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30화 (230/259)

69. 군자불기 (2)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전직 수러 버일러 니탕카이 요한은 몇 달째 한양에 머물고 있었다.

닥쳐올 전쟁이야, 기린울라에 가 있는 아이신교로 교창아가 잘 준비할 일이요, 제게는 더 중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칠게 살아온 전사들의 뛰어난 용맹과 무예 덕분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암바 버일러 임꺽정이 뜬금없이 여진의 후예를 자처해준 덕에 압카이 아파시 구룬은 조선과 일본 두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어찌 될 것인가? 민호의 수로 보나, 나라의 부유함으로 보나 가장 밀리는 신세요, 형세가 여의치 않아 부득불 합류한 해서 4부와 옛 건주, 그리고 처음부터 니탕카이를 따랐던 부족들 사이에 갈등이 무르익고 있었다.

더구나 아직은 한편인 요동의 백련교도들도, 전란이 끝나고 같은 나라의 사람이 되면 그때부터는 잠잠히 기린울라로부터의 명을 따르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기껏 세운 나라가 저의 아들이나 손자 대에 다시 쪼개져, 늘 그랬듯 해서는 몽골에 붙고, 요동의 한인들은 저들끼리 뭉치고, 건주와 나머지 동쪽 부족들은 생존을 위해 조선에 붙게 되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니탕카이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곳 한양에 집 여러 채를 사들이고는 일본에서 전사한 의병의 가족들 중 어린 사내아이들을 모아 데려왔다.

그러고는 암바 버일러와의 연을 통해 좋은 스승 여럿을 구하여, 누구는 글을 배우고 누구는 싸움과 농사보다 더 귀한 여러 재주를 배우도록 하고 있었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저들은, 요즘 조선 사람들이 그리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을 빌리자면 ‘개명된’ 나라를 열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오늘의 배움을 마치고 누구는 글방에서, 누구는 공방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는 니탕카이였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를 뚫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조선 사람이었다.

아직 ‘오랑캐’들을 곱게만 보지 않는 자들이 있기에, 니탕카이는 그런 시선이 드문 사업당 근방에 집을 마련했다. 사업당 주변이니 무슨 잡인이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못할 터. 

그런데 달려오는 이의 행색을 고쳐보니, 번듯한 서생의 복식은 하였으나 그뿐. 눈은 퀭하고 무슨 빚쟁이라도 되는 양 수시로 뒤를 돌아보는데, 암만 보아도 무슨 잡인이 맞는 듯하였다.

“그,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 여기 사업당 사람들이 드나드는지요?”

나름 일본에서 싸움 여러 번 겪었으나 한 번 불은 살이 쉬이 빠지지는 않아, 마루에 앉은 니탕카이는 여전히 풍채 좋고 느긋한 상이었다. 

물론 전장에서 니탕카이를 맞닥뜨리게 된다면야 그 상이야말로 거짓이고, 임꺽정과 함께 하다 부의 왕주 와일란 목을 치던 그때 그 니탕카이 요한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이곳은 평온하디 평온한 한양 한복판. 그러므로 도망자 신립은 서슴지 않고 물었다.

“그렇지는 않소. 이곳은 그저 북쪽에서 온 학도들이 기거하는 학재(學齋, 기숙사)라오.”

사업당 별감 서림은 이곳까지 오기엔 도통 바쁜 사람이요, 종종 찾아오는 임꺽정이나 이이는 민주당 사람이지 사업당 소속은 아니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아, 실로 천운입니다. 그러면, 송구하오나 제가 잠시 여기 몸을 숨겨도 괜찮을지요?”

그런데 신립이 저의 본의를 드러내자마자, 하필 함께 들어오던 와르카 부의 아이 하나가 조선말을 알아듣고 당돌하게 꾸짖었다.

“말씀 조심하십시오! 저분은 바로 우리 구룬의 아버지와 같으신 니탕카이 버일러이십니다!”

니탕카이의 이름을 모르는 조선 사람은 드물었다. 그리고 그가 상전처럼 모시는 이가 누구인지도 알 만한 이들은 다 알았다.

자신이 곰을 피하려다 칡범 굴로 들어왔음을 깨달은 신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니탕카이 공 계시오?”

때마침 뒤에서 울리는 낭랑한 목소리. 그 주인은 바로 흑의영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혹은, 갇혀 있는) 모든 서생들이 두려워하게 된 병해대사였다.

일견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거니는 듯한 발걸음이었으나, 무슨 신통력으로 이곳을 바로 찾아온 것은 아닐 테다. 과연 그 뒤에 흑의영을 지키며 선비들을 ‘돕던’ 이들 여럿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신립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니탕카이는 몸을 일으켜 병해를 맞이하였다.

“우리의 대의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젊은이 한 사람의 행적이 묘연한데, 아시는 바 있는가 하여...”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신립이 앞으로 나와 부복하였다. 병해가 ‘아, 여기 계셨구려’ 하기도 전, 목청 높여 외치기를,

“저는 평소 니탕카이 공의 용맹과 인덕을 흠모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제게 쓰임을 주십시오!”

하니, 니탕카이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자네는 조선 사람인데 왜...”

절박함으로 말미암은 달변이 이어졌다.

“오로지 올바르고도 문명한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함께할 뿐, 그 안에서 다시 무슨 화이(華夷)를 가리겠습니까? 더구나 뿌리로 따지자면 조선과 여진은 모두 동이(東夷)의 하나이니, 어찌 동족 사이에 멋대로 틈을 만들겠습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대사께서도 괜찮으실지요?”

니탕카이가 어깨 으쓱하며 물었다.

“허허, 바라는 바가 그러하다면 그리함이 마땅할 터. 잘 알겠습니다.”

병해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흑의영에는 아직 선비들이 많이 있었고, 개중에는 나날이 저의 재주가 계발되는 기쁨에 취하여 저들의 지인들을 불러들이는 이들도 있었기에 오히려 수효가 늘어나고 있던 것이다.

더구나 니탕카이 아래로 도망쳤다 한들 그리 앞날이 밝지는 못할 터. 글을 아는 이 하나하나가 중한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사정을 감안하면, 박시(博士)니 자르구치(理事)니 하는 그럴듯한 직함 하나만 받아들고는 싸움터 대신 어디 야문(관청)에 틀어박히게 될 터였다.

요새 기린울라에서, 하비에르 신부와 몇몇 신도들이 잊혀버린 암바 아이신 구룬(금나라)의 글을 갈음하는 새로운 주션의 문자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워낙 조선과 교류가 잦다 보니 함께 익숙해진 조선의 국문 모양을 참고하여 만들고 있다 하니, 아마 조선 사람인 신립은 그쪽으로 끌려갈, 아니, 그쪽 일을 맡을 공산이 컸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하는 단상을 접어두고, 병해는 화제를 돌렸다.

“명일 미시(未時) 정(正)에 사업당에서 또 한 차례 회동을 할 터인데, 그때도 자리를 빛내주실 수 있으실지요?”

“물론이지요. 어찌 임 당수께서 주재하시는 모임에 이 니탕카이가 함부로 빠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자리에서 논의되는 것 하나하나가 벌써부터 효험을 보이고 있으니 더더욱 놓칠 수 없지요.”

이 회동이, 니탕카이가 아직껏 한양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이유였다.

한편 그 무렵, 흑의영 안의 살풍경한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웠다. 이는 대개 밤샘을 거듭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하품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는가. 이러다가 또 무슨 도깨비 등불 같은 것이 나와서, 밤새도록 심지 한 번 안 갈고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어 하루에 두세 시진도 못 자고 일해야 하는 날이 올지.”

“이 사람, 끔찍한 소리는.”

분화차와 세상의 쓴맛을 동시에 맛보며 몇 달 사이 몇 년쯤은 팍삭 늙어버린 황윤길과 김성일이 촌각의 여유를 즐겼다. 

이곳 흑의영에 선비를 갈아넣을 채비가 갖추어지면서, 온갖 기묘한 물건들이 들어왔는데, 자명종도 그중 하나였다.

그 자명종 덕에 쉬는 시분(時分, 시간)을 미리 정해둘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나마 바깥바람을 쐬며 잠시 피로를 (딱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풀 수 있는 것은 그 덕이었다.

“혹시 두 분 계신 쪽에서 입지(立之, 신립)를 보셨습니까?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역시 핏발 선 눈을 비비며 다가오는 젊은이는 김여물이라 하는 이로, 평산도호부에서 나고 자란 터라 항상 민주당과 임 당수를 흠모해 왔다. 요 몇 달 동안은 그 흠모하는 마음이 많이 깎였지만. 

“둔갑술 터득하여 도망치기라도 했나 보지.” 

심드렁하게 황윤길은 답하고, 무언가 떠오른 김성일은 덧붙였다.

“그 땡중, 흠흠, 병해 대사께서 누군가를 찾아 나가셨다 들었는데, 아마 그게 입지를 추쇄(推刷, 부역을 피하는 백성이나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비를 붙잡음), 아니, 찾으러 간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럴지도. 헌데 듣기로 자네 방(房)에서는 어떻게 남은 이들끼리 아등바등 맡은 바 일을 마쳤다던데, 이제 와서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파국으로 치달은 뒤, 이곳 흑의영에 ‘머무는’ 서생들의 삶이란 대개 이러하였다.

그들은 여러 방으로 나뉘었고, 각각의 방에서는 임 당수나 병해 대사 등이 어디선가 들고 오는 기상천외한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임 당수가 그때 거론한, 화승 대신 부싯돌 쓰는 총이 그중 하나로, 바로 신립과 김여물이 있는 ‘황자방(黃字房)’의 몫이었다.

각 방에는 서생들과 더불어 사업당 아전들과 병해의 기학도들이 따라붙었는데, 이들은 낮에는 서생들과 함께 맡은바 일을 논하고, 밤에는 온갖 실무에 대해 가르치곤 하였다.

타고난 머리와 가득한 의기, 그리고 감당 못할 만큼 들어간 헛바람 외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서생들이었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가 독기가 가득 서리면서 무언가 질서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분골쇄신을 한 끝에 마무리는 겨우 지었습니다. 무릇 동고동락이 온당한 이치일진대, 다들 뼈가 갈리는 사이에 그 뼈를 간수하여 달아난 자가 있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김여물의 독기어린 말에, 황윤길과 김성일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물론 실제로 저 오싹한 말을 실행할 겨를도, 여력도 있을 리는 없었지만.

“길재(吉哉, 황윤길) 형의 조언이 실로 크나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뭘. 다 같이 고생하는 사이 아닌가.”

“입지 한 사람 빼고요.”

황자방에서 며칠간 화포의 이치를 검토한 끝에 이른 결론은, 부싯돌을 쓰는 조총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험 삼아 한 정을 만들어 격물을 해보니, 도저히 쓸 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차돌로 만든 부싯돌은, 부싯깃 없이는 도저히 거발에 필요한 불꽃을 낼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비싼 오석(烏石, 흑요석) 부싯돌을 몇 번 쓰고 버리자니 나라의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일본국 사정에 한때 관심을 가졌던 황윤길이 지나가며 제의하기를, 

‘동래를 오가는 상인 말로는, 일본국의 부싯돌은 우리 부싯돌보다 그 질이 좋다던데, 이왕 구리와 유황을 들여오는 길에 부싯돌을 더 들여오지 못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하였다.

또 한 차례 밤샘의 돌개바람이 지나가고, 화포장 여럿에게 탐문하고, 그러고도 부족하여 인천에 거하는 양인(洋人) 장인들에게 한참 수소문하고, 그러고 난 뒤에도 연필과 먹줄과 더불어 ‘즐거운’ 한때를 보낸 끝에, 마침내 동래의 공방에서 시제품 몇 정을 만들어낸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참 대단하단 말이지.”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던 김성일이 한 마디 툭 던졌다.

“무엇이 말인가?”

“이 모든 일 말일세.”

몇 달 전만 해도, 저들이 이렇게 흑의영으로 불려와 누구는 조총을 개량하는 일을 맡고, 누구는 나라의 병비조(국방세)를 어찌하면 더 잘 걷으면서 또 백성의 원성은 아니 들을지를 궁구하고, 또 수시로 그 맡은 바를 바꾸어가며 잡다하면서도 중한 일들을 맡게 될 것임을 꿈에도 짐작지 못하였던 서생들이었다.

(만약 그것을 꿈에라도 짐작하였더라면, 그런 꿈을 꾸게 해주신 조상의 영령과 산하(山河)의 신령에게 감읍하였겠지만.)

어떻게든 위에서 강요하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도, 머릿속에 들어와 가만 앉아있지도 않는 것들을 끊임없이 밀어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오로지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쪼개고, 나누고, 각자 다시 그 세세히 나눈 일들을 맡으며, 그 다음에 또 무슨 괴악스러운 소임이 떨어지든, 그들의 일을 또 누가 이어받든 마저 처리해나갈 수 있도록 이 모든 것들을 명료한 글로 정리해야 했다.

지금껏 조선국 관아에서 해 오던 것을 사업당 아전들이 한결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이 체계가 마침내 선비들에게 닿고, 또 사업당과 경제사의 막대한 자본과 그들이 끌어들인 천하의 명장(名匠)들까지 그들의 손에 들어갔으므로, 겨우 이러한 질서가 싹을 틔울 수 있었다.

그 싹이 과연 어디까지 자라날 것인가. 문득 김성일이 그런 선비다운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우리 스승님께서도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말씀하셨지. 군자라면 모름지기 이런 일 저런 일 다 맡을 수 있다는 뜻이라던가.”

“아니, 성현의 말씀을 누가 그딴 식으로 해석을... 헉?”

성품 까칠해진 김성일이 뒤를 돌아보니 임꺽정이 서 있었다.

“그러므로 군자를 자처하는 선비가, 이 한 가지 일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일은 차마 못하겠노라 한다면, 이는 맹자님 말씀마따나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일 터.”

어찌하여 재여(宰予)는 공자의 말씀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정작 공자 앞에서는 반박 한 마디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것이 전부였던가. 어쩌면, 9척 장신의 거한 공자 앞에서 말 함부로 했다가 뼈도 못 추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맹의 말씀을 제멋대로 뒤틀어, 선비를 쥐어짜는 것이 참으로 합당하다는 궤변 늘어놓는 임 당수를 보고 문득 깨우치게 된 『논어』의 심오한 경의(經義)였다.

“네 녀석들이 그간 시키는 일을 모두 꼬박꼬박 때맞추어 해냈던지라, 우리 당과 탕평당의 어르신들 모두 실로 흡족하게 보고 있단다.”

꺽정이 말투는 어느새 자연스레 서생들을 하대하고 있었는데, 이는 서생들이 달아날 여력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다.

흑의영에 틀어박힌 기학도들과 사업당 아전들은, 그만큼 두둑한 늠료를 약조받았기 때문에 한 밑천 잡을 심산으로 열렬히 일하고, 또 서생들이 달아날까 생각만 해도 곧장 주변에 고변을 하곤 하였다.

헌데 서생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곳에 붙잡혀 있는가? 바로 임꺽정이 지금 입에 올린 이들, ‘탕평당의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동고 어르신께서도 참으로 훌륭하다 하시었다네. 우리 조선국에 인재가 끊이지 않으니, 이번에도 그 부싯돌 총을 그리도 수월하게 고안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안(案)들이, 사업당 회동에서 나오고, 흑의영으로 전해지고, 열매를 맺으면 다시 사업당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업당 회동에서는, 민주당 중진들과 중추부 대신들(여전히 대개는 탕평당 사람들이었다), 여러 무장들, 그리고 공회의 다른 당 공임 몇몇에 여진 대표 니탕카이와 일본 대표 히데요시까지 한데 모여, 곧 닥칠 전란에서 어찌하면 흘릴 피와 (몇몇에게는 더 중요한 사안으로) 흘릴 금은을 줄일 수 있을지를 논하곤 했다.

일본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권율과 이순신, 히데요시와 니탕카이가 이것저것 발의하면, 다들 거기에 반박하기보다는 저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마구 덧붙이곤 하였는데, 실제로 흑의영에 모인 서생들이 꽤 괜찮은 실적을 올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열매라는 것은 무릇 나무 한 그루에서 여럿이 주렁주렁 자라기 마련. 그렇게 하나를 잘 마치면 다섯이 새로 생겨 더욱 촉박한 기한과 함께 흑의영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황자방의 사람들 명단은 모두 적어서 동고 어르신께 전해주었다네. 필시 다들 잘 보아두겠다는 마음으로 명단을 청하신 것이겠지.”

허나, 어지간하면 선비답잖은 걸쭉한 욕지거리와 더불어, 오늘에야말로 이 흑의영을 불태우고 사람의 의권인 자유를 찾겠노라 외치려던 이들도 결국 그 큰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니,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들이 열의 가득한 채 흑의영으로 온 까닭. 이 모든 것이 뒤바뀌는 시국 속에서 큰 광영을 얻고, 기묘명현과 대양서생에 이어 새로운 현사(賢士)의 무리로서 일컬어지고픈 욕심.

그것을 채워주겠노라 말하면서, 또 종종 서림이 찾아와 은표도 내밀곤 하였으므로, 신립처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이가 오히려 드물었던 것이다.

“하여 금일 회동에서 몇 가지 명안이 더 나왔다네. 동고 대감 이르시기를, 이처럼 뛰어난 영재들이 우리 대의를 위하여 모였는데, 그 재주를 십분 써서 나라와 천하에 보탬 되도록 도움이 마땅하다던가, 뭐라나.”

조식과 이황 두 사람이 예가 아닌 것을 보지 않고 듣지도 않기로 마음을 먹는 바람에, 이준경은 진심으로 기특하게 여기고서 서생들의 마음에 비수를 박아넣게 되었다.

“예?”

“으아악! 안 됩니다!”

김여물이 혼비백산하여 외쳤다.

이제 보니, 쉬는 시분이라고 우르르 나왔던 다른 서생들도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져 있었다. 하필 임 당수와 말 섞게 된 세 사람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을 뿐.

“안 되긴 뭐가 안 되나. 지금까지 쥐어짜는 족족 잘 해줬으면서.”

화승 없이 부싯돌로 스스로 불을 내는 자생화총(自生火銃)은, 이들 서생들의 밤낮없는 노력 끝에 제대로 된 도안으로 만들어졌고, 사업당 아전들이 검토만 한 – 즉 실무는 서생들이 맡은 – 계산에 따르면 기존 조총을 모두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지금부터 공방을 크게 늘리고 재정을 아낌없이 붓는다면 족히 싸움에 영향을 줄 만큼은 뽑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

거기에 고무된 이들이, 군문 안의 사람이든 문외한이든 또 하나씩 보태어, 누구는 탄환의 모양이 꼭 둥글 것이 있느냐, 대장군전처럼 멀리 날아가는 형상으로 탄환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고, 또 누구는 조총 말고 총통도 더 멀리, 더 간편하게 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자고 덧붙였다.

예로부터 문무백관이 공히 화약을 쓰는 일에는 진심이었던 조선국이었으므로, 결코 기이하다고는 못할 모습이었다.

“... 여하간 이와 같다. 뭐, 일을 네놈들만 하는 건 아니고, 모든 서생들이 나누어 하는 것이니까 과하게 부담스레 여기지는 말고. 듣기로 이런 훌륭한 대업은 모두가 거들며 광영을 나누어야 한다고 고향의 글공부 동무들까지 불러모은다는데,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

목석에게 탄원한들 하등 쓸모가 없는 것처럼, 저들은 수산이나 율곡 같은 비범한 이들과는 다르다고 백날 꺽정이에게 하소연한들 이들 서생들의 처지가 나아지기는 힘들 터였다.

“자, 그러면 수고들 하고. 다들 분화두로 차 달이는 데 맛을 들였다 하여, 서 별감이 얼마 전 류큐에서 더 들여왔다니 맛들 보라고.”

임 당수 말씀 떨어지기 무섭게 흑의군들이 줄줄이 수레 끌고 들어오는데, 어째 피폐한 서생들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 듯하였다.

그렇게 임 당수는 짐만 떠넘긴 채 사라졌고, 그제야 자명종은 이제 다시 일하러 갈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저게 스스로 울리는 자명종(自鳴鐘)인지, 저의 명줄 끊어지기를 자초하는 자명종(自命終)인지 모르겠군. 망치로 그냥 확...”

노갑이을(怒甲移乙)의 이치에 의거하여, 임거정의 넓직한 등에 대고 할 수 없는 원망을 애꿎은 자명종에게 하는 김성일이었다. 

“어허, 이 사람. 진정하게. 그렇게 민주당 기물을 부쉈다가 그 값만큼 더 일하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어찌하려 그러는가. 입신양명은 효의 끝이요, 받은 몸 멀쩡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효의 시작이니, 시작 없는 끝이란 불가한 일일세.”

달랜다고 하는 황윤길의 말이 그리 효험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광영을 탐하여 흑의영에 들어온 것은 그들 자신이었으니,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그 무렵 흑의영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살피던 이지함이, 무언가 이 나라가 또 한 차례 뒤바뀔 것임을 직감하고는 그 옳고 그름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침식(寢食)을 잊었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설령 천리안을 개안하여 이지함의 고심을 살필 수 있을지라도, 침식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내 알 바인가’ 하고 그냥 넘겼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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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에서는 니탕개의 난 진압으로 명성을 떨쳤다가 그 명성을 탄금대 전투에서 모조리 흩어 없앤 신립이, 작중에서는 그 니탕개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본디 문반 출신으로, 실제로 그 형 신잡은 문신으로 영달하여 전란 중에는 선조의 곁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우와 마찬가지로 영 모자란 언행을 많이 하여 평은 좋지 않았지만요.). 글공부를 포기한 신립은 1567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온성부사로 재직 중 기병을 이끌고 니탕개와 율보리가 이끄는 여진족 군세를 격파하여 군 내외로 큰 용명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잘 쳐줘도 맹장일 뿐이었고, 그가 남긴 ‘조총이라는 것이 쏠 때마다 사람을 맞힐 수 있겠느냐’라는 명언(?)에서도 볼 수 있듯 변화하는 군사기술에 대한 이해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원 역사에서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수러 버일러로 올라선 뒤 한문이나 몽골 문자 대신 사용할 새 문자를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그러나 문자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많은 언어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그런 지식도, 고급 지식인도 부족했던 건주여진은 그저 몽골 문자를 만주어에 맞게 개량하는 정도였음에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요. 결국 만주 문자는 약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홍타이지의 대에 이르러서야 만주어 음운을 제대로 표기할 수 있는 형태로 겨우 정착하게 됩니다.

작중 언급되는 ‘부싯돌 조총’은 곧 플린트락(Flintlock), 즉 수발총(燧發銃)입니다. 화약에 점화를 하기 위해, 직접 심지에 붙은 불을 화문에 가져다 대는 방식으로 격발이 이루어졌던 화승총에서 진일보한 방식으로, 까다롭게 화승의 불을 관리할 필요도 없었고 전반적으로 발사 속도가 향상되어 보병화력이 크게 증대될 수 있었지요. 

잦은 전쟁 속에서 보병화력 향상이 시급했던 유럽에서는 이미 16세기 중후반에 플린트락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멸망을 앞두고 화약무기의 개발과 보급에 진력했던 명에서도 17세기 초 자생화총(自生火銃)이라는 수석총 프로토타입이 등장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승총에서 수발총으로 나아가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걸림돌 – 즉 적합한 부싯돌의 대량 도입과 화승총보다 훨씬 정교한 방아쇠 메커니즘에 필요한 탄성 좋은 스프링 – 이 있었고, 조선뿐 아니라 청, 일본 등 많은 비서구 국가는 이 두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굳이 넘을 필요가 없었다는 쪽이 더 올바른 표현이겠지만요.) 

특히 수발총에 필요한 부싯돌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차돌보다 더 고급 재료인 처트(chert)나 준보석인 마노(agate)를 써야 했고, 대규모로 수발총을 운용한 서구 군대에서도 이 부싯돌을 빼돌려 몰래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습니다. 작중에서 언급되는 일본의 부싯돌은 일본 열도에 분포하는 백악기 역암에 포함된 처트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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