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18화 (218/259)

65. 빛은 동방에서 (4)

잉글랜드 여왕 메리가 지난해부터 늘 지니고 다니는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배다른 동생 엘리자베스가 보내오는 편지는 모두 귀중하게 보관되고 있었지만 – 대개는 국가대사와 관련된 글이기 때문이었다 - 지금 여왕의 방 책상 한 편에 놓인 편지는 엘리자베스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종이와 펜의 품질로 보나, 그 위에 쓰인 글의 문체로 보나, 조야함을 겨우 면한 정도. 그러나 그 내용이 여왕의 마음 속 어딘가에 닿았으므로, 여왕은 그것을 항상 들고 다니며 떠오를 때마다 읽곤 하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왕보다 먼저 로마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빌럼 판 오라녀(Willem van Oranje)가 에스파냐 말로 물었다.

“물론이오.”

“계속 그 편지를 곁에 두고 계시던데, 이번 송사에 대한 글도, 폐하의 이름난 동생분으로부터 받으신 글도 아닌 듯하더군요.”

오라녀가 말한 송사란, 지금 에우로파를 뒤흔들고 있는 집안싸움, 즉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와 잉글랜드 여왕 메리의 이혼 소송을 말했다.

펠리페는 아내 메리의 ‘아들’, 찰스 오브 합스버그가 부정의 소산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메리는 장님이 아니고서야 저를 유혹할 마음 품는 사내가 있겠느냐며 대꾸했다. 어딘가 뒤틀린 유머 감각을 지닌 잉글랜드 사람들이 듣기에, 참으로 당당하고도 유쾌한 답이었다.

여왕의 인기는 즉위 초보다도 훨씬 높아져 있었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며 은근히 상잔에 지쳐 있던 신구교 양측을 어루만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바다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한 부(富)가 국민들을 열광케 하였다.

“제대로 보았소. 워윅셔(Warwickshire) 지방의 한 읍장이 내게 보낸 편지라오.”

“읍장이 편지를 보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재밌지 않소?”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이라는 제법 큰 마을의 읍장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가 여왕에게 바치는 진심어린 감사의 편지였다. 그와 그의 아내 메리는 성공회 교도로 가장한 채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여왕 덕분에 신앙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까지 얻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동방과 북방의 물산을 그 일대에 판매하는 소매업에도 손을 벌려 제법 큰 이익을 얻고 있었는데, 존 셰익스피어는 이 또한 모두 여왕의 공으로 돌렸다.

그러므로 그는 간청하기를, 곧 아내가 낳을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왕자 찰스의 이름을, 여자아이라면 여왕 메리의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고 하였다. 본디 이런 일은 누군가의 허락을 요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과 가족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생각하면 마땅히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아 편지를 보낸다는 말이 구구절절이 적혀 있었다.

(존 셰익스피어는 썩 훌륭한 문필가는 아니었으므로, 원래는 아이의 이름을 윌리엄으로 하려 했다는 둥 사족도 간간이 붙어 있었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이미 동방에서는 전쟁이 시작될 준비가 끝났다 하오. 그쪽의 전쟁이 언제 터질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 유럽에서는 이번 소송이 바로 그 계기가 되겠지. 자칫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전란을 눈앞에 둔 지금, 내 백성들이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소소하게나마 위안이 되어준다오.”

루터교도인 빌럼이 이곳 로마에 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펠리페가 메리를 고발한 항목 중 하나는, 메리가 부군의 나라 에스파냐를 공공연히 음해하고 반란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빌럼은 그에 반대되는 증언을 하고자 이곳 로마까지 찾아왔다.

이탈리아 연맹 결성과 함께 재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공인된 신앙의 자유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저지대 등 유럽 각지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허나 이 무렵 어지간한 ‘독실한’ 군주들이 그랬듯, 에스파냐의 펠리페는 이 신앙의 자유를 매우 느슨하게 해석하곤 했고, 저지대에 총독으로 파견된 알바 공작은 주군의 뜻에 따라 오히려 더 가혹하게 루터교도들을 탄압했다. 믿음도 믿음이지만, 그보다는 세수의 확보가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저지대에서 가장 인망 높은 인사였던 빌럼을 중심으로 독립을 꾀하는 이들이 모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희도 저희의 새 국왕께서 해협 양쪽에서 계속 사랑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군요.

송사가 끝나게 되면, 그 결론과 무방하게 저지대 북부의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등은 독립을 선언하고, 그들 모두를 묶는 연합왕국의 국왕으로 – 각 구성국의 군주가 아닌 전체 연합의 수장으로서 – 찰스 오브 합스버그를 추대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아직 연소한 저지대 연합왕국의 국왕을 대신해 잉글랜드 여왕 메리 튜더가 섭정을 맡고, 실무를 담당할 섭정 대리로는 오라녀 공작 빌럼이 취임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취임과 동시에 전쟁이, 아니, 대전쟁의 저지대 전역(戰役)이 시작될 터였다.

그때, 숙소를 지키던 시종 하나가 정중히 문을 두드렸다.

“폐하, 동인도회사 사장 엘리자베스 튜더가 접견을 청하고 있습니다.”

“들라 하게.”

빌럼과 메리 두 사람 모두 흠칫 놀랐지만, 그렇다고 찾아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놀라운 일이로군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내가 이곳 로마까지 온 것도, 절반쯤은 세간에 소문을 내는 데 그 뜻이 있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소식에 밝은 축에 드는 우리 ‘튜더 사장’이 소문을 먼저 듣고 찾아오는 것쯤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잉글랜드 배가 지브롤터를 자유롭게 통과하지 못하게 된 지금도 동인도회사를 비롯해 영국의 상인들은 마음껏 레반트와 런던을 오가고 있었다. 유럽의 미풍양속이 늘 그렇듯 이웃나라 괴롭히기를 즐기는 프랑스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 상인들에게 론 강과 센 강의 수운을 완전히 개방하고 물적 지원도 아끼지 않기로 한 덕이었다.

그러나 메리는 지브롤터를 거쳐 직접 이곳 로마까지 왔다. 저들이 감히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보다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픈 마음 때문에서였다. 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보통은 운하 공사 현장이나 인도양 어딘가를 누비고 다니시는 분이신데요.”

“저는 이미 지난 달부터 로마에 머물고 있었답니다. 언니 폐하께서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찾아오는 길인걸요.”

마치 저의 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뚜벅뚜벅 걸어들어온 엘리자베스가 빌럼에게 답했다.

갖춰야 할 예를 다 갖추고 인사까지 골고루 주고받은 뒤, 빌럼이 다시 물었다.

“이번 송사 때문인가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보네요. 하지만 아니랍니다.”

온 유럽의 눈길은 로마에 닿아 있었다. 이번 송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어느 한쪽은 일방적으로 불복하며 무력에 호소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시국에 그 어머니로부터 이혼 소송의 운명을 물려받은 잉글랜드 여왕의 이복동생이 로마에 찾아왔으니, 빌럼뿐 아니라 로마에 모여든 외교관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곤 하였다.

엘리자베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제야 메리와 빌럼 모두, 엘리자베스의 서글픈 표정에 눈이 닿았다. 무언가 거대한 슬픔을 감당하는 듯한 어두운 얼굴.

“언니 폐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러 왔을 뿐이에요. 이왕 빌럼 공도 찾아왔으니, 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저를 따라 밖으로 나와주세요. 긴히 갈 곳이 있거든요.”

“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러니?”

“마에스트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숱한 예술품과 건축물뿐 아니라 두 바다를 잇는 위대한 운하를 설계한 우리 시대의 위인이 지금 숨을 거두려 하고 있답니다.”

나이 아흔을 앞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시력을 잃은 것은 지난해 겨울의 일이었다.

눈이 멀었을 뿐 아직 정신은 멀쩡하던 그는, 미마르 시난에게 뒷일을 맡기고 로마로 돌아왔다.

‘아직 로마의 내 거처에 미완성 작품과 스케치 따위가 남아 있다오. 훗날 그것을 누가 보고, 내 재주가 별 볼 일 없었다는 엉뚱한 모해를 할 수도 있지 않소? 돌아가서 싸그리 불태워버리기 전에는 눈을 못 감겠소. 뭐, 이제는 눈을 감으나 뜨나 별 차이는 없지만! 크흐흐!’

그리고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대로 병석에 누웠다. 그가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붙들고 운하의 일에 매진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엘리자베스가 걱정하였던 대로였다.

“이대로라면 세상은 예술가 미켈란젤로, 괴짜 늙은이 미켈란젤로만을 기억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거기 만족할 수 없답니다.”

일국의 여왕, 그리고 곧 독립할 저지대 최고의 실력자를 뒤에 거느린 채 거침없이 로마의 거리를 걸어나가는 엘리자베스였다. 가뜩이나 키가 큰 엘리자베스가 성큼성큼 나아가니, 메리와 빌럼으로서는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꽤 고역이었다.

“운하를 뚫는 일은 구덩이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단순해 보일지언정, 실제로는 엄청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지요. 만약 마에스트로 미켈란젤로나 마에스트로 시난이 없었더라면, 지금 운하는 개통을 앞두기는커녕 공사를 이어갈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거에요.”

운하를 뚫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는, 임꺽정도, 이탁오도, 엘리자베스도 알지 못했다.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도, 그토록 현명하다는 술탄 쉴레이만도 여기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세상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시난, 예술가로만 알려져 있던 공학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운하의 꿈을 현실로 옮겼는지를 곁에서 지켜본 엘리자베스 한 사람이 예외일 테다.

“그런데 세상은 이 위인에게 충분한 경의를 표하고 있지 않은 듯하더군요.”

“그야, 임박한 전쟁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별 생각 없이 답한 빌럼은 엘리자베스의 날선 말투에 움찔하였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당신들에게 승산이 생긴 것은 미켈란젤로 덕분이지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가 몇몇 사람들의 공상으로만 남아 있었더라면,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과 베네치아의 도제, 바티칸의 교황이 손을 잡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강력한 우군 없이 저지대 홀로 독립을 꾀했다면... 글쎄, 저지대는 부유하고 에스파냐의 적은 무수하니 그러고도 이길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요. 수십 년을 질질 끌면서 저지대 전체가 황무지로 전락하게 되기는 하겠지만요.”

그사이 발트해의 패권을 두고 스웨덴과 경쟁하던 덴마크-노르웨이가 루스 차르국의 손을 잡기로 하면서, 예정된 전쟁의 전선은 더욱 넓어졌다. 이제는 유럽에서 이번 전쟁에 얽히지 않은 세력을 찾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저지대 홀로 에스파냐에 맞서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더 승산이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빌럼은 ‘침묵공’이라는 별명처럼 입을 꾹 닫았다.

그사이 이 기묘한 일행의 발걸음은 죽어가는 거장의 거처에 닿았다.

그리고 메리와 빌럼 두 사람은 또 한 차례 놀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딱 보아도 어딘가의 궁정에 드나들 것 같은 품격 있는 예술가들부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막일꾼까지,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온 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함께 수에즈 운하 현장을 오갔던 조수들도 제법 있었기에, 엘리자베스를 알아보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며, 앞장서서 길을 터주었다.

“사장님 오셨는가.”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햇빛 잘 드는 작은 방에 들자마자 노인의 목소리가 일행을 반겼다.

“어찌 아셨나요?”

“눈이 먼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우리 사장님 발걸음 소리가 꽤 독특하더군. 내가 본 여인 중 가장 키가 커서 그런가 보오. 그런데 뒤에 따라온 것은 뉘신가?”

“국왕 한 사람, 공작 한 사람. 그렇게랍니다. 제 언니, 잉글랜드의 메리. 그리고 제 언니를 따라 한바탕 반란을 일으킬 예정인 오라녀 공작 빌럼이에요.”

유창한 이탈리아 말로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고, 누추한 곳에 그런 분들께서 발걸음을 다.”

“교황 성하께도 험한 소리 하시던 분께서 왜 갑자기 겸손해지셨나요?”

“글쎄,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보지. 죽음은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거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랑스 국왕이 임종을 지켜주었다는데, 위대한 미켈란젤로는 한 술 더 뜨셔야 하지 않겠어요?”

평생의 라이벌이 거론되니, 다 죽어가는 늙은이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하하! 그건 또 그렇군. 그렇다면... 두 분 다 잘 와주셨습니다. 보시다시피 이런 몸이라, 예는 못 갖출 듯하군요. 여기 말괄량이 아가씨를 탓하시지요.”

미켈란젤로 곁을 지키던 조카 리오나르도,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무던한 성품 덕에 아직까지도 스승과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였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두 사람이 뒤늦게 의자를 가져왔다.

“그래, 정말로 늙은이 가는 길 지켜주려고 이 에우로파의 군주와 실력자를 끌고 온 것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그런 경의를 받을 만한 사람이니까요.”

어색하니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은 제쳐두고, 사장과 은퇴한 직원의 정담이 이어졌다. 이미 임꺽정이 두 사람 사이를 이으면서 격식이니 예절인지 다 때려부수고 돌아간 데다가 그간 쌓인 정과 존중이 또 두터웠던지라, 잉글랜드 왕위계승 서열 2위의 공주와 일개 피렌체 시민의 대화라고는 결코 여길 수 없을 만큼 격의없는 대화였다.

“이미 과분할 만큼 많이 받았네. 자유석공단 그 패거리 놀음을 아직도 진지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을 줄은 몰랐어.”

저의 성격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은 미켈란젤로 본인이 잘 알았다. 홀로 쓸쓸하게 죽을지언정 그런 성품을 애써 고치지는 않겠노라 다짐한 지 오래였으므로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겁니다.”

“정말 그런가?”

“물론이지요.”

엘리자베스가 오늘 아침보다도 더 생기를 잃은 주름 가득한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곧 온 세상이 전화(戰禍)를 맞이하고, 제 계산이 맞다면 적어도 둘 이상의 왕관이 새 주인을 맞이할 거에요. 그렇지만 전쟁은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대전쟁을 거치면, 사람들은 묻게 될 거에요. 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그리고 그 무렵 운하가 완공되면, 거기에 대한 답이 들어오게 되겠죠.”

“답이라?”

“네. 여섯 달 전에 디오시온의 수도 하니양에서 나온 따끈따근한 답이랍니다.”

한 번 동방을 다녀오려면 두세 해는 소요되던 시절은 어느새 먼 옛날이 되어, 계절과 바람만 잘 맞추면 능히 여섯 달 안에 인천에서 로마까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지구를 남북으로 종단하다시피 하며 모든 기후의 역병을 한 번씩 겪어야 했던 희망봉 항로에 비하면 수에즈 항로는 비교적 질병으로부터 안전하였으므로, 항구에 도착하고서 검역을 위해 열나흘간 묶여있는 일이 드물다는 점도 분명한 이점이었다.

그러므로 한양의 공회에서 벌어진 경이로운 일에 대한 보고는, 본사로부터의 구체적인 지령과 함께 동인도회사 사장 엘리자베스 튜더의 손에 늦지 않게 들어왔다.

“이 전쟁의 목적. 전쟁이 끝난 뒤에 열릴 새로운 세상의 원칙이지요. 우리가 만들기를 바라는 세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다 이루지는 않았어도 가장 큰 기둥 하나쯤은 세웠다고 할 만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한양에서 선포된 국인선서의 주된 내용 중 몇 가지만 추려서 읊어주었다.

곧 노스트라다무스가 멋모르고 펴낼 『이탁오 선생 주해 맹자』의 서문에도 실릴 내용이요, 엘리자베스의 계산대로라면 다가올 여러 세대 동안 수많은 군주의 속을 썩이게 될 내용이었다.

토마스 모어 같은 이들이 그린 이상세계 속의 국가도 아니요, 뻔히 동쪽에 있는 사람 사는 나라, 그것도 – 엘리자베스의 희망 섞인 예상대로라면 – 다가올 전쟁을 이겨내고 우뚝 설 나라에서 통용되는 원칙.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눈앞에 있는 자신의 나라, 자신의 군주와 그가 세운 법령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에스트로가 뚫은 운하를 타고 들어와, 온 에우로파를 한바탕 뒤흔들 거에요. 그리고 저도 몰랐던 갈등을 깨우친 사람들이 비로소 들고 일어나겠지요.”

당장 이 집 바깥을 지키는 자유석공단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지난날 교황마저도 막아세운 자유석공단은 이미 이탈리아 도시 귀족들의 근심걱정으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으니.

언뜻 허무맹랑하다 할 만큼 거대한 이야기. 어디까지 흘러갈지 짐작도 되지 않는 이야기에 미켈란젤로가 기침 섞인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평생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생각하네. 물론 작고하신 여러 교황분들과 몇 번 다투기는 했지만, 그건 그쪽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그런 것이고. 임꺽정이 그놈은... 그건 정치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라고 해야겠지. 굳이 따지면 자연재해쯤 될까.

그렇지만 우리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세상은.... 글쎄, 나쁘지 않군. 좋은 이야기야. 암. 특히 내 이름이 그 속에서 계속 회자될 것이라면, 더욱 그렇지. 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만나면 꼭 놀려주어야겠어. 결국 내가 이겼노라고 말이야.”

“죽음 뒤의 일에 대해 퍽 믿음이 확고하시군요.”

“당연한 것 아닌가? 저 하늘에서도 누군가는 조각상과 그림을 관리하고 또 새로 만들어야 할 테니, 나처럼 훌륭한 예술가는, 그리고 레오나르도 그 사람처럼 대충 일류의 말석쯤 될 만한 이들은 당연히 그쪽으로 가겠지.”

엄밀히 따지면 이단인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미켈란젤로였다. (물론 이제는 이단 행위는 파문 외에 그 어떤 세속의 처벌도 받지 않으며, 이단은 설득과 화해로써 다시 교회의 품으로 안을 대상이며 이단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공의회의 입장이기는 했다.)

“그나저나 두 귀빈께 이 늙은이가 소홀하였습니다. 송구스러운 일인데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될지요?”

엘리자베스가 금방 그 말을 옮겨주었다.

“여왕 폐하는 이곳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소문의 주제로 입에 오르내리고 계십니다. 폐하께는 언짢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떠들곤 한답니다.

잉글랜드 여왕은 고르곤보다 추하지만, 그 백성들은 저들의 여왕을 헬레네와도 바꾸지 않겠다고들 한다더군요.”

몇 년 전에 들었다면 필시 저를 놀리는 말이라 여겼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모르게 그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다 죽어가는 노인네의 주책맞지 못한 청인데, 이 눈이 멀쩡했을 때는 사람을 새로 만나면 어떻게 그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릴지 떠올리곤 했습니다. 소문의 잉글랜드 여왕 폐하를 이렇게 뵙게 되니,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괜찮으시다면, 폐하의 얼굴을 제가 만져보아도 괜찮을지요?”

엘리자베스의 간절한 표정을 몇 번 고쳐 본 메리 여왕은, 결국 눈 한 번 감고 늙은이 소원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력은 없지만, 말라붙은 살가죽 아래로 여전히 섬세한 힘줄이 느껴지는, 그리고 의외로 따뜻한 손이 곧 가까이 고쳐앉은 메리의 턱과 입가에 닿았다.

그리고 거기서 손이 떨어졌다.

“허허. 흥미롭군요. 아아, 십 년만 젊어서 지금 여왕 폐하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그렇소?”

“여왕 폐하의 입가에는, 마치 유로가 여러 차례 바뀐 강과도 같은 주름이 잡혀 있더군요. 사랑을 잊었다가 이제 다시 사랑을 받고 또 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은, 그런 입입니다. 어떻게 보면 운하와도 같다고 할까요? 막히고 말랐던 것이 다시 통하게 된 셈이니까요.”

눈먼 채 죽어가는 노인의 말이라기에는 너무나 예리한 답에, 메리는 놀란 나머지 그만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금 전 폐하의 동생분께서 꺼낸 이야기를 전해들으셨는지요?”

이 어색한 풍경을 가장 불편하게 여기던 조르조 바사리가, 궁정을 드나들며 익힌 프랑스어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조금씩 번역하여 귀빈들에게 전해주고 있었으므로,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이의 마지막 터무니 없는 궁금함을 풀어주셨으니, 노망난 늙은이의 주제 넘는 조언이라도 한 토막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폐하의 동생분은 제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 임꺽정이라는 도적놈 다음으로 위험한 사람입니다. 온 에우로파의 근심걱정이 될 만한 이야기를 퍽 태연하게도 늘어놓더군요.

바라건대 지금 되찾으신 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군주가 집권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릴 테니까요.”

“정치와 담 쌓고 산다던 사람치곤 굉장히 예리하시군요.”

메리가 미켈란젤로에게 방금 전 그 말의 뜻을 더 묻기도 전에 엘리자베스가 다시 끼어들었다.

“사장님 입으로 인정하지 않았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그런 사람일세.”

한바탕 껄껄 웃던 미켈란젤로는 어느 순간 제멋대로 말을 끊고 돌아눕더니, 그날 밤까지 이어질, 또는 영원히 이어질 잠에 빠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와 엘리자베스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메리에게 건넨 조언이 가만 듣고 있던 빌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은 끝내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교황청은 압스부르고의 펠리페가 제기한 이혼 소송을 기각했다.

그리고 다시 석 달 뒤, 저지대 연합왕국의 독립이 선포되었다.

빌럼은 자신이 그 자리에서 듣고 후에 엘리자베스에게 다시 들은 원칙을 그대로 옮겨 저들의 독립선언문에 담았다.

그 이후로도 툭하면 디오시온 이야기를 하면서 개명된 법도란 이런 것이라고 떠들곤 했는데, 그로 인하여 ‘침묵공 빌럼’은 몇 년 사이 ‘달변공 빌럼’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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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셰익스피어는 농사꾼으로 시작해 지역 유지까지 올라선 인물이었습니다. 아내 메리 아덴의 지참금과 본인의 적절한 투자감각 덕에 존 셰익스피어는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막 성장하던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 마을에서 주요직을 역임하며 나중에는 촌장으로까지 올라섭니다. 아들 윌리엄이 최고는 아닐지언정 그럭저럭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던 것도 이 덕분이었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커리어의 절정을 달리던 시기 존 셰익스피어는 마을 성당의 성화를 훼손한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실 존과 아내 메리가 비밀리에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과격한 개신교도 흉내를 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존 본인이 자신은 성공회 교인으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음을 고백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 문서는 현존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발견된 18세기 당시에도 진위 여부를 의심받았습니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그가 가톨릭 교도였다면 사회적 지위 상승에 열의를 보이던 그가 굳이 성화를 훼손하여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요.

이후 1570년대 후반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셰익스피어 집안의 가세는 기울었고, 존 셰익스피어는 집안의 토지를 팔아가며 겨우 생활을 유지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공백기(1585~1592)’를 이와 엮어 설명하는 가설도 여럿 있지요. 여하간 1590년대 중반 아들이 크게 성공하면서 존 역시 편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존의 평생 염원 중 하나였던, 집안의 문장(紋章)을 수여받는 것도 아들의 청원 덕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지요.

원 역사의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압도적인 에스파냐군을 상대로 한 힘겨운 투쟁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라녀 공 빌럼은 수 차례의 패배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에스파냐는 부채 문제와 잉글랜드와의 전쟁 등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잠시 네덜란드는 엘리자베스 1세를 군주로 모시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는데, 이는 영국-에스파냐 전쟁 발발의 한 가지 명분이 됩니다.) 네덜란드는 결국 군주 없는 공화국 체제로 독립을 결의하였고, 걸출한 지도자 마우리츠 판 나사우(침묵공 빌럼의 차남)의 지휘 하에서 에스파냐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저지대 북부(현 네덜란드)의 독립을 기정사실화합니다. 이후 1609년 에스파냐와 휴전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30년 전쟁으로 네덜란드의 독립은 완전히 인정받게 됩니다.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와 평생 티격태격 다투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년에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임종을 지켰다는 전설은 이미 당대에 유명했고, 최초의 미술사가로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가 다 빈치의 전기에서 이 일화를 언급하면서 널리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일화가 사실일 가능성은 많은 의심을 받습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인들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일화였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 예술가의 회화로도 그려진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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