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천하가 어지러운 까닭 (3)
본디 형주 강릉(江陵) 사람인 장거정은, 한때 조선국 서생 이이에게, 중화란 허상이며 오직 조선이 있어 천조를 받들기에 비로소 중화가 될 수 있다는 폭언을 들은 바 있었다.
그때 이르기를, 화이(華夷)의 구분이란 별것 없으니 따지고 보면 장거정 그도 초나라 오랑캐 출신 아니냐 하였던가.
“그러고 보면 이사(李斯)도 초나라 사람이었지요.”
조선의 도읍 한양, 민호의 수는 고작해야 중원의 여느 부(府)에 비할 만하지만, 오가는 은자와 물산의 값은 감히 남경 응천부를 넘보게 된, 도시 중의 졸부.
그곳에 잡입하여 정여립이라는 젊은 서생을 만나고 온 동창 간자들의 보고를 받아본 장거정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이사라면 진시황의 재상 아니었소? 갑자기 그자를 왜 거론하는 것이오?”
황태자 없는 황실의 친왕(親王)으로서, 그리고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를 사람으로서 국사를 논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유왕 주재기가 물었다.
“이사는 본디 초나라 상채(上蔡)의 하리(下吏, 하급 관리)로, 반드시 출세할 마음을 먹고, 직하(稷下)의 좨주(祭酒)였던 순경(荀卿, 순자)에게 찾아가 배웠지요.”
장거정이 유왕의 왕부(王府, 친왕의 처소)에 찾아와, 장차 더불어 대업을 논하고자 하니 모시는 것을 허하여 달라 한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그 이후로 종종 이렇게 장거정은 들이닥쳐, 서책 한 뭉텅이를 던져주며 치세의 요결에 대해 가르치곤 하였다.
주재기는 그 짧은 배움으로도, 장거정이 말하는 그 요결이 여느 경전에 나오는 것과도 같지 않음을 능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장거정이 저의 왕부를 드나들면서 굳이 몰래 오가는 시늉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을 뿐 이미 권신 중의 권신이었고, 당장 그가 자금성에 계신 부황께 독을 먹이려 한다면 북경의 모든 눈과 귀는 장거정을 위하여 감기고 닫힐 것이었다.
“그는 순경이 때로는 권도(權道)를 말하면서도 반드시 인의(仁義)로 돌아오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고, 하루는 스승에게 인의 대신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오히려 진(秦)과 같이 부강해지지 않겠느냐며 날선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순경은 답했지요. 참으로 큰 편의가 바로 인의임을 알지 못하니, 근본을 구하지 않고 말단부터 찾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라 하였습니다 (此世之所以亂也).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감히 여쭈어도 될지요?”
“경의 덕에 사서를 재차 읽으며 그 뜻을 새기고 있소이다. 이사는 그 뒤로 진나라로 가서 벼슬을 얻겠노라 밝히고 떠나가지 않았소? 그리고 끝내 호해(胡亥)의 대에 환관 조고(趙高)의 모함을 당해 요참을 당하였지.”
유왕 주재기는 뜻이 굳지 못하고, 여색을 밝히며, 귀 또한 얇았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하고, 저의 포악하고 어리석은 아우보다는 그나마 자신이 용상에 오르는 것이 옳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재기에게 그 이치를 알려준 자, 아니, 애초에 그와 더불어 작금의 천조 대명이 처한 위태로움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자는 장거정 한 사람뿐이었다.
“전하께서 알고 계시는 대로입니다. 그리고 이사가 살아서 진(秦)을 섬기는 동안, 그 나라는 나머지 육국(六國)을 모두 아울렀고, 천하는 진을 미워하였으나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조고가 없었더라면, 진승과 오광의 무리가 난을 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사가 순경의 말대로 인의를 크나큰 편의로 삼았다면, 진의 대업은 더 길게 이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이 너무나 오래 걸려, 육국이 합종(合縱)을 다시 이루고 함곡관을 넘어 함양까지 밀고 들어왔을 지도 모르지요.
그가 작은 편의만을 알고, 훗날의 큰 이익 대신 목전의 작은 이익만을 탐하였기에, 오히려 진은 육국을 모두 억누르고 마침내 전국에 군현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주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아직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장거정 또한 자신이 전부 이해하리라 믿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리 앞의 큰 이익 대신 백리 앞의 작은 이익을 택하는 것이 반드시 어리석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미리 취한 작은 이익으로 더욱 큰 무언가를 취할 수만 있다면요. 그리고 신이 생각건대 이 대동의 설 또한 그렇습니다.”
장거정은 유왕 앞에서 거침없이 칭신(稱臣)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를 거북스럽게 여기던 유왕이었지만, 자신 외에는 자금성의 주인이 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킨 뒤로는 애써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대동의 설의 요체는, 나라의 ‘자본’ – 장거정은 유독 께름칙한 말투로 이 낱말을 입에 올렸다 – 과 재화를 산출하는 모든 수단을 오직 나라의 것으로 삼고, 이로써 국부(國富)를 늘려나가며 온 백성의 복락(福樂) 늘리기를 꾀한다는 것입니다.
듣기에는 아주 좋으나,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울 것이요, 이미 비옥한 토지를 저의 것으로 삼고 온갖 상행(商行)에 손을 대고 있는 향신들 또한 크게 반발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설에서 가감하여 경장을 이어나갈 대강으로 삼게 된다면, 사인(士人)들 중 나라를 적으로 여기는 자들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오?”
한양에서 정여립을 찾아낸 동창의 간자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연소한 이 서생에게 아첨하며, 그 대동의 설과 그에 얽힌 모든 사정을 듣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아첨이 오히려 정여립의 반골 기질을 북돋았으므로, 그는 자신의 발상뿐 아니라 율곡 선생이 찾아와 거침없이 저의 주장 터무니없다고 반론한 바까지 남김없이 전해주었다. 누군가 자신의 설을 가져가 스스로 또는 남을 현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정여립이 그렇게 토설하지 않았더라도, 장거정은 능히 민주당의 심계를 간파할 수 있었을 터였다. 딴에는, 장거정 그가 또 한 번 헛발을 짚게 만들어 곤경에 빠뜨릴 심산이었을 터. 그러나 그러한 술수에 놀아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명 천조의 내각수보로서 어찌 당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저쪽의 뜻대로 놀아나주는 쪽이 정답이라고 장거정은 판단하였다.
“하지만 적이 뚜렷해지는 만큼 아(我) 또한 선명해질 것입니다. 지금껏 나라에 어찌하여 충성을 바쳐야 하는지, 우리 중화 대명이 어찌하여 위대하며, 중화의 위대함이 어찌 그들 하나하나의 삶을 살찌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던 이들이, 비로소 열렬히 조정의 정령(政令)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재가 그대에 비할 바 되지 못하여, 그 이치를 잘 알지 못하겠소.”
“전하께서는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남을 부리는 것으로도 족합니다. 북신(北辰, 북극성)이 자미원(紫微垣)을 나서지 않아도 능히 모든 별의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재상부터 일개 농사꾼까지, 모두가 황명(皇明)의 마땅한 위엄을 위할 뿐입니다.”
주재기의 그런 심란한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장거정은 저의 계책을 늘어놓았다.
“바로 은입니다. 이미 일조편법으로 나라의 모든 것이 은에 얽매이게 되었으니, 이 은을 관이 틀어쥐게 되면 비로소 온 나라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이로써 나라를 하나로 묶고, 그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거정이 결코 자신에게 충성하여 저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을 유왕 주재기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충심이란, 스스로 마음 속에서 빚어낸 중화 대명을 향한 것이요, 그곳으로 향하는 나라의 두 다리를 저의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사리사욕이었다.
주재기 자신이 그 대명의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느냐, 아니면 바닥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느냐는 장거정에게 그리 중하지 않았다. 그저 맨 위에서 말없이 빛을 발할 불꽃 하나면 족하였으므로.
그리고 주재기는 무엇보다 살고 싶었다. 이왕이면 저 높은 곳에서, 호사를 누리면서, 또 비록 남의 것을 대신 누리는 것일지언정 온 천하의 주인이라는 그 허명(虛名)이 주는 기쁨과 뿌듯함을 누리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므로 주재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비록 좋은 아비는 못 될지언정 저에게 이 세상 빛을 보게 해준 아버지 주후총(가정제)의 명이 훨씬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정여립이 못다 한 말을 유왕의 이름 빌린 장거정이 열심히 떠들었으므로, 화북과 강남이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반면 조선에는 그 소식이 전해져도 별 반향이 없었는데, 심지어 따지고 보면 저의 발상을 도둑맞은 셈이 된 정여립조차 무덤덤하였다.
‘설령 당수 말씀대로 장 수보가 저의 궁리한 바를 훔쳤다 한들, 그 밝힌 뜻을 보면 본말(本末)이 완전히 뒤집혀 있습니다. 고작 쭉정이와 겨를 훔쳐간 것을 두고 어찌 아쉬워하겠습니까?’
장거정이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논설은, 그 이름부터 대동론 대신 대일통을 내세우고 있었다. 즉 밖으로는 온 중화가 하나되어 지구 전역을 아우르고, 안으로는 대명 안의 모든 논밭과 상행(商行), 공창(工廠)을 하나로 묶어 중화의 부(富)를 크게 늘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백성의 것을 하나로 모아 다시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준다느니 하는 것은 없었으므로, 대동(大同)의 알맹이는 빠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 대신 오직 중화의 위대함을 운운하는 대목만 가득하였다. 그러니 정여립이든 나머지 조선이든 시큰둥할 수밖에.
“탁오 그이는 그것만 해도 제법 중화의 백성들에게는 솔깃할 것이라 하더군요.”
부군과 함께 말 타고 성저(城底) 저자를 거닐던 중 명희가 말했다.
명희는 꺽정이의 한혈마보다 한참 작은, 양순한 과하마(조랑말)를 타고 있었는데, 지아비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다는 점, 그리고 얼굴에 너울 드리우고 있다는 점. 이렇게 두 가지를 제하면 지금 두 사람 모습에서 예법에 맞는 것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감히 어찌 계집이’ 외칠 법한 고루한 선비조차,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를 끝내 짐작하지 못하고 기함하곤 하였다. 그것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요, 또 명희는 지아비 성정에 물들었는지, 어머니와 오라버니 성품을 물려받았는지 그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명나라 백성들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치들이라고 딱히 우리네 백성들보다 물정에 밝거나 하지는 않을 듯한데. 게다가 우리는 국문이라도 있지만 거기는 문자라면 진서밖에 없지 않소?”
“그렇기는 하지만, 대신 그쪽에는 동창이 있지요. 그리고 일자무식인 백성이라 할지라도 은이 귀하다는 것은 다들 알지 않던가요.”
이미 정덕제 시절부터 동창 사람들이 너무나 번잡하게 북경을 오가는 바람에 일반 백성들은 함부로 성문을 지날 엄두조차 못 낸다는 말이 나올 만큼, 동창은 그 위세만큼이나 수많은 끄나풀들을 부리고 있었다.
물론 그 덩치에 비해 실속은 없었고, 그저 동창의 이름을 내세워 환관과 그들에게 아첨하는 무리들이 짭짤한 이득을 취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정도였지만, 장거정과 풍보가 손을 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당장 탁오 그이가 얼마 전에 남경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아, 맞다. 그랬지.”
문자를 알기는커녕 그들의 마을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대일통이 대관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고, 나라의 전토(田土)를 장차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을 잡세로 괴롭히고, 일조편법 이후에는 은자의 값어치를 가지고 농간 부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노야(官老爺)들이 나타나서는,
‘너희가 조세를 낼 때 사들일 은을, 장차 관에서 팔 것이다. 그 값은 미리 정하여 변함이 없을 것이며, 너희가 밭을 일구어 정해진 양의 곡식을 거두기만 한다면 언제든 관아에서 은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유왕 전하와 내각수보 장 대인, 그리고 한없는 황은으로 인한 것임을 너희는 잊지 말지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우리 중화 대명이 실로 위대하여 천하의 모든 금은이 우리 대명으로 모이기 때문임을 기억할지어다.’
하였던 것이다.
곡식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곡식을 은으로 바꾸는 일을 관이 떠맡고, 면화 농사를 주로 하는 곳에서는 도시에서 나오는 상인 대신 관이 그것을 사들이겠노라 하였다.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은만 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장거정은 그 은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일본 구주에서의 격물과 조선국 퇴계 선생의 논변을 가지고 조세의 제도에 대해 툴툴대던 향신들. 그들과 어울려, 조선이나 일본에서처럼 뭔가 저들의 목소리 내보고자 하던 상인들.
바로 관의 새 정책으로 인해 또 한 번 큰 손해를 보게 된 자들. 그들이 입을 모아 장 수보가 국정을 제멋대로 한다 떠들 때면, 어디선가 동창이 들이닥쳐 그들에게 죄를 씌우고 그들의 상행과 곳간을 빼앗으며, 숨겨둔 은을 어디론가 가져가곤 하였던 것이다.
아직은 몇몇 큰 도시와 그 주변에서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지만, 이대로라면 곧 나라의 정책으로 못박힐 듯하였다. 다만 황상의 병세가 더욱 위중해졌기에, 아직은 사세의 추이를 지켜보며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뿐.
그사이 내각의 학사 해서가 건저(建儲)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되는 일까지 있었다. (해서를 어떻게든 구명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몇몇 젊은이들의 물음에, 장거정은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두고 볼 일’이라며 일축하였다.)
“정말로 장꺽정 형이 그렇게 구멍 송송 난 논변을 좋다고 덥썩 집어먹을 줄은 몰랐소. 사형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이야.”
명이라는 거인을 상대로 하나씩 착착 포석이 벌어지고 있는 이 바둑판 위에 미리 흑돌 몇 개를 깔아놓고자, 이탁오는 강남으로 향하였다. 이처럼 빠르게 진행될 줄 몰랐을 뿐, 언제고 벌어질 것임은 알았던 일이었다.
“오라버니 말씀마따나, 우리 당만 삼키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요.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만약 이대로 장거정이 대동 없는 대동론을 밀어붙인다면, 몇 년 안으로 참다 못한 향신과 상인들의 반란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말인즉슨, 몇 년 동안은 불만만 조용히 끓어오를 것이요, 그사이 나라의 백성들을 충직한 신하이자 ‘개혁’의 우군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뜻.
언제고 은이 부족해지거나 동나버리고, 그토록 강조하던 중화의 위신마저 땅에 떨어지게 된다면, 장거정 또한 그대로 추락하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었다. 민주당만 사라지면 반기를 들고자 하는 이들도 구심점을 찾지 못할 테요, 천조 대명을 뜯어고치지 위해 필요한 은의 흐름을 가로막을 자 역시 사라질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장거정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임꺽정 한 사람을 꺾지 못한다면 그간의 모든 개혁도, 대일통의 꿈도 그대로 수포로 화한다는 뜻. 올바른 세상을 향한 장거정의 욕심이 그런 도박을 감수하게 할 만큼 크거나, 아니면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확신이 그만큼 단단한 것일 테다.
“딱 도적놈 심보지. 모로 가도 서울 대감댁만 털면 그만이라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낭군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선비야말로 큰 도적이라는 게 내 지론이었소. 내 스승 화담 선생조차 극찬을 해주신, 아주 빼어난 발상이었지.”
“글쎄요. 장 수보야 그럴 지 몰라도, 우리가 지금 보러 가는 서생들은 예외가 아닐까 싶은데요.”
부부 간에 대수롭지 않은 듯 극히 대수로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주공동’ 앞까지 왔다.
“저기로군.”
사업당에 딸린 창고의 반의 반도 채 안 될 조그만 집 한 채를, 십시일반 돈 모으고 은정고에서까지 빌린 끝에 겨우 마련하였다던가. ‘대동당(大同黨)’ 깃발 휘날리는 마당이 제법 웅성거렸다.
이이가 임꺽정, 이탁오 두 사람 대동하고 들이닥쳐 저의 생각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간 뒤에도 정여립은 저의 뜻을 완전히 꺾지는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 뜻이 더욱 굳어졌다.
대동론을 밀어붙이며 저의 당을 만들었다가는 다음 권점에서도 필패일 것이라는 이이의 말에 대놓고 반박하듯, 정여립은 제법 요란하게 대동당을 세웠다.
곧 당원을 모을 것이니, 관심 있는 자는 소정의 은이나 은표, 면필을 들고 찾아오라는 공고가 상세한 주소와 함께 공보에 실렸고, 그 초모(招募)는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대관절 무슨 심산인지 탐문도 하고, 그 기세 어떠한지 살피기도 할 생각으로, 꺽정이와 명희 두 사람이 이렇게 손수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히익!”
대문에 들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궁금하여 살피니, 이곳 주공동에 어울리지 않는, 제법 고상하게 차려입은 서생 하나가 뒤로 자빠지고는 골목으로 후다닥 사라지는 것이었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소.”
“얼핏 보니, 요새 시문(詩文)으로 이름 날리는 송강(松江, 정철)이라는 이 같던데요.”
별 볼 일 없는 향반 무리라면 당연히 경화(京華)의 벌열 중에서도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을 떠받들지 않겠는가. 계구우후(鷄口牛後)의 고사를 떠올리며 정철이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허나 정여립 그 애송이에게 – 정철도 사실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 속내를 간파당하고, 아주 모질게 내침을 당하였다.
그 모욕 잊지 못하고 콧김 내뿜으며, ‘어디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찾아오나 보자’ 하는 앙심 가득 품고서, 정철은 골목에서 밖을 염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라의 초야에 아직도 제법 쟁쟁한 이들이 묻혀 있었음을 깨닫고 홀로 발을 구르게 되었다.
남산골 살다 이쪽 주공동으로 옮겨온 가난한 선비 최영경(崔永慶), 안동 사람 김성일(金誠一)과 정여립의 먼 친척 정언신(鄭彦信) 등등.
노론 사람들이 모두 시류를 읽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제법 지재가 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여 시골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나머지 문중과 함께 노론에 몸 담게 된 이들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그런 자들은 대개 한미하여 누군가를 이끌 재주는 있어도 정작 그들을 거느릴 위세나 명분이 없었다. 허나 함께 뜻을 세워, 여럿이 힘을 합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러던 차에, 이제는 마치 이 대동당이 자신이 진지하게 대해야 할 상대인 양 임거정과 그 안사람까지 말 타고 찾아오게 되었으니, 경악이 절로 아니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글로 이름 날린 사람이라면 어디 산천 유람이나 가서 풍월이나 마저 읊을 것이지, 여기는 웬 일이래.”
“같이 가서 잡아올까요? 붙잡아놓고 묻는 게 가장 빠를 텐데요.”
또 한 번 ‘히익’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골목으로 도망친 뒤에도 모퉁이에 숨어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와 더불어, 옆에서는 어느새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났으니, 바로 담장 위로 고개 내민 정여립이었다.
“장성한 선비들끼리 퍽 어른스럽게도 노는구만.”
“저쪽이 먼저 잘못했습니다. 더구나 왠지 지금 기를 눌러놓지 않으면 송강 저 사람 때문에 언제고 크게 발목을 잡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요.”
“우리 병해 사형 말로는 예감이니 점괘니 하는 것은 열에 아홉이 거짓부렁이라던데.”
실없는 소리 하는 지아비 대신 명희가 말에서 훌쩍 내려 물었다.
“우리 두 사람이 왜 찾아왔는지 족히 짐작할 만큼은 총명하시다고, 제 오라버니 되시는 율곡 선생께서는 평하시더군요.”
나라에서 가장 권세 높은 사람과 그 안사람은 거리 한쪽에 서 있고, 임시 당수라는 묘한 직함 하나가 전부인 보잘것없는 서생은 담장 안쪽에서 바위 하나 짚고 고개 내밀고 있는, 제법 우스운 광경이었다.
“대동의 논변을 바탕으로 삼아 당을 만들면 반드시 다음 권점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본인이 당당히 일러주었는데도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을 궁금하게 여기어 탐문차 오신 것이겠지요?”
“과연, 오라버니 말씀대로네요.”
“별것 아닙니다. 대동론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거든요.”
“엥? 정말로?”
의외의 답이 너무나 가볍게 튀어나와, 꺽정이 입에서도 절로 반문이 나왔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이 ‘자본주의’ 천하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완성되어야 비로소 대동을 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율곡 선생 말씀이 옳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러니 자본주의 세상이 더 빨리 완성되도록 우리가 부추기고 북돋으면, 그만큼 대동주의 세상도 빨리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우리 당은 그 동안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낙오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어루만지며,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자 할 뿐입니다.”
다음 권점에서 재조헌법을 밀어붙이든, 아니면 사세가 이미 기운 것을 인정하고 새 길을 찾든, 점점 그 힘 줄어드는 향반들이 하나로 뭉쳐야만 탕평당과 민주당에 견줄 수 있는 세력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우선은 삼남의 향반들끼리 하나로 뭉쳐, 옛 노론 시절보다도 긴밀하게 상부상조하며, 더 끌어모을 수 있을 사람들을 찾으면서 다음 목표를 구하자는 대동당의 주장은 제법 울림이 있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딱 율곡이 단언한 것만 골라서 반대로 가겠다는 말이구만그래. 거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구만.”
“오. 그거 좋습니다.”
“무엇이?”
“아직 마음에 드는 호를 얻지 못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 청와(靑蛙. 청개구리)를 제 호로 삼으면 딱 좋을 듯합니다.”
하기야, 밤골 선생도 있고 ‘잘나신 이 몸(탁오)’ 선생도 있는데, 청개구리 선생이라고 안 될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이대로 괜찮으시겠어요? 당론은 나중에 확정짓자는 것을 당론으로 내세웠을 뿐더러, 당장 당의 살림살이 운영하는 것부터 어려울 텐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소생 생각대로라면, 저희 당은 언제고 큰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이 적어도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뒤에 올 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어려울 뿐이지요. 허나 그마저도 그렇게까지 큰 근심은 못 됩니다.”
명희의 오지랖 넓은 걱정에, 정여립은 웃으며 답했다.
“잃을 것은 초가삼간뿐이요, 얻을 것은 온 천하 아니겠습니까.”
어째 천진난만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온 세상 무너뜨리려 달려드는 기세였기에, 명희는 순간 그 모습이 지아비 임꺽정과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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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언급된 것처럼, 아메리카 대륙과 일본으로부터의 은 유입에 맞추어 조세의 은납화를 추진한 일조편법 개혁은 명 후기의 사회상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업이 크게 발달하였을 뿐더러, 훗날 산업혁명 시기 영국보다도 더 높은 가격경쟁력을 자랑하게 된 면직업 또한 이 시기부터 빠르게 발전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반 백성의 조세부담을 경감한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만성적인 은 부족으로 인해 조세부담을 짊어지거나 전가받은 농민들이 세금을 낼 때 필요한 은을 쉽게 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장거정이 향신 계층을 견제하며 직접 향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심을 얻으려 하는 것도 이 부분을 노린 셈입니다.
조식과 이황이 윤원형의 전횡에 낙담하여 고향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데만 힘썼던 원 역사와 달리, 작중 조선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일찌감치 상경하여 그 재주를 다른 곳에 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원 역사에서 조금 늦게 두 사람 문하에 들어갔던 이들의 인생 경로 또한 크게 바뀌게 되었지요. 작중 언급된 최영경(원 역사에서는 조식의 문인)과 정언신(정여립의 9촌 친척) 등은 모두 기축옥사에 휘말린 인물이었습니다. 김성일은 증조부 대부터 안동에 거하였던 집안 출신으로, 원 역사에서도 1562년에 보우의 전횡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을 뒷받침하고 통일 중국의 기반을 닦은 – 비록 그 한계가 뚜렷하였고, 그마저도 미완으로 끝났지만 – 재상 이사가 법가 사상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한비자와 함께 유학자 순자 아래에서 동문수학하였다는 것은 『사기』 <열전>에도 언급되는 내용이지요. 글 초반에 장거정이 언급하는 순자와 이사의 일화는, 순자의 군사 및 국제정치에 대한 사상을 볼 수 있는 『순자』 <의병(議兵)>편에 나옵니다. 여기서 이사는 진이 군사적으로 나머지 육국을 위압하는 현실을 근거로 들며 순자를 비판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도덕에 기반한 외교 및 내치가 종국에는 가장 ‘가성비’ 좋은 안보정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국시대 말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유학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던 순자의 사상적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