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11화 (211/259)

64. 천하포무 (1)

가정 43년 갑자년(1564) 봄. 황제가 유조(遺詔)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붕어하였다.

살아있는 황자 중 가장 나이 많고 또 인망도 있던 유왕 주재기가 황위를 이어받아, 연호를 융경(隆慶)이라 정하고 온 천하에 즉위를 알리는 조서를 내렸다.

조선 조정은『오례의(五禮儀)』에 의거하여 삼일이제(三日而除) 매조거림(每朝擧臨)을 따랐으니, 상사(喪事) 나흘째 되는 날에 제복(除服, 상복을 벗음)하고 그쳤다.

기나긴 재위에 걸쳐 황제가 이룬 공덕은 대개 조선에 이로울 뿐이었다. 종계변무를 이루어 주었고, 엄숭을 가까이하여 나라의 기강을 풀어헤쳤기에 오늘날 장거정이 천병(天兵)의 제도를 복원하고자 발버둥칠 원인을 만들었으며, 그 외에도 조선, 특히 임 아무개에게 베푼 황은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 말년에 그나마 치세(治世)가 돌아올 기미가 보였으나, 이는 오로지 서계와 장거정의 덕분이요, 더 꼼꼼히 따지면 임꺽정이의 발길질 한 번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천하의 물정을 잘 아는 선비들은 슬퍼하였으니, 이것이 예에 맞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온 천하가 차근차근 전란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반면 천하의 물정에 어두운 무리는 대명 천자야 붕(崩)하든 훙(薨)하든 알 바 아니요, 지난 겨울 공회 권점의 결과에 대해서만 떠들곤 하였다.

전정공회로 시작한 공회가 『육신전』 소란을 계기로 점차 이런저런 국사를 맡게 되고, 무엇보다도 그 공회에서 군주조차 따를 수밖에 없는 헌법을 세우게 되면서, 각지 향회에서도 공회에 보낼 이들 – 이제는 대체로 공임(公任)이라는 말이 굳어졌다 – 을 권점으로 뽑는 데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양주 사는 것들이 아직도 눈이 똑바로 박혀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오. 내가 언제고 내려가 좋은 가르침을 전해줄 것도 없게 되었구만.”

핀투의 상 투메 호를 타고 이탁오와 함께 항주를 떠나, 잠시 마닐라에 들린 뒤 돌아온 꺽정이가 권점 소식을 듣고 흐뭇하게 말했다.

그 소식 전해주러 직접 양주 – 경신년 병란이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집을 옮겼다 – 에서 찾아온 형 임가도치가 가볍게 타박하였다.

“이놈아, 네가 그렇게 떠들고 다니면 괜히 양주 사람들이 겁박당한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겠느냐. 향회 사람들끼리 공론을 모아, 이번 권점은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정정당당하게 치루어, 정말로 나라에 도움될 사람을 뽑자고 합의하였단 말이다. 중간에 선우당(先憂黨)이 결성되어 물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선우당? 아, 그 노론 늙은이들 모임 말씀이시구려. 우리 정여립이가 큰일을 해준 셈이지.”

반골에 옹고집이라는, 옛날의 조선에서는 딱 역적으로 몰려 죽기 좋은 기질만 고루 지니고 있는 정여립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동당을 세운 바 있었다.

그리고 이이를 비롯한 다른 식자들이 공히 예상한 대로, 옛 노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갈리게 되었다.

선우당은 대동당을 따르지 않는 노론 사람들이,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한다(先天下之憂而憂)’는 범중엄(范仲淹)의 말에서 따와 결성한 당이었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끝내 민주당과 탕평당, 대동당에 들지 못한 향반들이 시류(時流)의 옳지 못함을 한탄하며 세운 이 당이야말로, 요즘 말로 가장 ‘공론위주(公論爲主)’의 당이라는 점이었다. 이지함이나 이준경, 정여립 같이 우뚝 선 영수가 없었으므로, 매사를 오로지 각지 당원들의 공론에 따라 처결하곤 하였다.

여하간 이들 선우당으로 말미암아, 지난 권점에서는 머릿수만으로는 오복헌법과 거의 박빙을 이루었던 군현에서도 대동당과 선우당으로 점(點, 표)이 갈렸다. 그리하여 새로 구성된 공회에서 민주당과 탕평당을 합하면 거의 삼분지이에 달하게 되었으니, 헌법 개정은 또 사 년 뒤를 기약해야 하게 되었다.

“그래도 한때 그 고루한 선비들이 맞는가 싶을 만큼, 제법 예리한 논변도 내세우곤 하였다더라. 나는 잘 모르지만, 우리 향회의 다른 선비님네들은 그리 말씀하시더구나.”

당명을 정하는 것부터 당론을 세우는 일까지 매사를 공론에 따르다 보니, 강단 있는 – 또는 모진 – 논의를 그 누구도 개진하지 못하여 절로 당론이 둥글둥글해졌다. 예컨대 처음 재조론이 내세우던 억말(抑末, 상공업 억압)은 은근슬쩍 중농(重農, 농업 진흥)으로 바뀌었다.

허나 길게 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재조론이 너무나 과격하다 여기어 이를 멀리하던 사람들의 민심을 끌어모으는 효험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나라의 새 법도를 저의 것처럼 아끼고 올바르게 여기게 되었으니, 이윽고 찾아올 전란에 기꺼이 그 재산부터 목숨까지 바치려 하겠지. 그렇지 않으냐?”

무던하고 사람 좋은 가도치에게서 나오는 말 맞는가 일순 의심할 만큼 날선 물음이었다.

허나 꺽정이는 날카로운 날붙이를 예사롭게 여기기로는 조선에서 제일인 사내였다.

“그렇소. 애초에 헌법이니 권점이니, 그런 발상에서 주창하고 또 여기저기 부추기고 다녔지. 내가 원래 그런 녀석인 것은 형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소? 다만 옛날과 다르게 요새는 내가 온통 뒤집어놓고 다닐수록 한숨 푹 쉬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작자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지.”

틀린 말은 아니어서, 가도치의 말문이 되려 막혔다.

그저 살고 싶은 대로 평온하게 사는 것이 제일의 소망인 그로서도, 만약 공보도, 백정여진도, 민주당도 없던 시절에 평온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자칫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와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삶을 지키기 위해 꿈틀대기라도 해볼 것이냐 묻는다면 한참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단 가도치뿐 아니라, 그가 아는 양주 향회의 사람들이라면 벼슬살이를 해본 사람이건 만년 유학(幼學)이건, 당색이 탕평당이건 선우당이건, 이제는 모두가 조심스레 후자를 택하겠노라 말할 것이다.

고작 이십여 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고, 이제 와서 없던 것으로 하기에는 그 바뀐 것 위에 차곡차곡 쌓인 욕심과 그 산물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무게는, 어쩌면 그들의 소중한 가산뿐 아니라 목숨에 비하여도 더 묵직할 것이다.

“여하간 축하드리오. 형제가 모두 현달하였으니 언제고 녹양평에서 거하게 잔치라도 벌여야 하겠구만. 그러고 보면 아버지 회갑도 얼마 안 남지 않았소?”

형님 머릿속에서 깊어지는 고민과 사색에 하등 개의치 않고 떠드는 꺽정이였다. 가도치가 무언가 답하려던 차, 사업당에서 급히 달려온 이가 있어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일본에 가 있어야 할 자유민주당 영수 린죠 히데요시였다.

얼추 듣기에도 그리 범상한 일은 아니었기에, 사업당에는 벌써 중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얼마 전 득남한 이이는, 산고 시달리던 아내 계월당이 저를 욕하는 것을 곁에서 들은 뒤 비로소 저의 잘못을 깨닫고 비로소 안사람과 조금 잘 지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소식이 약간 늦어서, 이 자리에도 가장 늦게 당도하게 되었다.

반면 가장 먼저 찾아와서는 한 구석에 천연덕스레 서 있는 이순신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녀석이 낄 자리는 아닌지라, 꺽정이는 그 아버지에게 이르겠다고 겁박한 끝에 겨우 쫓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순신이, 모임이 파하는 대로 ‘히데요시 형’에게 찾아가 꼬치꼬치 캐물을 심산으로 사업당에서 물러났다는 것을 꺽정이가 알 턱이 없었다.)

“소위 동척사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별 일이야 있겠느냐 하고 그 설립을 도와줬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수였지요. 그쪽을 통해 고스란히 동쪽 다이묘들에게 은이 들어가고 있는데, 그 출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업당과 자유민주당, 어느 쪽에서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은이라 하면, 답은 딱 하나로군.”

서림이 히데요시 말을 마저 이어주었다.

“우리 장 형이 손을 썼구만.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오다 노부나가 그자가 벼락같이 관동 전역을 들이치더니, 이제는 언제라도 상락을 할 기세로 오와리로 돌아왔다더군요. 동척사로 들어가는 은은 오다 군과 그 동맹인 도쿠가와, 이렇게 양측의 군자금으로 쓰이고, 그러고도 남는 것으로는 다른 다이묘들을 회유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라 하면, 일찍이 사업당과도 긴밀히 교역한 바 있는 자였다.

“상락이라. 그거 네놈들이 먼저 하려던 것 아니였느냐?”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수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모리와 시마즈, 오토모 등 서쪽의 날고 기는 다이묘들에 상인과 농민들까지 가세한다지만, 이 거대한 군대를 하나로 추스르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하물며 상대가 여느 범상한 무장도 아니요, 오와리 한 구석에서 시작해 고작 몇 년만에 동국 전체를 아우르다시피 하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라면 더욱 그러하였다.

“그 상락이라는 것 말이다. 일본을 다스린다는 그 임금 아래에 있는 정승을 만나러 가는 것 맞지 않으냐? 지금은 임금도, 정승도 모두 허수아비 신세라고 들었는데.”

교황조차 ‘대웅전 큰스님’이라고 칭한 바 있던 임 당수의 내력을 잘 아는 히데요시는 굳이 그의 주군의 말을 고쳐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찾아간 다음에, 아예 정승을 폐해버리면 고민할 것도 없어지지 않겠느냐?”

“예? 하지만 저희는 아직 준비가...”

“아니, 네놈들 자유민주당 말고, 우리끼리 가자는 말이다.”

“예?”

임 당수를 겪은 지 여러 해였지만, 아직도 종종 놀랄 때가 있는 히데요시였다.

오와리 국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기요스(清須) 성. 천하포무(天下布武) 넉 자가 적힌 하타지루시(旗印)가 펄럭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질 수 없다는 듯 펄럭이는 깃발들 또한 볼만하였다. ‘에치고의 용(越後の龍)’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사가미의 사자(相模の獅子)’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

그 외에도 오다-도쿠가와 동맹, 그러니까 ‘동척사’ 군에게 아직 쓸려나가지 않거나 미리 바짝 엎드린 다이묘 중 그 이름 알려진 세력은 모조리 깃발을 내걸고 기요스 성 아래 모였다.

어딘가를 정벌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요, 그저 예순여섯 주의 앞날을 논하기 위한 회의였으나, 앙숙 집안들끼리 억지로 모으다 보니 다들 그 기세가 흉흉하였다.

“끝내 기나이(畿內) 쪽에서는 오지 않는구만.”

그런 흉흉한 기세가 께름칙하기는커녕 오히려 보기 즐거웠던 오다 노부나가가, 문득 보이지 않는 깃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미요시(三好)나 롯가쿠(六角) 씨로서는 못 올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요.”

다른 이명(異名)은 한사코 거절하며 그저 ‘동척사 사장’을 자처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얌전히 답했다.

자유민주당이 규슈와 주고쿠 땅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면서, 모리 씨를 필두로 한 서국 다이묘들의 운명은 그에 동참하여 앞장서거나, 막을 수 없는 물살을 거스르다 떠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었다.

반면 동척사 역시 어디선가 구해온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동국을 거의 하나로 뭉쳤다. 기요스 성 앞에 휘날리는 온갖 가문의 깃발은 그 증좌라 할 만하였다.

지금껏 허수아비 쇼군을 통해 막부를 장악하고 있던 기나이의 미요시 일족, 오미의 롯카쿠, 아자이(淺井) 씨 등 동과 서의 가운데 낀 무리들은, 그제야 저들이 난처한 지경에 처했음을 깨닫고 한창 두리번대는 중이었다.

“멍청한 놈들이지. 무가(武家)에 태어난 사내가 그런 변별도 못 한다니, 죄다 쌀이 아까운 놈들뿐 아니냐?”

기나이와 오미(近江)의 다이묘들 들으라는 것처럼 목청 높여 궁시렁대고는, 휙 돌아섰다. 이제 더 올 놈들은 없으니, 회의를 시작할 차례였다.

나무 삐그덕대는 복도 – 이에야스가 요새 몸이 불은 탓이었다 – 를 함께 거닐며, 바깥에 휘날리는 찬란한 깃발의 주인들 모이는 방으로 향하였다.

“돌이켜보면 린죠 그놈이 맞았다.”

“무엇이 말입니까?”

“멍청하다는 것. 이 노부나가조차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 멍청이였으니, 이 몸보다도 덜떨어진 나머지 무장이라는 놈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늘 그렇듯 휙휙 바뀌는 화제. 그러나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뜻한 바가 무엇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동척으로 들어오는 은에는 항상 노부나가에게 향하는 서한이 따라오곤 했다. 대명 내각수보 장거정이 보내는 글이었다.

학문에 뜻이 없을지언정, 결코 어리석지도, 앎의 가치를 낮추어보지도 않는 노부나가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다. 한동안 북경에서 오와리로만 오던 글은, 어느새 세 통에 한 통 꼴로 답서(答書)를 낳더니, 요새는 매번 주고받게 되었다.

노부나가는, 비로소 왜 자신이 조선의 천하인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었는지, 그가 노리는 바를 도저히 알 수 없었는지, 그리고 왜 그자에게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거북하다 여겼는지를 깨우쳤다.

그리고 천하의 주인을 가리는 싸움 따위는 시시하게 만들, 그 세상의 씨줄과 날줄 자체를 결정지을 크나큰 싸움에 자신이 한몫하게 되었음 또한 깨우쳤다.

“대단하지 않으냐, 우리는 그저 당나라라고만 부르던 대국의 힘이.”

“실로 큰 나라(大國)라는 말이 어울리지요. 당장 그곳에서 받아온 은자만 해도, 동국(東國)의 절반을 평정하고 나머지 절반을 이곳 기요스로 끌고 오기에 족했으니까요.”

조선의 천하인이 뚫어놓은 길. 바다를 타고 거미줄처럼 얽힌 길을 타고 온 세상의 소문과 배움이 오가고 있었다. 관심과 재물, 그리고 고루한 옛 생각을 때려부술 과감함만 있다면, 이제는 천하 한 구석의 일본에서도 능히 다다미 위에 앉아 천하의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모두,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눈이 크게 뜨였다. 마찬가지로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중화라는 거인의 힘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거기에 항거하고자 하야시 쇼군이 끌어모은 힘도 대단하지. 명국이 잠결에 흔드는 팔 하나를막아내는 데도 조선의 온 힘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럼에도 당당하게 그런 나라에 맞서고자 하고 있단 말이지.”

장거정을 통해, 그리고 일본의 운명을 두고 벌일 일대 합전(合戰)을 두고 노부나가 쪽에 판돈을 건 사카이 상인들을 통해 노부나가도 들을 만큼 전해들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 벌이는 포석(布石)에서 장거정은 밀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나는 생채기는 일견 하찮아 보이면서도 조금씩 거인의 혈맥을 건드리고 있었고, 속히 상처를 돌보지 않는다면 곧 걷잡을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러므로 저쪽이 바라는 것은, 상처가 도지기 전에, 또 자잘한 생채기가 더 늘어나기 전에 칼을 빼드는 것이었다.

“그 덕택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나는 그것을 놓칠 생각이 없어.”

그 대일통론에 따르면, 조선만큼이나 일본에도 설 자리는 마땅치 않을 것이다. 화(華)와 이(夷)의 구분에 있어 명과 조선 사이의 거리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었으니, 명과 일본 사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허나 노부나가는 거기에 만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반드시 이번 전란에서 장거정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공적을 쌓아, 멋모르고 휘날리던 천하포무 네 글자에 정말로 걸맞은 자리까지 올라갈 것이다.

“헌데 저들에게 그런 사정을 모조리 설명하실 심산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제게 얘기를 맡기시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부나가 화법에 당황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던 이에야스가 제의하였다. 허나 피식 하는 코웃음만 돌아왔다.

“하, 타케치요(이에야스의 아명)야, 네놈이 아니라 히노모토에서 가장 혀가 유들유들한 화상을 불러와 대신 설명하라 시킨들 어느 한 놈도 알아듣지 못할 게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하시렵니까?”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이에야스였다.

“네놈은 이 오와리 얼간이보다도 교활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딱 답을 한두 발짝 앞두고 헛발질을 할 때도 있으니 참 답답하단 말이야. 자, 보거라.”

그 말과 함께, 시종이 주군의 도착을 알리기도 전 노부가나는 제멋대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어젖혔다.

“그대들에게 딱히 격식은 차리지 않겠소. 아마 이 자리에 찾아올 만한 식견 있는 자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이 몸 노부나가가 그대들의 유일한 희망임을 능히 알아보았을 테니.”

오와리 얼간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노부나가 얼굴에 쏟아졌으나, 그뿐이었다. 나머지 다이묘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는 단념을 그 낯에 담는 것을 보며 노부나가는 냉소를 머금었다.

“맹세도, 인질도 필요치 않다 하였을 때는, 솔직히 말해 의심을 금할 수 없었소이다.”

호조 우지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케다 가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동진하던 동척사의 무패 군단과 한 번 맞서 싸워 대패한 그는, 사세를 재빨리 읽고 동척사 아래로 들어왔다. 자신이 애써 개척하고 있던 관동의 평야를 넘기는 대신, 후일 더 동쪽으로 자신이 진출해 새 영지를 일구는 데 도움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서쪽 땅에 후마슈(風魔衆, 호조 가의 닌자 집단)를 보내 사정을 살피니 납득하게 되었소. 장차 히노모토 예순여섯 나라가 무가(武家)의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가문 간의 원한과 이해는 제쳐두고 하나로 뭉칠 때요.”

이 자리에 모인 다이묘들은 동척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저들 집안의 첩자를 서쪽으로 파견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작 두세 해 사이에 규슈의 법도가 완전히 뒤집혔음을 보고하였다.

일공구민의 법도는 그 ‘카쿠부츠(격물)’ 이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모리 씨가 가장 먼저, 앞으로 이공팔민을 시행하되 전란으로 인하여 세금을 늘려야 하거나 풍년이 들어 세금을 줄여도 될 때에 대비해 장차 조선처럼 농민과 상인의 공론을 듣는 기구를 만들겠노라 하였다.

마츠라 당의 음모에서 늦지 않게 손을 뺄 수 있던 시마즈가 그 뒤를 이었고, 그렇게 되자 오토모와 류조지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와 더불어, 기묘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곧 서국 영주들이 상락을 할 것이다. 이로써 비로소 일본 땅의 전란을 마무리지을 것이다. 전란이 끝나게 되면, 무사들은 필요가 없다. 무사가 필요하지 않으면 세곡도 필요치 않다.

규슈와 주고쿠 백성들이 여기에 동참한다면, 그때는 그 어떤 무사도 이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카타나 날카롭다 한들 일백 명의 주먹을 당해내겠느냐? 당세구족(갑옷) 단단하다 한들 일백 명의 발길질을 당해내겠느냐?’

농민의 힘으로 그 어떤 무사도 하지 못하였던 일을 해낸다. 태평천하를 오로지 그들 손으로 이룬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였던 이야기가, 이제는 모두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었다.

“모리 씨야 그렇다 쳐도, 자유민주당인가 하는 그치들은 대체 무슨 심산인지 알 수가 없더군. 하기야, 지금 그것이 중한 계제는 아니지. 에치고의 모든 힘을 이 대의(大義) 위하여 내놓겠소. 전공만 확실히 셈해 주시오.”

동척의 창끝이 호조 쪽에만 향했기에 오다 군과 제대로 맞붙어보지 않았던 우에스기 겐신은, 무사로서의 의로움에 집착하는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였던 겐신은, 오히려 지금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징벌하고 겸사겸사 저의 영역도 넓힐 심정으로 오다 쪽에 동조하게 되었다.

“주군, 큰일입니다!”

“이런 자리에 네놈 멋대로 뛰쳐들어오다니, 네놈 목숨보다 큰일이기를 바라마.”

남을 섬뜩하게 하는 농담에도 불구하고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급한 소식이 맞는 모양이었다. 물론 멀리서부터 단숨에 달려오느라, 더 변할 수 없을 만큼 낯빛이 이미 벌게질 대로 벌게진 탓도 있을 테다.

“쇼군이 있는 니죠(二條)의 어소(御所)에서 변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괴한이 느닷없이 말을 타고 뛰쳐들어갔다고...”

“뭐라고? 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때마침 다른 가신 하나가 뛰쳐들어와 마치 물음에 답해주는 것과 같이 되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직접 온 것을 보니 어지간히 큰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주군, 큰일입니다!”

“똑같은 소리 두 번 하지 말고, 얼른 아는 대로 다 털어놓아라. 대체 무슨 일이냐?”

“하야시 쇼군! 조선의 천하인이 사카이에 닿았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준마와 함께 큰 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그제야 머릿속에서 얼추 정리가 되었다. 물론 그렇게 도출된 결론이 썩 사리에 맞지는 않았지만.

“푸하하! 역시 하야시 쇼군답군그래! 그러니까 사카이에 닿자마자 말을 달려서 쿄(京, 수도)로 향했다는 것 아닌가! 하기야, 소식이 전해지는 것보다 더 빨리 달려버리면 언제 어디서든 허를 찌를 수 있지.”

그러고는 곧장 정색하였다.

“미요시 놈들이 언제 저들의 이름뿐인 주군을 쳐내려 할지 모르는 이 때를 딱 골라 찾아오다니, 용기야 가상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지나친 일이 되었군. 이봐, 귤대가리(미츠히데)야! 네가 좀 수고를 해 주어야겠다. 즉시 말 타고 달려서 미요시 놈들에게 편지 한 통 전해다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를 만나기에는 최악의 때라 할 수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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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언급되는 황제 사망시의 예법은, 실제로 가정제가 사망했을 때 조선 조정이 택한 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비록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비록 상국이라지만 어쨌든 타국 군주일 뿐인 황제로 인해 국사를 전폐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에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작중 언급된 것처럼, 일본 전국시대에 상락(上洛, 상경)은 단순히 수도로 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오닌의 난 이후로 무력해진 무로마치 막부를 장악한다는 것은, 막부를 대신하여 무가(武家)의 사실상 좌장으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지요. 원 역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1568년 9월 미노에서 기나이로 출발해, 당시 쇼군을 허수아비로 삼고 기나이 일대를 지배하던 미요시 세력을 꺾고 상락에 성공합니다.

한때 기나이를 장악하고 쇼군마저 좌지우지하던 미요시 씨는, 심지어 1565년 에이로쿠의 변을 일으켜 마지막으로 실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한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살해하는 등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560년대가 지나면서 주요 지도자들이 허무하게 사망하고, 뒤이어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립 끝에 멸망하면서 오늘날에는 그 지명도가 다른 전국시대 무장들에 비해 매우 낮지요. 에이로쿠의 변을 둘러싼 미요시 씨와 쇼군 요시테루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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