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24화 (224/259)

67. 염리예토 (4)

단판 싸움으로 구마노 수군이 궤멸당하면서 세츠 앞바다도 안전하지 않게 되어, 척계광은 한참 떨어진 아츠타(熱田, 現 나고야 일대)에서 겨우 배를 타고 돌아왔다.

대명의 수사(水師, 수군)는 연안을 지키는 것이 고작. 심지어 왜구의 뒤를 잇는 ‘민주구(民主寇)’들이 기승 부리는 강남의 해안은 수사가 오히려 해적을 피해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드넓은 동쪽 바다에서 민주구가 준동하는 곳과 조선 수사가 오가는 곳을 피하여 바다를 건넌 뒤 연안에 바짝 붙어 천진으로 돌아오는 길.

장거정이 그토록 목소리 높여 외친 바, 작금의 중화는 허울뿐이며, 오로지 대일통을 이루어야 비로소 중화가 중화답게 바로 서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몸으로 겪으며 북경으로 돌아온 척계광은 쉴 틈도 없이 자금성으로 향하였다.

황제 본인도, 장거정도, 또 북경에 남은 관원들도 하나같이 금상 천자가 허수아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신하들은 황제에게 겉으로나마 예를 다하여 복종하였으니, 그들이 누리는 권세는 오로지 조정의 것이요, 그 조정의 상징이자 중심이 황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를 모르는 자는 장거정이 진작에 쳐내고, 그 자리에 장거정 기준으로 충심과 재간을 겸비한 인재를 앉혀두었으므로, 허울뿐인 황제를 두었을지언정 자금성의 기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하게 잡혔다.

그리하여 마땅히 바쳐야 할 예를 모두 바친 뒤에야, 척계광은 동창제독 풍보의 인도를 받아 문화전(文華殿) 앞 문연각(文淵閣)으로 향하였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바친 지구본과 중화의 모든 땅을 그린 지도, 그리고 그 위에 복잡하게 놓인 깃발과 오색의 말. 장거정 본인은 알 리 없고, 또 안다 한들 외려 노여워하겠지만, 바다 건너 한양 사업당 깊숙한 곳에 차려진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고생하였소.”

그 앞에 서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던 장거정이 희색 띄우며 척계광을 맞이했다.

“분수에 넘치는 황은을 입은 몸으로 어찌 여로(旅路)의 고역을 마다하겠습니까.”

“천진에 닿자마자 부친 수본(手本, 자필로 쓴 보고서)는 잘 받아보았소.”

조선 민주당의 온갖 수작과 장거정 본인의 맞불로 말미암아 숨가쁘게 터지고 있는, 장차 천하를 경영할 방도를 두고 벌이는 전란.

그 전란에서 일본국 군사들이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지, 그리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전초전 동향을 살피기 위해 척계광은 명을 받들어 동쪽 바다를 건너갔다 왔다.

“그대는 그 나라의 우대신 노부나가가 패전할 경우에도 그 군사는 어떻게든 수습하여 우리 대명에 보태는 것이 옳으리라 하였지. 이 수본에서도 그 논조를 굽히지 않고, 비록 그리 될 공산이 크지는 않지만, 동군이 패전하게 되면 군사와 그 일족이 일시 우리 대명에 의탁할 수 있도록 주즙(舟楫, 선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고.”

그 무엄한 ‘국인선서’ 이후로 명과 조선은 사실상 적대하는 사이로 돌아섰다. 그러나 중원의 (달단 북적北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천조가 조선을 정벌하는 것은 당태종과 연개소문이 맞붙던 시절 이래 처음이었으므로, 아직 양쪽 모두 힘을 모으는 중일 뿐이었고, 따라서 양측의 편의에 따라 어느 한쪽도 선뜻 전서(戰書)를 보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힘을 모으는 데 있어 일본이 중대한 장기말이 될 것임은 임거정이든 장거정이든 동의하는 바였다. 내놓을 수 있는 병사의 수도 적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그 나라 조정을 장악한 이는 백 년 전란으로 다져진 강병(强兵) 수십만을 끌어 쓸 수 있게 되니 실로 중대한 이점이었다.

“허나 이런 논의는 모두 일본의 동군이 패전할 때의 이야기요. 그런 공산이 얼마나 되겠소?”

“소장이 살핀 바로는 이렇습니다. 소장이 떠나기 전 임거정과 소위 의병으로 말미암아 우대신 신장(信長, 노부나가)은 능멸당하고 군기(軍紀)는 흐트러졌으며 수군은 복멸(覆滅)당하였으니, 신장, 아차, 노부나가는 부득불 동군을 이끌고 서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병법으로 따지면 적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我)가 적에게 제어당하는 것이니, 승산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물론 그래보아야 팔구 성(成, 할)쯤 되었던 승산이 육칠 성 정도로 떨어진 데 불과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 아래에 모인 무장들의 군사로만 따지면 능히 서군 무장들을 압도할 수 있었을 동군이 오히려 패전하게 될 공산도 곱절 이상 늘었다는 뜻이었다.

“허나 누군가 그대에게 귀띔해주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그 뜻에 동의하지 않소. 저들이 일본 안에서도 패배하는 약병(弱兵)이라면, 지금 마닐라에 머물러 있는 에스파냐 수사를 굳이 움직이는 수고를 들일 것까지 있겠소? 

차라리 그 땅에 남아 계속 소위 자유민주당과 신정부를 견제하도록 하고, 에스파냐 수군은 그 세를 감추어두었다가 장차 조선을 정벌할 때 수륙병진(水陸竝進)하는 데 쓰는 쪽이 낫겠지.”

평소 저의 아랫사람에게 철저한 상명하복을 기대하는 장거정이었으나, 자신이 그 재주 인정한 상대, 그러니까 본인 말로는 ‘함께 대일통을 위해 힘쓰는 동지들’에게는 항상 귀를 열곤 했다. 

그러므로 척계광도 장거정의 반론에 주눅이 들기는커녕 당당하게 저의 뜻과 그 근거를 풀어놓았다.

“소장은 무관입니다. 무관은 황상과 조정의 뜻을 받들고, 그 뜻을 어떻게 전장에 옮길지를 고민하는 자입니다.

소장이 이해하기로, 수보 대인께서는 수십 년의 장구지계 대신 몇 해 안의 짧은 싸움으로 조선을 꺾고 대일통의 경장을 마저 이룩하려 하고 계십니다. 

조선을 치기 위해 필요한 군세를 그 사이에 마련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수십만 대군을 일으킨다 한들 그중 삼분지일은 장부 위에만 있는 군사요, 또 삼분지일은 사람은 있으되 병사로서 한 사람 몫은커녕 짐이 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수 년 안으로 조선을 치려면, 일본의 강병을 반드시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군이 패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또 그럴 공산이 아직은 더 크지만, 만에 하나 동군이 패전할 때에도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논리정연한 척계광의 말이 끝나고, 문연각 안의 모두는 장거정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리에 맞는 말씀이오. 이전이라면 선뜻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그사이 또 한 번 우리 동쪽 번병의 형세가 변하였으니.”

두리손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선 안에 있던 동창의 끄나풀들은 궤멸당하고야 말았다. 

이성량처럼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치든, 제 발로 천조를 버리고 조선에 붙든, 아니면 그 생사조차 묘연해지든 하였으므로, 이제 동창이 조선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길은 고작해야 요동을 통해 변경의 정세를 살피고, 강남 일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민주구들 사이에 세작(細作, 첩자)를 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진짜 속내를 제외한 조선 안의 동향은 오히려 동창이 장거정과 풍보의 손으로 재편되기 전보다도 훨씬 훤하게 알게 되었으니, 당장 장거정 앞 서안 한편에도 놓여 있는 공보(번역본)와 정론보 덕이었다.

“민주당 수괴 중 하나인 율곡이 얼마 전에 이런 글을 냈더이다. 그대가 머물던 군영에는 아마 공보도, 정론보도 잘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아직 읽지 못하였을 것이오. 일독을 권하는 바요.”

장거정이 그 종이더미 사이를 몇 번 더듬더니, 세필(細筆)로 붉게 테두리 친 자국 선명한 몇 달 전 정론보를 꺼냈다.

테두리 안쪽에는, ‘십만양병소(十萬養兵疏)’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율곡 가로되, 무릇 양민(養民, 백성을 기름)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양병(養兵)을 논할 수 있꼬, 반대로 양민이 결실을 맺으면 반드시 양병을 도모해야 그 성과를 지킬 수 있음이라.

하여, 이미 지난날 영의정 이준경 아래서 환골탈태한 관군에 덧붙여, 다가오는 전란에 맞서 조선의 개명된 법도를 지켜낼 군사를 더욱 늘리고 전란이 끝날 때까지는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조선에서 십만 대군이라면 정말 십만 대군일 것이오. 우리 대명이 본받아야 할 점 중 하나지.”

당장 지금 일본의 신정부를 돕는다며, 조선 조정에서 출연하는 재정과 각 당에서 모으고 있는 의연금(기부금)만 하여도, 중간에 포흠(횡령)하지 않고 그대로 일본 백성 돕는데 쓰이고 있다며 그 장부를 공개하고 있지 않던가.

(다만 거기 쓰이는 재정의 대부분은, 끊어지지 않는 정도를 넘어 평시와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돌아온 명과 조선 사이의 교역, 그리고 역시 끊어질 기미 없는 민주구의 해적 노릇으로 벌어들이는 것일 테니, 자금의 출처는 생각하지 않는 쪽이 정신에 이로웠다.) 

“상하(上下)가 단합하고 양장(良將)의 통솔을 받을 때면 그 당태종조차 정벌하지 못하였던 것이 바로 해동(海東)이오. 이를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소?

앞으로도 군무에 있어 모든 일은 척 공 그대에게 일임하겠소. 설령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감수해야 하겠지.”

척계광은 읍(揖)하며 장거정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잠시, 혼간지 앞에서 만난 오다 노부나가가 그들의 대의, 가장 현량한 이의 아래에서 펼쳐질 대일통의 천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점을 고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하였으나, 그런 일은 군무에 들지 않았으므로 곧 단념하였다. 

구마노 수군의 총통에 맞아 너덜너덜해진 배가 – 이순신에게는 다행히도, 손옹의 동생뻘 되는 다른 카락선이었다 – 끝내 오래 가지 못하고 가라앉았기에, 꺽정이와 이탁오는 홀딱 젖은 채로 히메지 성에 돌아왔다.

“어떻게 살아서 돌아오셨군요.”

히데요시가 키득키득 웃었다. 

“뭔 잡소리냐. 내가 멀쩡히 살아서 뭍에 닿은 것 뻔히 보았으면서.”

“그야 당연히 당수시니까 살아 돌아오실 줄 알았지요. 허나 우리 검손당 아씨야말로 구마노 수군보다 무서우신 분 아닙니까. 화살 맞고 사경 헤맨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포화를 뒤집어썼느냐고 한 소리 들으실 줄 알았는데요.”

히히덕거리는 두 사람과 달리, 그들 곁에서 꺽정이와 이탁오, 그리고 류큐 사람들이 목숨 걸고서 살피고 온 적정(敵情)을 정리하고 있던 권율과 이순신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기실 히데요시도 꺽정이가 막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들과 함께 심각하게 종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끄럽다, 이놈아. 그러는 네놈은 어디 얼마나 안 붙잡혀 사는가 두고 보자.”

“아이고, 우리 네네는 안 그럴 겁니다.”

“그래, 깨 쏟아질 때 실컷 좋아하려무나.”

하필 그때, 드르륵 미닫이문 열리며 명희 본인이 나타났기에, 그 옛날 흑의영에서 열심히 모래 들이마시며 구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 히데요시는 금방 입을 닫았다.

“제 낭군이 시석(矢石) 무릅쓰는 것이 어찌 달갑겠냐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었고 또 그만한 소득도 있었으니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답니다.”

다행히도 지난날 꺽정이가 코우즈키 성 앞에서 니탕카이네 마병 사이에 섞여 함께 돌진한 일은 명희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낭군의 안사람이 아닌, 민주당의 중진 중 하나로서 말하자면 그런 위태로움을 감수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애써 모은 적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희 또한 얼추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 낯빛이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또 한동안 못 볼 아들딸과 놀아주고 오느라 소식 못 들었소. 사정이 그리 안 좋소?”

좌중에서 유일하게 소식 못 들은 꺽정이가 물었다.

“단도직입으로 답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이순신이, 지난날 코우즈키 성 싸움에서 이쪽의 손에 들린 패 하나가 드러났으니 저쪽의 사정도 살펴야 할 것이라 주장하여, 노부나가를 도발하기도 할 겸 동군 진영을 다녀온 꺽정이 일행이었다.

비록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남의 손으로 정체가 들통나버려 급히 도망쳐야 했고, 그 탓에 매끄럽게 적 수군을 유인하는 대신 배 한 척 잃어가며 겨우 빠져나와야 하긴 했지만, 어쨌든 계획 자체는 성공한 셈이었다.

“적세(敵勢)가 생각보다 크기도 하거니와, 그 단합도 아주 굳건하더군요.”

백 년 전란이 헛되지 않아, 일본의 명운을 좌우하게 될 이번 싸움의 양측 군세는 각각 십만을 훌쩍 넘겼다.

오다와 도쿠가와, 호조와 우에스기, 그리고 미요시 일족이 바스라진 뒤에 합류한 기나이의 무장들까지, 도합 십이만 대군.

반면 서군은 같은 십이만이지만, 개중 민병이 오만 명 – 코우즈키 성 전투 이후로, 추가로 훈련을 마친 이들이 합류해 규모가 더 불어났다 – 이요, 거기서 다시 조선과 여진 등에서 모인 의병까지 제하면 모리와 시마즈 등 무장이 거느린 군대는 육만오천 가량에 불과했다.

물론 실제로는 혼간지 안에 갇혀 있는 이들도 서군 소속이고, 동군 안에서도 그 포위를 유지하고 교토를 지키는 데 병력을 할애해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열세는 열세였다.

“임 당수 덕에 겨우 저들을 뒤흔들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어휴.”

히데요시의 한숨이 다다미를 뚫을 듯했다.

더 큰 군세를 가지고도 요도가와에 의지해 버티면서, 혼간지 구원을 위해 동진하는 서군을 격파할 심산이었다던가. 그저 이기기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압승을 거두어 향후 일본 안에서 노부나가의 천하인 집정(執政)에 이의 제기할 엄두도 못 내도록 하려는 심계였을 테다.

“그래도 저들로 하여금 먼저 움직이도록 만들었으니, 우리가 노릴 부분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저들은 우리의 수를 모두 알게 되었다 여기고 있지만, 아직 우리 품에 아주 잘 드는 비수 하나가 남아 있으니...”

이순신이 저의 생각을 꺼내려던 차, 나무 바닥 우드득대는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구로다 간베에가 나타났다.

“허억, 큰일입니다! 지금 성 아래에 우대신이 보낸 사절이 당도하였는데, 당수를 직접 뵙겠노라 하고 있습니다!”

“뭐, 그 정도야 그냥 받으면 될 것이지, 호들갑은.”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반드시 이곳 히메지에 모인 이들이 모두 입회하여야만 서신을 건네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간베에가 이렇게 숨 헐떡이며 달려올 만큼, 심상치 않은 단서가 붙어 있었다. 다들 갸우뚱하는 사이, 꺽정이가 먼저 삐걱대는 다다미 밟으며 일어났다.

“기껏 온 놈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꺽정이가 이탁오와 야스케 등과 더불어 동군 잠입을 준비하는 사이 – 가짜 관복을 만들 옷감, 진천뢰 등등, 준비할 물건이 꽤 많았다 – 속속들이 히메지에 모여든 서군 무장들은 그 면면이 실로 화려하였다.

모리 모토나리가 장남 타카모토에게 뒤를 맡긴 뒤 깃카와와 코바야카와 두 집안에 입양보낸 아들들을 거느리고 찾아오고, 질 수 없다는 듯 시마즈 사형제도 사츠마를 지키고 있는 요시히로 한 사람만 빼고 모두 각자 군을 이끌며 찾아왔다.

민주당 사람들이 천주교를 좋아한다는 풍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예 세례명 외 다른 이름으로 저를 부르는 것을 금한 오토모 프란치스코(오토모 소린), 히라도의 마츠라 가가 단숨에 쫓겨난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온 힘을 모아 히메지로 온 류조지 타카노부(龍造寺隆信) 등등.

그 위세등등한 이들을 앞에 두고 조금도 위축되는 기색 없이, 서군의 진짜 상전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구경하듯 서군 무장들을 바라보는 것은 바로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는 맹장,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였다.

“조선의 천하인 임 당수를 뵙습니다.”

그렇게 허리 빳빳하던 시바타는 딱 보아도 임꺽정처럼 생긴 거한이 나타나자 예의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꺽정이가 하도 일본 전역을 저의 집 드나들 듯 헤집고 다니면서, 적어도 본인 앞에서는 그를 ‘임 당수’라고 제대로 호칭해주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꺽정이는 ‘하야시’니 ‘흑염룡’이니 하는 소리 접어두고 제 성을 똑바로 불러준다는 사실만으로 흐뭇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뭔 꿍꿍이로 이리 찾아왔느냐?”

“어찌 당수께 비하겠냐만, 저 역시 ‘귀신 시바타’라는 과한 별명을 얻을 만큼 용맹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무슨 계략을 주군께서 쓰고자 하셨다면, 저를 보내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쭙잖게 머리를 굴리지 않고 처음 계획한 것을 곧이곧대로 옮길 것이라 예상하고서 지모보다는 정직한 무용으로 이름난 이를 보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군께서는 반드시 이 서신을, 다른 서군 무장들이 보는 앞에서 전달드리라 하셨습니다. 명을 받들어 이곳까지 왔으니 그 명에 따를 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겉봉을 뜯은 꺽정이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거 봐라?”

동척사 아래에 조선말 할 줄 아는 자가 있었는지, 서신은 두 통인데 하나는 일본 글로 쓰여 있고 다른 하나는 국문과 진서 섞인 글 – 꺽정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유행시킨 그 문체 – 로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오다 녀석이, 이 서신에 쓰인 내용을 다른 놈들도 훤히 알게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는 것 아닌가?”

“주군의 심계를 어찌 가신이 함부로 헤아리겠습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신을 건네었으니, 그 서신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바탕 큰 싸움을 앞둔 마당에, 서신의 내용을 감추는 것은 의심과 내분을 스스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 

허나 서신의 내용을 모두에게 밝히자니, 꺽정이가 얼추 흩어보아도 그 내용이 참으로 심란하였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구만. 얼른 네놈 주군에게 돌아가서, 임꺽정이가 서신 잘 받았으니 조만간 답장할 것이라고 전해주려무나.”

얼른 돌아가서 저의 머리 좋은 벗들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할 생각으로 꺽정이가 답했다.

그러나 흑염룡의 무위에 대해 온갖 소문만을 들었을 뿐인 시바타는 그 침묵마저 멋대로 해석하여, 마치 저들이 무슨 거대한 계책에 이미 걸려든 것은 아닌가 의문을 품었다.

“임 당수가 우리를 뒤흔들었으니, 우리도 임 당수를 뒤흔든다. 그뿐이야. 네놈이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계책이 있다면 뭐 어떠냐? 인생 오십년, 힘으로든 머리로든 싸움에서 밀리면 그냥 죽는 것이 무사의 삶이다.”

히메지 성에서 돌아온 카츠이에를 맞이하며 노부나가가 답했다.

그 서신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임 당수 보시오. 

지난날 우리 누추한 군영에 찾아와 지내시느라 참 고생을 많이 하였소. 그 덕에 우리 군이 크게 뒤흔들려,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나아가 일전을 치르게 되었소.

이미 서군 무장들 군영의 허실은 우리 쪽에 뛰어난 첩자들이 많아 속속들이 알고 있소. 또한 우리 동군의 허실도 임 당수의 활약으로 그쪽에 알려지게 되었지. 또 서로 이렇게 피곤한 일을 겪지 않도록, 아예 우리 쪽 계책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소.

동군은 곧 셋으로 쪼개어, 하나는 혼간지를 계속 포위하게 하고, 하나는 교토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게 하고, 마지막 가장 큰 덩어리로는 히메지를 공략할 심산이오.

그대 또한 서군 따르는 무장들 앞에서 체통을 세워야 하니, 그 병력을 거느리고 히메지에서 농성을 하느니, 차라리 그 사이 바닷가의 벌판에서 합전을 거하게 벌이고자 하겠지.

장담컨대, 동군과 서군 사이의 격차를 생각하면 그대들은 미리 알려주어도 막지 못할 것이오. 정직한 일전으로도 이기지 못할 것이요, 병력을 빼돌려 교토를 급습한다 한들 군사의 질과 양 모두에서 밀리니 이 또한 이루지 못할 것이며, 체통을 버리고 히메지 성에서 버틴다 한들 패배할 때까지 걸리는 시일만 늘어날 뿐이외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신을 보내어 알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당수에게 제의하기 위함이오. 

내가 오와리에서 몸을 일으켜 여기에 이른 것은, 오로지 이 땅의 전란을 끝내고 가장 현량한 사람으로서 번영과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었소. 그러나 지난날 사카이에서, 그리고 이번에 혼간지 앞에서 당수 통해 품게 된 의심이 있었소.

가장 현명한 이, 철인(哲人)의 다스림이 반드시 가장 올바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새로 세워질 일본의 제도를 시험하듯, 동군을 꾸리면서 각양각색의 동군 무가(武家)를 하나로 묶어냈건만, 그들 사이에서도 그대들로 말미암아 의심이 깃들고 단합에 금이 가고야 말았지.

당수가 참으로 비겁한 술수를 쓴 탓이오. 당수는 당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격물로써 증명하였는데, 철인이 다스리는 나라가 열릴 기회는 어찌 빼앗으려 하시오? 그러므로, 현명한 이의 다스림에 대해 이 사람 또한 격물을 시행하고자 하오.

기억해주시오. 당수가 백성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얼마나 많은 일본의 백성이 그에 찬동한들, 아직 이 나라는 무사의 나라이며, 무사야말로 이 나라 일본에서 가장 현량한 자들이오. 그들이 이끄는 군대가 그대의 군대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이번 격물의 답을 구할 따름이오.

그러나 모든 배움이란 당수의 스승께서 말씀하셨듯 의심에서 시작하는 법. 그러므로 만약 신불의 가호가 있어 우리 동군이 합전에서 승리하더라도, 규슈 한 곳은 그곳 사람들이 스스로 다스리도록, 당수로 인하여 바뀐 법제를 백성이 원한다면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소. 

후쿠하라(福原, 現 고베의 시초가 되는 옛 지명)의 바닷가 벌판에서 뵙겠소.’

자신이 써서 보낸 글을 한참 반추하던 노부나가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네 녀석도 대충 내 글을 읽어보았겠지?”

“어찌 그리 말씀하시는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전히 속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바타 녀석은 전장에서는 귀신 소리를 듣지만, 그 바깥에서는 사람이 고지식하고 정직하기만 하니까. 네놈이든 네놈 수하의 누구든, 쉽게 찾아가 꼬드길 수 있었겠지. 그렇게 주워들은 것을 바탕으로 짜깁기만 해도 내 글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과연 우대신께서는 빈틈이 없으십니다. 빈틈마저도 우대신 뜻대로 보인다는 말이 더 맞겠군요.”

“시끄럽다, 타케치요. 그래서, 어찌 보느냐?”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한참 승산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군 안에서도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만약 하야시 쇼군이 억지로 이를 감춘다면, 그때는 또 그때 나름대로 우리가 계략을 쓸 여지를 남길 것이고요.”

서신에는 노부나가가 이끄는 동군 각 부대의 수효와 그 장수까지 세세히 적은 목록이 첨부되어 있었고, 동군의 후마슈와 이가모노(모두 닌자 집단의 명칭)가 취합한 서군 군세의 목록도 덩달아 들어 있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승산이 적은 싸움임을, 같은 수라 하더라도 무사의 세상을 지키고 전란을 끝낸다는 노부나가의 대의에 공감하여 모인 동군이 훨씬 강력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면, 그리고 주고쿠가 본진인 모리라면 몰라도, 나머지 다이묘들은 아직 이 난리통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에야스 말마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계략으로만 보았느냐.”

“다른 뜻도 물론 있으셨겠지요. 무사 대 백성의 격물. 그 대목도 진심 아니셨습니까?”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과연 거기 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임 당수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서군이 무사들로만 뭉쳐 덤빈다면 동군은 백성들로 이루어진 민병으로만 상대하겠다고 할 리는 없었다. 수로 보나, 군사의 질로 보나, 서군 또한 무장들이 거느린 군대에 의존하고, 의병이니 민병이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책(奇策)의 수단으로 쓸 뿐일 터.

그리고 그 기책이 어떠한 것인지는, 이미 몇 번이고 벌어진 서전(緖戰)으로 다 드러났다. 조선에서 들여온, 일본의 그것보다 더욱 정밀한 화포, 조선의 북쪽에서 데려온 여진의 ‘붉은 마병’들이 주력이요, 고심해서 만들어낸 민병은 서군의 부족한 수를 채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옛날 흑염룡의 무위에 감탄하고 그가 이끌어온 새 세상의 문물에 열광하던 오다 노부나가로서는, 한때 저에게 그토록 큰 깨달음을 준 그이로부터 답을 듣고 싶기도 하였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이 군막의 천을 뚫고 들어온 것은.

“무슨 일이냐?”

미츠히데에게 물으니, 금방 답이 나왔다.

“그것이... 혼간지 성벽 위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분이라도 일어난 게냐? 그러면 오죽 좋겠냐만...”

“아닙니다, 주군. 그, 들어보시는 게 더 빠를 것입니다.”

답답한 귤대가리라고 욕하려던 노부나가는, 그래도 저를 몸으로 감싸준 공 아닌 공이 있음을 감안해 조용히 참고 군막 밖으로 나섰다. 

“오늘 아침에 모리 수군이 혼간지에 군량을 보급하러 들어갔는데, 그때 원군 또한 혼간지 안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구마노 수군이 참패하면서, 다시 혼간지에 대한 해상 보급이 시작되고 있었다. 헌데 이제 보니 군량만 실려있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와리의 얼간이는 들어라!”

“무장이랍시고 떠드는 놈들도 마저 들어라!”

임꺽정의 답변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짧은 시일 동안 저리 많은 백성들을 모아, 그들로 하여금 한입으로 외칠 수 있도록 하였다는 말인가?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浄土)! 무사의 다툼으로 더러워진 이 세상, 백성의 손으로 깨끗하게 만들리라!”

정말로 무사를 백성으로만 상대하겠다는 말. 그것이 어떤 당당한 결의인지, 아니면 그저 허장성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혼간지 안에 피신한 백성들의 심금은 제대로 울린 모양이었다.

그 어떤 명필보다도 더욱 힘차게, 밤하늘의 공기를 종이삼아 힘차게 구호가 외쳐지고 있었다!

“염리예토, 흔구정토! 교토가 마저 불타리니, 비로소 세상이 깨끗해지리라!”

“염리예토, 흔구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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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명한 ‘염리예토 흔구정토’ 우마지루시는 10세기에 저술된 불교 서적 『왕생요집(往生要集)』이 그 출전입니다. 이후 정토종 불교가 개창되면서 왕생요집 역시 일본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지요. 작중에서 혼간지 내의 일본 백성들이 이에야스의 모토였던 것을 그대로 빼돌려,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선전포고처럼 쓰게 된 것은 이러한 맥락이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전국시대를 거쳐 단련된 일본 군사는 정예병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서군 패잔병들이 동남아시아로 도주하여 용병으로 명성을 떨친 경우도 있었고, 원 역사 조선 역시 임진왜란 종전 후 한반도에 잔류한 항왜(降倭)를 일종의 특수부대 내지는 충격군처럼 운용하기도 했지요.

작중 지나가듯 언급된 모리 모토나리의 장남 타카모토는 원 역사에서는 1563년 병사합니다. 옛 오우치 영토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한 토호의 접대를 받았다가 급사하는데, 식중독이라는 설도 있고 독살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리 집안의 후계는 타카모토의 어린 아들 모리 테루모토에게 넘어가고, 조부가 뛰어난 숙부 두 사람과 함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상황 속에서 성장한 테루모토는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성품으로 자라나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허무하게 패배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지요. 작중에서는 모리 씨가 ‘민주당 코인’을 타고 훨씬 빠르고 매끄럽게 서국 제일로 자라나면서 그럴 일이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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