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군자불기 (1)
덴쇼의 역이 서군의 승리로 끝나고, 우대신 오다 노부나가는 스스로 모든 치욕을 감내하겠다며 저의 검을 버리고 오와리로 돌아갔다.
당당히 교토로 입성한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말뿐인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선포하였다. 이윽고 오기마치 천황의 이름으로 ‘어일신(御一新, 유신)’이 선언되고, 일본의 새로운 법도는 공(公, 조정)과 무(武, 무사), 민(民)의 삼가합체(三家合體)라 정해졌다.
전란의 백 년을 끝내고, 개명된 화평과 번영의 새 시대를 열겠노라 서두를 뗀 이 ‘어일신’의 첫 정령(政令)은, 누가 보아도 조선의 제도를 옮겨오겠다는 뜻이었다.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아니오. 특히 중추부의 제도는 조선과 달리 일본의 조정이 허울만 남은 지 오래인지라 받들기 어렵지. 그러나 공회 하나는 당장 지금도 실행할 수 있겠더이다. 각 쿠니(國)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니 공회보다는 국회(國會)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지만.”
모든 일이 일단락되고, 다음의 더 큰 일, 즉 대명과의 전쟁을 상의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요시테루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예 조정의 관직 중에서도 몇 가지는 국회에서 뽑아 올리도록 하자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오. 저 북방의 여진 사람들이 그들의 통령을 뽑듯, 우리도 장관(長官)과 차관(次官)쯤은 공론에 따라 뽑자는 것이지.”
천황이 정사에 관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해진 일본이었다. 유학(儒學)을 아는 자는 드물고, 태정관(太政官)의 관직이 그저 힘센 무장에게 주는 이름이 아닌, 진짜 국사를 담당하는 벼슬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 번 펼쳐진 상상의 나래는 접힐 줄을 모르고 마치 대붕(大鵬)과 같이 구만 리 너머를 날아갈 기세를 보였다.
저들이 같은 무사에게 가한 치욕을 어떻게든 올바른 것으로 포장하려는 욕구에 가득 찬 서군 무사들, 어찌하면 이 새로운 세상에서도 저들의 영화를 계속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승려들, 무사들의 빈자리를 어찌하면 차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상인들.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논의하고, 고민하고, 드잡이질을 하였다.
때로는 이 세 무리가 합심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동쪽 외진 곳에 있어 전란을 피해간 히타치(常陸) 국에서는 무사와 백성, 승려들이 한 마음으로 저들의 영주 오다 우지하루(小田氏治)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돕자며 돈을 모아 서책을 사들이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일본의 난세는 잔불만 조금 남기고 끝나가게 되었소. 물론 귀국 조선이 명과의 전쟁에서 무너진다면 그 잔불이 다시금 살아나겠지만.”
자못 진중한 말투였으나, 그런 요시테루조차 일말의 흥분, 저의 손으로 이 새 시대를 그려내는 데 한몫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전직 쇼군이 말씀하시는데 ‘나루호도’ 맞장구라도 쳐줄 법하건만, 정작 듣는 꺽정이는 무덤덤함을 넘어 살짝 짜증이 난 듯했다.
“다 좋은데 그 얘기는 좀 나중에 하면 안 되겠소? 근 사흘을 내리 일본국 유신 얘기만 하고 있으니 차라리 우리 처갓집의 율곡 그 녀석과 이야기 나누는 게 더 편하겠소.”
온 조선이 일본국에서 대승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 남의 이야기라면 질릴 수도 있을 테다.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규슈에서의 격물 때부터 조선국 공보는 열심히 일본 사정을 실어나르곤 했다. 거기에 더불어 요시테루 본인도 조선의 개명된 법도 운운하면서 조선의 도움을 구했으니,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아마가사키의 대첩은 곧 조선의 승리이자 조선 인민과 문물이 개명되었기에 거둔 승리였다.
권율과 이순신 두 사람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여진의 의사(義士) 니탕카이 요한 공(公)과 자유민주당 영수 히데요시의 명성도 함께 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간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던 ‘조선 사람’이라는 공허한 낱말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점차 실체가 있는 말로 변하여가고 있었다.
또한 전쟁이라는 머나먼 이야기, 아직까지는 마을에서 몇몇 장정이 군졸로 뽑히든 차출되든 하고, 소위 병비조(兵備租, 국방세)가 늘어나고, 또 공보에 매일같이 의연금 받는다는 광고가 실리는 정도였던 것이, 또렷한 상을 갖추어갔다.
그저 고되고 괴로우며, 아무런 보상도, 보람도 없는 그런 군역이 아닌,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남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군역.
진짜 전장의 참상을 목도하게 되면 금방 빠질 헛바람이었으나, 반대로 그런 참상을 접하기 전까지는 빠지지 않을 헛바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런 열풍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임꺽정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오히려 귀찮다는 것처럼 저리 손을 휘휘 젓고 있지 않던가. 요시테루로서는 아리송한 일이었다.
그러나 더 캐묻기 전, 때마침 이이와 이지함이 나타나고, 뒤이어 이준경과 니탕카이, 그리고 수러 버일러를 맡고 있는 아이신교로 교창아까지 들어왔다.
“자, 다들 오셨으니, 이제 명나라 칠 일을 함께들 논해 보십시다.”
큰 틀에서 합의된 전쟁의 대계는, 몇 년 동안 명나라 군세를 위해 세심히 마련된 요동이라는 거대한 덫에서 먼저 명의 예봉을 꺾고, 뒤이어 산해관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삼국이 망할 것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하루아침에 산해관을 넘지는 못할 터. 그리고 설령 산해관을 넘더라도, 거기서 다시 북경까지 나아가 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고작 오랑캐들에게 산해관 너머를 잃어버렸다는 것도 대일통을 내세우는 장거정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
그렇게 온 대국의 힘이 산해관으로 향할 때, 오승은을 중심으로 모인 강남 향신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중화 사천 년의 역사 속에서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기묘한 반란이 명의 등 뒤를 찌를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이 모임에 가장 늦게 참여한 셈인 요시테루가 물었다.
“그렇게 장 수보의 내각이 무너지게 되면, 그날로 전쟁은 끝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프랑스, 잉글랜드, 저지대 반란군, 이탈리아 연맹 등을 모두 상대하면서도 아직껏 팽팽히 버티고 있는 에스파냐다. 엘리자베스 튜더가 보내오는 소식에 따르면, 하필 쉴레이만이 노환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공격이 시작되어, 오스만 투르크 역시 곤경에 처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이 전비를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신대륙의 금은보화가 지니는 가치를 갑절 넘게 올려주는, 향료와 온갖 진귀한 문물의 땅 동방이 있기 때문.
명이 무너지고, 고아와 말라카가 함께 무너지게 되면, 지금까지 전비 조달을 위해 합스부르크 집안의 여러 군주들이 발행한 국채는 모두 휴지조각이 되는 셈이었다. 군대와 함대를 유지하는 것마저도 힘에 부치게 된다면, 펠리페 2세와 그의 사촌 막시밀리안 2세는 귀족과 상인들의 강요에 떠밀려서라도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날이 조속히 오도록 하기 위해 조선과 압카이 아파시 구룬, 그리고 일본까지 세 나라의 집정(執政)한 이들이 모여 합의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명나라가 마침내 올바른 길로 돌아올 때까지, 즉 조선과 다른 두 나라의 개명된 법도를 인정하고 나아가 스스로 이를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동방 삼국은 단독으로 명과 교섭하지 않으며, 군병을 낼 때도, 물릴 때도 함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권 또한 나누어 가지기로 하였는데, 대국을 정벌한 뒤 그렇게 무언가를 뜯어낸다는 발상을 께름칙하게 여기는 것은 이준경 하나뿐이었으므로 반론이 심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따로 백마의 피를 입술에 바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 ‘한양의 맹(盟)’은 굳게 맺어졌다.
출병의 때는 무진년(1568) 가을. 굳이 거창하게 전서(戰書) 보낼 것도 없이, 그때 이 한양의 맹이 맺어졌으며 그 내용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리면 그만일 테다. 맹약이 중원과 동쪽 삼국에 모두 알려지게 되면, 저자 한복판에서 뺨 맞은 격이 된 내각수보 장거정 또한 가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백련교도들이 전해오는 명나라 안쪽 사정에 따르면, 무진년 가을이 되기 전 저들이 먼저 쳐들어온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대국과의 전쟁이 몇몇 사람들 머릿속의 생각을 넘어 현실로 바짝 다가올 무렵.
대국이 괜히 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전쟁을 준비하는 모두가 새삼스레 깨우치고 있었다.
사실상 조선과 여진, 일본에 이은 네 번째 세력으로서 명과 에스파냐 양측을 상대하고 있는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사소하지만 꽤 통렬한 실패도 몇 번 겪게 되었다.
우대신 관직까지 버리고 오와리로 낙향한 오다 노부나가가 뒤로는 설욕을 논하며, 뜻있는 무사들을 다시 모으니, 아마가사키 전투에서 살아남은 오다 군과 여타 동군 무장 아래의 가신 여럿이 모여들어 금세 삼만을 넘겼다.
그리고 미리 약조한 대로, 마닐라의 에스파냐 갈레온들은 이세 앞바다에 모여,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을 품은 무사들을 싣고 천진을 수없이 오갔다.
이를 좌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요, 때마침 계절도 적당한 시절이라, 이번 일본 전쟁에서 딱히 큰 공을 세우지 못하였던 자유민주당의 서해와 그 아래의 옛 해적들이 제의하기를 마닐라를 치자 하였다.
저 갈레온들이 언제 조선 앞바다에 나타날지 모르므로 조선 수사가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렇게 많은 배들이 마닐라를 떠나 중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으니, 이는 그만큼 마닐라의 방비가 허술하다는 뜻일 터.
수전에서는 갈레온에 못 미치는 내선(萊船)이지만, 강남 바닷가에서 잠상과 해적질을 겸하며 재차 악명 떨치고 있는 자유민주당 ‘민주구’들과 그에 영합하여 날뛰는 온갖 잡다한 해적들, 그리고 이제 다시 한가해진 시마즈 무사들까지 모으면 족히 수천 병력은 될 것이었다.
거기에 조선에서도 위명 떨치겠다며 헛바람 든 이들도 제법 자원하여 꽤 위세 넘치는 무리가 꾸려졌다. 개중에는 아비 원준량이 비명횡사하면서 붕 뜬 신세 된 그의 장자 원균이라는 뚱보도 있었다.
허나 그렇게 당당하게 출병하여 마닐라를 급습했건만, 잔뼈 굵은 레가스피는 함대를 북쪽으로 보내면서 이미 필요한 방비를 마쳐둔 상태였다. 생각보다 탄탄한 마닐라 요새 앞에서 조선과 강남, 일본 등지에서 모인 잡다한 군세는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무리를 이끌던 해적 두령 임봉(林鳳)은 제법 눈썰미와 머리가 있는 작자라,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마닐라 함락이 요원함을 깨닫고는 배를 물렸다.
적어도 임꺽정과 흑의군,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수천 병력이 있어야만 저 요새를 확실히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임봉은 상세히 보고했는데, 이는 지금의 조선과 민주당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그리하여 꺽정이는 간만의 고식(姑息)이나 즐기며 소일하고 있었다.
요시테루까지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자신이 나서야 할 만한 큰일이 없어, 집구석에서 사고뭉치 아들놈과 오라버니에 그 행적이 가려졌을 뿐 저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닮은 기색 완연한 딸을 돌보고 있었다. (히메지에서 상봉한 이후로 명희의 배가 불러오고 있었기에, 남편의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던 중 하루는 늙어서 역시 집에서 소일하는 장인어른 모시고, 옛날 얘기를 안주삼아 술이나 한 잔 걸쳤는데, 그러던 중 아들 철수의 재주 이야기가 나왔다.
꺽정이네 장인어른 왈, 하필 견주는 대상이 자기 딸 명희와 아들 이이라서 둔재처럼 보이는 것이지, 철수도 어머니의 명민한 머리 – 명희의 그 머리가 외탁이라는 점은 스리슬쩍 빠뜨리는 이원수였다 –를 물려받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술기운 탓에 꺽정이 귀에도 그것이 제법 솔깃하게 들렸다. 어쩌면 자신이 제대로 아비 노릇은 못하고 백날 싸돌아다니느라, 아들에게 제대로 된 글공부 스승을 못 구해준 것은 아닐까?
며칠 뒤 조식이 직접 꺽정이네 집에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막 머리 굵어질 때라 어지간히도 남의 말 안 듣는 철수도, 아버지와 조식 두 사람 성미를 익히 알았으므로 순순히 사랑방에 들어 ‘남명 아저씨’와 진지하게 문답을 몇 번 주고받았다.
그리고 문하에 제자를 하루이틀 거두어본 것이 아니었던 조식은 금방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 도리를 다 하려면 글은 배워야지. 허나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학문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꺽정이가 조식에게 부탁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조금 더 심약한 선비에게 아들 녀석 글머리 좀 보아주십쇼 청했다면 다들 두려워하며 빙빙 돌려말할 뿐 이렇게 직언(直言)을 해주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철수 녀석은 아비 닮았다 그 말씀이시오?”
기실 그렇게 큰 희망은 품고 있지 않았으나, 꺽정이도 결국 아비인지라 일말의 낙담은 금할 수 없었다.
“그렇지. 허나 그런 자네도 화담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대성(大成)하였지 않던가. 결국 무엇을 누구에게서 배우느냐가 중한 셈일세.”
글공부 외의 다른 공부를 알아보라는 뜻이었다.
“뭐, 그래도 고맙소. 바쁘신 와중에 이리도 찾아와주시니.”
“꼭 모든 사람이 글공부를 해야만 크게 되는 세상은 이제 아니지 않은가. 자네의 사형인 병해 대사 문하에서 기학 하는 이들 중에도 스승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아직 이름조차 마땅히 정해지지 않은 그런 재주가 자네 아들에게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헌데 꺽정이 저를 위로하는 줄만 알았던 조식이, 느닷없이 한숨을 푹 쉬는 것 아닌가.
“어째 그 말씀은, 우리 아들녀석 얘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구려.”
“어떤 사람이 안 그러겠느냐만, 이 사람도 요새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네. 굳이 따지자면 우리 당 안의 일이겠지만, 도저히 탕평당 안에서는 어찌 해결할지 방안을 찾기가 난망하더군.”
거기까지 말해놓고 더 자세히 캐물을 작시면 ‘아니 알려주겠다’할 성품의 조식은 아니었다. 꺽정이가 슬쩍 채근하니 그 내막이 술술 흘러나왔다.
사연인즉 이러하였다.
단군이 나라 열고 기자가 문명을 전한 이래 이 땅에서 전란 일어난 것이 어디 하루이틀 일이겠냐만, 요즘 시사로 말미암아 자긍(自矜)하는 마음이 충만해진 선비들 보기에 오늘날의 시국은 실로 미증유 석 자가 어울렸다.
‘단군은 당요(唐堯)와 같은 대의 임금이요, 기자는 은(殷)의 성인이다. 두 성인(聖人)으로부터 전하여 오늘날 동국(東國)의 문명이 실로 빼어나게 되었으니, 마침내 온 천하의 모범이 되고 만백성이 의지하는 불빛이 되었다.
만물 중 가장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도 이처럼 선비의 쓰임이 중한 때에 두 발로 하늘 아래 섰으니, 중하도다, 그 소임이여!’
의기 높은 선비들이 곳곳에서 저들도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는데, 말이 제 발로 모였지 실지로는 민주당과 그 패거리에 속하는 이들이 세운 의병의 활약이 연일 공보에 오르내리는 것에 자격지심이 들었다는 것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허나, 내 방금도 말하였지 않은가. 문과 급제가 재주의 전부인 것을 오히려 죄송하다 해야 하는 세상일세.”
탕평당이 처음 생겼을 때, 거기에 가장 먼저 합세한 이들은 대개 조선의 사림 중에서도 지재가 훌륭한 이들이었다. 허나 당의 몸집이 커지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미 무언가 저들의 지닌바 재주를 드러낼 만한 이들은 모두 자신의 곳간과 나라의 곳간 양쪽을 채우는 일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고, 그러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러지 못할 만한 흠결이 있었던 것이다.
한양의 맹으로 정해진 출병의 때에 맞추어, 승산은 높이고 치루어야 할 전비는 줄이며, 지금 있는 군대에 더불어 십만 대군을 운용하고, 또 바다에서 넘어올 일본의 신정부군과 군량을 평안도와 그 너머 요동까지 옮기고, 일본에서 있던 싸움의 교훈을 적용하여 더 훌륭한 병비를 갖추고...
이토록 많은 일을 대비하기 위해, 조정의 관료들은 연달아 밤샘하고, 사업당과 기학재도 비슷한 고생을 하며, 대사탕도(대만)에서 나오는 분화두는 앞으로 삼 년 치를 거의 전매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 하나가 아쉬운 판인데, 정작 당당히 가슴 두드리며 내 나라의 대업에 보태겠노라 나서는 이들은 – 쓸모 있는 이들은 이미 한창 갈려나가고 있었으므로 - 쓸모가 없었다.
“아, 그건 어르신께서 나름 같은 선비인지라, 선비의 쓰임새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오.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거울 없이는 저의 등 뒤는 못 보는 것 아니겠소?”
“선비의 쓰임새라?”
임꺽정 입에서 들을 줄 몰랐던 묘한 어구에 조식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당수 임거정이 장차 천하를 개명된 길로 이끄는 대업을 위하여 나라의 재주 있는 선비들을 구한다는 광고가 공보에 실렸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팔도 각지에서 호응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은 거의 기묘명현에 버금가는 정도로 자랑스러운 이름이 된 대양서생도, 결국 임거정과 그 벗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제의하는 뜬금없는 일에 서스럼 없이 나섰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저들 또한 모두가 들뜬 이 시국에 기회만 얻는다면, 자손 대대로 자랑할 수 있을 광영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막 과거를 준비하던 서생들도 하나둘씩 책을 시렁 위에 올려두고는, 상경하여 임 당수 계신다는 흑의영으로 모여들었다.
하도 서생들이 모여들어, 이곳이 사업당인지, 아니면 막 원생 모을 때의 삼락서원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는 작자들이 모인 고로, 벌써부터 통성명하고, 육대조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은근히 저의 문중을 뽐내고, 학연과 당색을 따지고, 임 당수가 저들을 모아 무엇을 하든 자신은 두각을 드러낼 것임을 선비답게 최대한 돌려서 뽐내고.
문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사실 저의 소질은 무과에 있지 않은가 스스로 의심하던 신립이라는 젊은이는, 허세 가득 담아 저는 문무겸전이라 떠들고, 고담준론 펼치다가 어느새 근래의 나라 사이 정세를 논하게 된 김성일과 황윤길이라는 두 서생은 서로 식견 좁다며 날센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사업당에 별안간 침묵이 내렸다.
문이 발칵 열리고, 열린 문간으로 서쪽으로 기운 해의 볕이 드는 대신 큼직한 그림자가 마당에 드리웠던 것이다.
“잘들 와 주셨소.”
솔직히 말해 열의만 가득할 뿐 쓸모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서생들을 유용하게 쓸 방도가 있다는 말 듣고 온 퇴계와 남명 두 사람은, 꺽정이 뒤를 따라 그 양옆에 나란히 섰다.
저 모습을 보고서도 거한이 임거정 맞느냐 물을 눈치라면 이 자리에 서 있어서는 안 될 터였다.
“알다시피 우리 조선국은 조만간 대국을 상대로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오. 우리의 대의를 위하여 이렇게들 찾아와 주셨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오.
나는 말주변도 없고 학식도 짧지만, 싸움이라는 것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게 아님은 잘 알고 있소. 그리고 우리의 이웃 대국만큼 묵직한 상대도 없지.
하여, 그대들의 재주가 필요하다오.”
기백 서생 중 가장 기백 넘치는 (보다 올바르게 말하면, 기백만 넘치는) 신립이 번쩍 일어났다.
“저희의 재주라 하시면, 무엇을 이르심입니까?”
“오늘날의 싸움이란 명장 한 사람의 힘으로 전세를 좌우할 수 없소. 천시니 지리니 하는 것보다, 날카로운 병기와 잘 조련된 군사가 훨씬 더 중하게 되었지.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정밀한 조총이 필요하고, 더 많은 화약이 필요하며, 더 좋고 값싼 갑주가 필요하오. 더 좋은 훈련의 비결이 필요하고, 더 많은 군량이 필요하며, 이 모든 일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금은 재화를 어찌 잘 운용할지 그 비법도 갈고 닦아야 한다오.
당장 조총만 하더라도, 그런 것 있지 않소. 예컨대 일일이 화승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이, 부싯돌 따위를 달아서 ‘딱!’ 소리 한 번만 나면 바로 거발(격발)할 수 있는 총이라던가. 그런 것 하나가 명장 열 명보다도 더 중하지.”
꺽정이 인상과는 별개로, 의외로 일리 있는 말이라, 서생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우친 이도 있었다.
그중 하나였던 황윤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삼가 여쭙겠습니다. 그 모든 일을 이룰 비결이 무엇입니까?”
만약 저 주제에 대해 책문(策文)을 지어 올리라 한다면, 온갖 대책을 적어 올리고는 말미에 ‘이 모든 일이 사람을 얻는 데 달려 있다’거나 ‘군주가 덕을 닦아 지극한 교화를 베풀면, 비로소 북극성을 도는 별과 같이 만사가 형통케 된다’ 하는 소리를 덧붙여야 했을 것이었다.
허나 임 당수가 그런 심산으로 저들을 불러모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을, 딱히 드러나는 재주는 없지만 열의는 가득한 젊은 서생들을 모았을까?
임 당수가 막 답변하고자 말문을 열 때, 황윤길은 불현듯 불길함을 느꼈다.
“그런 비결이 있겠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이 다 해야 하는 일이지, 무어. 아, 그러니까 여기서 사람이란 그대들을 말하는 것이오.”
“예?”
“걱정들은 마시오. 그대들이 그렇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이들을 내 데리고 왔으니.”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꺽정이와 이황, 조식 뒤에서 나타나는 이들이 있었으니, 어째 흉악한 눈빛이 감도는 서림과 병해였다. 그들을 따라온 사업당 아전들과 기학도들도 어쩐지 신입을 환영하는 독기 어린 얼굴을 하고서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치 겨울철 벌판 위를 돌다가 멋모르고 고개 내민 생쥐 본 수리마냥, 서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이야 다들 저러지만, 막상 닥치면 아등바등 잘들 해낼 것이오. 내가 많이 보았소. 선비는 쥐어짜면 명안을 내놓기 마련이더군.”
어안이 벙벙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황과 조식에게 꺽정이가 말했다.
“그, 자네가 보았다는 것은, 그러니까 수산과 율곡, 그리고 자네 안사람. 이렇게 아닌가?”
“그렇소. 설마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다 합쳐서 그 세 사람만 못할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짚어주어야 할지 딱히 감이 잡히지 않는 이황과 조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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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지나가듯 언급된 오다 우지하루는 오다 노부나가와는 연관이 없는 다른 오다 씨 출신으로, 전국시대 무장 중 가장 부하와 백성들 사이에서 사랑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전시에나 평시에나, 인망 하나를 제하면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서는 단 한 번도 배신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전국의 난세는 선량함만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오다 우지하루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끝내 그의 대에 히타치 오다 씨는 멸문당하고 본인도 멀리 시코쿠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해금령이 완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또는, 그간 왜구로 위장하고 있다가 양지로 나온) 중국 해상세력은 이 무렵 동남아시아를 거쳐 동중국해까지 당도한 서양 세력과 여러 차례 충돌하게 되는데, 원 역사에서는 1574년 벌어졌던 임봉(임아봉, 또는 리마혼Limahon으로도 알려짐)의 마닐라 공격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4천 명에 달한 임봉의 병력은 일본 용병과 조총수 등 그 질도 에스파냐 측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아예 마닐라를 자신의 거점으로 삼을 심산으로 개척민까지 모집하여 대동한 상태였지요. 이들 앞에서 마닐라는 함락 위기까지 몰렸으나, 포병 전력에서의 우위 덕에 겨우 승리를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