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94화 (194/259)

59. 스스로 일으키는 재앙 (1)

카간(대칸)의 자리를 두고 한바탕 싸움 벌어져, 마침내 새 카간이 미리 정해지게 되면 그것을 공인하기 위해 곧장 쿠릴타이가 열리는 것이 몽골의 법도였다.

헌데 엉뚱하게도 비슷한 형국이 이곳 조선국 인천부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짧았으나 결코 가볍지는 않았던 싸움이 끝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임 당수 안부 여쭙고자 찾아왔던 것이다.

꺽정이에게는 (아마도) 황금씨족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을 것이요, 조선의 ‘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지만, 조금 식견 있는 이들은 지난 전란이 조선의 사실상 주인 노릇할 사람을 정하기 위한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수성(守城)하는 측의 승리로 끝난 이상, 조선이 장차 무엇에 휘말리게 될지도 다들 조금씩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저기서 안부 묻는 시늉을 하며 정세 살피고자, 대마도에서도, 히라도에서도, 사카이에서도 사람이 오고, 독이 오른 포르투갈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껏 되찾은(?) 저의 도시에서 언제 쫓겨나도 이상치 않게 된 말라카 시장 알라우딘 샤도 저의 충복을 보내 조언과 도움을 구했다.

그 많은 사람 중 가장 미심쩍은 무리가 있으니, 바로 무슨 일인지 그간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조선으로 온 이탈리아 사절단이었다.

“바예지트 그놈은 퍼뜩 돌아왔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작 대국에 오래도록 뭉개고 앉아있어 영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소.”

“그래도 덕분에 싸움에 휘말리지는 않았은즉 다행 아니오? 아, 뒤늦게나마 승리를 축하드리오.”

올해로 나이 여든인 베네치아 특사 피에트로 로레단이 건조하디 건조한 웃음을 지었다.

베네치아 사람으로서 실로 오랜만에 부귀가 넘치는 동방에 발을 디딘 피에트로 로레단은, 북경에서 천자를 알현하고 돌아오던 중 병이 들어 천진에서 근 몇 달을 앓았다.

병중에 천자에게 글 올려 청하기를,

‘아아, 벽지(僻地)에서 찾아온 이 오랑캐 늙은이가 말년에 비로소 중화의 빛을 보았으니, 어두운 눈은 트이고 멍멍한 귀가 뚫리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운이 따르지 않아 와병하게 되었으니, 이 늙은이의 명은 이뿐이라 할지언정 어찌 저와 함께 온 다른 이들까지 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함께 찾아온 이탈리아 사람들이 중화의 문물과 흥성함을 깨우칠 수 있도록 황은을 허여하여 주시옵소서.‘

일행 중 가장 연로한 동시에 사절단 내에서 그 나이와 집안 부귀함이 으뜸인 로레단이 앓아누웠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먼저 천진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

시일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저와 함께 온 이탈리아 사람들이 중원의 빼어난 문물을 두 눈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곡한 청원이 자금성에 닿으니 곧 황제의 은총이 내렸다.

“병으로 몇 달 끙끙 앓은 사람치곤 영 멀쩡해 보이시는구려.”

“그러면 이 사람이 정말로 중병에 걸렸으리라 믿었소? 내 나이가 올해로 고작 여든이외다. 그 옛날 위대한 도제 엔리코 단돌로는 아흔다섯 나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을 넘었는데, 도제 자리 노리는 자라면 이쯤은 해야지.”

정정한 만큼이나 뻔뻔한 로레단의 대꾸에, 인천에서 이탈리아 사절단 맞이한 꺽정이조차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옆에서 말을 옮기던 이탁오야, 엄숭 때와 칙서 조작할 때 합쳐 이미 천자를 두 번이나 속여먹은 놈이 고작 이 정도로 할 말 잃어서야 되겠느냐며 놀릴 마음을 품었지만.

“운하가 뚫리면, 무엇보다도 저 ‘가운데 나라(中國)’와의 교역이 우리 베네치아의 국운을 책임지게 될 것이오. 무릇 장사에 있어서는 앎이야말로 가장 귀한 밑천 아니겠소?

그리하여 어디서 무엇이 나는지, 우리 이탈리아와 그 너머에서 귀하게 팔릴 만한 물산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아랫사람들을 여기저기 풀어 보냈소이다. 어차피 같은 연맹으로 묶였으니 인심 쓴다 치고 피렌체와 제노바 등등 다른 도시 사람들까지 그렇게 끌어들였지.“

로레단이 대뜸 자신이 칭병하며 시일을 질질 끌었던 연유를 밝혔다. 느닷없는 정직함에 이탁오도 놀랐다.

“만에 하나, 임 당수 그대의 파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때는 우리가 직접 저 오만한 시나인(중국인)들과 교섭해야 할 테니 말이오. 시나 정부의 고관들 중, 대놓고 그런 사정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도 있더군. 임 당수 그대에게 의지하지 말고, 황제에게 조공 바치며 그 대가를 취하라고.”

“웬일로 이렇게 이실직고를 하시오?”

여든 노인까지 데리고서 ‘거문고’를 타기에는 꺽정이와 이탁오 모두 공부자의 가르침을 마음 깊은 곳에 두고 있었다. 다행히도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게 되었다.

“듣자하니 이 항구 전체가 당수의 영지와 같다 하던데, 나는 영주 앞에서까지 함부로 거짓을 말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소이다. 더구나 그 영주의 군대와 함대가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 돌아가는 여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은 더욱 그렇지.

더구나 이렇게 그간 속사정을 밝히면, 임 당수 그대도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금 더 후한 대접을 해주지 않겠소?“

즉 민주당과 달리 저들 베네치아 측에서는, 장거정과 임거정 중 누가 이기든 딱히 손해볼 것 없게 되었으니, 정 저들과 교역하길 원한다면 뭔가 더 내놓음직도 하지 않느냐, 그런 뜻이었다.

두길보기(양다리 걸치기)하는 짓이 영 밉상이었으나, 똑같은 미운 짓도 여든 노인이 하면 차마 주먹을 들 수 없는 노릇.

“뭐, 무슨 뜻인지는 알겠소. 좌우지간 조선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고, 어쩌고저쩌고. 임금님께서 한양에서 기다리시니, 얼른 가서 뵈시오들.”

로레단 또한 저의 용건은 모두 전하였으므로, 미련 없이 임 당수에게 고개 한 번 숙여주고 망양당을 나섰다. 이탈리아 사절들 태우고 한양까지 갈 배가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에야, 상국에 조빙하는 이들을 먼저 번국에서 맞이할 수 없다 하여 흑의영 연회에서 한 번 만나고 끝이었지만, 이제는 임금도 멀리서 온 객들을 제대로 경복궁에서 대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그러게 말입니다. 양심에 찔리지는 않게 되었으니까요.”

나이 무색하게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하여 위풍당당히 걸어내려가는 로레단과 그 뒤를 따르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뒷모습 보며, 꺽정이와 이탁오는 한 마디씩 하였다.

“양심에 찔릴 게 무에 있소? 우리 사형 병해 스님 말씀대로라면, 이게 다 중생의 번뇌를 줄여주는 것이니 공덕이라 할 수 있지.”

동방무역에 있어 명과 조선-이라기보다는 민주당- 중 어느 쪽 손을 잡느냐 하는 것은 베네치아와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 모두에게 제법 어려운 문제가 될 터였다.

물론 몇 년 안으로 그들이 상대해야 할 명은, 그저 자신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잠들어 있는 우둔한 거인이 아니라, 세상을 모두 저의 것으로 삼키고자 입을 벌리는 배고픈 거인이 되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정까지는 모르는 듯하였다.

더구나 민주당은 민주당 나름대로 마냥 교역의 상대로만 볼 수는 없었으니, 이미 인천부 근방에 뿌리 내린 잉글랜드와 저지대 공인들이 조선인 도제들을 받아들여 – 서림의 두둑한 지원과, 그만큼 두둑한 협박 때문이었다 – 광활한 중원 시장에서 수 년 안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저들이 돌아가는 길에 말라카에 닿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놈들이 뉘 손을 잡았는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오, 흐흐.”

명 조정과 민주당 사이가 썩 좋지 않다는 소문은 이미 강남을 거쳐 남쪽 바다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헌법을 두고 으르렁댄 것이 벌써 일 년을 넘겼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리고 민주당을 견제하기 위해, 역시 민주당 – 보다 바르게 말하자면 ‘동 림’ – 에 의해 해코지 많이 당한 포르투갈을 명이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도, 마닐라나 말라카, 고아 등에서 두카트나 이스쿠두(포르투갈 금화)를 묵직하니 흩뿌리면 그림자 사이에서 능히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말라카 시장 겸 조호르 술탄 알라우딘 샤, 교역하러 오는 이들 늘어나는 걸 보니 시장 잘 뽑았다며 즐거워하던 말라카 시민들, 그리고 ‘중국인 족보’ 내세우며 막 말라카와 광동성을 오가는 장사판 벌이기 시작한 유대인과 몇몇 포르투갈 한량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 인한 근심걱정을 달래기 위하여, 오늘내일 중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돌아가는 길에 탈 카락과 갈레온에는 영 수상쩍은 궤짝 여럿이 실릴 예정이었다. 배에 탈 객들은 모두 한양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요, 배 주인 이름은 바로 페르낭 멘데스 핀투라 하였으니,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달 뒤 인천을 떠날 배들은 암만 날씨가 쾌청하다 한들 가는 길에 반드시 풍랑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말라카 코앞 조호르에서 잠시 풍랑을 피하게 될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인천에서 실린 수상한 궤짝은 그대로 조호르를 거쳐 말라카로 옮겨질 것이었다.

이후 언젠가 호기심 많은 말라카 젊은이 하나가, ‘궁금함’을 못 이기고 ‘주인 없는’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 조총이 가득 들어 있더라, 그런 일이 어쩌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요, 하필 그 젊은이가 말라카 시장 겸 조호르 술탄 알라우딘 샤의 심복일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밝혀지면, 민주당도, 베네치아도 하등 관여한 바 없으나 에우로파 쪽에서는 이미 이탈리아가 운하로 맺어진 연을 못 버리고 조선 편에 섰다고 보게 될 것이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야비하고 교활한 계책입니다.”

“엥, 율곡 도령은 탁오 그대가 내놓은 발상이라던데.”

“에라이. 눈치도 없는 사람이 입방정은 어찌 그리 떠는지.”

로레단의 수작에 다른 이탈리아와 여타 에우로파 사절들도 모두 동참하였는데, 그 뒷사정을 모르는 이들도 그저 고국에 이 경이로운 동방 나라의 사정을 상세히 고하고픈 마음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자들까지 일일이 트집잡아 괴롭힐 생각은 없었으므로, 망양당에서 얼른 나머지 일을 처리하고 꺽정이와 이탁오는 귀경길에 올랐다.

인천과 한양, 보다 정확히는 노들나루(鷺梁津)을 잇는 중림도(中林道)는 늘 부산하였다. 로레단을 비롯하여 인천에 닿는 귀인들이 어지간히 급하지 않은 이상 배를 타고 오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림도를 오가는 일꾼이며 봇짐장수며 하는 이들이, 죄다 사업당 장사를 돕는 격이었으므로, 서림은 종종 인심 쓰듯 중림도의 정비에도 예산을 붓곤 했는데 – 실제로는 당연히, 아랫사람들을 갈아넣어 그 수용(비용)과 이익을 계산한 뒤에 내리는 결정이었다 – 중림찰방이 부임하자마자 사업당 찾아와 인사 올리는 것이 관례가 될 정도였다.

그런 중림도 따라 꺽정이는 이탁오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굳이 ‘임 당수 행차시다’ 가갈(呵喝)하지 않아도, 꺽정이가 탄 한혈마 (알탄 칸이 보낸 성의였다), 그리고 말 위의 시커먼 도적놈을 보면 알아서들 비키곤 했으므로, 길이야 부산하든 말든 가는 길은 쾌적하였다.

“그래도 이 길도 이젠 조금 질리지 않습니까?”

“그럼 날아다니든가.”

“날아다닌다, 그것도 괜찮은 발상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수네 사형께서 거둔 그 기학 하는 무리 중에 비슷한 궁리하는 작자가 있던데.”

“헛소리 마시오.”

“진짜입니다. 뜨거운 김으로 뭘 한다던데... 굳이 하늘에 띄울 것도 없이 그 띄우는 힘을 비스듬히 눕혀서 발휘하기만 해도 절로 움직이는 수레를 절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노들나루가 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뒤에 누가 따라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꺽정이와 이탁오가 방심하여, 저들 꼬리 밟는 이를 알지 못한 것은 아니요, 그저 저쪽 사람의 뒤따르는 재주가 너무나 형편없어 이리 치이고 저리 막힌 끝에 이곳 노들나루에 이르러서야 겨우 따라잡은 것이었다.

“헥, 헥! 당수! 당수!”

달린 것은 말인데 어째 그 위에 탄 사람이 더 헐떡이는 듯했다. 겨우 내려서 의관 정제하는 그자 얼굴은, 의외로 낯익었다.

“너는 심의겸이 아니냐? 여긴 웬 일이냐?”

“그러게. 집안 어르신 따라 저기 울릉도 가 있어야 하지 않소?”

‘두리손의 난’ 내지는 경신병란(庚申兵亂) 정도로 슬슬 이름이 정립된 지난 난으로 말미암아 외척 심씨 문중은 초상집이 되었는데, 의외로 명줄 끊어진 사람은 이량 하나뿐이었다.

이는 두리손이 통의부에서 모든 모의는 자신과 죽은 남치근 등이 하였다고 증언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 약한 임금이 간곡히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있는 죄를 없앨 수는 없는지라, 대신 나온 발상은 바로 이제 막 고기잡이를 위해 사람이 다시 가서 살기 시작한 울릉도에 군을 설치하고, 그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실상 늙어 죽을 때까지) 심통원을 군수로 앉혀둔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하여도 역모에는 아주 관대한 처분이라, 심씨 문중 사람들은 다들 사직하고, 그 지극한 뜻 받든다며 누구는 북변에 학당을 열러 가고, 누구는 동래에 왜인을 가르치러 가고, 또 누구는 황해에 흩어진 섬에 들어가 그 섬을 나라의 간성(干城)으로 굳히겠노라 자원하고 나섰다.

심의겸도 잘못된 집안에 태어난 탓에 사직하고 그 뒤를 따르려 했는데, 그 사람됨을 알았던 서원 동문 김효원이 열심히 주변에 그 딱한 사정을 알린 덕에 새 일자리를 얻었다.

“... 하여, 탕평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선비가 벼슬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동고 대감께서 긴히 임 당수께 묻고자 하는 바가 있으시다 합니다. 하여 인천부에서 임 당수를 뵙고 말씀 전하려 하였는데, 어찌나 빨리 움직이시던지 소생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꺽정이 탄 말이 명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임 당수 앞에서는 비켜서던 사람들이 고작 보잘것없는 서생 하나에게는 길을 쉽사리 비켜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소?”

그랬는데, 심의겸이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영 난처한 표정만 짓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꺽정이는 도승(渡丞, 나루 관리자. 정9품)을 찾아가, 멀쩡한 사람 쫓아내곤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물었다.

“자, 여기서는 마음껏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오.”

“그것이...”

천조가 조선을 두고 노여워하는 것이,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 북경에 나가 있는 조선 사신들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그러하였다.

북경에서 은근슬쩍 일년일공(一年一貢)을 꺼내자마자,

‘너희가 원한다면 지체 없이 그리하여라. 그러나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는 살벌한 답이 돌아왔다.

이어서 내각수보 장거정이 사신들 만나기를 청하더니, 웃는 낯으로,

‘귀국 선비들은 『맹자』를 그리 즐겨 읽으니 문리(文理)에 달통하였을 것이오. 이 사람도 아성(亞聖, 맹자)께서 공손추(公孫丑)의 질정에 답하시며 태갑(太甲)의 말씀을 다룬 그 부분은, 의미가 실로 심장하여 곱씹을 만하다 여기고 있소이다.’

하였는데, <공손추> 장에 나오는 태갑의 말씀이란, 곧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일으킨 재앙은 살아서 견딜 수 없다’하는 대목이었다. 어찌 섬뜩하지 않으랴.

허나 이런 사정을 나라의 신료로써 글로 써서 조정에 부치게 되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라, 정사 홍섬(洪暹)은 고심 끝에 사사로운 편지를 빙자하여 그간 들은 바를 이준경에게 보냈던 것이다.

보나마나 곧 그 뜻을 그대로 드러낸 새 조서가 사신과 함께 한양에 내려올 것이었으므로, 어찌하면 좋을지 그 대책을 함께 논하고자 임거정을 부른 것이었다.

“대책이라. 마침 궁리하고 있는 것이 있지.”

“그렇습니까?”

“속고만 살았나. 그렇대두. 이왕 이렇게 된 것, 와서 보고 가면 되겠군그래. 어차피 우리 쪽에서도 정리되는 대로 동고 어르신께 말씀 전하려 했으니.”

헌법의 논의는, 재조론을 밀어붙이고 그것을 저의 공으로 삼으려던 심통원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익히 알려진 바였으나, 심의겸은 그 진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임거정의 평소 성정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어찌 내 알 바더냐. 너희 잘난 어르신네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전해라’ 하는 답 나올까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행히 임거정이 호쾌하게 저의 당에서도 궁리하는 것 있었노라며, 저를 끌고 사업당으로 향하니, 사업당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익히 알던 심의겸도 의심 없이 따라갔다.

“내가 바보였지.”

“뭐라고?”

“아, 아무 말도 아닙니다, 당수.”

그리고 이제는 조금 익숙한, 사업당 안쪽, 천하전도 걸린 그 전각에 닿자마자 심의겸은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못 보던 널찍한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지도가 하나 놓여 있었으며, 지도 주변에는 낯익은 이들도, 모르는 이들도 여럿 서 있었다.

그리고 지도 위에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무슨 윷놀이 말 비슷한 나무조각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색칠된 채로 놓여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말들이 세워져 있는 지도의 모습을 가만 살핀즉...

“어디 보자... 명군 진격, 수효 삼만. 계속해서 또 명군 진격, 수효 동일하게 삼만.”

“남은 아군은 일만오천. 봉황성에서 버티며 막습니다.”

지도에 나온 것은 조선과 천조 대명, 요동 산천의 지형도요, 말로 표식된 것은 곧 군대요, 지도 위에서 다투는 것은 – 제발 아니길 몇 번이나 내심 바랐건만 – 조선과 명의 군세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조선과 명의 전쟁이라는, 그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것을 넘어 다시 살피니, 의외로 재밌어 보여 저도 몰입하게 되었다.

설마 정말로 저대로 전쟁을 벌일 리가 있겠는가.

산해관을 넘은 육만 대군이, 요하를 건너 둘로 나뉜 채 남동쪽으로 내려왔다.

이미 저의 갑절은 넘는 명군을 상대하던 조선 측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고, 그사이 새로 산해관 넘어온 대군은 그렇게 조선이 물러나 지키는 거점을 그저 빙 돌 뿐이었다.

이쪽에서는 알면서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명군 구천, 우회해서 의주목을 공략.”

“함락되었습니다.”

조선 쪽은 이미 모든 힘을 끌어모아 – 아마 여진 부락들까지 합세했다 가정한 것일 테다 – 요동에 밀어넣었는지, 압록강 이남의 방비는 매우 허술하였다. 봉황성을 무시하고 남하한 명군 구천이 그대로 의주를 쳤다.

“잠깐!”

수산 선생 이지함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방금 건 삼분지일로 치자꾸나. 압록강 넘은 명군 수효는 삼천으로.”

“알겠습니다. 압록강 넘은 삼천이 의주목을 들이치면... 우리 쪽의 신승(辛勝)입니다.”

저도 모르는 새 지도를 빠져들듯 바라보던 심의겸은, 역시 저도 모르게 찬탄하고야 말았다.

“함락된 의주목이 되살아나다니, 과연 아국 조선은 강하군요. 역시 수산 선생이십니다.”

“...”

그러나 그 말 듣고 곁에 새 구경꾼 생김을 알아챈 탁자 주변 사람들은 냉랭한 눈길만 보낼 뿐이었다.

“그게 어디 그 뜻이겠소? 어떻게든 임 당수와 흑의군을 내세우고 있는 수 없는 수 다 동원해서 겨우 틀어막는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래본들 또 산해관 뒤에서 한 오만쯤 더 넘어오면 끝이에요.”

보아하니 명 측의 대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한 이가 덧붙였는데, 어째 낯설지 않았다. 작고한 주세붕의 삼락서원에서 종종 보았던 그 꼬마였던 것이다. 이름이 이순신이었던가.

그제야 심의겸이 주변을 둘러보니, 면면이 범상치 않았다.

이지함과 이이는 물론이요, 미색 고운 여인 – 아마 자색과 성정으로 유명한 검손당 이씨일 테다 – 도 있고, 변란 끝난 뒤 벼슬과 상급 사양하였다가 이 자리에 붙잡혀 온 권율도 있고, 권율 눈에 들어 족히 군사를 함께 논할 만하다며 데려온 이순신도 있었다.

“보다시피, 만에 하나, 아니, 만에 한 칠팔천쯤 되겠군. 하여간 언제고 우리와 명국이 헌법을 두고 거하게 붙게 되었을 때의 승패를 셈하고 있었소.”

임꺽정이 태연하게 설명해주었다.

“본디 우리 사형과 율곡 두 사람이 청석골에서 가르침 주고받을 때 하였던 방법인데, 또 이렇게 슬쩍 바꾸어 해보니 제법 명쾌한 결론이 나옵디다.”

며칠간 돌아가며, 누구는 명 쪽을 맡고 누구는 조선 쪽을, 누구는 장군 노릇을 하고 누구는 정승 노릇을 맡아가며 하였던 이 놀이 아닌 놀이는, 지극히 뻔하고도 명백한 답을 내주었다.

“지금 당장 명국이 눈 돌아가 산해관 넘어오면 우리의 필패(必敗)요.”

암만 살릴 사람은 다 살렸다지만, 이번 전란으로 인한 인명과 재정의 손실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조선의 군사가 아무리 몇 년 전에 비할 수 없을 만한 강군이 되었다지만, 명이 강병만을 추려 보낸다면 일당십(一當十)은커녕 일당일(一當一)도 어려울 터.

“그리고 명국이 나라꼴 수습한 뒤 한 오 년쯤 지난 뒤에 우리를 치게 되면 그때도 우리의 필패요.”

엄숭의 아래에서 얼마나 명이 망가졌는지는, 이제 알 사람은 다들 알고 있었다. 조금 문명 떨친다 싶은 서생이라면, 같은 사업의 분주(分主, 주주)라던가 하는 식으로 강남에 서한 주고받는 서생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장거정 같은 이가 작정하고 경장을 밀어붙인다면 다시금 엄청난 힘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는 뜻.

“마지막으로 아예 저쪽에서 장구지계를 세워 수십 년간 양병(養兵)한 뒤 밀고 들어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필패요.”

그 외에도, 조선이 명을 먼저 쳐도 필패요, 조금 뜸을 들인 뒤 쳐도 필패요, 아예 월나라 구천이 와신상담하던 그 기세로 나라의 모든 힘을 군병에 몰아넣는다 한들 필패였다.

“대국은 괜히 대국이 아니라오. 비록 우리가 정예한 군사를 거느리고, 이전에 비해 공인(工人)의 술기가 정교해졌으며, 선박과 총통의 예리함이 일전에 비할 수 없게 되었다 한들...”

“말하자면 여기 사형이 암만 무예를 갈고 닦아도 나한테 힘으로 밀리는 것과 같지.”

이지함의 말을 꺽정이가 대신 받아주었다.

“하, 하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제야 새삼스레, 대명의 힘을 상기하고, 또 장거정 그이가 그런 천조의 힘을 모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심의겸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저들이 말하는 소위 사학(邪學)을 물리치고, 다시 십오 년 전 을사년 같은 때로 돌아가기를 바라시오? 국인들은 차라리 한 판 싸워보기라도 할 것을 바라겠지.”

이미 나라의 역적조차 인민의 정부를 논할 뿐더러, 그것을 논하였다는 것만으로는 처벌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의민당이 한양 점령하고 나라를 뒤집은 이후 벌써 십 년. 강산이 바뀌기에도 족하다 한 세월이니, 어찌 사람의 생각이라고 바뀌지 않을까.

가장 소식 어두운 산속의 무지렁이 백성조차, 세상이 변하였음을, 보다 올바르게는 그들의 나라 조선이 변하였음을 이제는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허나 언제라도 아국이 감히 천하를 어지럽힐 간악한 논변을 내놓는다며 꾸짖는 조서가 내려올지 모릅니다.”

막연히 답을 구하는 심의겸이었으나, 민주당 사람들도, 또 장군 노릇을 시키기 위해 끌고 온 권율과 이순신도 – 생각해보면 댕기머리 소년에게 그런 천하대계를 묻는 것도 잘못이겠지만 – 내놓을 답은 딱히 없었다.

“보다시피,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황상의 뜻을 거스를 수 없소. 우리 생각보다도 내각수보의 뜻이 훨씬 깊고도 완고하고, 더구나 그 주변의 다른 학사들조차 그 뜻을 따르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하였던 바요.”

이지함이 변명하듯 말했다.

“다만 우리의 셈이 맞다면, 저들 또한 당장 우리가 조서를 제대로 받들지 아니하였다 하여 벌하겠노라 외치지는 못할 것이오. 그것이야말로 무도한 짓이거니와, 고작 동쪽 소국 상대로 대군을 일으켜, 큰 손실 입게 된다면 그때는 더욱 천조의 체통이 무너질 것이오. 적어도 삼에서 오 년, 길면 십 년은 걸리겠지.”

그러나 그것 또한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어쩌면 회재 선생처럼 저도 동쪽 바다 건너가는 배편 알아보아야 하는가, 그런 실없는 생각이 잠깐이나마 심의겸 머릿속을 스쳤다.

“헌데 굳이 우리 혼자서 감당할 필요가 있소?”

그간 저의 주변 총명한 사람들에게 이번 일을 일임하고서 정작 저는 사업당 바깥만 분주히 돌아다녔던 꺽정이가 문득 물었다.

“우리 외에 또 누가 있다는 말이냐? 의권의 논변이 아무리 널리 퍼졌다 한들, 그것을 법도로 세우고, 이렇게 온 나라의 공론까지 모은 그러한 나라는 오직 우리 조선뿐이다.”

“그렇소? 나는 그냥 괘씸해서 하는 말이었소.”

“무엇이 괘씸하다는 말이더냐?”

“곧 우리를 책망하는 조서가 내려올 기미 역력하다 하지 않았소? 우리가 천하를 어지럽히네 뭐네 하면서 말이오.”

정말로 천하를 많이 어지럽히고 다녔던 꺽정이가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말이었다. 허나 지도를 멀리서 바라본 꺽정이 눈에 무언가 들어왔음을 직감한 이지함은 그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 우리더러 천하를 어지럽힌다며, 범상(犯上) 꾀한다는 둥, 간악하다는 둥 흉을 늘어놓는다면, 정말로 그놈의 천하 어지럽히는 일을 해줘야 마땅하지 않겠소?”

그리고 권율과 이순신, 심의겸 세 사람만 떼어놓고, 나머지 민주당 중진 사이에서 곧 ‘옳거니’ 하는 눈빛이 오갔다.

“이거, 지도를 바꿔야 하겠군. 와서 좀 도우시오.”

이순신이 눈치껏 즐비하게 늘어선 놀이말을 치우고, 명희가 그것을 주워담았다.

그리고 꺽정이와 이이, (멋모르고 따라온) 심의겸 셋이서 지도 하나를 옆에서 떼어낸 뒤 탁자 위에 펼쳤는데,

“천하전도 아닙니까?”

“그렇소만.”

“하면...”

“내가 말했지 않소. 천하를 어지럽힌다고.”

조선 홀로 천조 대명을 감당할 수 없다면야, 나머지 나라들을 모조리 끌어들이면 될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남의 나라 역모에 포르투갈 끌어들인 장거정이 먼저 시작한 일 아니겠는가?

이천오백 리 떨어진 북경에서, 펠리페 2세가 보낸 밀사를 조용히 마주하고 있던 장거정이 듣는다면, 그게 임거정 네놈이 할 말이냐며 체통 내려놓고 욕지거리 할 만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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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로레단은 원 역사에서는 베네치아의 84대 도제(국가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베네치아는 당시 비록 공화정의 형태를 띄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 전근대 공화정 대부분이 그러하였듯 – 귀족적인 과두정에 가까웠는데, 로레단 가문은 그러한 체제 내에서 상당히 비중이 높은 귀족 가문이었지요.

흥미롭게도 베네치아의 도제들은 당대 유럽의 다른 군주들에 비해 대체로 장수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적을 제거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 정적보다 장수하는 것인 만큼, 베네치아의 정치체제로 말미암아 기묘한 자연선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1481년생인 피에트로 로레단은 1567년에 도제 자리에 올라 1570년 열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고, 그의 먼 아저씨뻘 되는 레오나르도 로레단(75대 도제)도 85세까지 살았습니다. 물론 작중 피에트로가 언급하는 것처럼, ‘고작’ 80세 나이로 동방을 오가는 정도로는, 95세 나이에 4차 십자군을 가혹한 빚 독촉으로 밀어붙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까지 한 42대 도제 엔리코 단돌로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일이긴 합니다.

일종의 원시적 비행기구인 비거(飛車)에 대한 언급은 이미 위진남북조 시기부터 나타나고, 조선의 경우에도 잘 알려진 정평구의 비거를 비롯해 야사나 개인 문집에 종종 그러한 기구의 존재가 언급됩니다. 개중에는 글라이더 형태뿐 아니라 물을 끓이거나 공기를 데워 동력을 얻는 원시적 열기구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대개 이러한 시도는 가벼운 것이 위로 뜬다는 동아시아적 우주론에 입각하여, 원시적인 열기구를 만드는 데 그쳤으리라 추정될 뿐, 기록 자체가 너무나 소략하여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증기기관 자체에 대한 발상은 여러 문명권에서 비슷하게 등장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온갖 잡다한 무리를 끌어모은 병해의 ‘기학’ 집단 안에서 그런 발상이 떠오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중림도는, 원 역사에서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본디 그 규모가 크지 않았고, 임진왜란을 겪으며 거의 폐역 위기에 처하였지요.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경강(京江) 일대의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림도 역시 번영하게 되었고, 원 역사에서 종종 수원으로 행행을 하였던 정조가 관악산을 넘기보다는 인천~안산으로 빙 우회해 수원으로 가는 경로를 선호하였기에 중림도는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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