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병자궤도 (1)
이제는 제법 봄바람다운 훈풍이 간혹 불어오기도 하는 계절. 그러나 도성 저자에는 오히려 냉풍이 불었다.
그들 백성의 뜻에 따라 헌법이 세워진 것까지는 자못 즐거웠으나, 그 흥이 식은 뒤에 비로소 그 다음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조선이 저의 조서를 무시하듯 헌법을 그대로 어정(御定)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국 천자는 대노하여, 막 내각수보에 오른 고공을 내치고 다시 장거정을 수보로 세웠다. 꾸짖는 글과 애써 변명하는 글이 양국을 오갔다.
허나 그렇다고 당장 내일모레 대국이 조선을 치지는 않을 터였다.
몇 년 전 향전을 방불케 하는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헌법이 어명 따라 고쳐진 이래 사그라들었다. 옛 앙금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사이 나쁜 건넌말 양반들도, 또 치고박고 싸우던 동네 상놈들도 모두 저들의 뜻을 세우기 위해 설득하고 타일러야 할 상대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날선 말은 오갈지언정 돌멩이가 (평소 석전 때보다 더 많이) 날아다니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눈치 빠른 도성 사람들도 저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딱 짚어 말할 수 없었다. 이는 말하자면, 늙은이가 소나기 올 것 미리 아는 이치와 같았다. 비오기 전의 흙내처럼, 김안로와 윤원형의 때에 피바람 불기 전 나던 그 냄새가 도성에 진동하였던 것이다.
“형님께서는 백성이 어리석으면서도 지혜로우니 늘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제 그 뜻을 조금은 알겠다.”
그 어미가 얼마나 형을 구박했는지는 모르고, 형이 얼마나 저를 잘 대해주었는지는 기억하는 임금이 말했다.
“미리 일가 사람들을 황해도로 보내두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당장 나부터 안절부절못하였을 게요.”
한양에 있으면 어떻게든 자신이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장담이 무색하게, 『생살부』를 받아본 후 꺽정이는 아버지 말대가리와 형 가도치네 일가, 그리고 얼마 전 딱 어머니 닮은 딸을 낳은 명희까지 모두 봉산으로 보냈다.
누구 눈에 띄지 않도록 애썼으니, 지금 놀란 도성 민심은 꺽정이 저의 탓은 아닐 테다.
“안사람한테 못할 짓을 또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네놈도 미안함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구나. 사세가 그리 불리하냐?”
임금도 이미 알 만큼은 대충 알고 있었다. 이왕이면 싸우지 않고 풀어나가면 좋겠다 여겼으나, 도저히 그렇게는 되지 않을 만큼 일이 얽히고설켰다 하였다.
그나마 그 근원의 절반 가량을 제공한 임꺽정이, 나머지 절반을 제공한 그 두리손이라는 작자와 어떻게 담판을 지어, 나라의 기틀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한판 싸움으로 결판을 보자 하였다니 다행이랄까.
거기까지가 임금이 들은 바였는데, 천하의 임꺽정이 쉽지 않겠다 할 정도면 덜컥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대충 그렇소. 가서 보면 아실 것이외다. 아예 불리한 것은 아닌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뒤집기 위해 임금님 허락 받을 일이 조금 있어서 말이오.”
겉으로 보기에는 상놈과 샌님 둘이서 퍽 깊은 정담 나누며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과 어쩌면 그보다도 더 높을 사람 둘이서 골목길 지나고 있음을, 저녁밥 준비가 한창인 주변 민가에서는 알지 못하리라.
소강절(소옹) 선생이 이르기를, 천지의 운세(運世)는 돌기를 그치지 않아 12만 9천 6백년이 1원(元)을 이루니, 마치 한 해에 네 계절이 돌고 도는 것과 같다 하였다.
남녘 먼바다에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진의(眞意)를 밝혀낸 이래 격물의 학풍(學風)이 새롭게 일어난 오늘날에는, 소위 상수학(象數)의 이론은 검증이 불가한 논변이니 존이불론(存而不論)이 제격이라고들 했다.
허나 의민당이 한양을 들이친 지 딱 십 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난리를 앞두게 되었으니 어찌 묘하지 않으랴.
사업당의 가장 은밀한 안쪽에, 이런 곳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초대를 받아 찾아오게 된 이준경은, 잡념의 타래를 그쯤에서 끊어버렸다.
“이것이 임 당수가 받은 『생살부』에 거론되는 이들과 그 임지 및 거느린 군영을 도식한 지도입니다.”
민주당이 병조나 중추부보다도 더 정밀한 조선 산천의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 정도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하물며 그 지도를 이준경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만큼의 깃발이 수놓다시피 하고 있었으니, 어디 지도의 정밀함 따위가 눈에 들어오리오.
“허... 이 사람이 형과 함께 십 년간 나라의 군세를 정비한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절로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흑의군과 어영청이 있는 도성조차, 완전히 장악되어 있지 않았으니, 이준경 그가 직접 뜯어고친 오군영(五軍營), 그러니까 의흥위(義興衛)니 용양위(龍驤衛)니 하는 유명무실한 것은 모두 철폐하고 그저 전후좌우중(前後左右中) 다섯으로만 구분한 군영 중에서 셋이 저쪽에 넘어가 있었다.
도성 바깥은 더욱 심각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의 군권, 그리고 삼남 곳곳 요해에 배치된 수군의 군권이 모조리 생살부에 생(生)으로 이름 오른 장수들의 것이었다.
그나마 평안도와 함경도, 그리고 황해도의 주요한 장수들은 생(生)과 살(殺) 어디에도 이름이 없었으니, 애초에 포섭을 시도하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장수뿐 아니라 영 격이 낮은, 그러니까 실제로 군을 이끌지언정 딱히 현달했다 하기는 어려운 그런 군관들도 일일이 생(生)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워낙 다른 거물들이 많다 보니 이 부분은 다들 놓치고 있었다. 그저 반역의 기치 내걸었을 때 목에 칼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아랫사람 포섭했다 여기고 넘어갈 뿐.
“다만 장수를 잘못 두었을 뿐, 어찌 그간의 일을 허사(虛事)로만 치부하겠습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능히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그렇겠지만...”
이지함의 위안하는 말에도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번 대의 장수들이야 용렬하니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세대의 장수들, 예컨대 이준경 그가 평안도에 있을 때 눈에 띄어 중용하게 된 그 유극량이라는 젊은이들이 군부의 중진으로 올라올 때까지만 버티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안일함이 종묘사직에 또 한 차례 큰 죄를 짓는 결과로 돌아왔으니, 마음이 무겁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올바르지 못한 일일 터.
“무사히 넘겨야지, 어떻게 해서든. 뭐 당연한 얘기를 하고 계시오?”
말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법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래도 아는 체는 해야 하니 고개를 돌렸는데, 엉뚱한 사람이 임거정 옆에 따라와 있었다.
“오는 길에 만났소.”
“나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범궐까지 해서 끌고 오다시피 한 주제에 무슨 ‘오는 길에 만났소’냐.”
범궐까지 해서 데려올 젊은이라면 나라에 딱 하나다. 그제야 젊은이 얼굴이 곧 용안임을 깨달은 이준경이 급히 부복했다.
“예법 차릴 겨를이 있으면 얼른 일어나서, 여기 임금님 위한 궁리나 마저 하십시다.”
얼떨떨함을 겨우 떨쳐낸 이준경이 둘러보니, 임거정이 어전에서 이 따위 언행을 하는 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닌 듯했다.
“자, 모주님. 여기 임금님께 다시 한번 사정 설명을 해 주시오.”
애써 예법 무시하는 시늉을 하는 듯한 이지함이, 깊숙히 고개 숙인 후 지도를 짚어보였다.
“신 지함이 역도로 추정되는 무리의 동향을 아뢰옵니다.”
“역도로 추정?”
“아직 증좌가 없지 않소.”
만약 이 자리에 윤원형이나 김안로 등 선대의 권신이 있었다면, ‘역도로 추정’된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역적질 혐의라는 것은 본인이 정말 흉참한 모의를 했느냐와 무관하게, 그저 잡아서 고신(拷訊)하면 밝혀질 일이었다. 우선 잡아들이고 증좌는 나중에 찾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윤원형도, 김안로도, 수양대군도 아니요, 그저 임금 이환이었으므로, 꺽정이가 말하니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흠흠, 이 지도에 드러난 것이 바로 흉참한 모의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수의 임지입니다.”
각지 수영과 경기 주변 여러 도에 꽂힌 깃발을 눈에 담은 임금이 혀를 찼다. 군사(軍事)는 물론이요 어지간한 세상사에는 골고루 어두운 임금이라지만, 딱 보아도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 군사가 한양을 삼면에서 포위하고, 그나마 열린 바닷길마저 수사(水師)가 틀어막는 그림이 보였다.
“많기도 하구려. 아예 도성을 다 에워싸고 있네. 막을 수는 있는 것이오?”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라 여기는 이준경이 고개를 숙였다.
방군수포(放軍收布)를 아예 나라의 법으로 정한 이래로, 정병(正兵)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 군적에 이름만 올린 경우, 군영 전체가 허울뿐인 경우 등을 모두 색출해 없앴고, 수군 또한 주사도감의 일이 마무리되면 격군(노잡이) 수가 줄어들 터였다.
그러나 의민당의 난리 전의 관군 오만보다, 지금의 관군 이만이 훨씬 정예하다고 이준경은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양과 경기, 강원, 충청 일대의 병영과 각지 수영에서, 적에게 가담할 수 있을 군병의 총수를 합하면 삼만을 훌쩍 넘겼다.
더구나 그가 세세하게 저의 발등을 찍은 일까지 헤아리면 그 수가 한없었다. 당장 경기도 관군을 거느리는 원준량 그자의 병영도, 새로 정비한 경군과 겹친다는 이유로 본디 서대문 바깥에 있던 것을 수원으로 옮겨놓지 않았던가. 졸지에 역도들이 도성 바깥에서 마음대로 회동하며 모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여기 동고(이준경) 대감이 수십 년을 잡고 정군을 차근차근 늘리려 하였기에 아직 수가 적은 것이오.”
“우리 쪽은 어떤가?”
“’우리 쪽’이라고 하지 마시오. 만에 하나 일이 그르게 되면 임금님은 용상을 지키셔야지. 우리랑 같이 엮이게 되면 임금님께서도 억울하시지 않겠소?”
“그때가 되면 알아서 편을 갈아탈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말거라. 정말로 네가 일패도지해서 아예 가망이 없는 지경이 되기 전까지는, 어영청을 비롯해 나라의 영을 받드는 이들은 모두 네 편이다.”
“그렇게 치면... 임금님께서 어영청과 여타 금군을 빌려주시고, 또 경군 다섯 군영 중 둘이 우리 편이라 치고, 거기에 흑의군과 아직 니탕카이 놈에게 돌려주지 않은 에스파냐 떨거지들까지 합하면 대략 팔천쯤 될 거요.”
“허...”
임금의 입에서 또 한 번 한탄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구나. 그만큼 세가 엄청나고, 이제는 네게 그쪽에 가담한 그 못된 것들 명부까지 넘겨주었다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언제든 도성으로 그대로 밀고 들어오면 그만이었을 텐데.”
“신이 또 한 차례 사직에 큰 죄를 지었나이다.”
대뜸 대죄하는 이준경 대신, 꺽정이가 설명해주고 이지함은 이준경을 달랬다.
“나 없는 동안 여기 동고 어르신께서 나름 힘을 많이 써주셨다 하오. 임금님께서는 이 노인네가 죄 지었다고 하는 말 믿지 마시오.”
여전히 자책에 빠져 있던 이준경이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감께서는 겸양하지 마십시오. 평안도 수령으로 계시면서 북병이 이반하는 것을 막아주셨으니, 그것만 해도 큰 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준경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민주당은 니탕카이를 통해 어떻게든 북쪽에서 병력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리했더라면, 남치근과 그 아래의 무관들은 민주당의 수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먼저 경솔한 짓을 감행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저들로서는 한양으로 들이칠 힘이 있더라도 그 뒤를 감당할 자신도, 명분도 없으니 아직껏 자제하고 있던 것이겠지. 허나 이제는 저들도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만약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밀어내려 한다면 저들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외다.”
애초에 북병이 저만큼 있었기에, 남치근과 그 일파가 애써 군부의 고관들 중 거의 절반을 포섭하였던 것일 테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꺽정이가 한양에 막 돌아오자마자 난리가 날 수도 있었을 터.
그리고 그렇게 세력을 모으고 명분을 세우려던 중, 마침내 그들은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헌법을 두고 벌어진 명분 싸움은 완패로 끝났고, 이제는 병장(兵仗)에 호소하여 돌파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간 모은 힘이 나라 전역을 장악하고 명분의 부재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할지언정 한양을 점거하고 한바탕 난장판 벌이기에는 족하다는 것이었다.
“임 당수가 아뢴 바가 참으로 옳습니다. 우리가 만일 북병(北兵, 평안도와 함경도의 정예한 병사)을 내어 저들을 미리 치려 한다면, 저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저들의 흉험한 의도를 밝은 하늘 아래 드러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껏 받은 『생살부』를 가지고도, 저 음흉한 무리를 함부로 잡아들이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무리의 규모가, 한둘을 잡아들여서 단속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어설프게 몇몇을 추포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저들이 원하는 것일 공산도 없지 않았다.
아예 저쪽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우두머리를 단번에 모두 잡아들인다면 모를까, 어설프게 한둘만 잡아서는 그 세력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역풍만 맞게 될 터였다.
“내가 임금이 되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역적질에 딱히 큰 명분이 필요하진 않지 않소? 그러니까, 일을 성사시킨 뒤에 나라 다스릴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그냥 이곳 도성에 들이닥쳐 분탕질 벌일 생각만 한다고 하면...”
임금이 좌중 향해 물었다.
“실은 우리도 지난 겨울 내내 그것에 대비하고 있었소. 분명 봄이 되는 대로 소수로나마 군을 움직일 줄 알았거든. 그래서 준비에 나름 박차를 가했고, 때가 되었다 싶으면 임금님께 청하여 보고 올리고 선수를 치려고 했지. 그런데 그런 움직임이 없었소이다.”
만약 옛 아병(牙兵)들 중 상전을 잘 따르거나 욕심 과한 자들을 따로 모아 사병(私兵) 비슷하게 거느린 치들만 모은다면, 암만 후하게 쳐주고 두리손이 거느리고 있을 다른 무리까지 합친다 한들 일만 명 정도일 테다. 그만하면 흑의군과 민주당 소속 용병들, 그리고 금군과 경군 약간만 데리고도 막을 수 있었다.
더구나 역적으로 몰렸다 여기고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의 욕심 차리고자 싸우는 것이라면, 사세가 불리하다 싶은 즉시 배신할 터. 북병이 남하하기 전까지 한양 성벽을 넘을 가망이 없다 싶으면 암만 용맹한 자들이라도 금방 오합지졸로 화하리라.
“헌데 봄이 제법 지나가고 있는데도 별 일이 없으니 도리어 덜컥 두려울 수밖에 없었소..”
소문만 무성할 뿐, 정작 저쪽에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병영과 수영을 막론하고평소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훈련을 하고 있을 뿐.
반역을 하든 무엇을 하든, 어디 한 군데에 모여야 싸움이라도 해볼 만할 텐데, 여기저기 나뉘어 훈련에 임할 뿐 따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저들이 무언가 방법을 고안하여, 사만 남짓한 그 머릿수를 그대로 끌고 한양에 들이닥치려 할 수도 있다는 뜻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한양에서 막을 방도가 없소.”
명분이 생기기를 가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군사들에게 먹힐 만한 다른 명분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날 꺽정이와 약조한 것은, 나라의 앞날 자체를 망칠 만큼 더러운 수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아예 계책을 끊겠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물론 우리도 그사이 놀고만 있지는 않았소. 나와 여기 우리 모주, 그리고 여타 우리 당의머리 좋은 사람들이 뭉쳐서, 만약에 대비한 계책도 많이 마련해 두었으니 임금님께서는 그쪽은 걱정치 않으셔도 되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초조한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그래서 지금 너희가 하려는 바는 무엇이냐?”
“지금껏 동고 대감과 우리 모주가 아뢴 것처럼, 양측은 선뜻 치기도 무엇하고, 그렇다고 미리 치지 않기도 무엇한, 그런 처지에 있소. 하지만 시일을 끌면 끌수록 켕기는 것은 저쪽 아니겠소? 그러니 그런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려 하오. 그 일을 하는 데 임금님 허락이 꼭 필요하다오.”
“들어나 보자꾸나.”
임금이 끄덕이니 꺽정이가 따라서 끄덕이고, 이어서 이지함이 한 발 나섰다.
“먼저,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수로 저들을 뒤흔드는 것으로 첫 수를 두려 합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임금의 표정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중함을 띄었다.
한때 그토록 그의 말을 잘 들어주던, 만약 임꺽정이 없었더라면 저의 총신(寵臣)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심통원까지 얽힌 역모요, 비록 저와 사이가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복형이요 한때 왕위 양보하는 시늉까지 했던 그 덕흥군도 엮여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평소 가볍게 사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이번만은 예외로 삼을 수밖에.
허나 임꺽정 말대로,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다. 그나마 적은 피를 흘리고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 이지함 입에서 나오는 듯하여, 잠시 숙고하던 임금은 끝내 승낙하고야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보와 정론보 양쪽에 아주 거하게 광고가 실렸다. 이황의 노복이었다가 그 이름에 맞는 돈 굴리는 재주로 면천하고 아예 은정고에서 별감 노릇하게 된 김은동(金銀同) – 하필이면 성도 김가라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 명의로 실린 광고였다.
‘[급보] 은 찾으러 오시오.
근래 도성 저자가, 장차 병란(兵亂) 있을 것이라는 풍문으로 말미암아 크게 시끄럽소.
만에 하나 난리가 벌어지면, 은정고 또한 화를 면할 수 없을 터. 본고(本庫)는 힘 닿는 데까지 은주(銀主, 예금주) 제공(諸公)의 은을 보호할 것이나, 모든 은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보장은 차마 못할 듯하외다.
이에 널리 알리니, 바라건대 은주들께서는 본 은정고와 여타 분고(分庫, 지점)에 내방하여 훗날에대비하기 바라오.‘
은정고라면 곧 퇴계 선생 이황의 사업이요, 그 이황 선생은 탕평당의 중진이다. 그런 곳에서 ‘만에 하나’ 난리가 벌어질 수 있다 하니, 저자 사람들끼리 근래 돌아가는 형세 심상찮다 떠드는 것과는 무게가 같지 않았다.
“줄을 서시오! 은은 충분히 남아 있소이다!”
“그 말을 어찌 믿소? 근래 은정고에서 여기저기 그 은을 빌려주고 있다 하였는데?”
“어허! 우리 고주(庫主, 은행 사장) 선생을 어찌 그리 믿지 못하시오? 모두 미리 찾아두었은즉 그대는 염려치 마시오!”
은정고에서 저의 사업 위해 자금 빌린 이들에게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은주들은, 여러 시진 기다린 끝에 그들이 맡긴 은을 겨우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은이, 기실 사업당에서 융통해준 경제사의 은이라는 것은 알 리 없었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난 뒤에는, 비로소 은정고에서 은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관하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고 그 제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저 저들의 소중한 가산이 멀쩡함에 안도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불안이 번졌다.
“정말 난리가 일어나긴 일어나려는 모양일세!”
“그걸 누가 모르는가! 아무 일도 없는데 저 은정고에서 저렇게 문을 활짝 열고 얼른 찾아가라 할 리는 없겠지.”
지금도 족히 좋은데 – 한양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 무엇하러 더 욕심을 부려 난리 따위를 일으키는가? 이 넓은 세상에 참 못된 종자도 많다 여기며, 속히 피난할 채비를 해야겠다고들 떠드는 한양 사람들이었다.
“요즘 세상에는 은만 있으면 어디서든 살 만하지 않은가. 여차하면 바다 건너가게 동래로 내려갈 심산일세.”
“동래? 차라리 황해도가 낫지 않겠나?”
“전화위복이라 하였은즉, 이번 일을 기화삼아 식구들과 강남 유람이나 다녀올 심산일세.”
“이 시국에 강남을? 자네 미쳤나? 요새 강남도 난리일세! 대국에서도 헌법 세우자고 했다가 천자의 진노를 사서는, 하루 건너 하루 꼴로 서생들이 화를 당한다던데...”
어찌 되었든, 한양에서 난리가 난다면 저들이 기껏 되찾은 은을 무사히 간수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으므로 어디로든 떠나긴 해야 했다.
다른 군현에 친족 있는 이들은 그쪽으로 바리바리 짐 싸들든 수레를 빌리든 해서 떠나가고, 딱히 잃을 은이 많지 않은 이들은 그냥 그대로 남아, 반쯤 빈 저자에서 더 열심히 세상 일을 떠들곤 했다.
기이하게도, 이때가 되면 조정의 누군가 나서서 놀란 민심을 진정시키든, 아예 사대문을 걸어 잠그든 해야 할 터인데, 그러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갈무리된 뒤에는 반드시 저에게 좋은 날이 오리라 지레짐작하고 있던 이에게 이러한 사태는 곧 발등에 불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 이보게! 이 어찌하면 좋겠는가? 필시 대계가 누설된 것이야!”
자신이 이 나라 용상과 경제사 곳간 열쇠의 주인이 되리라 여기면서 주색잡기조차 멀리하고 버티고 있던 – 딴에는 엄청난 위업이었다 – 덕흥군은, 무본사 이량을 붙잡고 물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얼른 욱재(심통원) 대감께라도 찾아가...”
허나 이량조차 벌벌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나 빠르게 민심이 요동친다는 것은, 바람잡이 한둘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사람의 욕심이 지닌 힘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들 보기에는, 며칠 사이의 이 광풍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곧 역모가 중간에 누설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대개 성공하지 못한 역모는 그런 결말을 맞곤 하였으니, 그들이라고 다르라는 법 있겠는가. 보통이량이나 심통원 같은 이들과 어울렸기에, 헌법 권점 이후 두리손이 점차 심통원이나 남치근을 멀리하고 뭔가 다른 꿍꿍이를 품기 시작했음을 알 리 만무한 덕흥군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욱재 대감이라고 다른 수가 있겠는가? 아니,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이렇게 된 이상 믿을 것은 오로지 군사뿐일세. 충의로운 장졸들 사이에 몸을 의탁하면 어찌 일신에 화가 미칠까?”
“그, 그렇다면 어찌하시려...”
“그때 두리손 그자가, 남치근 대장과 다른 군관들이 대계에 함께하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수원! 수원으로 가세! 경기병영으로! 그곳이라면 안전할 게야!”
대충 심통원이나 이량 정도가 걸려들 줄 알고 면밀히 도성 안을 감시하던 민주당은, 풀숲 두드려 유혈목이나 살모사 정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웬 구렁이 한 마리가 나오니 일순 당황하였다.
그리고 곧, 이 구렁이야말로 닥쳐올 싸움을 단번에 해결할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꺽정이는 그날 밤 수백 군사와 함께 몰래 도성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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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종종 언급된 소옹의 상수학은, 여러 고전에 언급되는 수비학적 상징(예컨대 한 해를 이루는 12개월과 360일, 주역 64괘 등)을 종합하여 우주의 법칙을 궁구하는 학문으로, 동아시아 전근대 지적 전통에서 비록 주변적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분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천지가 총 12회(會)로 구성되는 1원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주장이었는데, 작중 언급되는 129,600년 주기가 그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근대적인’ 뱅크런은 1668년 스톡홀름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스웨덴 국왕 카를 10세 구스타프는 30년전쟁이 초래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신용거래와 금융업의 전통이 어느 정도 있었던 네덜란드의 시스템을 그대로 스웨덴에 이식하려 하였는데, 너무나 급진적인 시도와 영 어설픈 재정운영(예컨대, 회계장부상의 오탈자로 인한 의도치 않은 분식회계 등)이 맞물려 불과 십 년만에 전면적인 뱅크런이 초래된 것이지요. 반면 작중 은정고 뱅크런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오히려 신용을 더욱 보강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에 최초이면서도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로 기록될 것입니다.
원 역사의 덕흥군, 즉 덕흥대원군은 이전에도 몇 번 언급되었던 것처럼, 선조 이후 모든 조선 국왕들의 직계조상입니다. 단명하였던 명종의 형 인종이, 비록 명종에 대한 실망감과 윤원형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당대 및 후대 사림에게 부풀려진 것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대체로 호평 일색인 것과 달리, 덕흥군은 조선왕조의 사실상 중시조임에도 불구하고 미담이랄 것이 딱히 전하지 않습니다. 원 역사에서 그는 주색잡기로 소일하다 1559년 요절하였는데, 작중에서는 왕위라는 헛된 꿈이 약간이나마 수명을 늘려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