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28화 (228/259)

68. 나니와의 영광 (4)

남쪽은 바다로, 동쪽은 요도가와 강물로 가로막힌 아마가사키 벌판.

강 동쪽의 삼만 도쿠가와 군과, 혼간지에 갇힌 사카이 상인들과 승병들이 각각 애타게 바라보는 그 벌판에서 동군과 서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끄는 동군은 강 건너편 도쿠가와 군까지 제하면 이미 팔만으로 줄어 있었으나, 수가 부쩍 줄어든 것은 그간 싸움으로 적잖이 소모되고 교토에도 제법 병력을 남겨두고 온 서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만에서 사만 오천은 되겠군. 뭐, 그래본들 꿰뚫어버리면 그만이다.”

사카이에서 노획한 백리안(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피며 노부나가가 말했다. 간밤의 긴장이 조금은 풀려, 말투도 평소의 경박함을 약간은 되찾았다.

“기다려온 결전의 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오늘은 제때 저녁을 먹을 수 있겠습니다.”

간밤에 노부나가의 설명을 들은 세 무장들도 한껏 고양되었다.

저들이 제발로 어려운 싸움을 하러 찾아온 것은 의외였으나, 교토에서의 승리로 기고만장해진 민병들이 저들 힘을 과신하였다든가, 아니면 민병들이 도쿠가와 군을 칠 것이라 단정한 동군의 의표를 찌를 심산이었다든가, 이쪽으로 온 것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보다는, 저들이 정말 노부나가의 예상대로 진을 짰다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래, 칼을 내놓으라는 그런 요구를 한 주제에 다른 무장들까지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었겠지.”

이쪽 동군은 오다 군이 중앙을, 호조와 우에스기가 각각 좌익과 우익을 맡는 형세.

저쪽 서군은, 가운데 넓게 민병이 퍼져 있고, 양옆을 각각 모리와 시마즈 군이 지키는 형세. 화포나 마병은 아마 중앙 뒤편 어딘가에 비장의 한 수로서 남겨둔 듯했다. 

동군이든 서군이든, 이끄는 이의 뛰어난 재주로 하나로 묶였을 뿐 불과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다투기만 하던 다이묘들을 모아둔 무리에 불과했다. (민병은 예외겠지만.)

그러므로 같은 진 내에서도 항상 전공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승리를 눈앞에 둘수록 오히려 그 뒤를 대비하여 내분과 모략이 심해지기 마련. 반대로 패색이 짙어지면 배신의 유혹에 하나둘씩 흔들리기 십상이었다.

허나 동군은 이대로 밀리고 치욕을 감수하느니, 한판 승부에 명운을 걸어보자는 데 모든 가문과 무장들의 뜻이 모여 있었다. 반면 저쪽은 어떤가.

민병들, 그것도 제멋대로 무사를 모욕하는 항복 조건을 내민 민병들을 위하여 저들의 목을 대신 내밀 것인가? 툭 튀어나온 민병 양 옆을 지키기는커녕 멀찍이 뒤로 빠진 서군의 좌익과 우익을 볼작시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였다.

아마 서군의 군사(軍師)를 맡고 있다는 두 사람은, 저 위태로운 진형으로 이번 싸움에 나서는 것을 두고, 전쟁이 끝난 뒤 저들이 바라는 세상을 그려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여기고 있을 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종종 과욕을 변명하는 핑계로 쓰이기 마련. 오직 민병들로만 전공을 세우고, 처음 그들이 노부나가를 이끌어낼 때 외쳤던 ‘백성으로 무사를 이기는’ 싸움으로 일관하고자 하는 욕심은, 마침내 노부나가가 역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허점이 될 터였다.

정곡을 노리는 궁수의 눈으로, 자신의 군이 곧 모든 것을 걸고 돌격할 민병 대열의 가운데를 노려보는 노부나가였다.

연대장들이 오늘의 싸움으로 그들 모두의 명운을 결정짓는다는 식의 말로 각각 일장연설을 마치고, 민병들 모두 마지막으로 한바탕 투지 불태우자는 각오와 함께 차곡차곡 대열을 이루었다.

지난날 한 번 실패한 이래 절치부심하며 가다듬은 병법. 그것이 과연 효험을 거둘 것인가 잠시 의구심을 품었던 이순신은, 이제 와서 의심해본들 소용 없음을 깨닫고 고심을 관두었다.

서군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요.”

“즉 무언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수를 품은 것이겠지.”

권율과 이순신이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이쪽에서 바라는 것처럼 움직이는 적이야말로 가장 매서운 비수를 품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 자명한 이치가 사실 그리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지는 못한 권율과 이순신이었다.)

“적장 노부나가는 군략에 어두운 것 이상으로 지재가 빼어나다 하였으니, 우리 진형의 약점을 꿰뚫어본 것일지도.”

“부디 그러지 않았기만을 바라야겠군요.”

노부나가가 궁리해낸 묘책이 서군의 무장들과 민병 사이 경계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정직하게 진법으로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라면 꽤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 잡담들은 관두고, 싸울 채비를 하십시다.”

꺽정이가 손뼉 짝 치며 나섰다.

민병의 수뇌부와 의병들은 띠 모양으로 – 텐노잔 기슭에서 싸울 때보다는 대열이 훨씬 두터웠다 - 선 민병 대열 뒤, 야트막한 언덕에 따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의병의 기세는 드높았으나, 그뿐이었다. 니탕카이의 여진 마병은 효고에서의 싸움에서 맹렬히 날뛴 끝에 열에 두셋 정도는 죽거나 다쳤고, 포병 역시 며칠간 무리하였기에 오토모 군의 포와 화약을 뺏어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서군 무장들이 오다 군에게 무너지는 것을 막아내었으니, 결코 헛되게 피와 은을 흩뿌린 것은 아니었으나, 소진된 것은 소진된 것이었다.

그나마 민병을 훈련시키던 흑의군과 에스파냐 용병들, 다 합치면 오륙백쯤 될 이들이 꺽정이 아래에 들어와 있었기에 규슈의 세력 작은 영주 하나가 보낼 만한 정도의 병력은 족히 되었으나, 수만 대 수만의 싸움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영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민병대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한참 떠들고 온 린죠 히데요시가 꺽정이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래, 네놈이 잘 해주어야 오늘 결착을 볼 수 있을 테니.”

“헤헤, 지금껏 저 히데요시가 린죠 두 글자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딴에는 해맑게 웃으며, 히데요시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타고 강변으로 달려나갔다.

나룻배 한 척이 강 건너, 도쿠가와 군 쪽에 닿는 것을 보기도 전, 대열 앞에서 함성이 울려왔다.

“온다!”

무사 한둘의 공명(功名)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고, 심지어 상대는 진짜 무사도 아니었으므로, 나노리조차 생략한 채 오다 군은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바닷가의 물기 머금은 땅조차 울리게 하는, 규율 맞춘 발소리가 민병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였다. 

그와 함께, 얼마 전 그들이 쓸어버린 일만 군사처럼 쉽게 끝낼 수 있으리라는 헛된 꿈도 민병들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모두 익힌 대로만 하면 된다! 겁먹을 것 없다!”

“오늘 싸움만 이기면 바라는 것 모두 이룬 채 집으로 갈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연대에서 각 대로, 대에서 각 초(哨)로,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주변의 동향 젊은이들을 향한 것인지 확언할 수 없는 다짐이 전해졌다.

아직 포신이 멀쩡한 화포 몇 문이 불을 뿜고, 마지막 남은 비격진천뢰도 높이 솟구쳤다.

방진을 이루며 밀집해 있던 오다 군 여럿이, 비명과 함께 핏덩이로 화하였다. 그러나 보조 맞추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오는 무사의 결기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늘, 무사의 긍지를 지킨다!”

“앞으로! 앞으로! 죽어 쓰러지더라도 물러서지 마라!”

서군의 중앙, 툭 튀어나온 민병 대열과 가장 선두에 선 오다 군의 방진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가까워지고, 또 가까워졌다.

훈련과 훈련 끝에, 잠결에도 능히 조총의 사거리를 읊을 수 있게 된 민병들은,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그 누구도 성급히 쏘는 일 없이 구령을 기다리고, ‘준적인’과 ‘거발’ 구령에 맞추어 그들의 병장기, 그 어떤 무사의 당세구족도 능히 뚫을 수 있는 조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이제, 아직껏 그 잘난 무사님들이 보지 못한 병법을 또 한 번 보여줄 때가 되었다.

“물러난다!”

“물러난다!”

“훈련받은 대로! 훈련받은 대로!”

코우즈키 성 앞의 전투를 겪었던 민병들은,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 그대로 패주로 이어졌을 뻔했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결코 이번에는 그때의 추태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결의에 맞추어, 첫 번째 줄의 조총수들은 질서정연하게 물러나며 맨 뒤 열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결의가 시험에 직면했다.

“정지!”

“정지!”

“철포수!”

“철포수!”

같은 일본의 같은 사람이 든 같은 무기. 그러나 신분이 다르고, 진영이 다르며, 쏘는 방법이 달랐다.

방진이 그대로 멈춰 서더니, 장창병들의 사이로 빠르게 움직여 맨 앞으로 나온 철포수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이쪽에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저쪽에서도 매캐한 매연이 한바탕 일어나고, 피 흩뿌리며 쓰러지는 민병들의 비명이 퍼졌다.

그리고 이어서, 매연을 뚫고 다시금 전진하고 전진하는 장창의 숲. 

“흔들리지 마라!”

“다섯 간(間, 약 9m) 후퇴!”

“장창병, 복세(伏勢, 엄호)!”

민병 대열이 우르르 후퇴하더니, 다섯 간 쯤 되는 곳에서 딱 멈춰 섰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맨 앞에 서 있다가 남들보다 먼저 물러난 조총수들은, 대열 맨 뒤에서 그대로 세총(洗銃, 다음 사격을 위해 총열을 손질하는 것)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번째 열의 조총수들은, 자신들이 방금 전 어깨 너머로 보았던 것보다 더 적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다섯 간 후퇴!”

“다섯 간 후퇴! 2열은 맨 뒤로!”

“장창병, 복세!”

그리고 세 번째 열이 방포를 마칠 무렵, 저쪽에서도 또 한 번 일제히 총성이 울리고, 또 한 번 민병들은 쓰러졌다.

저쪽에도 분명 쓰러지는 이 많을 터인데, 이쪽보다도 더 많은 자들이 이미 명을 달리했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밀려나고 있는가. 

지난해를 기하여 잊은 줄 알았던 두려움이 다시금 마음속에서 샘솟는다.

하지만 그들과 어깨 맞대고 있는 것은 같은 마을에서 온, 같은 말씨를 쓰는 동무들. 

그러므로 구령에 따라 일제히 물러나고, 그다음 열이 나아와 어깨에 총을 대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물러나고 또 물러나도, 그것을 상회하는 빠르기로 적 방진은 다가오고 있었다.

저러다가 정말로 돌격하는 것 아닐까, 짐꾼으로서, 또는 어쩌다가 병졸로서 끌려간 전장에서 무사들의 싸움을 보았던 이들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맺기도 전.

“돌격! 무너뜨려라!”

“놈들의 대열을 뚫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적아 구별 없이 시체를 밟으며 흔들림 없이 걸어온 적의 장창진이, 갑자기 잰걸음으로 나아오기 시작하였다.

하늘 높이 솟구친 장창의 창대가, 조총수들의 뒤를 지키기 위해 나선 민병들의 어깨와 머리를 내리치고, 그 일격으로 저쪽이 창대를 놓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이번에는 창날을 내질렀다.

“열 간 후퇴!”

“열다섯 간 후퇴!”

“조총수 앞으로!”

각각의 대(隊)에서 나오는 구령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당황함과 더불어 공포가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사이, 무너지는 대열 틈을 잽싸게 파고든 무사들이, 마침내 검을 뽑았다.

그중 맨 앞에 있는 것은, 날아드는 포화 속에서도 아직껏 말 위를 지키고 있던 시바타 카츠이에.

“하하, 역시 우리 주군께서는 대단하시군. 이렇게 파훼가 되는구나!”

가로로 길게 뻗은 적 진형을 상대로, 일견 마찬가지로 넓게 퍼진 듯하였던 오다 군은, 어느새 가운데에 모든 힘을 몰아넣은 봉시진(鋒矢陣)으로 변하였다.

그리 두텁지만은 않았던 민병의 대열이, 가운데를 묵직하게 찌르는 오다 군의 돌격에 밀려나며 찌그러지고, 밀려났다. 완전히 뚫리기 전까지는, 이제 몇 줄 남지 않았다.

“흥, 이미 무너진 전열, 마지막 오기를 부려본들 무슨 소용인가! 가자! 돌격!”

“돌격! 앞으로!”

이번에는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장창진이 앞으로 나아갔다. 

민병들이 아무리 전의를 불태운들, 무너진 대열은 스스로 짜맞추어지지 않았고, 아직 다시 탄을 재지 못한 조총은 방아쇠를 암만 당긴들 그저 짧은 쇠대롱일 뿐이었다.

“귀신 시바타, 여기 있다! 죽고 싶지 않은 자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라! 자, 간다!”

그러므로 자신 있게 말 달려, 방금 전보다도 훨씬 헤싱헤싱해진 민병의 장창 사이를 찌르고 들어가는 시바타 카츠이에였다.

휘두르는 칼날은, 피륙과 살을 베고 뼈를 가른다. 마지막 한 줄 남은 민병의 대열은 그대로 무너지고, 악으로 버티던 자들은 산산이 부서지는 대열 속에서 명을 달리하든, 마침내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달아나든 할 것이다.

적어도 카츠이에의 마음속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전열은 뚫리지 않았고, 칼날은 닿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일본말은 짧지만, 네가 귀신 어쩌고 하는 건 들었다. 귀신이 되고 싶다면 그 소원 이뤄주마.”

통성명도 하지 않고, 카츠이에의 일격을 막아낸 칼날을 그대로 휘두르는 거한. 

상상을 벗어난 힘에,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카츠이에의 검이 멀찍이 꺾이고, 타고 있던 말은 그대로 쓰러졌다.

“아, 네놈들은 이름부터 밝히고 싸운다고 했던가? 내가 바로 임꺽정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오다 군의 맹공에 한참을 밀려난 민병의 선형진.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은 그 가운데가 뚫리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뚫리지는 않았다. 무사의 긍지를 걸고 달려드는 오다 군을 상대로, 끝내 밀리지 않는 한 점.

아마도 한때 무사였을 법한 무언가를 방패처럼 들고, 무인지경으로 날뛰고 있는 사내.

한 사람의 무용으로 싸움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그 사람의 어깨에 더 큰 무언가가 실려 있다면, 주군의 명예니 가문의 영광이니 하는 것 따위는 하찮게 만들어버릴 무언가가 그 등에 업혀 있다면, 한 사람의 무용도 결코 거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뚫리기 직전의 민병 전열을 틀어막은 하나의 점은, 곧 더 큰 점으로 변했다.

번뜩이는 갑주는 마르틴 데 고이티의 에스파냐 용병대요, 펄럭이는 붉은 십자 깃발은 미련 없이 말을 버리고 두 다리로 선 니탕카이 요한의 여진 전사들일 테다.

그리고 다시금 그 점은, 선으로 화한다.

“나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여기 있다! 신정부의 태정대신이 여기 있다! 물러서지 마라!”

“이즈모 연대장, 야마구치 요스케라는 가명을 쓰던 야마나카 시카노스케도 여기 있다!”

싸움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시작하는, 해괴망측한 나노리. 민병 대열의 마지막 한 줄 얇디얇은 선을 이루는 이들이 제멋대로 따라서 떠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예의바르기로 유명한 고로(五郎)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나 혼자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참한 요코랑 결혼할 작정인 야에몬(彌右衛門)이다! 이기고 돌아가자마자 허락을 받을 거다! 이대로 질쏘냐!”

우왕좌왕 흩어진 줄로만 알았던 민병들은, 나 살려라 도망치는 줄로만 알았건만 또 몇십 간 뒤로 물러나서는 다시 대열을 이루었다. 총을 놓친 자는 대신 쓰러진 고향 이웃의 창대를 잡고, 창도 없는 자는 던질 돌멩이를 찾아 땅바닥을 훑었다.

총도로 찌르고, 후려치고, 내지르는 장창을 어깨로 받아내고, 시체에서 주운 와키자시를 휘두르는 법도 모르면서 휘두른다.

끝내 오다 군의 예봉은 그 피칠갑을 한 가느다란 한 줄, 얄팍한 붉은 줄 하나를 뚫지 못하였다.

“끝나가는군요.”

린죠 히데요시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잽싸게 이마의 식은땀을 훔쳐내고는, 태연자약한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저기까지 밀려나고, 거의 대열이 뚫리기 전까지 갈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천하의 오다 군조차 우리 민병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사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대납언 벼슬을 쥐고 있는 미카와와 도토미, 카이의 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그저 동척사 사장이라 부르는 린죠 히데요시였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이에야스가 물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지금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확연하였다. 꽉 쥔 왼손 주먹 사이로, 엄지를 물어뜯는 바람에 흘러나온 핏방울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게요?”

“무엇이 말입니까?”

“우대신의 군세가 끝내 민병의 대열을 뚫지 못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군 무장들이 저렇게 재빨리 나설 줄은 몰랐소. 그 말은, 처음부터 서군 무장들이 오직 그대 당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였다는 것이겠지.”

오다 군의 예봉이 꺾이자마자, 지금껏 마치 우군인 민병의 곤경을 좌시하고만 있는 듯하던 양익의 모리와 시마즈 군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획에 따라, 그 뒤로는 오다 군에게 밀려서 한참 물러난 민병들이었다. 그들을 쫓던 오다 군은, 눈 깜짝할 사이, 오다 군의 뒤를 따르던 동군의 우에스기와 호조 군이 나서기도 전 삼면에서 포위를 당하게 되었다.

그저 사세를 관망하다가 그 자리에서 결단하여 움직인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기민한 기동이었다.

“좋습니다. 알려드리지요. 단, 먼저 할 일을 하셔야 합니다. 이 전쟁을 끝내셔야지요. 저대로 저들이 모조리 몰살당하기를 바라신다면야, 저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지만요.”

이에야스는 허세를 꿰뚫어보았다. 만약 저대로 오다 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민병도, 의병도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터.

전멸까지 각오한다면, 우에스기와 호조 군도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다 군 없이 우에스기나 호조 군 단독으로 서군과 싸운다면 이겨낼 가망은 없었지만, 적어도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때야말로 동군은 끝이었다. 설령 이어지는 전쟁에서 명이 조선을 이긴다 한들, 일본 안에는 명에 호응할 세력이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 또한 이때에 대비한 수가 있노라 하지 않았던가. 

히데요시에게는 촌음 같고 이에야스에게는 삼추(三秋) 같은 장고가 끝나고, 한숨과 더불어 답이 나왔다.

“나, 대납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을 걸고, 우대신을 대신하여 앞서 제기한 교섭에 따라 항복을 선언하겠소. 그와 더불어, 그대가 덧붙인 조건도 모두 받아들이겠소.”

그러고는, 근시들을 불러 백기 내걸 것을 명하였다.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저쪽, 사장님의 편인 동군 쪽에도 알려줘야지요. 사람을 강가에 보내 외치게 하십시오. 항복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항복했다. 그렇게 말입니다.”

“... 알겠소.”

오다 노부나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이토록 순순히 이에야스가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게 되면, 모든 사정을 빠르게 짐작할 터.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 모습이 선하였다. 

군사를 물리고, ‘타케치요 그 음흉한 너구리 놈’이 마침내 배신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할 것이다.

그러고는, 이 모든 치욕은 자신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니, 주군으로서 면목이 없다면서 부하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가장 먼저 허리춤의 칼을 풀어 바닥에 던질 것이다. 

마치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 이긴 싸움에서 패배한 것처럼 떠들면서, 오와리로 물러난 뒤 다시금 동군 무사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그리고 몇 달 안으로, 장거정의 승인을 받은 척계광의 계획에 따라 이세(伊勢) 앞바다에 에스파냐 갈레온 함대가 나타나면, 그 배에 옛 오다 군과 새 오다 군의 무사들이 가득 찰 것이다. 다음 전장, 요동에서 벌어질 설욕전을 기다리는 이들로.

그런 속내를 히데요시나 그의 상전 임꺽정이 알지 못하기를 기대하며, 이에야스는 화제를 돌렸다.

“이제 답을 들어도 되겠소? 서군 무장들이 어째서 끝내 명을 따랐는지 말이오.”

“별 것 아니었습니다. 관직을 약속했거든요.”

어제까지도 밀서를 주고받으며 들은 노부나가의 계산이 빗나간 부분이었다. 민병대가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틸 것이라는 점보다도 더 큰 오류. 민병의 패색이 짙어지면 모리와 시마즈 양군도 저들의 앞날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 여겼던 것.

“신정부의 관직?”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관직을 약속한 게 아니라, 빈 자리가 생길 것이니 그대들 마음대로 채우시라, 그렇게 언질을 주었지요. 

이래 봬도 제가 자유민주당 영수고, 또 임 당수의 가신 중에서는 대충 앞에서 네다섯 번째쯤 될 사람입니다. 제가 원한다면야, 신정부에서 아시카가 공보다도 높은 자리, 뭐, 관백(關白)쯤 되는 자리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신정부의 물주는 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이고, 애초에 두 당은 사실상 한몸이니까요. 

그래서 서군 무장들에게 전해주었지요. 그런 이 히데요시가, 신정부에서는 일체 어떤 관직도 맡지 않을 것이며, 또 잘난 전직 다이묘 나리들께서 개명된 법도에서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 한, 히데요시의 사람이 억지로 신정부에 들어가 자리 차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요.”

물론 그 전에도, 다이묘 중의 하나로 남는 것보다는 신정부의 기둥이 되는 것이 집안의 앞날에 이로울 것이라는 계산 하에서 서군을 따르게 된 두 가문이었다. 막 그 계산이 흔들리려던 차, 더욱 큰 보상을 약속받았으니, 어찌 그 마음이 다시 안정을 되찾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리와 시마즈 두 집안을 움직일 만한, 아니, 제자리에 못박아둘 만한 보상이라면, 사람으로서 아깝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이에야스 본인조차 처음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다면, 예컨대 신정부에서 요시테루 다음가는, 실제로는 요시테루보다 앞서는 그런 자리를 주겠노라 하였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언제고 일본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생각하고 있는 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린죠 히데요시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신정부의 번듯한 이상을 이용한다면, 그런 자리에 조금 더 나은 사람 – 즉 무장 – 이 앉는 쪽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이에야스의 생각을 너무나 쉽게, 그러나 한없이 묵직하게 짓밟는 히데요시였다.

“아깝지 않느냐고요? 오히려 아까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나라 일본은 천하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도 온 천하를 뒤덮을 변혁의 한 부분에 불과하고요. 

그러니 어찌 오늘의 영광, 이 나니와의 영광을 어찌 독점하려 하겠습니까? 이곳 나니와에 하늘까지 닿는 성을 쌓는다 한들, 코스탄티니예의 아야소피야에도, 기자의 하림(피라미드)에도 미치지 못할 텐데요.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인생, 그런 꿈 속의 꿈을 쫓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어느새 저 멀리 부상(扶桑) 있다는 동쪽에서 떠오른 해는, 명나라 있는 서쪽을 비추고 있었다. 

그 그림자 따라 히데요시의 웃음소리가 퍼지고, 그에 화답하듯 민병들이 이겼다며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가 퍼졌다.

그렇게 덴쇼의 역은, 지금껏 이 나라에서 벌어진 그 어떤 역(役, 전쟁)들보다도 더 떠들썩하면서도 가장 진심 어린 환호성과 함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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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묘와 그 가신 등, 비교적 신분이 높았던 전국시대 무사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이른 저녁을 먹곤 했습니다. 보통 오후 2시 정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해가 떨어지는 즉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당대의 하급 무사들이나 농민과 비교해도 몇 시간 쯤 이른 것이었지요. 여기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깊은 밤에 이루어지기 마련인 야습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찍 취침한다는 것이 있는데, 훨씬 잠을 조금 잘 뿐 기상 시각은 비슷했던 조선 선비들이 대략 오후 5시경 저녁을 먹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아리송한 면이 있습니다.

신중하고도 음흉한 인물로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지만, 정작 전장에 나서게 되면 다혈질에 조급한 면모를 보이곤 했습니다. 원 역사에서 불리한 병력으로 무리한 싸움을 걸었다가 대패한 미카다가하라 전투도 그 사례라 할 수 있고, 심지어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도 그가 이끄는 동군이 불리할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초조할 때마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종종 그것이 심할 때는 피가 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마침내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신중함과 느긋함은, 어쩌면 천성이 아니라 천재적인 정치력과 지력을 바탕으로 본성을 억누른 결과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선형진 일제사격 전술은 원 역사에서도 16세기에 등장하였고, 순차사격을 통해 꾸준히 화력을 퍼붓는다는 발상도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대표적으로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유럽에서 나타났습니다. 마우리츠 판 나사우의 ‘네덜란드 군사혁신’이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쓰인 적은 없었지만) 큰 의의를 지니는 것은, 순차사격의 발상 그 자체가 아닌, 경험이 훨씬 부족한 병력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전열을 붕괴시키지 않고 순차사격 절차를 이어나갈 수 있게끔 하는 ‘근대적’인 군제를 마련했다는 데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꺽정이가 도적과 잡배들을 모은 군대로 관군을 적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흑의군을 조련시킨 데서부터 그런 고민이 시작되었고, 화기의 도입과 함께 그 아이디어와 경험의 잠재력이 드러나게 되었지요.

外.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타오르는 불은 재를 남긴다. 온 세상을 불태우는 겁화조차 예외는 아니다.

무사들의 자랑이자 삶이었던 검을 사정없이 녹여버리는 불길이 나니와에서 일렁일 때, 명나라에서는 대일통의 대의에 충실하다고 자부하는 홍병위들이 온 강남을 샅샅이 뒤지며 ‘비화인(非華人)’들이 자꾸만 세우는 휘왕사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무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항주에서의 ‘그 일’ 이래로 부쩍 늘어난 휘왕사. 처음에는 그저, 영문도 모른 채 장삿길의 안녕을 빌고자 이웃 마을 따라 세웠던 휘왕사는, 불타면 불탈수록 나라와 세상에 불만 품은 이들의 마음속에 더욱 견고하게 세워졌다.

한편, 페루 부왕령의 포토시 은광에서는 은을 제련하는 불길만큼이나 시체를 태우는 불길도 끊이지 않았다. 본국으로부터의 은 증산 지시가 끊임없이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시체가 탄 곳에는 재뿐 아니라 원한도 남았다.

이름만 보아서는 영락없는 페닌술라레스(Peninsulares, 이베리아 반도 출신 귀족)인 자신의 지인들을 통해 그 비참한 소식을 들은 쿠스코 시(市)의 신사, 돈 디에고 데 카스트로(Don Diego de Castro)는, 부왕령 관원들에게 두둑하게 황금을 먹이고 근래의 증산 지시 뒤에 있는 내막에 대하여 세세히 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근래의 증산 지시가 바로 자신이 기다려온 ‘그 일’ 때문임을 짐작했다. 그가 빌카밤바를 떠나 쿠스코로 온 까닭. 에스파냐 본국이 이토록 포토시의 은에 목을 매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직감. 

에스파냐의 대적(大敵)은 어떤 한 나라가 아니라, 고작 한 사내, 그리고 그가 몰고 다니는 기이한 발상이었고, 태양 아래 두려움 없을 것 같던 에스파냐는 이 상대를 앞에 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만한 때가 또 언제 있겠는가? 그러므로 돈 디에고 데 카스트로, 아니, 빌카밤바의 잉카 티투 쿠시(Titu Cusi)는 태양의 뜻을 밝혔다.

타완틴수유(잉카 제국)가 멸망한 뒤에도 그 법도는 남아, 잉카의 통치를 받던 백성들은 정복자들을 위해 포토시로 끌려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미타(부역)라는 명목으로 끌려가는 이들 사이에 태양의 말씀이 깃들고, 불탄 시체가 재로 화하며 남긴 지상의 원한은 되살아났다. 이어지는 폭동 속에서 은광의 소출은 줄어만 갔다.

그러나 온 세상을 태우는 불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토시와 빌카밤바에서 한참 북동쪽, 바다 건너 브라반트(現 벨기에 브뤼셀 일대)에서는 ‘다섯 군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바 대공의 에스파냐군, 그들을 지원하는 신성로마제국과 그 제후들(부유한 저지대를 탐내며 참전한 루터파 제후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잉글랜드 왕자 찰스 오브 합스버그의 저지대 계승권을 주장하며 참전한 잉글랜드군과 프랑스군, 그리고 달변공 빌럼의 저지대 독립군까지.

도시를 빼앗고, 뺏기는 그 싸움 속에서, 달변공 빌럼은 글을 아는 이들이 많은 부유한 저지대와 그 너머, 한자(Hanse) 도시들을 노린 팜플렛을 펴냈다. 합스부르크의 압제를 비난하며,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바를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글이었다.

페르디난트 1세가 병사한 뒤 제위를 계승한 그의 장자 막시밀리안 2세는, 모욕과 거짓으로 가득한 그런 글은 대개 억누를수록 더욱 빠르게 퍼지기 마련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마르틴 루터라는 선례가 있지 않던가. 그러므로 그는 팜플렛의 유입을 차단하려는 공허한 노력을 경주하는 대신, 맞불을 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고한 숙부 카를이 동방인들을 만나고 생의 마지막을 탐구와 저술에 바쳤음을 떠올렸고, 숙부가 거느렸던 학자들과 숙부 본인의 글을 간추려 저지대 반역자들의 선동에 반박하는 글을 퍼뜨린 것이다.

이는 덴마크와 루스, 그리고 간악한 무슬림의 위협을 내세워 성가신 셰임(귀족 의회)을 억누르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참된 군주로 도약한 지기스문트 2세의 기호에도 진실로 맞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함부르크로 넘어간 격문은 라인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시에 발트해를 통해 퍼졌고, 논쟁은 코펜하겐과 예테보리, 빌뉴스와 리가, 그리고 마침내 노브고로드로 퍼졌다.

에우로파 땅에 문자가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칼의 전쟁과 더불어 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루스 땅과 루스인들의 거룩한 군주 이반이 이 괘씸한 도시를 벌하기 위해 자신의 새 친위대 오프리치니키(Oprichiniki)를 거느리고 그 문앞에 선 까닭이었다.

차르가 도착하기 나흘 전 미리 노브고로드에 당도한 병사들은, 도시 외곽의 민가와 수도원을 약탈하고는, 모조리 허물어 도시를 에워싸는 거대한 포위망을 만들었다.

항거하는 자들은 모두 반역자였고, 반역자의 정당한 처분은 죽음과 재산 몰수뿐이었다. 그나마 성직자가 죽은 경우에는, 도시 안쪽으로 시체를 돌려보내주기는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르가 도착했다. 사랑하던 아내 아나스타샤가 갑작스레 죽은 뒤로 심해지는 광기와 두통으로 인하여, 하루를 꼬박 앓고는 이튿날에야 도시의 앞을 흐르는 볼호프 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위대한 노브고로드’에 차르가 왕림하게 되면, 이 강 위의 다리에서 노브고로드 대주교의 축복을 받고 함께 다리를 건너 도시로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아버지, 과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 모든 파괴와 죽음이 정녕 아버지의 통치에 필요한 일입니까?”

그 길 양옆에 쌓인 시체를 보며, 차르가 총애하여 어지간한 출정과 외유에는 함께 데리고 다니는 황태자 이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차르는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세상을 증오하였고, 따라서 늘 그렇듯 아들의 말은 한쪽 귀로 흘렸다.

차르의 왼편에서 그의 주군을 따라 걷고 있던, 악명 높은 오프리치니키 수장 말류타 스쿠라토프(Malyuta Skuratov)가, 차르의 안색을 슬쩍 살피고는 대신 답하였다. 

“전하, 물음이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저와 태자 전하를 비롯한 모든 루스인들이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위대한 차르께 필요한 존재인가? 그리고 답은 오직 한 사람, 차르께서 정할 뿐입니다.”

또 한 번 찾아온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던 차르 이반은, 스쿠라토프의 말에 굳이 맞장구치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대신 고개만 한 번 까딱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도시의 성직자들은 감히 차르 폐하의 거룩한 통치를 거스르는 강론을 하고, 이를 글로 적어 출판하기까지 했습니다. 서방 이단들의 그릇된 논설을 정론처럼 퍼뜨렸고, 모든 루스의 주인을 음해하였으며, 다른 주인을 새로 모시고자 모의하였지요.”

모스크바에서는 교회가 출판술이 악마의 기술이라며 출판소를 불태울 것을 종용하기도 했지만, 이곳 노브고로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차르의 명령이라는 명목으로 열심히 출판소를 세웠고, 차르의 영광을 위해서라며 활발히 책을 찍어냈다.

스쿠라토프가 이끄는 오프리치니키들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노브고로드가 반역의 마음을 품었다는 증거였다. 찍어내는 책들 가운데 종종 발트해 너머에서 들어오는 서방 이단들의 글을 번역한 것이 섞여 있었는데, 감히 차르의 통치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무엄한 내용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죄가 차고도 넘칩니다. 저들은 자신 같은 죄인들을 벌하기 위해 직접 차르 폐하께서 오셨다는 데 마땅히 감읍해야만 할 것입니다.”

곧 차르의 행렬은 다리에 닿았다. 노브고로드 대주교 피멘(Pimen)은 일찌감치 찾아와 차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수도원이 약탈당하고 성직자들도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피멘이었으나, 어쨌든 차르는 차르였던 것이다.

다가오는 차르를 향해 대주교가 손을 뻗자마자, 차르 이반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호통을 쳤다.

“그 손을 거둘지어다! 너의 손에 들린 십자가는 생명이 아닌 죽음의 상징이요, 너의 입 안에 든 혀는 구원 대신 배신만을 말하는구나! 너와 네 공범들, 그리고 이 도시의 사람들이 감히 위대하고도 축복받은 노브고로드를 리투아니아 왕에게 팔아넘기려 하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거늘, 어찌 이리도 당당하게 나를 맞이하는가!”

차르의 거뭇하니 퀭한 눈두덩이 안쪽에서 이글거리는 눈동자 한 쌍이 대주교 뒤에 선 도시의 다른 성직자들, 그리고 차르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노브고로드 시의 유력한 시민들을 노려보았다.

“그렇다! 나, 너희의 차르 이반은 이 도시를 정화하러 왔노라! 너희의 성직자들이 제 몫의 일을 다하지 못하므로, 너희 모두의 주인인 내가 손수 이 도시의 죄악을 벌하여 정결케 할 것이다!”

방금 전의 호통보다는 차분하지만, 섬뜩한 기세는 전혀 줄지 않은 말투로 차르가 피멘 대주교에게 명했다.

“그대는 나와 내 친위대를 성 소피아 대성당으로 인도하여라. 그리고 성찬예배를 거행하라. 나와 내 아들, 그리고 가장 충실한 나의 종복들이 모두 참여할 것이며, 그 외의 누구도 대성당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차르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차르의 뜻이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차르와 그의 군대는 다리를 건너 한때 위대하다 자처하던 도시 안으로 들었다.

주변에서는 절망 어린 탄식도 나오지 않고, 그저 무거운 체념만이 감도는 듯하였다. 이미 며칠째 도시 주변이 약탈당하였으니, 이러한 운명이 닥치리라는 것을 그럴 만한 식견이 있는 자들은 대략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르 이반과 그 뒤를 따르는 오프리치니키들은, 절망 끝의 체념과 숙연한 결심을 구분하는 안목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아 온 것은 전자뿐이었으므로, 굳이 더 깊게 파고들 이유가 없던 것이다. 

곧 행렬은 장엄한 성 소피아 대성당 안에 들었고, 성당의 돔이 완성된 이래 가장 기괴한 성찬예배가 진행되었다. 

늘 그렇듯, 차르 이반은 광인의 연기를 하는 군주와 군주의 연기를 하는 광인 사이를 오갔다.

피멘 대주교가 집전하는 예배에 차르는 사사건건 끼어들며, 트집을 잡았다. 때로는 왜 대성당 곳곳에 저리도 장작이며 나뭇가지 따위가 쌓여 있느냐 시비를 거는가 하면, 또 그 직후에는 심오한 신학적 질문을 대주교에게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끊기고, 끊기고, 또 끊긴 예배는 긴 여름 해의 인내심조차 시험하다가 마침내 끝났고, 차르는 저녁식사 준비를 명했다. 피멘 대주교는 당연히 참석해야 했다.

“아버지께서는 이 도시 노브고로드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계십니다. 대주교님과 성직자들이 주축이 되어 아버지의 통치에 반발하는 여론을 일으킨 뒤, 이를 명분삼아 이 도시를 리투아니아 왕 지기스문트에게 팔아넘기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한창 차르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틈을 타 – 차르는 늘 독살을 의심했으므로 식사 준비는 항상 많은 이들의 눈과 손, 그리고 혀를 거쳐야 했다 – 피멘에게 다가온 황태자 이반이 귀띔해주었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곳 대성당으로 온 것도 대주교님을 심문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죄가 결정되는 순간 대주교님은 체포당하실 것이고, 바로 약탈이 뒤따르겠지요.”

황태자 이반은 아버지의 의중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루스 차르국은 이미 대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주변에 적을 많이 두고 있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남쪽의 이교도 타타르인(크림 칸국)들과 그 뒤의 투르크, 그리고 리보니아를 두고 다투는 사이인 리투아니아와 스웨덴. 

그런데 참으로 해괴하게도 이번 대전쟁에서는 그중 한쪽인 이교도들과 손을 잡고 서방 이단들에게 함께 맞서게 되었고, 심지어 루스 군은 몇 번이나 리투아니아에 패배하고 있었다. 과중한 세금에 반대하는 이들, 이교도의 손을 잡는 데 반대하는 이들, 그저 차르가 모두의 주인 노릇하는 것 자체를 미워하는 이들 등, 불만 품은 보야르(귀족)들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물론 차르의 군대가 리투아니아의 군세를 붙잡아놓는 만큼 헝가리와 그 너머로 향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군세는 줄어들 것이므로 이 대전쟁에서 루스가 맡은 몫은 다하는 셈이었지만, 차르 이반과 평생 대립해온 자존심 높은 보야르들이 알 바는 아니었다.

차르 이반은 그 광기어린 명민함으로, 이때야말로 보야르들을 쳐낼 때임을 알아챘다. 참패가 이어지고, 그의 측근들 중에서조차 리투아니아로 망명하는 자들이 나올 무렵, 차르는 느닷없이 퇴위를 선언하며 노브고로드 인근의 작은 마을 알렉산드로프로 들어가 칩거하였다.

이에 기겁한 모스크바의 귀족과 성직자들은, 즉시 대표단을 꾸려 차르에게 복귀를 청하였고, 차르는 단 한 가지 조건, 자신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보야르들을 처벌할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조건을 붙인 채 그 탄원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어떤 귀족도 마음대로 모욕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며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은 오프리치니키가 조직되었다. 

리투아니아를 상대로는 참패하던 루스의 군대는 같은 루스인 보야르들을 제압하는 데는 제법 유능하였다. 오프리치니키가 첫 본보기로 삼은 수즈달에서는 일만이천에 달하는 이들이 ‘반역자’로 몰렸고, 개중 귀족들은 바로 죽임을 당한 농노들과 달리 추방형이라는 비교적 자비로운 형을 받았다. 한겨울에 맨몸으로 추방당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수즈달의 귀족 다섯 중 넷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본보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아버지께서 보시기에는, 그리고 그분 곁의 간악한 자들이 주장하기로는 그렇지요. 이 도시의 시민 수천이 처형당하고, 그 몇 곱절은 될 이들이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교회와 시민들의 재산은 모조리 몰수되어 전비로 쓰일 테고요.”

차르 이반의 조부인 이반 3세가 노브고로드를 정복하고, 노브고로드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던 베체(Veche, 민회)의 종을 떼어내어 모스크바로 가져간 이래, 한때 노브고로드 시민들이 선출하던 정부의 관직 대부분은 철폐되었다. 

그러나 고관들의 모임(Soviet Gospod) 의장을 겸임하던 노브고로드 대주교직까지 건드릴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도시의 그나마 남은 자치 권한은 대주교 한 사람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이곳 대성당에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라의 주인과 그의 충복들에게 그 어떤 적보다도 더한 모욕과 약탈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황태자 이반은 아버지의 총기가 광기에 잠식당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차르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조치들은 점점 더 많은 루스인들의 피를 흘리게 되었고, 이제는 차르의 위엄을 위해 바로 그 차르를 위대하게 만드는 기둥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귀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들어간다면 결코 가벼운 견책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훤히 알면서도 이렇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멘 대주교는 근엄하면서도 평온한 그 표정을 잃지 않았다.

“전하의 용기에 감사와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허나 저희 도시의 운명에 대해서는 이미 차르 폐하의 병사들이 도시를 에워쌌을 때부터 얼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순순히 성문을 연 것입니까?”

“차르는 차르시니까요. 그리고, 일부의 주장과 달리 저희 노브고로드 시민들은 모두 차르 폐하의 충실한 종복입니다. 부끄러워할 것도, 감출 것도 없으니 우리의 차르 폐하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발트해 너머에서 전해오는 새로운 언설과 논리를 접한 노브고로드 시민들이 ‘충실한 종복’으로서 지니는 의무에 대해 조금 다른 해석에 도달했다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대주교였다.

무언가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황태자가 더 캐물으려던 차.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예하. 차르 폐하께서 동석을 명하셨습니다.”

말류타 스쿠라토프가 마치 처음부터 두 사람이 이곳에 있었음을 알고 있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고개를 들이밀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죗값을 치르려면 일만에서 일만오천 정도는 죽어야 하겠다.”

차르 이반이 식기를 손에 잡자마자 섬뜩하게 운을 떼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껏 드러난 죄상만 보았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 내 충복들이 이미 알렉산드로프 마을에 거점을 마련해두었으니, 의심스러운 자들은 모두 그곳으로 데려가 함께 진실을 탐구하면 될 터.”

피멘 대주교는 위축되는 기색 없이 차르에게 되물었다.

“저희 노브고로드의 모든 백성은 한마음으로 차르 폐하에게 충성을 바칠 뿐입니다. 그것을 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차르께서 바라신다면, 그렇습니다, 예하.”

스쿠라토프가 저의 주군의 마음을 읽고 대신 답해주었다.

“노브고로드의 선량한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폐하께 재고를 청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루스인들의 뜻을 한데 모은다 해도 차르 폐하 한 분의 뜻보다는 가볍습니다.”

“그 말이 참인지 가려보시지요.”

대주교의 아리송한 말에 해명을 요구하기도 전, 대성당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폐하! 큰일입니다!”

그 큰일이 무엇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이시여, 차르 폐하를 보우하소서!”

“차르 폐하께 지혜와 자비를 내려주소서!”

스쿠라토프가 급히 일어나 창문을 열자, 외치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노브고로드 시민들이 대성당을 에워싸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폐하! 즉시 나가 해산시키겠습니다! 부디 명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저들을 섣불리 흩어버리시기보다는, 경청하시는 것이 어떨지요.”

스쿠라토프를 가로막으며 대주교가 말했다.

“저희 노브고로드 시민들은 반역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온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전쟁이 무엇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폐하께서 택하신 편은 그중 무엇을 내건 쪽인가, 그것을 다른 루스 땅보다 먼저 접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저희 노브고로드 사람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만약 서쪽에서 전해진 그 글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대주교 피멘은 닥쳐오는 파국을 그저 수수방관하고만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피멘은, 옛 노브고로드가 옳았고 모스크바는 틀렸음을, 더 올바른 길을 차르에게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속 양심과 충심을 모두 만족시키는 길임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대주교 피멘은 지금껏 자신이 내었던 모든 용기를 한데 모아, 큰 결심을 하였다.

처음 병사들이 노브고로드를 포위했을 때 급조된 이 계획은 제법 빠르게 온 도시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저 가만 앉아 오프리치니키에게 당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대안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저 차르를 에워싸고 탄원할 생각으로만 모였지만, 개중 피멘이 신임하는 사람들이 모아온 뜻과 강단 있는 이들은 계획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

“저 바깥을 보시지요. 어두워질 때에 대비하여 미리 횃불을 들고 나온 이들이 보이시지 않으십니까? 만약 저들을 흩어버리려다가 저 횃불 중 몇몇이 대성당 안쪽에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도 짚어주신 것처럼 하필 지금 대성당 곳곳에 타기 좋은 장작과 나무조각 등이 많이 쌓여 있지요.”

차르 이반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 나를 겁박하는 것이냐?”

“주님의 종으로서 어찌 거짓을 입에 담겠습니까. 폐하를 겁박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신과 차르가 있는 대성당에 불을 지르겠노라 협박하는 대주교와, 그 협박을 두고 분노와 웃음 사이를 오가는 듯한 차르. 두 사람 중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할까 스쿠라토프와 황태자 이반은 한참 고민하였다.

두 사람에게는 다행히도, 차르 이반은 분노로 날뛰는 것을 뒤로 미루고, 이 실로 흥미로운 상황에 대해 더 듣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반역이로군. 베체와 티샤츠키, 포사드닉(노브고로드 공화정의 관직명)이 있던 그때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내 조부께서 정복하신 노브고로드는 지금보다도 더 죄악이 가득한 도시였다. 스스로 다스릴 재주와 도덕이 부족한 자들에게 자치는 사치다. 이는 노브고로드의 연대기 작가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지.”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차르 폐하의 조부이신 이반 3세께서 이 도시를 정복하신 뒤 쓰인 기록이지만요.”

“결국 그대들이 그리도 자랑하는 베체는, 상인과 귀족 몇몇이 군주의 권한을 나누어 가질 뿐이었다. 한 사람의 자비로운 군주를 모시는 것이,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여러 상전을 동시에 모시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결코 완벽한 체제는 아니었지요. 어쩌면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한 사람의 위대한 군주가 홀로 통치하는 것이 탐욕과 죄악에 가득한 어리석은 자 여럿이 통치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런 주장을 펼치고자 하셨다면, 폐하께서는 대전쟁에서 다른 편을 선택하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저희를 모두 죽이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신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쪽에서 이곳 노브고로드까지 불어온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 서쪽에서 불어올 것이요, 어쩌면 남쪽과 동쪽에서도 불어올지도 모릅니다.”

이반의 머리가 쪼개지듯 아파왔다. 잉글랜드부터 동쪽의 타타르(몽골), 남쪽의 투르크까지, 온 세상의 정세에 밝은 그는 대주교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주교가 저 이치를 알게 되었고, 또 주변에 알렸다면, 이미 불길한 씨앗은 싹을 틔운 셈이었다. 이곳에서 그 싹을 짓밟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을 터.

그러나 이제 짓밟을 수도 없게 되었다.

대주교가 대성당과 함께 차르를 태워 죽이겠노라며 겁박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반 자신이 지금껏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려가며 쌓아올린 차르의 권위를 무너뜨리기에 족하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를, 사랑하는 아들 이반부터 저 바깥에서 노브고로드를 포위하고 있는 일개 병사까지 죽이지 않는 한, 이 치욕이 남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피멘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 무력감은 곱씹을수록 두통으로 변하여 게속 엄습해왔다.

“그만! 좋다! 그렇다면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폐하께서 주님의 해 1549년에 처음 열어주셨던 젬스키 소보르(Zemsky Sobor, 전국 의회)를 다시금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앞으로는 삼 년에 한 번씩 젬스키 소보르가 열릴 것이며, 그곳에서 지난 삼 년과 앞으로의 삼 년의 정사를 논할 것을 약조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가장 고귀한 이부터 가장 비천한 이까지, 차르 폐하의 백성 중 그 누구도 정당한 재판 없이 벌을 받지 않게끔 하겠노라고 약조하여 주십시오. 오프리치니키와 같은 무리는 우리의 땅 위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명민함으로 두 제안 모두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족히 헤아릴 수 있었기에 더욱 이반의 머리는 아파왔다.

젬스키 소보르. 보야르들의 권위를 억누르기 위해 자신이 백성들을 끌어들여 열었던 그 겉치레 모임. 그것을 상설화하고 평민들과 성직자로 하여금 보야르들을 억누르게 한다면, 이를 이용해 차르만의 세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반 자신의 체통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오프리치니키는 없어져야만 했다. 이 엄청난 망신, 자신의 도시에 들어갔다가 그 한가운데서 포위당하고 사실상 인질로 잡혀버린 이번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오프리치니키가 자신을 속였어야만 했다.

그로 말미암아 ‘억울한’ 노브고로드가 화를 입기 직전까지 갔으나, 현명하고 자비로운 차르가 마지막 순간에 대주교의 진심을 꿰뚫어 보고, 진정한 죄인은 오프리치니키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되어야만 했다.

물론, 이대로 몇 년쯤 더 쓰고 버릴 심산이었던 오프리치니키였으므로, 자신이 남의 말에 굴복하게 되었다는 사실만큼 자신의 유용한 사냥개를 일찍 잃게 되었다는 것이 아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 피멘 대주교를 노려보던 – 그리고 그런 대주교를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들 이반도 함께 노려보던 – 차르는,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좋다.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라. 네가 이겼다.”

“차르 폐하의 은혜에 한량없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차르는 결국 힘이 다하여 의자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피멘의 아랫사람이 바깥에 모인 군중에게 소식을 전하고, 노브고로드 전체가 차르 이반을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찼건만, 그의 다리에는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발타사르(벨사살) 왕처럼 저의 왕국이 남의 손에 찢겨버리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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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피사로에게 무너진 이후에도 잉카 제국의 정교한 중앙집권 체제의 몇몇 요소들은 한동안 유지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작중 지나가듯 언급된 부역제도인 미타였습니다. 17세기 초까지도 포토시 은광에 필요한 노동력 중 상당 부분이 이 오래된 제도를 통해 충당되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한편, 잉카 멸망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된 것은 미타 제도만이 아니었습니다. 1539년 에스파냐 정복자들에게서 도망친 잉카 황실이 세운 빌카밤바의 신 잉카국도 그 중 하나였지요. 비록 전성기에 비하면 초라한 규모였지만, 원주민 통제에 있어 그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였던 페루 부왕령은 이 신 잉카국을 무작정 멸망시키기보다는 회유책을 동원해 식민지 지배층으로 포섭하려 노력했습니다. 작중 등장한 티투 쿠시와 그 전대 사이리 투팍 등의 신잉카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유화책에 어느 정도 내응해, 세례를 받고 에스파냐 귀족의 이름을 얻기도 했지요. 그러나 작중에서와 달리 원 역사에서 신잉카국은 완전히 페루 부왕령의 유화책에 응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했고, 결국 빌카밤바의 에스파냐 사절단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부왕령 측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빌카밤바를 공격, 티투 쿠시의 아들이자 신잉카국의 네 번째 사파 잉카였던 투팍 아마루를 붙잡아 죽이고 잉카의 마지막 명맥을 끊어버립니다.

벨리키 노브고로드(위대한 노브고로드)는 지금은 별로 ‘위대한’ 도시가 아니지만, 몽골 침략 이후의 러시아에서는 가장 번영하는 도시이자 국가였습니다. 당대의 다른 공화국들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민주정이라기보다는 귀족공화국에 가까웠지만, 시장과 공작, 군사지휘관 등이 모두 투표로 뽑히는 등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진보된 정체를 가지고 있었지요. 모피 무역과 발트해-흑해 사이의 중계무역 등으로 크게 번영하던 노브고로드였지만, 결국 주변의 모든 무역 기반이 모스크바의 손에 들어가게 되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478년 노브고로드를 완전히 합병한 이반 3세는, 그 상징으로서 민회(베체)의 종을 떼어내 모스크바로 가져갔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후로도 노브고로드는 비록 쇠퇴했을지언정 루스 차르국 내의 대도시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였는데,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원 역사에서는 1570년에 일어난 노브고로드 대학살이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친위대 오프리치니키를 내세워 공포정치로 일관하고 있던 이반 4세는, 노브고로드의 대주교와 여러 유력자들이 공모해 도시를 리투아니아에 넘기려 한다는 조작된 고발을 명분으로 삼아 오프리치니키와 군대(스트렐치)를 대동하고 도시를 공격합니다. 피멘 대주교에게 모욕을 가하고 대성당에서 그를 체포한 것을 시작으로, 노브고로드 일대의 모든 수도원이 약탈당하고, 시민들에 대한 살상과 고문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희생당한 노브고로드 주민의 수는 최소 이천에서 최대 일만오천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노브고로드 시 자체뿐 아니라 주변의 거의 모든 마을을 파괴한 이반의 만행으로 인해, 노브고로드는 완전히 몰락하고 오늘날까지도 지방 중소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뇌제’ 이반 4세의 일생은 차르 전제권력을 확립하기 위한 귀족(보야르)와의 권력갈등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작중 언급된 젬스키 소보르의 개최 또한, 평민과 성직자, 상인 등을 끌어들여 대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고, 악명 높은 비밀경찰 겸 친위대 오프리치니키의 설립 역시 보야르들을 숙청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지요. 그 외에도 출판업 진흥, 서유럽과의 교역 증진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이반 4세는, 1560년 첫 번째 아내 아나스타샤가 사망하면서 점차 광포해지게 됩니다. 그는 리보니아를 두고 리투아니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오스만 투르크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크림 칸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이어갔는데, 그런 와중에 자신이 일으킨 온갖 국내의 혼란은 사실상 자충수로 작용했습니다. 이는 1571년, 크림 칸국이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수많은 루스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면서 단적으로 드러나지요. 원 역사의 이반 4세는 이를 빌미로 오프리치니키를 철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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