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망진자호 (3)
세상의 모든 물건은, 하늘과 땅 사이에 실제로 있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소위 대명(大明)라는 것은 과연 실존하는가? 만약 그것이 실존한다면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짚어 그리 부르는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의문을 품었으므로, 유서 깊은 문중의 사대부부터 그저 도시로 흘러들어온 빈민까지 모두의 어깨를 항상 짓눌러 왔던 대명 조정의 무게는 어느 순간 허깨비처럼 사라지고야 말았다.
그 무게를 일깨워줄 자들, 각지 위소(衛所)와 관아를 지키는 병사들과 홍병위들은, 설령 남경 전체가 반기를 든다 할지라도 이를 으깨버릴 수 있을 만큼 수가 많았다.
그러나 항주에서의 그 일로 강남 전역에 몰래 이름을 알리게 된 오승은의 신호에 따라, 또는 국민당이고 무엇이고 전혀 몰랐으나 『일통도설』을 읽고 이탁오의 평점에 감명을 받아, 온 강남에서 들고 일어난 뒤 그대로 드러누운 사람들 앞에서는 관병도, 홍병위도 바람에 날리는 하찮은 티끌에 불과하였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무엇을 막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제발 뭔가 방침을 정해 주십시오!”
“어리석기는! 돌이나 횃불 따위를 들고 일어난 것도 아니요, 그저 그 자리에 드러누운 자들을 어찌 막는다는 말인가? 대인! 그보다 더 중한 것은 세금입니다.
농리공사의 농군들이 올봄에 거둔 쌀과 보리를 곳간에 가득 쟁여놓고 내어놓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부디 관병을 내어주십시오, 대인! 이대로는 도저히 기한을 맞출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더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 당장 이곳 남경에서 병사를 더 빼냈다가 그사이를 노려 저 간악한 폭도들이 흉포한 본성을 드러낸다면 어찌할 것인가?”
“허나 나라의 녹을 받는 몸으로 어찌 저 난민(亂民)을 방치하겠습니까? 일벌백계의 뜻으로 저들 중의 우두머리를 붙잡고 닫힌 창고를 열어젖힌다면...”
“그랬다가는 일벌백계가 아니라 벌집을 건드리는 것과 같이 될 게야! 자네, 바깥에 나가보기는 했는가?”
오늘도 남경 응천부 관아는 반쯤 넋이 나간 관리들의 하소연과 언쟁으로 가득하였다. 경장을 펼치며 강남 일대의 변법을 총괄할 수 있도록 응천순무로 하여금 치소를 소주에서 남경으로 옮기고 그 관할을 넓혔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을 테다.
남경 조정에서 유일하게 실권을 지니고 있는 병부상서와 남경수비태감(南京守備太監)까지. 남경과 그 주변에서 군권을 지닌 이들도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다. 허나 그들이라고 딱히 뾰족한 수를 지닌 것은 아니요, 정론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응천순무께서는 저들의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북경 조정의 명이 내려올 때까지 그저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어지는 언쟁은, 끝내 두통을 이기지 못한 경정향이 모두 물러나라 명하면서 겨우 끝났다.
경정향의 마음 같아서야, 물러나는 자들 등에 대고 ‘저 바깥 저자에서 저의 집인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돌아다니는 임거정에게 가서 물어보라’ 외치고 싶었으나, 자신의 관직이 지닌 무게를 상기하며 겨우 참았다.
그러나 끝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뒤편 정원으로 나가 누각에 올랐다. 남경 저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응천순무 경정향이 그날 그 창고에서 얼떨떨한 채로 풀려나 이곳 관부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풀려나자마자 급히 그간의 모든 사정을 적어 북경에 급보를 보냈으니, 무언가 답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다른 이들이야, 무슨 허황된 소리를 하느냐며 글을 던져버리겠지만, 장 수보시라면 임거정 석 자를 눈에 담자마자 사안의 심각함을 깨닫고 필시 양책(良策)을 고안하여 내려주실 것이다.’
솔직히 경정향 자신이 장거정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남경과 강남 일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고하는 글을 받아든다면 그 자리에서 내던질 듯하였다.
지난 한 달 사이, 대일통에 항거하는 ‘대불복(大不服)’은 남직례 일원을 넘어 주변의 모든 성으로 뻗어나갔다.
동쪽 바다를 건너오는 은이 줄어들며 그러잖아도 일감이 부족했던 항주 항만의 일꾼들. 온 중원 사람들을 입히는 옷감을 자아내던 소주의 공인들. 강서(江西)부터 절동(浙東)까지 각지 서원에서 숨죽이고 있던 왕학(王學, 양명학) 학도들.
누군가는 그저 세금 내기가 싫어 드러눕고, 또 누군가는 진심으로 나라의 법도 바뀌기를 바라며 일을 손에서 놓았다.
욕심 많은 상인과 어리석으면서도 우직한 농민들, 세상에 이름 남기려는 욕심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큰 백면서생들이,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하나의 대의 아래 뭉쳐, ‘더는 안 하겠다’를 외쳤다.
한편으로는 관병들 중에도 저들과 친한 다른 이들의 꼬임에 넘어가거나 스스로 배운 글로 이 시국에 저의 설 자리를 정하고서 저의 이웃들과 더불어 발라당 드러눕는 자들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멋모르는 무뢰배 몇몇이 작당하여 민심이 돌아선 이때야말로 저들 나설 때라면서 어설프게 반란이니 국성(國姓, 군주의 성씨)을 갈아치우니 헛소리 주워섬기다가, 농땡이 피우던 주변의 백성들에게 들켜 관아로 끌려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고까운 무뢰한들을 매타작하고 조리돌림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유흥거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충(忠)과 역(逆)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민(官民) 사이의 구분도 무너지니, 어지간한 상도(常度)는 모두 훼철되고야 말았다.
당장 저 남경 저자 어딘가에도, 국적(國賊) 임거정과 이탁오가 저의 무리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던가. 몇 번이고 사람을 보내 추포하려 해보기도 하고, 하다못해 조용히 남경을 떠나라고 간청도 해 보았으나, 항상 저들을 추종하는 백성 사이에 머물렀으므로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군사 수백쯤으로는 흑의군은커녕 임거정 한 사람도 잡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고 수천을 끌어모으자니 그 후환이 두려웠다.
경정향 그의 이름으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수만이요, 관할하는 곳 너머까지 협조를 구한다면 능히 이십만은 끌어모을 수 있을 테지만, 이십만이 아니라 이백만을 데려온다 한들 이번 대불복은 도저히 파훼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성문을 걸어잠그고, 적어도 임거정이 이곳 남경을 근시일 내에 벗어날 일은 없다는 데 안도하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짐작하기조차 두려운 거대한 매듭 앞에서 그저 공허한 고민으로 소일할 뿐.
그렇게 한탄이나 하고 있던 경정향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대로 한복판을 마치 한양 어딘가를 걷는 것처럼 활보하는 임거정과 그 곁을 따르는 이탁오, 그리고 임거정이 무슨 바다 건너온 현인이라도 되는 양 그 주변을 맴도는 남경의 서생과 민서(民庶)까지.
천안문의 변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임거정 석 자에 열광하며 조선의 개명됨을 본받자 하던 자들이 많았고, 이곳 남경만 해도 조선양보를 제멋대로 베껴 파는 서방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시절을 뻔히 기억하는 자들 앞에 임거정이 나타나고, 그들의 물음에 하나같이 듣기 좋은 답변을 청산유수로 내어놓으니 – 물론 보나마나 임거정 본인이 내놓는 답이 아니요, 통변하는 이탁오가 제멋대로 살을 붙인 것일 테다 – 엄연히 적국, 그것도 그 적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를 보무당당히 오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 임거정과 그 무리가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였다.
아니, 정말로 가깝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경정향이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병사를 찾는 사이, 결코 낮지 않은 담장을 훌쩍 넘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기와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손 뻗어 이탁오까지 담장 위로 올리고는 폴딱 뛰어내려 경정향 있는 누각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무, 무슨 일이오?”
“별 건 아니고, 이리 오다가 서신 한 통을 주웠는데 그대 앞으로 되어 있길래 이렇게 들고 왔소이다.”
임거정이 겉봉 따위 없이, 그냥 종이째로 뭔가를 툭 던졌다. 경정향이 무심결에 받아 펼쳐보니, 바로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경으로부터의 지시였다.
“뭐 급히 전할 게 있는지 후다닥 뛰어가는 놈이 하나 보이길래, 붙잡고 어디 가느냐 물었지. 헌데 마침 이쪽으로 향한다 하기에, 이왕 이리 된 것 내게 건네주면 대신 전해주겠다 약조했소. 내가 이래 봬도 신의가 꽤나 두터운 사람이거든.”
흑의군에게 둘러싸인 채 ‘순순히’ 서간을 전해주는 전령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오다가 마주쳤다는 말은 거짓이요, 보나마나 경정향 저보다 먼저 서한에 적힌 장거정의 지시를 읽고 미리 대비하고자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전령을 덮친 것일 테다.
하기야, 대명의 황태자도 제멋대로 납치하는 도적이 고작(?) 내각수보의 서한 따위에 손대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안에 뭔 내용이 들어 있는지 나야 모르지만, 아마 뭐 좋은 뜻이 담겨 있겠지. 북경에서부터 먼 길 온 글이니 허투루 읽지 마시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끝까지 뻔뻔하게 굴며,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임거정이었다.
경정향은 조선말을 알지 못했고, 격벽투시(隔壁透視)의 술법도 몰랐으므로, 관부 담장을 넘자마자 임거정과 이탁오 두 사람이 한숨 쉬며 ‘이거 쉽지 않게 되었는걸’ 하고 깊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
초여름 무더위가 찾아온 북경에서, 장거정은 황량한 저의 집 서재에 앉아 웃음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대체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였으므로, 입꼬리가 말리는 그 느낌이 생소하였다.
북경 전체가 도적 수십에게 농락당한 이래, 아니, 그보다 더 전, 중화를 중화답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저의 스승마저 배신하였을 때부터 장거정의 마음 속에서 불타던 심화(心火)는, 그러잖아도 인상 날카로운 그를 더욱 초췌하게 만들었다.
이곳저곳에 들어찬 서류와 책의 더미조차 없다면 영락없는 폐가와 같은 사저 한가운데에 앉아, 온 강남이 지금껏 중원에서 벌어진 모든 반란 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반란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반란에 가담한 현실을 마주하는 장거정이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웃음짓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강남의 사정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지난 며칠간 한결같이 전해진 비보를 들고 찾아온 풍보의 머릿속에 스치는 물음이었다.
“요동에서 첩보(捷報, 승전보)라도 들어왔는지요?”
“그럴 리가 있겠소? 광녕까지 내주고 영원성까지 밀려났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소.”
이백만 대군을 일으키고, 요동에서 요서로 밀려난 전선에 끊임없이 군사를 밀어넣고, 수군을 복원하고 군사를 조련하여 이듬해 동이 군세의 힘이 빠질 때 조선의 서쪽 해안을 칠 준비를 하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온 중원의 사람과 군량, 재보를 모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잠시나마 – 장거정이 희망하기로는 – 강남 전역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지금은 결국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결국 장거정은 군량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의 규모를 줄이고, 척계광으로 하여금 군사를 뒤로 물리게 하였다.
다행히도, 그토록 교활하고 명민하던 적의 수뇌부는 어떤 일에서인지 옛날 같지 않아 후퇴하는 명군의 뒤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허나 영원성에서 더 물러난다면, 그때는 정말로 벼랑 끝에 몰리는 셈이었다. 마지막 비장의 수로 남겨놓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군사들 – 장수를 잃은 에스파냐 군사들까지 모두 흡수하여, 아직도 그 수가 삼만에 달했다 – 과 산해관, 그리고 그 뒤로는 북경이 있을 뿐이었으므로.
“걱정은 마시오. 그사이 실성한 것은 아니니. 그저, 기뻤을 뿐이오. 마침내 그 ‘망진자호’가 뜻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저들의 계책을 파훼할 수를 찾았으니 말이오.
지금쯤이면 아마 남경에 무사히 이 사람의 대책이 전해졌을 것이오.”
보름쯤 전에 열렸던, 그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 풍보 또한 있었으므로, 장거정이 해석한 망진자호의 뜻이 무엇인지 얼추 알고 있었다.
장거정의 해석은 이러하였다.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시황제의 후대, 이세황제 호해였다. 그리고 지금 대명의 황태자는 여전히 조선에 붙잡혀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강남 전역의 민심을 뒤흔든 그 여세를 몰아, 송구하옵게도 황태자 전하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역의 기치를 내걸려는 속셈일 게요.’
승산이 크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이길 심산이 아니요 그저 명의 반신(半身)을 마비시키기만 하는 정도라면 저것으로도 충분하였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아직 연소하시지만, 애초에 반란의 명분으로 삼기 위함이라면 보령은 아무 상관이 없기 마련이오.’
꼭 황태자를 참람되이 새 황제로 추대할 것도 없이, ‘황태자 전하께서 이리 말씀하셨더라’ 하면서 장거정 자신을 황상을 꼭두각시로 세우고 중원을 파멸로 몰아넣는 간신이라 몰아가는 것으로도 족하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결국 어딘가를 거점으로 삼고, 저들이야말로 참된 중화의 조정이라 주장해야만 하겠지. 그렇게 하기에 유도(留都, 예비 수도) 남경만한 곳도 없고. 우리는 바로 이 점을 노릴 것이오.’
강남에 남은 모든 군사를 모아도, 들끓어오른 민심을 진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예리한 칼날도 물을 벨 수는 없는 법. 더구나 강남은 동이에 담긴 물 몇 근 정도가 아니라, 대해(大海) 그 자체였다.
허나 남경 하나뿐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남경이 온 중원에서 가장 번화하여 사람의 수만 백만을 헤아린다지만, 그렇다 한들 고작해야 성 하나. 성문 열여섯과 항구 하나만 틀어막으면 끝이었다.
그러므로 임거정과 그의 한때의 동지였던 해서, 항주의 그 소란을 주동하였던 오승은 등이 있다는 남경을 그대로 봉쇄한다.
지금의 절기는, 강남에서는 겨우내 자란 보리나 벼를 거둘 때. 아직 수확한 곡식이 농토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남경 안의 곡식은 금방 떨어질 것이다.
허나 진정으로 장거정이 노리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
남경이 관군으로 에워싸인다면, 그저 일터를 벗어나 드러눕는 것만으로도 나라를 저들 뜻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이 전례없이 무엄한 짓에 동참한 강남의 사민(士民)에게는 선택이 강요될 것이었다.
그들이 정녕 장거정 자신과 그의 내각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지금만한 적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경의 반군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결국 몸을 일으켜야 했다. ‘강남의 사민’이라는 모호하게 뭉뚱그리는 이름에서 벗어나, 무슨무슨 관직을 역임한 아무개 공(公)의 아들, 진사 아무개라는 한 사람의 이름을 내걸어야만 했다.
막연히 세상에 원망을 품으며 드러눕는 것은 쉬웠다. 저들의 수가 많음을 믿고 억지를 부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과 명운을 걸고 일어나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과연 멸문지화를 감수하고 저들 고장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남경을 에워싼 관군 앞으로 나아올 용기가 있는 자들이 강남의 무수한 사람들 중 얼마나 될까?
“임거정과 그 일당의 수를 꿰뚫은 것보다도 더 기쁜 점은, 마침내 천도(天道)를 논하는 이 다툼, 온 지구를 불사르며 벌이는 이 논쟁에서 이 사람이 마침내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논지를 세웠다는 것이라오.”
장거정이 조금은 익숙해진 미소로써 말을 이었다.
“모든 반역은, 아니, 이 땅 위의 질서를 바꾸려는 모든 움직임은, 결국 한 사람에게서 말미암을 수밖에 없소.
선두에서 앞장서든, 뒤에서 모든 일을 계획하든, 움직임을 일으키는 한 사람 없이는 아무리 사납게 날뛰는 물결일지라도 그저 사방으로 흩어지고 끝날 뿐이오.”
그리고 장거정은 그것을 끊어버릴 것이었다.
“임거정은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오. 얼굴도, 이름도 없는 백성의 무리는 장강의 물결도 같아, 능히 땅을 깎고 바위를 부술 수 있지만, 그런 강물조차도 결국 사람이 파는 운하를 따라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응천순무 경정향이 남경과 그 일대에서 군권 지닌 모든 이들을 장거정의 이름을 대며 끌어들이니, 반란인듯 축제인듯 애매하던 남경 시내의 상황은 하룻밤만에 급변하였다.
경정향은 명을 충실히 받들어, 관아의 창고를 밤사이 모두 비웠다. 그사이 병부상서와 수비태감은 군사를 모아 성문 바깥에 진을 쳤다.
날이 밝자마자 목청 큰 군사를 내세워 한 시진에 한 번씩 선포하기를, 성 밖으로 나온다면 결코 벌하지도 않을 것이요, 관의 곡식으로써 구휼할 것이로되, 남경 안에 남아있으면 영락없이 굶어죽는 수밖에 없으리라 하였다.
그와 더불어, 복주만큼이나 서방이 흥성한 소주 등지에 사람을 보내, 글을 찍어내 남경의 상황을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악적 임거정과 반역 수괴 오승은은 꼼짝없이 남경에 갇혔으며, 그들의 요설에 놀아난 이들은 딱히 벌하지 않을 것이로되 남경 안의 역당에게 호응하여 반기를 드는 자들은 반드시 국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라는 포고문이었다.
“그 기세가 사뭇 날카롭고도 견고하니,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날카롭고도 견고한 기세를 어린아이 장난하듯 뚫고 남경 용강창(龍江廠) 포구에 닿은 이순신이 더없이 진중하게 말했다.
“개중 정예한 병사는 모조리 북방으로 보내고 남은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兵)은 병입니다. 싸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면, 위태로움을 감수하지 않는 쪽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야, 각미사 한량 이정 어르신 따라 우리집 드나들던 그 순신이가 맞나? 가슴이 웅장해지는구나.”
일본과 요동을 거치며, 이제는 정말로 무장다운 위엄이 풍겨나오는 이순신이었으나, 그 이순신이 꼬맹이 시절 저의 집 담장 개구멍으로 드나들던 것을 뻔히 본 꺽정이 앞에서는 도저히 그 위엄을 지켜낼 수 없었다.
“당수, 사람이 진지하게 말을 하면 좀 들으십시오.”
장거정이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곧장 대책을, 그것도 꺽정이네의 정곡을 찌르는 계책을 마련해 하달하니, 이제는 꺽정이 일행이 당할 차례였다.
당장 저들, 성 밖의 관군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성내 백성들은 동요했고, 언제 공사로 묶였냐는 듯 다시 여기저기서 생겨난 미곡상들의 가게 앞에는 곡식 사재기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허나 다들 드러눕게 되면 언젠가는 굶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명한 이치. 언제고 식량의 부족이 이번 대불복 어디쯤에선가 불거질 문제임을 예상한 이지함과 이탁오가 미리 준비해둔 바가 있었다.
“명의 수군은 일찍이 천진과 한양에서 보았을 때보다도 더 빈약하여, 큰 문제 없이 일본을 지나 이곳 남경까지 거슬러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허나 수군은 수군이요, 뭍의 일은 또 다른 법입니다. 우리 전선에 타고 있는 수졸과 수부(水夫)들을 모두 모으고, 짐을 싣고 온 배에서도 모든 선인을 차출한다 하더라도 지금 성을 에워싸고 있는 저들 무리를 뚫기는 난망할 것입니다.”
이순신과 린죠 히데요시는, 꺽정이가 오승은과 만나기 위해 떠날 무렵 비슷한 시기에 요동을 벗어나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히라도에 잔뜩 쌓인 쌀섬을 싣고, 조선 수사와 자유민주당 짐배를 이끌고 이렇게 남경으로 온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러나 이순신의 표정에서 남은 진지함을 쓱 지워버리고도 남을 경망스러운 목소리로, 바로 코앞에서 린죠 히데요시가 까불대며 외쳤으므로 이순신의 말은 툭 끊기고야 말았다.
“자, 자! 대국 남경 백성 여러분, 와서들 보십시오! 얼른 와서 보십시오! 일본 육십육주 중에서도 가장 밥맛 좋기로 유명한 에치고(越後)의 쌀! 날이면 날마다 오는 쌀이 아닙니다!”
어느새 부두에 그득 옮겨진 쌀섬 사이에, 재주도 좋게 임시로 단상을 쌓아올리곤 그 위에서 외치는데, 자유민주당의 옛 왜구들 사이에서 일본말과 복건성 민어(閩語) 다음으로 널리 통용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남경과 강소 일대의 강회(江淮)사투리였으므로 통변에는 하등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남경 사람들 또한 잇속에 밝아, 팔지 않는 물건도 언제든 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벌써 다들 어디선가 헐하게 파는 곡식의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었다.
“어허!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로 받아갔다가는 우리 ‘동쪽 오랑캐’와 공모한 것이 되니, 그냥 당당하게 돈 내고 사가십쇼들!
은자는 당연히 받습니다! 또 홍병위 무서워서 감춰두고 있던 은정고 은표나 사업당 분표가 있으면 지금이 바로 처분할 때입니다! 어서들 오십쇼! 날이면 날마다 오는 에치고 쌀이 아닙니다!”
“누가 성에 서(徐) 자 안 들어간달까 봐 서림이 같은 짓을 하고 있구만.”
“허나 아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매긴 값도 보아하니 일본국에서는 비싸다 할 만하지만 이곳 강남 기준으로는 그럭저럭 헐한 편이고요.”
꺽정이 옆에서 구경하던 이탁오가 한 마디 하였다.
그 말을 입증하듯, 벌써부터 ‘원숭이 양반, 거 잡소리는 관두고 얼른 내 은이나 가져가쇼!’ 하면서 달려드는 남경 사람들이 즐비하였다.
교토의 일본 신정부에서는, 적어도 명년까지는 삼공칠민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걷은 곡식으로 다른 두 나라의 군량을 대주기로 결의하였다.
지금껏 나라 안에서 싸우느라 헛되이 사라지던 쌀이 절약되고, 싸우는 데 목숨 바치느라 도저히 농사에 보탤 수 없던 일손이 고스란히 논밭에 남게 되었으니, 조선이 개명된 법도 위하는 군기고라면 일본은 곡창(穀倉)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던가.
“뭐, 여하간 이렇게 난관 하나는 지난 셈입니다. 허나 여기 이 공이 말한 것처럼 더 중한 난관이 남아있지요.
장거정 그이가 우리 생각보다도 더 빠르고 기민하게 우리 아픈 구석을 정확히 찌른 것은 사실입니다. 남경을 벗어나 달아나려면 딱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요.”
아무리 명의 수군이 허약하다지만, 지금 이곳 남경에 닿은 이순신과 히데요시의 함대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사이 모든 힘을 끌어모아 강의 하구를 틀어막을 수도 있었다.
“그건 선생께서 여기 순신이, 아차, 여해의 무재(武才)를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야, 뭍에서도 그리 뛰어난 사람이 물 위에서 싸우게 되니 아예 날아다니던데요.
장담컨대 여기 여해가 수사(水師)를 맡고 있는 한 같은 수사로 당당하게 여해와 싸워 이기려는 놈은 천하의 바보멍청이 빼곤 없을 겁니다.”
어느새 쌀을 푸는 일은 부하들에게 넘기고 꺽정이와 이탁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히데요시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건 그저 싸워 이길 수 있을 때, 미리 이겨놓고 싸우기 때문에 가한 일입니다. 적이 싸울 곳과 싸울 때, 싸우는 방식을 정할 수 있는 싸움터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꺽정이 상대할 때와 달리 자못 점잖고 선비답게 답하는 이순신이었다.
허나 꺽정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므로, 두 사람이 무어라 떠들든 변할 리가 없었다.
“여기들 와서 보시오.”
뜬금없이 포구 구석, 수풀 우거진 쪽을 가리키는 꺽정이였다.
어리둥절한 사람들 앞을 지나 뚜벅뚜벅 걸어간 꺽정이가, 손수 울창하게 자란 수풀을 뜯어내고 치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솔길 한 줄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간 일행은, 길의 끄트머리에 허름한 사당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옛날 승천문 위에서, 소소한 도적 대신 큰 도적 때려잡겠노라 약조를 했소.”
계책에 망진자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바로 그 옛날 스승 화담에게 들은 이 일화를 기억하던 꺽정이 본인이었다.
기어코 오랑캐 임꺽정이가, 그 옛날 승천문 위에서 왕직과 손짓발짓으로 하였던 그 약조를 지키겠노라 하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보시오. 대체 어떻게 그 뜻이 밖으로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장 어리석은 백성들조차 왕직 그놈의 말에 찬동한다는 기색을 저들도 모르는 사이 드러내지 않았소?
그러므로 나는 믿기로 하겠소. 이 땅의 사람들이 무엇으로 위압하든, 주눅들지 않고 이곳 남경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데 판돈을 걸겠다 이 말이오.”
다 낡은, 그러나 정성스레 가꾼 흔적이 아직도 역력한 ‘휘왕사’ 현판, 그리고 왕직과는 전혀 닮지 않은 신상을 가리키며 꺽정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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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가 명의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이후로도 남경은 명의 경제적 중심지 겸 인구 백만의 대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비록 영락제는 천도 과정에서 남경을 배도(陪都, 제2의 수도)보다도 격이 떨어지는 유도(留都, 예비 수도)로 낮추었지만, 그럼에도 남경이 지니는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었기에 형식뿐이지만 북경의 조정과 유사한 통치기구를 남경에 남겨두었지요. 이후 강남의 경제가 더욱 발달하고 더불어 왜구의 위협이 심각해지면서,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던 남경 조정은 병부와 남경사례감(환관 조직)의 수비태감 등 군사기능을 중심으로 다시 제한적으로나마 지방 통치 권한을 지니게 됩니다. 응천순무 경정향이 비상사태를 맞이해 이들을 끌어들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남경까지 오가는 수로가 쉽게 뚫린 것은 원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명말의 대해적이자 수군 군벌 정지룡의 아들로 그 세력을 이어받아 반청복명 운동을 펼친 정성공은, 실제로 1659년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남경을 포위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아직 대만 남서부를 점령하고 나라를 자칭하기도 전으로, 정성공 세력은 광동성 해안 몇 곳을 거점으로 둔 대해적단 정도의 규모였지요. 정성공은 ‘따위’ 정도로 부를 수 있는 작중의 조선 수군 및 자유민주당을, 그것도 이순신이 거느리고 왔으니, 명의 수군이 이를 막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고증오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