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수구초심 (2)
니탕카이 요한이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인천에 닿은 뒤의 일이었다. 이미 온몸이 불타는 듯하였으므로 ‘얼마나 심하게 다쳤느냐’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인천부의 의원이란 의원은 모두 불러들여 네놈 환후를 살피도록 하였다. 상처 덧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였지만은, 뭐,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당수께서도... 화살깨나 맞아보셨나 봅니다.”
하늘은 노랗다가 붉었다가 하고, 땅은 좌로 기울었다 우로 기울었다 하는데도 그 와중에 멀쩡히 농담이 나오는 걸 보면, 다 살았거나, 곧 가게 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거려니 싶었다. 그중 어느 쪽인지는 뻔하였지만.
“네놈보다는 많이 맞아봤을 게다.”
암바 버일러 웃음에 힘이 없었다.
“잉글랜드 놈이건 예수회 사람이건, 이 일대에서 명의 소리 듣는 의원이건 하나같이 말하더라. 화살이 한 곳을 여러 번 찌르지 않아 그 자리에서 절명은 아니 하였지만, 그 대신 오장육부를 고루 헤집어놓았기에 살길은 없다고.”
하늘이 핑 돌고, 몸을 불태우는 듯한 열기는 머리로 쏠렸다.
“이놈아, 정신 차려라. 이놈 니탕카이야...”
차마 뺨을 후려갈기지 못하고 툭툭 어루만지기만 하는 임꺽정이었다.
“네놈쯤 되는 놈이 이리도 허무하게 가서야 되겠느냐.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라. 스승을 위해서는 박연폭포도 틀어막은 나다. 네놈 따위 바람이야 자면서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미 꿈인 듯 죽음인 듯 아득한 것이 온몸을 에워싸고, 귀는 멍멍하고 눈은 침침하니 사리는 절로 어두워졌다.
“고향이 그립습니다, 암바 버일러...”
고향이란 무엇인가. 뿌리내리고 살던 곳이 고향이라면 나이 열다섯에 부평초 인생이 된 니탕카이의 고향은 재로 화한지 오래요, 피와 마음 나눈 이들이 사는 곳이 고향이라면 그 역시 북변의 거친 산하 어딘가에 구르는 백골이 된 지 오래다.
알면서도 칭얼거리듯, 떠드는 입은 멈추지 않고, 암바 버일러의 눈빛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흘이 흘렀는지, 보름이 지났는지, 아니면 이미 전쟁이 끝났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성저야인 오도리 부의 지탕카이네 집에 드러누워 백일몽을 꾸고 있는지, 니탕카이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하비에르 신부가 있었으므로 – 사실은 이미 주교였지만, 주션 사람들 대부분은 그 의미를 아직 알지 못하였다 – 자신이 기린울라에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리신 것만으로도 주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헌데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여전히 온화한 그 미소를 지으며 하비에르가 말했다.
“그게... 성경을 다 읽겠다는 약속도 못 지켰고...”
“『중용』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명한 바를 성(性)이라 부르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부르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하였습니다. 어찌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요한 공은 믿음에 충실하였으니, 그것은 고해할 만한 게 아니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기린울라에는 아직 지식인이라 할 만한 이가 드물었기에, 엉뚱하게도 유학의 경의(經義)를 추려 주션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하비에르는 한 발 걸치게 되었다.
그 옛날 임꺽정의 계교에 넘어가 조선의 국왕과 신료들 앞에서 주자가 틀렸다고 말한 이래, 근 일 년을 내내 저의 앞에서 떠들었던 조식과 그 뒤로도 끈질기게 저를 따라다닌 이이로 말미암아 유학에도 제법 도가 트였던 것이다.
“신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됩니까?”
니탕카이가 힘없이 웃었다.
“물론이지요. 믿음이라는 것은 본디 그러한 것이니까요.”
거짓된 믿음조차도, 모두가 그것을 진실로 믿으며 따른다면 그때는 참되고도 올곧은 믿음이 되는 법.
그 옛날 하비에르가 어설픈 관세음보살 목상, 지금은 그 정체를 깨닫고 성당에서는 치웠지만 여전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 불상을 발견하고서, 성모상이라고 오해하였을 때처럼.
멋모르고 그저, 저들의 참된 믿음이었다는 말에 넘어와 니탕카이와 육진의 여진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처럼.
그 시작은 오해였을지언정, 그들 모두는 믿음에 충실하였고, 그 믿음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면, 더 나은 내일이 오리라는 믿음. 지난 이백 년 간,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변하지 않았던 삶이지만, 이제는 무언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견 허황된 기대.
그에 따라 북변의 거친 산하에 흩어져 살던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름이 생겼다. 모두가 그런 나라가 있다고 믿었으므로 비로소 기린울라에 도읍한 당당한 한 나라, 압카이 아파시 구룬이 생겼다. 모두가 저들의 뜻에 따라 우두머리를 세웠노라 믿었으므로, 비로소 수러 버일러 니탕카이 요한은 모두의 인망을 얻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임꺽정의 아들이 세상의 빛을 보던 그날, 하비에르의 머릿속에 스쳤던 신앙의 자유라는 생각. 하비에르가 그것을 옳다고 믿었고, 저 서쪽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그리 믿는 이들이 생겨났으며, 비록 시작은 황금에 대한 탐욕이었다지만 끝은 창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언제든 중간에 잘못된 쪽으로 비뚤어질 수 있었습니다. 요한 그대도, 손에 쥐어진 엄청난 힘을 다른 쪽으로 쓸 수도 있었지요.”
그것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암바 버일러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이때야말로 자신이 진정한 한이 되겠노라며 날뛸 수도 있었다. 믿음을 통해 마침내 하나로 묶인 주션의 힘으로,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없애고 수만 전사를 거느린 위대한 임금으로 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시작이 어찌 되었든, 나아가는 길을 마저 걸으며 항상 올바름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게 되었지요.
니탕카이 요한의 죄를 사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한 사람의 종으로서, 요한 그대를 위하여 기도를 올리는 데 있어 한 점 가책도,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라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하비에르가 말했다.
니탕카이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본인도 알고, 하비에르도 알았으므로, 그렇게 마지막이 될 인사와 옛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종부성사를 받았다.
“다 끝났소?”
성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뛰쳐들어오는 이가 있으니, 굳이 누구냐 묻지 않아도 그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어째 안 보인다 했습니다, 당수.”
하비에르가 꺽정이 대신 설명해주었다.
“당수께서도 그새 바쁘셨습니다. 며칠 전 먼저 이곳 기린울라에 닿더니, 교창아 공과 이야기 한 번 나누고는 곧장 말 달려 북쪽으로 향하셨답니다.”
“어디 그뿐이냐. 내 네놈 바라는 것 이뤄주겠노라 장담을 하지 않았더냐. 그 약속 지키려고 나름 애썼다.”
“제 바람이라니요?”
“고향에 가고 싶다고 했잖느냐. 네놈 고향이야 사라진 지 오래니까, 대신 새로 고향을 만들어 가져다 주었다. 자, 가자꾸나.”
어깨 너머, 마당에 놓인 가마 향해 손짓하는 꺽정이였다.
“아니, 설마...”
“일단은 밖에 나가야 고향이고 뭣이고 구경을 할 것 아니냐. 내가 암만 우악스럽다지만 내일모레 하는 놈더러 말 타라고 할 만큼 매정하지는 않다.”
그러고는, 니탕카이 본인의 뜻을 듣기도 전에 주변에 손짓하고는 대뜸 달려들어 니탕카이를 업어들었다.
“냉큼 나오거라. 내가 혼자 다 하게 내버려둘 셈이냐?”
주변에 외치니, 어째 익숙한 이들, 백정여진 시절부터 저와 함께 두만강 넘나들던 이들이 눈시울 벌게진 채 웃으며 나타났다.
그렇게, 수러 버일러 시절에도 못 타본 가마를 타고 저의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니탕카이 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온 기린울라가 웃고 떠들고 있었다.
터 다져진 지 오래되지 않은 말끔한 거리에는 변발한 이들이 가득하였다. 모두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니탕카이 요한 공 납셨다고, 어색한 주션 말로 꺽정이가 가갈하니, 그제야 주변 전체가 떠들썩하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수러 버일러!”
“살아서든 그 다음에든, 꼭 복 받으십시오!”
눈 마주치는 곳마다, 성호 그으며 고개 숙이는 이, 공손하게 합장하는 이. 눈물 훔치면서도 손 흔드는 이.
수러 버일러로 있을 때 많이 보았던 사람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부락 하나를 이끄는 사람도, 겨우 노예 신세에서 벗어난 사람도, 하나같이 거리에 서서, 웃고 떠들며 누군가를 기리고 있었다.
“애초에 고향이라는 게 다 무어냐. 마음 붙이고 고향이라 여기면 그게 곧 고향이지. 그리고 네놈 마음은 여기에 있는 것 같더구나.”
한 가지 생각으로 하나로 뭉친, 조선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은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지난 수백 년간 있은 적 없다가 마침내 다시 태어난 겨레의 모습.
니탕카이 요한과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은 말을 쓰며, 같은 나라에 살기로 약조한 이들의 모습.
“자, 어떠냐. 이만하면 네놈 고향 같지 않으냐?”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니탕카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렇다’ 답하고 있었다.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을 기리는 이런 모임은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주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모여드는 일 자체가 없었다.
그런 자리에 끌려오듯 선 후룬(해서) 4부 사람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기린울라의 번영을 처음 알았기 때문인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이 신출내기 도시의 번영을 시기하고, 그 사정을 염탐하며, 어떻게든 도시를 거치는 부를 조금이라도 저들 것으로 삼아보려 애썼던 것이 후룬 4부 자신들이었다.
이곳 기린울라에 저들 후룬은 물론이요, 건주삼위의 여러 부, 그리고 저 동쪽 노토와 와르카, 우디거의 유력한 이들까지 모두 모인 것을 보았기 때문인가? 이 또한 아니었다.
임꺽정이 직접 말 달려 후룬 사람들을 끌고 오다시피 할 정도였으니, 압카이 아파시 구룬에 몸 담은지 오래된 다른 부들에게도 어떻게든 연통이 갔을 것이었다. 후룬과 달리 훨씬 조선에 가까운 이들로서는, 저의 뜻에 따라서든 남의 뜻에 이끌려서든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온 주션 사람들이, 온 구룬이 슬퍼하며 웃음짓고 있구려.”
어쩐지 허탈한 기색 가득한 하다 부의 왕타이가, 기린울라 저자를 내려다보는 성루 위에서 씁쓸하게 말했다.
장사를 빌미로 이쪽 기린울라를 드나들던 후룬 사람들도 필시 저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부락을 떠나, 버일러니 암반이니 하는 그들보다도 먼저 기린울라에 닿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니탕카이 요한은, 그들에게 전란과 굶주림을 벗어난 삶을 주었으며,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더 넓은 세상을, 그리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의지할 믿음을 주었다.
그러니 어찌, 함께 기뻐하며 또 슬퍼하자고 백정여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떠들고 다니는 것을 듣자마자 온 마음으로 동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잘 말씀하셨소. 니탕카이 요한 공을 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슬퍼하겠소? 그분 가시는 길을 웃음으로 송별하자고 한다면 누군들 따라 웃지 않겠소?”
수러 버일러 아이신교로 교창아가, 왕타이뿐 아니라 그 뒤에 모인 후룬 구룬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오. 비록 오가는 길에 다소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지만, 과거의 일은 과거에 남겨두도록 합시다.
다들 알겠지만, 우리는 니탕카이 공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코자 이곳에 모였소. 그러나 그 뒤에 더 큰 뜻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은 다들 짐작하고 계실 것이외다.”
니탕카이 요한은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첫 수러 버일러로서 많은 이들의 인망을 얻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 넓이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누군가 한 사람이 인망을 두루 모은다는 것은 반대로 그 전에 인망으로든 위세로든 남의 위에 섰던 자들에게는 그만큼 인심을 빼앗긴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그저 시기하고 질투하던 이들은, 지금은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장 잃을 것이 많은 후룬이 그 예였다.
“니칸(중국)이나 솔호(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몽오(몽골)보다도 사람이 적은 것이 우리 주션이오.
하나로 모인다 한들 우리만으로 이 세상에 우리의 자리를 얻기가 난망할 것이니, 지금과 같은 때를 놓칠 수 없소. 니탕카이 공 또한 그렇게 여기셨을 것이오.”
“지금과 같은 때라면, 니칸과 솔호가 대결하는 것을 이르는 말씀이시오?”
“아니, 그 이상이지. 이 전쟁은 장차 하늘 아래 어떤 법도를 세울지를 두고 벌이는 전쟁. 솔호에서 흔히 개명된 법도라고 하는 것, 사람의 의권이 보장받고 오직 백성을 위해 나라가 있는 그 법도를 세우기 위한 전쟁이오.
그런 법도를 세운 나라가 세상에 하나뿐이라면, 그것은 별종이라 불릴 것이오. 그러나 그런 나라가 점차 늘어나, 둘이 되고 셋이 된다면, 그때는 가히 천하를 아우를 법도라 불릴 단초를 얻겠지.
이 개명된 법도라는 것은 솔호에서 시작했지만, 이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빼어나게 완성할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우리 땅, 우리 사람들이오. 얽매일 과거 없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쌓아올릴 수 있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때가 없다 하겠소이다.”
물론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주션 사람들은 하나의 구룬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순수한 힘으로써 억누르고 뭉쳐 하나의 거대한 군세를 이뤘다면, 비록 수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용맹하고 강성한 전사인 주션 사람들은 남의 도움 없이도 엄청난 위업을 이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뭉쳐진 구룬은 결국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임을, 수러 버일러의 자리를 맡으며 가뜩이나 명민하였던 머리가 더 크게 트인 교창아는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주션이 개명된 법도를 가장 먼저 완성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그 무엇도, 그 어떤 군대도, 세월의 풍파도 감히 무너뜨릴 수 없는 반석이 될 것이외다. 이러한 기회를 얻었으니, 약간의 불미스러움과 속임수를 감수하면서 여러분을 이곳에 모은 것이오.”
결국 구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피도, 말도 아니다. 피는 세월이 흐르면 섞이고,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의 믿음은, 자신이 다른 이들과 힘을 합하여 사람 하나하나보다 위대한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낸다는 그 믿음은, 허깨비와도 같기 때문에 오히려 하늘 아래에 실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더 오래갈 수 있다.
그들이 모여 자랑스러운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낸다는 것. 그 믿음만이 비로소 쇠를 자처하던 암바 아이신 구룬(金)보다도 더욱 견고한 나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 하나는, 이러한 때를 우리가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단 한 사람, 니탕카이 요한 공에게서 말미암았다는 점이오.”
그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수록 더욱 요란해지는 기린울라 저자의 웃음소리와 숨죽인 울음소리에 기가 죽은 것인지, 반대하며 목소리 내는 자는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지금 중한 일은 단 하나뿐이었으므로.
그러므로 교창아는, 자신과 모두의 은인이자 벗인 한 사내를 생각하며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그분께 마지막 선물. 하나된 구룬의 모습을 보여드리러 가십시다.”
니탕카이 요한이 살면서 가장 기쁘게 받은 선물이었다.
모든 주션 사람이, 신분의 높고 낮음과 가산의 많고 적음, 핏줄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하나의 가족, 새로 찾았으나 항상 함께하였던 일가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
그 웃고 떠드는 모습은 시늉으로 꾸민 것이었으나, 그 속의 존중하는 눈빛만은 참되었던 아이신교로 교창아의 모습.
끝내 심복하지는 않았으나 납득하여, 기꺼이 그 시늉에 동참하는 하다 부의 왕타이와 그 이하 후룬 사람들의 모습.
연신 눈물을 훔치고, 따라서 웃고, 화답하듯 손도 흔들던 니탕카이는, 그날 밤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괜찮았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광명한 새벽 별은 하늘 가운데서 빛나고, 구름 사이에는 언뜻 문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 문의 좌우에 사람 둘이 서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머리가 구름처럼 흰 노인이라.
“이 사람을 보라.”
먼저 말하는 노인은 행색이 비범하니, 그 머리 위를 독수리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고, 그 손에 쥔 술잔에서는 뱀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다만 그 얼굴은 아련하여 잘 보이지 않는데, 때때로 또렷하게 보일 때면 니탕카이 저의 아버지와도 닮고 또 자신과도 닮아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아쉬움이 남았느냐?”
그 누가 묻던, 답은 똑같을 것이었다.
어찌 더 살고 싶지 않겠는가. 언제까지나 임꺽정 곁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그가 어디로 향할지,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멀리 나아갈지 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저 떠난 뒤에도 그 어떤 금석보다 단단하면서도 그 어떤 덩굴보다 질긴 사람의 마음에 남아, 흘러가는 압록강 강물처럼 끊어지지 않을 것을 또한 알았다.
그러므로 니탕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되었다.”
이어서 다른 노인이 한 발짝 나왔다.
“또한 이 사람을 보라.”
노인은 한 쌍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몇 번 고쳐보니, 그 얼굴은 그 옛날 하비에르를 처음 모시고 북변을 돌던 때 니탕카이 자신이 활로 쏘고 또 칼로 베었던 저의 원수의 얼굴이었다.
“부끄러움이 남았느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자신을 추앙하는 것만큼 자신이 위대한 사람은 못 되는 것을 알았다. 그저 운이 좋아 암바 버일러를 만났고, 운이 좋아 지금까지 이뤄낸 것을 능히 이뤄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저들이야 주션 사람들이 마침내 궁벽함과 가난, 무지를 벗어나 개명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 니탕카이 요한의 덕이라 말할지언정, 니탕카이 저는 그 공이 다른 이들, 임꺽정과 하비에르 신부, 교창아, 비록 선의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을 도와주었던 조선과 그 너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익히 알았다.
그러나 노인은 오히려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들지어다.”
그리고 구름 위의 문이 열리는데, 그제야 깨달은바 니탕카이 저는 두 발로 땅을 밟고 있었다.
문은 하늘에 있고 저는 땅에 있으니 어찌 날개 돋치지 않고서 저 안에 들까.
“이놈아, 얼른 가거라. 네놈 맞이해준다는데 무엇하러 뭉기적대고 있느냐.”
등 뒤에서 잊으려 한들 잊을 수 없는 암바 버일러의 목소리가 났다.
마지막임을 직감하며 뒤를 돌아보니, 복식이 영 괴이쩍기는 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로 암바 버일러의 풍채가 맞았다.
니탕카이가 무어라 인사하기도 전, 암바 버일러 임꺽정이 그 옛날 저를 뻥 걷어찼던 그 발길질 솜씨로 걷어차니, 어느새 몸이 붕 떴다.
“잘 가거라. 그간 재밌었다.”
그렇게 니탕카이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지고, 때맞추어 기린울라의 동쪽 산 위로 새벽의 첫 햇빛이 비추었다.
떠들썩하게 모여들었다가, 떠들썩하게 애도하며 떠들썩하게 흩어진 주션 사람들 가운데는, 그 옛날 니탕카이가 육진 번호 지탕카이에게 의탁하던 시절부터 그를 곧잘 따랐던 유르보리도 있었다.
누군가는 이 일을 기념하여야 하리라 여겼던 유르보리는, 전쟁이 끝난 뒤 기린울라로 돌아와 그때 저의 영원한 버일러께서 숨 거두셨던 곳 주변의 민가와 땅을 사들인 뒤 그곳에 니탕카이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는 주션 사람들도 하나둘씩 글을 깨우쳤으므로, 말로만 전해지던 것은 글로 화하고, 늙어 사라지는 기억은 책이 되었다.
다만 니탕카이 요한의 모습은 글로 아무리 쓴다 한들 제대로 남길 수가 없었으므로, 그의 모습 기억하는 사람들끼리 합심하여 아예 석상을 하나 만들었다.
맨 처음, 어딘가 목마르고 배고픈 모습으로 육진을 떠돌던 그 모습이 아니라, 나라가 세워진 뒤 사람 좋게 후덕해진 뒤의 모습으로 만들었기에, 비슷한 시기의 위인들을 마찬가지로 석상이나 동상으로 모신 것에 비하여 – 조선이든 일본이든 그런 예가 허다했던 것이다 – 영 격이 떨어진다는 군말이 한 갑자 지나기도 전에 솔솔 나왔다.
그러나 저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니탕카이 요한이셨노라,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본 적 없었으나 그의 덕을 보지 않은 때 또한 단 한 번도 없던 주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외쳤으므로, 석상은 몇 번이나 자리를 옮기면서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후대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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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에서는 북쪽에서 남하한 여진족과 점차 불만이 쌓여가던 육진의 성저야인들을 규합해 3만 명에 달하는 군세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던 니탕개는,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여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화 및 그 이전부터 종종 건주위와 육진 번호(藩胡), 노토, 와르카 등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압카이 아파시 구룬에 불만을 품는 것으로 묘사되었던 해서여진(후룬 구룬)은, 원 역사에서도 만주족 통일에 있어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이미 4부가 각각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거느린 채 누르하치보다도 한두 세대 앞서 국가의 짜임새를 조금씩 갖추어나가고 있었고, 건주여진과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해서여진 입장에서는 쉽게 건주위 위주의 통일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1591년 건주위 통일을 앞두고 만주라는 새 이름을 붙인 누르하치가 예허 부에서 온 사신에게, ‘우리는 곧 만주이며 너희는 곧 후룬이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양측 사이에는 정체성의 뚜렷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1593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과 명이 동시에 여진 내부 상황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자, 누르하치는 더욱 공격적인 확장을 준비했고, 이때 누르하치를 꺾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리라는 위기를 느낀 해서여진은 마침내 연합군을 결성하여 건주여진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몽골의 코르친 부와 건주의 몇몇 부족까지 끌어들인 해서여진 연합군은 구러산 전투에서 누르하치에게 대패하고,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을 완전히 통일한 뒤 해서여진까지 하나씩 토벌하여 흡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팔기 제도를 도입해 아예 부족 위주로 짜였던 여진(만주) 사회의 구조를 재편해버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