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96화 (196/259)

59. 스스로 일으키는 재앙 (3)

무릇 조서(詔書)란 황제가 내리는 글이니, 설령 가장 거친 필체로 쓴 수조(手詔, 황제가 직접 지은 조서)라 한들 그 어떤 글보다도 존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서가 지어지면, 먼저 천안문을 나아와 반조의(頒詔儀)를 거행하여 만천하에 조서가 반포됨을 알리고, 이어 금의위의 호위를 받으며 예부에 닿은 뒤, 다시 예부에서 부본(副本)을 지어 내외 아문과 흠차(欽差, 황제가 파견함) 사신, 그리고 번국 사신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 조서를 받든 사신이 오랑캐 땅에 닿으면, 다시 영조서의(迎詔書儀)를 거행하니, 이는 곧 황제의 말씀인 조서를 받드는 의례로 중화와 사이(四夷)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실지로는 그냥 누런 종이 한 장입디다. 천자 그 어르신은 거동도 똑바로 못 하던데, 어떻게 붓 들어 글을 다 썼는지, 참.”

꺽정이가 종이 한 장을 턱 내밀며 조식에게 말했다. 그 글이 어떤 글인지 아는 조식은, 만감 교차할 뿐.

“어찌 이리도 쉽게 조서를 훔쳐낼 수 있었단 말인가?”

꺽정이와 흑의군 여럿, 그리고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살벌한 짓거리에 휘말리게 된 조식을 태운 배가 이곳 금주(金州, 現 다롄 시 일부) 앞바다 조그만 섬에 닻을 내린 지도 보름쯤 지났다.

그사이 꺽정이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흑의군과 함께 광녕(廣寧) 의무려산(醫巫閭山) 기슭에 숨었다.

거기에 서림이 요동에 사람 보내 잠상(潛商, 밀무역)으로 재미 볼 때 짝패 노릇하다가, 이제는 주객(主客)이 뒤집혀 사업당 끄나풀이 된 요양(遼陽)의 잡배들까지 합류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요동은, 들판마다 마적이 들끓고 고갯길마다 산적이 터 잡고 있었는데, 꺽정이가 저를 못 알아보는 우매한 도적들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내려, 거창한 도둑질에 동참할 수 있는 광영을 나눠주었기에 금방 머릿수가 불어났다.

“그렇게 대충 모으다 보니 이백 명을 금방 채웁디다. 북진성 안에 우르르 몰려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었더니, 사신 나리들 머무는 객관에 사람 서넛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아무도 눈치 못 채더군.”

꺽정이 솜씨가 어디 보통 도적 솜씨던가. 목숨처럼 귀하게 받들어야 할 조서지만 실제 목숨보다 귀하진 않은지라, 명과 조선 양측 사람들 모두 놀라 허둥대는 사이 스르륵 들어갔다 스르륵 나왔다.

그러고서는 귀한 문갑(文匣)에 든 조서를 꺼내, 함께 대동한 글 빨리 쓰는 서리에게 그것을 베끼게 하고, 다시 객관에 들어가 감쪽같이 돌려놓은 뒤 빠져나왔다.

“요동이 근래 허술하여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집과 같다고는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뭐,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오. 관을 믿고 우직하게 요동에 남아있던 놈들이 바보지.”

이성량과 같이 요동에 연고도 있고 제법 가문도 든든한 인재가 제 발로 벗어날 만큼 요동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산동에서 요동 오가던 상인들은 이미 인천이나 동래로 발길 돌린 지 오래요, 여진 부족들도 어지간히 ‘수러 버일러’에게 밉보이지 않은 한 칙서 따위를 들고 요양성에서 한인들에게 뜯어먹히다시피 하느니, 같은 여진 사람의 성 기린울라로 찾아와 조선 상인들과 거래하는 쪽을 더 좋아하였다.

그러니 조선과의 잠상과 여진과의 칙서 교역으로 겨우 버티던 요동은 폭삭 망하여, 조정이 퍼붓는 재정으로는 겨우 그 땅에 세워진 여러 위(衛)를 지킬 뿐이었다.

좋은 날 오리라 믿으며 요동으로 넘어온 한인 백성들은, 알아서 저들끼리 뭉쳐 마을에 목책 두르고 버티든 – 그래본들 도적이나 겨우 막지, 도적보다 악랄한 관리나 군관들은 막지 못했다 – 저도 실은 그 천주교 믿었다며 아개국(압카이 아파시 구룬)으로 넘어가든, 아니면 그냥 밭두렁에 자빠져 죽든 하였다.

“여하간 이제 어르신 몫의 일만 남았소.”

꺽정이가 베껴낸 조서를 건네주었다.

“알겠네.”

예부로 옮겨진 조서가 부본(副本)이 되어 다른 아문과 멀고 가까운 성(省)들로 내려가게 되면, 다시 그곳에서 부본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부본의 부본의 부본일지라도 똑같은 황명이므로, 마땅히 예를 갖추어 받들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같은 부본이라 할 수 있는 손 안의 글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조식은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가 예를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 예학에 통달한 그 누구를 이 자리에 데려온다 한들, 이 글을 조서로서 예의 갖추어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범상한 종이에 범상한 필체로 급히 베껴 쓴, 범상한 글. 조서를 둘러싼 온갖 위엄이 벗겨진 뒤에 다시 보니, 맨 처음 쓰인 ‘봉천승운황제’ 여섯 글자를 제하면 여염의 서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이제 조식의 손을 거치면, 그나마 남은 한두 겹의 위엄조차 낱낱이 찢어발겨지리라.

“마침 떠오르는 글이 있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야.”

“그렇구려. 나야 배우신 분들께서 글을 어찌 쓰는지는 모르니, 어르신께 맡길 따름이오.”

그러고서는 곧장 돌아서, 배에 타고 있던 일꾼들 향해 외쳤다.

“자, 이제 네놈들 차례다! 얼른 배에서 내려라!”

“예! 당수!”

한창 조선과 천조 대명이 서로 다툴 기미 보이던 홍무(洪武)•영락(永樂) 연간 이래로 가장 흉흉한 내용의 조서. 그러나 문장으로만 따진다면, 어디 가서 내밀지도 못할 치졸하고도 비루한 글.

그런 글을, 그리고 글쓴이를 정면으로 꼬집기에는, 설령 죽을지언정 붓을 꺾지도, 굽히지도 않을 조식만한 사람이 없었다.

“거기 네놈들은 여기 어르신께서 글 다 쓰시는 대로 바로 찍어낼 준비를 하거라! 저쪽 뱃놈들이 이제 사나흘 안으로 당도할 테니, 시일이 그리 널널하지 않다.”

“예!”

“종이 가져와라! 바닷물 튀면 네놈들 모두 바다에 빠뜨려버릴 테다!”

“네놈들은 저쪽에 얼른 장막을 쳐라! 선비님 머무실 곳이다! 거기 서안 조심해서 내려놓고.”

“주자(鑄字, 금속활자) 꺼내와! 거기 그 궤짝 옆이다!”

인천에서 함께 배 타고 온 이들은, 공보 찍어내는 사업당 일꾼들 중에서도 입 무겁고 재주 좋은 자로 서림이 손수 가려내어 모은 공인들이었다.

합을 맞춰본 것이 어찌 하루이틀 일이랴. 금방 외딴 섬에 몇 권이든 책 간인(刊印)할 태세가 갖추어졌다.

꺽정이가 입에 담을 만한 말을 글로 고상하게 돌려 쓰는 재주 있는 조식은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갔다.

의무려산 기슭 광녕에서 ‘얻은’ 글을 바탕으로 문답을 적어내려갔으므로, 그 이름을 『의산문답(醫山問答)』이라 지었다. 본바탕이 된 글이 그리 길지 않은 고로, 『의산문답』의 길이도 딱 정론보나 공보, 또는 이를 따라하는 강남과 화북의 온갖 글에 싣기 좋은 정도가 되었다.

내용인즉 이러하였다. 헛된 선비 허자(虛子)가 요동의 명산인 의무려산에서 기인(奇人) 실옹(實翁)을 만나 문답을 나누는데,

‘멀리 서쪽에 백감(白坎, 흰 구덩이)이라는 오랑캐 나라가 있는데, 그 땅의 사람들이 법도를 세우니 화해(和諧)를 말하고 의권을 논하나 실지로는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 폐해가 중원에 미치는데, 노인께서는 혹 계책이 있으신지요?’

하고 허자가 운을 떼니, 실옹은 껄껄 웃는다..

‘크도다, 그 물음이여! 서쪽의 일을 동쪽에 와서 묻고,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답을 남에게서 찾는구나!’

비꼬는 뜻 역력함에도 허자는 꿋꿋이 묻는다.

‘백감국은 주무왕의 대에 그 땅에 제후가 봉해진 이래 중화의 번병으로서 아름다운 문명을 본받아 겨우 오랑캐를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삿된 법도로서 군신(君臣)의 도의를 망가뜨립니다. 천조에서 이를 벌함이 마땅하겠습니까?’

‘무릇 천하에서 가장 크고도 융성한 나라 있으니, 문명의 중(中)을 얻었고 백성의 이름은 화하(華夏)라 이를 중화라 일컬었다.

태산조차 흙더미 하나 가려 받지 않거늘, 우수한 법도가 나라 밖에서 나왔다 하여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벌하려 한다면, 이는 치우침이지 중(中)이 아니요, 오랑캐의 짓이지 화하에 어울리는 행실이 아니다.’

‘백감국은 천조에 복속된 나라로, 천조와 번국의 도리는 군신(君臣)과도 같고 또 부자(父子)의 사이와도 같습니다. 황명이 내리면 곧 받드는 것이 순리이거늘, 어찌 공공연히 하늘의 횡액을 부른다는 말입니까? 백감국이 스스로 위태로움을 초래함이 이와 같습니다.’

‘실로 헛된 선비의 말이로다! 민호(民戶)의 많고 적음과 강토의 넓고 좁음, 문명의 높고 낮음에 차등이 있을지언정, 나라 그 자체에 존비(尊卑)가 어찌 있겠느냐?

무릇 나라란 백성이 모여 이루는 것이니, 나라의 주인과 권병(主權)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요, 그렇게 만들어진 나라의 힘과 개명된 정도에 차등이 있으므로 서로 존중하고자 사대(事大)와 자소(字小)의 법도를 세울 뿐이다.’

‘천조는 천명을 받아 천하를 위하고, 번국은 천명을 받아 그 나라 안을 위합니다. 천조의 근심이 번국의 사정에 앞서는 이치가 이와 같습니다. 이처럼 천조 대국의 뜻이 번국에 앞서는 것이 이처럼 자명하거늘, 백감국이 세운 그릇된 법을 고치라 하는 것과 그 명을 받들지 않는 것 중 무엇이 천명에 맞습니까?’

‘천하를 올바르고도 평화롭게 지키고자 사대자소의 법도가 세워진 것인데, 그대는 이를 거꾸로 알고 있구나! 갈모를 써야 비로소 비가 내리고, 오곡이 여물어야 비로소 가을이 온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내 앞서 말한 것처럼 나라의 주권이 모두 사민(士民)에게서 발하니, 나라가 스스로 다스리는 이치는 오로지 그 안에서 갖추어질 뿐 바깥에서 내려지지 않는다. 스승을 아비와 같이 모신다 하여 스승의 성까지 따와 저의 것으로 삼을 테냐? 예(禮)의 본말(本末)을 거꾸로 여김이 참으로 심하구나!’

이러한 문답이 이어지다가, 허자가 마침내 실옹에게 탄복하여 그 말 따르는 것으로 글이 끝났다. 그리고 말미에는 사족인지 아닌지 묘한 문장 한 줄이 더 붙었다.

‘백감국이란 곧 실제 있는 나라가 아니요, 실옹 또한 어리석은 선비가 지어낸 이름으로 하늘을 이고 땅 밟은 이 중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 다만 허자는 비록 지어낸 사람이라지만 본 바탕이 된 사람은 있는데, 자(字)는 희력(喜力)이요 아호(雅號)는 입청(立靑)이다.’

글이 그리 길지 않았고, 또 천자가 조선의 헌법을 두고 노여운 기색을 드러낸 이후로 조식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의분도 있었으므로, 글은 고작 하루만에 모두 지어지고 이튿날 퇴고를 거쳐 사흘째 되는 날 찍혀나왔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수상쩍은 배 여러 척이 약조한 대로 금주 앞바다에 나타나, 섬에서 갓 찍어낸 『의산문답』을 받아갔다.

닷새째 되는 날부터 배들이 하나둘씩 저들 떠난 중원의 포구로 돌아오고, 그 배에 탄 사람들은 근처에서 공보 – 이제는 조선의 원조 공보와 정론보 따라하는 글들의 통칭이 되었다 – 내는 이들을 찾아가, 은량 내밀며 전하였다.

‘이것은 어떤 선비가 찾아와 실어달라 한 글인데, 우리가 비록 글 보는 재주는 없지만 자못 비범한 듯하였소. 내 은을 나누어줄 테니, 그대들도 이것을 공보에 실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천안문의 변 이후로 감히 공공연하게 조선의 정론보나 공보를 베껴 파는 이는 없어졌지만, 암암리에 비슷한 짓 하는 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또 강남이나 화북 각지에서 그 일대 사정 싣는 공보 역시 그대로 남아 예전보다도 더 번영하고 있었다.

이웃 고을 아무개 보(報)에서 기문(奇文) 한 편을 얻어 싣는다는 말이 전해지니, 아직도 매운 맛을 덜 보았던 자들이 멋모르고 글을 옮겨 실었다.

공보라는 물건이 각지 사정을 빠르고 간결하게 살피는데 제법 도움 된다는 것을 깨우친 동창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글이 들어갔다.

“장 대인! 내각수보 대인! 큰일입니다!”

“무엇이오?”

“이, 이런 글이 절강성 곳곳에 나돌고 있다 합니다!”

“대체 무엇이기에...”

대체 무슨 일로 동창제독 풍보조차 거치지 않고 저에게 직접 이리 달려오는가, 장거정은 잠시 의문을 품었으나, 문제의 그 글에 눈이 닿자마자 의문을 품을 여유조차 사라졌다.

“내각수보 대인! 산동성 각지에 참으로 흉악한 글이 돌고 있습니다!”

“아니, 자네 지금 산동성이라 했나? 설마 남직례(남경)에 나도는 것과 같은 글은 아니겠지?”

뒤늦게 다른 동창 환관들이 뛰어들어와, 저들끼리 문답을 주고받았으나 장거정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미친... 미친 놈들...!”

글의 문장이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 결론을 믿고 싶지 않았기에 몇 번을 고쳐 읽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결론에 돌아올 뿐이었다.

허자의 말이라고 쓰인 문장은, 바로 얼마 전 조선 사신들이 들고 내려간 조서를 표절한 것이었다.

조서의 위엄이라곤 티끌만큼도 남지 않은 채, 부실한 논리마저 산산히 부서져 논박당하고 조롱당하는 글.

“나는 그저 수상하리만큼 빠르게 글이 퍼지고 있어서 보고하러 온 것인데, 이 사람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군.”

“심각한 정도가 아닙니다, 대인! 여기, 글 말미를 보십시오!”

어느새 장거정의 집에서 회동 비슷한 것을 하게 된 동창 환관들이 말 잃은 집주인 대신 저들끼리 떠들었다.

“‘서쪽에 있는 백감국(흰 구덩이 나라)’을 뒤집어 보십시오! 동쪽에 있는 청구국(靑丘國, 푸른 언덕 나라, 조선의 별칭) 아닙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허자의 자라고 나온 희력(喜力)과 호라고 적힌 입청(立靑)을 합쳐 보십시오! 가정(嘉靖) 아닙니까! 이놈들이 감히 금상 폐하의 연호를...!”

대체 누구인가? 장거정의 의심은 가장 먼저 조선의 임거정에게 향했다.

그러나 조선 사신들은 아직 요양성을 막 지났을 뿐이었다. 중간에 광녕 북진에서 도적의 변을 당했다는 보고는 들어왔으나, 조서에까지 화가 미치지는 않았다.

만약 그 도적이 임거정의 수하였다면?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토록 빠르게 조서를 조롱하는 글이 지어져 중원 전역에 퍼져나갔다는 것은 도저히 이치에 닿지 않는 일. 요동 어디에도 이만큼 널리 글을 흩뿌릴 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북경에서 조서를 반포할 때 어디선가 불순불충한 자들에게 조서가 새어나간 것일 테다. 지난 천안문의 변에 앙심을 품은, 어리석고도 완악한 서생들의 짓이리라.

“모두 잡아 죽여야 합니다! 글이 더 퍼지기 전에...”

“이미 글은 더 퍼질 곳도 없네! 나라의 글 아는 자를 모두 잡아 죽이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단 말일세!”

사태를 뒤늦게 깨달은 환관들의 듣기 썩 좋지 않은 고성이 오가기를 한참.

“조서의 문장이 유출된 것은... 불문에 부친다.”

묵직한 장거정의 목소리에 소란이 바로 멎었다.

“허, 허나...”

급히 달려온 풍보가, 장거정의 뜻을 빠르게 짐작하며 다른 환관들의 입을 막았다.

“허튼 소리들 말거라. 이 글에 나오는 문장이, 조서에서 훔친 것임을 자인(自認)할 수는 없지 않으냐? 수보 대인의 말씀이 옳다.”

“고맙소. 걷잡을 수 없게 되었으니, 글에는 글로 대항하는 수밖에.”

장거정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글이 퍼진 이상, 탄압을 가하면 가할수록 이 글만 더 널리 퍼질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어찌하여 이토록 가혹하게 옥사를 펼치는지 의심만 품게 되리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어찌하여 이 잡된 글에 나오는 실옹의 논변이야말로 허황되기 그지없는지, 어찌하여 우리 중화의 나아갈 길이 오로지 대일통에 있는지. 내 글을 지어 밝히겠소이다.”

‘과연 티앙(Tiang, 張) 공은 저의 대일통론으로써 스스로 불러온 것과 다름없는 이 문자의 재앙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면 다음 편지를 기다리시라!’

그 대목에서 편지는 끝났다. 동인도회사 사장 엘리자베스 튜더는, 이미 여러 번 보았던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그의 반쪽짜리 연인 타고스 박사가 보내온 편지였다. 그 마음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을 그 어떤 정욕보다도 거세게 불태우고 있음을 알기에, 그리고 같은 불꽃이 자신의 심장에서도 날뛰고 있음을 알기에, 그 반쪽 연심(戀心)조차 무엇에도 비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보아도 재미있는 이야기. 그러나 때로는 재미보다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는 이야기. 박사 본인도, 그 옛날 술레이마니야의 가건물 옥상에서 늘어놓던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편지의 말미를 저렇게 적었으리라.

그리고 그 뒷이야기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 이야기까지 적은 편지가 류큐나 말라카 사이 어딘가를 지나고 있지 않을까.

편지 속의 박사는, 이대로 중국 정부의 실세라는 티앙이 저의 뜻을 꺾고 물러나, 만사가 부드럽게 풀려나갈 가능성에 대해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임꺽정 그 사람과 함께 다니는 사람치곤 영 무른 면이 있단 말이지.’

에우로파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정치의 제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훨씬 사소한 명분마저도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족하였다.

그리고 동방의 두 나라는, 에우로파에 다가와 그들을 끌어들였다. 한쪽은 그 거대한 땅에서 나오는 부로써, 다른 한쪽은 임꺽정 한 사람으로써. 그러니 전쟁을 좋아하는 그 경향 또한, 역병과 같이 동방으로 옮겨가게 되리라.

허나 지금은 사색보다는, 박사의 편지와 함께 도착한 지시를 엘리자베스 나름대로 이행하여야 할 때였다.

“안으로 드시라고 하십니다.”

때맞추어 뒤에서 들려오는 통역관의 목소리. 그가 옮긴 말의 근원은, 바로 엘리자베스를 이곳 아그라(Agra)로 초대한 바이람 칸(Bairam Khan)이었다.

허나 바이람 칸 또한 이곳 궁전의 진정한 주인은 아니었다.

“어서 오시오.”

마치 임금이 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용모의 앳된 청년이 왕좌에 앉아 엘리자베스를 맞이했다.

“이 나라의 예법은 참으로 간결하고도 실용적이군요.”

“그럴 리가 있겠소? 이곳 궁정을 찾는 도인(道人, Rishi)과 고행자(Sadhu), 이맘... 모두 궁중의 예절과 법도를 지켜야 한다오.

다만 나는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고귀함을 타고 났으며 또 어떤 고귀함을 스스로 얻었는지를 소문과 첩보로써 짐작하고 있기에, 왕자(王者) 사이의 예로 그대를 대할 뿐이라오.”

“그렇다면, 폐하의 관대함과 현명함에 저 엘리자베스 튜더는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힌두스탄(인도)의 으뜸가는 군주이자 유일한 군주가 되고자 하는, 구르카니(Gurkani, 무굴 왕조)의 악바르(Akbar)가 그대의 감사를 받아들이오.”

선황 후마윤이 허무하게 요절하면서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 악바르는, 성인이 되자마자 그간 섭정 겸 최고지휘관으로서 충실히 나라를 지켜낸 바이람 칸을 숙청하였다.

그가 모시는 어린 파디샤가 범상한 군주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실책를 제하면 대체로 현명하였던 바이람 칸은, 후마윤의 급사 이후 무너지는 제국을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구자라트의 해안까지 영향력을 뻗쳤다.

바다에서 무언가 기묘하고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풍문만으로 추론하였던 것이다.

그 덕에, 강제로 하지(메카 성지순례)를 떠나게 된 바이람 칸은, 힌두쿠시 산맥을 넘는 대신 구자라트에서 배로 성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에게 이대로 쫓겨나느니 반란이라도 일으켜보라 충동질하는 자들의 말을 모두 무시한 채, 이 기회에 그의 주군을 위하여 바깥 세상의 동향을 살피고자 하였다.

그리고 성지로 가는 길에, 바이람 칸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아니, 오히려 세계의 경이로운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깨우쳤다.

“바이람 칸이 그대를 초빙하기 위하여 막대한 선물을 그 자리에서 건네고, 또 그 곱절을 더 약속하였다지. 그러나 그대는 그 모든 대가를 거절하였다 들었소.”

“폐하께서 들으신 바가 맞습니다. 지금의 저는 회사의 사장이고, 그 회사는 다시 위에 본사를 두고 있지요. 본사 방침에 따라 거래를 제의하러 왔기에 따로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거래라?”

“디우(Diu), 그리고 고아(Goa). 지금껏 이곳 인디아의 수많은 군주와 토후들이 몇 번이고 공략하려 했지만 고배만 마셨던 포르투갈의 거점이지요. 저는 폐하께서, 때가 되면 이 두 도시를 공격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이람 칸과 악바르의 지휘 하에서, 제국은 빠르게 위대함을 되찾았고, 이제는 선대의 위업을 추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국의 지배가 실제로 미치는 영역은 힌두스탄(인도) 전체의 북쪽 일부일 뿐. 구자라트의 토후들은 그저 저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복속을 자처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디우와 고아 모두, 제국이 굳이 지금 공략할 이유가 없고, 또 그럴 여력도 쉽게는 낼 수 없는 영토였다.

허나 악바르는 일견 느닷없는 이 제안에 불쾌함도, 모욕감도 느끼지 않았다. 왕위를 포기하고 상인이 되어, 이미 절반 넘게 파인 운하의 사실상 주인으로서 두 바다를 오가는 상인들의 상전으로 군림하는 공주. 바이람 칸의 전언을 받자마자 호기심이 앞섰던 것이다.

“이 넓은 땅의 다른 군주나 토호들이라면 그대의 말을 그저 비웃을 수도, 아니면 노여워하며 당장 쫓아내라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오히려 궁금해지는구려. 거래를 원한다면, 제시하고자 하는 대가가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물론이지요.”

사막의 열풍과 바다의 태양으로 갈라지고 그을린 살갗. 여인으로서의 미색은 망가졌지만 사람으로서의 멋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 어떤 군주의 궁정에서도 돋보일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답했다.

“대가라... 예언 한 토막은 어떠신가요?”

“예언이라?”

“곧 닥쳐올 전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전쟁은 늘 우리 구르카니의 벗이었소. 아버지 후마윤의 대에도, 조부이신 위대한 바부르의 대에도.”

“그것은 고작 시골 한 구석에서의 다툼 정도로 보이게 만들, 거대한 전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시종을 시켜 지도를 펼치도록 하려 했으나, 악바르가 한 발 더 빨랐다. 바이람 칸이 천금을 주고 사들인, ‘하늘 아래 모든 것의 지도(天下全圖)’ 사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멀리 동쪽에는 거대한 나라 중국과, 그보다는 훨씬 작지만 그 힘은 무시할 수 없는 조선이 있습니다. 두 나라는 한때 종주국과 봉신국의 관계였지만, 조금씩 사이가 벌어져 몇 년 내로 전쟁을 벌이게 되겠지요.”

영어로 된 낯선 지명에 악바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선은 일본과 류큐를 끌어들여, 중국 동쪽의 바다 전역을 아우르려 하고 있지요. 이는 포르투갈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스페인의 야심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자연히 두 나라는 중국의 손을 잡고자 하겠지요.“

디우와 고아 두 거점을 차지한 포르투갈은 이미 인도 여러 토후들의 적이지만, 그뿐이었다. 넓고도 넓은 힌두스탄에서 몇몇 토후들과 척진 정도.

그러나 악바르는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처음만 하더라도 머나먼 동쪽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서쪽으로 넘어오고, 이어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그의 눈앞에 그려졌다.

“스페인은 어떻게든 채무를 청산하고 다시금 유럽의 강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지요. 신대륙의 금은으로는 단기간 안에 국채를 모두 상환할 수 없고, 저지대를 착취하는 것도 이미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제 형부 되는 필립(펠리페 2세)은, 포르투갈 왕위에 대한 계승권을 분명 가지고 있지요. 늙은 헨리(엔히크)와 어린 세바스천(세바스티앙), 두 사람만 죽으면 왕관은,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국고 열쇠는 필립의 것이 된답니다. 군주만큼이나 급사의 위험이 큰 직업이 없다는 것은, 폐하께서도 아주 잘 알고 계시겠지요.

더구나 지중해를 거치는 무역이 번영하면 번영할수록, 스페인의 적 터키는 강성해지고, 같은 기독교 세계의 일원이지만 엄연히 스페인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또한 부를 얻게 되지요.”

“그리하여 서쪽의 파디샤 술레이만도 이 전쟁에 뛰어들게 되겠지. 실로 큰 전쟁이 되겠구려.”

“이제 막 이야기를 꺼냈을 뿐입니다. 이런 기회가, 온 유럽을 전화(戰禍)가 휩쓸어 위아래를 쉽게 뒤집을 수 있게 되는 그런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데, 유럽의 그 누구도 가만 있으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포르투갈의 금은이 다 떨어지면, 에스파냐가 어디에 손을 뻗칠지는 자명하지요. 저지대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외에는 없습니다. 그 거위는 이미 오랜 세월 알을 빼앗긴 끝에, 주인의 품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요. 그런데 아차, 때마침 저지대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왕자가 해협 건너편 런던에 있군요.“

잉글랜드는 동인도회사로 인해 이미 오스만 투르크와 조선의 편에 서 있었고, 더구나 엘리자베스의 언니 메리는 펠리페를 열렬히 사랑할지언정 그의 도박과 같은 전쟁에 휘말려 함께 빚더미에 오르는 것을 원할 만큼 눈이 멀지는 않았다. 어쩌면, 어린 찰스로 말미암아 눈을 가리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일지도.

그리고 여기까지 갈등이 진전된다면 잉글랜드와 에스파냐의 혼인동맹은 이미 결혼 하나만 남긴 채 파탄 직전까지 가 있을 터. 저지대 상속권을 두고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엘리자베스쯤 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지대의 통치권이 잉글랜드로 넘어가는 것은, 그러니까 스페인이 저지대를 상실하는 것은, 그 앙숙인 프랑스에게는 아주 바람직한 결과랍니다. 일백 년간 싸웠던 두 나라가, 이제는 같은 편에 서게 되겠지요.

에스파냐와 베니스(베네치아), 프랑스가 힘을 합쳐도 겨우 터키 해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지경인데, 에스파냐 혼자서 오스만 투르크를 감당한다면 결과는 뻔하지요. 그렇기에 에스파냐는 다시 숙부의 나라, 신성로마제국에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공동의 적 오스만 투르크에 더불어 프랑스까지 동시에 견제하자면서요.”

그렇게 해도 지중해에서 에스파냐 해군이 오스만 투르크와 베네치아 연합군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완공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수에즈 운하의 이권을 노리고 있을 맘루크들을 슬슬 부추겨 반란을 선동한다는 발상을, 이미 바야돌리드의 누군가가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만간 내놓을 것이다.

“터키를 공격할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놓칠 리 없지요. 그리고 그들이 신성로마제국과 함께 헝가리 땅을 공격한다면, 모스코비(모스크바)의 존(이반)이 리보니아(現 라트비아~에스토니아 일대)를 노리고 침공할 것입니다. 흑해 북쪽의 소(小) 타타르(크림 칸국)도 볼히니아(現 우크라이나 서부~폴란드 남동부)를 그 주군인 터키를 위해 공격하겠지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곧 닥칠 이 전쟁의 구도는 이렇게 될 것이다.

한쪽에는 중국, 에스파냐, 포르투갈,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어쩌면 이집트의 맘루크들까지.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조선, 일본, ‘이스라엘’, 몽골, 오스만 투르크와 그 봉신국인 크림 칸국, 유의미한 전력은 베네치아의 함대뿐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그리고 루스 공국까지.

온 세상의 전쟁.

“이미 흐름은 정해졌습니다. 그 흐름에 함께할지, 아니면 세계의 운명이 이방인의 손 위에서 결정되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지는, 모두 폐하의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아는 임꺽정은, 닥쳐올 재앙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저의 손으로 재앙을 일으킬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불탄 들판의 재를 거름삼아 자라나는 새싹처럼, 스스로 그려지기만을 기다리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는 굳이 ‘이방인들’이라 하지 않았다. 불씨를 던질 사람은 단 하나였고, 또 그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그저 이야기 속에만 나왔던 동쪽의 머나먼 나라에서 시작할 것이라... 과연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허황되다 할 만한 예언이오.”

한참 지도를 바라보던 악바르가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보좌에서 내려와 다시 보니, 엘리자베스는 그보다 키가 머리 하나쯤 컸던 것이다.

“인정하겠소. 나조차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하게 되는구려. 반드시 그리될 것이라 자신하는 근거를 감히 물어도 되겠소?”

돌아오는 웃음은, 지금껏 이 궁정에 찾아왔던 모든 상인의 애써 꾸민 미소보다 경박하였고, 동시에 그 어떤 현인의 지긋한 미소보다도 심오하였다.

“그게 본사 방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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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절단신공’ 원조는 명말에 유행한 통속소설이며, 이는 『서유기』, 『삼국지연의』 등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사대기서’ 소설들은 본디 이야기꾼들이 공연처럼 읊거나 읽던 장편 이야기책을 소설로 옮기면서 정립되었는데, 흔히 ‘100회본 서유기’나 ‘70회본 수호전’이라 하는 것은 요즘 표현으로 하면 총 편수가 100편/70편인 장편소설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꾼들은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공연료를 더 받기 위해, 중간중간 이야기를 끊으면서 ‘다음 회차를 기대하시라!’ 같은 멘트를 날리곤 했는데, 그 흔적이 남은 것이지요.

데카르트에 이어 이번에는 홍대용이 자신의 대표작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의산문답』 역시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의무려산이 요동의 명산 중 하나로서, 요양에서 산해관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칠 수밖에 없어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무려산은 요양 일대의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 끝나고 다시 산악 지형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기 때문에, 북경으로 가는 조선 사신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꺽정이의 해적 출판선(?)이 기항한 요동 앞바다의 작은 섬들은, 흔히 해랑도(海浪島)로 통칭되는 해적과 밀무역의 소굴이었습니다. 중국과 조선 양쪽의 공권력이 거의 닿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부역과 조세를 피해 유민들이 들어가 살기도 했지요.

꺽정이가 한창 유럽을 들쑤실 때만 해도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인해 등장하지 못했던,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조부 바부르 대만 하여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를 지배하는 정도였던 무굴 제국은 악바르 치세 하에서 인도 대부분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도약하게 되었지요. 여기에는 포르투갈과 오스만 투르크에서 들여온 화약병기의 힘, 그리고 악바르 본인의 뛰어난 정치력과 지도력 등 여러 요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바르가 막 제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제국은, 선황 후마윤의 허무한 죽음과 수리(Suri) 왕조의 맹공 등으로 붕괴 직전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것을 막아낸 것이 바로 후마윤의 총신이자 악바르의 섭정이었던 바이람 칸이었지요. 그러나 곧 장성한 악바르는 바이람 칸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었고, 원 역사에서는 1560년 그에게 명예로운 은퇴와 메카로의 성지순례 중 택일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립니다. 바이람 칸은 정적들의 충동질에 넘어가 무모한 반역을 시도하였고, 끝내 실패한 뒤 메카로 강제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중에 그에게 원한을 품었던 파슈툰 부족에게 암습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친정 체제를 확립한 악바르는, 바이람 칸이 시작한 북인도 정복을 빠르게 이어나가 라지푸트, 말와, 벵골 등 북인도의 동쪽과 서쪽으로 영토를 넓힌 뒤 부유한 해안 지역인 구자라트까지 세력을 넓힙니다. 그리고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한편, 종교에 대한 (당대 기준이지만) 놀라울 만큼의 관용으로서 내치를 완성하였지요. (말년의 악바르는 자신이 섭렵한 모든 종교를 바탕으로, ‘딘 이 일라히(Din-i-Ilahi)’라는 종교와 철학이 섞인 신앙을 창시하기도 했습니다.) 작중에서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정복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만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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