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수구초심 (1)
무릇 인간사란 새옹(塞翁)의 말과 같고, 전쟁 역시 승패가 공히 병가의 상사(常事)라.
조선과 일본 수군이 북경 코앞 천진을 들이치니, 일대의 대승을 거두었다. 마치 적벽에서 조조의 팔십만 대군이 연환계에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천하에서 견줄 자 없다 자부하던 에스파냐 함대 또한 발해 바닥에 잠기게 되었다던가.
반면 그 사이에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첫 수러 버일러였던 니탕카이 요한이 중상을 입어 사경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굳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자들 사이에서만 퍼지고 있었다.
여하간 압카이 아파시 구룬 기준으로 천주기원 1568년 가을이 되자마자 벌인 첫 싸움이 승리로 끝났으니,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승리를 위하여 나아갈 때였다.
허나 단숨에 요양을 취하고 산해관에서 달려나오는 명군을 섬멸한다는 발상은, 딱 첫 단추만 끼우고 그 이후로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본디 요동총병 휘하의 군세는 그렇게까지 오합지졸은 아니지만 동방 삼국의 이십만 정병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대체 어떻게 그리도 빨리 정신을 차렸는지, 삼국 군세의 척후가 요양성에 닿을 무렵에는 이미 요동총병뿐 아니라 새로 경략(經略)에 임명된 척계광의 군기도 성벽 위에 휘날리고 있었다.
이 뜻밖의 사태를 맞이하여, 삼국 군대는 무리해서 요양을 즉시 치기보다는 우선 산세에 의지하여 진을 치고 명군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는 데 합의하였다.
급한 쪽은 그토록 내세우던 중화의 위엄이 크게 상한 명 쪽이지, 결코 이쪽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나 임꺽정이 북경에서 엉뚱하게도 아이 하나를 데려온 지금은 더욱 그러하였다.
허나 속된 말로 ‘네가 와라’ 하며 기다리는 이 전법은, 아무리 타당하다 한들 안팎에서 반발을 사기 마련. 다행히 이 무렵에는 동방 삼국의 그 누구도 이순신과 권율 두 사람이 군략(軍略)을 논할 때 딴지를 걸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한양과 교토, 기린울라에서는 군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린울라 이북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이게 다 여인 마음 사려는 욕심에서 벌어진 일이래요.”
꺽정이 앞에서 잘난 체하며 떠드는 어린 누르하치였다. 그 할애비를 만나러 기린울라까지 달려왔는데, 교창아는 그 아들과 함께 무슨 일로 바쁘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 손주 녀석만 있었던 것이다. 굳이 따지면 교창아의 결례라기보다는, 딱히 약조도 아니 하고 위원군에서 마구잡이로 강 건너온 꺽정이 탓일 테다.
“네놈이 퍽이나 남녀 사이의 일을 알겠다. 내가 너희 할애비 틀어박힌 성 에워쌌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놈이...”
“아니, 진짜라니까요? 들어보셔요...”
아이 말본새가 제법 영특하여, 기다리는 동안 말동무로나 삼으려고 몇 번 오냐오냐 응대해줬더니,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모두 털어놓는 누르하치였다.
비록 한양의 맹에는 끼지 않았지만, 알탄 칸은 코르친과 차하르 부 사람들을 기린울라에 상주시키며 동방 삼국의 동향을 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차, 임꺽정이 북경을 급습해 황태자를 포로로 잡고, 천진에서도 기습을 가해 크게 이겼다는 보고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이는 곧 하얀 개의 해(1550)에 저들의 옛 칸발리크(大都, 북경)를 포위한 알탄 칸은 물론이요 어쩌면 (인정하기는 싫지만)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가 이뤄낸 것보다도 큰 업적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오른 한인들은 북경 일대에 모아두었던 군세를 모조리 산해관 이동으로 보내, 요동에서 삼국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 하였다.
그렇다면 필시 다른 쪽, 예컨대 대동(大同) 쪽은 텅 비었을 것이었다.
“그 소식을 어떻게 몰래 들은 알탄 칸의 손자 바간나기가 칸 앞에 나아가서 청했대요. 이번에 자신이 군사를 이끌고 대동을 칠 것이니, 만일 큰 공을 세운다면 저와 약혼한 처자를 그대로 제게 시집보내 달라고 했다더라고요.”
“약혼이면 약혼이지, 굳이 더 청할 것은 무엇이냐?”
“참하디 참한 미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름이 중긴 하툰이라던가. 뭐, 암바 버일러 말씀마따나 저는 남녀 사이 일도 모르는 꼬맹이라 잘은 모르겠네요.”
“그놈 참 속도 좁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들어야 할 것은 잘 새겨듣고 흘려들을 것은 잘 흘려들어야지.”
명희가 들었다면, 철수 어릴 때 못했던 훈계를 이제 와서 남의 집 아이에게 하느냐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하며 꺽정이가 말하다 말고 피식 웃었다.
혼례 때 하객으로 찾아와준 인연을 애틋하게 생각하여, 꺽정이 따라 북변으로 와서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는 니탕카이 곁에서 병구완을 하고 있는 명희에게는 아마 그럴 여유가 없겠지만.
“뭐, 여하간 그런 생각으로 말 달려 대동으로 쳐들어갔는데, 텅 비기는커녕, 명 관병이 눈에 불 켜고 기다리고 있었대요. 몽골 사람들은 그대로 탈탈 털렸고요. 우리 쪽에서야 알 바 아니지만, 나름 몽골과 가까운 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꽤 시끌시끌하다더라고요.”
어지간하면 걸어다니는 조선에서도 날개 돋힌 듯 퍼지는 게 소문이다. 말타기가 예사인 몽골과 그 인근의 시버, 그리고 그 동쪽 이웃인 해서여진 사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손자며느리로 삼기에는 중긴 하툰의 재색이 아깝다 내심 여기고 있던 알탄 칸은 옳다꾸나 하고서는 중긴 하툰을 저의 새아내로 삼았다.
(애초에 바간나기에게 동쪽에서부터 들어온 소문을 슬쩍 흘린 것이, 과연 그가 저의 남편감으로 어울리는 재목인지 시험하고자 했던 중긴 하툰 본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대로 초원 어딘가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시끌시끌하다?”
“네. 할아버지께서는 거기까지는 말씀을 안 하셨는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뻔한 얘기일 것 같아요. 아마 지금 각 야문의 사람들과 급히 만나고 계신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네 생각에나 뻔하지, 내게는 아니다. 대체 뭐가 그리 급한 게냐?”
“그야...”
어른이 잘 한다고 계속 맞장구를 쳐주는 데 신이 난 누르하치가 쫑알쫑알 말하려던 차,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꺽정이가 하도 당당히 들어왔기에 누르하치는 당연히 임꺽정이 저의 조부에게 연락을 하고서 이곳 자택에서 기다리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사이 조금 주름이 늘어난 교창아가 기겁하는 소리가 마당 건너편까지 들려왔다.
몰래 들어온 객이 마치 자신이 주인인 양 집주인 맞이하는 기묘한 모습.
그러나 교창아 맞이하는 꺽정이 목소리는, 앞서 누르하치와 이야기할 때와는 십분 달라져 있었다.
“잘 왔다. 여기 네 손주가, 니탕카이 요한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면서도 겨우 북변까지 돌아오고 있는데 왜 네놈들은 맞이하러 나오지 않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어디, 네가 이어서 마저 털어놓아 보겠느냐?”
뚝뚝 떨어지는 살의와 분노. 누르하치는 뒤늦게야 저의 오금에 힘 풀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 정말로 끝났다고 여기며, 슬쩍 긴장 내려놓으면서 배에 오르려 할 때 갑자기 울려퍼지는 원한 어린 함성.
‘제가 막겠습니다! 당수 먼저 배에 오르십시오!’
도저히 막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 외치던 니탕카이.
“그날, 청석골에서부터 날 따르던 흑의군 놈들도 여럿이 죽었다. 양벽 녀석도 다시는 싸움터에 못 설 몸이 되었지.
그러나 니탕카이 그놈이 그리도 멍청하게 나서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이들이 그 자리서 고혼이 되었을 것이다. 비단 사신으로 갔던 놈들뿐 아니라, 우리를 돕겠다며 배에서 내렸던 이들까지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물리고, 조선의 양식을 제법 절묘하게 따라 만든 별채에서 꺽정이가 말했다.
남쪽 나라들과는 달리, 주션 사람들은 아직 차보다는 술을 더 좋아들 하였다. 술이라는 것을 많이 빚을 만큼 곡식이 풍족하였던 게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창아가 손수 엄선하여 꺼내온 술을 거침없이 들이키면서도, 꺽정이 눈빛은 그대로 냉랭하였다.
“하지만 나와 내 벗들이 암만 니탕카이의 덕을 입었다 한들, 너희 여진 족속들이 니탕카이에게 진 빚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교창아의 머릿속에는 잠시 다른 생각이 스쳤다.
니탕카이라는 이상한 사람이, 임꺽정이라는 더 이상한 사람을 뒤에 달고 어느날 허투알라 숲을 헤치며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언제고 주션은 하나로 뭉쳤을지도 모른다.
예허를 꺾고 해서 4부의 실력자로 부상하였던 왕주 와일란은 물론이요,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때를 잘못 만났던 위대한 이만주(李滿住)까지, 주션 사람들 중에서는 언제고 모두를 하나로 묶으려는 이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허나 교창아 역시 주션의 수많은 이들 민심을 얻어 수러 버일러의 직에 오른 사람이자, 바로 그 자리 이름을 정한 이. 이제 와서 ‘만약 그때 우리가 이랬더라면...’을 논하기는 늦었음을, 그리고 분명 수많은 경우 중에서, 조선의 민주당과 낯설면서도 그들 마음에 꼭 맞는 믿음을 통해 하나로 묶이는 것은 거의 최선에 가까웠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창아는 기색을 살피되 아첨하지는 않고, 말을 꾸미되 비틀지는 않으며 또박또박 답했다.
“당수의 말씀에 한 점 그릇됨이 없습니다.”
“헌데 왜 시끄럽다는 것이냐? 불쌍한 니탕카이 녀석은 사나흘 뒤면 당도할 것이다. 녀석을 맞이하려는 궁리 외에 대체 뭐 더 할 궁리가 있단 말이냐?”
“초대 수러 버일러께 우리가 진 빚은, 고작 금은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장부에 기록된 빚조차 여차하면 편하게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굶주림을 물리친 빚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육진의 성저야인들과 북변으로 떠난 ‘백정여진’으로 시작한 압카이 아파시 구룬은, 처음부터 조선 – 보다 올바르게 말하면 민주당 – 과 교역하는 것으로써 주변의 동족을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건주삼위의 여러 부족들이 거기에 동참하게 되었고, 해서 4부 중에서 막 두각을 드러내던 하다 부의 왕주 와일란을 정벌하며 그 힘을 증명하였다.
그 이후로 벌써 십수 년. 압록강 북쪽 기린울라에는 사람이 모여들었고, 머리는 하얗게 샌 지 오래지만 신앙과 이 ‘옛 교인’들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인 하비에르 신부는 아직도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 믿음을 퍼뜨리고 있었다.
명과의 교역을 위해 서로 다투는 일이 사라지니, 그만큼 번영이 찾아왔다. 노예를 부리기는 점차 어려워졌지만 병장기를 잡을 일도 드물어졌고, 근래에는 조선에서 영험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난저(감자)까지 들어왔다.
곡식이 자랄 수 있는 곳에는 곡식을 심었고, 그러지 않은 곳에는 마소를 키웠다. 조선 황해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해들은 이들은, 이곳 북변 산하 어딘가에도 그런 귀물 나는 곳 있으리라 믿고 조선에서 장인을 고용해오기도, 스스로 그 술기를 배우고자 조선말 배워 남족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허나 이 모든 일에서 후룬, 그러니까 해서 4부는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이 전란이 눈앞에 닥쳐오고서야 어쩔 수 없이 기린울라로 찾아와, 그저 함께하자 하였을 뿐 복속은 입에 담지도 않았지요.”
그전까지는, 몽골이 두렵고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힘이 – 그리고 그들이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는 더 무시무시한 조선의 장사들이 – 두려워 협력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저 생존을 위하여 남쪽의 덜떨어진 자들과 손을 잡는다고들 스스로 우겼다.
그리고 그제야 기린울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전모가 그들의 눈에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션의 앞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들이 다른 주션 부류보다 뛰어나다 여겼던 후룬(해서)였기에, 저들을 제한 나머지 주션이 뭉쳐 정한 미래는, 그들에게는 남이 제멋대로 정해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 전화가 동방을 휩쓸게 되었지요. 그토록 그들이 강성하다 믿었던 몽오(몽골)조차 패퇴하고, 니탕카이 공은 – 당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 남의 전장을 전전하다가 이제 목숨조차 경각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두려운 것입니다. 고작해야 요동총병과 드잡이질하는 것을 전부로 알던 이들에게는 중원의 온 힘이 요동에 밀어닥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고, 또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되든 그 뒤의 세상에 저들 설 자리 없을 것임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하여, 조선에서 쓰는 말을 빌리자면 기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교창아는 그들이 께름칙하게 여기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해서든 건주든, 그들보다 까마득히 더 큰 힘에 의해 이리저리 분열당하고 연장처럼 쓰이다가 버려지는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었으니.
작게는 니탕카이의 병문안(또는 조문)부터 크게는 이번 전란에서 ‘하늘 전사들’과 함께 대열에 서는 것까지, 모든 일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보다 확실한 보장을 원하는 것일 테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해한다는 것이지, 엄연히 그들 후룬까지 포함하는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수장으로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물며 말로만 여진 후예인 임꺽정으로서는 더욱 양해해줄 까닭이 없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니탕카이 녀석을 맞이하지 않겠다 하는 것이냐?”
“암바 아이신 구룬이 있던 시절에도, 온 주션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니탕카이의 첫 번째 임기에 민주당 연줄을 통해 『금사(金史)』를 구한 이래, 이곳 기린울라에서는 그나마 주션 사람 중 학식이 있는 이들을 모아 그 내용을 살피고 있었다. 교창아 역시 호기심 절반 – 누르하치의 그 심성은 다 유래가 있던 것이다 - 어디 가서 써먹으려는 심산 절반으로 학사 여럿을 불러 몇몇 중요한 대목을 읽도록 시킨 바 있었다.
“그래서, 급한 쪽에서 먼저 나아와 그들 입에 더 많은 것을 물려주기를 바라면서 팔짱이나 끼고 있단 게로군. 그런 전례없는 일이니만큼 좋은 값을 부를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하면서.”
“그렇습니다.”
“네 덕에 좋은 생각이 났다.”
잠깐 생각하던 꺽정이가 온기 한 점 없는 못된 웃음을 지었다.
“온 주션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한 사람 죽는 것을 슬퍼하는 일이 지금껏 없었다 하였느냐? 그래, 그만한 일이라면 니탕카이에게 어울린다.”
“하면...”
“네놈 아랫사람 중에 가장 날랜 놈과 가장 날랜 말을 준비하거라.”
흔히 후룬 구룬이라고도 부르는 해서여진 4부는 아직도 우라, 호이파, 예허, 하다 넷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중 가장 잘 나가던 예허를 끈질기게 괴롭히며 넷 중 선두로 나선 하다는, 그 우두머리 왕주 와일란이 조선국 임꺽정 손에 그냥 머리로 전락한 뒤에도 여전히 강성하였는데, 바로 와일란의 조카 왕타이가 저의 숙부만큼이나 수완은 뛰어나고 허세는 훨씬 적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소식은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숙부가 세운 치치하다 성의 성주로 군림하는 왕타이가 수하에게 물었다.
이제는 제법 한 부를 이끄는 사람다운 위세가 서렸지만,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하다의 앞날을 위해 다른 후룬 사람들과 연합하여 소소한 객기를 부리고 있었지만, 그 소소한 객기가 선을 넘게 되면 언제고 큰 화가 닥칠 터였다.
물론 니칸(한인) 군세가 솔호고 무엇이고 다 쓸어버린다면야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옛날과 달리 왕타이는 니칸의 힘에도 맞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면이 있으니, 암만 저의 백성 이끄는 위엄이 있다지만 마치 누군가를 설득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에 사족이 붙었다.
“저들, 소위 ‘삼국’은 필시 산속으로 니칸 사람들(한인)을 끌어들인 뒤 격파할 심산이겠지. 그러나 이번 가을에 결전을 치르지 못한다면, 첫눈이 오는 즉시 산길은 막히는 것과 다름없다. 다음 봄까지는 이대로 버텨도 큰 탈은 없을 터. 조급해할 것은 없다.”
“참으로 온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한때 숙수후 부를 이끌었던 수러 버일러 아이신교로 교창아는, 사람 좋고 독실한 니탕카이 요한보다 훨씬 교활하고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었다.
후룬 사람들까지 모조리 모은 구룬이아찬(國會)에서 계교와 언변으로 자신을 수러 버일러로 뽑도록 만든 그 솜씨를 익히 보았던 왕타이는, 그러므로 미리 같은 후룬 사람들에게 연통을 돌렸다.
만에 하나 남쪽에서 사람을 보내, 니탕카이 요한에 관하여 무언가를 청하거나 요구한다면, 결코 단독으로 협상하지 않을 것. 후룬 네 부가 하나로 뭉쳐야 겨우 무언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이미 남쪽의 압카이 아파시 구룬은 커져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쓸데없는, 아니, 오히려 그들 하다의 앞날을 스스로 해치는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라도...
잠시 그런 회한이 찾아들던 차. 벌써 십수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도 이제 늙은 것인가? 아니, 두 번 듣고 세 번 들어도 그때의 그 목소리였다.
“왕타이 이 머저리 자식아! 당장 문을 열어라!”
그와 함께, 훨씬 더 자연스러운 주션 말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여시오! 솔호의 임꺽정 암바 버일러께서 친히 왕림하셨소!”
그제야 저의 숙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돌아왔던 그날이 떠올랐다.
산을 평지처럼, 숲을 집처럼 여기는 그들, 후룬의 전사들조차 경악할 만한 빠르기로 이곳 치치하다 산하를 헤집고 다녔던 자들이 바로 임꺽정과 그의 무리였다.
“수러 버일러 교창아 공의 명이오! 문지기는 즉시 문을 여시오!”
“수러 버일러께서 온 주션 국인을 대신하여 명하니, 이 문을 여시오!”
결국 그 기세에 눌린 왕타이는 문을 열고야 말았다. 저 문 밖에 저의 숙부, 나아가 온 하다 부의 원수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리고 나타난 것은, 그때보다도 어딘가 모르게 더 흉포해 보이는 임꺽정.
그와 그 무리의 손에 의해, 피붙이가 저 남쪽 숲에서 고혼으로 화한 이들이 이 치치하다 성에는 제법 많았다. 그러나 성을 지나 왕타이가 있는 곳까지 성큼성큼 걸어오는 임꺽정과 눈을 마주치는 이는 없었다.
허나 누군가는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다의 이름을 걸고...
“네놈이 왕타이냐?”
“그, 그렇소.”
나름대로 각오 다지며 임꺽정을 맞이하였건만, 막상 대면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덩치의 차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온몸을 억누르는 듯하였다.
“네놈들이 기린울라로 사람을 안 보내려 한다는 풍문이 돌기에, 직접 찾아왔다.”
“우리 또한 마땅히 예를 갖추고자 하였소이다. 허나...”
변명하는 왕타이의 말을 손 들어 가로막는 임꺽정이었다.
“내 장담컨대, 니탕카이 녀석은 너희 족속이 이 땅 위에 선 이래 가장 위대한 여진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어떻게 그리 장담하십니까?”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녀석에게 지금껏 신세진 것 생각하면 그쯤은 해주어야지.”
“그러나 어찌...”
“간단한 일이다. 니탕카이라는 놈이 그리 대단치 않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을 죄다 없애버리면, 니탕카이를 훌륭한 분으로 떠받드는 여진 사람만 남지 않겠느냐?”
다른 이라면 모를까, 왕타이는 눈앞의 거한에게, 문약하던 솔호를 손에 넣은 이래로 온 세상을 저의 뜻대로 이리 비틀고 저리 뒤튼 사내에게 그런 힘이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다만 그런 사내가 직접 찾아오리라고 예상치 못한 자신을 뒤늦게 책망할 뿐.
“내 딱 한 번만 말하겠다. 네놈 아래의 가장 훌륭한 말과 가장 잽싼 기수를 뽑아서 다른 해서 놈들에게 보내라. 예물 같은 건 상관 없고, 힘깨나 쓴다 하는 놈들은 죄다 모이라고만 전하거라.”
“그, 기한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야 네놈들 알아서 할 일이지. 단, 니탕카이가 아직 이승에 남아 있을 때 기린울라에 당도하지 못한다면, 이 전쟁이 끝난 뒤의 세상에 너희 자리는 없을 것이다.”
후룬 구룬의 고집이 꺾이는 데는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니탕카이가 마침내 압록강을 건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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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몽골 에피소드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오이라트는, 본디 몽골 서북부에 거주하던 몽골계(일설에는 투르크계) 유목부족 연맹체로 몽골 제국이 붕괴할 무렵부터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골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빠르게 세를 불린 오이라트는, 15세기 중반 걸출한 지도자 에센 타이시(태사太師의 몽골식 독음)의 등장으로 세계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무역을 두고 명과 충돌한 끝에 친정한 황제 정통제를 사로잡고 북경을 포위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토목의 변).
그러나 몽골에게 있어 오이라트는 어디까지나 외부인 또는 외적이었고, 에센 타이시 역시 허수아비 칸을 죽이고 보르지긴 씨족(칭기스 칸의 후예)이 아님에도 대칸을 자처하였다가 전 몽골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허무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탄 칸의 대에 몽골이 다시 통합되면서, 그때까지 점거하고 있던 카라코룸을 빼앗기고 서쪽으로 밀려나게 되지요. 몽골이 만주에 복속될 무렵 재흥한 오이라트는, 다시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일부는 더 서쪽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최후의 유목제국이라 불리는 준가르를 세웁니다. 그리고 가장 서쪽, 카스피해 연안을 지나 볼가강 유역까지 유입된 오이라트 분파는 칼미크인이라 불리게 되는데, 그 후예 중 하나가 해방된 루스인 농노와 결혼하여 일가를 이룬 뒤 블라디미르 레닌이라는 걸출한 손주를 얻게 됩니다.
작중 등장하는 바간나기와 알탄 칸의 막장 치정극은 원 역사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습니다. 중국 쪽에는 삼낭자(三娘子)라고도 알려진 중긴 하툰을 알탄 칸이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자, 졸지에 조부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바간나기가 앙심을 품고 명 측에 항복해버린 것이지요. 알탄 칸은 이를 역으로 대명교섭의 계기로 삼아, 명에게 군왕으로 책봉을 받는 조건으로 명과의 상설 교역권을 인정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탄 칸에게 의탁했던 조전과 백련교 교인들은 협상의 패로 쓰여, 바간나기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명에 송환당합니다.)
중긴 하툰 또한 비범한 인물로, 알탄 칸이 사망하고 투메드부가 분열되자, 재빨리 알탄 칸이 받아들였던 한인 정착촌을 장악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투메드부를 재통합합니다. 이 과정에서 알탄 칸의 아들 셍게두렝 칸과 재혼했고, 셍게두렝 칸마저 사망하자 그 아들이자 중긴 하툰의 정적이던 취리케(나무다이 세첸 칸)와 또 재혼합니다. (삼낭자라는 별칭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