점 한 가지는, 돈 림은 정말로 동방의 거물, 디오시온의 대귀족임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저택(흑의영)에서 열린 연회에 국왕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풍문에 따르면 돈 림의 형 돈 카도치(가도치)는 ‘양주’의 시장인지 시의원인지, 제법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양주는 사실상 림 가문의 영지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돈 림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영향력 있는 림 가문의 다른 귀족들 아래로 들어가 짭짤한 소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함께 동방으로 건너온 이들이 고작 류큐나 이웃나라 야폰(일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습게 여기며, 역시 현명한 사람은 뒷배를 잘 골라야 한다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왜 돈 림께서 지금 저 누추한 집에 들어가는 거지?”

“글쎄, 옛날에 돈 림께 도움이 되었던 하인의 집 아닐까.”

막상 리앙주 시 – 그리 큰 도시도 아니었으므로 다들 의아하게 여겼다 – 에 들어선 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귀족의 저택이나 장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번듯한 집들이 있는 말끔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쪽 역시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그 대신 돈 림과 그 일행이 향한 곳은 남루한 골목의 어느 여염집. 주변의 허름한 집에 비하면 나름 공들여 ‘기와’라고 부르는 – 그들 중 몇 년 일찍 조선에 닿아 북변에서 칼부림 좀 하였던 녀석이 알려주었다 – 지붕 타일을 올렸다지만, 아무리 보아도 귀족의 거처는 아니었다.

그렇게 뒤에서 에스파냐 말로 술렁거리는 것 따위 개의치 않고, 꺽정이는 이이와 함께 문 활짝 열고 들어섰다.

“아버지, 나 왔소. 꺽정이 왔소!”

가도치로부터 미리 언질 받기를, 그냥 전에 살던 집을 조금 넓혔을 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하였다. 그래도 조금은 꾸미고 살 줄 알았는데, 정말로 아주 조금만 꾸몄을 뿐이었다.

부린 사치라고는, 고작해야 울타리 대신 제대로 야트막한 담장을 두르고, 지붕도 기와로 얹었을 뿐.

어설프게 양반을 따라한 것도 아니요, 그냥 수중에 재물 들어왔으니 조금 살기 편하게만 만들어 놓겠다 하는 뜻이 확고하게 드러나는 집이었다.

“어, 왔느냐.”

가도치 봉양 덕인지, 삼 년 전보다 오히려 더 젊어진 듯한 아버지 말대가리가 방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내가 지구 반대편을 다녀왔는데 ‘어, 왔느냐’가 전부요?”

“뭐, 지구? 그건 또 뭣이냐? 대국에 있는 어디 고을 이름이냐?”

“형한테 얘기 못 들으셨소?”

“한 삼 년 멀리 갔다 온다고는 들었다. 헌데 네가 갑자기 사라져서 한 몇 년 아니 돌아오는 게 어디 뭐 처음 있는 일이냐. 이번에는 역적질은 안 했으니 다행이지. 이제 보니 몸도 멀쩡한 것 같고. 하기야, 네가 어디 가서 쉽사리 다치고 올 놈은 아니니 별 걱정도 안 했지만.”

꺽정이 딴에는, 생각해보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여하간 그새 어디 상하신 데 없이 잘 계셨으니 다행이오.”

그사이 말대가리는 짚신 신고 내려와, 걱정 안 한 사람 치고는 퍽 열심히 꺽정이 어깨를 어루만졌다.

“다 네 녀석이랑 가도치 덕분 아니겠느냐. 백정 팔자에 이리 봉양받으며 사는 일이 있을 줄 알았겠느냐.”

대개 세간에서 봉양이라 하면 고대광실(高臺廣室)에 비단옷 차려입히고, 산해진미와 온갖 보약 입에 끊이지 않게끔 하는 것이 그 극(極)이라 여기기 마련이었다.

허나 저들 뜻밖에 너무 높은 곳까지 오르다 보니, 여전히 뭣만 하면 덜컥 겁부터 먹고 보는 가도치와 말대가리는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 덕 보려 이곳 양주에 몰려드는 백정들도 적지 않았으므로, 그들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조금 편하게 사는 정도로만 그치고 있었다.

양주 한량들은, 그것을 두고 가도치의 인품이 훌륭한 덕이라고도 하고, 또 천한 백정이 시류(時流)를 잘 타더니 어떻게든 인망을 얻으려고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한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가도치와 말대가리가 검손하게 살며 딱히 임꺽정의 위세를 빌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형님은 어디 계시오?”

“요새는 한양에 일이 없어서, 그냥 양주 읍내에서 다른 백정들 돕고 다니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단다. 목장 일도 있고.”

“목장? 뭔 목장 말씀이시오?”

때마침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와 투레질 소리가 연이어 나더니, 가도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배도치 왔느냐. 어째 읍내가 온통 시끄럽더라니. 율곡 도련님, 아차, 선생께서도 오셨습니까.”

아버지 말대가리와 달리, 공회를 오가면서 제법 견식 넓어진 가도치였다. 허나 꺽정이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러려니 하고 있었으므로, 지구 한 바퀴 돌다시피 하고 온 아우 맞이하는 것이 영 성의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제는 말도 타고 다니시오?”

“백정이 원래 말 타고 다니는 족속이라고 한 것은 너였잖냐. 그사이 녹양평 들판을 조금 더 사들여서 목장을 다시 열었다. 세상이 암만 바뀌어도 어차피 백정들끼리 뭉쳐서 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니.”

그사이 백정들 중 성정 거칠어 도적질이나 하는 자들은, 북쪽 여진 땅으로 넘어가든, 아예 민주당 아래 들어가서 일꾼으로 일하든 하곤 했다. 그리고 도저히 그럴 엄두는 나지 않지만 저들 삶을 감히 바꾸어볼 용기는 있던 자들은, 백정 살기 좋다는 양주목으로 넘어오곤 했는데, 그들을 모아 녹양평 목장을 새로 열었던 것이다.

밑천이야, 서림에게 찾아가 정중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서 (가도치는 몰랐지만, 거저 주는 것과 다름없는 조건으로) 마련되곤 했다.

“잘 되었소. 잘 되었어. 그나저나 두 분 다 오셨고 인사도 다 드렸으니, 이제 내 할 말을 해야겠소.”

“뭣이냐?”

“이 집 비우고 한양으로 함께 가시든, 아니면 아예 저 북변으로 가시든 해야겠소. 목장은 조금 아쉽게 되었지만, 뭐, 다른 놈한테 맡기시고.”

단도직입이 바로 이런 것일까. 옆에 있던 이이조차, ‘아, 이건 좀···’하며 뜨악스레 쳐다보았지만, 원래 백정들 사이 이야기 나누는 법도는 이러하였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조만간 이 땅에 또 난리가 날 수도 있는데, 일전에야 사람들이 황해도 임꺽정이랑 말대가리 어르신이랑 연 있는 줄 몰랐으니 괜찮았지만, 이번에는 온 세상이 다 양주 가도치가 임꺽정이 형임을 알게 되지 않았소.

한양에는 내 일가붙이도 있고, 또 우리 흑의군도 있으니, 설령 낙성(落城, 함락)을 당하더라도 무사히 빠져나갈 방도가 있소. 북변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삼 년만에 고개 들이밀더니 한다는 소리가 얼른 짐 싸라는 말이니, 말대가리와 가도치는 기가 막혔다.

“아니, 이놈아. 또 난리를 일으킬 심산이냐? 아이고, 내 팔자야.”

“방금 전에는 팔자 좋다고 뭐라 하지 않으셨소?”

“배도치야, 거기서 그러지 말고, 마루 위로 올라와서 좀 상세히 얘기를 해보아라. 무슨 난리를 또 말하는 게냐?”

이제는 자못 자연스레 ‘상세히’ 같은 말도 쓰는 가도치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일단 두리손이라는 못된 놈이 있다는 것부터 말씀을 드리겠소.”

꺽정이가 꼬리도 대가리도 없이, ‘그 쳐죽일놈이 장차 난리를 칠 것인데 내가 그것을 이용해 먼저 더 큰 난리를 칠 것이다’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암만 그래도, 이곳 양주에 모여든 백정이 한둘이 아닌데 갑자기 우리 일가가 한양이나 북변으로 가 버린다면 남은 이들은 어찌 되겠느냐? 정 난리가 일어날 것 같으면 네가 며칠이라도 먼저 언질을 다오. 그러면 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아우 배도치를 두려워하고 또 민주당이 만지는 온갖 보화와 이권을 탐내는 것을 알기에, 가도치는 자신이 어느 고을로 가든 푸대접받지는 않을 것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자신이 떠난 뒤에 남을 외지에서 모여든 백정들, 녹양평에 갓 차린 목장, 그리고 그 목장 기슭에 제법 잘 꾸며진, 저와 배도치의 어머니 묻히신 산소. 그 모든 것을 떠올리면 떠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전생에 가도치가 관군에 잡혀 죽었던 것을 생각하는 꺽정이 마음을 설령 알았더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때, 옆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던 이이가 헛기침을 했다.

“그,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이고, 물론입지요.”

“가도치 공께서는 향임을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릇 향회라는 것은 올바른 풍속을 권면하는 곳인데, 백정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올바른 풍속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아, 그렇지! 역시 똘똘한 사람은 다르군. 형님, 향회 가서 아예 발의를 하시오. 앞으로 양주목에서 백정을 건드리는 놈은 백정만도 못한 놈으로 쳐서 사람 대접을 아니한다. 이렇게 못을 박아버리면 그만 아니겠소? 저들 입으로 ‘알겠다’ 해놓고서 나중에 무를 수도 없을 테고.”

꺽정이가 좋다고 찬동하고 나섰는데, 엉뚱한 데서 엉뚱한 소리가 났다.

“엇?”

고개 돌려보니, 향회에서 아예 새로 향규(鄕規) 정하는 방안을 꺼낸 이이가 입을 떡 벌리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무슨 도깨비라도 있는가 싶어 천장을 보았건만, 아무것도 없었기에, 뭔 헛것이라도 보았느냐 물으려던 차.

“당수, 저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는 의관을 차리는둥 마는둥 하고 후다닥 나가버렸다.

여전히 어색하게 서 있던 쇼 잇시와 에스파냐 병사들은, 이이가 벌컥 문 열고 나오니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일제히 돌렸다.

그리고 곧 뒤따라 나온 꺽정이가, 흑의군 몇몇에게 얼른 저기 율곡 선생 따라서 한양 돌아가라 하고, 나머지도 일 없으니 흩어지시라 하였으므로, 다들 크고 작은 한숨이나 내쉴 뿐이었다. (특히나 쇼 잇시는 더욱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 목석 같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신씨 부인의 도움을 청해야 할 듯하였다.)

그리고 발걸음도 가볍게 한양으로 돌아간 이이는 또 며칠을 이지함과 논쟁하느라 보냈고, 이어서 조식과 이황까지 소식을 듣고 찾아와 그 옛날 의권론 시절마냥 사랑채의 불 꺼질 틈을 허하지 않았으므로, 이번에야말로 이이의 눈길을 제대로 저에게 못박겠노라 작정한 쇼 잇시는 또 며칠을 연달아 허탕치게 되었다.

간만에 집안 이야기도 좀 듣고, 어머니 무덤도 한 번 다녀오고, 이제 제법 말도 똑바로 하는 조카와 얼마 전 새로 얻은 조카딸 구경도 하고, 그렇게 한 이틀 지낸 꺽정이는, 양주에서 향회 열리는 것까지 보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여기 한양에 집 한 채 알아봐 주시오. 우리집 근방이면 더 좋소.”

이지함에게 얼추 이야기 들은 서림은, 따로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한양 집값은 치솟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하여 빈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남촌만 하더라도, 딸깍발이 샌님들 중 시세와 타협한 이들이, 이 기회에 큰돈 만지겠다며 저들의 집을 곧장 팔아넘기곤 했던 것이다. (그들 중 가장 큰돈을 벌 사람이, 아직도 고지식하게 남촌에 남아 글이나 읽고 있는 가난한 서생들임은 그 서생 본인들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 당수님 형 되시는 분께서 이곳 한양으로 옮기시기로 하신 것이겠지요?”

“아니, 아직이오. 하지만 내가 미리 집까지 다 마련해두었다고 하면 미안해서라도 금방 옮겨오겠지.”

“역시 당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십니다그려.”

“그 무슨 말씀이시오.”

“아이고, 벌써 시각이 이리 되었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수! 도키치로 이놈은 어디를 갔어···”

도키치로가 어디 갔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 이름을 팔며 내빼는 서림이었다. 당장 녀석에게 그 동안 밀린 늠료(급료) 줄 때 두둑하니 웃돈 얹어주면서, 그간 고생했으니 푹 쉬고 돌아와서 이곳 사업당 본당에서 일 배우라고 하였던 것이 본인 아니었던가.

꺽정이가 서림 뒤를 따라가려던 차, 이이가 후다닥 달려나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당수! 잘 오셨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대체 뭔 일 때문에 그러느냐?”

“그때 양주에서 떠올린 좋은 생각 있지 않습니까. 아, 글쎄, 스승님께서 계속 아니 된다고만 하십니다. 좀 들어보시고, 대신 스승님 설득 좀 해주시겠습니까?”

천하의 율곡 선생이 설복을 못 시킨다 하면,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는 발상이 틀림없었다.

“일전에 스승님과 부모님, 당수와 서 별감께서 봉산군 관아에서 하였던 맹세 있지 않습니까? 그 중 세번째 기억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기억하지.”

영원히 바꾸지 못하는 법도 없이, 폐단이 생기면 그때그때 모든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나라. 이미 공회가 생겼고, 또 임금이 스스로 저의 힘을 이곳저곳에 나누어주고 있었으므로 거의 이루어졌다 여기고 있었는데 새삼스레 이이가 그것을 꺼내니 꺽정이는 영 의아하였다.

“그런데 모든 법도를 바꿀 수 있다면, 모든 법도가 바뀔 수 있어야 한다는 법도 자체도 바뀔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꺽정이가 갸우뚱하든 말든 한 번 열린 이이의 말문은 닫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스승님과 저는 한창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뒤로 온갖 일들이 계속 터져나오면서 – 대개는 당수 때문이었지요 –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난 며칠 사이 그 논쟁을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장한 것은 이러하였지요.

어떤 법도는 중하고, 어떤 법도는 가벼우며, 어떤 법도는 오로지 의권을 지닌 모든 백성의 총의에 의해서만 세워지고 폐해질 수 있도록 차등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제 입으로 이러이러하게 하자 하였다면, 이를 쉽게 무를 수 없을 것이라고요. 그 재조론의 뿌리를 뽑으려면, 국인(國人) 스스로 우리 민주당이 내세우는 나라의 모습과 저들 재조론이 내세우는 것 사이에서 선택케 하고, 그렇게 모인 나라의 총의를 쉽게는 못 바꾸는, 불변은 아닐지언정 거의 불변하는 큰 법으로 삼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꺽정이 답하기도 전에 혼잣말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냥 법이라고 할 수는 없고··· 홍범(洪範)? 국헌(國憲)? 헌법(憲法)?”

“그런데 대체 어떻게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모을 생각이냐? 애초에 나도 지금 네가 하는 소리를 다는 못 알아들을 판인데, 일단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이라도 해야 뜻을 물어볼 것 아니냐. 그리고 그리고 막상 물어보았는데, 백성들이 오히려 재조론 그게 더 좋다고 나서면 어쩔 테냐?”

“그러게요?”

그간 이지함과 이이는 물론이요, 이황과 조식 모두 그러한 큰 법을 세우는 것의 온당함만을 두고 논쟁 벌이느라 정작 이 점은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이가 멈칫하는 사이, 꺽정이가 오히려 헤벌쭉 웃으며 스스로 알아서 결론을 내려버렸다.

“아, 나도 참. 그냥 백성들을 절반쯤 속여넘기면 될 일인데,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었군.”

“예?”

“그러면 도적놈 주제에 정정당당하게 조선 팔도 사람들을 모조리 설복시킬 심산이었더냐?”

졸지에 도적놈 소리 들은 이이는 어안 벙벙하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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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농업이 중심이 된 조선 사회였지만, 정작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의 재배는 그리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미진한 품종개량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농지와 노동력이 있다면 차라리 벼 한 포기라도 더 심는 것이 좋다고 여겼던 조선인들의 쌀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그로 인해 흉년과 풍년을 막론하고, 채소보다는 비교적 쉽게, 그리고 농지를 할애하지 않고도 구할 수 있는 산나물이 우리 식문화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지요.

원 역사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중기를 거치며 밭농사 기법이 발달하고, 중국에서 보다 개량된 채소 종자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또한 산림파괴와 인구증가는 산나물 채취를 어렵게 만들었지요. 그 결과, 채소의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서울과 그 근교에서는 도시에 공급하기 위한 채소 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훈련도감 군인들이 급료 충당을 위해 재배한 배추가 제법 명품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요. 심지어 실학자 이가환의 아버지 이용휴처럼 채식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도 등장하게 됩니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훨씬 빠르게, 그리고 성저십리 일대를 넘어 경기도 전체로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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