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원형이정 (1)
의민당이 작란하기 전의 조선 관군은 위아래가 모두 기강이 해이하였는데, 지금의 관군은 위쪽만 해이하였으니, 백성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나 군을 거느려야 할 조정 사람들에게는 썩 좋지 못한 일이었다.
임꺽정이 흔쾌히 두리손의 제의를 받아들이자, 두리손은 재차 청하기를 우선은 산장 안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을 먼저 밖으로 내놓아 달라 하였다.
그리하여 여전히 다리 후들거리는 이성량과 아직 명 붙어 있는 포르투갈 군사 몇몇, 그리고 두리손이 부리는 군사들이 하나둘씩 걸어나오든 부축 받아 나오든, 아니면 업혀 나오든 하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군들 대오에는 동요가 없건만, 그 관군 이끄는 장수인 경기도 병마절도사 원준량(元俊良)은 못마땅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보시오. 어찌하여 저들을 추포하지 않는 것이오? 본관이 직접 아병(牙兵)을 거느리고 이렇게 출병한 것은 민가를 침탈하고 인명 살상하는 도적을 토멸하기 위함일진대.”
명색이 종2품인 병마절도사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나선 것은 공을 탐하기 때문이었다. 임거정의 군세가 저의 관군을 살상케 하여, 그에게 누명 씌우고 그 공적으로 심통원과 남치근 눈에 들 생각 가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사로이 군대를 움직였다며 탄핵을 당할 위험 감수하고 출병하였건만, 이곳 광주 산장에 곧 임거정이 흑의군 거느리고 나타날 것이라 언질 준 두리손 본인이 다 된 밥에 제 손으로 재를 뿌린 것이다.
그러나 두리손은 그저 귀찮다는 듯 대꾸할 뿐이었다.
“그대가 알 바 아니오.”
남치근조차 두리손을 어려워하는데, 식견 짧은 원준량은 두리손이 그저 벼슬 없는 천출이라고만 여기는 모양이었다.
“알 바 아니라니? 본관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관병(官兵)을 내지도 못하였을 것이요, 저들의 도적 본성을 들통 내지도 못했을 터인데.”
족함을 모르고 계속 볼멘소리를 하니, 두리손은 비웃음과 한숨 섞인 무언가를 토하며, 별안간 그의 멱살을 잡고 귀에 속삭였다.
“원가 놈아. 네 아들 균이가 그렇게 살집이 통통하다는데, 범들이 좋아하지 않겠느냐? 마침 오늘 저녁에도 저의 ‘벗’들과 기생집에서 노닐기로 했다는데...”
그제야 저의 주제를 안 원준량은, 새파랗게 질린 채 입을 닫았다. 허나 두리손 입 안에도 씁쓸한 맛이 남았다.
무력으로 겁박하고 옳지 못한 술수로 훔쳐내는 것은 저와 임꺽정이 매한가지거늘, 무엇이 달랐기에 아직도 자신은 이러한 무리와 어울려 이러한 수완에 의존해야 하는가. 이제는 알 것도 같았지만,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도 이제는 없었다.
허나 이제 와서 후회한들 쓸모는 없었다.
“어이, 두리손아! 숨 붙은 놈은 이게 다다! 이제 네가 바라던 그 이야기나 하자꾸나! 저쪽 동편 숲으로 나와라!”
그들 사이에 대가 없는 호의는 바라는 것조차 언감생심이었다. 꺽정이가 두리손 저의 청을 들어주었으니, 이제 두리손의 차례였다.
“알겠소! 그쪽으로 가겠소!”
겨울맞이 채비하는 소나무 사이로 산길 조금 올라가, 남들 눈과 귀 없는 곳에서 두 사람은 멈췄다. 벼락 맞아 쓰러진 나무 위에 꺽정이가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래도 몰래 졸병 몇이라도 데려올 줄 알았는데, 정말 혼자로구나.”
“임 당수 상대라면 고작 사람 몇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소. 나도 지난 삼 년간 칼부림할 일이 그닥 없었으니, 지금은 임 당수는커녕 당수네 모주 노릇하는 그이도 겨우 이길 것이오. 따지고 보면 당수 앞에서 목 내놓은 것과 다름없지 않겠소? 이만하면 이야기 나누려는 내 뜻도 전해졌다 보오.”
“주제는 잘 아는군. 그래, 무엇 때문에 기껏 깔아놓은 관군의 함정을 걷어내고 이야기나 하자 한 것이냐?”
“임 당수 그대가 관군 향해 곧장 달려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요. 다 헌법 때문 아니겠소.”
암만 조선 관군이 옛날보다 정예하게 되었다지만, 장수들은 거의 그대로였다. 개중 흑의군의 조련하는 방식을 일부 따라하고, 그 정밀한 조총을 구비하는 등, 나름대로 시류를 읽고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은 하는 이들이라고 해도 에스파냐 용병들의 진법까지 따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산장을 포위한 관군은 요즘 관군치고는 어설픈, 딱 의민당 난리 시절의 경군 수준이었다. 그것만 해도 크게 나아졌다 할 만하였으나, 꺽정이와 흑의군이 작정하고 뚫으려 한다면 못 뚫을 것도 없었다.
허나 임 당수가 도성 지척인 광주에서 관군을 살상하였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다면, 요즘 시국에 결코 타격이 없지 않을 터였으므로, 두리손이 고개 내밀기 전까지 꺽정이는 나름 속을 썩이던 중이었다.
“이성량 그자를 숫제 걸어다니는 사시나무로 만들어버린 것을 보아하니, 들을 것은 다 들으셨으리라 믿소.”
“그래, 장거정 그자가 나름 수를 꾸미고 있다더군.”
“그냥 수가 아니오. 천하, 우리가 알던 그 좁은 천하 말고 정말로 이 지구 전체에 울림이 있을 법한 대계(大計)지.”
그리고 두리손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 대계에서 이 나라 조선은 그저 사소한 일부일 뿐이고.”
“이제 와서 남의 손 잘못 잡은 것을 후회하느냐?”
“후회는 아니 하오. 내가 만약 장 대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장기말인 것도 모르고 날뛰었을 것이요, 바깥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문을 걸어잠그자 떠들었겠지.”
그리고 두리손은 장거정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임꺽정이 만들어낸 세상, 이전의 천하보다 넓으면서도 좁은 그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는 둘일 수 없었다. 그 이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하겠다 바라는 것을 잘못이라 칭한다면, 이 자리에 선 (또는 앉은) 두 사람도 결백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허나 원망하지 않을 뿐, 기껏 나라를 저의 손에 넣은 뒤에 그것을 고스란히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 바라는 대로 된다면, 아마 나라의 문은 걸어잠그고 동래나 인천 근처의 포구 하나쯤 지정하여 그곳에 한정하여 교역을 하게 될 것이오. 민주당은 망할지언정 사업당은 남을 것이외다. 주인은 바뀌겠지만.
내게 의탁한 상인들, 예컨대 일전에 내게 그 두카트 세 닢 보내준 이 같은 자들도 모두 그것을 기대하고 내게 붙었소. 헌데 장 대인은 어째 그 밑천까지 모두 넘기라 할 것 같더이다.
우리 손으로 대문에 빗장을 걸지언정, 남의 손으로 대문에 자물통 걸리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않겠소?”
“그래서, 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냐.”
“우리 두 당 사이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더 큰 풍파가 이 나라에 들이닥칠 게요.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번 싸움은 휘말리는 이도, 흘리는 피도 적게 싸워야 할 것이오. 그래야 명국 앞에서 목소리 낼 여력이 남을 테니.”
“그러면 그냥 네 목을 내놓아라. 어차피 헌법을 둘러싸고 벌인 샅바싸움은, 대국에 있는 네놈 상전 덕에 우리네가 다 이기다시피 하지 않았느냐.”
“하, 아무리 그래도 이름 남기려 발악하는 사내 대장부로서 어찌 한 판 싸움도 안 하고 물러나겠소?
내가 임 당수께 제의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오. 임 당수가 지난날 한양으로 조운선 몰고 올라와 단판 싸움으로 역적질을 성사시켰듯, 우리도 한 판 결전으로 결착을 봅시다.”
어차피 지금까지 관군의 탐욕스러운 무반들을 끌고 온 이상, 그리고 황제의 조서라는 좋은 명분까지 생겨버린 이상, 거사를 물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두리손 역시,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다른 구질구질한 수법, 예컨대 저 원준량이가 시도하였고 나도 옛날에 머저리같이 몇 번 손 대었던 것 같은 수작은 벌이지 않겠소. 오로지 힘 대 힘. 한양을 두고 벌일 싸움으로 끝장을 보자는 말이오.”
꺽정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 말을 어찌 믿겠느냐’ 하는 뜻임이 명백하였다.
“만에 하나, 내가 이기게 되면, 그때는 임 당수가 지금껏 일궈놓은 것을 모두 무너뜨리지는 않겠소. 북변에서도, 남쪽 바다와 서쪽 에우로파에서도 많은 일을 벌이지 않으셨소?”
어차피 조선의 손이 그쪽까지 닿지는 않지만, 정말 꺽정이가 이루어놓은 일을 모조리 짓밟고자 한다면 조선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제법 많았다. 사업당과 자유민주당이 장사를 벌리면 벌릴수록, 그 내막을 아는 이들 또한 늘어났고, 그들에게 수소문한 바를 그대로 장거정에게 넘기기만 해도 될 터였다.
“그래, 그것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은 알겠다. 하면 너는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지금껏 내가 이렇게 날뛰고, 세를 모아 임 당수에게 적대할 수 있도록 하고. 이 모든 게 임 당수에게 반하는 자들을 나를 중심으로 모아 일망타진하기 위함이라 하셨지. 그 생각을 접으시오.
만약 임 당수가 이긴다면, 관군의 우두머리들은 그 머리를 붙이고 있기 어렵겠지. 심통원 그 작자도 어쩌면 차라리 사약 내려달라 간청하게 될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따랐던, 그리고 함께 재조론을 이루었던 보잘것없는 향반들. 그들은 죄가 없지 않소? 나는 그들이 살아남아, 끝까지 이 두리손이를 기억해주길 바라오.”
꺽정이 미간에 내 천(川)자 주름이 파였다.
애초에 자신이 패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계획을 짜는 꺽정이는 아니었다. 허나 두리손이 더러운 수작을 부리거나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꺽정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 조선을 망가뜨리는 그런 일을 스스로 삼가겠노라 제안한 것은 제법 솔깃하였다.
이성량이 토설한 장거정의 발상 중 열에 하나라도 참으로 이루어진다면, 조선국 하나의 힘을 모아도 감당이 어려울 것이었으므로.
두리손도 그것을 알고, 나라 안의 싸움으로 귀한 피를 흘리느니 어느 쪽이 이기든 훗날을 저의 뜻대로 대비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은 남기자고 제안하는 것이리라.
“네 말이 솔깃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은 해보아야겠다. 애초에 네놈이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둔 것이 저 헛물켜는 작자들 단숨에 때려잡기 위함인데, 이제 와서 그것을 물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그저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주시오. 그것으로 족하오.
만약 내가 패하여 이 산하에 스러지게 된다면, 그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가 남 좋은 일만 해주고 나라는 말아먹은 그런 시시한 난신적자로 이름 남기고 싶지는 않소. 역적일지언정 후대에 수단이 잘못되고 때가 그릇되었을뿐, 그 뜻이 완전히 글러먹지는 않았다, 그런 평을 원하오.”
“네놈 아비와는 다르게 알려지길 바라는구나.”
“비록 살아생전 제대로 아버지라 부르진 못했지만, 그래도 남의 아비요. 당수씩이나 되어서 그렇게 욕을 해도 되오?”
“뭔 상관이냐. 나는 임금의 할아버지도 못되먹었다고 욕하는 놈인데.”
“하, 그건 또 그렇군.”
격조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상것들의 대화. 명유(名儒) 이언적의 제자를 자처하며 재조론을 설파하고 다녔기에, 그리고 이번 헌법을 둘러싼 여론전에서, 대국 천자의 조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조금 밀릴지언정 그럭저럭 응수해가며 버텼기에 두리손이 비록 천출일지언정 뛰어난 선비라 내심 여기는 노론 사람들이 들으면 저의 귀를 의심할 터였다.
그러나 나라의 명운을 둘러싼 다툼, 그 다툼 전야에 양측의 우두머리가 나누는 대화로서는 지금껏 나라 세워진 이래 가장 깨끗하고 정정당당하다 할 만하였으니, 이 어찌 기묘한 일이 아니랴.
가정 38년(1559) 동짓날. 일양(一陽)이 생(生)하고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천도지상(天道之常)이 드러나는 경사로운 날을 맞이하여 임금이 헌법의 안에 대해 권점의 법도로써 공론 모을 것을 하교하였다.
그리고 대한(大寒) 즈음하여 마침내 전교대로 모두 이루어졌다.
만에 하나 잘못 있었다가는, 임 당수에게든 재조론 따르는 다른 이들에게든 해코지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수령방백과 아전들이 한마음으로 재차삼차 확인하여 사실과 다름 없음을 보증한 서계(書啓)가 한양으로 올라가, 승정원을 거친 뒤 마침내 지금 근정전에서 펼쳐졌다.
추위는 한창이지만 날은 청명하여 눈처럼 새하얀 구름 한두 점이 간간이 보일 뿐. 온기 조금이나마 머금은 햇빛이 도열한 문무백관을 비추니, 상서로운 징조라고는 전혀 없으나 일기(日氣, 날씨)로서는 훌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 한성부윤 조언수(趙彦秀)가 어명 받들어 한성부에서 권점 행한바, 공론을 모아 이에 아뢰옵나이다. 다섯 부에서 나누어 시행한 권점에서 다섯 부가 모두 유일(遺逸) 이지함의 안에 그 뜻을 모았사옵나이다.”
권점의 기준은, 향안에 이름을 올렸거나 그에 준하는 배움을 닦은 자였다. 그 외에 다른 어떤 제한도 없었으니, 기묘명현 신명화의 딸 사임당 신씨가 그 지아비 이원수와 함께 권점을 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하물며 신씨 뒤에 떡하니 임꺽정이, 자신도 화담 선생 문하의 제자였으니 어지간한 놈들보다는 배움 깊노라며 안사람과 함께 버티고 있음에랴.
“신 영의정 이준경이 이어서 팔도의 공론을 아뢰옵나이다.”
지금쯤이면 공회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리라. 근정전에 도열한 문무백관 앞으로 나아와, 임금에게 고하는 이준경은 그런 잡상을 잠시 머릿속에 담았다가 지웠다.
그의 손에 들린 종잇장에는, 각 도의 고을 이름과 그 고을의 여론만 간략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의정으로 돌아온 뒤 중추부와 탕평당의 영수로서 이 권점의 실무를 도맡았던 그는, 고을의 이름만 보아도 눈앞에서 그 고을에서 벌어졌을 일을 훤히 떠올릴 수 있었다.
경기도 교하현. 두리손이 직접 이끄는 군사인듯 군사 아닌 자들이 권점 시행되는 향교를 지킨다. 윤원형의 살아남은 자제들은 저들의 이복형제를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둘씩 향교 안을 드나든다. 몰락한 권신의 후예에게는, 은으로 평판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이로웠으므로, 그들은 저의 이복형제 아닌 이복형제가 보여준 우애를 배신으로 갚았다.
경기도 양주목에서는 백정들의 환호 받으며, 사는 곳만 잠시 한양으로 옮겼을 뿐 여전히 적은 양주에 두고 있던 가도치가 말 타고 향교로 향했다. 그 표정에서 거만함이라곤 털끝 하나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양반을 앞에 두고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양주가 흥성해진 덕을 조금씩 보고 있던 양반들은 못마땅히 여기지도, 이미 오복헌법 쪽으로 정한 마음을 돌리지도 않았다.
같은 경기도 개성유수부에서는, 황진이가 자신의 여학도 학당이니 마땅히 권점에 응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하생들과 함께 당당히 시내로 나아갔다. 다들 단아하면서도 맵시 있는 자태 뽐내며 나아가니, 헤벌쭉하며 구경하던 사내들은 저의 주변 다른 아낙들 눈빛 바뀌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인천부 만재루에서는, 헌법 권점의 결과를 두고 내기판 벌인 한온이 열심히 은자와 분표, 은표 따위를 세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저의 배움이 짧아 다들 참여하는 권점에 저는 끼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재물 앞에서 다른 것을 아쉬워하는 일은 처음이라, 스스로 놀랐다.
“경기도 서른여덟 부군현 중 유일(遺逸) 이지함이 건의한 헌법의 안을 따르겠노라 공론 모은 곳은 도합 스물여섯이요, 숭록대부 겸 전 좌찬성 이언적의 안은 도합 열두 고을에서 택하였습니다.”
황해도 봉산군. 한때 의민당이 일어났던 그 동헌 옆에 사람들이 모인다. 간만에 친우들 만나러 찾아온 흑의군 출신 최만복이는, 강음 사람은 강음에서 권점하라는 말을 듣고, 어차피 황해도 전역에서 임 당수 편 아니 들 사람이 없을 텐데 무슨 상관이냐며 투덜대었다.
“황해도의 고을 스물셋 중 이지함의 안을 따르겠노라 고한 곳이 스물둘이요, 다만 옹진 고을 한 곳이 세 번 고쳐 센 뒤에 이언적의 안을 따르겠노라 고하였습니다.”
평안도 위원군. 강 건너 기린울라에서 조선과 여진 두 곳 사람들을 위해 미사를 거행하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평소보다 강론을 일찍 마쳤다. 유독 지난 며칠 날씨가 따뜻해 강의 얼음이 얇아진 곳이 있었기에, 권점을 위해 위원 쪽으로 건너갈 조선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느 쪽이든 무방하니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를 것을 언급했다. 물론, 여진 사람들과 교역하는 조선 사람들 중 재조론을 따르는 이는 없었지만.
함경도 육진. 니탕카이를 아래에 두었으나 이제는 자신이 그 아래로 들어가게 된 지탕카이는, 니탕카이와 자신의 어전(상전) 임 당수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니탕카이가 모시는 영험한 보살께서 임 당수를 보우하실 테니, 남쪽에서 무슨 싸움을 벌이든 승리하시지 않겠는가?
“함경과 평안 양도의 고을 예순넷 가운데 권점을 행할 여건이 되었던 곳은 총 예순하나이니, 이는 일찍이 양도 관찰사가 고한 바와 같습니다. 예순한 곳 모두 이지함의 안을 따르겠노라 공론을 모았습니다.”
강원도 강릉도호부. 사임당 신씨의 듬직한 사위가 다녀가기 전부터 이미 이곳 사람들은 마음을 정해두었다. 아니, 바닷가에 사는 이들 중 새로 지어지는 배의 덕을 본 이들은 다들 같은 마음일 테다. 또한 대관령 너머의 사람들 중에서도, 조총에 잡힌 호랑이 가죽 본 이들은 다들 그것이 누구의 공인지 알고 있었다.
“강원도 스물여섯 고을 중 열여섯은 이지함의 안을, 열은 이언적의 안을 취하기로 뜻을 모아 그 수령에게 전하였습니다.”
한때 유신현으로 불렸던 충청도 충주. 이 나라를 뒤집은 많은 일들이 이 고을에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것을 제법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은 헌법이 거론되자마자 바로 마음을 정했다. 반대쪽 재조론을 지지하는 이들 중 ‘그 윤가 놈’의 천출 아들이 있음을 알았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물론 향전 한창일 때 충주 상것들에게 많이 당했던 인근 사족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충주 사람들은 고하 막론하고 남의 생각보다 저의 생각을 앞세우게 된 지 오래였다.
그로부터 한참 서쪽, 바닷가 보령에서는 이지함의 형 이지번이 일가와 함께 향교로 향했다. 그는 저의 눈치 보는 이들에게, 지난 일 년간 두 헌법 안의 장단점을 힘 닿는 한 공정하게 알려주었기에, 당색과 반상 막론하고 향교 앞에 선 이들은 그에게 고개 숙이며 자리를 양보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일가에게도 마음대로 권점할 것을 권한 이지번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한점 부끄럼 없이 재조헌법 쪽에 점을 찍었다.
“충청도는 부군현이 총 쉰셋이니, 개중 서른셋이 이지함의 안을 따르고 스물이 이언적의 안을 따르겠노라 고하였습니다.”
전라도 광주목. 전라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평이 있는, 그러나 그가 탐욕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그 사업을 벌였음을 다들 알기에 누구의 욕도 듣지 않는 기대승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저의 집 앞에 따로 권점할 곳을 마련해두었다. 향교나 향청을 저자처럼 북적이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그 뜻을 들은 이들은 모두 감탄하였으나, 저의 뜻을 더 바꾸지는 않았다.
“전라도 쉰여섯 고을 중 이지함의 안을 따르기로 공론 모인 곳은 서른하나요, 이언적의 안에 뜻 모인 곳은 스물다섯에 달합니다.”
경상도 경주부. 부윤이 직접 나와 권점을 하러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거유 이언적에게 인사를 올렸다. 정중하게 답례한 이언적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그러나 권점을 마치고 나온 그의 모습이, 어째 그 전보다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기에, 그를 시종하는 노복들은 은근히 안도하였다.
“경상도는 고을의 수가 일흔하나이니 아국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지함의 안은 개중 서른여섯의 지지를 받고, 이언적의 안은 서른다섯 고을에서 뜻을 모았습니다. 일흔한 곳 중 어느 곳도 권점을 행하고 그 후에 셈하는 데 지장이 없었으니, 어찌 성덕(聖德)이 미치지 않았다 하겠습니까.”
경상도 일흔한 고을 중 하나쯤은 산길 넘던 중 발길 가로막힐 법도 하였으나, 지난날 동래부사 곽순수가 임지로 가던 중 호환 당한 이래로 조정이 포수를 열심히 풀었기에 세 곳 산길의 범은 씨가 말라 있었다. 벌써부터 어리석은 백성들 사이에서는 곽 부사가 범 잡는 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실로 그렇사옵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목록의 말미, ‘경상도 동래부, 이지함 안’까지 눈으로 읽어내려간 이준경이 곧 종잇장을 접었다. 그것을 신호로라도 삼은 듯, 백관이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신 이준경, 재차 고하옵나이다. 이상 한성과 팔도의 중외(中外) 공론을 취합한바, 나라의 삼백 하고도 서른둘에 달하는 고을 중 이지함의 안이 헌법으로 합당하다 여기는 것으로 공론 모인 고을의 수가 이백 하고 스물여섯이요, 이언적의 안을 살펴주십사 청하기로 한 곳이 일백 하고 셋입니다.”
헌법이 자칫 대국과의 의 상하는 원인이 될까 – 그리고 자신이 그 종범으로 얽혀들어갈까 – 두려워한 사족들이 재조론을 내팽개치고 권점의 논의에서 빠져버리면서, 가뜩이나 임꺽정 유세로 백중세로 돌아선 많은 군현 여론이 아예 기울어버렸다.
그러나 만약 군현별로 세지 않고 사람의 머릿수로 견주었다면, 비록 이지함의 오복헌법이 조금 더 우세할지언정 결코 오늘 드러난 것처럼 압도하지는 못했으리라.
이는 이준경뿐 아니라 경기와 각지 군현의 사족들 중 식견 있는 이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국인의 뜻이 어디로 향하는지 드러난바, 삼가 어정(御定, 임금이 손수 정함)을 청하옵나이다.”
“문무백관과 수령방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나 한 사람의 뜻을 받들었고, 나라의 만백성이 군부(君父)의 말에 응하여 이처럼 저의 뜻을 펼쳐 보였은즉, 실로 나라와 조종의 경사이자 황극(皇極)이 세워지는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두 훌륭한 안 중 국인이 스스로 따르고자 하는 헌법이 무엇인지 밝혀졌으니, 내 이를 취함이 마땅할 것이다.”
모든 문무백관이 이어질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로써 유일 이지함이 지어 올린 헌법의 안을 비로소 아 조선국의 헌법으로 삼을지니, 경들은 이를 널리 알릴지어다.’ 정도가 될 임금의 말을, 누군가는 기뻐하며, 누군가는 안타까워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임금이 이준경을 향해 슬쩍 고개 끄덕이는 것을, 그리고 용안을 직시하지는 않았으나 곁눈질로 용상을 바라보던 이준경도 느닷없이 소매를 만지는 것을 다른 이들은 눈치 채지 못하였다.
며칠 전 임금과 탕평당 사이를 (담 넘어) 오가며 임꺽정이 전하고 또 동의를 받아내었음을 그들이 알 방도 없었고, 말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이준경은 이황과 조식 등 몇몇 입 무거운 중진들에게만 이를 알렸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임금의 옥음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헌법을 내 다시 살피건대, 나라의 큰 근본이 될 법도로 부족함이 있다. 비록 국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명명백백히 드러났으나, 어찌 흠결이 있는 법도를 세우는 것이 군왕(君王)의 올바른 다스림이겠느냐? 백관은 그리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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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건국되고 그 이후로도 몇 차례나 비슷한 일을 겪은 조선은, 잘 알려진 것처럼 철저한 문민통제를 지향했고,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지휘계통을 여럿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임진왜란 중에는 도체찰사와 도원수, 그리고 지방관인 관찰사 등의 권한이 충돌을 일으켜 효율적인 지휘가 불가능해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지요. 결국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이러한 제약은 상당 부분 풀렸고, 조선군은 어느 정도 다시 ‘실전형’ 군대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휘계통이 일원화되고 군이 정예화되자마자 이괄의 난이 일어나지요.)
한참 전에, 자칫 이이의 장인이 될 뻔하였던 원준량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아들을 잘(?) 둔 덕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이 추증된 원준량은, 살아 생전에는 군공은 딱히 세운 적이 없고 직무유기와 은 밀매, 횡령 등으로만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묘왜변 당시 이준경에 의해 서용되었고 – 즉 이 정도 수준으로도 당시 조선 장수로는 평균 이상이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 한때 몰락했던 그의 집안은 원준량과 그 형제의 대에 이르러 겨우 다시 가세가 일어나게 됩니다.
작중 언급된 조선의 행정구역 수는 『경국대전』에 명시된 것을 참고했습니다. 조선의 행정구역 수는 국초부터 330여 곳 정도로 유지되었는데, 여러 이유로 인해 그 경계가 들쭉날쭉하거나, 면적과 인구의 편차가 너무 심하거나, 인구는 현이나 면 수준임에도 국방상의 이유로 인해 더 큰 행정구역으로 편성하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적 행정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작중 시점에서는 조선 후기 인구 변화로 인한 몇몇 행정구역 신설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만 단종 복권으로 말미암아 세조 연간에 폐지되었던 순흥부가 복설된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