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26화 (226/259)

68. 나니와의 영광 (2)

서군 무장들이 히메지에서 효고로 출진하기에 앞서 먼저 출발한 민병 오만은, 넷으로 나뉘어 단숨에 단바의 산길으로 접어들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하지 않는 한, 신정부가 내세우는 일공구민 세법에 이끌리지 않는 농민은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하리마와 단바의 민심은 돌아선 지 오래였다. 

물론 백성들이 암만 민병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 한들, 그 호의를 이용할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 허나 동군에게는 불행히도, 민병을 꾸리고 이끄는 이들은 바로 그 백성 사이에서 일어난 자들이었다. 단바 산길의 어지간한 길목에는, 린죠 히데요시가 안배한 대로 다음 길목까지 길잡이 노릇할 이들이 뜨끈뜨끈한 주먹밥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길어야 일 년 훈련한 것이 전부요, 실전이라곤 코우즈키 성 앞에서 나 살려라 도망친 것이 그나마 경험 축에 들 정도였던 민병 오만이 어지간한 무사들보다도 더 빨리 산길을 주파해 단바에서 교토로 넘어가는 길목, 가메야마에 닿고야 말았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것은, 미요시 일족이 무너진 뒤에야 동군에 합류한 에치젠(越前)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와 일만 군대.

가메야마를 가마솥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타고 수상쩍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척후가 처음 발견한 것이 아침 다섯째(오전 7시~9시) 초(初).

아사쿠라 가문이 전공을 세울 때가 되었다며, 요시카게가 당당하게 군사를 전부 이끌고 진지 바깥으로 나온 것이 아침 다섯째 정(正). 

넷으로 나뉜 민병 무리가 딱 때를 맞추어 – 각 무리를 이끄는 흑의군과 자유민주당 사람들 손에 들린 서양 시계 덕이었다 – 아사쿠라 군을 삼면에서 포위한 것은 이미 그로부터 한참 전인 해뜨는 여섯째(오전 5시~7시) 초(初).

한여름에 꺼내놓은 얼음처럼 그 의기가 순식간에 녹아버린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급히 전령을 보내 ‘전황 극히 불리. 즉시 지원 바람.’이라는 전갈을 보낸 것은 아침 다섯째가 끝나고 낮 넷째(오전 9시~11시)가 시작할 때.

살아서 도망칠 수 있던 마지막 아사쿠라 군 무사가, 돌팔매에 맞아 깨진 머리에서 피 줄줄 흘리며 텐노잔 쪽으로 달아난 것은 낮 넷째가 끝나기도 전.

그 마지막 무사가 저의 발길, 보다 정확히는 자신이 탄 말의 발길 따라 정처없이 도망치다가 마침내 급히 교토로 향하는 아케치 군의 앞에 이르게 된 것은 이튿날 해질녘의 일이었다.

미츠히데 앞에서 낙마하듯 말에서 내린 무사의 몰골을 본 이들은 모두 침음성을 흘렸다. 그사이 상처를 돌보기는커녕,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인사불성인 자에게 무슨 일이냐 묻는들 답은 못 구할 터. 얼른 데려가서 미음이라도 먹이고 머리에도 천이라도 감아주거라. 저자가 정신을 차리는 즉시 내게 알려다오.”

아케치 미츠히데는 이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결심을 하였다.

“오늘은 여기서 숙영한다.”

그러나 하루 속히 상락(上洛)하여 교토를 지키는 것이 우대신 노부나가의 명이 아니었던가? 노부나가의 성정을 아는 미츠히데의 수하들 사이 불안한 눈길이 오갔다.

“아사쿠라 군이 이미 붕괴했다면 서둘러 교토로 올라가는 것은 오히려 패착이다. 저 텐노잔(天王山) 길목만큼 매복하기 좋은 곳도 없을 터. 잊지 마라. 적은 오합지졸 농민 무리지만, 그들을 이끄는 것은 서군의 그 어떤 무장보다 지략이 뛰어나다는 두 사람이다.”

서군의 동정을 속속들이 전해준 류조지 타카노부에 따르면, 조선과 그 외 천하 각지에서 온 의병은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이미 한 번씩 가공할 위력을 보인 조선 포병과 여진 마병이 각각 하나요, 흑의군과 에스파냐 용병 등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마지막 하나였다. 이들은 전선에 나서는 대신, 민병이 그나마 군대 꼴은 갖출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주력한다고 하였다.

그 의병을 이끄는 장수는 권율로, 본인 또한 무재가 출중한 인물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하였다. 그러나 류조지가 가장 진지하게 경고한 것은, 권율을 돕는 두 사람이었다. 

민병을 꾸리고 움직이는 계책은 그를 돕는 자유민주당 영수 린죠 히데요시와 종사관 이순신이라는 자 둘에게서 나오는데, 류조지의 평에 따르면, 히데요시의 군재는 ‘이걸 어떻게 이겼느냐’ 하는 탄성이 나오는 기책(奇策)이 장기요, 이순신의 군재는 ‘이걸 어떻게 이기느냐’하는 원망이 나오는 정공법이 장기라 하였다.

“그러므로 아사쿠라 군을 멸하면서, 이를 들은 우리 군이 급히 상락할 것도 염두에 두었을 게다. 장담컨대 적은 교토로 향하는 대신 가메야마에서 곧장 텐노잔 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저 산속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텐노잔은 단바 국을 가득 메우는 높고 낮은 산줄기 끄트머리에 삐져나온 야트막한 산으로, 교토와 그 인근의 크고 작은 개울이 한 군데로 모여 요도가와 강물로 화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텐노잔 기슭과 요도가와 사이에는 잘 닦였으나 그리 넓지는 않은 길 한 줄기가 있었는데, 바로 북상하는 아케치 군이 교토로 들어가기 전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목이었다. 

그리고 아케치 미츠히데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저쪽의 두 사람은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일 동이 트기 전, 텐노잔에 척후를 보낸다. 그리고 척후가 이상이 없다고 알려오면 즉시 텐노잔 기슭을 거쳐 산 반대편에 다시 진을 친다. 적은 반드시 이곳에서 우리를 막으려 할 것이다.”

교토가 함락당해 허수아비 조정과 막부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교토와 더불어 교토 수비를 위해 보낸 일만 군대까지 함께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마침내 이해한 미츠히데의 수하들도 하나같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들 해산하자마자, 미츠히데는 아사쿠라 군 무사가 정신을 차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막사에 들어가자마자, 무사가 정신을 차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미 넋이 나가 있었던 것이다.

“아케치 님, 즉시 도망쳐야 합니다! 이 정도 군세로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습니다!”

“그대의 주군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아사쿠라의 일만과 오다 가의 일만은 다르다네. 그러나 적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오다 군뿐 아니라 그 어떤 군대도 싸움에 자신 있게 나서지는 못할 터. 그러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른 말해보게.”

“도망쳐야 한단 말입니다! 적어도 오만, 아니, 십만 대군은 필요합니다!”

미츠히데를 근시(近侍)하던 무사가 주군의 눈빛을 받고는, 아사쿠라 무사의 뺨을 한 대 거하게 휘갈겼다.

“다시 묻겠네. 어찌 된 일인가?”

잠시나마 눈동자에 총기가 돌아왔다.

“저들이 고작 민병이라고 우습게 여긴 제 주군은, 저들의 창이 짧고 대열은 허술한 것을 보고는, 가만 서서 버티다가 저들이 제풀에 나가떨어질 때 장창으로 밀쳐내기만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요. 

그랬기 때문에, 정면에만 있던 줄 알았던 민병들이 어느새 양 측면에서도 나타나며 우리를 에워쌌을 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민병들은, 한줌도 주눅들지 않은 채 그대로 우리 대열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그러고는...”

그러나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어제의 일을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그때 느꼈던 절망과 공포도 그대로 살아나 마음과 눈을 메웠다. 

“민병이라는 것은 거짓이었습니다! 놈들은 농민의 탈을 쓴 오니(鬼), 그래, 바로 그 오니였습니다! 우리 무사들이 백 년간 쌓은 업보가 지옥의 불과 연기를 내뿜는 오니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없다고요!”

다시금 눈의 초점이 풀리고, 그렇게 나가버린 넋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불우한 무사는 저의 두려움에 빠져 마저 허우적대도록 내버려두고, 찝찝한 뒷맛 남긴 채 도로 나올 수밖에 없는 미츠히데였다.

“주군께 어찌 보고드린다...”

아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정(敵情)에 대해 나름대로 쓸만한 것을 건질 수 있던 대화였다.

민병이 오만이든 십만이든, 그 수효만을 믿고 이곳 교토로 진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정정당당하게 민병만으로 맞서고자 했다면, 그토록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했을 터. 군량을 포기하고 몸뚱아리만 왔든, 아니면 군대의 기율 따위 포기하고 그저 허겁지겁 움직이는 데만 치중했든 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저 가련한 아사쿠라 무사의 머릿속을 온통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그 무언가. 아직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

민병 사이에 무사가 섞여 있었다던가 하는 식의 범상한 병법이었다면, 적이 예상보다 뛰어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고 담담하게 인정하지, 넋이 나간 채 무슨 오니가 어쩌고 하는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저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설마 효고 쪽에 있는 조선 포병과 여진 마병 외에, 그들이 모르는 새 일본으로 건너온 또 다른 의병 무리가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껏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가공할 무기를 숨기고 있던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민병의 엄청난 수효 뒤에 숨어 있을 터였다.

농민이 무사처럼 창칼을 들었다고 하여 무사처럼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사가 갑주를 차려입고 천하의 명검을 손에 들었다 한들, 일신의 무용으로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전쟁이란 기예(技藝)다.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무엇이 승리를 만들어내는지 꿰뚫어보고 그것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이 승리를 결정하는 법.

무적 오다군의 전설은, 실제로는 간단한 셈 몇 가지에서 시작했다.

언제고 노부나가가 조선에서 배워온 방식으로 직접 셈을 해보니, 전장에서 적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창도, 칼도 아니요, 돌팔매와 화살이었다.

그렇다면 궁병과 투석병을 (완전히는 아니어도) 대체할 만큼 강력한 무기인 철포로 병사를 무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적을 살상하고 그 대열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을 테다.

보병끼리의 싸움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장창. 그 장창의 길이를 더욱 늘려, 적을 죽이기보다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용도에 더 적합하도록 만든다. 그것으로 철포수를 지키고, 간간이 대열이 뚫리게 되면 그곳을 메꿀 수 있도록 검에 능한 무사들을 배치한다.

이것이 에스파냐 용병들에게 배우고 이후 일본의 실정에 맞게 개량한 노부나가 전법이었다. 노부나가의 경박함과 즉흥 일변도인 언행에만 주목한 이들은 도저히 알지 못하는 속셈이기도 했다.

“결국 그런 계산, 그리고 그것을 능히 실행할 수 있는 재력. 이 두 가지가 그 어떤 무용보다도 뛰어나고, 그 어떤 병법보다도 강력한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것이 오늘 싸움의 단상이었소.”

군신(軍神)을 자처하던 우에스기 겐신이 술잔을 기울이며 노부나가에게 말했다. 어제보다 부쩍 겸손해진 말투였다.

“싸움에서 이긴 것이야 물론 좋지만, 이대로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은 어째 아쉽구려. 일신의 무용도, 무사의 용맹도 쓰임새가 다해가고 있으니.”

서군과 동군, 양측에 집결한 군세의 규모를 바탕으로 헤아렸을 때, 이번 효고 합전은 적어도 열흘, 길면 두어 달은 끌 것이라는 게 양측의 어지간히 잔뼈 굵은 무장들의 중론이었다.

나날이 진을 치고 나아가 싸우고, 그렇게 계속 힘겨루기를 하다가, 마침내 어느 하루 결전을 벌이는, 그런 진행을 모두가 예상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싸움은, 어제 겐신 진형이 여진 마병에게 농락당한 것을 완벽히 갚아주는 통쾌한 – 동군 입장에서 – 결과로 일단락되었다.

한없이 정석에 가까운 모리 군의 군략. 악명 높은 원숭이 괴성 내지르며 달려드는 시마즈 군의 무사. 엉뚱한 곳에서 허를 찌르는 오토모 군의 화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군과 서군의 기량 차이는 확연하였다. 우에스기와 호조 양측의 군세는,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서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잊을 만하면 이것이야말로 총통이라고 알려주는 조선의 진짜 화포와 – 따지고 보면 오토모 화포나 조선의 화포나, 다 같이 동래에서 나온 것이었다 – 귀신 같은 기마술로 산을 평지처럼 누비고 다니며 그 화포를 처리하러 간 호조 군을 번번이 격퇴하는 여진 마병들.

그것이 만들어낸 틈을 놓치지 않고 서군 무사들이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유군(遊軍, 별동대)과 후비(後備, 예비대)를 맡은 오다 군이 나타났다.

노부나가가 임꺽정에게 보내는 서신을 빙자하여 서군 전체에 공포한 대로, 결코 이곳 효고의 진(陣)에서는 서군이 동군을 이겨내지 못할 것임을 입증하는 듯한 하루였다. 

조선과 여진 의병에게 딱히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나름 서국 제일이라고 고개 추켜세우던 모리 씨와, 규슈 끄트머리에서 대장 노릇하던 시마즈 씨는 큰 충격을 받았을 터.

“무사의 용맹과 무용은 쓸모가 없어지고 있지. 그 말은 맞소. 그러나 무사의 쓰임이 거기서 다하는 것은 아니라오.”

우에스기 군의 분투를 보았던 노부나가 역시, 빈정대는 기색 없이 진솔하게 답해주었다. 전장에는 분명, 함께 싸우는 이들 사이 마음의 벽을 낮추는 그런 기묘한 영험함이 있었다. (물론 싸움이 그치는 즉시 사라지는 신통함이었지만.)

“무사는 말 그대로 싸움을 업으로 삼는 자요. 내 군세의 병법은, 설령 따라하고자 하는 이가 있어도 따라할 수 없소. 어째서인가? 그전까지 일본 무장들이 알던 그 어떤 것보다도 복잡한 기예가 필요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 기예는, 결국 무사가 아니고서는 익힐 수 없소. 가장 낮은 아시가루부터 맨 위의 고케닌(御家人)까지, 아주 능숙한 무사들이 수 년간 합을 맞춘 뒤에야 비로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란 말이지.

저들의 명예와 삶이 걸려있지 않다면, 무엇을 위해 그리 고되게 훈련하며 열심히 병법을 갈고 닦겠소? 그대의 영지에서도 잇키가 몇 번 일어나지 않았소? 승병들이야 저들 절의 명성과 위세가 달렸으니 악착같이 싸우지만, 그 외 나머지 백성들은 우두머리가 죽어 나자빠지면 그대로 흩어지지 않더이까.”

그러므로 노부나가는 철포와 병장기를 도입하는 데 쓴 것 이상으로 많은 재물을, 오직 전쟁만을 업으로 하는 무사들의 군대를 꾸리는 데 투입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노부나가의 무적 전설을 써내려간 주역이었다.

“장담컨대, 최선의 무기와 최고의 병법으로 무장한 무사를 꺾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오. 그리고 그 최선의 무기와 최고의 병법을 다룰 수 있는 자도 무사 외에는 없을 것이오.”

이튿날 아침이 밝자마자 텐노잔 위로 향한 아케치 군의 척후는, 고작 서너 리(약 12~16km) 떨어진 교토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교토에 입성한 민병이, 하루 사이에 제법 많은 약탈을 한 모양이었다. (멀리서 본 탓에, 민병들이 교토 백성들을 이끌고 교토에 있던 몇몇 기나이 무장들의 처소를 약탈하였을 뿐 다른 곳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더 중요한 사실은, 아케치 미츠히데의 당초 예상대로 텐노잔 기슭의 길을 벗어나 교토로 향하는 그 벌판에 민병들이 가득 진을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산 위로 병력 오백을 더 보낸다. 저들이 길목을 지키는 대신 길목 북쪽의 평야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영 수상해.”

자신의 군이 텐노잔 길목을 벗어나면, 그때 산을 타고 뒤로 돌아와 그들을 포위하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미츠히데였다.

“아직 다른 동향은 없다던가?”

“예. 일 리쯤 떨어진 벌판에 민병이 진을 치고 있고, 그 수효는 어림짐작하면 얼추 오만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인 민병이라지만, 정말로 요괴의 무리가 아닌 이상 저쪽 벌판에서 갑자기 이쪽 텐노잔으로 날아올 수는 없을 터.

그러므로 더욱 미츠히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이냐, 린죠? 네놈의 짝패 이순신은 또 무엇을 숨기고 있고?”

“적이 움직입니다!”

“후, 그래. 부딪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 우리도 준비한다!”

그 옛날 나가오카쿄(長岡京)가 있던 무코(向日) 벌판은, 지금은 조금 큰 마을일 뿐이요, 벌판과 논밭이 죽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벌판을 따라, 오만 민병은 장사진을 그리며 넓게 펴진 채 다가왔다. 

아니, 이제 보니 긴 뱀은 머리가 두 개였다.

“학익진이라?”

물론 수가 많은 쪽에서 수가 적은 쪽을 공격한다면 학익진이 정석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두 군대가 붙을 때의 일. 제대로 창도 다루지 못하는 민병들이 넓게 퍼져 다가온다면, 그만큼 저들 대열도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민병들이 사세가 여의치 않다며 달아날 때 그들 등을 막아줄 후열이 그만큼 얇다는 뜻이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저쪽의 수는 우리보다 몇 곱절이나 많다. 저들이 학익진을 펼친다면 그대로 어린진(魚鱗陣)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선수(先手, 선봉)와 이진(二陣, 선수 뒤에 투입되는 예비대) 모두 중앙과 좌우익, 셋으로 쪼개고, 그 자리를 지킨다.”

철포와 활, 장창과 검. 이 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마병이나 화포, 그것도 지금 효고에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말과 포가 필요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눈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그 초라한 깃발 휘날리며 다가오는 민병 무리 사이에는 그 중 어느 것도 없었다. 그나마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조선임을 보여주는 가마야마 철포가 대열 사이에 간간이 보일 뿐.

그러나 가마야마(부산) 철포가 무쌍(無雙)이라 칭해지던 것도 옛말이다. 동척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자금과 마닐라에 있는 필리피나스 도독부의 도움이 있었고, 또 그간 노부나가를 상대하려 열심히 주변 세력들이 구축해놓았던 공방을 고스란히 집어삼킨 덕에, 비록 동래에서 나오는 것만큼 저렴하게는 만들지 못하지만 오와리에서도 제법 많은 철포가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믿고 있는가... 선수에 전해라. 적이 기묘한 동향을 보이면 즉시 보고하도록.”

여전히 하얀 깃발에 성의 없는 표식. 민병대의 학익진 날개는 어느새 미츠히데 군을 감싸며 다가왔다.

등 뒤에는 강물이요, 퇴로는 남서쪽 텐노잔 방향 하나뿐. 그러나 미츠히데 군의 그 누구도 저들이 그 퇴로로 달려갈 일이 생길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특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정에는 어둡고 그만큼 자신이 물정에 밝다 여기기 마련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전국무쌍 오다군, 그 다케다와 호조도 꺾고 상락까지 마친 정예한 군세일진대, 고작 농민 따위가 어찌 그들을 이기겠는가.

그러므로, 바짝 다가온 민병들이 사나운 구호를 외쳐도 그 누구 하나 주눅들지 않았다. 

“염리예토, 흔구정토!”

“백성의 세상을 우리 피로 연다!”

“물러나면 너의 형제가 대신 죽고, 도망치면 너의 친척이 모두 몰살당한다! 우리 마을 모두를 위하는 싸움, 물러나지 마라!”

바라보던 아케치 군의 누군가가 비웃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던가.”

“저놈들은 물어야 할지도. 저 창 꼬나쥔 자세 보라지. 차라리 잘 다루지도 못하는 장창 따위 집어던지고 가까이서 물어뜯는 쪽이 더 낫지 않겠어?”

“그 전에 목이 베일 텐데?”

“하기야, 그것도 그렇군.”

“잡담은 그만해라! 궁수! 철포수! 전원 준비!”

“준비!”

모두가 한몸으로,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양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장창수는 창으로 저 무지렁이들의 머리통과 어깨를 내려칠 준비를 하고, 궁수는 시위에 화살을 매기며, 철포수는 마지막으로 저의 철포를 점검하고 화승에 불을 붙였다.

“쏘아라!”

타당- 소리가 울리고, 갑옷조차 제대로 차려입지 못한 백성들은 그 자리에 픽픽 쓰러졌다.

이제 놈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장창진은 고작 맨몸 민병 따위로는 뚫을 수 없다.

그저 이 장창의 대숲 바깥을 맴돌다가, 화살과 철포에 죽어나갈 뿐.

아직 못 깨달았다면, 또 한 번 불벼락을 내려주면 그만이리라.

살며시 아케치 군 전열에 비웃음이 돌아오던 그때.

“준적인!”

“준적인!”

“준적인!”

낯선 조선말을 그대로 훈독한 구령이, 사방을 울리고.

“거발!”

“거발!”

방금 전의 소리와는 비교하는 것이 결례인, 진짜 우레소리가 텐노잔까지 울려퍼졌다.

띠 모양으로 넓게 퍼진 민병 대열이 모두 포연 속에 감춰지고, 이쪽에서는 쓰러진 자들조차 어안 벙벙하여 비명도 제대로 내지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때.

연기를 뚫고 수없이 많은 인영이 또 한 발 앞으로 나온다.

“준적인!”

“준적인!”

“거발!”

“거발!”

임꺽정이 삼문의 높은 이들을 국인선서 내세워 윽박지르면서 본디 삼남의 군영에 들어가기로 한 것을 미리 받아오고, 동래의 모든 공방이 불철주야 일하여 찍어내고, 부족한 만큼은 다시 임꺽정이 오토모와 모리, 시마즈를 겁박하여 뜯어낸 조총. 그렇게 마련하여 민병 손에 들어간 일만 오천 정.

너무나 정직하고 우직한 숫자의 폭력이, 아케치 군을 덮쳤다. 

가능한 한 가장 넓게 퍼진 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벼락. 

얇은 띠 모양으로 퍼진 민병 대열이 또 한 번 연기를 내뿜고.

그 연기를 뚫고 다시 대열은 한 발 전진하고, 

대열이 멈춰서면 다시금 조총이 불을 뿜는다.

“이대로는 오래 못 버팁니다! 속히 원군을!”

“좌익이 무너집니다!”

“아직, 아직이다! 이대로 놈들에게 놀아날 것이냐! 아직 놈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다!”

미츠히데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저들이 숨기는 비장의 수는 없었다.

아니, 민병 자체가 비장의 수였다.

다만 그것을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뿐.

대체 저런 군대를 무지렁이 농민으로부터 어떻게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마을에 굴러다니는 농민조차 군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대체 그런 적을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에잇, 중앙을 돌파한다!”

오만 군세가 펼친 학익진이니, 그 두께가 아무리 얇아져 한 가닥 띠처럼 되었다지만 막상 다가가면 그리 가늘지만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이대로 모조리 갇혀 죽어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어린진이란, 애초에 학익진의 가슴을 꿰뚫기 위한 진형.

“존명!”

“뚫고 나간다! 전원 준비!”

이미 전의는 꺾였으나, 오다 노부나가 아래에서 하나의 잘 짜인 기계처럼 변모한 군대는 미츠히데의 지휘에 따라 돌격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마치 수많은 창에 꿰뚫려 피 흘리는 곰처럼, 넝마가 되어버린 전열은 쉽게 추슬러지지 않았다.

곧 미츠히데의 귀에도, 낯선 목소리로 외치는 낯선 구령이 들어왔다. 

“총도(銃刀, 총검) 꽂아!”

“총도 꽂아!”

“돌격!”

“돌격!”

오다 군의 장창진은 능히 저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뚫리는 곳이 있더라도, 그 뒤에 서 있는 무사들이 검술로써 능히 구멍을 틀어막을 터.

아니, 정말 그런가?

피 흘리며 쓰러진 자들로 인해 장창의 대숲은 벌써 이곳저곳이 무너졌고, 그들을 끝까지 지휘해야 할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철포수들도, 궁수들도, 악에 받쳐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쏘아대고 있을 뿐. 그렇게 쏘는 것 중 열에 하나나 눈앞의 적을 막을 수 있을까.

의심은 곧 끝났다.

“무사를 죽여라! 칼 찬 놈은 모두 죽여라!”

일만오천 조총에 찔리고 부서진 진형을 향하여, 이번에는 백성 오만 명의 무게, 원한의 무게가 쏟아져 들어온다.

“무사도 백성도 다 같이 피 흐르고 피 흘리는 사람이다! 놈들의 피로써 그것을 보여주자!”

“무사를 죽여라! 당세구족 차려입은 놈은 하나도 남기지 마라!”

백성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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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의 기나이 대진군은 원 역사에서 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보인 주고쿠 대회군(中國大返し, 주고쿠 대반전)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하자, 막 모리 씨를 토벌하기 위해 주고쿠로 향하고 있던 히데요시는 하루만에 모리 가문과 협상을 완료하고 바로 2만 군사와 함께 교토로 회군합니다. 고작 5일만에 180km 가까운 길을 주파하여 교토로 접어드는 마지막 길목인 야마자키 텐노잔(天王山)에 닿게 됩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급히 가용한 군사만을 긁어모아 텐노잔 앞에서 히데요시 군에 맞섰으나, 애초에 턱없이 병력이 부족했던 데다가 미츠히데 본인의 용렬한 지휘까지 겹쳐 참패하게 되지요.

이 모든 일이 혼노지의 변이 벌어진 후 만 열흘만에 벌어졌고, 그 결과 오다 노부나가 휘하의 쟁쟁한 무장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히데요시는 시바타 카츠이에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다른 경쟁자들에게 대응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 방식으로써 노부나가의 계승자이자 천하인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전국시대 및 에도 시대 일본의 전통적인 시간 개념은,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이었던 12시와 일본의 독자적 계산법이 병존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루를 12시로 나누고 거기에 12지의 이름을 붙인 것은 같았지만, 1시는 2시간이라는 엄밀한 간격이 아니라, 일출을 묘시, 일몰을 유시로 잡고 각각 밤과 낮을 6등분하는 식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사의 거성이나 군영에서는 각 시각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를 알리는 종을 쳤는데, 일견 비직관적으로 그 횟수는 1회에서 하나씩 늘어나는 게 아니라 9회에서 4회까지 한 번씩 줄어들고, 자정과 정오에 9회로 리셋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작중 언급되는 ‘낮 넷째’, ‘해뜨는 여섯째’ 등은 여기에 기반을 둔 시각의 명칭으로, 실제로 에도 시대까지 12지에 따른 명칭과 함께 쓰였습니다.

작중 등장한 민병의 전술은, 원 역사에서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자랑하는 에스파냐군의 총창진에 대응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판 나사우 (침묵공 빌럼의 아들)가 선보인 선형진입니다. 작중 시점에서도, 마우리츠의 시점에서도 아직 화기 기술은 선형진만으로 방진을 이룬 총병과 창병 조합을 제압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으나, 작중의 텐노잔 전투에서는 그것을 압도적인 수적 우위로 메꾸고 있습니다.

총검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그 비율이 높아진 총병이 근접전 상황에서도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무기로서 등장과 함께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총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이 명말에 저술된 군사사전 <병록(兵錄)>이었다는 데서 볼 수 있듯 – 총도라는 명칭도 여기서 빌려왔습니다 – 총검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어디서든 쉽게 등장할 수 있던 혁신의 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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