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거경궁리 (5)
모든 쿠니가 다른 쿠니와 싸우는 전국(戰國, 센고쿠) 형세. 이 가운데서 유독 규슈 한 섬만이 평화로우니 이것이야말로 기이한 일이었다.
뒤집어 말해, 나머지 일본은 규슈에서 일공구민을 하든 다이묘가 해고당하든 저들 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쟁과 모략에 열중하는 다이묘들이라고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장 그들 이웃을 쳐부수는 데 조금 더 관심이 많았을 뿐.
오와리 국의 주인 오다 노부나가가 살찌운 가축을 도축하듯, 그간 열심히 그의 등 뒤에서 사람을 팔아넘기고 화포를 밀수하던 일향종을 때려잡고 그 재산을 저의 것으로 삼키면서, 도카이도(東海道, 간사이~간토 사이, 혼슈 동남부의 통칭)에는 일대 파란이 불어닥쳤다.
쌓은 업보 많은 일향종이지만, 가만 앉아 지옥 구경하고픈 생각은 없었고, 곧 오와리와 그 이웃 미카와, 옛 이마가와 영지인 토토미(遠江) 등이 모두 일향종의 잇키로 불타올랐다.
평소 승려들을 후원하며 다이쇼죠(大僧正)를 자처하던 – 물론 불심이 깊어서라기보다는, 사찰의 세력이 그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 카이의 호랑이(甲斐の虎) 다케다 신겐이 이를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리하여 전광석화 기세로 카이의 강병이 도쿠가와가 차지한 옛 이마가와 땅 토토미 국으로 밀고 들어왔다. 후방에서 일향종이 잇키를 일으키고 있기에, 오다와 도쿠가와 어느 쪽도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하리라는 계산이 그 뒤에 깔려 있었다.
헌데 방어로 일관해도 부족할 도쿠가와 군은, 외려 훨씬 수가 많은 다케다 군을 요격하겠다며 공세를 취했다.
애송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경솔한 판단을 내렸다고 단정한 신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전군을 몰아 도쿠가와 군에 역습을 가했다. 급히 합류한 오다 군까지 감안하더라도, 결코 다케다 쪽이 질 싸움은 아니었다.
병력부터 사기까지 모든 것이 불리한 듯하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러나는 대신 그대로 달려들어,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벌판에서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신겐 놈이 바보는 아니었지. 오히려 주변의 다른 머저리들보다는 훨씬 나았으니. 헌데 그 잘남 때문에 오히려 이 꼴이 나 버렸으니, 우습지 않으냐, 타케치요(竹千代, 이에야스의 아명)야?”
“예, 물론이지요.”
이미 오다와 도쿠가와 양군은, 고작 농사꾼 몇몇이 땡중들 말에 꾀여 징집을 거부한다 하여 발목 잡힐 그런 군대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신겐의 지략이 오히려 그의 눈을 가린 셈이었다.
그리하여 신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진영은 단단했고, 철포(조총)는 훨씬 많았으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자 신겐의 웅대한 꿈은 백일몽으로 그쳐버렸다.
“엥이, 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말상대로 재미가 없어. 도키치로... 아, 이제는 린죠 공인가. 여하간 그 대머리 쥐새끼가 오늘따라 떠오르는구만.”
“격조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자리가 조금 마땅치 않은 듯합니다.”
“아니, 무사가 대화를 나누기에 싸움터만한 곳이 어디 있다고?”
오늘 싸움에서는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남만포’가 제법 쏠쏠하게 활약하였다. 조선에서 구긴 체면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양, 몰래 준비해둔 콜루브리나(컬버린) 포는 첫 발에 신겐의 군막을 바로 맞혔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시신 사이에서 신겐의 일부나마 찾아보겠다고, 오다 노부나가 본인이 군막 있던 구덩이로 와서 창대로 직접 시체와 조각난 살점들을 헤집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야스쯤이나 되는 성정이니 그 옆에서 이렇게 재미없는 말동무라도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아, 그나저나 그 사카이인가 하는 녀석이 돌아왔다면서?”
“예, 다행히 배편을 잘 구해서.”
“빠르구만. 이제 막 명나라 가는 배에 올랐을 줄 알았는데.”
“저쪽에서 먼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저 남만 화포 가져온 배에 동창 사람도 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히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만나 담판을 지었다더군요.”
노부나가는 예나 지금이나 그 말투는 제멋대로요, 화제는 껑충껑충 뛰어다녀서 조금 둔한 사람은 무슨 말인지 갈피조차 잡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비록 둔해 보일지언정 결코 그 속까지 노둔하지는 않았다. 특히, 노부나가 군의 무서운 힘을 눈앞에서 본 뒤로는 더욱 그렇게 되었다.
눈앞의 오다 노부나가는 언행은 여전히 오와리 얼간이 시절 그대로지만, 그럼에도, 또는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무서운 사내.
물론 한창 날뛰고 싶은 스무 살 나이에 노부나가의 위세를 보자마자 그 힘을 깨닫고, 스스로 잘났다 날뛰기보다는 겸손한 모습으로 은인자중하기를 택하는 이에야스도 결코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당장 오늘의 싸움을 구경하면서도, 내색은 안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던가. 허나 이에야스의 그 속내 아는 이는 없었으므로, 그 비범함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올 동창 놈이면 아예 별 볼 일 없는 끄나풀이거나, 저의 이름만으로 뭔가 큼직한 결정을 내릴 권한을 맡고 온 거물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
“당초 계획한 대로 다 되었습니다.”
남은 고민은, 깃발에 쓰기에는 조금 멋이 없는 ‘동척사’와 조금 번거롭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이에서 무엇을 사호로 택할지, 그 정도에 불과했다.
애초에 이 회사의 목적은, 하야시 쇼군의 ‘민주 막부’를 무너뜨리고자 안달이 난 명국 조정으로부터 금은을 지원받는 데 있었다.
조선 경제사가 사업당에 밑천 대듯, 명의 환관들이 저들의 재산으로 동척의 분표를 사는 방식으로 구색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그 은은 일본으로 들어와 지금껏 이 땅에 없던 군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힘으로 바뀔 터였다.
농번기든 농한기든 개의치 않고 수만 규모로, 그것도 그 비싼 화포를 마음껏 놀리며 날뛰는 무적의 군대.
오다와 도쿠가와 두 집안의 군사가 도카이도를 휩쓸 수 있도록 만든, 간단하면서도 그 누구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던 그 방책을 이제는 더욱 대담하게, 더욱 크게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잘 됐네. 그러면 그렇게 은 받아서, 어디다 쓸 거냐? 딱히 당장 쓸 곳 없으면 우리 쪽에 빌려나 주지그래?”
“물론이지요.”
의외로 순순하게 대답이 나왔다.
“회사의 명분이 있으니, 어쨌든 다케다에 이어 호죠 씨까지 무너뜨리고 동쪽으로 진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카이 국에는 좋은 금광이 많이 있지요. 평정을 끝낸 뒤 갚으시면 됩니다.”
“알겠다. 우리 사이를 생각하면, 내가 가운데서 좀 많이 떼먹어도 뭐라고는 못 하겠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이에야스였지만, 단 하나 저의 돈 나가는 일에는 여전히 그 인색함을 버리지 못하였다. 잠시나마 그 미간 찡그려지는 것을 본 노부나가가 깔깔 웃었다.
“농담이었다! 농담! 그래, 돈 얘기 나오니까 이제 좀 놀리는 맛이 나는군그래.”
“흠흠, 우리 두 가문은 함께 가는 사이지요.”
“그래.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때마침 멀리서 신겐의 유명한 군기(軍旗) 조각을 찾아낸 이가 있어, 저의 주군 노부나가를 불렀다.
“여하간 수고했다. 나는 저쪽 가서 찾아볼 테니, 너도 신(信)이든 겐(玄)이든, 신겐 놈 몸뚱아리의 조각이라도 찾아내면 알려다오.”
이에야스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군기 찾아낸 쪽으로 향했다. 『손자병법』 즐겨 읽던 신겐의 군영에 늘 나부끼던,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疾如風徐如林)’ 깃발이 찢어진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흥, 풍림화산(風林火山)이 다 무엇이냐. 오늘날의 전쟁이란 금금은은(金金銀銀)이지. 웬 일로 귤대가리 네놈이 잘 찾았구나.”
깃발을 찾은 저의 수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에게 치하 아닌 치하를 하는 노부나가였다.
미츠히데는 본래 미노(美濃) 국의 사이토 도산(齋藤道三)의 처조카이자 가신이었다. 도산이 그 아들에게 살해당한 뒤, 주군의 원수를 갚아줄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도산의 사위 노부나가를 찾아와 의탁하였는데, 노부나가가 너무나 싱겁게 미노 땅을 점령해 버리면서 저도 어쩌다 노부나가의 수하로 굳어지게 되었다.
“주군,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아케치 미츠히데는 저의 거만하고 방약무인한 주군과 독대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양 간언하였다.
“이미 군대를 움직이느라 사카이 상인들에게 빚을 많이 지셨지 않습니까. 뜻하지 않게 듣기로는, 이제 도쿠가와 가에서도 자금을 빌리시겠다고 하였는데... 미카와노카미(이에야스)는 보기보다 훨씬 심계가 깊다고들 합니다.”
“야, 귤대가리야. 네놈은 머릿속도 귤로 되어 있냐?”
일견 노둔해 보일지언정, 곱절은 늙은 어지간한 무장들보다 더 노회하고 음흉할지도 모르는 도쿠가와 놈이다. 딴에는 사람 잘 본다고 자부하는 듯한 미츠히데보다도 그 점을 잘 아는 노부나가였다.
당장 저 동척사 세우는 발상만 해도 그랬다. 오다의 이름에 비해 도쿠가와든 마츠다이라(松平, 이에야스의 본래 가문명)든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용하여 남들의 경계를 피하고, 마치 순수하게 간토의 평야를 개척하겠다는 명분으로 자금을 모은다.
천하의 형세가 점차 명 조정과 조선 민주당 사이의 한판 대결을 향해 움직이리라는 것을 읽고, 그에 맞추어 저의 이득 취할 방편을 재빨리 마련하고 또 실행하였다.
말하기는 오다 저에게 언제든 자금 빌려주겠노라 하였지만, 그 마음은 결코 오다 저를 위해주려는 것은 아닐 테다.
“따서 갚으면 그만이잖아. 그리고 딴 마음 품으려 해도 도저히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도록, 눈에 거슬리는 놈을 미리 다 때려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인생 오십년, 천하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으니.
한 사람의 힘으로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난세. 이런 세상이 또 언제 오겠는가. 지옥행을 자처하며 칼날 위를 걸을지언정, 결코 뒤로 물러나지는 않으리라.
뭔가 진중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연신 ‘귤대가리’ 미츠히데를 타박하는 듯한 노부나가를 멀찍이서 바라보던 이에야스는, 곧 저를 근시(近侍)하던 나이 지긋한 무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흔히 볼 수 있는 초로의 무사 –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마저 꾸민 것이었으니, 바로 주군의 고갯짓에 날선 눈빛으로 답하는 이가(伊賀)의 조닌(上忍, 닌자 조직의 수장) 핫토리 한조(服部半蔵)였다.
“모리 군은 상락을 운운하더군요.”
“벌써 그리 되었는가.”
“자유민주당과 은광의 힘을 합치면, 나라의 주인이 무사에서 상인으로 바뀐다 한들 오히려 더 이롭다. 그런 판단인 듯합니다. 적어도 조슈(長州)의 상인들은 저들 주군이 그리 마음 정했노라 떠들곤 합니다.”
딱히 의도조차 숨기지 않는다. 넌지시 세간에 저의 뜻을 밝히며 명분을 모을 심산이리라.
이미 모리 씨의 우군이 될 무가는 그 주변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거세지는 그 가문의 위세 때문에, 경계만 살 뿐.
그러니, 무가 대신 다른 이들을 우군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 테다.
아시가루의 대열에도 들지 못하는 어리석은 농민도, 전국 제일의 무사조차 바로 쏘아죽이는 철포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이제 막 들이닥쳐, 어지간한 무장들도 아직 알지 못하는 지금의 세상이다.
그러니, 어차피 한데 모으려야 모을 수 없는 무가 따위는 버려두고, 백성 – 말이 백성이지, 실제로는그저 상인과 몇몇 사찰들-의 힘을 모은다. ‘하야시 세법’에 백성의 뜻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난세를 멈추고 화평을 가져온다는 명분으로 상락, 조정과 막부를 손에 넣고 나라의 법을 새롭게 짓는다.
그러한 모습이 이에야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마노카미(右馬頭, 모리 모토나리) 공이 아무리 효웅(梟雄)이라 불릴지라도, 그러한 책략을 스스로 낼 수는 없었을 터.”
“히라도에 근래 발을 들였던 상인들 입에서는 오로지 린죠 영수의 이름만 오르내리더군요.”
“그렇군. 잘 알겠다.”
미츠히데가 또 눈치 없이 주군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반들반들한 그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고는 어딘가로 후다닥 달려갔다. 노부나가가 이쪽으로 돌아오려는 참이니, 이제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곧 명국에서 은자가 전해질 것입니다. 키요스(오다 가의 거성居城)의 첩자들에게 감추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렇다.”
마치 불꽃처럼, 끝없이 정복하고 정복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게 된 오다 군이다. 지금껏 그 점을 간파하고 오다 군을 가볍게 여겼던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모두 그 잠깐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기에 여태껏 그 약점이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노부나가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이에야스 쪽에서는 그 위태로움을 능히 간파할 수 있었다.
핫토리 한조 또한 그런 주군의 생각을 조금은 읽고서 굳이 방침을 확인하려 한 것일 테다.
“애초에 빚을 떼일 일이 없도록 하면 그만이다. 미리 대비만 해 놓으면, 그 뒤에는 기다리는 일 뿐이겠지.”
설령 노부나가가 끝내 모리를 앞에 내세운 ‘린죠 군’ 앞에 무너진다 한들, 동척은 그대로 남는다. 명 조정의 재물을 받아 밑천으로 삼는다 한들, 이미 간토 개간에 흩뿌린 은을 다시 빼앗을 수는 없다.
일본 땅에서 벌어질, 새 것 같은 옛 세상과, 진실로 새 것인 세상 사이의 합전(合戰). 그곳에서 오다의 동군(東軍)과 린죠의 서군(西軍) 중 어느 쪽이 이긴다 한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승자에 버금가는 자리를 얻고자 하였다.
천하가 저의 것이 될 수 없다면, 저의 손이 닿을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아직 마포 쪽의 집값은 사대문안보다 헐했기에, 이이는 굳이 다른 이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안사람 일터인 임천당 근방에 제법 넓은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작 그래놓고 저는 삼락서원이든 사업당이든, 아니면 어머니 신씨의 집이든 다른 곳을 전전하니, 계월당 상씨의 팔자에도 없는 독수공방은 영영 이어질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절치부심하던 상씨가 끝내 독하게 마음을 먹어, 시어머니 신씨의 응원 받으며 비상한 작정을 하였는데, 그 효험이 있어 몇 달 뒤에 비로소 태기(胎氣)가 드러났다.
“흑흑, 정말 어려웠어요.”
밤 깊어지고 이야기타래도 술술 풀리니, 끝내 마음이 격해져 류큐 말과 조선 말 섞어가며 울음 터뜨리는 쇼 잇시였다.
서시(西施)가 찾아와도 저의 품에 안기보다는 그가 따르는 범려(范蠡) 선생 계신 곳을 물을 사람이 바로 명희의 동생 같은 오라버니 이이였다. 잇시의 고초 능히 짐작할 수 있던 명희는, 그를 불여우 보듯 본 것이 언제였냐는 듯 끌어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직 득남을 한 것도 아니요 그저 회임만 했을 뿐인데, 어찌 이리도 거한 잔칫상을 벌이는가. 신씨 부인과 그 일가, 그리고 꺽정이와 이지함 정도가 아니라면 누구도 쉽게 짐작은 못할 테다.
“그나저나 사형네 제자는 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소. 잔칫상 함께 받아야 할 놈이 또 어디로 사라졌는지.”
“방금 전까지도 탁오 그이와 열심히 이번 거경궁리의 성과를 두고 논쟁하고 있더라.”
꺽정이와 이지함 두 사람도 옆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남녀가 섞인 자리에서 몇몇은 술까지 마시고 있으니 이 어찌 반가의 법도에 맞다 하겠느냐만, 이 자리에 그런 예법을 따질 사람은 없었고, 설령 주변에 있다 한들 꺽정이가 무섭고, 또 나이 무색하게 여전히 기세 엄청난 신씨 부인이 무서워 함구를 할 것이었다.
“더 얘기할 게 있소? 우리 퇴계 어르신이 쓴 그 책 내용이 미리 증명되었고, 북경의 ‘장꺽정’ 형은 또 한 번 헛물을 켰고. 자유민주당 분표 사러 온 이들이 강남 돌아가서 열심히 떠들고 있다고도 하고.”
꺽정이 말마따나, 이번 일은 중간에 다소 굴곡은 있었지만 결국 맨 처음 떠올린 대로 끝나가는 듯했다. 『의산문답』에 대응하고자 유왕을 내세워 대일통 운운하던 장거정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것이요, 일본을 끌어들여 명에 대항하는 우군으로 삼는다는 계책도 그 첫 발을 제대로 떼었으므로.
“그런데 우리 사이 얘기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벌인 일이 꼭 거경궁리 본 뜻에 맞지는 않았잖느냐.”
“그건 그렇지.”
꼭 마츠라 타카노부가 허튼짓을 하려 하지 않았더라도. 규슈의 누군가는 손 비틀려 저의 재물을 ‘기꺼이’ 시장에 풀어야 했을 터였다.
“그것 또한 하나의 격물 아니겠느냐, 그것을 두고 말다툼 벌이는 중이더라.”
“그게 무슨 뜻이오?”
“결국 마츠라 그놈을 상인들이 몰아냈지 않으냐. 따지고 보면 히데요시 녀석이 힘쓴 덕이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꺽정이 네가 히라도 상인들이 마음껏 돈벌이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거기에 제자 녀석의 의권 논변까지 흘러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렇다면 꺽정이 네가 굳이 격물 운운하지 않았더라도 히라도 땅에서 이번과 같은 격변이 일어났을 것인가. 탁오 그이는 그렇다고 주장하고, 율곡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보는 듯하더라.”
“하여간 배운 사람들 생각하는 건 통 이해할 수가 없소. 저의 각시 이렇게 내버려 두면서까지 골몰할 일인가.”
꺽정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너무하기는 했다.
“제자 녀석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슬슬 나가서 데려오기는 해야겠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이이의 마음도 십분 이해되기는 했고, 또 그저 죽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뜻으로 오늘과 내일의 일을 고민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다.
천원지방의 옳고 그름을 헤아리고자 먼 바다까지 배 타고 나아갔던 그때로부터 어언 십 년.
조금씩 이 나라의 학풍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성현의 말씀은 오직 서문에 나올 뿐, 그 뒤로는 이용후생의 논변만을 담은 이황의 저작만 해도 그러하였다.
그렇게 다시 한 세대가 지나게 되면, 그때의 학풍은 이전과 뚜렷이 구분되어, 별개의 학(學)을 칭하고도 남게 되리라.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 정해진 도리 없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의 이치를 놓치지 않고 다루며, 나아가 그 세상을 능히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그러한 학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그러니 너도 숙헌(이이) 녀석이 사람 마음 모른다고 못마땅히 여기지만은 말거라. 지금껏 안뜰 마당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 그 문 밖에도 세상 있음을 깨달았다면, 어디 안뜰 한 구석의 기화요초가 눈에 들어올까.”
“글쎄. 그 기화요초가 총 들고 안방으로 지금 당장 아니 들어오면 그 다리몽둥이를 부수겠다고 겁박한다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지도.”
순간 꺽정이 안사람 검손당이 조총 쏘는 것이 떠오른 이지함이 움찔 하였다.
“거 참,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마시오. 나랑 안사람 사이는 아직도 깨가 쏟아져서 주워담기만 해도 몇 섬은 능히 채울 수 있을 정도니까.”
“잡혀 사는 사내 치고 스스로 잡혀 산다고 인정하는 이는 별로 없던데.”
“여하간 내 얘기는 아니오. 지금 안사람이랑 상씨 부인 둘이서 수군대는 걸 보니까, 밤골 도령 앞날이 썩 밝을 것 같지는 않은데.”
부부지간에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말로 그때 명희는 잇시에게 무사히 해산한 다음에 언제고 마음 동하면 흑의영에 총 쏘는 법 배우러 오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신씨 부인이 조금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하였으나, 재빨리 명희가 저의 어머니 칼춤 솜씨를 입에 담으니 그 말문에 빗장이 도로 걸렸다.)
“엥?”
“무엇이냐?”
그런데 이이 데리러 마저 걸어가던 중, 담장 너머를 무심결에 바라본 꺽정이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시오. 저기 저쪽, 저자 맞은편 보이시오?”
“너는 보일지 몰라도 나는 아니 보인다.”
어지간한 조선 사람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꺽정이 눈에는, 멀리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놈들 몇몇이 저자에 보였다.
“딱 보아도 복식이 조선 사람은 아니오.”
저쪽에서도 꺽정이 머리통이 담장 위로 올라온 것을 보았는지, 손가락질하며 저들끼리 수군대었다.
“동창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아, 실사구시! 그렇지.”
“실사구시가 여기서 왜 나오느냐?”
“여기서 저놈들 정체 두고 공리공론(空理空論) 나누느니, 실제로 잡아와서는 직접 족치면서 대질하는 쪽이 낫지 않겠소? 내 얼른 다녀올 테니 사형은 제자 놈 마저 잡으러 가시오.”
그러고서는 이지함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그 유명한 ‘도술’을 써서, 훌쩍 담을 뛰어넘는 꺽정이였다.
그리고 또 한 차례의 ‘격물’을 통해 밝혀진 진실은 꺽정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저희는 그저, 선생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댁으로 찾아갔더니 아니 계신다 하기에...”
“선생? 무슨 선생을 찾느냐?”
“바로 임 선생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붙잡힌 놈들은 곧장 어색한 조선말로 저들 정체를 술술 실토하였다. 탄압을 피해 투메드부의 알탄 칸에게 의탁하고 있던 백련교(白蓮敎) 사람이라고 밝히고서는, 대뜸 꺽정이 저를 선생이라 불러대는 것이었다.
“저희는 이 하계에서 진공가향(眞空家鄕)을 이루는 방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무생노모(無生老母) 모시는 데만 열중하여 정작 이 하계에 대해서는 너무나 몰랐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무릇 격물치지로써 밝혀진 이치는, 조건만 같다면 세상 어디서든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구주(규슈) 격물로, 관(官)을 쫓아내고 백성만 남기면 오히려 모두에게 이롭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던가?
“... 하여, 곧 중원의 백성들에게도 이 이치를 베풀고자 저희 교인들은 열심히 공모하고 있습니다. 이를 선생께 알려드리고, 또 삼가 도움을 청하고자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
“아니, 대체 무슨 공모를 하고 있기에 그러느냐?”
기가 막히는 진기한 경험 – 꺽정이는 주로 남의 기를 막히게 하는 쪽이어지, 당하는 쪽은 아니었다 – 을 한 꺽정이가 캐물었다.
“그야...”
이미 나라를 한 번 뒤엎고 세운 적 있는 백련교였다. 한 번 더 못할 것 무엇이 있으랴?
꺽정이에게 밀정들이 붙잡힌 지금, 이미 요양성에 숨어든 백련교 교인들은 피폐한 요동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몰래 성을 뒤집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 *** ---
원 역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와리와 토토미 사이 미카와에서 가장 유력하던 마츠다이라 가문의 적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마츠다이라 가는 본디 떠돌이 승려가 선조라는 말이 돌 만큼 한미하였고, 고작해야 이에야스의 조부 대에 미카와를 통일하기 직전까지 겨우 갔을 뿐이었지요. 그마저도 오와리의 오다와 토토미의 이마가와 사이에 끼어 양쪽에서 새우 등 터지는 신세였고, 이에야스 역시 소싯적부터 인질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마가와 쪽으로 인질로 가던 중 배신당해 반대편 오다 가에 팔려가다시피 하는 – 이때 ‘오와리의 얼간이’ 노부나가와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 기구한 유년기를 보냈지요.
그러나 이마가와 가문이 오케하자마 전투로 몰락하면서, 이에야스도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재빨리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은 이에야스는, 미카와 국을 마침내 통일하고 1566년 조정으로부터 미카와노카미 벼슬을 받았으며 – 이때 신분세탁 차원에서 성을 도쿠가와로 바꿨습니다 – 이마가와의 옛 영지인 토토미까지 점령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한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은 주변의 경계를 불러 일으켰고 (제1차 노부나가 포위망) 이에 호응한 다케다 신겐이 토토미를 침공하면서 이에야스는 생애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젊은 날의 객기로 ‘카이의 호랑이’를 더 적은 병력으로 막아선 이에야스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일생일대의 패배를 겪게 됩니다. 이후 신겐 본인이 진중에서 허무하게 병사하지 않았더라면 도쿠가와와 오다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었지요. 작중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임꺽정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훨씬 빠르게 세력을 키우면서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전개와 결과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유년기를 겪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 원래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데서는 겉치레든 실제로든 사람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에야스는 유독 재물에 있어서는 인색한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튀김 요리를 매우 좋아했던 것 하나를 제외하면 식습관에서도 사치를 부리지 않았고, 측간에서 나오던 길에 옆구리에 낀 휴지가 바람에 날려가자 직접 달려가 주웠다는 등 이와 관련된 일화도 많이 전합니다.
원 역사에서도 오다 노부나가는 상공업자에게 면허증을 판매하여 경제를 진흥하는 한편, 강력한 행정 체제를 구축하여 강력한 상비군을 편성했습니다. 의외로 전국시대 무장치고 전술적 역량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던 오다 노부나가가 마침내 전국시대를 끝내는 길을 열 수 있던 것은, 이처럼 시대를 읽고 그 첨단에 서는 그 안목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는, 대규모 잇코잇키부터 마침내 혼노지의 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노부나가 본인의 파멸로 이어졌지만, 그 유산을 계승한 히데요시가 마침내 일본을 통일할 수 있게끔 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오다-도쿠가와 연합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갔던 다케다 신겐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본 전국시대 무장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뛰어난 전략안과 카리스마로 권력을 장악했고, 권모술수와 배신을 통해 세력을 넓혀나갔지만, 오다 노부나가와 달리 그 한계가 명백했습니다. 신겐 개인의 위용에 가신들이 따르는 느슨한 체제로 이루어졌던 다케다 가가, 신겐 사후 허무하게 붕괴하고 만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요.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패배시킨 상대가 바로 시대의 최종 승리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였기 때문에, 에도 막부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그 평가도 꾸준히 상승했고, 오늘날 일본에서도 ‘전국 3영걸’ 바로 다음으로 유명한 전국시대 무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지요.
일본 전국시대에 무사들이 자신의 신분과 무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던 깃발의 일종인 우마지루시(馬印)는, 보통 세로로 높고 가로로 좁은 형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정사각형이나 그에 가까운 형태였던 조선의 깃발과는 달리 많은 글자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명한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浄土)’ 깃발이나, 후대에 ‘풍림화산’ 기로 알려진 다케다 신겐의 ‘질여풍 서여림 (...) (疾如風 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깃발 등이 그 예지요.
송대에 미륵신앙과 정토종 불교 등이 혼합되어 창시된 백련교는, 이후 천여 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중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점조직 형태의 비밀결사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때가 되면 폭발적으로 그 세를 드러내곤 했지요. 잘 알려진 것처럼 홍건적의 난이 벌어질 때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주원장이 한때 몸담았던 곽자흥의 군벌도 그 시작은 백련교의 별종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이 중원을 통일한 이후 다시 백련교는 탄압을 받게 되었고, 지하로 들어가 때를 기다렸지요.
이후 16세기에 접어들어 명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자, 다시 백련교는 모습을 드러내어 북중국 곳곳에서 난을 일으킵니다. 심지어 북경 바로 남쪽인 보정(保定)까지 그 세력이 뻗어, 북경에 머물던 조선 사신들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갈 정도였지요. 그리고 이후 몇몇은 몽골로 집단이주해, 알탄 칸의 몽골 부흥에 한몫을 하게 됩니다. 이후 명이 무너진 뒤 백련교는 한족의 비밀결사와도 결합하여 그 세를 음지에서 불려나갔고, 마침내 18세기 말 백련교도의 난으로 불리는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청의 몰락을 알리게 됩니다. 심지어 몇몇은 자금성에 침투하여 황제를 암살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