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만인지적 (1)
한양의 성곽은 둘레가 약 사십 리인데, 성을 지키는 이는 고작해야 흑의군과 에스파냐 용병대, 금군, 경군 오군영의 절반, 그리고 사람 머릿수 채우는 데 의의가 있는 정도인 포졸과 나졸들 뿐이었다.
다 합쳐야 일만을 겨우 넘는데 성곽은 길고도 기니, 기실 굳이 화포를 쓸 것도 없이 한두 곳을 정해두고 우르르 사다리 걸쳐 넘어가면 그날 하루가 다 가기 전 성곽이 함락될 터였다.
허나 처음 한두 번 시도에서 흑의군과 ‘상치야고 전사들’의 조총 솜씨에 쓴맛을 본 이후, 인민군은 월장을 단념하고 대신 화포만 쏘고 있었다.
그마저도 이런 모양새였다.
“화포 쏘겠소! 성벽 위 사람들은 비키시오!”
“방포하오! 피하시오!”
외치는 소리와 함께 화포, 즉 포르투갈 배가 전해준 콜루브리나(컬버린) 포가 성곽을 때리니, 벼락 내리치는 소리와 더불어 돌조각이 사방에 비산하였다.
“이 무슨 낭비입니까? 피하라고 이야기한 다음 화포를 쏘다니요.”
이번 일을 위하여 직접 선단을 이끌고 찾아온 프란치스쿠 바레투가 따져물었다. 고아에서 ‘동 림’과 썩 유쾌하지 못한 만남을 가진 이래로 절치부심하여, 시나와 코레, 아니, 중국과 조선의 풍속을 널리 연구하고 저의 아래에 통역관까지 거느리게 되었으나, 여전히 이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의 협력자들이 요청한 대로 성벽의 구조물을 파괴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 허술한 성벽 하나만 넘으면 될 것을 넘지 않고 있으니 보는 사람이 오히려 답답해질 지경.
그런데 그 주변에 모여들어 화포 쏘는 것을 구경하던 조선 군관들은, 바레투의 항의에도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
“화포의 멋짐을 모르는 그대가 불쌍하구려.”
“암. 총통이란 것은 그 위력 자체로서 멋지고도 훌륭한 것인데, 이를 알지 못하고 사람 해칠 생각이나 하다니, 쯧쯧...”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국왕 주앙 3세의 뒤는 세 살배기 세바스티앙(Sebastião)이 잇게 되었다.
섭정을 맡게 된 세바스티앙의 조모 카타리나와 선왕을 보좌하여 포르투갈의 영광된 나날을 지탱해온 관료들은, 이대로라면 나라의 기둥이라 할 수 있을 동방무역이 수 년 내로 붕괴할 것임을 직시하고 필요한 모든 수를 강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고아 부왕령은 중국 정부와 접촉해, 그들 공동의 적을 상대로 힘을 합치기로 하였다. 중국이 결코 그들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점, 그리고 실제로 에우로파 전체에 맞먹는 인구와 부유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나중에 생각해둘 일로 밀려났다.
그리고 마침내 저 동 림과 그의 간악한 일당을 물리칠 첫 발을 내딛는가 싶었는데, 그 첫 발걸음부터가 영 이상하였던 것이다.
“저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참호를 파거나 할 것도 없이, 조총수의 엄호만 받아도 사다리 들고 성벽을 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듯합니다. 이대로 성벽 무너질 때까지 계속 쏘는 것보다 그쪽이 더 빠르게 쉬울 터인데...”
“이보시오, 그대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민군은 군령(軍令)을 지킨다오. 정 그리 할 말이 많다면, 우리 원수께 찾아가 따져물으시오.”
결국 바레투는 그 말대로 ‘동 두리송(두리손)’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리 머지 않은 곳 민가를 징발하여 본부로 쓰고 있었다. 비록 급조한 티가 역력하지만, 명령을 내리고 온갖 전장의 소식을 처리하는 그 특유의 가지런함은 에우로파의 여느 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수, 고양 쪽에서 급보가 당도했습니다.”
“급보라. 무언가 잘못된 것인가?”
“계책에 따라 도성을 오가는 모든 길목을 틀어막았으나, 그보다 한 발 앞서 마병(馬兵) 한 무리가 포위를 뚫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합니다. 급히 추격하였으나 벽제관(碧蹄館) 인근에서 놓쳤다고 합니다.”
지도를 펴놓은 단상 옆에서 함께 그 보고를 받고 있던 군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성상께서 몽진하신 것은 아닐지요?”
“아니, 그럴 리 없다. 임금의 행렬이라면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터. 필시 북쪽에 구원을 청하는 이들일 것이다.”
“북병! 그렇다면...”
“벽제에서 놓쳤다면, 임진강을 건너는 것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개성과 이천(伊川, 강원도 이천군)로 파발을 띄우도록. 그놈들이 예성강을 건너기 전에 막아야 한다.”
“예, 즉시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들을 놓치든 말든, 북병은 빠르면 스무 날, 늦어도 한 달 보름 내로 남하할 것이다. 저들이 그만한 준비도 안 했을 리 없지. 그 전까지 한양을 제압해야 하니, 지금처럼 계속 인명 살상은 피하고 성벽만 타격한다.”
바레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방금 전까지 하던 일로 그대로 복귀하였다.
그사이 두리손은 마루에서 몸을 일으켜, 바레투 옆에 다가왔다.
“그래, 듣기로는 우리네 계책에 불만이 있다더군.”
서슴지 않고 하대하는 두리손이었다. 그러나 바레투는 딱히 무어라 문제삼지 못했다. 귀족다운 기품도, 사람을 이끄는 품격도 없었으나, 눈앞의 사람에게는 그것을 갈음할 만큼 확고한 믿음, 자신의 행보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매력이 되었다.
“그렇소이다. 어찌하여 저 성벽을 바로 넘지 않는 것이오? 내 듣기로는 수도를 함락시키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그대의 목표라 하였는데...”
“바로 그것 때문이다. 기껏 도성을 함락했는데 며칠 버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어떻게 그 옛날 임꺽정이 오만 관군을 당해냈던가. 한양을 함락시키고 임금을 붙잡은 것도 붙잡은 것이지만, 내심 윤원형을 못마땅히 여기던 사림의 도움을 받은 것이 훨씬 더 컸다. 만일 그러지 못했더라면, 황해도 깊숙히 들어갔던 관군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한양으로 회군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 교훈을 두리손은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한양을 함락시켜도 북병이 남아있다. 북병을 패퇴시켜도 아직 경상도와 전라도가 남아있다. 결국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저들이 순순히 투항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지.”
이윤경과 남치근이 이끄는 오만 대군조차 황해도에 펼쳐진 백성의 바다 앞에서는 그저 한 조각 배에 불과했다. 암만 그때의 오만과 비교를 불허하는 정병(正兵)이라지만, 자신이 지금 거느린 군병으로 조선 전역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 두리손이었다.
“하면, 대체 어떻게...”
바레투가 물으려던 차, 어영부영 참견하다가 저도 모르는 새 막료 중 하나가 되어버린 이성량이 급히 뛰어들어왔다.
“원수! 큰일입니다!”
“큰일을 벌였으니, 덩달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죄다 큰일일 수밖에. 무슨 일이오?”
“그, 지금 숭례문에 조선왕이 거둥하였다 합니다.”
성을 끼고 싸우면 열 배나 많은 군사도 당해낼 수 있다지만, 머릿수가 달려 성곽에 군사조차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는 한양의 관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고작해야 흑의군 등 몇몇 정예한 이들을 내세워 저들의 발목 잡고 늘어지는 것이 최선일 뿐.
허나 두리손 쪽에도 약점은 있었다. 지금쯤 싸늘한 시체 되어 땅에 묻혀 있을 덕흥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신, 조선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병하였으니, 그 인민을 위하여 베풀어준 금상에게 대놓고 칼을 들 수는 없었다.
적어도, 저들은 그것을 약점이라 여기고 있을 터. 그러므로 시일도 끌고 이쪽의 기강도 뒤흔들 겸 명분으로 수작을 한 번쯤 걸어올 것이라 두리손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 명분 수작질에 임금이 직접 나서는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지만.
두리손은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숭례문 앞으로 나아갔다. 얼굴에는 보기 드문 웃음이 가득하였다.
“과인이 너희 국인들에게 이르노라. 너희가 이처럼 병장을 들고 흉험한 모의에 함께하니, 위로는 나 한 사람부터 아래로는 모든 국인, 너희의 부모와 형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경(大驚)하였다. 허나 오늘의 국법은 옛날과 같지 않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흉계라 할지라도 그 변명할 바가 있다면 의권을 먼저 따지게 되었다.
너희가 만일 정당하다 스스로 여긴다면, 나아와 그 사유를 고하여라. 내 임금으로서 보증하나니, 너희가 진실로 너희 뜻을 고하고자 한다면 설령 성문 바로 아래까지 나아온다 한들 어떠한 해도 미치지 않을 것이니라. 가서 너희 괴수에게 전할지어다!”
도성 안에는 문무 겸전한 동고 대감과 수산 선생, 그리고 여타 머리 좋은 이들이 과히 많이 갇혀 있었다. 그들이라면, 두리손과 인민군이 결코 임금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을 테다.
허나 그렇다 한들, 언제 시석(矢石)과 포화가 오갈지 모르는 문루까지 거둥하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가 친하게 여기는 임거정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자책하며, 그 무거움을 덜고자 이 자리에 섰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두리손이 알 바는 아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 엉거주춤 부복한 인민군 군졸들 사이에 우뚝 섰다.
“신 두리손이 사촌형 되시는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무어라?”
“신의 아비 원형이 곧 자전(慈殿, 대비)의 아우 되니, 어찌 우리 두 사람이 남과 같다 하겠습니까?”
임금을 근시(近侍)하는 이들이 문루 위에 여럿 있었는지, 웅성대는 소리가 두리손 귀에까지 들려왔다.
“상께서 하문하시니 상답(上答)하겠습니다. 저희가 떨쳐 일어난 까닭은, 오로지 인민의 정부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으나, 정작 임금은 덤덤하였다. 이 또한 임꺽정을 가까이한 덕일까? 잡념 떨쳐내고 말을 잇는다.
“헌법이 세워진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아, 벌써 흉험한 모의가 겉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겉으로는 몇몇 그릇된 이들의 간악함에 말미암은 것이나, 그 속을 따져보면 더욱 깊은 폐단이 있습니다.
상께서 백성의 청에 응하여 중추부와 통의부, 공회를 세우셨으니 실로 중흥의 기틀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새 항아리를 마련했건만, 그 속에 든 술은 옛것이니,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민주당과 탕평당 두 당이 세워져 백성을 위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녕 백성의 손으로 뽑혔다 할 수 있습니까? 나라의 재상들이 중추부에서 백성을 위해 경장의 신법을 베푼다 하지만, 그 신법이 정녕 백성의 뜻에서 나왔다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백성을 위하는 뜻보다 자신을 위하는 뜻이 더 크므로, 비로소 오늘의 소란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오직 인민의 정부가 세워져야만 비로소 우리가 조정의 정령(政令)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성상께 찬역하려 한 간악한 무리를 진압한다는 말만 듣고 왔던 인민군 군졸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한 군교들은 그 말 중 취할 바를 취하여 저의 아랫사람들에게 전해줄 심산으로 귀를 기울였다.
“인민의 정부란 무엇을 이름이더냐?”
“나라의 대소 신료가 모두 오로지 인민의 뜻에 의해 뽑히고, 그러지 않은 자들 또한 인민에 의해 뽑힌 자들의 뜻에만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에는 오로지 한 사람의 귀한 분이 계시고, 그 아래는 모두 동등할진대, 그 외 무엇으로 정부를 운영하겠습니까?”
헌법도 권점으로 세우고, 공회의 사람도 권점으로 뽑는다면, 중추부의 정승도 그렇게 못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조정의 물갈이를 할지라도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요, 두리손을 믿고 지금껏 따라온 이들에게 나누어줄 이권도 제법 남을 것이며, 임꺽정이 그토록 원하였던 올바른 나라의 기틀도 거의 대부분 남을 것이다.
제때 피신하지 못하였으니 아마 지금쯤 의금부 어딘가에 갇혀 있을 심통원이야 가슴을 치고 한탄하겠지만, 두리손 그의 거사가 성공한다면 어차피 팽할 작자였으니 그리 중한 일은 아니었다.
“글재주는 글재주일 뿐이요, 집안은 집안일 뿐입니다. 그것에 의탁하여 나라를 이끈다면, 아무리 백성의 뜻을 받든다 외쳐도 십 년이 되지 않아 폐단이 생기고 이십 년이 지나면 유명무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민군은 이를 깨닫고, 주상의 주변을 둘러싼 구폐를 일소하고 오로지 주상과 인민의 뜻만을 받들고자 합니다!”
그의 도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승산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리손은 그의 삶을 통틀어 지금 가장 행복하였다. 설령 길의 끝에 파멸이 있을지라도, 이 길은 그의 길.
남의 길을 훔치고 가로막기에 급급했던 것에서 벗어나, 마침내 오롯이 그만의 길을 택하였으므로.
강음 조읍포를 지날 즈음만 해도 족히 조운선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예성강은, 그로부터 몇십 리 북쪽으로만 올라와도 꽤 얕아졌다. 말여울(馬灘)과 돼지여울(猪灘)을 지나, 평산 읍내가 지척인 살여울(箭灘)에 이르게 되면, 가물 때에는 자맥질 못 하는 이도 능히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줄곤 했다.
그런 살여울에 다리를 놓겠다며, 전 의민당원 최만복 이하 몇몇 평산과 강음 백성들이 돈을 모은 뒤 관에 소장 올렸는데, 곧 그리 하라는 제음(題音, 민원이나 소송에 대한 관아의 답변)이 내려왔다.
장삿길 훤히 열린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다리 놓고 돈 받는 이들이 한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조금 눈썰미 있는 이라면, 장마철에 떠내려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넓고 크게 다리를 만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을 테다. 허나 그간 자재를 옮겨놓고 여기저기 기둥 박는 것만 하다가, 올 겨울에 몰아치듯 공사하여 고작 보름 전에 준공이 되었으므로, 아직 이상한 다리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
그 다리 건너편, 토산 가는 쪽 마을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잊지들 마쇼. 여기 계신 분 눈에 들면 여러분 모두 포상 두둑하게 받는 것이고, 눈 밖에 나면 국물도 없는 것이니까.”
“흐흐, 우리를 무슨 뜨내기 사냥꾼으로 보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시키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합니다요.”
최만복이가 황해도 곳곳에서 모아들인 포수들은, 범까지는 아니어도 스라소니나 칡범쯤은 잡아본 이들이었다.
“사냥꾼 총질이랑 군졸 총질은 다르다 합디다. 꼭 명에 따라야 하오.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죽으니까.”
“염려는 접어두시라니까 그러네.”
그때, 멀리서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멀리서 망 보던 녀석이, 남쪽 금천 가는 길에서 자욱이 일어나는 먼지구름을 본 것일 테다.
지금 시국에 금천 쪽에서, 그것도 먼지구름 일 만큼 말을 잽싸게 모는 이들이라면, 곧 그들이 기다려온 무리, 그리고 그들을 쫓는 무리. 이렇게 둘 뿐일 것이다.
“자, 위치로!”
그들을 이끄는 장수라면 장수랄 수 있는, 지상여장군 이씨 부인의 외치는 소리가 낭랑하니 퍼졌다.
“예, 아씨. 자, 움직이십시다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구름이 목책 뒤에 몸 숨긴 이들에게도 보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며 날이 바짝 가문 덕이었다.
“화약 넣어!”
카랑카랑한 구령에 따라 포수들이 익숙한 동작을 취했다.
“연자(鉛子, 탄환) 넣어!”
여기서부터는 굳이 구령 없이도, 다들 알아서 하기 시작했다. 이미 밥 먹듯 해 왔고, 실제로 이 짓거리로 지난 몇 년간 밥벌이를 해 왔으므로.
이어지는 구령은 곁으로 넘기며, 화문(火門)에 선약(線藥, 점화용 화약)을 넣는다. 총을 흔들고 용두에 화승까지 붙인다.
“화문 열어!”
이제는 흙먼지 몰며, 쫓고 쫓기는 이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겨눠!”
삼백 보. 이백 보... 한덩어리처럼 보이던 우리 편과 저쪽 편이 이제는 분간되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겨냥을 마친 이가, 먼저 쏘았다.
명희는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흑의군 조련할 때 자주 보았던 일이었으므로. 그나마 이름난 포수답게, 사거리 한참 벗어난 곳에서도 저쪽의 말 한 마리를 맞추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이 추격을 단념하도록 이쪽의 위세를 드러내어 확실히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촌음 사이에 셈을 마친 명희가 외쳤다.
“쏴!”
구령을 듣고 방아쇠를 당겼다기에는 너무나 빨리 총성이 몇 번 나고, 뒤이어 정말로 명희의 명에 따라 겨냥하고 쏘는 이들의 소리가 났다. 저들을 가까이 끌어들여 쏘았을 때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지만, 그래도 쫓아오던 저쪽 마병 중 적잖은 이들이 낙마하였다. 말이 맞았든, 본인이 맞았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휴! 죽다 살았네. 아씨,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어울리지 않는 금군의 군복 입은 흑의군 오막손이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가쁘게 숨 몰아쉬는 말에서 막 내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그 곁의 사내들은 필시 한양으로부터 들고 온 선전관들일 테다.
명희는 황해도로 오면서,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이곳 다리를 지키며 한양으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미리 말을 맞춰두었다. 허나 군복 입은 오막손과 그 곁의 선전관들의 모습을 보면, 상책(上策)은 물 건너가고, 이제 중책(中策)을 시행할 때가 된 것이 분명하였다.
“복식을 보니, 필시 교지를 받들고 오셨겠군요.”
“헤아리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수가 맞지 않는 듯하군요.”
명희가 선전관들에게 물었다. 사람이 셋이니, 교지도 세 통일 테다. 본디 계책대로라면 두 통이어야 할 것이 하나가 늘었으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국이 시국이니, 부득불 불충과 무례를 무릅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미리 교지를 확인해도 될지요?”
그 말에 일리가 있었고, 명희와 그 거느린 포수들 손에는 일리보다 조금 더 중한 조총이 여전히들려 있었으므로 – 심지어 명희는 방포도 하지 않았으므로, 화약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 선전관은 순순히 교지 세 통을 조심스레 전해주었다.
어디 여염집 아낙이 나라의 기무(機務)에 얽힌 서신을, 그것도 교지를 미리 뜯어보려 하느냐 호통칠 만큼 어리석은 선전관은 아니었던 것이다. 설령 그만큼 어리석은 자가 교지를 받들고 왔다 한들,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명희는 망궐례 올린 뒤 교지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봉독하였다.
첫 번째 교지는 이러하였다.
“수운판관 이원수 위(爲) 황해도관찰사 자(者).”
꺽정이가 저의 일가와 더불어 장모 사임당 신씨와 그 일가도 함께 황해도로 보낸 것은, 결코 피난만을 위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원수라면 모를까, 신씨나 명희는 그저 피난 가 있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봉산에 당도하자마자, 한양 떠날 때 이지함과 미리 논의한 대로 황해도 전역의 옛 의민당 연줄을 다시 가동하여, 닥쳐올 난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원수가 팔자에도 없던 관찰사 자리까지 얻었으니,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하게, 그리고 더 드러나게 그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곳간을 열고, 안에 든 것을 옮기고 꺼내기만 하면 될 일.
(그날 밤 이원수는 그가 머물던 봉산 객사에서, 시국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저도 이제 영감 소리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며 환호하였는데, 그 푼수 짓거리를 담 너머로 들은 봉산 사람들은 참으로 한결같으신 분이라고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하곤 했다.)
두 번째 교지는, 명희와 마찬가지로 미리 평양에 가서 조용히 준비하고 있던 이윤경의 몫이었다.
“판중추부사 이윤경 위(爲) 평안함경양도도체찰사(平安咸鏡兩道都體察使) 자(者).”
도체찰사란 비상한 시국에 지방의 군정과 민정을 아우르는 자리이니, 유사시 이윤경은 아우 준경이 마련한 북병을 움직이기 위하여 미리 북방에 머물며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그런 부름이 오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수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나라의 기강을 위해 잘못임을 알면서도 윤원형이 모은 관군을 이끌었던 때에 비하면, 부득불 군병을 부려야 함을 아쉽게 여길지언정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터였다.
“세 번째 교지는... 이것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본디 예정에 없던 세 번째 교지를 받든 선전관이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나 역시 예를 지켜가며 그것을 확인한 명희는 단언하였다.
“분명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봉산으로 가서 기다리시지요.”
세 번째 교지를 받들어야 할 이의 생사가 불분명하였으나, 명희는 그이가 반드시 살아 있을 것임을 믿었다.
“낭군을 맞이하러 가야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대동강 어귀에 슬슬 닿아 작은 배로 갈아타고 있을 테니까요.”
교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광국공신 겸 전 우림위 별장 임거정 위(爲) 수(守) 평안함경양도도원수(平安咸鏡兩道都都元帥) 자(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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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포르투갈의 주앙 3세가 사망하면서, 그의 손자인 세바스티앙이 포르투갈 왕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세바스티앙이 태어날 당시 주앙 3세의 아들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고 – 세바스티앙의 아버지 주앙 마누엘은 그가 태어나기 18일 전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 나이가 적지 않던 주앙 3세의 아우 동 엔히크까지 사망하면 그 다음 계승권은 바로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그 아들 돈 카를로스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바스티앙의 탄생은 포르투갈 전 국민의 환호와 함께 이루어졌고, 그는 태어나자마자 ‘소망공(所望公, o Desejado)’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사촌형 돈 카를로스만큼은 아니어도 세바스티앙 역시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내정에 있어서는 제법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허영심과 과대망상에 가득 차 있었고, 결국 1574년 조부 주앙 3세와 카를로스 1세처럼 위대한 정복자로 이름을 남기겠다는 열망에 차 포르투갈 본토의 거의 모든 전력을 이끌고 모로코 원정에 나섭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에서 참패했고, 세바스티앙 역시 실종됩니다. 이후 추기경이었던 동 엔히크가 환속하여 즉위했으나 이미 나이가 많았기에 곧 노환으로 사망하고, 약 60여 년간 포르투갈 왕위는 에스파냐에 넘어가 이베리아 동군연합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동군연합 내에서 양국은 결코 동등하지 않았고, 에스파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포르투갈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하곤 했습니다. 결국 이 60여 년 동안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와 영국, 오스만 투르크가 동방무역망을 해체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고아와 브라질, 남아프리카 해안 일부 지역 외의 거의 모든 식민지와 거점을 상실하게 됩니다.
작중 등장한 컬버린이 원 역사에서 동아시아에 유입된 것은, 17세기 초 대만 인근까지 진출한 VOC 무장상선의 함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들과 교전하며 컬버린의 위력과 긴 사거리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명은 곧 이를 정식으로 도입한 뒤 대량으로 생산했고, 홍이포(紅夷砲) – ‘홍이’는 남유럽계 백인들과는 구분되는 모습을 지닌 영국, 네덜란드 등지 서유럽인들의 통칭이었습니다 – 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명은 이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누르하치를 격파했으나, 원숭환 사후 홍이포 제작 및 운용술이 그대로 청에 넘어가면서 병자호란에 쓰이게 되지요.
원 역사 조선에서 예성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는 평산과 신계 사이를 잇는 방하교(方下橋)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는 살여울보다 한참 상류에 있는 것이었지요. 허나 다리를 건축하고 또 보수할 만한 의욕과 자본이 충분한 작중 조선에서는 그보다 훨씬 수량이 많고 유지보수 소요도 클 평산~우봉 사이 지점에서 다리를 짓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