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93화 (193/259)

58. 죄의유경 (2)

조선국 도성 한양은 오늘도 북적여, 불과 한 달 전에 병란 겪었음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양이의 총통에 맞아 – 포르투갈 사람들이 급히 도망친 덕에 네 문 모두 그대로 노획되었다 – 부서진 성벽은 그대로요, 성저십리와 성문 안쪽 몇몇 골목에는 아직도 목책 쌓고 다툰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허나 고작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더 중요한 일, 즉 돈벌이를 관두기에는 너무나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떠났던 사람들은 돌아오고, 은정고에도 은이 돌아왔으며, 두둑하니 포상 받은 흑의군과 어영청 군관, 에스파냐 용병들의 쌈지주머니를 노리는 장사치들은 개성과 인천 등지에서 몰려들었다.

반면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금번 모반에 관여한 죄 있는 경기와 충청, 강원 세 도의 병영에 군교를 채워야 했던 것이다.

두리손이 꺽정이에게 넘긴 그 명부에 이름 올린, 재주는 있으나 아직 한직에 있던 이들, 그리고 『생살부』에 살(殺), 즉 남치근에게 포섭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던 이들을 모두 채워넣었다. 그러고도 빈 자리 남으면, 어영청 군관들과 한양의 선달들을 밀어넣곤 – 이는 상급을 벼슬로 때우는 일이라, 경제사 쪽에서도 좋게 여겼다 – 하였다.

그러니 선전관들도 죽을 맛이요, 서경(署經, 인사검증) 맡는 대간(臺諫)도 죽을 맛이요, 선달과 군관들 이삿짐 나르는 짐꾼들만 대목을 맞았다.

그러나 그들 외에도 죽을 맛인 이들이 또 있으니, 바로 두리손의 호관 맡은 꺽정이가 송사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훅 던져버린 그 해괴한 논변 때문이었다.

“죄의유경이라...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아무리 그래도 대역죄인인데, 그 말 넉 자가 어찌 가하겠습니까.”

죄인은 죽일놈이라고 떡하니 수긍하고 나서버리니, 추관들이 기껏 준비한 논박하는 말은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하였고, 그날 통의부에서는 판결조차 제대로 못 내리고 잠시 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판관과 추관들은 그 ‘죄의유경’의 옳고 그름을 따져달라며 그대로 일을 형조와 의금부에 넘겼고, 육조거리 한편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른 죄목들만 따져도 참부대시가 최소 세 번일세. 그러니 굳이 그 인민 운운한 것까지 죄로 삼지 않아도 형벌이 과하게 너그럽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터.”

“지금 그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차를 비우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차의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효능이, 실제로는 그저 잠을 쫓는 것이며, 많이 마시면 그만큼 잠도 멀리 쫓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야, 그 전에는 강남이든 일본이든, 그토록 무식하게 차를 들이키는 자도, 그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형조에서 일하는 율관(律官) 하나가 문 밖에서 고하였다.

“나리,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방 안에 틀어박힌 이들이 한둘 아닐진대, 누굴 찾는지 일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밤 깊도록 퇴청 못하다 보니, 다들 그 말투가 어질지 못하였다.

“네놈, 아차, 그대들 모두요.”

그러나 율관 뒤에 슥 하고 나오는 거대한 인영 있어, 금방 답을 해주었다.

“호판 어르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금번 통의부 판결 내릴 때 안율(按律, 법리검토)를 맡게 되었다더군. 그래서 이렇게 쳐들어왔소이다.”

놀란 관리들의 눈빛은 먼저 임꺽정의 손에 닿고 – 다행히 피 뚝뚝 흐르는 칼이나 사람 목이 들려 있진 않았다 - 이어서 그 곁에 따라온 서림에게 닿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서림 허리춤의 불룩한 주머니에도 눈길이 이르렀다.

임 당수 홀로 왔다면 모를까, 서 별감이 함께 왔다면, 곧 무언가 떨어질 것이 있다는 뜻. 하늘을 우러러 한두 점 부끄러움이 있다 한들 그 대가만 두둑히 받을 수 있다면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다.

통의부 세워진 이래로 나라의 법률이 전보다 조금 더 꼿꼿하게 세워지고, 억울한 일도 제법 줄었다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이치 자체가 바뀌지는 않아, 인정(人情, 뇌물)은 아직도 종종 통하였다.

다만 집안의 권세와 달리 금은은 누구든 힘써 벌 수 있으니, 옛날보다 조금 나아졌다 할 만하였다. 더구나 인정 오가는 횟수가 늘어나서 그렇지 한 번에 받는 액수는 훨씬 가벼워졌으니, 이 어찌 개명된 나라의 법도가 아니랴.

하물며 눈앞의 사람은 곧 서림. 저 볼록한 주머니에서 무엇이 나올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 오갈 무렵.

“어찌 저희가 권문(權門)의 위세에 굽히겠습니까! 저희는 오직 올바름 하나만을 위하여 이 일에 임할 따름입니다.”

일동 중 가장 담력 있는 윤두수가 앞장서서, 인정 오갈 때 반드시 나와야 하는 첫 번째 문장을 읊었다. 그런데 저쪽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누가 굽히랬소?”

“예?”

“그대들 뜻 굽히게 할 것 같았으면 여기 찾아오는 대신 그냥 입궐해서 임금님 뵙고 나오면 그만인데, 무엇하러 귀한 금은을 헛되이 쓸까.”

“암, 암. 임 당수 말씀이 백 번 천 번 옳습니다.”

기꺼이 윤두수에게 동조하여, 짐짓 대쪽같은 선비 시늉을 하려던 이들은 조용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굳이 청탁 따위 받지 않아도 임 당수의 눈도장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이득이라 할 만하였다. 그 이치 깨달은 윤두수는 다시 한번 대조선국 신료로서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되찾았다.

“하면 소관들에게 이리 찾아오심은 무엇 때문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두리손 그놈 판결 때문이지, 무어. 그 인민의 조정 타령에 죄가 없다고 못박으면, 자칫 모반의 싹을 못다 자르고 남겨놓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여기고서는 머뭇거리고 있었겠지. 그렇지 않소?”

그 말대로였다. 오복헌법과 그 이전의 여러 통의부 판례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이 나라 조선에서 무슨 소리를 떠들든, 예컨대 ‘무군무부(無君無父)’ 같이 차마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흉한 언사를 꺼낸다 한들 처벌할 수는 없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미치광이가 있다면, 지나가는 선비 하나쯤은 듣고 까무러질 테니 법으로 얽어 처벌할 수는 있을 것이요, 향회에서 알아서 온 동네 배운 사람들을 모아 불통수화(不通水火, 집단따돌림)를 할 것이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인민군에 가담한 군교들 중 도저히 처벌할 죄목이 생기지 않는 자들이 꽤 있었다. 나라의 조정을 뒤집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충군보국(忠君報國)을 명분으로 삼았고, 또 관군 살상한 혐의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그저 두리손 한 사람이 천하의 악적이기 때문에 그에 속아 넘어갔다 둘러대면, 암만 처벌하고 싶어도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만일 이번 판결이 선례가 되어, 훗날 수많은 죄인들이 몸 건사한 뒤 다시 작죄(作罪)하는 근거가 되어버린다면, 판관과 추관들뿐 아니라 그들 신료들마저 후대에 두고두고 욕을 당하게 될 터.

“하여, 그대들에게 우리 당이 마련한 양책(良策) 하나를 전해주러 왔다오. 아무래도 우리 당이 손수 제의하기는 조금 무엇한 것이라.”

서림이 곧 종이 한 장을 펼쳐 윤두수에게 건네주었다.

“옛날처럼 굳이 연좌를 한다면, 삼수갑산과 온갖 원악도(遠惡島)에 유배가는 사람이 줄을 지을 것입니다. 허나 그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습니까?”

“암, 그렇지. 어질지 못한 일이오.”

서림과 임거정 눈치를 보던 윤두수가 새삼스레 맞장구를 쳤다.

“아, 이득이 남지 않는 일이라 하려 했습니다만... 뭐, 어질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

“이득이라니?”

“인민군 군교들에게 죄를 주기도 무엇하고, 그 죄를 완전히 면해주기도 무엇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모조리 바다 동쪽 칼리푸르니야인지 아메리카인지로 보내버리는 것이지요.”

바예지트가 데리고 간 한줌 사람들만으로는 제대로 된 마을이나 하나 세울 수 있을 터였다. 그가 애써 동쪽에 터전을 마련하여 주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민주당이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아까운 일 아니겠는가?

겉으로야 오스만 투르크의 땅을 자처하든, 아예 바예지트의 나라를 자처하든 민주당이 알 바는 아니었다.

“원래는 그냥 이곳 조선과 일본 등지에서 사람을 초모(招募)할 심산이었는데, 여기 서 별감이 아주 좋은 방책을 내 주었다오. 자, 이제 찬탄들 하셔도 되오.

그것이 귀양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오히려 가혹하다면 더 가혹한 처사였다. 허나 그런 가혹한 발상을 내놓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었으므로, 윤두수와 다른 관원들은 애써 찬탄하는 시늉을 했다.

“여기 임 당수의 공도 없지 않습니다. 당수께서 서쪽에서 아주 좋은 것을 창안하였는데, 바로 양민을 머슴으로 삼아 뱃삯을 갚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양천의 법도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우리 사업당에도 좋고, 또 우리 사업당에 좋은 것이 다시 경제사, 나아가 조선 팔도 전체에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 흠. 이르신 말씀이 참으로 논리정연한 바, 깊이 숙고하고 통의부의 판관과 추관 제공(諸公)께도 말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저 발상의 가혹함만 제쳐두고 생각하면, 분명 두 사람 주장하는 것처럼 양책은 양책이었다. 듣기로는 – 물론 민주당 측의 주장이지만 – 칼리푸르니야 그 땅은 참으로 동천복지(洞天福地)라, 지구 반대편에서 온 왕자 바예지트조차 가기를 원한다 하였으므로.

“그러면 된 것으로 알겠소. 아, 그리고 여기 의금부 관원도 있소? 금옥(禁獄, 의금부 감옥)에 들릴 일이 있는데.”

임 당수가 금옥에 들린다 하면 곧 두리손 외에 더 만날 이가 없었다.

헌데 지금까지 꺽정이와 서림 두 사람 말을 그저 고분고분 듣기만 하던 관원들이,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몇 번 눈빛과 말로써 윽박지르니, 답하기를 선객이 있다 하였다.

“고맙소이다.”

“스승님께서는 어찌 제자에게 공대하십니까.”

“헛된 명성과 헛된 배움으로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어찌 스승을 자처하겠소이까?”

그 무렵 금옥의 어두컴컴한 마당에는 횃불 든 사람 둘이 서 있었으니, 하나는 초로(初老)의 이황이요 다른 하나는 세태와 여독으로 지친 기색 역력한 노선비 이언적이었다.

이언적이 상경한다는 소식 듣고 강 건너편에서 맞이한 것도 이황이요, 늙은 스승의 뜻 받들어 저의 이름 걸고 금옥에 들여보내달라 청해준 것도 이황이었다.

수제자라는 자의 언행이 나날이 경솔해지고 시류에 영합한다 여기며 낙향한 이언적으로서는 면목 없는 일. 그러나 두리손 그자를 만나는 것이 이언적의 뜻이기도 했으므로, 불고염치(不顧廉恥)하고 제자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스승님께서는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스승님의 뜻과 가르침은 이 나라에 선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이어질 것입니다.”

그 착잡한 마음 꿰뚫어본 이황이 곁에서 공손히 말하였다.

“어찌 그리 말씀하시는가. 학통을 이은 제자는 스승의 단견(短見) 깨뜨리고 더 멀리 보았고, 만년에 뜻 맞다 여기어 거두는 시늉만 한 거짓 제자는 스승의 뜻을 비틀어 뒤집어버렸거늘. 결국 이 늙은이의 언설은 인륜(人倫)을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어지럽히기만 하였으니, 이것이 그릇됨 아니라면 무엇이 그릇되었다 하겠소.”

이황의 입이 잠시 열렸다 닫혔다.

세상의 모든 논변은 모두 그 자체로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으니, 성인의 말씀조차 미처 다 드러내지 못한 깊은 뜻이 있고, 범상한 선비의 논변은 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천원지방의 이치조차 실증해보니 다른 뜻이 있었고, 홍범(洪範)의 오복(五福)은 오늘날에는 의권의 근거가 되고 있지 않던가.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논변은 곧 정론(正論)인 동시에 오론(誤論, 그릇된 논변)이라. 오로지 끊임없이 궁구하고 질정(質正)하여 더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따라서 정론보는 그 어떤 서생이 보내오는 글일지라도 취할 만한 뜻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실었으며, 그 뜻에 반하는 자들의 글 역시 거리낌 없이 실었다.

그렇기에 이황은, 스승 이언적의 말과 뜻 또한 그르다 할 수 없었다. 다만 때를 잘못 만나고 사람을 잘못 만났을 뿐.

하지만 그러한 생각조차, 이미 낙담하고 지친 스승에게는 가시와 같이 들릴 것을 알기에, 세상에 올바른 이치 있다 여기고 지켜왔건만 종국에는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스승의 비참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기에 이황은 침묵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 정적 속에서 걸었다. 지난날 이황 자신과 조식이 갇혔던 그 금옥은 의민당이 한양 점령할 때 불탔고, 지금 새로 세워진 금옥은 예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넓었다. (언제 윤원형과 같은 권신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통의부에서 무죄 받고 풀려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셨소? 스승이라 굳이 불리기를 원치 않으시리라 믿소.”

“그렇다.”

금옥 한쪽에서 차분한 목소리 들려오니, 어두운 가운데서도 서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안부조차 서로 묻지 않는, 사제(師弟) 간의 정 따위 없는 문답.

“그 죄의유경의 논변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나와 임 당수 두 사람의 약조에서 나왔소. 당당히 싸워서 승패를 가릴지언정, 서로 남겨둘 것은 남길 수 있도록 아끼자 하였소이다. 그리고 임 당수는 어지간한 선비들보다 더 약조를 잘 지킵디다.”

“재조론에 이어, 인민위정(人民爲政)까지 그 입에서 나와 글로 실렸다. 모든 죄를 네가 짊어졌으니, 반대로 그 어떤 논변도 죄를 받지는 않을 터.”

조선 땅에 은이 풀린 이후로, 도리는 뒤틀리고 인륜은 뒤엉켰다. 이제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나면, 그 폐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니, 이언적의 눈에는 이미 보이고 있었다. 왜국과 양이의 땅에서 넘어오는 은, 그 은이 늘어나면서, 이미 장시에 의존하게 된 수많은 백성들의 삶이 조금씩 각박해지는 것을.

그리고 그 각박한 삶을 타파하기 위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더 많은 잡학의 배움을 떠안기도 하고, 또 더더욱 말업(末業)으로 몰리는 것을.

이대로라면 언제든 나라는 재조론에 다시금 눈을 돌릴 것이다. 이미 통의부에서 오간 언설이 공보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으니, 모든 이들이 지난 번 권점이 얼마나 백중세였는지를 공히 알게 되었으므로.

그러나, 그들의 눈길 닿는 재조론은, 이언적이 대강을 짜고 삼남 향반들이 살을 붙인 본래의 그 재조론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민의 정부를 세워 재조론이 바라는 그 나라를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을 품게 되리라.

인민을 입에 담는 것은 죄가 아니요, 오히려 이 땅의 법도를 고치는 가장 빠른 길로 보일 것이므로.

그리 된다면, 설령 나라가 다시 만들어져, 은도, 말업(末業)도 내버릴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열린다 한들, 그것은 이언적이 바라던 나라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너는 정녕 노렸느냐. 대체 무엇을 위하여 그리하였느냐.”

“내 직성 풀리게끔 하고자, 내 이름 남도록 하고자 그리하였소.”

“고작 그뿐이더냐?”

“다른 이유가 또 무엇이 필요하오?”

차가운 달빛이 금옥의 바닥을 비추었다. 두리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달빛이 낯빛을 갈음하는 듯하였다.

“돌이켜보면,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소.”

“무어라?”

“인민의 정부라는 그, 어르신은 한없이 어리석고 간악하다 할 그 이야기 말이오.

그 어떤 선비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 홀로 생각한 것이지만, 반대로 나 같은 놈조차 생각하고 또 다른 무식쟁이들이 알아들을 만큼... 천하의 이치에 닿은 것이겠지.“

“네 이놈!”

감히 그것을, 천도(天道)에 비한다는 말인가. 노기어린 음성이 금옥에 울렸으나, 정작 그에 실린 노기는 눈앞의 창살조차 넘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소? 모든 사람은 저의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지. 그것이 천하의 이치가 아니면 무엇이겠소? 사내든 아낙이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저의 손으로, 저의 세 치 혀로, 명 다하기 전 이 세상에 저의 살다간 자국을 남기고자 한단 말이오.

지금까지는 그것이 그저 억눌려, 저의 피 이어진 자식을 남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바 없다 여기고서 수천 년을 살아 왔소.

허나 임꺽정이가 판을 뒤집어주었지. 나 같은 놈이 마음대로 까불며, 남들을 부추기고 패거리를 모을 수 있는 그런 판을 말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저의 집안 빼고는 배움도 성품도 저자 백성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저 향반들이 그토록 나와 어울리며 열렬히 끼어들 수는 없었겠지.

그 판이 뒤집힌 채로 남아있는 한, 임꺽정이는 죽지 않는 것이오.”

“되었다. 네가 그리 망령된 말을 늘어놓는다면, 내 어찌 남아 귀를 더럽히겠느냐.”

하필 구름이 끼어, 잠시 횃불 하나를 제하고 금옥 감방이 어둠에 물들었다.

“되었든 말든, 나는 내 할 말을 하겠소. 떠나는 것이야 어르신 마음이요, 내가 막을 방도야 없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임 당수처럼 그렇게 되고 싶었소. 가장 천한 얼자가 사직의 으뜸가는 공신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천한 놈, 언제든 죽일 수도, 지워버릴 수도 있는 놈으로 치부하던 세상에 거하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소.”

떠나가는 발소리가 들릴 법도 하였으나, 횃불이 미약하게 타닥이는 소리가 전부였다.

허나 두리손은 노선비를 비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터져나오는 속마음을 고작 비웃음 위하여 가로막기는 아까웠다.

“처음에는 뒤집힌 판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음으로써 그리하려 하였소. 허나 암만 아등바등 나 혼자 애를 써도 거기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였고, 그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비루한 도적놈으로 끝날 뿐이었지.

그러다가 임 당수에게 죽을 뻔하고, 풀려나고, 또 팔도를 굴러다니다가 마침내 깨우쳤소. 어르신의 글과 뜻을 훔쳤고, 향반들을 한데 모았으며, 종국에는 그 향반 놈들의 명맥이라도 살려놓기 위해 죄다 버려두고 나 홀로 군관들을 모아 궐기하였소.

그리고 지금에야, 마침내 임꺽정이를 그 발끝만큼이라도 따라잡았다,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하오.”

아마 그럴 것이다.

두리손의 이름은, 이 땅에 세워졌고 앞으로 더욱 세 높아질 금은과 상공(商工)의 나라에 그림자 깊게 드리울수록, 그 그림자에서 수근대는 소리로서 남을 것이다.

두리손 그자가 비록 간사한 악적이라지만, 아예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두리손 그자의 역모는, 어쨌든 내건 명분만은 죄 없다는 판결을 받지 않았던가.

언제고, 은을 뿌리로 삼는 이 조선의 법도에 폐단이 쌓이고 쌓여, 더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여기며 한바탕 뒤집고자 마음을 모을 때, 그때 두리손의 이름은 다시 그림자 밖으로 나오리라.

“천하가 너를 다시 없을 악적으로 여기고, 만인이 너를 원수로 삼아 미워하더라도, 너의 이름을 짓밟고 그 위에 침을 뱉더라도 괜찮다 여기겠느냐? 네가 그저 사람의 피를 흘리고 나라를 어지럽힌 것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이루었다 착각하였다며 비웃을 것이다.”

“남들이 무어라 생각하든, 내가 그리 여기고 있으므로 하등 부끄러움도, 후회도 없소.”

그리고 불꽃이 타오른다. 그것이 정녕 일생을 부정당한 노선비의 가슴에서 절로 피어난 심화(心火)인지, 아니면 창살 사이에 두고 만난 잉걸불에서 불씨 옮겨붙은 것인지는 모를 일.

“알겠다.”

일말의 미련도 없이, 횃불과 그림자가 공히 사라지고, 달빛은 돌아왔다.

대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언적은 막 들어오는 임거정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에게서, 동쪽 대양 너머로 가는 배와 그 배에 실릴 사람들에 대하여 들었다.

경주 자옥산 산장을 떠난 이언적이 상경하였다가 돌아오지도 않고, 그저 종적을 감춘 것은 그 무렵이었다.

“못난 후학이 공자의 말씀을 훔치는구나.”

그 한 마디만 남긴 채.

그러나 이황은 스승이 어디로 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저 조용히 서림에게 서간 한 통을 부칠 뿐이었다.

이 조선 땅에 행해지는 도(道)를 도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늙은 선비는, 뗏목을 타고 동쪽 바다로 나아가리라. 구이(九夷)의 땅, 아직껏 문명이 없는 그 누추한 땅으로.

그리고, 결코 떳떳하게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何陋之有)’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스승은 스스로 누추함과 구차해지기를 구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사람이 처음 땅 위에 서서 나라를 세웠던 상고(上古)의 때. 그때 세상의 도리가 어떠하였는지를 검증할 것이다.

결국 자신은 틀리지 않았노라, 또는 무엇 때문에 틀렸을 뿐 나머지 논변은 옳았노라 단언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갈 것이다.

저의 나이 고희에 이르렀다 한들, 어찌 한낱 비천한 얼자에게 당한 그 욕을 잊고 넋을 구천에 흩뿌리겠느냐, 어찌 선비를 위하는 나라의 서생으로 태어나, 그자보다 못한 옹졸한 자로 남겠느냐. 이 악물고 속으로 외치면서.

허나, 한(恨)만은 어디에도 서리지 않으리라. 설령 늙은 몸이 뱃머리에서 파도 부서질 때 함께 부서져, 그 유해조차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한편, 이언적이 막 금옥을 떠날 무렵 두리손은 새로운 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 하여, 눈치를 보니 다들 군말없이 따를 것 같더라.”

“잘 하셨소. 몇 년만 지나고 보면 임 당수 그대에게도 제법 이로운 일이 될 것이오.”

마땅히 역모의 종범으로 죽이든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하든 해야 할 것을, 그저 유배 아닌 유배로 끝내게 된다면, 간혹 그 죄질이 양호하거나 그 재주 아깝다고 누군가 옹호해줄 이 있는 군관들은 그보다도 더 낮은 벌만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 하나하나가 군에 남아, 훗날 임꺽정이 무엇을 하든 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반면 네놈은 남은 죄만 하더라도 극악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네놈 무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썼으니 능지처사(凌遲處死)를 면치 못할 것이다.”

“뭐, 굳이 그런 것 알려주러 여기까지 오셨소?”

“그러면 그냥 깜깜이로 내버려둘 것을 그랬나?”

“임꺽정 석 자 내걸고 명을 내리면 알아서 이루어질 것이 뻔하지 않소. 헌데 무엇이 어찌되었나 일일이 알려주고 다닐 만큼 한가하다니, 당수 노릇도 참 편하구려. 누구는 맨 위에서 멱살 잡고 이놈 저놈 끌어모으느라 정신없이 살았는데.

당장 임 당수 그대가 이렇게 한가롭게 농담 따먹고 있을 때, 당수네 모주 노릇하는 이들은 한창 머리 맞대고 궁리하고 있을 것 아니오? 어찌하면 곧 닥쳐올 더 큰 싸움에 대비할 것인가를 두고 말이오.”

“하, 네놈이 농지거리 던지는 것을 다 보는구나. 사람이 죽을 때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굳이 따진다면, 까마득한 옛날 같은 일전의 흑의영 잔치판에서도 이미 한 번 들었을 것이다. 허나 두리손은 지적하지 않았다.

꺽정이 또한, 두리손의 말대로 사업당에서 지금 이씨 네 명이, 민주당을 기다리는 다음 싸움, 즉 대국 천자와 장거정 상대할 궁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부연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속이 후련하면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오.”

“정말로 후회는 없느냐?”

“이제 와서 후회한들 바뀔 것도 없지 않소.”

“그 말 좋구나. 너 죽어 염라대왕 만나면 꼭 그 말 전해다오.”

엉뚱한 말에 이번에는 두리손 쪽에서 코웃음이 나왔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겠소.”

“그래, 그건 네놈이 나보다 낫다.”

미리 죽을 수 있도록 비상(砒霜)이라도 구해다 줄까, 하는 그런 말은 바라지도 않고 꺼내지도 않았다.

두리손 바로 다음 순번으로 정해진 심통원과 이량의 송사에 있어서는 임금이 착잡한 마음 자못 가득하였으므로, 어쩌면 조만간 꺽정이가 비상을 들고 다시 오밤중에 금옥 들어올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무엇이 더 낫다는 말이오?”

“실은, 이언적 저 어르신이 금옥 찾아왔다 했을 때, 뭔 얘기 그리 두런두런 나누나 궁금하여 저기 바깥 창 아래에 붙어서 귀동냥을 했다.”

“내 부끄러운 소리를 늘어놓았구만. 자다가 거적 걷어찰 밤이 몇 번 안 남았으니 망정이지.”

“잡소리 관두고 마저 들어보아라.”

그리고 꺽정이는, 털썩 주저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내 전생 이야기를 해 주마...”

한때의 두리손보다도 더 비루하고 더 보잘것없던, 그저 세상 미워하고 때려부수는 것으로 만족하였던 도적의 이야기가, 이제는 온 천하의 화근덩어리가 된 임꺽정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임꺽정을 증오하고 질투하던 끝에, 마침내 임꺽정의 대적(大敵)이 되고, 또 세상 뒤집으려는 임꺽정의 욕심에 큰 보탬이 된 두리손은 그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그에 비하면 네놈은, 꽤 멀리 오지 않았느냐.”

“역시 어째 내가 못 따라가는 듯하더니, 그런 야비한 술수로 눈속임을 하고 있었군그래. 두 번 산 작자랑 한 번 사는 작자가 겨루면 승패가 뻔하지 않겠소.”

“노름판에서는 술수도 재주다.”

할 말은 다 하였다는 듯, 별 미련 없이 꺽정이는 일어났다.

“정말로 임 당수 말처럼 염라대왕 만나게 되면, 그 약조 지켜드리겠소. 그리고 염라대왕에게 똑같은 내기를 청해보겠소이다. 만에 하나 먹히게 되면, 임 당수 그대는 내 바로 아랫사람 시켜드리지.”

“뭐, 마음대로 하거라.”

횃불은 임꺽정 따라 멀어져갔지만, 달빛은 언제 구름에 가렸냐는 듯, 감방에 고대로 남아 있었다.

호관 임거정이 내세운 죄의유경의 논변이 그대로 판관에게 받아들여지고, 추관들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바, 통의부에서 재개된 두리손의 역모 재판은 다시 끊어지는 일 없이 그대로 이어져 금방 끝났다.

마지막 죄목, 인민의 정부를 거론한 것은 호관이 청한 대로 치죄하지 아니하기로 하였고, 나머지 죄목은 죄인 본인이 모두 수긍하였기에 더 논의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인 두리손은 그로부터 여드레 뒤 동작진(銅雀津) 나루에 끌려나와 능지처사에 처해졌다.

본디 국법에는, 능지에 처한 죄인의 머리는 사흘간 효시(梟示)하고, 그 팔다리는 팔도에 나누어 전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형이 끝난 당일 밤, 누군가 대역죄인 두리손의 머리를 훔쳐가고, 뒤이어 막 소금에 절이려던 팔다리마저 훔쳐갔으니, 이는 필시 역도의 잔당이 남아 농간을 부린 것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범인의 뒤를 밟거나 범행의 전말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니, 기묘한 일이었다.

이튿날, 수락산의 이름 모를 산장 마당에, 주인 모를 봉분 하나가 세워졌다.

묘비는 굳이 세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주인의 이름은, 굳이 비석 따위 세우지 않아도 무상한 세월 속에 잊히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 *** ---

원 역사에는 『명종실록』 명종 20년 8월 15일, 윤원형이 몰락할 때 이준경이 모은 사림 세력들의 탄핵 상소에 한 줄로 등장하는 두리손이, 이렇게 역사에 남을 흔적 하나를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능지처참이라고도 흔히 불리는 능지형은,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법적으로 규정된 형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대명률』 및 이를 계승한 조선의 형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은 전체의 약 20%에 육박할 만큼 많았고, 이에 따라 같은 사형이라도 등급을 나눌 필요가 생겼던 것이지요. 이에 따라 본디 법전에 나오지는 않지만 일종의 최고형으로서 능지형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상 최대한 고통스럽고 잔혹한 형벌이라면 모두 능지형으로 불릴 수 있었지요.

조선의 경우, 을사사화를 거치면서 능지형이 종종 집행되었기 때문에 당대의 능지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전합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명과 달리 흔히 ‘능지’하면 연상되는 백각형은 시행되지 않았고, 다만 거열형이 시행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개는 참수형에만 처한 뒤 사후에 효수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는 명보다도 훨씬 유교 윤리가 깊게 침투한 조선의 특성상, 가혹한 형벌에 대한 거부심리가 강하였고, 동시에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명예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가 혼란한 중원의 모습에 실망하여, 차라리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고사는 『논어』 <자한>과 <공야장> 편에 보입니다. 구이(九夷)라고 통칭한 것을 보면, 정말로 한반도나 일본 등으로 이민을 고려했다기보다는 막연히 중원의 현실에 대한 환멸을 표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겠지요. 다만 이때 공자가 구이 사이에 살겠다 언급한 것, 대표적으로 ‘군자가 그곳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君子居之 何陋之有)?’은 후에도 종종 언급되어, 자취방 청소를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한 변명(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부터 중화사상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논리(홍대용의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까지 폭넓게 인용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