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08화 (208/259)

63. 도광양회 (1)

황제가 정신이 혼미해진 것인지, 아니면 붕어할 때가 되어서 정신을 되찾은 것인지, 유왕 주재기를 태자로 세워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당한 해서는 금방 풀려나고, 유왕 본인은 곧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해서는 내각으로 복직하는 대신, 응천순무(應天巡撫) 벼슬을 받아 강소성으로 내려왔다.

이 응천순무라는 직함, 그러니까 ‘하늘의 뜻에 응하여 살피고 어루만지는 판관’은 남경 응천부라는 지명을모르는 에우로파 사람의 귀에는매우 대단하게 들릴 만하였다. 그러나 협상장에서 해서와 마주하게 된 필리피나스(Filipinas, 필리핀) 도독은 동양인의 그런 거창한 직함에 이미 질릴 만큼 당한 바 있던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였으니, 큰 효험은 없을 테다.

“필리피나스 도독이라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의 속하(屬下)지요. 굳이 품계를 끼워맞추려 한다면야 해 대인이 조금 더 높겠지만, 우리 레가스피 대인도 펠리페 국왕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는 인물이니, 얼추 동급이라 하겠습니다.”

항주 관아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별 볼일 없는 다점에서 ‘오랑캐 제독’ 이야기를 들은 이탁오가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며 주변 서생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뜩이나 그에게 쏟아지던 영 불편한 눈빛은 달래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신사들은 대충 저자에서 독서인(讀書人)처럼 생긴 이들을 아무렇게나 붙잡아 모아두었다고 일순 착각할 만큼 각양각색이었는데, 공통점은 바로 그들 모두 관의 눈밖에 났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천안문의 변 당시 서계가 저의 벼슬을 버려가며, 대명에도 헌법 세우자고 상소 올리던 서생들을 구해주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목숨만 구해준 것이었다. 쫓기듯 강남으로 돌아와서도 조정의 처사에 볼멘소리 할 만큼 경솔하였던 자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나머지도 그저 전전긍긍하며 숨죽이고 있을 뿐.

그 와중에 이제 조정에서는 사(私)를 공(公)으로 돌린다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와 같던 대일통론에 살을 붙였다. 그 살은 대개는 부유한 향신의 곳간 속 곡식과 포목, 은자로 빚어질 것이었다.

“레가스피 대인은 요 항주 앞바다 주산(舟山) 섬들을 두고 교섭코자 찾아왔다던데, 소생이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헌데 뜻 맞는 이들끼리 모여, 감히 서슬 퍼런 정국에 더 항거할 엄두는 못 내고 그냥 세상 불평이나 하는 이 다점에 느닷없이 저 이탁오가 나타나더니, 아주 부담스러운 말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가 대놓고 내 이탁오라는 사람이라 밝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분명 남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이 다점을 콕 짚어 찾아오지만 않았더라면 진작에 말이든 완력이든 동원해 내쫓았을 터였다.

허나 인생사 앞길 한 치 모른다는 말을 그대로 증명하듯 이곳의 좌장 격이 된 오승은은 이 기이한 선비의 이야기에 조금 어울려주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렇소. 그 오랑캐 우두머리가 해 대인의 공명정대한 처분에 꼼짝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저자에 파다하다오.”

일시의 변덕이기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흐름에 우선 껍질 속으로 머리 집어넣고 주변 동정 살피려는, 말 그대로 범상한 사람다운 생각의 발로일 테다.

이 다점에 모인 사대부 중 삼분지이는 장거정과 해서 두 사람으로 인해 재물을 잃은 신상(紳商, 향신 계층 출신 상인)과 전주(佃主, 지주)요, 나머지 삼분지일은 조정의 처사 자체가 잘못이라 여기면서도 그것을 당당히 관아 앞에서 떠들지 않을 만큼 저들의 목숨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일동 중의 좌장이 된 오승은은 이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고작 『서유기』 한 권으로 벌어들인 재산이 전부요, 그것을 따로 밑천 삼지도, 가난한 백성을 알량한 부로 괴롭히지도 않았다. 나이 예순에 달하도록 딱히 그럴듯한 벼슬을 하지도, 제대로 된 시문이나 학문으로 이름을 떨치지도 못했다.

다만 그가 이 다점에 모인 이들 중 가장 지독하게도 운수가 없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였다. 그는 재산을 잃은 비분(悲憤)도, 불의에 대한 강개(慷慨)도 아니요, 오로지 북경 구경을 갔다가 엉겁결에 천자의 어가를 가로막은 일 하나로 이들 무리에 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붓이 손행자(손오공)에게 불어넣었던 용기와 과감함은, 안타깝게도 그 붓을 놀린 이에게는 깃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언제 목이 달아나든 동창에게 걸려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든 할 것 같은 두려움에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 찾아다니던 것이, 어느새 여기에 이르게 되었다.

“꼼짝 못하였다... 아마 그건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두 사람이라면 아마 양측의 입장을 잘 조율해서, 각자 최선이라 여길 만한 그런 조건에 합의하였겠지요.”

만약 해서가 중원 바깥의 사정에 무지한, 그저 그런 명의 관헌이었고 레가스피 또한 동방에 무지한 채 기세 좋게 ‘카롤리나스(류큐)’에 상륙하던 시절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면, 협상은 허무할 만큼 빨리 끝났을 것이다. 이쪽이 뇌물이나 변덕으로 인해 덜컥 그 땅을 내어주든, 아니면 저쪽이 무지와 교만으로 인해 먼저 협상장을 뛰쳐나가든. 둘 중 하나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해서는 명의 수군이 허수아비는커녕 지푸라기 수준도 되지 않음을, 그리고 장거정의 개혁이 끝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포토시의 은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에스파냐로서는, 어떻게든 포토시의 은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불리기 위해 중원에 의존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 조약은, 바보 같이 주산의 작은 섬들을 통째로 넘겨주기보다는 그 일대의 작은 진보(鎭堡) 몇 곳을 빌려주고 – 마침 십오 년쯤 전에 포르투갈인들이 짓다가 도망친 성이 하나 있었다 - 대신 동래에 있는 것과 같은 선소를 항주나 주산에 지어주는 형태로 체결될 공산이 컸다.

“... 그러나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이탁오가 늘어놓는 이야기에 이미 빨려들어간 오승은이 물었다.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선생 분들께서 모두 해 대인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세간에서는 그이를 ‘해청천(海靑天)’이라고까지 부른다는데, 여기 계신 선생들은 그렇게까지 칭송할 처지는 아닐 텐데요.”

쫄깃한 유작과(유탸오油條)를 씹으며 농담처럼 독설을 던지는 이탁오였다.

“그 ‘공사(公司)’가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그간 애써 숨겨둔 농지를 그대로 빼앗겼을 것이요, 또 누군가는 바다 건너에 팔고자 모아둔 도자기와 차 따위를 곳간채로 빼앗겼겠지요. 그런데 해 대인을 탄핵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기는커녕 그이의 공명정대함을 논하고 있으니, 이 어찌 된 영문입니까?”

“그야...”

할 말이야 많았다.

장거정도 해서도, 무작정 사대부들의 가산을 빼앗으려 들기에는 수완이 너무나 좋은 이들이었다. 장거정이 있는 직례와 해서가 있는 남직례 및 그 주변의 큰 도회부터 벌어지고 있는 변화란 대개 이러하였다.

향신이라 불리는 자들 중 전주 노릇하는 이들은 아직도 어린도책(魚鱗圖冊, 토지대장)에서 누락된 전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고, 생의(生意, 장사)에 힘쓰는 이들은 지방 관아에 기름칠하여 슬그머니 취하는 이익이 있기 마련이었다.

장거정과 해서는 그것을 적발하여, 부당한 이익을 나라의 것으로 삼은 뒤 백성에게 흩뿌려 민심을 샀다. 그러고도 남은 떳떳한 재산은 역시 몰수하여 공사(公司)라는 이름으로 묶고, 원 주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벼슬을 주었다. 농리공사(農里公司)니 상행공사(商行公司)니 하는 자잘한 관아를 만들어, 그곳의 관장으로 재직하며 나라의 녹봉을 받도록 한 것이다.

거인(擧人, 향시 급제자) 정도로도 감지덕지인 신사들에게 이만하면 아예 나쁘지는 않은 처분이었다. 특히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그들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였다.

“... 이처럼 변명거리는 참으로 많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저 두렵기 때문이겠지요.”

여전히 밉살맞을 만큼 정곡을 찌르는 이탁오의 말에, 오승은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다른 이들 또한 낯빛 붉히면서도 차마 반박은 하지 못했다.

먼저 동창이 두려웠다. 장거정의 손에 들어간 뒤로, 동창에는 권세보다 재물을 사랑하여 기꺼이 뇌물을 받는 자들의 씨가 말랐다. 어디에나 뻗어 있던 동창의 부패한 이목과 수족은, 이제 다른 굶주림을 안은 채로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노렸다.

또한 향신들이 떠밀리다시피 편입된 공사에도, 그들이 만에 하나 그 자리와 녹봉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금 공사의 재물을 저의 것처럼 다룰 것에 대비하여 감시하는 자들이 붙었다. 대개는 향신의 가산을 빼앗아 그 일부를 저의 것으로 삼는 그 재미에 맛 들린, 글이나 조금 아는 보잘것없는 무리였다. 누가 시작했는지 항상 붉은 천조각을 어깻죽지나 팔뚝에 두르고 다녀, 시쳇말로 이들을 홍병위(紅兵衛)라 불렀다.

“어차피 여기 계신 분들께서 어디 나가서 발설한들 믿는 이가 없을 터이니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응당의 의권(권리)을 누리고자 목소리 내실 수 있도록, 우리 당은 일본 규슈에서 격물을 펼치고 여러분이 능히 관에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논변도 드렸습니다.

또한 여러분께서 하나로 뭉쳐, 언제나 여러분을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조정에 항거할 만한 이유를 만들고자, 장 수보를 은근히 충동질하였습니다. 장 대인이 그 대동의 설을 지나치게 잘 받아들여, 이렇게 공사를 세우고 나라의 부와 자본을 하나로 모은다고 나서는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지만요.”

전운(戰雲)은 아직 아지랑이에 불과하나, 볼 수 있는 눈 지닌 이들에게는 모두 명백하게 보였다. 이제 그 싸움에 대비한 포석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고, 장거정이 점차 권도(權道)만을 택하도록 슬슬 건드려 요동과 북변뿐 아니라 강남 사족에게까지 포위당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당 대계의 일부였다.

물론 이탁오 본인도 이곳 중원의 사람이므로, 저들이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잃을 것 없는 농민이라면, 천하의 광대함과 조정의 무서움을 모르므로 그저 쇠스랑 들고 팔 걷어붙이며 일어나기 마련. 그러나 사대부는 기군망상은 꾀할지언정 차마 반역은 하지 못하는 작자들이었다.

그뿐이랴? 이 대명이라는 눈멀고 아둔한 거인의 머릿속에 들어가, 마침내 그 힘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장거정은 실로 무시무시한 자가 되었다. 화담 초당에서 도적 몇 놈을 데리고 시작해야 했던 임꺽정과 이지함 두 사람과는 달리, 장거정에게는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실로 천라지망(天羅地網)과 견줄 수 있을 잘 짜인 나라 전체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보다도, 실눈이나마 뜬 이 대명이라는 거인의 덩치는 훨씬 거대했고, 아직 꿈에서 절반도 채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족히 온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야 할 나라 안의 사인(士人)들은 이처럼 겁에 질려, 넋을 놓고 무력하게 끌려다니고만 있었다.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왜 여러분은 침묵하고 계십니까? 당장 이곳 항주의 항구에 여러분이 빼앗긴 차와 도자기 따위가 그득하게 쌓여 있지 않습니까? 응천순무 대인이 그토록 공명정대하다 하면서, 어찌하여 그 공정함에 기대어 여러분의 처지를 더 나아지게끔 할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이 자리에 모이는 서생들 중에는 당나라 스님(唐僧, 삼장법사)과 저팔계, 사오정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손행자는 아니었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서슬 퍼런 정국에, 조정의 기민한 경장에, 지엄하디 지엄하여 사람 목숨을 초개처럼 다루는 황명에 모두 기가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엇으로써 이들을 발칵 일으켜세울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얽매고 억누르는 것은 조정과 황제의 위엄이 아닌 그들 자신의 두려움뿐임을 깨닫게 할 수 있겠는가? 제법 맛 좋은 유작과를 질겅이면서도 이탁오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이탁오를 이곳 항주까지 데려온 배는, 다름아닌 페르낭 멘데스 핀투 선장이 간만에 직접 키를 잡은 상 투메 호였다.

‘동 림’을 만나기 전만 해도, 저의 배조차 온전히 저의 것으로 삼지 못하고 빚 독촉에 시달렸던 허풍선이 겸 밀수상에 불과했던 핀투는, 이제 말라카 동쪽에서 손꼽히는 거대 선단의 주인이 되었다.

지난 대항해 말미에 그와 함께 희망봉을 돌았던 카락과 갈레온들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고, 이제 동래에서 더 많은 카락이 건조되면 그의 선단은 불어나기만 할 터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그 배들의 주인 겸 최대 주주는 따로 있었지만, 어쨌든 동양을 오가는 뱃사람 중 그의 이름을 함부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그런 그가 직접 항해에 나선 것은 어째서인가? 신분을 숨긴 이탁오를 몰래 이 도시에 데려다 놓기 위함이 하나요, 자유민주당 영수 서해 아래의 ‘당원’ - 즉 해적 - 들과 함께 무언가 다른 짓을 꾸미기 위함이 또 하나였다.

“탁오 선생께는 길을 잘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분께서 안전히 들어가시는 것까지 보고 돌아왔습죠.”

“잘 하였네.”

그의 항해에 함께한 서해의 아랫사람 중 하나가 돌아와 고하였다.

“그러면 슬슬 ‘그 일’을 준비해야겠군. 자네와 동료들은 그 동창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니 자정까지는 배 안에서 기다리고 있게. 동 트기 전에 곧장 닻을 올리겠네.”

서해의 아랫사람도, 핀투의 선원들도 이번 항해로 제법 두둑한 보상을 받을 예정이었으므로, 항해 끝의 휴식이 짧거나 없다는 점을 두고 불평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리, 등 뒤에 웬 오랑캐들이 나리를 감시하고 있는뎁쇼.”

듣는 핀투도 그 ‘오랑캐’ 중 하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녀석의 말이었다.

“어떻게 생겼는가?”

“복식이야 해괴하지만, 딱 보아도 저희 같은 놈들에겐 보입니다. 뱃놈이지만 뻣뻣한 걸 보니 어디 수사(水師, 수군) 사람일 겝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핀투는, 곧 눈앞의 녀석을 그대로 배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나리를 감시하는 저놈은 어쩌고요?”

“내 생각이 맞다면, 어차피 곧 내 등 뒤에 있다는 자의 상관이 나를 찾아올 것일세.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아는체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곧 핀투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그를 감시토록 한 사람이 직접 그를 찾아오리라는 점까지는 예상치 못했지만.

“오랜만에 뵙습니다, 돈 미겔.”

“나야말로 반갑소, 돈 페르난도(페르낭).”

레가스피는 핀투가 기억하는 그 모습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바닷바람과 세월에 조금 풍화된 것을 제하면, 왕관에 충성하는 관료이자 선장으로서의 기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저를 ‘돈’이라 불러주었다.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상 투메 호가 입항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그대가 직접 키를 잡았을 줄은 몰랐소. 물론 뱃사람들 중에는 바다의 자유와 기쁨을 결코 잊지 못하여 끝내 배와 바다를 버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고는 들었으나...”

재빨리 판단을 마친 핀투는, 가볍고도 천박한 말투를 짐짓 꾸며내었다.

“그런 시절은 진작에 끝났습죠. 다 돈 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 때문이라! 과연 그렇군.”

돈 때문에 민주당의 ‘동 림’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것은 거짓은 아니었으나, 그 이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핀투는 임꺽정과 함께 항해하며, 에우로파와 그 땅의 군주들이 만들어낸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를 보았다. 그에게 물든 것일지도, 아니면 그와 함께한 세월이 핀투의 속에 잠들어 있던 반항의 정서를 끌어냈는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그는 임꺽정이 주창하는, 보다 정확히는 그가 온몸으로 때려부수고 뚫어버린 뒤 남은 그 빈틈을 가득 메우는 자유를 사랑하였다. 그가, 그리고 인천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영국인 아내 – 항해하던 중 남편이 죽은 과부였다 – 와 어린 아들이 누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 무엇을 꿈꾸든 그것만으로 인해 벌받지 아니할 자유.

‘그래, 어쩌면 내 신세가 동방에서 훨씬 피었기 때문에 스스로 속이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이 땅에서 원하고 또 누리는 것을 나의 조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결코 주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핀투의 머리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고, 핀투를 ‘돈 페르난도’라 불러주면서도 은근히 그를 낮추어보는 레가스피 역시 그리 깊게 의심치는 않는 듯하였다.

“하면 그대를 만난 김에 사업에 관한 몇 가지 조언을 하는 것을 두고 딱히 반대하지는 않으시겠구려.”

“하하, 물론이지요, 돈 미겔. 사업에 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먼저 내가 아직 아카풀코에 머물고 있을 때 본국에서 받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소. ‘추기경 섭정’ 돈 엔리케(엥히크)께서 선종하셨다오. 어린 국왕 세바스티안 전하께서도 근래 부쩍 병약해지셨다는데, 그 나이대의 소년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라 다들 불길하다 여기고 있다지.”

핀투가 탈처럼 쓴 웃음이 일시 틈을 보였다. 임꺽정과 함께 리스본에 들렸을 때, 그의 조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레가스피의 말 대로라면, 지금쯤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왕위가 고스란히 에스파냐의 펠리페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딱히 애국심은 없는 핀투로서도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면하기 어려웠다.

“포르투갈과 우리 에스파냐의 이익은, 이 동방무역에서 합치되고 있소. 귀국 포르투갈의 향료 무역, 그리고 이제 우리 에스파냐가 착수하고자 하는 시나와의 교역, 두 가지는 모두 우리가 바다를 지키고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 이웃 포르투갈 정부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오.”

에스파냐는 포르투갈의 금고를 원한다. (운 좋게 동 림으로부터 ‘중국인’으로 인정받은 몇몇을 제외한) 포르투갈의 상인들은, 에스파냐가 나서서 동방무역의 붕괴를 막아준다면 국왕 정도야 새로 모실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대의 상관이 세운 말라카의 이교도 시장은 얼마 전 하야를 선언했소. 더 나아가, 우리의 성경과 그의 쿠란, 두 책 앞에서 자신과 그 후예들이 조호르의 술탄으로만 만족하고, 다시는 말라카의 술탄이라 칭하지 않겠노라고도 맹세했지.”

이는 다행히 핀투도 들은 소식이었다. 늙은 알라우딘 샤는, 포르투갈이 국운을 걸고 말라카 이동(以東)을 재차 확보하려 달려들고 있음을 직감하고, 밀사를 보내 후일 – 그러니까, 더 동쪽에서 에스파냐-포르투갈 연합이 결정적으로 패퇴한 뒤 – 을 기약하겠노라 전하였다. 다행히, 베네치아 사절단 몰래 그들의 배에 실어보낸 조총이 썩거나 상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리고 하이루이(해서) 장관과의 협상도 마무리되고 있소. 이제 아카풀코(Acapulco)를 떠난 우리 갈레온은 마닐라를 경유해 이곳 시나의 항구 코앞까지 올 수 있게 되었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돈 페르난도 그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소. 당장 얼마 후에 역사적인 첫 공식 교역이 이루어질 것이오.”

이번에는 핀투도 그 탈이 벗겨지는 것을 금하지 못했다. 흠칫하는 것을 애써 감추며 핀투가 물었다.

“제게 이렇게... 유익한 정보를 주시는 이유를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것을 그대로 그대의 고용주에게 전해주어도 무방하오. 모두 기정사실이니까. 다만 폭풍이 몰아치기 전, 그대가 한 번만 더 생각해보기를 바랄 뿐이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세속의 명예와 부귀영화라면, 글쎄, 풍향을 읽는 것이야말로 선장의 중요한 덕목 아니겠소이까?”

레가스피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핀투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고는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핀투는 레가스피와 그 부하들이 충분히 멀리 떨어졌다 싶어지자, 바로 앞서 배로 돌려보낸 서해의 아랫사람을 찾아 고함을 질렀다.

“탁오 선생, 탁오 선생은 어디 계신가! 즉시 나를 그분 계신 곳에 안내해 주게!”

“ ‘중국의 배(La Nao de la China, 마닐라 갈레온)’! 그것이 이곳 앞바다까지 바로 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허겁지겁 달려온 핀투 선장은, 마땅히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궁금함과 경계 섞인 시선이 이미 다른 한 사람 – 이탁오 본인 – 에게 쏠려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헐떡이며 사정을 설명했다.

“중국의 배라. 하, 일이 꼬이는군.”

“그... 무슨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소?”

두 사람이 괴상한 오랑캐 말로 이야기 나누는 것에 궁금함을 참지 못한 오승은이 물었다.

“알려드려야지요. 여기 계신 신사분들을 포함해, 이 땅의 모든 향신들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니까요. 은, 막대한 은이 이 땅에, 보다 올바르게 말하면 이 땅의 관헌들에게 그대로 들어올 것입니다. 어떤 상인도, 향신도 거치지 않고요.”

수많은 뱃사람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발견해낸 태평양 횡단 항로. 포토시에서 나오는 은을 가득 실은 갈레온이 아카풀코를 떠나 이곳 항주까지 오는 데는 넉 달이면 충분할 터였다.

지금까지는 마닐라에만 하역하고, 그것이 조심스러운 교역으로 민주당에도 들어오곤 했다. 그것으로 알탄 칸을 회유하여 제법 쏠쏠한 이득을 취하기도 했지만, 이제 호시절도 끝나려는 모양이었다.

이탁오의 말을 들은 오승은 주변의 신사들은, 민주당보다도 저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맹렬히 타오를 것임을 깨닫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잽싸게 이탁오는 핀투에게도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 광활한 땅을 다스리는 관료의 수는 턱없이 적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 시험은 턱없이 까다롭고요. 결국 과거와는 연이 없는 사대부들, 즉 신사들이 수없이 남게 되는데, 바로 이들이 이갑(里甲)의 제도가 무너진 이래 조정과 지방관, 그리고 여항 백성들을 잇는 역할을 맡곤 했습니다.”

조정과 신사들 양쪽에 크게 이로웠기에,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올 수 있던 관례였다. 조정은 굳이 세출을 늘려가며 지방관과 그 속하 관리들을 늘릴 필요가 없었고, 신사들은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향촌에서 그 지위를 인정받고, 또 지위를 이용하여 농사든 장사든 꽤 쏠쏠한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들 향신의 도움 없이는 조정은 제대로 지방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바뀌었소?”

“은이지요. 이 광활한 땅에 그토록 부족하던 은. 그것이 이제 무한정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 조정은 한편으로는 관료를 마음대로 늘리며 사대부들을 달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조편법으로 인해 은이 필요한 백성들에게 싸게 은을 팔아, 그들이 굳이 향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방관들에게 매달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조치가 일조일석 간에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장거정과 그 일파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이탁오는 여실히 보았으므로, 경계를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수근대는 것이 격앙된 고성으로 화하였다가 순식간에 다시 가라앉는 것을 듣자하니, 오승은과 항주의 불만 많은 신사들 역시 얼추 그러한 결론에 당도한 듯하였다.

오승은이 일동을 대표하여 나아왔다.

“탁오 선생. 선생은 우리 강남의 문사들 중 가장 바다 밖의 사정에 통달한 이 아니겠소? 귀한 조언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애시당초 제가 이곳에 온 것도, 여러 선생들을 모아 조정이 백성의 뜻에서 벗어나 국사를 전횡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제가 선생들에게 도움을 청하여야 하겠지요. 물론 지금처럼이라면 곤란하기 그지없겠지만요.”

오승은이 또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탁오 선생, 번듯한 위세는커녕 일신의 용력조차 없는 우리 서생들이 대체 무얼 할 수 있겠소?”

그랬더니, 너무나 경쾌하면서도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쓸모가 없습니다. 유작과나 함께 드시지요. 이거 맛있네요.”

물론 이탁오는 자신과 오승은, 그리고 항주의 불만만 많은 선비들을 일컬어 쓸모 없다 한 것일 뿐, 핀투 선장은 예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대로 이탁오는 항주에 남겨놓고, 서해의 수하들과 함께 주산 일대를 한 바퀴 돈 뒤 핀투는 인천으로 돌아왔다.

핀투를 통해 이탁오가 정리한 그간 사연을 받아본 민주당 중진들은, 오래지 않아 의견을 금방 모았다. 정정당당한 무리라면 모를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난장판 만드는 것을 그 장기로 삼는 민주당으로서는 그리 오래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네놈들을 이렇게 모으게 되었다.”

간만에 흑의군을 모조리 소집한 꺽정이가 운을 떼었다.

계사(契社, 회사)의 법도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공동으로 밑천 대는 것이 계(契)요, 한 사람이 주동하여 당을 꾸리고 다른 이들의 자본을 끌어오는 것이 사(社)였다.

이 법도에 의거하여 얼마 전 흑의군도 정식으로 한성부에 소지(所志) 올려, 주인은 민주당이요 물주는 사업당인 하나의 번듯한 계사로 입안(立案)케 되었다.

그 전에도 떡하니 사병(私兵)인 것을 뻔뻔하게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그 덕에 떳떳하게 덩치도 더 불려, 이제는 수효가 이전의 곱절 넘게 늘었다.

“강남 항주에 재미있는 서생들이 있단다. 조정의 명에는 불만이 가득한데, 정작 밖에서 당당히 저들 뜻을 내세우기에는 매가리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더군.”

처음 청석골 시절부터 지금까지 흑의군에 몸 담고 있던 이들은, 그들 우두머리의 말투 뒤편에서 한바탕 분탕질 칠 생각으로 잔뜩 신이 난 고약한 심보를 느꼈다.

“무릇 선비란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 조선국 선비님네들만 보아도, 우리가 하도 이런저런 소란을 일으키고 다니니 그 뒤처리를 하다가 지금처럼 다들 생각이 깨이지 않았더냐. 그러니 우리도 모두를 괴롭히러 간다.”

임꺽정과 민주당이 벌이고 다니는 일의 뒷수습만 하다가, 어느새 앞장서서 그 일에 찬동하고, 나아가 보다 짜임새 있는 경장을 외치면서 온갖 논변과 이론, 그리고 법안으로 민주당보다 한 발 앞서나가게 된 탕평당 사람들이 들으면 고소(苦笑) 면치 못할 말이었다.

그러나 듣는 이들은 그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도적놈 일가붙이 같은 흑의군밖에 없었으므로, 범상한 ‘우와아’부터 기묘한 ‘끼요옷’까지, 저들 두령 따라 잔뜩 신난 함성이 화답하듯 흑의영에 울렸다.

“자, 다들 병장기 챙겨라! 인천으로 가서 배를 탄다!”

그날 밤, 한참 멀리 떨어진 항주에서, 종일 공무를 돌보고 지친 몸을 잠시 침상에 누인 해서는, 불현듯 다가오는 불길함에 벌떡 일어나 식은땀 흘리며 동쪽 바다를 보았다.

예감이라는 것이 대개 그러하듯, 그 이튿날에도, 다시 그 다음 날에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해서는 금방 자신이 그렇게 밤잠 설쳤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고작 그런 허황된 것에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너무나 공사(公事)가 다망(多忙)하였다.

그날 밤을 되새기며 한탄과 후회를 거듭하게 된 것은, 한참 뒤 공사가 다 망하게 된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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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인의 아침식사로 잘 알려진 유탸오는 본디 남송의 수도였던 항주(임안)에서 발명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민담에 따르면, 악비를 모함하여 죽인 간신 진회를 튀겨먹겠다는 살벌한 민심을 담아, 처음에는 ‘튀긴 진회(油炸檜)’라는 이름이었는데, 당연히 그 이름 그대로 글로 옮길 수는 없었으므로 당시 방언으로 음이 비슷한 ‘튀긴 귀신(油炸鬼)’ 또는 그냥 ‘튀긴 과자(油炸<米+果>)’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는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이 ‘유작과’라는 이름은 이후 동남아 전역으로 뻗어나간 절강성과 복건성 화교 상인들로 인해 동남아 곳곳으로 유탸오 레시피와 함께 퍼져나가게 됩니다.

전당강(錢塘江) 하구의 절묘한 자리에 위치한 주산 군도(저우산)는, 한때 해상무역의 허브로 크게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히 항주를 수도로 삼았던 남송 대에는 창국(昌國)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명대의 해금령과 뒤이은 공도(空島) 정책으로 주산 군도는 그런 과거의 영광을 상실하고 왜구와 해적의 소굴로 전락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이때 잠시 포르투갈이 무주공산인 몇몇 섬에 상륙해 거점을 설치하기도 했으나, 1548년 명 관헌이 이를 발견하고 병력을 보내 바로 패퇴시킵니다. (당대 일본 해적들이 서양 세력 상대로 힘을 못 쓰던 것과는 대조되게, 그 왜구들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명의 관군과 해적들은 정작 유럽 세력 상대로는 제법 강력한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후 청대에 잠시 해금 정책이 완화되면서 강희 연간에는 영국의 상관이 설치되기도 했는데, 건륭 연간에 다시 광주(광저우) 한 곳으로 서양과의 무역창구가 일원화되면서 폐쇄됩니다. 그 다음으로 서양 세력이 찾아왔을 때에는, 이미 굳이 주산 군도에 눈길을 줄 필요도 없이 마음껏 중국 해안(예컨대 상하이)을 뜯어먹을 수 있게 된 상태였지요.

원 역사의 해서는, 유명한 치안소(가정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상소) 사건 이후 가정제가 급사한 덕에 복권되었고, 그 이후 여러 관직을 전전하며 장거정의 개혁에서 실무를 맡게 됩니다. 그가 응천순무로 봉직하며, 가차없이 향신 세력의 숨은 토지를 찾아내며 백성에게 ‘해청천’ – 송대의 청백리 포청천에 빗댄 별명입니다 – 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지요. 이때 그는 그의 은인인 서계 집안의 비리조차 눈감아주지 않고 단호하게 처리하여, 사족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작중 언급된 것처럼 명~청대의 최하위 지배계층이자 최상위 피지배계층이었던 신사(향신)는, 여러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겹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중국 왕조의 면적과 인구는 폭증했는데, 정작 이들을 다스릴 관료의 수는 그리 늘지 않았고, 결국 한평생 글공부에 몸을 바쳐도 향시나 겨우 통과하는 이들이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을 경유하는 통치체제, 즉 향신들이 앞장서서 지방 통치에 협력하고, 대신 면세나 여러 사소한 비리 등 혜택을 취하는 형태의 지방 통치체제가 자리잡게 되지요. 청 역시 이런 정책을 계승하였고, 신사들의 강력한 지방 장악력은 이후 팔기군이 유명무실해진 청이 지방의 반란을 막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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