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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0화 (10/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10화비올라는 아이실라나무 회초리를 휘두르면서 이를 악물었다.

하나둘 상처가 늘어갔다.

비올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괴로워.”

아린이 보기에 툰드라는 어린아이였다.

한편, 툰드라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처음부터 비명을 지르면, 오히려 집사가 의심할 거야.’

한참이나 회초리질이 이어졌다.

그리고 비올라와 툰드라의 예상대로, 제논은 옆방에서 회초리질 소리를 들었다.

“훈육 및 길들이기를 시작하신 것 같네요.”

천천히 일어나 벽에 귀를 대보았다.

“어우, 아프겠는데요?”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 희미하게나마 신음이 들려왔다.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도 들렸다.

제논은 툰드라의 굳은 심지를 봤었다.

단단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아이가 저 정도 신음성을 낸다는 건, 어지간히도 잔혹히 괴롭히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얼마나 잔혹하게 하시길래……….”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저렇게 괴로운 신음을 토하게 하기는 어렵다.

저런 타입을 많이 봐왔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놈들.

제논은 툰드라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굴복시킬 생각이신가 봐요.”

그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벨라투답네요, 공녀님.”

***

툰드라가 신음성을 내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방으로 찾아왔다.

“비올라! 재미있는 놀이 중이야?”

5공자 비첸이었다.

비첸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먹잇감 혹은 장난감을 발견한 포식 자의 눈빛이었다.

“헤헤헤.”

고통스러워하는 툰드라가 보였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벌써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야?”

“아니. 길들이기.”

비올라는 일단 아이실라 회초리를 내려놓았다.

왜 갑자기 비첸이 찾아온 건지 알수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야.’

괜스레 긴장됐다.

“왜 왔어?”

“장난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봤어.”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근데 있잖아.”

먹잇감을 발견한 어린 맹수 같았다.

“얘도 약 발라줄 거야?”

“…….”

비올라가 침묵하자, 비첸이 다시 채근했다.

“얘 다쳤잖아. 약 발라줄 거야?”

“그게 중요해?”

“중요해.”

비올라는 약간 황당했다.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비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약 발라주지 않는 게 좋을걸?”

“왜?”

“약 발라주면 죽일 거야.”

“그니까, 왜?”

비올라가 자꾸 왜, 하고 묻자 비첸은 심통이 난 것 같았다.

“그냥!”

“그냥, 왜?”

“그냥! 그냥! 그냥! 그냥! 죽일 거야! 알겠어?”

비첸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가득 찼다.

귀기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비올라가 의자에 앉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비첸앞에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비첸은 말싸움에 약했다.

“내가 내 장난감에게 약을 발라주든 말든, 그건 오빠랑은 상관없어.”

“그렇지만 오빠가 내 장난감을 죽이는 건 다른 얘기거든. 오빠가 내 것을 침해했다는 얘기가 되니까.”

“흐, 흥,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

중요한 건 네가 다른 사람한테는 약을 안 발라주면 좋겠다는 거야.”

“그니까, 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 오빠는 벨라투잖아.”

“그, 그건…….”

비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내 첫 경험이니까!”

비올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 단어가 여기서 나오는 게 맞나 싶었지만, 비첸의 의도는 순수하리만치 투명했다.

“그러니까, 오빠의 첫 경험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비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빠 네가 억지 부리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지?”

“아닝? 비첸은 모르겠눈뎅?”

한껏 딴청을 피우는 폼이.

‘억지 부리는 거 엄청 잘 알아!‘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벨라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문이라고 배웠어. 나, 오빠한테 조금 실망할 거 같은데. 괜찮겠어?”

“시, 실망?”

비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산적 무리를 토벌하면서 오빠의 위대함을 조금 보여주었나 싶었는데, 실망할 것 같단다.

“그, 그래도 실망은 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와 이성적인 조건을 제시해. 그전까지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벨라투스럽게 행동하란 말이야.”

“만약 그게 아니라 지금처럼 억지를 부리기만 한다면.”

비올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연고를 발라주지 않겠어.”

“그렇다면 특별히 용서해 주지.”

비첸은 태세 전환이 엄청나게 빨랐다.

“뭐?”

“아니. 네가 다른 사람한테 약 발라줘도 당분간은 용서해 주겠다는 뜻이야.”

“또 억지 부린다?”

“아씨, 발라! 그래, 발라주라고.”

비첸은 신경질이 난 듯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너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열 살되면 두고 봐.”

말을 할 때는 진심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비첸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근데…

….

형제들끼리 살육 경쟁을 벌이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연고를 발라주는 그 작은 손이 떠올랐다.

‘꼭 죽여야 하는 걸까?’

왠지.

나 비올라 안 죽이고 싶어.

‘그래도 죽여야겠지?’

그게 벨라투의 형제들이니까?

근데 꼭 그래야 할까?

모르겠어.

누가 나한테 정답을 가르쳐 주면 좋겠어.

비첸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제논이 비올라의 방문을 열었다.

쓰러져 있는 툰드라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제가 모시는 공녀님께 칼을 겨누었죠. 칼을 목에 대기도 했어요.”

순간, 비올라의 몸이 움찔했다.

제논의 몸에서 일렁거리는 살기가 느껴졌다. 끔찍했다.

지옥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희 공녀님께서 너그럽지 않으셨다면, 저는 당신의 이를 모두 뽑아버린 뒤 입을 찢어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비올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나를 위한 말이 아냐.’

이건 시험이었다.

여주인공 비올라에 대한 집사 제논의 시험. 이와 비슷한 대사가 소설 속에도 있었다.

「“저희 공녀님께서 너그럽지 않으셨다.

면, 저는 당신의 목을 쳐낼 것입니다.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벨라투에게 있어서 ‘너그러움’은 사치였다. 너그러워지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헤론 공작 정도 되는 절대자만이 갖출 수 있다.

그 정도의 힘이 없으면서 너그럽다는 얘기는 곧, 어리석고 나약하다는 뜻이다.

이곳.

벨라투에서는 그랬다.

비올라가 말했다.

“제논.”

“네, 공녀님.”

“꿇어.”

“이 소년을 꿇릴까요?”

비올라는 일부러 침묵했다. 시간이 흘렀다.

“저보고 꿇으라고 하신 거군요.”

결국 제논은 비올라 앞까지 걸어왔다. 그러고서 천천히 몸을 굽히기 시작했다.

원작에서는 이렇게 했다.

대뜸 무릎 꿇리고 뺨을 때렸다.

「“나를 시험하지 마.”

“다음엔 죽일 거야.”」

그런데 옆에 툰드라가 보였다.

그래도 일단 내 사람인데, 툰드라 앞에서 혼내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논, 따라와.”

비첸의 방이 엄청나게 컸던 것처럼, 비올라의 방도 컸다.

거실과 여러 개의 방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제논은 잠자코 비올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방문을 닫았다.

툰드라가 보이지 않았다.

“어.”

“네, 공녀님.”

제논은 딱히 반항하지 않았다.

‘뺨도…… 때려야겠지?’

진짜 이거 사람 할 짓이 못 돼.

그래도 때리기로 했다.

속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녀를 시험한 집사.

그것을 들킨 집사. 당연히 크게 혼이 나야 한다. 혼을 내야 벨라투다.

찰싹!

뺨을 때렸다.

얼마나 세게 때려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있는 힘껏 때렸다.

혼자서 제국 기사 스무 명을 때려 잡은 초인이니, 어지간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획!

제논의 목이 옆으로 돌아갔다.

제논의 입술이 약간 터졌다. 순식간에 피가 맺혔고, 제논의 볼에 불에 지진 것만 같은 손바닥 자국이 새겨졌다.

‘미, 미안합니다!’

벨라투답게 행동해야 했다.

너무 세게 때렸나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최대한 침착한 척 말을 이었다.

“내 벨라투로서의 자격을 시험하는 것은 좋아. 그러나 티는 나지 않게 해. 기분 더러우니까.”

“죄송합니다.”

“날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이렇게 티 나게 검증을 할까?”

“죄송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제 팔을 드리는 건 어떨까요?”

아뇨!

그게 물건입니까!

왜 줘요!

심지어 왜 진심 같냐고!!

비올라는 울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피식 웃었다.

“고작 네 팔 따위로 사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목숨을 내어 드리면 괜찮을까요?”

비올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진담이냐 물으면 그렇다고 할 것 같아서 못 물어봤다.

“그러면 나를 위해 일을 못 하잖아.”

“그건 그렇죠.”

“팔이 잘리면, 일의 능률이 떨어질 거고.”

“그것도 그렇습니다.”

성격에 안 맞는 말을 하려니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조금 더 유능하게 행동해. 그게 감히 날 시험한, 널 살려두는 이유야.”

“감사합니다, 공녀님.”

제논은 비올라의 안색이 창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피 끓는 광기를 일부러 제어하고 있으시군요.”

제논이 파악한 비올라 벨라투라면, 소년의 입속에 가차 없이 단도를 들이밀던 그 살인귀라면, 지금 엄청나게 흥분했을 거다. 충분히 기분 더 러웠을 테니까.

그런데 비올라는 그 광기를 제어해내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릴 만큼 필사적으로’일곱 살에 어울리지 않는 절제력과 이성이었다.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고, 상황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비올라 벨라투는 단순히 피에 미친 살인귀가 아니었다.

‘놀랍습니다.

잔혹함과 카리스마. 그리고 지략을 함께 겸비했다.

일곱 살에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벨라투는 없었다.

제논이 몸을 일으켰다.

짚어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저를 굳이 이곳으로 데려온건…… 장난감 앞에서 제 위신을 세워주기 위함이셨나요?”

“일단 너는 내 하나뿐인 최측근이니까.”

“감사합니다.”

제논은 아주 약간이지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비올라 벨라투는 지극히 벨라투스럽다.

뺨을 맞을 때 느꼈다.

이분은 순혈 벨라투보다 더 벨라투같은 분이시다.

‘그런데 배려를 해주시네요.’

묘한 간극이 발생했다.

너무나 벨라투스럽지만, 또 묘하게 벨라투와 다르다.

순혈 벨라투라면 이런 배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뿐인 최측근’ 이란다.

그 표현을 듣는 기분이 은근히 괜찮았다.

‘공녀님은 참 신기한 분이네요.

신기함이 싫지 않았다.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벨라투가 보내는 배려가 낯설면서도 좋았다.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공녀님께서 벨라투를 지배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기 시작했어요.”

비올라의 숨이 턱! 막혔다.

일단 오늘도 살아남았다.

뭔가 조금 과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

제논은 방으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일지를 작성했다.

‘제 뺨을 때리셨죠.’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공작의 말이 이해가 됐다.

살성(殺星)을 타고났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보호하지 않았다면 얼굴 뼈가 박살 날 뻔했다.

결코 어린아이의 완력이 아니었다.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사의 힘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나를 다루는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1공녀님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의 자질이리라 짐작됩니다.]

제논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렸다.

‘비첸 공자님과의 첫 만남에서…

깃펜을 던지실 때도 깃펜에 마나가 깃들었었습니다.

비첸도 마나를 일으켜 보호했다.

그런데 비올라는 그 보호막을 너무나 손쉽게 뚫어버렸다.

비올라가 던진 깃펜에 마나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나의 정순도와 격 자체를 타고났습니다.]

[확실한 건 비첸 공자님보다 상급의 마나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아직 비올라 공녀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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