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임금의 존귀함 (3)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창덕궁까지 길을 뚫으려는 자들과, 그들의 기세를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애써 막는 자들의 싸움.
대로에서는 속절없이 조선 군사들이 밀려났다. 그사이 한양의 대로가 다들 번듯하니 정비된 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경군 오군영을 모두 모아와도 모자랄 판에, 이미 지치고 다친 전영과 중영, 거기에 후영 병사들로 악에 가득 찬 일본 무사들과 콩키스타도르의 후예들을 막기는 어려웠다.
허나 그렇게 니와 나가히데의 무사들이 사업당으로 가는 길을 뚫고, 라베사리스의 에스파냐군은 조선왕을 사로잡는다는 목표 하나로 어떻게든 창덕궁으로 진군하려 용을 쓰는 사이, 대로에서 이어지는 골목이란 골목마다 몸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침노하는 무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총을 지닌 이는 총을 쏘고, 활뿐인 자는 화살을 쏘며, 석전꾼은 무릿매로 돌을 던졌고, 그마저도 없는 아녀자들은 기왓장을 뜯어 던졌다.
끝내 견디지 못한 에스파냐 군인이나 일본 무사들이 작정하고 달려들 성싶으면 그대로 골목을 가로막은 방벽 뒤로 숨어버리니, 필리핀 도독부에서 제법 높은 직책 맡아 식견도 넓은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온 나라가 코우지오니스 그자와 같이 싸운다는 말인가!’
하고 헛되이 분통 터뜨리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군은 느려질지언정 멈추지는 않았다. 해질녘에는 광통교를 틀어막고 한창 사투를 벌이던 후영 군사들조차, 아직 피난하지 못하였던 백성들과 부상자들이 모두 경복궁 안쪽으로 – 이는 왕명에 따른 것이었다 - 대피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광화문까지 후퇴했다.
그렇게 육조거리 앞까지 부르고뉴 십자기가 휘날리게 되었고, 조선군은 서쪽으로는 경복궁의 썩 미덥지는 못하나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담장과 구름재 언덕에 의지하며, 남쪽으로는 청계천을 해자로 삼아 버티게 되었다.
반나절 싸움으로 한양의 삼분지 이를 내준 것과 다름없었으나, 이마저도 하지 않았더라면 한양의 삼분지 삼이 다 넘어갔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 임금이 숭례문 앞에서 적의 탄환까지 맞아가며 – 그때 성벽 위에 있지 않았던 백성과 군사들도, 저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장담하곤 했다 – 단언하기를, 결코 창덕궁을 떠나지 않겠노라 하였으니, 적에게 넘어갔다는 그 한양의 삼분지 이도 기실 굵직한 대로와 몇몇 큼직한 관아만을 잃은 것에 불과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골목에 틀어박혀 저항하는 이들이 저들의 뒤통수를 따갑게 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군민(軍民)이, 그리고 군민(君民)이 한마음으로 적에게 맞서는 이 모습은 이준경의 닳고 닳은 마음까지 감응시키기에 족하였다.
아니, 이 모습에 감응하지 않는 자가 지금 창덕궁 안에 있다면, 그자는 조선의 선비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하찮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어느새 사업당처럼 변한 선정전에서, 하루 사이의 전황을 보고하는 모임을 마치고 나온 이준경은 하늘을 보며 저도 모르게 맹자의 말씀을 읊조렸다.
“또한 주자께서 주해하시기를, ‘임금의 존귀함 또한 백성과 사직의 존망에 얽힌 것이니, 그 경중이 이와 같노라 (君之尊, 又係於二者之存亡, 故其輕重如此)’.”
이준경이 놀라 돌아보니 바로 주상이라. 급히 두 손 맞잡고 고개를 숙였으나 임금이 실로 오랜만에 경의(經義)를 제대로 논하는 것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참으로 온당하고도 옳은 말씀에 신의 늙은 귀가 밝아지는 듯하옵나이다.”
“이 사람이 아무리 경연을 꺼린다 하지만, 마음에 품어야 할 성현의 말씀마저 꺼리지는 않는다오.”
무릇 나라의 일이란 임금 한 사람보다는 국인 모두를 위한 것이니, 마땅히 국인의 공론에 따라야 할 뿐 임금을 귀찮게 할 것은 못 된다고 우기기 위하여 임금이 주의깊게 듣고 외워둔 구절이었다. 허나 굳이 그것까지 밝힐 필요가 어디 있으랴.
“특히 사직조차 백성에 비하면 가볍다는 그 말이 참으로 좋고도 시의적절하오. 한양이 모두 불탈지라도 백성을 구해낸다면 어찌 열성조 앞에 부끄러움이 남을까.”
임금의 성정이 어떠한지를 모르지 않는 이준경이다. 처음 이준경 자신이 시작한 경장에 동조한 것도, 그 경장을 점점 이상한 쪽으로 비틀고 또 비틀다가 아예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버린 임거정을 따른 것도 모두 임금 자신의 뜻이기는 하되 어떤 심모원려에서 말미암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그저 경박한 생각과 짧은 식견으로 일관하였을 뿐이라 한들, 금일 주상의 성단(聖斷)은 거룩하다는 그 한 글자가 어울리는 것이라.
이준경이 재차, 평소라면 아첨이라 여겼을 만한 말로써 임금께 자신의 감상을 아뢰려 할 때였다.
“임금님, 여기 계셨구려. 전황 살피고 온다는 것이 조금 멀리 돌아오게 되어서 모임에 늦었소.”
저들이 점거한 곳을 빙 돌아 한양 곳곳을 살피고 온 꺽정이가, 늘 그렇듯 예법 따위는 모르쇠하는 무엄함으로써 인사를 갈음했다.
“참 신출귀몰하는 것이 대단하구나.”
“원래 도적질이라는 것이 그렇소. 신출귀몰하는 재주로 도깨비랑 형님아우 할 경지에 이르지 못한 도적은 진작에 다 잡혀 죽었으니까.”
곁에서 듣는 궁인들과 시위하는 군관들조차 그러려니 하며 못 들은 체 하고 있었으므로, 임거정과 주상이 둘이 있을 때 늘상 이렇게 얘기 나누는 것을 모르던 – 설령 소문으로 듣더라도 허황된 말이라 배격하던 – 이준경은 어디서부터 지적할지를 몰라 당황하였다.
“그런데 내가 둘러보고 온 바로는, 뭔가 사세가 심상치 않소.”
“무어라? 그게 무슨 말이냐?”
“놈들이 해가 저물 성싶으니, 대로 따라서 더 진격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대신 수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소.”
싸움이 도성의 성벽을 넘어 저자와 골목 하나하나까지 옮겨오면서, 촌각이 급한 쪽은 이제 노부나가 쪽이 되었다.
당장 지금도, 도저히 정면으로는 승부할 만한 힘도, 머릿수도 되지 않는 경군 좌영과 우영이 마포를 멀찌감치 노리면서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급보를 받은 경기도와 충청도, 황해도 군사들이 도착하면 도착할수록 저들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번듯한 마병조차 없으니, 지금쯤 개성에 닿았을 세자와 황태자 주익균을 붙잡는 것도 난망하였다.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 안다고, 내가 보기에 놈들이 벌이려는 수작은 이렇소. 막무가내로 한양에 밀고 들어와, 그저 치고 빠지기만 할 것이라면 놈들이 할 수 있는 짓은 끽해야 임금님 붙잡는 일이랑 한양을 불태워서 우리네 백성들 마음 뒤흔들고 조정의 이런저런 일에 거하게 훼방 놓는 것뿐이거든.”
그런 도둑질에 많이 당해보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종범(공범) 노릇도 종종 하였던 이준경은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도원수 그대는, 저들이 지금 잠시 멈춘 것은 야음을 틈타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하기 위함이라 보는 것이겠구려.”
이 무렵 한양의 가옥은 기와집 아닌 것을 찾기가 불가할 지경이었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와집에 살 형편이 아니 되는 이들은 성저십리나 그 바깥으로 밀려난 지 오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마루며 기둥이며 집 안쪽은 나무로 가득했고, 더구나 지난 삼 년 사이 그러했듯 올해도 여름이 제법 가물었다. 몇 년 전 교토처럼 폭발 한 번에 불바다가 되지는 않겠지만, 작정하고 곳곳에서 불을 지르면 크게 번지는 것을 변치 못할 테다.
“그리고 아무리 성상께서 창덕궁에서 파천하지 아니하시겠노라 말씀하셨다지만, 온 도성이 불타게 되면 부득불 옥체를 보중하시게 될 터...”
“그렇지. 내 생각에도 놈들이 오늘 밤, 한양 드나들던 동창 끄나풀이든 누구든 도성 지리에 밝은 길잡이 내세워서 한 수백쯤 되는 별군(別軍)을 도성 북쪽으로 몰래 밀어넣을 것 같소.”
이미 관군이 경복궁까지 물러났으니, 북서쪽으로 빙 우회한다면 소수의 병력을 들키지 않고 도성 북쪽까지 잠입시키는 것도 불가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저들이 그 복잡한 물길을 헤치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것을 보면, 필시 한참 조선을 드나들던 시절 지리를 눈여겨본 길잡이를 대동하였음은 명백하였다.
“그리고 내일 해 뜨는 대로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그 혼란을 틈타 동시에 창덕궁 향해 일제히 밀고 들어오겠지. 북쪽으로 우회한 놈들도 그때쯤 모습 드러내고 한바탕 난리를 일으킬 테고.”
그리하여 오도가도 못한 채 창덕궁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조선왕을, 단 한 번 찌르고 들어오는 공세로 붙잡으려는 것일 테다.
“허, 실로 큰일이 아닌가! 전하, 명만 내려주시면 즉시 신료들을 다시 모으겠나이다.”
허나 용안을 조심스레 살피니, 어째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도성에 불을 지르는 것을 제하면, 결국 달라진 건 없는 셈이로구나.”
“따지고 보면 그렇소. 설령 북쪽으로 우회해 오는 놈들이 있다 한들, 남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무리가 호응하지 못한다면 그 병력이 수백에 달할지라도 고스란히 포로 신세가 될 뿐이겠지.”
“그렇다면 되었다. 가서 다른 이들에게 놈들 정황만 귀띔해주려무나. 따로 사람을 재차 모을 것까지는 없지 않겠느냐.”
헌데 임금이 다시 꺽정이를 보니, 이준경을 의식하며 잠시나마 머뭇거리는 듯하였다.
“너도 이런 일을 염려하기는 하는구나. 영상도 금번 계책이 실로 온당하다 하였으니 꺼릴 것은 없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오.”
‘금번 계책’이라는 게, 그저 임금이 창덕궁을 지키며 죽기로 싸워 적을 막아내는 것이리라 단정한 이준경은 이 문답을 그리 깊게 마음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이것이 참으로 뼈아픈 실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나, 뒤늦은 후회를 백 번 한들 무엇하랴.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닭의 울음소리 대신 조총 소리와 쇳소리, 그리고 사람의 비명소리로 재차 한양 저자가 가득 찼다.
그러나 절박한 쪽은 어느새 공수가 뒤바뀌었다.
“제길, 야무지게도 만들어놓았군!”
그리 깊지도, 넓지도 않은 작은 개울가였지만, 도시의 남쪽 절반을 내주면서 시간을 끄는 사이 어느새 제법 그럴듯하게 목책과 온갖 장애물로 보강하여 성벽 비슷한 구색을 갖추었다.
보기는 우스꽝스러웠으나, 어제 해가 저물 무렵 세 차례나 에스파냐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마침내 하루를 넘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이 아니겠습니까, 흐흐!”
동이 트자마자, 밤새 주변 민가에서 뜯어낸 목재로 만든 사다리와, 그새 겨우 마포 쪽에서 옮겨온 자그만 대포를 총동원해 겨우 개울 북쪽으로 넘어온 라베사리스와 에스파냐군이었다.
허나 이번에도 적은 겨우 뚫었는가 싶을 무렵 미련 없이 등 돌려 삼면으로 달아났다. 이긴 쪽으로서도 영 개운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런 웃음은 승리가 확실해진 뒤 지어도 늦지 않네! 길잡이, 길잡이를 데려오게!”
라베사리스는 부관에게 짐짓 호통을 쳤다. 그러나 그 입가에 서린 미소는 무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렇게, 계속 뒤로 물러나며 시간을 끄는 전법도 이제는 한계일 테다. 여기서 두어 번만 더 물러난다면 그때는 그 ‘번창하는 미덕의 궁전(창덕궁)’ 담장까지 밀려날 것이었으므로.
곧 에스파냐어가 유창한, ‘동쪽 창고(동창)’ 쪽 연락장교가 부관과 함께 개울을 건너왔다.
“이제 여기서 그 궁궐까지는 얼마나 남았는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현지인들이 ‘널판지 우물 골짜기(널우물골)’라 부르는 구역입니다.”
연락장교는 제법 상세한 지도를 즉석에서 펼쳐보였다. 그 말마따나, 그가 짚고 있는 곳에서 궁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궁궐 바로 앞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나옵니다. 그쪽을 거쳐 조금만 더 진격하면...”
그런데 함께 지도를 들여다보던 라베사리스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채, 민가와는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 구역이었다.
“북서쪽이야 그렇다 치고, 여기서 정북쪽으로 일이백 파소(paso)쯤 떨어져 있는 이곳은 무엇인가? 이쪽으로 향한다면 훨씬 더 빨리 궁궐로 갈 수 있을 듯한데.”
“아, 그곳은 종묘, 그러니까 에스파냐 말로 하면... 왕실 수도원 정도 되는 곳입니다.”
“왕실 수도원이라!”
전리품 생각에 들뜬 누군가가 설레임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그러나 라베사리스의 생각은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왕실 수도원... 흠, 저들 또한 저들 국왕을 모시는 자들이니, 감히 그곳까지 이렇게 더러운 방식으로 요새화하지는 못했겠지. 그렇지 않은가?”
동창의 군관이 생각하기에도 크게 그릇되지는 않은 판단이었다. 이미 하루가 지나, 언제 물러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 조금이라도 빨리 조선왕을 붙잡아야만 했다.
조선국왕이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종묘의 신위쯤은 미리 옮겨두었을 것이요, 설령 그러지 않아 저들이 목숨을 걸고 막으려 든다 한들, 어지러운 골목을 뚫고 창덕궁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종묘를 통해 가는 쪽이 더 나을 성싶었다.
“좋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정북쪽으로 향한다! 왕실 수도원이라 한들 어차피 이교도의 사원이니, 무슨 신성모독이라 할 것도 없겠지! 부관, 즉시 명령을 전하도록!”
지금쯤이면 어젯밤 야음을 틈타 하니양 북쪽으로 우회한 별동대도 행동을 개시했을 터였다. 고작 수백 병력으로 뭔가 대단한 공적을 세울 수는 없겠지만, 디오시온 국왕이 달아나는 것을 주저하도록 만드는 데는 족할 것이었다.
“궁궐까지 고작 일 미야(milla, 마일)! 단숨에 수도원을 거쳐 궁궐로 뚫고 들어간다!”
“적이 널우물골(板井洞, 現 종로3가~장사동 일대) 쪽에서 청계천을 넘었습니다. 우리 군사는 배고개(梨峴)와 수표교 쪽으로 물러났습니다.”
오늘 아침, 에스파냐군이 청계천 맞은편에서 일제히 공세를 취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임금과 중신들은 후원의 진장각(珍藏閣)으로 몸을 피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리 밖이든 삼 리 밖이든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굳이 몸을 피하는 이유를 이준경은 따로 물을 생각을 품지 못했다.
더구나 후원은 지대가 높아, 급할 때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라도 한양 경내를 살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유리한 점이었다.
허나 막 진장각으로 옮기자마자 적이 청계천을 마침내 넘고야 말았다는 비보가 들어왔다. 어떻게든 막아낼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이지함이든 임거정이든 붙잡기도 전, 더 심각한 비보가 뒤를 이었다.
“급보입니다! 적이 태묘(太廟, 종묘)를 범했습니다!”
“무어라? 적들은 향도(嚮導, 길잡이)를 대동했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태묘가 어떤 곳인지도 필시 모르지 않았을 것인데... 이런 금수와 같은 무리가 있는가!”
대뜸 저들의 파렴치함에 분개한 이준경과 신료들은, 그들 가운데 몇몇은 분개하는 대신 오히려 만사가 뜻대로 되고 있는 것처럼 흡족한 표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반대로, 흡족한 표정 짓던 자들은 이쪽의 분개하는 것을 새삼스레 알아챘다. 잠깐의 어색한 눈빛이 오간 뒤, 임꺽정이 물었다.
“그, 혹시 언질 못 받으셨소?”
“무슨 언질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이럴 겨를이 없지 않은가! 저들이 종묘를 범하였다면 이곳까지는 지척인데...”
“아니, 어르신도 이 계책이 온당하다 하지 않았소? 분명 어젯밤에 임금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는데.”
주상도 끼어들었다.
“그때 영상이 그리 말하지 않았소이까.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과 임금은 그 다음이라고. 영상에게까지 연통이 닿았기에 그리 말한 줄로 알았는데.”
전황은 급박하고, 이준경은 당장 도성 골목 하나하나 방비하는 일을 감독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며, 다른 신료들도 평소의 직제는 제쳐두고 모두 일을 하나씩 맡고 있었다. 하다못해 궁인과 내관들마저도 각자 맡은 바 일을 버려두고 누구는 다친 이를 구호하고 누구는 전령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한 일 하나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신 이준경이 무엄함을 무릅쓰고 감히 여쭙겠나이다...”
대관절 무슨 영문이냐는 물음을 애써 공손하게 돌려 물으려던 차, 군관 하나가 – 자세히 보니 녹봉을 받는 군관이 아닌, 흑의군 사람이었다 – 뛰어 올라와 부복하였다.
“여섯 군데에 모조리 불을 붙이고 무사히 물러났습니다요!”
“이놈아, 어전이다. 예는 갖추고 고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요 임거정이 그런 말을 하니, 임거정과 그 흑의군 사람을 제한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여하튼 잘 하였다. 여섯 군데라면 개중 아무리 운이 없어도 하나쯤은 끝까지 잘 타들어가겠지.”
한 발 늦게나마, 이준경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짜맞추어졌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그의 머리가 답을 받아들이기를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것이야말로, 임거정이 낼 만한 계책임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좌였다.
“엇, 잠깐. 사형, 지금 시각이 어찌 되오?”
그러든 말든 임거정은 저의 사형 이지함에게 시각을 묻더니, 저의 부하를 꾸짖었다.
“야, 이놈아. 왜 이제야 왔느냐. 시각이 다 되었잖느냐?”
“아, 그것이, 후원까지 가는 길을 찾다 보니...”
“조금만 늦었어도 임금님께서 크게 놀라실 뻔하였다. 자, 여러분. 구경하실 분은 구경하시고, 심약하신 분은 귀를 막으십쇼.”
“아니,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구경...”
이준경만큼이나 돌아가는 대화에 답답함을 느낀 예조판서 홍섬(洪暹)이 따져 물으려던 차.
천지가 뒤집혔다.
신위가 모두 난리를 피해 옮겨진 빈 종묘였지만, 그 자리가 완전히 텅 비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위가 모셔져 있을 때보다도 어째 종묘는 꽉 차 있었으니, 비단 정전과 영녕전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전각과 창고까지, 빈자리가 있는 곳에는 모두 어제 급히 흑의영과 주변 군영에서 긁어모은 화약이 가득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몰래 심지를 밖으로 빼고, 에스파냐군이 종묘의 문을 부수고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나무와 풀숲에 숨어있던 흑의군들이 그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나 살려라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묘는 끝내 무도한 오랑캐 무리에게 범해지는 일을 면하였으니, 그 오랑캐 우두머리 및 그 수하들과 더불어 잿더미로 화하였던 것이다.
충격이 주변 이삼 리를 휩쓸고, 기와조각은 사방팔방으로 튀었으며, 불붙은 나무조각이 주변으로 불씨를 휘날렸다.
그러나 종묘는 한양의 다른 여느 민가와도 달리, 두터운 갈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그 신령스러움에 힘입어 주변의 민가에는 해가 닿지 않았다.
“그러므로 덫을 놓을 곳을 종묘로 정하였던 것이오. 백성보다 사직과 임금이 덜 귀하다 하였으니, 백성을 위해 종묘를 부수는 것도 가하지 않겠소이까.”
“아...”
“그나저나 저 한바탕 터지는 것을 보니, 내 안에서 내가 모르던 뭔가가 막 일어나는 느낌이로구나. 본디 화약이라는 것이 저리도 장엄하고 멋진 것이었던가.”
“나도 화약으로 장난 좀 쳐본 놈이지만, 오늘 저 모습이 제일이었소.”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하는 대소신료 사이에서, 종묘에 모셔졌던 열성조 가운데 적어도 문종 성효대왕만은 껄껄 웃으며 적어도 저놈 하나는 그 괘씸한 아우의 후손 중에서 정신머리가 잘 박혀 있다 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임금과 그의 벗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신불이시여...”
숭례문 문루를 저의 군막으로 삼아, 막 니와 나가히데로부터 사업당을 확보하고 저들이 미처 불태우거나 챙기지 못한 서류와 여타 귀물을 노획했다는 보고를 받아들었던 노부나가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 말은, 이미 여러 차례 노부나가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장수들조차 쉽사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저쪽은 분명... 조선왕이 있는 궁궐 쪽 아니었습니까?”
“미쳤어. 하야시 쇼군이나 이순신 그놈만 그런 게 아니였어. 조선놈들은 죄다 미친 게야...”
분명 한양을 불태우려 하고 있던 것은 이쪽이었는데, 어째서 조선 놈들이 선수를 쳐버렸다는 말인가. 그것도 저의 궁궐 – 숭례문 문루에서는 종묘와 창덕궁을 분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 을 통채로 날려버렸고, 아직 조선왕이 달아났다는 보고는 들어온 바 없었으니...
“주, 주군! 저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제야 노부나가의 머릿속에, 조선왕을 붙잡겠노라며 달려나갔던 에스파냐 장수가 떠올랐다.
“당장 라베사리스에게 전령을 보내라! 에스파냐군을 물리라고 해! 전열이 흐트러진 지금, 놈들이 반격해오면 당해낼 길이 없다!”
그 라베사리스가 한 줌 재로 변하였을 수도 있음을 알았으나,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거는 노부나가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전령을 보내라. 에스파냐군을 만나는 즉시, 이곳 숭례문으로 후퇴하라는 내 지시를 전하도록 하라고!”
저의 궁궐까지 저렇게 폭파시키는 조선왕이라면, 그리고 그런 조선왕을 따를 조선 백성들이라면, 고작해야 한양의 동리 몇 곳을 불태운다 한들 그 마음을 뒤흔들 수 있을 리 없었다.
“힘닿는 한 많은 곳에 불을 지르고 철수한다. 어젯밤 내내 장작 따위를 옮겨두었으니, 오래 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조선왕은 잡지 못하였으나, 이만하면 족하다. 정오를 기해 철병한다. 지금부터 후퇴하면, 썰물에 맞추어 교동도까지 물러날 수 있겠지.”
청계천을 넘은 에스파냐군을 노리고 조선군이 반격에 들어갔는지, 도성 북쪽 곳곳에서 총성이 재차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한양의 삼분의 이, 사업당과 육조거리까지 장악하였다. 그곳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는 것은 없애버리고 남은 것은 모두 빼앗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원정은 나름의 소득을 올리는 셈이었다.
그러니 실(實)로만 따진다면, 전투 한두 번 이상을 치르기는 어려운 수효의 에스파냐군을 창끝으로 내세워 제법 큰 성과를 올린 셈이었다.
저 폭발로 인하여 적잖은 수가 죽고 다쳤을 것이요, 라베사리스가 폭발에 휘말렸다면 그 이상이 자중지란 속에서 또 죽고 붙잡힐 것이었지만, 그 대신 한양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당장 도성의 백성들이 굶주린 채 노숙하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적잖은 재정 – 군비로 쓰일 수 있었을 재정- 을 할애해야 할 것이며, 또 언제 이러한 습격이 닥칠지 모르니 요동에 나가 있는 군사의 상당수를 남쪽으로 돌려야 할 것이었다.
허나 허(虛)까지 셈하여 헤아린다면 어떠할 것인가. 조선의 임금과 백성, 조정과 국인 사이의 그 믿음. 척계광이 만병지왕이라 부른 그것을 파훼한다는 것은 오히려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런 상념을 머리 흔들어 떨쳐낸 노부나가는 군령을 마저 내렸다.
애초에 저런 각오로 전쟁에 임한 조선왕이었다면, 그가 무슨 수를 썼더라도 조선왕을 붙잡을 수도, 도성을 뒤로 하고 도망치게끔 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결국 그 신하에 그 임금이요, 그 임꺽정에 그 조선왕인가. 하!”
그 말 한 마디가 오히려 지금껏 노부나가가 행한 무엇보다도 더 조선왕의 마음을 후벼팔 수 있었을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노부나가는 이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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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화약을 한 곳에 모아 폭파시켜 엄청난 위력을 낸다는 발상은 원 역사에서도 화약무기의 발달과 더불어 나타났습니다. 특히 성벽 아래에 땅굴을 파고 화약을 밀어넣은 뒤 폭파하는 공성전 전술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바 있지요. (조선에서도 홍경래의 난 말기에 정주성 성벽을 화약 1,700근으로 무너뜨린 사례가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꺽정이가 반 세기쯤 일찍 유행을 선도하고 있지만, 원 역사에서도 그러한 발상이 성벽 대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날려버리는 쪽으로 전환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605년 가이 포크스의 화약 음모(Gunpowder plot) 사건 같은 예가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1605년, 제임스 1세가 당초 기대와 달리 성공회를 잉글랜드 국교로 유지하는 방침을 내세우자 이에 불만을 품은 가톨릭 과격파들은 제임스 1세를 암살할 음모를 짜게 됩니다. 가이 포크스는 이 계획의 행동대장으로, 귀족원(House of Lords) 지하에 화약을 숨겨놓은 뒤 제임스 1세가 귀족원에 방문할 때 불을 당긴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1월 5일 밀고로 인해 이 무지막지한 계획은 발각되었고, 가이 포크스는 체포당해 고문 끝에 처형당합니다. 여담으로, 후대에는 앨런 무어의 각색을 거쳐 엉뚱한 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본디 11월 5일, 즉 가이 포크스의 날(Guy Fawkes Day)은 이 음모가 실패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가이 포크스 가면 역시 본디 그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좌우지간 이 음모가 성공했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16세기 말~17세기 초 흑색화약의 폭발력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이름부터 직관적인) 에버리스트위스大 폭발연구소(Centre for Explosion Studies)의 2003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포크스가 귀족원 지하에 옮겨두었던 흑색화약 통 36개가 동시에 폭발했을 경우 – 연구진은 흑색화약을 세심히 배치할 경우 같은 무게의 TNT와 비슷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 반경 40m는 완전히 파괴되고, 900m 반경 내의 유리창을 깨뜨릴 수 있는 충격파가 발생하였을 것이라 추산됩니다 (Carrington, 2003. “Gunpowder Plot Would Have Devastated London.” New Scientist (5 November)). 작중의 종묘 폭발은 이를 참고하였습니다.
작중 인용된 『맹자』<진심ㆍ하>의 장구에서 다루는 사직은, 엄밀히 말하면 종묘와는 다릅니다.『주례』에 언급되는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에 따라, 도성 서쪽에 따로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종종 국왕이 사직에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물론 종묘를 거대한 부비트랩으로 쓰는 판국에 사직과 종묘의 구분이 그리 중하지는 않겠지만요.
한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지금의 종묘 역시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이후에 재건한 것입니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몽진하자 한양 안의 주요 궁궐이 모두 방화로 불탔을 때 종묘는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작중 언급된 것처럼, 종묘가 한양 내 다른 궁궐이나 민가와는 숲으로 떨어져 있던 덕이었을 것입니다) 허나 이후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 사이에서 전염병과 괴변이 잇따르자 종묘에 있는 신령 때문이라며 일본 장수 우키다 히데이에가 모두 불태워버리고야 말았지요. 이는 정말로 신령을 두려워해서라기보다는, 수군을 통한 보급이 불가능해지고 북상한 고니시 및 가토 군 역시 거침없이 진군하면서도 조선을 굴복시킨다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는 실패하면서 점점 뒤숭숭해지는 군 내부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술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하간 작중의 종묘는 원 역사에 비하면 조금 더 많은 수의 적을 데리고 사라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