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27화 (227/259)

68. 나니와의 영광 (3)

효고에 당도한 첫날, 화포와 마병으로써 급습해온 의병에게 우에스기 군이 곤경을 당한 것은, 둘째 날에 동군이 서군의 모리와 시마즈 군을 밀어붙이며 충분히 설욕을 하였고, 이어서 사흘째에는 더 큰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

물론 양측 모두 오늘 결전을 낸다는 각오로 달려든 것은 아니었기에 사상자는 다 합쳐도 일천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은 쪽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였던 것이다.

동군 쪽에 비보가 전해진 것은 그렇게 막 기세가 올랐을 때의 일이었다.

단바의 산길을 통해 교토로 우회한 민병 오만이 감추고 있던 비수는, 여진의 마병도, 조선의 총통도 아니요, 바로 십만 개의 다리와 십만 개의 손. 그 앞에서 고작 일만에 불과한 군세는 사정없이 짓밟히고 으깨질 뿐. 미츠히데 본인도 끝내 탈출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생사가 분명치 않았다.

민병 유군(遊軍, 별동대)이 텐노잔을 넘어올 것에 대비하여 미츠히데가 산 위에 배치해 둔 오백 병력을 통해, 빠르게 효고의 오다 노부나가와 혼간지 포위망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해진 참담한 소식이었다.

“사 리(16km 가량)쯤은 후퇴해야 하겠소. 아마가사키(尼崎)로 철군하여 새로 진을 꾸릴 것이오.”

비보를 받아들자마자 동군 무장들을 모두 불러모은 오다 노부나가가, 결론으로써 운을 떼었다.

군략만으로 따지면 노부나가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인 무장들이었으므로, 거기에 대해 이의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만으로 괜찮겠소?”

우에스기 겐신과 눈빛 주고받은 뒤 호조 우지야스가 물었다.

“아예 요도가와 동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 말씀이시겠군.”

“그렇소이다.”

텐노잔에서 민병 오만이 남하하면, 지금의 서군은 그대로 포위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치노타니 전투에 대해 들어 아는 이라면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저들 민병은 농민의 군대요, 그들을 이끄는 것은 무가(武家)의 자제가 아닌 농민의 아들 린죠 히데요시와 아예 나라가 다른 이순신이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다른 경우를 헤아릴 수밖에 없었다. 무장처럼 전공(戰功)에 연연하지 않는 이라면, 텐노잔 길목으로 남하하느니 차라리 요도가와 동쪽으로 넘어와 곧장 혼간지를 구원하는 쪽이 더 합당할 터.

그곳을 지키는 도쿠가와 군은 비록 병력은 삼만에 달한다지만, 이미 혼간지에 틀어박힌 승병과 사이카슈를 막는 중임을 맡고 있었다. 앞뒤로 적을 두게 되면 그쪽도 승산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이 군막 안에 들어와 있는 무장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을 꿰뚫어보고 그 속에 도사린 음험함을 꿰뚫어본 몇 안 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이 강 서쪽의 아마가사키에서 포진하고 있는 동안 이에야스가 서군에 붙어버린다면, 그들은 영락없이 삼면에서 포위당하게 될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우대신으로 임명될 때 함께 대납언(大納言, 다이나곤) 관직을 받을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동군의 이인자지만, 이인자야말로 배신의 유혹에 가장 쉽게 넘어간다는 것쯤은 전란 백 년을 거치며 어지간한 무장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 ‘염리예토 흔구정토’ 타령도 있고 하니, 대납언이 우리를 배신할 공산은 분명 작지 않소. 허나 적도 이것을 잘 알고 있겠지.

따라서, 대납언은 우리를 배신하는 시늉을 할 것이오. 지금쯤이면 교토든 텐노잔이든 그 민병들이 진을 친 곳에 접시꽃 문양(도쿠가와 가의 가문家紋) 단 사자가 찾아가 있겠지.”

뜻하지 못한 참패의 소식에 허둥지둥하는 것은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한들, 마지막 찰나까지 솟아날 구멍을 찾을 사람이 바로 노부나가였다.

그러므로 텐노잔에서 비보가 전해지자마자 이미 두 번째, 새로운 계책이 짜이고, 또 그대로 실행되고 있었다.

“완병지계(緩兵之計)로군!”

우에스기 겐신이 감탄했다.

“그렇소. 우리는 자루 안의 쥐(독 안의 쥐) 흉내를 낼 것이오. 아마가사키에서 필요하면 더 남쪽으로, 바다와 맞닿은 곳까지 후퇴할 것이오. 그리고 그때, 적이 방심할 대로 방심하여 어지럽게 달려들 때 우리는 반격하여 단번에 승리를 거둘 것이외다.”

“허나 서군이 꼭 흐트러진다는 보장은 없지 않소? 만약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서군 무장들에 더하여 민병 오만까지 고스란히 상대해야 하게 될 수도 있소이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서군 무장들도 무장인 이상, 민병의 압승 소식을 듣고 가만 있지는 못할 테니.”

동군 무장들도 마음 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금치 못하였으니, 엄연히 같은 편이지만 동시에 전공을 두고 다투는 사이인 서군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노부나가의 논리에 다른 무장들 역시 ‘과연 노부나가다’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전은 우리의 참담한 패배요. 수군을 잃었고, 교토를 잃었으며, 이대로 요도가와 동쪽으로 물러난다면 혼간지 포위 또한 풀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엄연히 다른 길도 있지. 그 패배를 그저 패배로 내버려두느냐, 아니면 더욱 더 값진 승리를 거두기 위한 토대로 삼느냐. 나는 후자를 택하고자 하오. 그대들도 마찬가지겠지.”

동군 무장들 모두가, 각기 높고 낮음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든 예를 갖추든 하였다.

이대로 무사의 시대가 끝나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가 그와 함께 다져졌다.

텐노잔과 교토 사이. 며칠 전 그리도 참혹한 지옥도가 펼쳐졌던 무코 벌판에 지금은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 소리가 퍼졌다. 

무사든 백성이든 다 같은 사람. 그러므로 싸움에서 쓰러진 이들은 가장 높은 아케치 미츠히데부터 가장 낮은 타로(太郞)며 지로(次郞)며 하는 농군의 아들까지, 다 같이 재로 화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모부이자, 이에야스가 아직 타케치요로 불리며 이곳저곳에서 인질 생활을 할 적부터 그를 섬겼던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로서는, 영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화약의 연기보다도 매캐한, 시신과 장작의 자욱한 연기를 뚫고 벌판 가운데 마을에 차려진 민병의 진영으로 들어간 사카이 타다츠구는, 곧 조선 사람 옷차림을 한 거한과 맞닥뜨렸다.

“그래서, 네놈의 주군이 우리네에게 귀부하려 한다고?”

조선의 천하인. 그러나 무장들 사이에 도는 소문처럼, 어떤 엄청난 위엄이나 비범한 기세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보이는 것은, 언제든 눈앞의 사람을 짓뭉개버릴 수 있을 듯한 무지막지한 완력의 징표. 그리고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어떻게든 부숴버릴 것만 같은 눈빛.

“그렇습니다, 당수.”

“그러면서 무슨 같잖은 조건을 붙였다지?”

“그 또한 맞습니다. 허나 저는 당수가 아닌, 이곳에 계신 전대 쿠보(쇼군)를 뵙고 교섭코자 찾아왔습니다.”

토막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신정부는 아직은 이름뿐으로,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신정부의 가장 높은 사람이자 사실상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민병은 엄밀히 따지면 조선 민주당도, 자유민주당도 아닌 신정부의 군대였다.

이를 지적하니, 의외로 순순히 어깨 으쓱하며 길을 터주는 임꺽정이었다.

“마침 다들 여기 모여 있으니, 잘 되었다. 같이 가자꾸나.”

임꺽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 가운데 그나마 가장 번듯한 집을 통째로 빌려, 상석에는 자칭 신정부 태정대신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언제 달려왔는지 서군 무장들의 집안에서 저들 대표로 보낸 굵직한 이들이 하나씩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말석에는, 민병 연대 – 민병의 훈련을 염탐한 이가모노의 보고에 따르면, 하나의 쿠니에서 여러 개의 대(隊)를 꾸릴 때, 이들을 하나로 묶어 연대로 삼는다고 하였다 – 의 연대장들이 앉아 있고, 맨 끝에는 린죠 히데요시와 이순신, 그리고 임꺽정이 앉았다.

설령 그 세 사람이 말석에 있지 않았더라도, 덴쇼의 역이 시작한 이래 제대로 된 전공을 세운 것은 모리 수군을 제하면 민병들 뿐이었으므로 말석이 상석처럼 보이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듯했다.

그러나 주군이 자신쯤 되는 중신을 직접 보낸 이유을 되새긴 타다츠구는 잠시나마 흔들린 마음을 가다듬고 요시테루에게 예를 갖추었다.

으레 전장에서 마주한 무장들끼리 주고받는 그런 겉치레 인사를 마치고, 본론을 꺼냈다.

“저의 주군이신 대납언께서는 일본의 화평을 위하여 신정부와 교섭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화평을 위한 교섭이라.”

“그렇습니다. 지금 요도가와 서쪽에 있는 이른바 동군의 무장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희가 두 가지 뜻을 품지 않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혼간지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병력의 도하가 끝나면, 오다와 도쿠가와 군은 각각 미노와 카이로, 우에스기 군은 에치고로, 호조 군은 사가미(現 요코하마 일대)로 물러날 것이며, 우대신과 대납언은 관직을 사임하고 신정부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또한, 오다와 도쿠가와 군은 일본 땅 위에 병력을 남겨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찌 믿을 수 있는가?”

“이미 신묘한 계책으로 신정부가 교토를 손에 넣었으니, 합전의 승패는 결정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 주군께서는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고, 명예롭게 패전을 받아들이고자 하실 따름입니다.”

“그러나 오다 군이 이대로 순순히 철군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대는 대납언이 보낸 사절이지, 우대신이나 다른 동군의 무장들까지 대변하지는 않을 터.”

“저희 주군께서는 힘이 닿는 데까지 다른 무장들을 설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응하지 않는다면 그뿐이지요. 이미 막다른 곳으로 몰렸는데, 그곳에서 항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마가사키로의 철수는 너무나 평탄하게 이루어졌다. 오다 노부나가는 내심, 전공에 목마른 서군 무장 하나쯤은 제멋대로 돌격해오지 않을까 기대하였으나, 이미 며칠간 싸움으로 오다 군의 매서움을 맛보았는지, 아니면 자칫 민병보다도 못하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지 그들의 뒤를 치려는 자는 없었다.

그 대신 서군 무장들은 척후를 보냈고, 그 척후들은 하나같이 동군이 마치 패잔병처럼 힘없이 물러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그런 소식까지 들은 채 텐노잔 넘어 무코로 온 서군 장수들은, 사카이 타다츠구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요시테루는, 곧 자신이 고민할 계제가 아님을 깨닫고 말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병 측에서는 어찌 보시오?”

그와 함께 민병 연대장들의 눈길은 일제히 말석을 향했다.

“히데요시야, 네가 말하려무나.”

“예, 당수.”

린죠 히데요시가, 저의 위에는 오직 임꺽정만 있다는 것을 태도로 보여주며 벌떡 일어났다.

“도쿠가와 공의 항복을 받아들이되, 한 가지 조건을 붙였으면 합니다.”

타다츠구가 물었다.

“조건이라 하시면, 무엇을 이르시는지요?”

“요도가와를 건널 때, 그 어떤 무사도 몸에 칼을 지니고 건너서는 안 됩니다. 모두 풀어서, 우리 민병 앞에 바치고 가야 합니다. 그 칼들을 모조리 녹여 보습이며 낫이며 온갖 농기구로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는 전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또 일어나서도 안 될 테니까요.”

이 무렵에는 어지간한 농민들 중에서도 두세 집에 하나쯤은 집안 어딘가에 녹슬고 무딘 칼이라도 숨겨두고 있기 마련이었다. 아시가루인 척하는 농민과, 실제로 아시가루를 겸하는 농민, 도적질을 하는 농민, 적어도 자신이 도적질 당하는 것만은 막으려는 농민 등. 칼의 쓰임새가 참으로 많고, 칼부림 마다하지 않는 자들도 넘쳐나는 난세였다.

그러니 지금 히데요시가 요구하는 것, 차고 있던 칼을 버리라는 것은 정말로 그 칼을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것. 무사의 긍지를 스스로 꺾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타다츠구의 눈은 저의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양 크게 뜨였다. 다른 서군 무장들뿐 아니라 민병 연대장들 사이에서도 술렁이는 목소리가 나왔다. 

허나 개의치 않고 조건을 마저 제시하는 히데요시였다.

“자칭 우대신 오다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에스기 겐신, 호조 우지야스. 이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명검부터 그저 호신을 위해 차고 있는 작은 와키자시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 군 앞에 풀어놓아야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마치 이 터무니없는 조건이 너무나 합당하다는 것처럼 맞장구치는 임꺽정이었다.

“돌아가서 전해라. 이 조건은 결코 물릴 수 없다. 더 교섭하려 한다면, 항복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 

그리고 내가 조선에서 익히 배우고 접한 바로는, 사람의 뜻은 대개 몇 번 쥐어패다 보면 새로 생기기도, 바뀌기도 하기 마련이더군. 만약 싸움 도중에 노부나가건 네놈 주군 이에야스건 뜻이 바뀌어 투항하기를 원한다면 언제든 백기를 들어라. 물론 뜻을 늦게 굽힌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하겠지만.”

어느새 요시테루조차 저쪽이 화평의 조건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음을, 그리고 서군 무장들 사이에서도 은근한 불만과 분개하는 마음 – 그리고, 조금 더 현명한 쪽에서는 일말의 체념 – 이 감돌고 있으나 그뿐임을, 사카이 타다츠구는 모두 눈여겨보았다.

그러므로 더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빌미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째 올 때보다도 더 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타다츠구는 남쪽으로 사라지고, 무코 곳곳의 민가에서는 무사들의 이른 저녁밥 – 물론, 값은 치렀다 - 짓는 연기가 올라왔다.

“그 조건은 언제부터 생각하였던 것이오?”

스리슬쩍 꺽정이 곁에 다가온 요시테루가 물었다.

“노부나가나 이에야스나, 일신의 군략은 별 볼 일 없지만 그것을 만회하고도 오히려 남을 만큼 머리가 비상하다고 들었소. 그러니 싸움이 조금 불리해지면 교섭을 시도할 것이라고, 더 머리 좋은 한양의 내 벗들은 전해주더군.”

이미 한양의 사업당에 들린 바 있던 요시테루는, 한양에서 일본국 사정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길지언정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즉석에서 마련한 조건은 아니겠군. 칼을 빼앗는다는 것이 무사들에게 무슨 뜻인지도 알고 있었을 테고. 나는 신정부 태정대신을 자처하지만, 민병을 이끌고 있는 무장이기도 하지 않소? 내게는 조금 속내를 알려주어도 좋을 텐데 말이오.”

“물어보지 않길래 궁금하지도 않은 줄 알았지. 우리는 같은 편 아니오? 그렇게 점잔을 떨고 있으면 당연히 소식이 깜깜할 수밖에.”

적반하장으로 대꾸하며 어깨 으쓱하는 꺽정이었다.

“조금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는 없겠소? 심각한 문제란 말이오.”

스스로 전장을 많이 누벼보지는 않은 요시테루였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 일본의 무장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히데요시나 임꺽정, 이순신보다는 잘 알고 있다 자부하였다.

“비록 지금은 편이 갈라졌다지만, 그리고 무사들뿐 아니라 사민(四民) 전체가 동등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신정부의 대의에 따르고 있다지만, 어쨌든 우리 쪽 무장들도 한 사람의 무사인 것은 같소. 

앞서 대납언의 가신에게 건넨 그 요구는, 무장들에게는 이렇게 보였을 게요. 민병들이 전공을 독차지하고는, 그것으로 벌써 저들이 일본의 주인이 된 것처럼 전횡하고 있다고.”

“바로 그것을 노렸소.”

“아니, 뭐라 하셨소?”

“이 나라 주인이 백성이라면 백성이 전횡을 해야지, 언제까지 무사들이 나 칼 찼네 하면서 거들먹대고 다니는 꼴을 보아야겠소? 좀 버르장머리를 배울 때도 되었지.

만약 서군 놈들이 이제 와서 ‘이럴 줄 몰랐다’ 한다면, 그건 멍텅구리같은 소리요. 내가 이 나라 일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장담컨대 지금껏 이 땅에 새 제도를 세우겠다며 사람 족치고 다닌 놈 치고 우리만큼이나 시종일관 말끔하게 그 뜻을 세운 무리는 없었을걸?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그간 우리에게 빌붙어 위세를 누렸으니 그 대가가 무엇인지 깨우치는 일이 남았소.”

이미 히데요시 녀석이 열심히 서군 무장들을 타이르고 어르면서, 또 제게 배운 대로 겁박을 슬쩍 곁들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한 번 꺾이게 되면, 저들의 손으로 같은 무사들에게 굴욕을 주는 일을 저지르고 나면, 그때는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처음부터 일말의 사리사욕 없이 이 대의를 따랐노라 목청껏 외치게 되리라.

“너무 걱정은 마시오. 결국 다들 따라오게 될 것이니.”

그러나 지금은 전시. 교섭이 사실상 결렬되고 동군의 전력을 상대로 결전에 나서야 할 때였다.

과연 그때까지 다른 서군 무장들이 마음을 돌릴 것인가? 요시테루는 끝내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과 의심을 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무사가 백성과 같아진다 할지라도, 무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시카가 요시테루라는 한 사람의 무사는, 이미 자신이 주군으로 섬길 대의를 구했으므로, 그저 믿을 뿐.

“또 간파당했는가.”

아마기사키까지 후퇴한 동군 진영 한가운데에서 노부나가가 실소를 흘렸다.

이제 셋으로 줄어든 ‘오다 사천왕(四天王)’.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 타키가와 카즈마스를 세워두고, 찰랑이는 셋츠 앞바다와 일렁이는 요도가와 강물을 바라보던 노부나가는, 한참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저들은 우리 불쌍한 대납언을 칠 것이다. 교섭이 또 하나의 책략이라는 것을 꿰뚫어본 게지. 아쉬운 일이야. 타케치요가 진심으로 투항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이에야스가 저쪽 서군에게 투항한다면 어떤 조건을 내걸 것인지 – 보다 정확히는, 그 조건에 그 자신과 노부나가를 위해 어떤 허점을 만들어놓을 것인지 – 익히 알고 있던 노부나가였다.

“그러나 이미 저쪽에게는 당할 만큼 당했다. 놈들이 도쿠가와 군을 치지 않고, 정말로 저들 민병과 의병만으로 우리를 상대하겠다며 이곳 아마가사키로 올 경우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럴 공산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략 이 할쯤이나 될까. 허나 이쯤이면 네놈들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 우리보다도 더 군략과 지모가 뛰어난 이들이 저쪽 군영에 있으므로, 공산을 셈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무엇이 더 유리하고 불리한지, 무엇이 더 쉽고 무엇이 어려운지, 그것을 바탕으로 저쪽의 생각을 헤아릴 뿐.”

이에야스의 항복 교섭에 무리한 조건을 내걸어 좌절시키고, 그대로 혼간지로 들이닥쳐 도쿠가와 군을 무너뜨린다.

그러고는, 동군이 거부할 수 없는 (그나마) 관대한 조건을 내세운다. 퇴로가 끊기고, 이미 그 이전에 저들이 어떤 가혹한 조건을 내밀었다가 물렸는지를 아는 서군 무장들로서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야스의 삼만 군세, 그것도 허겁지겁 달려와 전열과 기강이 흐뜨러진 군세가 아니라 지난 몇 달을 혼간지 앞에서 지내면서 제대로 진지까지 구축한 군세를 상대로 오만 민병이 지난 번같은 위용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경우, 예컨대 그대로 민병들만을 이끌고 텐노잔을 지나 아마가사키 땅으로 와 싸움을 거는 경우보다는 훨씬 유리한 싸움일 터였다.

“무리한 조건을 내미는 것은 좋았으나, 그 무리함이 과도하였다. 서군 무장들은 민병과 나란히 진을 짜려 하지 않을 것이야.”

무리한 조건을 내걸더라도, 무사의 긍지를 건드리지 않는 그런 조건, 예컨대 영지의 절반을 내놓으라든가, 삼 년 치 세수를 송두리째 바치라든가 하는 식의 조건이었다면 서군 내에서도 딱히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역시 무사가 아닌 자들이 군을 이끌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로군요.”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 전란 뒤의 노림수가 있기 때문에 지금 그런 무리한 수를 미리 두었다 보는 게 맞겠지. 여하간 우리로서는 이롭게 되었다. 저들이 대납언 쪽을 치지 않고 이쪽 아마가사키로 직행한다면, 훨씬 유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서군 안에서 내응하고 있는 류조지 타카노부로서도, 적당히 서군 뒤통수를 칠 만한 명분이 주어진 셈이었다. 물론 저의 힘만으로는 민병은커녕 오토모 군도 감당하지 못할 테니, 서군 쪽으로 확실히 승기가 기울기 전까지는 그 본색을 드러내려 하지 않겠지만. 

“명을 기다립니다.”

미츠히데가 미리 산 위에 보내둔 오백 병력은, 그저 멀리서 싸움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환호성을 지르다 나중에는 발만 동동 굴렀을 뿐, 실제로 민병이 어떻게 아케치 군을 짓이겼는지는 잘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먼발치서 바라본 것만으로도, 오다 노부나가는 능히 저 민병이 어떻게 오다 군의 병법을 파훼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네놈들도 불쌍한 미츠히데가 어쩌다 그 꼴이 났는지 들었을 게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지레짐작이 끝나자마자 노부나가는 일부러 오백 패잔병들의 이야기를 나머지 동군 전체에 널리 퍼뜨렸다.

동군의 모든 무사들이, 실제로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훨씬 뛰어나다 자부하는 고케닌부터, 기실 농민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더더욱 무사라는 신분에 집착하는 아시가루까지 이 싸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더욱 열심히 싸움에 임하도록 만들기 위한 소소한 계략이었다.

“놈들의 힘은 철포, 아니, 그놈들은 조선 놈들에게 배웠으니 조총이라 부르겠군. 여하간 그 무시무시한 쇠대롱에 있다. 아마 그놈들 연대 하나에 있는 조총의 수가, 호조나 우에스기 군이 지닌 철포의 수보다 더 많을 테지. 우리 군이야 조금 다르지만.

여하간 그놈들은 얇은 띠처럼 넓게 퍼져서, 단숨에 최대한 많은 조총을 쏘아제끼는 것으로써 미츠히데를 제압했을 게다.”

평소의 노부나가라면, 이쯤에서 다른 세 사람에게 ‘너희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짓궂게 물으며 그들을 시험하고 동시에 농락했을 터였다.

그러나 노부나가 본인도 드러내지는 않아도 적잖이 긴장하였고, 더구나 강 건너편 이에야스로부터 저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미츠히데가 끝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으므로,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 진형은 다수로서 소수를 상대할 때는 아마 깨뜨리기가 어려울 게다. 그러나 철포든 조총이든 어쨌든 다 같은 병장기고, 병장기에는 우열은 있을지언정 무적은 없는 법.”

저들이 갑자기, 한 번에 여러 발 탄환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요사스러운 총포를 꺼내든다거나, 아니면 불랑기포처럼 총의 뒤편에서 탄을 재는 그런 총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소위 ‘선형진’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주군.”

“그렇습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늘 그렇듯, 노부나가의 장점은 재빨리 헤아리고 셈하는 데 있었다.

“간단하다. 멀리서 어쭙잖게 철포와 활로 상대하려다가는, 조금 시간이 걸릴 뿐 불쌍한 미츠히데 놈과 같은 꼴이 될 거야. 

그러니 우리는 돌격한다. 놈들이 암만 총을 쏘아도, 처음 두세 번은 대응하지도 않고 그대로 맞아준다. 그러면서 아군의 시체를 밟고 밟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장창의 창대가 투구조차 쓰지 못한 민병 놈들의 머리를 때리고, 창날이 놈들의 뱃가죽을 뚫을 때까지. 

그렇게 되면 두께가 우리 쪽 방진보다 훨씬 얇은 민병들은 그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 우리 쪽에서도 한 오천쯤 죽을 각오를 하면, 저쪽의 이삼만을 도륙낼 수 있을 게다.”

노부나가와 함께 오다 군의 전설을 써내려갔던 세 무장 모두, 주군의 말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고는 금방 뚜렷한 답에 도달했다.

“오오, 과연!”

“수가 비슷하다면, 저들의 선형진은 우리의 돌격에 필패할 수밖에 없겠군요.”

“하하! 무사와 민병이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 하여 정말로 같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온 천하에 알려줄 수 있겠습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이 가득한 채, 가슴과 무릎팍을 두드리며, 전의를 다졌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마라. 이건 어디까지나 민병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에 대비한 것이다. 놈들이 요도가와 동쪽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저 우리 뒤를 따라온 서군에게 돌격해 그놈들을 무너뜨리면 그만이야.”

그러나 이미 그때 민병들은 텐노잔을 넘을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틀 뒤, 노부나가는 적어도 저들 민병이 이곳 아마가사키 쪽으로 오지는 않으리라는 저의 예상이 또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허탈한 실소는 나오지 않았다. 

“좋아. 이제야말로 뭔가 해볼 수 있겠구나.”

도리어 만면에 가득한 웃음. 오케하자마 전투를 앞두고 이마가와 군을 마주했을 때의 그 웃음이 돌아왔다. 서군을 포위하듯 틀어막은 동군 진형의 모습은, 분명 노부나가 본인이 예상한 대로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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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노부나가가 지적한 것처럼, 16세기 말의 화기는 비록 강력한 무기이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창병과 기병을 막아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판 나사우가 선보인 선형진 역시, 당대 최강 에스파냐군을 상대로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경우에는 여지없이 밀리곤 했지요. 넓게 펼쳐져 최대한의 화력을 쏟아붙는다는 개념 자체는 유효했지만, 끝내 에스파냐군의 돌격을 저지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17세기로 넘어와 화약무기가 급격히 발달하고, 포병 및 기병 전술이 함께 발전하여 방진 형태의 총창진 자체가 도태되면서 해결됩니다.

작중에 계속 언급되는, ‘군신’이니 ‘사가미의 사자’니, ‘히젠의 곰’이니 하는 허세 가득한 무사들의 별칭은, 사실 전국시대 당시의 무사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무사들은 단합된 무력집단이라기보다는 채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프리랜서에 조금 더 가까웠고, 허세 가득한 별명은 피고용자 입장인 무사들과 고용주 측인 다이묘 양측에게 일종의 ‘브랜드’처럼 기능하였던 것이지요. 또한 에도 시대에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이 늘어나고 그 전통이 근대까지 이어지면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덧칠된 면도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전국시대 말 어지간한 무장들 아래에 있던 가신들을 띄워주기 위해 만들었던 ‘N천왕’, ‘M대장’ 류의 칭호였습니다. 히데요시 아래의 ‘시즈가타케 칠본창’, 이에야스 아래의 ‘도쿠가와 사천왕’, 오다 노부나가 아래의 ‘오다 사천왕’ 등이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중 등장한 노부나가의 세 가신들과, 이에야스 사천왕 중 최고참이었던 사카이 타다츠구 등이 여기에 해당하지요. 

원 역사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천하인의 자리에 오른 뒤 대대적인 도검 몰수령(칼사냥刀狩り)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이는 무사들의 칼이 아닌, 난세를 거치며 민간에 널리 퍼진 무기를 압수하여 민란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꿰뚫어보고, 아케치 미츠히데의 세력을 숙청할 때 적극적으로 농민들이 적 진영의 낙오한 무사들을 사냥하도록 현상금 제도를 운영했던 히데요시는, 그만큼 민간에 퍼진 무기의 잠재력을 알아보았던 것이지요.

진지한 의미로 무사들의 칼을 빼앗으려 시도한 것은 먼 훗날, 메이지 유신 당시의 폐도령(廢刀令)으로, 국민개병제의 시행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합법적 무력을 독점하는 권력 주체로서 근대국가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이는 무사의 자존심과 연결되는 문제였기에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끝까지 막부 편에 섰던 번뿐 아니라, 한때 메이지 유신에 동참했던 다른 웅번 내에서도 무사 계층의 반란이 이어졌고, 결국 이는 1877년 서남전쟁(세이난 전쟁)이라는 최대의 반란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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