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군자불기 (3)
“그래서 무엇이 그리도 사형을 불편하게 하였소?”
꺽정이가 간만에 사형 이지함과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아직 그들을 싸잡아 부르는 이름조차 없는, 흑의영 안에서 숙식하며 나랏일을 거들고 있는 선비들. 세간에서 스승의 아호를 붙여 ‘화담후인’이라 부르는 이들의 글을 읽으며 불현듯 깨우친 바를 적어내려간 이지함은, 밤새 서간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친 끝에 동이 틀 무렵에야 잠에 들었다.
저 젊은 후학들을 아직 저렇게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탕평당의 여러 거유(巨儒)들이요, 저들을 장차 크게 쓰든 말든 할 이들 역시 중추부를 꽉 잡고 있는 탕평당 사림이었다. 그러므로 그 서간은 그대로 이준경에게 부쳐졌는데, 그럼에도 어딘가 미련이 남아 얼굴 한쪽에 근심인지 무엇인지 모를 미묘함이 묻었다.
“설마 저기 흑의영 안의 서생들이 고생들 한다고 안타까워하는 게요?”
“서생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흑의영의 서생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지함도 제자 이이에 비해 총명이 아주 약간 덜할 뿐 평생 기재(奇才) 소리만 들었던 사람이었다.
병해나 서림과는 달리 그가 흑의영 안쪽의 사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사업당에서 ‘한양의 맹’ 이행할 궁리를 하며 회동할 적 서림이 모아서 가져오는 수본(手本, 보고서)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지함으로서는, 그런 글을 쓰는데 굳이 밤샘까지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이 정도 수고를 하고 동고 대감에게 그 이름을 알리게 되는 정도라면 관대하디 관대한 축에 든다 여길 정도였다.
“아, 역시 그 서생들이 억지로 죽는 시늉을 한 것이었군. 거 참, 연소한 사람들이 벌써 잔꾀나 배워서는.”
“네가 할 소리냐.”
“나도 인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소. 그런 말 해도 될 법하지 않소?”
“이놈이 어디 지천명이 지척인 사형 앞에서 나이자랑을 하느냐.”
사형과 사제 사이에 간만의 소화(笑話)가 오가고, 그렇게 몇 토막 주고받다가 이지함이 도로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우려스러워서 말이다.”
무엇이 그리도 이지함을 불편하게 하였는가. 명효(明效)와 대험(大驗). 두 낱말이 바로 그 근원이었다.
자본을 불리는 것을 사업당의 주의로 삼은 이래, 언제부턴가 ‘사업’이니 ‘자유’니 하는 말처럼 사업당 아전들로부터 퍼져나간 그 낱말들이, 흑의영 서생들이 올린 수본의 절구와 행간을 공히 채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갑(甲)만큼의 수용(需用, 비용)을 들여 을(乙)만큼의 소출을 내었을 때, 그 갑과 을의 값이 각각 명확히 드러나는 것을 명효하다 부른다.
저 갑과 을이 각각 다른 여러 방안 중에서, 유독 갑 – 즉 수용 –은 적게 들어가고 을 – 즉 소출 – 은 많이 나오는 것을 대험하다 한다.
반면에 자주 나오지 아니하는 낱말도 있으니, 도덕과 인의가 그것이라. 부싯돌 총을 만들어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수본을 살핀즉, 도덕과 인의는 한 번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크게 놀라 그 전에 올렸던 수본을 재차 살피니 역시 그러한 말이 점차 근래로 올수록 줄어들고 있던 것이다.
“허, 이럴 때 보면 사형도 어지간히 도학군자시오.”
“인석아, 선비라는 작자들은 대개 다 그렇다. 네 녀석 말대로 도적놈 같은 선비도 물론 많지만, 아니, 어쩌면 지금껏 관을 쓰고 선비입네 했던 이들의 십중팔구가 그리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거짓 군자 시늉이라도 도저히 관두지 못하는 것이 또한 선비였단 말이다.”
그렇다면 천하의 만사(萬事)를 다룸에 도덕을 겉치레로라도 논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어찌 될 것인가.
국정을 거드는 첫 발을 그렇게 내딛은 후학들은 장차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저 가설의 영역에서 다루어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을 목전에서 맞닥뜨렸으니, 후세의 학풍을 이지함이 걱정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허나 방 안에서 온 천하의 사정을 두루 살핀다는 수산 선생 이지함도 정작 흥인지문 바깥 흑의영에서 며칠 전 벌어진 일은 알지 못하였다.
신립이 아직 김여물을 버려두고 도망치기 전, 끙끙대며 수본 초고를 써내려가는 김여물에게 – 신립은 그때도 썩 큰 도움은 못 되었던 것이다 - 김성일이 슬쩍 다가가 뭔가를 귀띔해주었는데, 딴에는 용한 계책이랍시고 전한 것이었으나 황윤길은 영 그것이 마뜩잖게 여겨졌다.
“그 계책이라는 것이 명효하기는커녕 도리어 재앙의 씨앗이 될까 두렵네.”
“우리가 지어올리는 글을 동고 대감께서 살피신다지 않았던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계속 수본이 그렇게 올라간다면 필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으실 것일세.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 겐가?”
영 주저하는 황윤길과 달리, 김성일은 저의 계책 탄탄하다 자부하고 있었다.
“무릇 계책이란 허허실실(虛虛實實)이 중한 것 아니겠는가?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일본국에 외유를 나갔다가, 그 땅의 대군(大君)이 느닷없이 엄청난 군세를 모으며 바다 건너 조선을 정벌하겠다느니 하는 그런 험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쳐보세나.”
“전조(前朝, 고려) 말엽도 아니고, 일본국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일본의 소위 무사라는 자들은 낭속(浪速, 나니와) 들판에서 백성의 단결된 힘에 쓸려나갔다 하였다. 그 이후로 당당히 일본 경도(교토)에 입성한 신정부는 곧 개명된 정부요, 일찍이 그 나라 대군이 한양 찾아와 경탄한 것처럼 조선국을 기꺼이 본받는 정부라.
그처럼 어질고 개명된 나라끼리 서로 다툴 리 없거니와, 당장 일본의 민병이 의지하는 조총은 모조리 동래에서 나오는 것이요 그 나라 자유민주당의 배도 모조리 동래 선소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황윤길의 코웃음에는 일리가 있었다.
허나 김성일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듣게. 내 ‘가령’이라 하지 않았는가. 여하간 일본 사정이 그와 같다면, 아국에 돌아와서 온갖 대경실색한 티를 내며 ‘일본국이 곧 아국을 친다’ 외치는 것이 옳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겉으로 ‘저들은 우리를 치지 않는다’ 한 다음 뒤로 몰래 병비(兵備)를 가다듬는 쪽이 옳겠는가.”
“마땅히 바르게 알려야겠지.”
“아니지, 민심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 뒤로 은밀히 방비함이 마땅한 일일세. 그래야만 적은 방심하고 우리는 외려 대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무릇 계책이 효험을 거두려면 이렇게 당장 직면한 일에 곧이곧대로 달려들어서는 아니 되고, 에둘러 가면서도 막힘이 없는 그런 길을 찾음이 가할세.”
김성일은 근래 자신이 쓴 수본과 다른 이들이 써 올리는 수본을 살피다가, 우연찮게 깨닫기를 명효대험 넉 자는 부쩍 많이 나오고 인의도덕은 드문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이번에는 김여물로 하여금 아예 인의와 도덕에 관한 글귀는 티끌만큼도 넣지 말라 꼬드겼다.
그렇게 되면 결국 누군가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흑의영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 – 상주(商紂)의 포락(炮烙) 형벌은 사람을 태우는데, 흑의영에서는 밤을 불사르니, 이쪽이 더 잔학스럽다 할 만했다 –을 멈추게 하리라.
이것이 부족한 밤잠으로 인해 핏발 선 눈을 희번덕거리는 김성일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책이었다.
“실로 금세(今世)의 손무(孫武, 손자)로구만. 자네가 그리도 병법에 밝으니 내 꼭 다음에 병해 대사를 만나면 임 당수께 그리 전해달라 청하겠네.”
“만약 이 사람 계책이 맞아떨어지면, 그때는 길재(황윤길) 그대 한 사람은 이곳 흑의영에서 지내는 하루하루를 천금과 같이 귀하게 여긴다고 전하겠네.”
그러나 그때, 유난히 큰 헛기침 소리와 더불어 자명종의 바늘을 가리키는 이들이 여럿 있었으므로, 결국 두 사람은 이 소소한 언쟁을 관두고 일이나 마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에게는 탄환의 형상을 앞은 뾰족하고 뒤로 펑퍼짐하게 만들어 멀리 날아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대험할지를 살피는 일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이루어야 할 일이 여럿 있으니, 이를 쪼개어 여러 사람에게 각각 맡긴다. 그중 하나는 더 좋은 조총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더 좋은 조총을 만드는 방도는 다시 여럿이 있으니, 이를 또 쪼개어 여러 사람에게 각각 맡긴다. 그중 하나는 자생화총(수석총)을 만들어 선방포수(善放砲手)에게 나누어주는 것인데, 모든 조총을 굳이 자생화총으로 바꾸려 하는 것은 ‘대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명효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로, 일본에서 나오는 하얀 부싯돌이 자생화총에 적합하니, 힘 닿는 한 가장 빠르게 이를 동래로 다량 들어와야 한다. 이 일을 한두 사람에게 맡기되, 가장 싼 값에 가장 많은 양을 들여올 수 있도록 상고(商賈, 상인)들이 서로 겨루도록 만듦이 가하며, 이 모든 일을 감독할 사람은 도합 삼 인이 가하다.
둘째로, 자생화총은 기존의 조총과 달리 방아쇠를 만들 때 보다 복잡다단한 술기를 요하니, 그중 하나가 용수철이다. 인천부의 서양 장인들 중 이를 능히 만들어낼 수 있는 자를 쓰되, 동래의 공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대험한 방식을 택해야 한다.
따라서 우선 아국 장인들 중 배움에 능한 이를 널리 모아 그 재주를 배우게 하고, 동시에 동래에 공방을 증설하며, 그사이에는 우선 용수철을 갈음할 수 있는 고래수염을 써서 자생화총을 만들도록 한다. 이 일에는 각각 오 인과 이 인을 배정하되, 그 세세한 절목은 후에 첨부할 것이다.
“... 잘 썼는데, 이게 왜 선비님네들 고심할 거리가 되는지 소인은 당최 이해가 아니 됩니다.”
앞서 회동할 때 보았던 수본을 도로 펼쳐본 서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사업당 사람들에게 여간 잘 배운 게 아니니, 이만하면 청출어람이라고 할 만한데요.”
그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사업당에서 이문 남기는 사업에 대해 위와 같은 글을 썼더라면, 선비들은 이러한 일은 군자가 마음 쓸 바가 아니라며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
나라의 기무(機務)를 논함에 있어 저러한 글을 썼더라면, 이는 신상(申商, 법가)의 술(術)에 가깝다며 타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흑의영에서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글들은 무엇인가.
국정을 논하는 정도가 아니다. 나라 전체를 무언가를 위해 쓰기 위한 글이다. 그 쓰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오직 무엇으로써 명효대험한 지경을 이룰 것인가, 그 하나만을 궁구하고 또 궁구하는 글이다.
천조 대명이 실덕(失德)하였으니, 이를 동방 삼국이 함께 정벌하여 천하의 올바름을 되돌리고자 한다. 이런 식의 문장조차 찾기 어렵다. 그저, 주어진 일을 잘[善] 해내는 것이 곧 선이요, 인의요, 도덕이니 그 외 더 깊은 생각은 부재할 따름이다.
마치 서양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진기한 자명종처럼, 정교한 하나의 기계가 되어, 오직 명효대험을 위하여, 닥쳐올 전란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한 목적 하나를 향해 움직이는 국정(國政).
그것을 선(善)이라 논한 이와 그에 맞장구친 이가 옛날에 있었으니, 바로 상앙(商鞅)과 진효공(秦孝公)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을 때, 섬뜩하게 여기지 않을 선비가 나라 안에 얼마나 될까.
허나 꺽정이도, 서림도 선비는 아니었다.
“뭐, 어쨌든 이번 일은 따지고 보면 내 이름을 들먹이긴 했지만 탕평당에 신세를 진 셈이니까. 사형께서 동고 어르신에게 글 부치는 것까지 막기는 무엇하지 않소.”
“허나 우리 모주님께서 못마땅히 여기실 정도라면, 동고 대감께서 어찌 보실지는 명약관화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
“동고 대감께서 이번 일에서 빠진다 하시면, 그때는 곤란합니다. 암만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들이라지만, 차마 거절 못할 만큼 많은 대가를 내미려면 가뜩이나 힘든 우리 사업당 재정에 더 큰 부담이 된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하더라도 평판 걱정된다며 떠날 이들이 훨씬 많을 테고요.”
기실 사업당 재정이라는 것도 대개는 경제사에서 융통하는 것과 포토시에서 넘어오는 은 빼돌린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하간 전비로 흘러나가는 돈은 적지 않았고, 이는 그만큼 사업당 자체를 위해 쓸 수 있는 재정이 줄어들어 기왕 벌린 사업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에 그침을 뜻하였다.
그러므로 서림이 저렇게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여하간 금번 사안은 내 말한 것처럼 두 당이 힘 합쳐 이룬 것이니, 사형이야 우리 당 사람으로서 의리를 생각해달라 하면 그만이지만 탕평당 어르신들은 어떨지 모르겠소.”
“율곡 그이는 무어랍니까?”
“사형 따라가서는, 따따부따 저의 스승님 생각이 잘못되었다, 바로 이 효험을 위하는 생각이야말로 국정의 장차 나아갈 길이다 떠들고 있지. 허나 고장난명 아니겠소. 오죽하면 내가 이렇게 서 별감 그대 언변까지 빌리려 할까.”
“거 참, 동고 대감은 몰라도, 그 잘난 탕평당 선비님네들도 우리네 사업당 분주가 태반 아닙니까. 사업당에서 이문을 남기려고 저렇게 궁리하는 것 두고서는 아무 말 아니하는 분들이 왜 이제 와서 우리 발등을 찍으려 하는 건지...”
이지함이 들었다면, 이익을 위하여 사업 벌이는 계사(회사)와 군왕과 백성이 모인 나라는 같지 않노라 답하겠지만, 여기 없으니 어찌하리오.
“여하간 이제 와서 흑의영의 노, 아차, 서생분들을 풀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민주당이 여차저차한 것을 떠나, 순전히 사업당의 이문만 생각해도 어떻게든 이번 전란에서 이겨야 합니다. 여기에 부어넣은 은자가 벌써 몇 냥인데요.”
“아, 그렇지!”
“엥, 무엇이 말입니까?”
“은자 아까워하는 것은 군자고 소인이고 천재고 얼간이고 다 똑같지 않겠소? 흐흐...”
음험한 웃음에 순간 흠칫하던 서림은, 어차피 저 머릿속에 든 흉계가 무엇이든 자신을 노리지는 않을 것임을 깨닫고는 금방 따라서 웃었다.
사업당이 굴리는 돈의 근원은, 첫째로 의민당 시절에 벌어들이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굴리며 벌었던 것, 둘째로 꺽정이가 지금껏 (말로야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지만) 도적질하여 뜯어낸 천하의 온갖 재보, 그리고 셋째로 분표를 내어 모아들인 자금으로 나눌 수 있었다.
지금 가장 그 비중 큰 것은 단연 셋째요, 그 분표로 모아들인 금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자금을 댄 것은 단 한 사람의 곳간이라.
“원래 군신유의(君臣有義)라고, 임금이랑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오. 지금이 바로 그 의리 챙길 때 아니겠소?”
“그건 원래 임금이 신하한테 하는 말 아니었느냐?”
평복하고 꺽정이 곁을 걷던 임금이 물었다.
“우리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스스로 헤아려보라 하셨소. 세상의 의리 중에 어디 한쪽만 지키는 것이 있소?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게 의리지, 그러지 않으면 어찌 의리라 하겠소?”
“그런가?”
제대로 차려진 세자시강원에서 스승 모시고 배운 것은 그의 작고한 형이지, 이환 본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모셨던 스승의 훌륭함으로 따지면 임금이 임꺽정이보다 한 수 아래였다.
물론 굳이 서경덕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았더라도 팔랑귀 임금을 끌어들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였다.
사업당에서 이문을 남기고 이 나라 사직에도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방도가 있는데, 그 계책 마련하느라 분골쇄신하는 젊은이들이 있은즉 한 번쯤은 찾아가 격려해줌이 어떻겠느냐고, 전후사정 거두절미하고 궁궐 수문장 통해 임금에게 슬쩍 언질 전한 꺽정이였다. (수문장도 임 당수가 굳이 월장(越墻) 아니하고 제게 정중히 말해준 데 감격한바, 마치 저의 급한 일인 것처럼 곧장 그 말을 지나가던 상선 통해 임금께 올렸다.)
“여기 흑의영도 발걸음이 여러 번이니 이제는 졸면서도 걸어올 수 있겠다.”
“임금님도 참 길눈이 밝으시오. 나는 올 때마다 한양이 휙휙 바뀌다 보니 가끔 헷갈리던데.”
그야 당연히 아무리 한양이 나날이 번성해진다 하더라도 감히 육조거리 앞을 뜯어고치거나 그곳에 새로 전각을 올리지는 못하기 때문이었지만, 거기에는 생각이 아니 미치고 정말 저의 길눈이 밝은가, 저의 벗이 올린 칭찬을 되새기는 임금이었다.
똑같은 흑의영을 퍽 야무지게도 돌려 쓰는구나- 그리 생각하며 귀한 발걸음으로 문턱을 넘으려던 차. 임금 곁을 지키는 거한의 그림자를 먼저 알아본 이들의 고함 소리가 임금을 맞이했다.
“임 당수가 나타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엊그제 찾아와 일거리 진천뢰를 가뜩 던져놓은 주제에 또...”
“이게 다 학봉(김성일) 때문...”
“어허!”
저들의 임금은 정작 못 알아보고 혼비백산하는 서생들이었다. 하필 딱 맞추어 서생들 쉬는 때에 들어온 탓이었다.
“아니, 이놈들이 임금님 앞에서 무엄하구나!”
“꺽정아, 그게 네가 할 말이더냐?”
“나는 그래도 임금님께 벼슬도 제수받았는데, 저놈들은 아니지 않소. 저놈들의 무엄함이 훨씬 더 무겁소.”
하도 임꺽정이를 자주 접하다 보니, 또 ‘그런가?’ 싶었던 임금은 더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정말로...”
“아, 속고만 살았나. 이분이 바로 이 나라 조선의 주상이시다!”
아무리 임거정이라도 저자의 상한을 데려다 임금이라고 우기지는 않을 터. 그에 생각 미치니 하나둘씩 얼굴이 (더) 창백해져서는 부복하였다.
아무리 백성이 먼저요 임금은 나중이며, 임금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지 백성이 임금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고 떠들어도, 임금은 모두들 (임금 곁의 꺽정이 포함하여) 마음 속에서 지존이었던 것이다.
곧 미리 와서 기다리던 서림이 슬그머니 나타나, 부복한 서생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임금 앞에 나아가 저 김 아무개 젊은이는 이러이러한 공을 세웠고, 그 곁의 황 아무개와 또 다른 김 아무개는 저러저러한 훌륭한 양책(良策)을 고안하였다고 고개 조아리며 덧붙였다.
“허어, 기특한지고.”
부복한 가운데서도 ‘네놈 탓이다’ 하고 다투는 김성일과 황윤길을 뒤로하고, 임금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저의 백성 중에서도 훌륭한 젊은이들을 하나씩 치하하였다.
한창 이이 한 사람 대 나머지 전부의 구도로 논쟁을 벌이던 이지함과 이이, 그리고 탕평당 중진들이 급보를 듣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등자방(騰字房) - 그 맡은 소임이 새로 내려올 때마다 방을 해산하고 새로 만들었으므로 어느새 천지현황으로 시작한 것이 ‘등’ 자까지 이르렀다 – 의 이 아무개까지 모두 임금이 살피고 기특하다 연발한 뒤였다.
정론보가 널리 읽히게 되고, 또 그 지면에 기고하려는 학자도 크게 늘어난 이래, 심오한 학문의 이치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스스로 논증하기보다는 그저 다른 선유(先儒)의 말씀을 가져와 찍어누르려 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는 치졸한 짓이 되었다.
이에 뜻 맞는 선비들이 학사(學社)니 학회(學會)니 하는 것을 세워 저들끼리 모여 궁구하고 서책을 사들이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눈앞의 임거정은 그 어떤 학사에도, 학회에도 들지 않는 사람이니 치사하고도 비겁하게 주상을 데려와 논쟁을 유야무야 흩어버렸다고 비난할 여지조차 없었다.
(애초에 이런 일에 성상 전하를 끌어들인다는 발상부터가 어지간한 선비의 생각을 까마득히 초월한 것이었지만.)
“성상께서는 비록 예지(叡智)가 출중하지는 못하시지만, 지금 이리 행차하신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할 만합니다.”
그새를 못 참고, 방금 전까지 저와 논쟁 나누던 스승에게 한 마디 하는 이이였다.
“동고 대감과 다른 탕평당 선생들의 논변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 않았느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아주 약간은 눈치라는 게 생긴 이이였기에, 그냥 저의 스승과 다른 이들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던진 허사(虛辭)였으나 굳이 이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지함에게 이리 답하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무릇 나라는 인의와 도덕을 위하는 것이니, 이를 가운데에 두고 나라를 세우며 이끌고 다스리는 것도 가한 일이겠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 수사지학(洙泗之學, 유학)부터 멀리 서쪽의 플라톤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모든 성현이 그리 말하였습니다.
허나 우리가 택해온 길, 그리고 앞으로도 택할 길은 그쪽이 아니지요.”
처음부터 학문을 하는 바탕이 이준경이나 이황과는 달랐던 이지함은, 저의 뛰어난 제자가 설파한 바를 다는 아니어도 몇몇 부분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몇몇 부분에서는 끝내 이이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네 말이 맞다. 허나 쉽게 미련을 끊을 수는 없구나.”
“어찌 그렇습니까? 이미 누차 말씀드린 것처럼...”
흑의영 서생들이 점차 도덕에서 멀어져, 오직 효험만을 논하게 된 것은 어째서인가. 결국 전쟁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요, 그들이 맞이할 전쟁은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조차 알지 못하였던 거대한 전란이기 때문이었다.
임꺽정과 이 나라 조선이 지금껏 없던 전쟁을 만든 것처럼, 지금껏 없던 전쟁은 이 나라 조선을 다시 이전에는 없던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을 돌이키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대명은 대국으로 남을 것이요, 그 대국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동방 삼국이 공히 병비(兵備, 국방력)를 갖추어야 할 것이며, 병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 효험만을 따지는 서생들의 머릿속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흑의영에 있는 서생들이 중히 쓰임을 얻지 못할지라도, 결국 이 나라의 모든 벼슬아치는 영의정부터 일개 녹사(錄事)와 서리까지, 저기 머쓱해하면서도 임금의 치하하는 말을 감사히 받드는 서생들처럼 화(化)할 터였다.
“감히 생각건대, 앞으로 인의와 도덕을 위하는 것은 비단 나라의 위정자만의 일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하민(下民)부터 가장 귀한 이들까지, 모든 국인이 도의를 사랑하고 아끼며, 비로소 지극한 교화를 이루게 되겠지요. 나라의 일은 오직 이를 돕기 위해, 가장 대험한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게 될 것이고요.”
그런 세상의 편린을 슬쩍 보자마자, 어찌하여 이지함과 다른 선비들이 공히 두려움과 섬뜩함을 느꼈는가.
벼슬이 그저 일자리의 하나일 뿐인 세상. 사대부라는 말이 그저 관료(官僚)와 같이 들리게 되고, 또 쓰이게 되는 세상.
양반을 양반으로 만들던 그 기둥이 무너지고, 그저 배운 자들과 부유한 자들로 남게 되는 세상.
허나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군자의 쓰임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군자가 있어, 조정, 중추부, 그 외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토록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하나의 기계로 화한 나라를 이끌고 그 방향을 때때로 고쳐줄 수 있어야만 하겠지.
그러지 않게 된다면 어찌 되는지, 저 장평(長平)의 들판에 묻힌 사십만 조나라 장정과 그 앙갚음으로 신안(新安)에 묻힌 이십만 진나라 백성이 말해주지 않느냐. 오직 효험만을 논하게 된다면, 언제고 나라가 가장 어둡고 무시무시한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스승의 수긍과 반박을 동시에 생각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스승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가 어찌 옳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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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효대험(明效大驗)은 실제로 사자성어처럼 쓰이기도 하고 각각 떼어서 대구로 쓰기도 한 관용어구였습니다. 그러나 작중에 언급된 ‘명효’와 ‘대험’의 정의는 모두 작중의 창작입니다.
탄환의 형상을 구형에서 뒤가 뭉툭한 원추형으로 바꾸어 그 위력과 정확도를 높인다는 발상은 원 역사의 서양에서는 한참 뒤인 19세기 초반에야 나오게 됩니다. 강선총(라이플)에 빠르게 탄환을 장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발명이었지요. 하필 이 무렵 유럽이 상대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었기에, 유명한 미니에 탄(Minié ball)이 제대로 도입된 것은 한참 뒤인 크림전쟁 시기에서였습니다. 작중 언급되는 탄환은 강선이 없는 총열에 쓰는 네슬러 탄(Nessler ball)에 가깝습니다. 이미 대장군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구형 탄환 외에도 다른 형상의 탄을 사용한 바 있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이런 아이디어는 탄환의 형상을 바꾸어 위력을 높인다는 고민을 하다 보면 나올 수도 있는 아이디어라 하겠습니다.
근대적 관료제보다 한참 전에 고도로 발전하였던 동아시아의 전통적 관료제가 어떤 면에서 근대 관료제와 다른지에 대해서는 막스 베버를 필두로 수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비록 오늘날에는 많은 비판과 재평가를 받지만, 분명 베버의 지적처럼 – 물론 베버는 전근대 동아시아의 모든 것을, 심지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유교와 도교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했지만 – 유가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정립된 동아시아의 전통적 관료제는, 효율과 합리성을 중시하며 관료가 그저 국가와 공공을 위해 일하는 임금노동자인 근대적 관료제와는 상이했고, 그 ‘아웃풋’도 한참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토록 뛰어난 ‘아웃풋’을 자랑하는 합리적 근대 관료제가 홀로코스트라는 가장 ‘합리적’인 학살로 이어졌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겠지만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근대 관료제도 사실 어느날 갑자기 완비된 형태로 출현했거나, 어떤 종교적 또는 다른 단순한 이유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출현했다기보다는, ‘국가가 전쟁을 만들었고, 전쟁이 국가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표현처럼 생존을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근세 유럽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현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작중의 조선 역시, 결국 전쟁 앞에서 주어진 행정력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작중 계속 언급되는 진나라와 상앙의 이야기는, 전국시대 말의 창작으로 추정되는 『상군서』를 말합니다. 당시 진나라의 법가적 개혁을 주도하였던 상앙의 이름을 빌린 이 책은, 상앙이 진 효공에게 개혁책을 하나씩 아뢰고 효공이 짤막하게 ‘좋다! (善)’ 한 마디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개혁책의 내용은 가히 전근대판 군국주의라 할 만큼 가혹한 것이기 때문에, 후대 유학자들에게 두고두고 비난받게 되었지요. 결국 이러한 변법의 힘으로 군국주의화된 진은 나머지 육국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하였고, 적을 철저하게 짓밟는 방식으로 중원을 통일합니다. 작중 언급된 장평대전이 그 단적인 예로, 비록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기록에 따르면 당시 진은 항복한 조나라의 사십만 대군을 모조리 학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이러한 원한은 훗날 항우로 대표되는 反 진나라 세력이 진나라 군사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두 학살 모두, 인골 지층의 발굴로 비록 과장되었지만 모두 실재하였다고 입증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