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임금의 존귀함 (1)
기린울라 코앞까지 들이닥쳤던 명군의 패주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듯하였다.
기린울라에서 허투알라로, 허투알라에서 샹얀하다로, 샹얀하다에서 다시 개원과 심양으로.
그리고 개원과 심양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던 명군이 추격해온 조선과 여진 군사에게 너무나 무력하게 두 성을 모두 내주면서, 이제 요하 동쪽에 명이 유지하고 있는 거점은 툭 치면 언제든 무너질 듯한 반도 끄트머리의 몇몇 진보를 제하면 딱 요양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그 요양마저, 척계광이 허투알라를 구원코자 자리를 비운 사이 봉황성 쪽에서 넘어온 일본군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요동에 남은 백련교 교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개원과 심양에서 후퇴한 것은 시종일관 진중하고 차분하게 이루어졌다고 전해 왔다.
그러나 이는 도총부와 그 위의 삼국 수뇌부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사실상 전쟁의 대계를 도맡아 짜고 있는 이이와 이지함 두 사람이 고민할 거리요, 삼국의 일반 백성들은 그저 기뻐하며 일선에 나선 저들의 일가붙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할 뿐이었다.
봉황성으로 돌아온 꺽정이와 명희 앞으로, 미려한 산수화 한 폭이 전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째 익숙한 화풍으로 스산한 겨울 풍광을 담은 그 그림 한쪽에는, 역시 익숙한 필체로 대구(對句) 한 토막이 쓰여 있으니,
‘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오기를 바랄 뿐.’
바로 그 옛날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살짝 뒤튼 것이었다.
“... 그러니 그게 전쟁 끝난 뒤에도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둘 중 하나라도 돌아오라는 뜻 아니겠소. 장모님 연세도 연세인데, 대체 허리는 그리도 굽고 주름은 그리도 자글자글한 노파가 어떻게 기백은 한 치도 쇠하지를 않는지, 거 참.”
그 그림 받아보자마자 명희와 함께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개성 들린 꺽정이가 툴툴대었다.
물론 그러잖아도 전쟁의 다음 수순을 논하고자 한양으로 돌아올 심산이었다. 신씨도 이를 알기에, 참고 참다 이때를 노려 그런 그림을 보낸 것일 테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 노인의 나이를 두고 더는 고희(古稀, 예로부터 드물다)라 말하기 어려우니 이제는 금다(今多, 요새는 많다)라고 고쳐 불러야 한다는 농지거리도 있잖니.”
그 신씨 부인과 형님 아우님 하는 사이로, 자색은 쇠하여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눈빛은 그대로인 황진이가 찻잔 내려놓으며 웃었다.
“그래서, 네 안사람은 뭐라고 하디?”
“장모님 지략이 여간 무서운 게 아니오. 하필이면 서 별감이랑 율곡이 각각 저들 도와달라고 안사람에게 글 부친 뒤를 골라서 그런 아찔한 시화를 보냈으니,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가 없지.”
아무리 조선 동래부의 공장이 대단하다 한들, 화포의 재료를 사들일 금은 재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운데서 조율할 사람이 없다면 제 한 몫을 다할 수 없었다. 요동에서의 싸움으로 버려지거나 명을 다하는 화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서림 역시 비명을 지르고 있던 것이다.
더불어 조정에서도, 허투알라에서 거둔 항병 사만의 처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이 생각하기에 결자해지는 혈육간에도 마땅한 이치라, 저만큼은 아니어도 어디 가서 지재 달린다는 소리는 안 들을 저의 누이동생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어쨌든 군공은 세웠지 않소. 아들딸도 아들딸이요 장모님이랑 장인어른도 계시니까, 한양에 머물며 우리 등 뒤에서 힘 실어주는 일을 하겠노라 하였다오.”
“하기야,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사내들보다도 더 전공이 많은 것일 테지.”
당장 두 사람이 담소 나누는데 명희 혼자 빠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황진이네 여학에 재학하고 있는 학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명희를 맞이하고, 꺽정이는 그냥 힘 좀 쓰는 몸종인 줄로만 – 실제로 행색이 그렇기는 했다 – 알았던 것이다.
검손당 이씨 멋지다며 모여든 이들 앞에서, 그 사람 부군도 곁에 있노라 말하기도 무엇하여, 대신 이렇게 저의 사저와 한담이나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아쉽지 않니?”
“안사람이랑 떨어져 있을 때도 함부로 남의 집 처자를 못 만나는 판이오. 아리따운 처자들 구경하는 것보담 내 명줄이 귀하거든.
그리고 다들 안사람 보러 모여들었으니, 그 소원 들어줘야지. 듣자하니 다들 기특한 일도 했다던데.”
꺽정이 말마따나, 이곳 여학의 원생들은 시분(시간)을 쪼개 틈틈이 헝겊이나 종이로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만들고는 (또는 밖에서 몰래 들여온 뒤 슬쩍 손만 대고서는) 밖에 팔곤 하였다.
개성 여학의 학도라면 그저 입 헤 벌리고 좋아하는 어리석은 사내들이 많았으므로, 이 전란 와중에도 나름 불티나게 팔렸고, 학도들은 그 수익을 모두 전비에 보태라며 의연(기부)하였다.
“그래, 기특한 일이지...”
헌데 황진이의 반응이 어째 기묘하였다. 아예 눈치가 없는 이이와 달리, 눈치는 멀쩡히 있으나 여간해선 그것을 쓸 마음을 먹지 않을 뿐인 꺽정이였으므로, 금방 사저의 묘한 기색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으시오?”
“이 전란이 얼마나 갈 것 같니?”
“뭐, 빨리 끝나면 좋고 아니면 오래 끄는 게지. 그걸 알면 내가 임꺽정이겠소? 우리 사형이야 천기(天機)도 읽는다는 소문이 있으니 알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꺽정아.”
송도 기생 황진이 대신, 화담 선생의 제자 황진이로서 던지는 물음. 그러므로 꺽정이도 짐짓 퉁명스레 굴던 것을 관두고 진지하게 들었다.
“관(官)에도, 당(黨)에도 속하지 않은 사인(私人)으로서, 일부러 수산 사제와 다른 이들과도 거리를 두었다. 나라의 기무(機務)란 함부로 바깥 사람과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허나 이 전란은 모두의 것이 되어버렸다. 아니, 처음 국인선서를 내었을 때부터 그러하였지. 그러니 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근심할 수밖에 없더구나.”
어찌하여 모두가 기꺼이 사재를 출연하고 또 기꺼이 전장에 나서게 되었는가. 나라에 대한 믿음도 믿음이지만, 그렇게 팔 걷어붙이고 나설 만큼 민력(民力)이 늘어난 덕분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저들이 작정하고 우리를, 우리가 살아가며 세워온 이 법도를 멸하겠노라 달려드니, 온 백성이 이렇게 하나되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지. 헌데 이대로 한두 해가 지나고, 다섯 해가 지나면 어찌 되겠니? 그전까지 저 북경의 조정으로 하여금 뜻을 꺾고 화평을 청하도록 만들 수 있겠니?”
중원 땅은 넓고도 넓었다. 변경(汴京, 개봉)을 잃은 송나라는 임안(臨安, 항주)으로 옮겼고, 한나라는 거듭 망한 뒤에도 계한(季漢)이 남아 촉 땅에서 수십 년을 버텼다.
오랑캐에게 밀려 천도하는 굴욕은, 그 오랑캐에게 굴복하는 굴욕에 비하면 그나마 가벼웠다. 저들은 그렇게 여기리라.
그렇다면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점령한 뒤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조정과 군부를 믿어줄 것인가? 황하와 회수를 넘어가며, 끝없는 중원의 대지에 국용을 모두 흩뿌린다면 어찌 될 것인가?
“예로부터 기쁜 일이 다하면 슬픔이 돌아오고, 잔치의 즐거움이 가시면 늘상 겪는 삶의 괴로움이 도로 차오르기 마련이거든. 지금 이렇게 온 국인이 하나되어 힘을 모으는 것도, 언젠가 그 끝이 닥치지 않을까. 그 전까지 우리가 이 일을 마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걱정이 들었단다.
섣부른 걱정이라고 말해다오.”
“섣부른 걱정 맞소.”
꺽정이가 당당하게 답하니, 그제야 황진이도 조금은 안심하였다.
“네가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역시 현명한 사제들이 미리 다 대책을 마련해둔 모양이로구나.”
“아마 그럴 것이오.”
다행히도 살짝 귀가 어두워진 황진이는, 장담하는 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아마’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근심 서리는 일 없이 화기애애하게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헌데 꺽정이가 그 이후 명희와 함께 한양 가는 나머지 길을 죽 가다 보니, 어째 머릿속에 사저의 그 물음이 계속 맴도는 것이라.
그리하여 한양 돌아와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문안인사 드리고서 사형 이지함을 만나자마자, 곧장 황진이 물음을 기억나는 대로 되풀이하고는 대뜸 물었다.
“섣부른 걱정 맞지 않소?”
“이놈아, 사저 앞에서는 안심하라고 아주 호언장담을 해놓고서 그렇게 내게 물어보면 어찌 하느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사저 누님께서 그러셨으니.”
황진이가 일견 경박한 기생의 모습 뒤에 가히 저의 스승과도 대담할 수 있는 지재를 갖추고 있음을, 꺽정이보다도 더 훤히 아는 이지함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식견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것을 꿰뚫어보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세론(世論) 어지러워질 것을 염려하여 그저 입을 닫고 있을 뿐이겠지.”
직례 일대에서는 이미 뿌리가 뽑힌 백련교였지만, 요동뿐 아니라 나머지 중원에는 아직 교인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대개는 동창과 홍병위의 눈을 피하여 목숨 부지하기도 바빴으나, 명의 해안을 아직도 자민당 해적 겸 잠상들이 드나들고 있었기에 – 즉 어떻게 보면, 한양의 맹은 중화의 은으로써 중화를 치고 있는 셈이었다 - 그 편으로 종종 그들이 모을 수 있던 명나라 사정을 전해오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오는 소식은, 한양의 맹을 이루는 삼국이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패전의 흉흉한 소문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산해관을 틀어막은 명은, 정말로 이십만 뒤를 잇는 다음 이십만 군사를 보낼 심산으로 각지에서 사람과 금은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여기저기서 알뜰히 도둑질, 아니, 소득을 거두어 병비에 보태고 있다 하더라도, 명이 우리 세 나라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물력 대 물력, 민력 대 민력으로 겨룬다면, 우리가 저들을 아무리 부수고 또 깨부수어도 우리 힘이 먼저 다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사형이랑 율곡이랑, 여타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으리라 여기고서 대비한 바가 있지 않았소?”
꺽정이가 기억을 더듬어 묻자, 지금껏 진지하게 답하던 이지함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녀석, 기억하고 있었구나. 네 말이 맞다. 애시당초 우리는 군병의 힘에 의지해 산해관을 넘을 생각 따위는 없었지.”
맨 처음 한양에서 맹약을 맺고, 향후 전란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그 큰 틀을 합의하였을 때부터, 이렇게 될 공산이 다분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이쪽이 먼저 대군을 몰아 요양을 점령하고, 광녕과 영원성까지 무너뜨린 뒤 산해관으로 쇄도하기만 하면, 저쪽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으로 함이 어떻겠는가’ 하며 항복 아닌 항복을, 즉 체면만을 겨우 챙긴 채 한양지맹 삼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허나 세상만사가 모두 뜻대로 풀릴 것이라 가정하고 짜는 계획이라면 짜지 않는 것만 못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될 공산은 백에 하나쯤이나 될 것이라고, 사업당 깊숙한 곳에서 지도 보며 천하 대세 논하던 이들은 결론 내린 지 오래였다.
“역시 사형이오.”
“우리는 명 조정과 싸우고 있는 것이지, 명의 국인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명의 만백성과 우리의 만백성이 서로 맞붙는다면야 이길 도리가 없겠지만, 저쪽은 그저 조정 하나일 뿐이니, 어떻게든 우리를 굴복시키려 장거정 그이가 발버둥치면 칠수록 그 발 밑의 수렁만 깊어져 갈 것이다.”
물론 저 거대한 중원의 물력을 저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장거정이므로, 그 발버둥 하나하나가 족히 태산을 갈아엎고 황하의 줄기를 뒤틀 수 있는 정도일 테다.
천진을 불태우고 북변에서 명군을 격파하며 겨우 산봉우리 두엇을 넘었을 뿐,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사저께서 걱정하는 만큼 오래 끌지는 않을 테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그때, 갑자기 마루에 발소리 울리며 이지함의 말을 끊었다.
제법 묵직한 소리길래, 철수가 아니라면 장성한 사내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곧 문 밖에 인영 드리우고 드르륵 열리기에 돌아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어린놈이 서 있었다.
그 덩치도 작지 않은 어린아이가, 저의 무릎 아파오는 것도 모르고 불만을 한껏 담아 쿵쿵 마루 짓밟으며 왔던 것이었다.
“... 바로 여기 이 황태자 전하가 계시지 않더냐.”
허나 황태자 주익균은 조선말을 몰랐으므로, 이제 막 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서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대가 나를 속였소! 어찌 이럴 수 있는가!”
그렇지만 이지함도, 꺽정이도 진서는 능히 읽을지언정 한어는 몰랐으므로, 쇠귀에 경을 읽는 것만도 못하였다.
“아이고, 전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후다닥 뒤따라 달려온 이탁오가, 한편으로는 말 옮겨주랴 다른 한편으로는 황태자 달래랴 바쁘게 입을 놀렸다.
“아, 설마 엊그제 그 일 때문에 이러시는 겐가.”
연신 오랑캐의 뻔뻔함과 배신을 성토하는 황태자의 말을 한참 듣던 이지함이 그제야 주익균의 불만이 어디서 말미암아는지를 알아챘다.
“뭔 일 있었소?”
“며칠 전에 주상께서, 아무리 외부에 떳떳하게 알리지는 못한다지만, 그래도 일국의, 그것도 대국의 황태자를 여염집 어린아이처럼 두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한 말씀 하셨단다.”
이지함이 주익균을 조선으로 데려오며 약속한 조건은 바로 글공부 안 하는 것이었다. 조선으로 피신한 뒤에 졸지에 삼사(三師) 노릇을 하게 된 서계로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는데, 가르치고 싶은 바야 많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책 없이 가르칠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함께 태자를 가르치는 일을 떠맡게 된 이이에게 물었는데, 이이는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교육의 방법, 즉 그 옛날 자신이 스승 이지함과 함께 청석골에서 학문 닦던 그 기법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태자는 (이이 기준으로는) 둔재라, 서책보다는 만물을 직접 보고 익히는 쪽이 더 나을 듯하였다. 그리하여 정말 여염집 어린아이처럼 저자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지고, 먹을 것은 먹고 구경할 것은 구경하며 몇 달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어쩌다 보니 임금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좀처럼 국사에 대해 저의 뜻 밝히지 않는 임금께옵서 한 말씀 하셨는데, 심지어 이치에 닿는 말이기까지 하였으므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태자시강원(太子侍講院)’이 꾸려지게 되었고, 곧 황태자 주익균을 창경궁 안으로 ‘모시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입 가벼운 이이를 통해 처음 겪는 궐 밖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던 황태자 주익균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니 이 몸에 감히 손을 대고, 감언이설로 꼬여낸 그대들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율곡은 그대 수산의 제자라 들었는데, 그자는 관직에 눈이 멀어 나를 팔아넘긴 것과 다름없다!”
어린 녀석이 제법 또박또박 말을 – 물론 꺽정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하는 것이었다.
“율곡이 요 어린 녀석을 팔아넘겼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 그것이...”
태자시강원이라는 것은 암암리에 슬쩍 만드는 기구지만, 그렇다고 정말 건성으로 대충 아무나 데려와 황태자를 가르치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 그 전까지 황태자를 가르치던 스승이 있다 하였으므로, 그들로 하여금 시강원의 별직(別職) 제수하여 가르침을 마저 내리게끔 하기로 조정의 중론이 모였다.
서계는 차마 다른 조정의 관직을 받을 수 없다며 정중히 직을 사양한 반면, 이이는 제대로 벼슬을 제수받았다. 그놈의 쓸데없는 뚝심 탓에 아직까지도 낙방거자 신세를 면치 못하던 이이는 졸지에 이렇게 벼슬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런데 그냥 어디 반가의 자식처럼 꾸미는 게 남의 이목 피하기는 더 좋지 않소? 궁 안으로 들이게 되면 그때는 더 여기저기 듣는 귀랑 보는 눈이 늘어날 텐데.”
“주상께서 네 녀석이랑 어울리시다 보니 소소한 꾀가 늘어나셨단다.”
꺽정이와 임금이 한 문장 안에 동시에 언급되다 보니, 높고 낮추는 것이 뒤섞여 자못 무엄하게 들리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허나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임금은 창경궁 궁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글에 저의 이름을 쓰고 단단히 지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본인 ( )은 금번 전란이 끝날 때까지 궐내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하시(何時) 하처(何處)에서도 발설치 않을 것을 엄중히 약조하며, 만일 이를 어길 시 아래 명시된 만큼의 속금(贖金, 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배상금)을 국고에 바칠 것을 더불어 약조합니다.’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진부한 겁박보다, 삼족의 가산을 모두 털어버릴 것이라는 참신한 엄포가 더욱 입단속에 효험이 좋았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이제 어찌할 것이오?”
답답하여 발을 구르는 주익균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발 울리는 소리가 통하지 않았다. 앞서 주익균과 이탁오 두 사람 달려오던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허겁지겁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당수, 모주! 큰일입니다!”
“뭐, 어디 불이라도 났느냐?”
“아니, 그런 사소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적습입니다! 적습!”
“뭐? 적습? 어디에?”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강화도 쪽에서 봉화가 올랐답니다! 벌써 저자는 난리가 났습니다!”
꺽정이 말마따나, 어디 불이 난 것은 맞았다. 천진에서 모두 불타 가라앉은 줄로만 알았던 에스파냐 함대의 습격으로, 교동 경기수영의 전선들이 봉수대가 됨으로써 그 역(役)을 다하고 있던 것이다.
조선과 자유민주당을 피해, 옛 일본 동군 무사들을 명으로 실어나르던 에스파냐 수군. 허나 눈엣가시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간 동래의 선소에서 뽑혀나오는 전선으로 전력을 확충했던 조선의 수사도, 먼바다에서 일전을 벌인다면 쉽게 승전을 장담할 수 없는 정도.
그나마 카락과 내선을 착실히 건조하고, 뭍에서와 마찬가지로 수군 역시 조련에 힘써왔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일전을 벌인다는 것부터 언감생심이었을 테다.
천진을 일시에 들이침으로써 그 근심을 끊어 없앤 줄로 알았건만, 몇 달 전부터 삼남 방면의 고기잡이배 – 동래 선소에서 건조한 물량이 이 무렵엔 민간에도 많이 풀렸기에, 옛날보다 훨씬 멀리까지 나가 고기잡이를 하곤 했다 – 들이 수상한 대선(大船)을 목격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허나 그 에스파냐 갈레온들은 비록 수시로 조선 주변 바다를 들락날락할지언정 그 수효가 많지는 않았으므로, 도총부에서든 여느 수영에서든 운 좋게 마닐라나 그 근해에 있어 화를 피한 적선 몇 척이 허장성세 부리는 것이라 판단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누에바에스파냐 쪽에서 추가로 병선을 보내왔을 수도 있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천진을 공격한 전선을 고루 나누어 삼남에 배속시켰다.
허나 뒤늦게 이 패착들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일까.
“이 사람의 죄가 크구나...”
정걸과 함께 천진 포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 젊은 나이에 경기수사 벼슬까지 역임하게 된 유극량이 한탄하였다.
분명 그때 다 불태운 줄 알았건만, 눈의 착각이었던가? 아니면 적의 술수에 놀아났던 것인가?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 당장 눈앞에 닥친 적을 상대하는 일이 급하였다.
지난날 의민당 난리 이후로 교동도(喬桐島)로 옮긴 수영에서는, 여타 수영과 마찬가지로 카락보다는 값싸면서 잽싸게 먼바다까지 오갈 수 있는 내선(萊船)을 풀어 주변 바다를 초계하곤 했다.
그 덕에 그나마 빠르게 적 수사가 나타난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경기수영 전력으로는 어떤 수를 써도 저들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유극량은 한양과 황해도 곳곳의 수군진, 충청수영 등지로 급보를 보내라는 지시와 함께, 급히 갑주를 차려입고 배에 올랐다.
한 척이라도 막아보려, 그렇게 교동을 떠났건만.
“으, 으아아! 배를 불태우고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영감!”
싸움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떠들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유극량도 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저 군관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 원균이라는 자이온데...”
“무관으로든 도저히 못 쓸 자로구나. 싸움이 급하니 우선 묶어만 두어라.”
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군령의 무거움은 여전하였다. 아니, 싸움이 한창이고 전황은 처음부터 기울어 있었기에 더욱 군령은 중하였다.
이를 알기에, 그나마 제 구실 하는 군관들은 유극량 곁까지 와서 발악하는 원균을 붙잡았다.
허나 바로 그 틈을 노린 것처럼, 어느새 옆으로 돌아와 선체를 빙 돌린 갈레온이 포화를 퍼부었다.
“으아악! 배를 버려라! 배를 버려라! 으억!”
어지럽게 날아드는 포탄 중 하나가 갑판에 맞아 파편을 흩뿌리는데, 그 파편 중 여럿이 발광하던 원균의 등에 푹 하며 박혔다.
딱히 몸을 던질 마음이야 없었겠지만 어쨌든 유극량의 목숨을 구했으니, 이것이 원균이 군문에 몸을 담은 이래 처음으로 세운 그나마 번듯한 전공이었다.
“아이고, 나 죽습니다, 나 죽어! 바라건대 추증(追贈, 죽은 사람의 벼슬을 올려줌)을...”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이어지는 헛소리는, 다행히도 곧 다른 군관들이 원균을 끌고 갔기에 멎었다.
“저자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영감. 이대로라면 이 전선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배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재수없게 탄환에 맞아 절명한 이들 사이로 파편에 맞은 선원들도 즐비하게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가 급보를 받고 수영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가?”
유극량이 묻자, 잠시 시계를 살핀 군관이 답했다.
“한 시진이 조금 넘었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이쪽의 수가 더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갈레온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내선까지 합쳤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미 주변 바다에는, 포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라앉는 배와, 숫제 부서져버린 배의 잔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앗, 영감! 보십시오! 적선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어라?”
급히 백리안을 뺏어 든 유극량의 눈에, 내선보다도 더 작고 갸냘픈, 겨우 이곳 황해 바다를 건널 만한 정도의 배들이 들어왔다.
필시 허약하다 못해 없는 것과 같다는, 그 옛날 엉망이던 조선 수사보다도 더 엉망이라는 명의 수군일 테다.
허나 그 배들도 모이고 모여 바다를 메우다시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특히, 그 배 한 척 한 척마다 번뜩이는 갑옷 차려입은 무리가 가득 차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우는살을 쏘아라.”
갈레온도, 카락도 교동보다 더 동쪽, 갯벌과 강으로 가득한 그 얕은 바다를 쉽게 드나들 수는 없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허나 저 수없이 많은, 맹렬한 기세로 나아오는 작은 배라면 사정이 다를 테다.
“그 말씀은...”
“저 작은 배들이 우리를 덮친다면, 아무런 효험 없이 죽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의 불충을 훗날의 충의로 갚는 수밖에 없다.”
처음 출진할 때 군호(軍號) 정하기를, 우는살은 곧 패퇴하여 전장을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곧 수영에 남은 몇 안 되는 군사는 남은 화기를 모두 물에 빠뜨리고 화약고에 불을 지를 것이다.
“우는살을 쏘아라. 그리고 작은 배를 내어, 힘 닿는 한 빨리 한양과 강화유수부에 급보를 전하도록 해라.”
어떤 급보인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저만한 규모의 적병이 배 저어 나아간다면, 노릴 만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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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화에 몇 번 언급된 것처럼, 명의 국방력이 16세기 중반까지 쇠퇴일로를 걸으면서 한때 정화의 원정으로 세계 곳곳에 위명을 떨쳤던 명의 수군도 형편없이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조선업 전통 자체는 유지되었기에 원양항해가 가능한 정크선들은 꾸준히 건조되었고, 이러한 기반이 충실히 남아 있었기에 17세기 초 정지룡 등 해적 겸 수군 군벌들은 강력한 해군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이는 후대의 일이었고, 작중 시점뿐 아니라 한 세대 뒤인 임진왜란 시기까지 명의 수군은 민간의 선박을 전용하여 군선으로 쓰는 수준을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지요. 물론 이 정도의 수군으로도 포르투갈 카락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비교적 익숙한 연해에서 가벼운 무력분쟁에 대처하거나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지만, 제대로 된 전면전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곧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 수군 장수들이 판옥선을 탐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지요.
중간에 언급된 삼사(三師)는 곧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 스승,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말합니다. (내부적으로 황제국의 관직 여럿을 두었던 고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기』에 관직명뿐 아니라 그 소임이 세세히 명시될 만큼 그 유래가 깊은 관직인데, 너무나 중요한 자리다 보니 정작 명대에는 공이 매우 높은 신하에게 내리는 명예직으로 더 널리 쓰이게 됩니다. 심지어 이민족 – 영락 연간에 투항한 북원 왕족 에센토곤-이나 여성 – 남명 정부로부터 태자태보 직위를 받은 진량옥 – 도 그 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오히려 황태자(나중에는 황제 본인)의 교육에 진심으로 임하며 전권을 휘두른 장거정의 사례가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조선에 망명한 고위 관료인 서계가 ‘태자시강원’ 관직을 사양한 데는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남의 조정에서 받기에는 너무나 높은 자리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