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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3화 (3/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03화비올라가 말했다.

“깃펜이랑 붉은 개구리 독을 가져와.”

“붉은 개구리 독이요? 그건 상당히 강력한 신경독인데요?”

비올라는 속으로만 움찔했다.

제논의 저 눈웃음 속에 감춰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마치 마음속을 모두 간파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설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 무섭기도 했다.

“집사. 이 집안에서 네 역할이 뭐야?”

“공녀님을 돕고 감시하는 역할입니다.”

“그럼 그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

제논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허리를 숙였다.

“맞는 말씀이시네요.”

허리를 세우고 빙그레 웃었다.

역할에 충실해라.

지극히 벨라투스러운 말이었다.

“약 12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정확히 12분이 흘렀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단 1초의 오차도 없었다.

이 시대의 마도 명장이 만든, 1/10,000초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마법 시계가 정확히 12분이 지났음을 가르쳐 주었다.

약간 소름이 돋았다.

“깃펜과 붉은 개구리 독입니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 메모지도 가져왔습니다. 공녀님.”

“잘했어.”

비올라는 책상에 앉아 내일 있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집안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세계관이 그랬다.

대부분이 어딘가 비틀리고 망가진 인물들이었다.

내일 만나게 될 5공자 비첸도 마찬가지였다.

‘순진무구하게, 악의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 로 성장.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훈련을 받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그 어떠한 죄책감도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심지어는 순진하고 착하다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였다.

‘내일이야.”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비올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남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

비올라는 임전무퇴의 자세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옷감이 손에 닿았다.

손에 닿자 녹아내릴 것같이 보드라운 실크의 감촉이 느껴졌다.

붉은색 드레스였다.

밑단이 그렇게 길지 않아 활동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비첸을 기다렸다.

나이는 여덟 살.

이름은 비첸.

작품 초반부에 비올라의 가장 성가 신 경쟁 상대가 될 인물이기도 했다.

‘후’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금발의 꼬맹이가 살인귀 꿈나무이자 한 살 오빠인 비첸이었다.

‘ ‘귀엽…… 다?’

멜빵이 달린 정장을 입은 꼬마도련님 같은 모양새에 비올라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아냐. 속지 말자.

저 녀석은 비첸이다.

살인마 꿈나무.

긴장을 늦추면 안 됐다.

비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가 살벌하게 말했다.

“너 따위가 내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지만 비올라는 알고 있었다.

저 모습은 비첸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 「비첸은 비올라의 방에 들어가기 전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했다.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자.’

이를테면 3공자 쿤도 같은 모습을 마음먹었다.」

그 모습을 같잖게 본 비올라는 비첸과 심하게 다투게 된다.

둘 다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거기서부터 둘의 관계는 엉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첸의 저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비첸은 사실 동생이 갖고 싶었다.

“형들이랑 누나들은 다 동생 있는데, 나만 없어.」

그래서 비첸은 동생이 생기기를 늘 기대해 왔다.

그러던 차, 비올라가 입양되었다.

「비첸의 어머니인 이사벨라가 말했다.

“비천. 그 아이는 네 동생의 자격이 없단다.”

“왜요?”

“벨라투의 피를 잇지 않은 천한 것이거든. 그 아이는 네 동생이 아니라 제물일 뿐이란다.”

“그럼 인사하면 안 돼요?”

“해도 된단다. 네 동생 따위가 아님을 확실하게 하고 오렴.”

속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살벌하고 무서운 척하고 있는 저 꼬마 도련님은 사실 동생을 원했던 나름 귀여운 포지션의 살인마 꿈나무다.

결정적으로 비첸은 말싸움에 매우 약했다.

“내가 네 동생이 아니면 뭔데?”

“그건…….”

어머니가 뭐라고 했더라.

맞다!

“넌 제물이지.”

“그렇구나.”

비첸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왜 화를 안 내지?

혹시 바보인가.

바보라서 무시당해도 화를 못 내나?

‘그럼 엄청 실망인데.”

차라리 화를 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욕을 받았는데도 참고 있는 것은 벨라투답지 않다.

“왜 화 안 내?”

“내가 화냈으면 좋겠어?”

“내가 모욕했잖아. 그럼 화내야지.”

“기다려.”

“응.”

비첸은 눈을 깜빡이며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근엄하고 살벌해 보여야 한다는 처음의 마음가짐은 잊어버렸다.

총기 넘치는 눈동자로 비올라를 관찰했다.

‘뭘 하려는 거지?’

획!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순간, 비첸은 움찔했다.

‘뭐야?’

뒤를 돌아보니 깃펜이 벽면에 꽂혀 있었다.

볼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우와.”

볼을 만져보았다.

“잘 던진다!”

순수하게 감탄했다.

비첸은 비올라가 매우 정교하게 조준하여 깃펜을 던졌다고 확신했다.

아주 살짝만 스치도록 말이다.

그러나 비올라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으억, 실수다.

원래 몸이 아니다 보니 아직 완전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비첸 옆으로 던져서 겁만 주려고 했는데 비첸의 얼굴을 다치게 하고 말았다.

괘, 괜찮나?’

깃펜의 촉은 날카로웠고 비첸의 볼이 많이 따가울 것 같았다.

까, 까딱 잘못했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혹시 잘못해서 눈이라도 찔렀으면?

‘게다가 뭐 저렇게 빠르게 날아가?’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행히 비첸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올라의 반응에 만족한 것 같았다.

“나한테 경고한 거야?”

순간, 비올라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광기가 번뜩이는 듯했다.

“재미있는 동, 아니, 제물이네!”

비올라는 호달달 떨리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되물었다.

“재미있었어?”

“응. 경고가 기가 막혔어.”

정교하게 계산된 궤적.

화살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속도.

모든 것이 비첸의 예상치를 한참 웃돌았다.

비첸이 보기에 비올라의 손속에 는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살성을 타고났다더니 그 말이 딱인 것 같았다.

비올라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비올라로부터 뾰족뾰족한 살기가 느껴졌다.

“또라이 같아서 좋아.”

“칭찬 고마워.”

“나 안아줄래?”

비첸이 두 팔을 벌렸다.

두 팔을 벌렸어도 짧고 작아서 귀여운 인형 같은 비첸의 모습에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그래! 하고 외칠 뻔했다.

비올라는 한동안 비첸을 그냥 쳐다봤다.

비첸이 착한 눈망울로 물었다.

“안 돼?”

벨라투에서의 포옹은, 단순히 안는 행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벨라투 공작가에서 상대를 안아보는 행동은, 체형을 분석하고 약점을 파악하는 일종의 탐색이었다.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돼.”

“으히히히.”

비첸이 비올라를 꽉 안았다.

“너 마음에 들었어. 누가 더 잘 죽일까? 궁금하다. 헤헤.”

비올라를 경쟁자로 인정했다.

비올라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정…… 받기는 했네.’

비첸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곧 잔혹한 후계자 경쟁의 라이벌로 인정을 해줬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잘해보자. 히히.”

그 섬뜩한 말을 들으며 비올라는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첸 공자님, 안녕하십니까? 막내공녀님께 배정된 집사 제논입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제논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응. 왜?”

“공작님께서 공녀님께 열흘의 시간을 허락하셨거든요.”

열흘 동안은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였다.

“근데?”

“물러나 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둘 사이에 오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싫은데?”

“그러면 정식으로 보고를 올리는 수밖에요.”

“보고?”

“네, 저는 공녀님의 집사 역할과 동시에 감시자 겸 보고자 역할도 맡았거든요.”

“감시? 보고? 왜?”

“수상하잖아요. 저 나이에 저 침착함이라니.”

비첸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보통 그런 건 비밀로 하지 않아?”

“비밀로 하라는 명은 못 받아서요.”

제논은 태평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는 보고를 올릴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굳이 보고를 올리고 싶진 않습니다만.”

“쳇.”

비첸이 비올라를 놓아주었다.

비첸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비올라를 향한 진득한 살기를 내뿜었다.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한 살기였다.

비올라는 날카로운 기운에 폐부를 찔리는 것 같았다.

과연 살인귀 꿈나무다웠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 편으로 만들자.’

실패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칼들고 쫓아올 게 뻔했다.

히히히히! 웃으면서.

실제로 원작에서는 그랬다.

그런 진행은 사양이다.

비첸이 손을 흔들었다.

“또 보자. 동……… 아니. 제물!”

휴우.

하마터면 동생이라고 말해줄 뻔했네.

놀란 속마음을 다스리며 비첸이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그는 걷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으어어, 세상이 핑글핑글 돈드아아아.”

누운 채로 헤롱대며 중얼거렸다.

“나 날고 있는 건가!”

이제야 붉은 개구리 독이 퍼진 모양이었다.

비올라는 물끄러미 비첸을 쳐다봤다.

어차피 독에 대한 내성이 어마어마한 녀석이라 금방 일어날 거다.

“화려한 환영 인사였네요. 공녀님의 완벽한 승리고요. 만약 공녀님께서 살심을 품으셨다면, 공자님은 오늘 죽었겠어요.”

제논이 가까이 다가왔다.

비올라의 머리칼과 비슷한 보랏빛 머리칼, 선한 미소.

그러나 묘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속을 읽기 어려웠다.

“이래서 깃펜과 개구리 독을 구해 놓으라고 하신 건가요?”

“그래.”

“그런데요, 공녀님.”

비올라는 일부러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웠다.

‘이걸 왜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나는 빙의자라서 다 알아.

그래서 미리 준비하라고 했어, 라고 말했다가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제논의 이어지는 말은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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