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82화 (182/259)

53. 백아절현 (4)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갈레온 여러 척 사이를 작은 배들이 부산히 누비고 다녔다. 실을 물건은 싣고, 고칠 부분은 고치는데, 여기저기서 거친 뱃사람들 외치는 소리가 울려 모여든 갈매기들을 내쫓았다.

“그간의 호의와 환대에 감사드리오.”

“뭘 그런 걸 가지고. 가서 잘 사시오.”

장차 넓디 넓은 바다 건너가 새로운 땅을 개척할 이들을 배웅하는 자리. 허나 지난날 술자리에서 마치 형님 아우 하듯 서로 옆에 앉아 술잔 기울이던 것 무색하게 임금과 셰자데 바예지트 사이의 대화는 영 쭈뼛쭈뼛하였다.

이런 자리라면 마땅히 격조 있는 덕담을 주고받아야 할 터인데, 한쪽은 입담이 달리고 다른 한쪽은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나한테는 고맙다고 아니 하시오?”

허나 그런 어색한 덕담조차 쥐어짜내려는 도둑놈이 바예지트 곁에 있었으므로, 쫓겨난 셰자데는 조선 임금이 그나마 훌륭한 말상대라 할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림 파샤 그대는 동에서나 서에서나 한결같이 양심이 없구려. 내가 그대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

“거 서운하게시리. 내가 아니었으면 동쪽으로 가는 길잡이를 구할 수나 있었겠소?”

그사이 루손 섬의 마닐라에 그럭저럭 거점 마련한 에스파냐 쪽과 협상하여, 얼마 전 찾아낸 마닐라-아카풀코 항로의 길잡이를 구한 것은 모두 민주당의 공이었다.

(길잡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자유민주당의 본업인 해적질을 어디선가 재개하겠노라 통보한 것을 ‘협상’이라 부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다소 있었다.)

“그래본들 결국 이득 보는 것은 그대 당 아닌가?”

“뭘, 저도 좋아서 가는 것이면서. 사람 성품이 그 모양이니 쫓겨난 것 아니오, 쯧쯧.”

바예지트의 성품도 성품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코스탄티니예에서 쫓겨나 이름뿐인 셰자데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바예지트 눈앞에 서 있었다. 그런 놈이 이렇게 건들대고 있는데, 분노하는 대신 한숨지으며 고개나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실로 그 성정이 옛날보다는 나아졌다 할 만했다.

“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고는 임금에게 간단하게 인사 올리고는, 항해 준비하는 이들 사이로 사라져버리는 바예지트였다. 그렇게 대동양 또는 태평양이라 부르는 큰 바다 건너갈 이들을 환송하는 자리는 영 싱겁게 끝나버렸다.

바예지트의 선단은 겨울 바람을 타고 류큐까지 간 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무역풍을 타고 바다를 건널 계획이었다.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 측에서는 결코 환영하지 않을 만한 일이었으나, 포토시에서 나오는 은을 어떻게든 동방무역에 투입하여 이탈리아 연맹에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 적어도 지금은 – 민주당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허나 지금은 겨울이라 하기에는 아직 약간 이른 상강(霜降) 직전. 남쪽에서는 보리를 파종하고 늦깎이 풀벌레는 노래를 그치지 않은 때였다.

“임금님도 알고 계시지 않소? 왜 바예지트 저이가 이리도 발길 재촉하는지를.”

바예지트가 망양당 떠나 부두로 향하면서, 어느새 임금 독대하게 된 꺽정이가 툭 말을 던졌다.

“그 헌법 때문 아니냐? 만에 하나 시끄러워지면 거기 휘말릴까 두려워 서둘러 떠나려는 것이겠지.”

“알고 계시는구려.”

“알다마다. 어머니께서도 근심걱정 많으신지 요새 부쩍 불공을 많이 드리시더라.”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어째 별 감상 없으신 듯하오.”

“조서에 이르시기를 헌법 세우는 것 재고하라 하였지만, 상국과 우리 조선 사이에 사소한 오해는 종종 있지 않았더냐.”

종계변무를 비롯하여 명이 근년 사이 조선에게 여러 호의 베푼 것은 – 겉보기로는 – 사실이었고, 또 국초에 요동을 정벌하니 마니 하던 시절에 비하면 이번 조서는 그저 가볍게 타이르는 정도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저의 보고픈 것만 보는 사람 본성까지 겹쳐, 비단 임금뿐 아니라 탕평당 사람들도 우선 헌법 권점을 마친 뒤 정성을 다해 천조에 전후 사정을 상주(上奏)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어차피 그때 그날 이후로 나는 네 말 따라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네 말대로 되었으니, 어찌 이제 와서 물릴까.”

임금도 이제는 어렴풋이 알았다. 설령 자신의 손에 권세가 들어온다 할지라도, 그 손 휘두르는 것은 결코 제멋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결국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저는 도저히 남을 다룰 만한 깜냥이 되지 않았다.

아는 것이 이 가락뿐이었다면,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니 무언가 해보라고 발버둥이라도 쳤겠지만, 꺽정이 덕에 더 쉬운 길을 깨닫게 되었다.

후대의 다른 임금들이야, 돈벌이에 눈이 멀어 열성조께서 세우신 기업을 남들의 손에 넘겼다고 무어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돈이 있기에 지금 임금은 그 선조들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즐겁게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뾰족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 임금으로서는 그만하면 족했다. 후대의 임금이 만일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때는 그의 힘으로 국인들을 설득하여 그들에게 나누어준 것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대신 자신은 후손들에게 경제사를 물려줄 터이니, 이만하면 쑥쑥 자라고 있는 저의 아들을 비롯해 그 어떤 후대의 임금도 저를 탓하지 못하리라고 임금은 생각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오. 대국에서 당장 쳐들어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세상 일 모르는 것이니.”

“네 말이 옳다. 물론 화가 닥친다면 나보다 네게 먼저 닥칠 것이요, 나는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지만 너는 아니니, 네가 먼저 알아서 요령껏 막지 않겠느냐? 다만...”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느긋하던 임금의 말에 묘한 꼬리가 붙었다.

“다만?”

“워낙 부족해서 뭔가 말할 때마다 과인(寡人) 자처하는 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 있음은 알고 있다.”

궂은 날씨 임박하여 비바람 심상치 않아지면, 그때는 한낱 미물조차 능히 알고 대비하기 마련이었다. 바예지트도, 꺽정이가 임금으로 모시는 그의 벗도 이제는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심해다오. 내 나라지만 네 나라기도 하고, 또 장차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고자 네가 지금 이 야단법석을 떠는 것 아니냐? 네 욕심 때문이든 아니든 장차 모진 풍파 닥쳐온다면, 적어도 그에 마냥 휩쓸리지만은 않도록 단단히 준비를 해야겠지. 그 준비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삼 년 전이든 지금이든, 좀처럼 듣기 어려운 임금의 진지한 말이었다. 그 뒤에 사족이 붙어서 기껏 진중해진 말을 도로 우스갯소리로 만들어버리기는 했지만.

“세자가 임천당 주전부리를 좋아하는데, 난리통에 문 닫아버리면 얼마나 아쉬워하겠느냐.”

그 무렵, 스승 서계가 내각에서 쫓겨날 때 함께 예부상서직을 내려놓고 야인이 된 장거정은 북경의 저택에서 그리 은밀하지 않은 모임을 열고 있었다.

환관임에도 그 인품과 글솜씨 덕에 관료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있던 풍보가 북경 곳곳을 돌며 직접 초대해온 이들이 그 모임에 고개를 내밀었는데, 서계가 훗날 자신이 은퇴한 뒤 후임으로 추천하려 마음에 두고 있던 조정길(趙貞吉)도 있었고, 또 그 강직한 성품으로 일조편법과 양전 등 개혁의 실무를 밀어붙이는 공을 세운 해서(海瑞)도 있었다.

“고 수보(高拱, 고공)와 함께 입각하신 분들도 계시고, 들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는군요. 어느 쪽이든 환영합니다. 어차피 지금의 내각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요.”

엄숭이 전횡하던 시절, 저의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던 이는 서계 하나만이 아니었다. 서계가 내각수보가 된 이래 엄숭이 막은 언로를 잠시나마 다시 트고, 초야에 묻힌 인재를 널리 등용하니, 마침내 용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가 되었노라며 고개 드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허나 서계는 그런 이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각각 중임을 맡기면서도, 결코 저의 문인 장거정보다 높은 자리는 주지 않았다. 임꺽정 때문에 졸지에 ‘엄숭의 난’을 꾸미는 데 함께 공모한 사이였으므로, 서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장거정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사정 모르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시기와 질투를 족히 할 만하였다.

재주는 있으나 사람됨이 경솔하다는 평이 있는 고공은 그렇게 질투하는 이 중 하나였다.

“비록 우리가 고 수보와 뜻을 완전히 함께하지는 않는다 하나, 태악(장거정) 그대 또한 세간에서 평이 좋지만은 않소. 그대가 사사로이 당파를 모으거나 감히 불충한 모의를 하리라 여기지는 않기에 찾아왔지만, 그저 남을 헐뜯고자 부른 것이라면 이 사람은 바로 떠나겠소이다.”

늘 꼿꼿한 해서가 바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니 설명을 청하오. 무슨 이유로 그리 말씀하신 것이오?”

“고공 그자는 지금, 스승님께서 서생들의 죄를 대신 덮어쓰고 유배당하기를 자처하신 줄 모르고 마냥 좋아만 하고 있겠지요.”

황상의 성품 아는 이들은 어찌하여 어가를 가로막은 이들 대부분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는가 내심 궁금히 여기고 있었는데, 이제 그 답을 얻게 되었다. 탄식이 곳곳에서 조용히 나왔다.

서계는 성상에게 아첨하여 무고한 서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신,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책임 지기를 택하였다. 엄숭 아래에서 인고하며 겨우 권력을 얻었음에도 그에 집착하지 않았으니, 어찌 훌륭하다 아니 하리오.

그러나 장거정 생각에는, 선비로서는 훌륭할지언정 천조를 이끄는 대신으로서는 부족한 처신이었다. 스승 서계에게는 밝히지 않은 속내였다. 서계가 물러나야 빈 자리가 생길 터였으니.

“조선은 헌법을 세울 것입니다. 아마 올 겨울 그 ‘권점’을 거쳐 명년 정월 즈음에는 두 헌법 중 어느 하나가반포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고 대인은 천조가 번국을 다스리는 이치를 그르쳤다는 이유로 탄핵당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 이 장 아무개가 다시 입각하여 수보의 자리를 맡게 될 것입니다.”

을유년(1525)생 장거정은 이 자리에서 가장 연소하였고, 그 다음으로 연소한 해서는 갑술년(1514)생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이 불혹에 이르지 않은 자는 장거정과 풍보 두 사람 뿐이었으나, 그 누구도 장거정이 내각수보를 맡기에 부족하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였다.

해서와 조정길처럼 장거정의 재주를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거니와, 시기와 질투로 눈 가려진 이들에게도 환관들 중 으뜸가는 위세를 지닌 풍보가, 마치 당연한 이야기 한다는 양 고개 끄덕이고 있는 것은 보였다.

“그리하여 새로 내각을 꾸릴 때 우리의 협조를 구하고자 이러한 모임을 열었다. 이렇게 보아도 되겠소?”

조정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신중히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만 협조라는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군요. 이 모든 일이 황명으로 이루어질 터인데, 신자(臣子)된 도리로 마땅히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이미 풍보의 도움을 받아 황상을 독대하고 그 변덕스러운 황상의 마음을 얻어낸 것이리라.

“그대가 만에 하나, 새로운 엄숭이 되려 한다면, 이 해 아무개는 초개처럼 목숨을 버릴지언정 그대의 당여는 되지 않겠소.”

해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비록 차분하였으나 마치 쩌렁쩌렁 전각을 울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도 장거정의 답변을 기다리는 듯, 그의 얼굴을 직시하였다.

화북과 강남을 막론하고, 천안문의 변 이후로 향신의 여론이 조용해진 듯하지만 그 안으로는 끓어오르고 있음을, 이 자리에 초대될 만한 자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장거정은 무슨 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저 황상에게 아첨하며 향신들을 계속 억누를 것인가? 아니면 어느 쪽이든 향신의 편에 서서 – 차마 그렇게 말은 못하지만 – 조선을 따라 자금성 안에 참된 공론(公論)이 설 곳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자리에서 밝혀주시오. 우리가 경륜 부족하고 인망도 마찬가지인 그대를 수보로서 따른다면, 어떤 정사를 기대할 수 있겠소?”

좌중의 절반은 재물과 권세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라고, 나머지 절반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즉시 자리를 뜰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장거정이 잠시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제공(諸公)께서는 『공양전(公羊傳, 춘추 공양전)』을 아십니까? 첫 권의 표지를 열면, 은공 원년(기원전 722년) 첫 줄을 주해하며 대일통(大一統)을 말하지요.”

느닷없는 이야기에 모두의 눈이 둥그레졌다.

“대일통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번 천안문의 변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조 중화는 이름뿐. 어설프게 조선의 헌법 권점에 개입하여 조선 민주당을 가로막으려다가 거하게 실패한 장거정은 그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중화를 중화답게 만들고자 하였으나, 정작 같은 중화의 사람조차 어찌하여 천조에, 이 위대하고도 가장 문명한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저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논할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황명(皇命)이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바로 서지 못하는가? 그것이 거짓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중원은 이 천하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천하는, 복속되지 않은 오랑캐들이 주제를 모르고 할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동쪽 바다 건너의 드넓은 땅... 아메리카라고도 하는 그 대주(大洲)는 고작해야 우리의 일개 성보다 작은 에스파냐의 것입니다. 그 주인 노릇하는 펠리페의 아비 카를로스는 천하의 황제를 자칭했다지요.

이처럼 중화의 이름이 거짓되니, 나라 안팎에서 불만이 들끓는 것입니다. 나라 안에서는 황명을 가볍게 여기며, 나라 밖에서는 대명(大明)을 짐짓 섬기면서도 업신여기지요.”

장거정의 입에서 언급되는 낯선 언어. 그 이적(夷狄)의 소리에 다들 눈쌀을 찌푸렸다. 하지만 장거정은 개의치 않았다. 아메리카든 에우로파든, 그들이 중화에 복속되기 전까지는 화언(華言, 중국어)으로 된 이름을 감히 달아서는 안 된다.

서방을 다녀온 이지의 보고. 그와 함께 온 이국의 사신들, 그리고 사신들에 섞여서든, 그들 뒤를 따라서든 몰래 자신을 찾아온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람들. 그들을 접하고 그들의 말과 글, 그들의 세상을 듣고 본 뒤 장거정이 내린 결론이었다.

“카를로스가 한때 다스렸던 ‘천하’는 물론이요, 에우로파 전체를 모두 합쳐도 우리 중원보다 인구가 적습니다. 그러니 천하에는 참된 주인이 아직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인은 누가 되어야겠습니까? 우리 중화 외에 그 누가 나아가, 오랑캐에게 이름을 주고, 자리를 주며,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처음에는 그저, 일조편법을 비롯해 개혁을 차근차근 해 나가면 국운이 다시 성대해지고, 그 성세는 뭇 오랑캐를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심복(心服)케 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점차 넓어지면서도 좁아지는 세상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천하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천리(天理) 또한 하나여야만 했다. 하나의 법도, 하나의 상국(上國), 하나의 천자.

“중외(中外)를 장차 하나의 집으로 아우르고, 중화가 어찌하여 천하의 중심인지 그 어떤 의례도, 허명도 필요 없이 오직 정직한 부강함으로써 설득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대일통(大一統)의 태평세(太平世)가 열릴 것입니다.

중원의 향신들은 저들이 이러한 중화의 사람임을 기꺼워하며, 대업을 위해 저의 가산과 몸을 바칠 것이며, 어리석은 백성들조차 이 땅 위의 그 어떤 사람보다 저들이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황상께 충성을 다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대일통입니다.”

사리분별이 어두워진 천자라 하여도 이 말의 중함은 능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기뻐하며,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허여하겠노라 공언하였다.

대명의 앞길이 정해지는 데는, 그것만으로도 족하였다. 남은 것은 어찌 황상의 뜻을 받드느냐, 그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장거정에게는 계획이, 지금껏 천하를 제패하겠노라 어설프게 떠들었던 그 어떤 옛 임금과 재상보다도 치밀하고도 현실에 닿아 있다 할 만한 계획이 있었다.

밤이 깊어지도록 장거정의 집에서는, 천하전도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향료 무역과 포토시 광산. 일본국 정세와 막북의 엄답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끝내 해서마저도, 장거정을 따르겠노라 공언하였다.

“단, 오로지 천조 대명과 그 백성을 위해서요. 태악 그대의 뜻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멀어진다면 이 사람은 어떤 오명을 쓰게 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뜻을 바꾸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강봉(剛峰, 해서) 선생.”

그러나 그 해서조차, 이 대계가 곧 천하를 뒤흔들 수도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중원보다 먼저 뒤흔들릴 조선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는 없었으므로.

중화를 중화로 섬기던 나라를 이제 한낱 장기말로 보게 되었으니, 종자기가 먼저 백아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인가, 아니면 백아가 먼저 거문고 줄을 끊고 종자기 탓을 하는 것인가.

어쩌면, 애시당초 말과 뜻이 서로 맞지 않는 조선과 중원 사이에 지음(知音)이란 불가한 일이었을 지도 몰랐다. 그간은 두 나라가 굳이 서로 다툴 이유가 없고, 굳이 다투기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화합하는 시늉이 가하였을 뿐일지도.

경기도 광주의 어느 산장. 비록 몇십 명 대 몇십 명의 작은 규모였지만 제법 치열하였던 싸움의 흔적이 산장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탁오를 따라 동창 간자를 잡아 족친 끝에, 동창 끄나풀 중의 우두머리가 이곳 산장에서 두리손과 종종 작당한다는 것을 들은 꺽정이는 마침내 흑의군을 이끌고 이곳에 들이닥쳤다.

허나 산장을 지키는 이는 제법 장재(將材) 축에 드는 자인지, 급습을 당했음에도 모든 수를 써서 항거하였다.

한동안 쓰러진 사람 없던 흑의군에 간만에 전사자가 제법 생겼다. 물론 이곳 산장을 지키던 이들은 그 갑절 넘게 죽어 자빠졌지만.

심지어 개중에는 에우로파에서 종종 보았던 강철 갑주 차려입은 자들도 있었다. 물론 류큐에서 레가스피의군대와 대면하였을 때부터 이럴 날 올 것을 알고 대비한 꺽정이 앞에서는, 추풍낙엽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 겨울에 함박눈 맞아 쓰러지는 고목 꼴이 났지만.

“제법 오래 버텼군그래.”

“흐, 흥. 아직이오.”

후들대는 다리를 애써 바로세우며, 꺽정이를 마주보려 노력하는 이성량이었다. 끝까지 버티던 것이 무색하게도, 곁에는 고작 서넛 병사만 남았고, 태반이 멀쩡한 흑의군은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성량 본인도 감히 꺽정이를 무예로 꺾어보려다가 두어 번쯤 멀리 날아갔다. 그나마 그 입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뼈만 몇 곳 부러뜨리고 그쳤을 뿐, 조금 더 진지하였더라면 진작에 수에즈 운하마냥 몸에 깊은 흠이 파였으리라.

“그대가 동창 끄나풀이 되어서 여기서 이렇게 재회할 줄 누가 알았겠소? 그때 북변에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나라의 은혜를 갚을 뿐이오.”

“은혜는 개뿔. 요동이 순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출세는 물 건너 갔다 여기고서, 정말로 요하 물 건너서 북경까지 갔겠지. 거기서 우리 장 형 눈에 들었을 테고.”

꺽정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이성량의 말문이 틀어막혔다.

“원군이라도 기다리며 어떻게든 발목을 붙잡을 심산인가 보지? 어디 더 떠들어 보시오.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내 칼날을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도.”

“흐, 그러잖아도 그러려 했소.”

장거정의 대계가 무엇인지, 이성량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하의 대일통이라는 말에는, 설령 그 진의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중화의 사람이라 여기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성량은 대계에 지장 없다 여기는 만큼은 가차없이 떠들었다.

“... 옛날이었다면 그러한 생각은 설령 품을지언정 꺼내지 못했을 게요. 바다 밖 오랑캐를 모두 위압하여 거느린다니, 미친 소리라고 했겠지. 허나 지금은 아니지 않소? 바로 임 당수 그대가 익히 보여주었지.

그대의 민주당을 무너뜨리고, 지금껏 일군 것을 그대로 삼키면, 그것은 곧 고스란히 대일통을 이루기 위한 기틀이 될 것이오. 마치 수나라가 일통의 기틀을 일군 것을 이당(李唐, 당나라)이 그대로 삼킨 것처럼.

그뿐이 아니오. 듣자하니 그대가 서쪽에서도 난동을 워낙 일으켜서 원한을 꽤 샀다던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라는 저 오랑캐들도 기꺼이 우리 편이 될 것이오. 이대로 동양에서 쫓겨나느니, 차라리 뭐라도 해보려고들 하지 않겠소?”

“다 떠들었소?”

그래도 이만큼 떠들었으면, 그 장대함에 놀라는 기색이라도 내보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던 이성량은, 오히려 싱겁게 여기는 듯한 꺽정이 표정에 그만 무릎 힘이 풀리고야 말았다.

물론 워낙 꺽정이 인상이 험상궂다 보니, 저 표정이 나름대로 근심걱정하는 모습임을 알지 못하여 생긴 오해였다.

그때였다.

“아, 이제야!”

바깥에서 일제히 함성이 일어나는 걸 보니, 마침내 원군인 듯한 자들이 당도한 듯했다.

“그대가 두리손이 아랫것들 솜씨를 과히 좋게 보는 듯한데, 지금껏 나는 커녕 흑의군 상대로도 고전만 한 놈들이오. 죽어 자빠지는 것 외에는 별 재주가 없는 것들이지.”

“어, 당수?”

꺽정이 말을 양벽이 끊었다.

“경기 감영에서 나온 관군인 듯합니다?”

“무어라?”

“하하, 똑같이 죽어 자빠지는 재주만 있다 하더라도 관군은 이야기가 다르지. 어떻게 끌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임 당수 그대도 제법 곤란하게 된 듯하구려.”

이제는 살았다 여기며 이성량이 떠들었다. 필시 두리손 그자가 무언가 손을 써서 관군을 불러온 것일 텐데, 암만 마구잡이로 사람 족치는 임꺽정이라 한들 권점을 앞둔 지금 관군과 바로 부딪히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협상하여 빠져나가려 하지 않겠는가.

“임 당수, 이야기를 좀 하여야겠소.”

하지만 관군의 맨 앞에서 나온 두리손이 오히려 먼저 협상을 청했으므로, 이성량은 또 한 차례 다리 힘이 풀리고야 말았다.

--- ***---

조정길은 서계보다 4년 손윗사람으로, 엄숭과 여러 차례 부딪히며 좌천을 거듭하다가 서계가 엄숭을 쳐내면서 다시 중앙으로 복귀해 내각의 일원이 됩니다. 가정제가 붕어하고 융경제가 즉위할 무렵 고공과의 다툼 끝에 물러나게 된 서계는 후임으로 조정길을 천거했으나, 내심 자신이 천거되길 기대하고 있던 장거정이 스승의 뒤통수를 때리고 고공의 손을 잡으면서 조정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직하게 됩니다. 서계와 마찬가지로 조정길도 중앙에서 물러난 뒤 미련 없이 초야에 묻힌 채 여생을 보냈고, 고향 사천의 문예 진흥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명나라 후기의 청백리로 잘 알려진 해서는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관직생활 내내 많은 곤욕을 겪었습니다. 서계가 엄숭을 몰락시킨 뒤 발탁되어 지방에서 중앙직으로 옮겨온 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식의 단성소에 비견될 만한 ‘매운맛’을 자랑하는 상소(치안소治安疏)를 올려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가정제를 직접 노려, “폐하께서 연호를 정한 뒤 천하 사람들은 이르기를, ‘가정(嘉靖)이라는 것은 곧 집안마다 모두 재물이라곤 없어 깨끗(家淨가정)해졌다는 뜻’이라 합니다”라 비꼰 ‘펀치라인’이 유명하지요.

격노한 가정제는 즉시 해서를 죽이려 하였으나, 서계가 필사적으로 만류하여 처형은 미루어졌고, 그 사이 가정제가 붕어하면서 해서도 겨우 살아나게 됩니다. 이후에는 다시 고위 지방직을 역임하며 장거정의 일조편법이 실행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은인 서계의 일족이 강점하고 있던 토지마저 모조리 환수하여 엄정하게 공사(公私)를 구분하는 공정함으로 다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세간의 명성과는 별개로, 일조편법 자체가 지닌 과격함과 해서의 강직한 성품의 결합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고, 결국 해서는 탄핵당해 야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거정이나 서계, 풍보 등 당시의 다른 재상들에 비해 워낙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청렴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민중 사이에서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이를 바탕으로 희곡 『해서파관 (海瑞罢官, 해서의 사직)』이 쓰이기도 했는데, 마오쩌둥은 이것을 빌미삼아, 자신을 가정제에 빗대어 비판하였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생전의 위상 덕에 그때까지 잘 관리되고 있던 해서의 묘역도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고 말지요.

작중 장거정이 언급하는 대일통론은 원 역사의 중국에서는 19세기 초중반 청대 공양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건륭제 당시 극에 달한 청의 대외팽창은 곧 그 자체로 청의 천조로서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공양학자들은 그 논리를 연장하여 마치 서양의 제국주의적 팽창론을 연상케 하는 식민담론을 제시했습니다. 건륭제의 준가르 말살 정책으로 때마침 ‘비워진’ 신강 영토는 그러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지요.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 등 서세동점 상황 속에서 이러한 논의는 곧 한계에 부딪혔고, 강유위 같은 유능한 후학들은 자칫 한심한 탁상공론으로 끝날 뻔하였던 대일통론을 새롭게 변화시켜 개혁 논의에 이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결실을 맺기 전 청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대일통론은 곧 만주족 치하 다민족국가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한족 민족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혁명파들에게 부정됩니다 (이춘복, 2016. “청대 공양학파의 대일통사상과 청말 개혁파의 대민족주의.” <중국근현대사연구>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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