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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5화 (15/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15화제논이 드레스 두 벌을 가져왔다.

한 벌은 하얀색이었고 한 벌은 푸른색이었다.

둘 다 아름다운 보석과 장신구. 그리고 휘황찬란한 레이스로 범벅된 옷이었다.

당연하게도 비올라의 취향은 아니었다.

“둘 다 별로야.”

“일곱 살 영애들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옷들을 어렵사리 구해 왔습니다, 공녀님.”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다.

몸은 일곱 살이지만 정신은 현대의 21세 성인이다.

저런 공주님 옷이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입으면 귀여우실 거 같은데요.”

“그럴 리가.”

이건 또 무슨 종류의 시험이지.

‘귀여운 캐릭터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면 아빠나 오빠나 언니한테 뿌! 꺄! 삐! 뾰! 하면서 사랑받는 달달한 로판 세계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싶다.

‘망했어. 귀여움은 끝났어.’

비올라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여러번 봤다.

악녀 행세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묘하게 살인귀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이 몸뚱이가 귀여울 리 없다고 생각했다.

“별로야.”

“제 실수군요.”

제논은 수첩을 꺼내 필기했다.

“뭘 쓰는 거야?”

“공녀님은 드레스를 싫어한다는 내용을 쓰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판타지 세계고, 영애가 드레스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개중 활동하기 편한 드레스가 존재했다.

“이거면 되겠네.”

옷장 가득한 드레스 중, 그나마 장신구가 덜 달리고 간편한 옷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도 비올라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했다.

갑자기 데이트?

제논이 데이트를 요청했다.

겨울성 내에 아주 맛있는 ‘에그 타르트’를 파는 곳이 있다고 했다.

메뉴는 오로지 하나. 에그 타르트를 먹기 위해 남쪽 끝에서부터 이곳을 찾아오기도 한단다.

사실 비올라는 알고 있었다. 이 에그 타르트는 겨울성의 명물이기도 했다.

‘꿍꿍이가 있겠지?’

분명히 있기는 할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고 싶다.

비올라의 일곱 살 육체는, 스물한 살 한아린의 식탐을 이기기 어려웠다.

스물한 살 한아린은 원래도 식탐이 강한 편이었다.

어린 시절 맛있는 것을 먹지 못했던 것이 그녀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스무 살이 된 이후, 그녀는 먹고 싶던 것들을 실컷 먹었다.

배탈이 나서 소화제를 먹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스물한 살의 정신이 가진 식탐을, 일곱 살의 육체가 버텨내지 못했다.

게다가 에그 타르트라니!

육체와 정신에 괴리가 생겨났고, 육체는 에그 타르트를 강하게 탐닉했다.

식욕이 꿈틀꿈틀 피어올랐다.

‘거절할 수가 없는 데이트 제안이잖아!’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비올라를 향해, 하얀 장갑을 낀 제논이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공녀님.”

“그래.”

비올라는 기대했다. 소설에서는 가히 천상의 맛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갓 구운 노오란 에그 타르트에 계피를 솔솔 뿌렸다.

따끈따끈한 에그 타르트를 한입 베어 먹었다.」

대략적인 묘사는 이러했다.

「순간, 따뜻하고 폭신한 감촉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그 몽실몽실한 달콤함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발가락 끝까지 전달되는 …….」

제논과 함께 에그 타르트 맛집.

아줄레지아로 향했다.

***

결과적으로 에그 타르트는 성공적이었다.

‘와. 진짜 맛있어!’

가슴속으로부터 진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걸 먹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달콤한 내음이 입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달된다는 그 표현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빙의된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행복이었다. 빙의하길 잘했어. 최초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제과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갑자기 숙연해졌다. 사람들이 오른손을 가슴에 대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모양새였다. 경의를 표하는 풍습이었다.

천살 공작.

헤론 벨라투가 걸어 들어왔다.

제과점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먹던 에그타르트를 내려놓고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겨울성 내의 사람들은 헤론 벨라투를 경외한다.

경외.

무서움과 공포로서가 아닌, 영광된 자를 인정하는 자가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 혹은 경건한 공경심을 뜻하는 말이다.

겨울성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가 서려 있었다.

겨울성의 위대한 군주를 향한 두려움과 존경이 함께 묻어났다.

그들은 경외를 담아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세를 유지했다. 겨울성의 주인을 향해.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감히 천살 공작 앞에서 에그 타르트를 먹지 못했다.

주민들이 군주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였고 존중이었다.

그런데 그 예의와 존중을 보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존재했다.

와그작!

누군가가 에그타르트를 씹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그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

비올라는 당황했다.

‘어…?’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였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에그 타르트를 향한 손과 입뿐.

‘움직여야 하는데?’

와그작!

비올라의 몸도 급했는지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볼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달걀 크림 같은 노오란 크림이 입술 근처에 묻어버렸다.

오물오물.

달콤한 행복을 맛보았다.

아주 잠깐.

약 2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비올라는 천국을 경험했다.

‘아……… 존맛탱…….’

그리고 그 천국은 짧았다.

유효 기간 2초짜리 천국이었다.

삭막해진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큰일 났다.

몸이 굳었다.

다른 사람은 다 일어나서 예를 취하고 있는데 저 혼자만 에그 타르트를 쩝쩝거리며 먹었다. 소리도 엄청 크게 났다.

헤론 공작과 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아, 이건, 그러니까요. 제가 예의가 없는 게 아니고요….’

비올라는 울고 싶어졌다.

모든 사람이 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이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몇몇의 표정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겨울성의 군주가 나타난 자리에, 태연히 앉아 에그 타르트를 음미하는 어린애라니.

예절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대충 그런 눈빛들이었다.

비올라는 울고 싶었다.

‘이건 몸이 제 말을 안 들은 건데요….’

이 일곱 살의 육체는 수면욕, 식욕, 배변욕에 굉장히 취약했다.

더더군다나 지금 같은 상황.

그러니까 21세 한아린의 정신과 7세 비올라의 육체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보육원에서 자랐던 한아린은 ‘달콤한 디저트’에 대한 식욕이 남달랐다.

그녀는 이 정도 에그 타르트가 얼마나 맛있는 명품인지 알고 있다.

정신이 에그 타르트를 강력하게 원했다.

7세 비올라의 육체는, 21세 정신의 강렬한 염원을 이기지 못했다.

비올라의 육체는 강력한 살인귀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달콤한 디저트에 대한 내성은 없었다.

‘하아.’

여기 왜 헤론 공작이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다.

어쩐지 데이트라니.

그럴 리가 없지.

제논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일어나서 갑자기 인사하면 오히려 역효과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쟤는 최애캐다!

최애캐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마음침착하게 먹는 거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황하지 않은 척! 나는 의연한척!’

헤론 공작이 걸음을 옮겼다.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조심조심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헤론 공작이 비올라 앞에 앉았다.

비올라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무표정한 얼굴의 헤론 공작이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21세 한아린의 정신과 7세비올라 육체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생겨 버렸다.

‘진짜 잘생겼다.

빙의 첫날에는 정신이 없었다.

저 잘생김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보니 알겠다.

소설 속 내용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수많은 영애가 헤론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치장하였다.

사교계에서는, 〈헤론 벨라투의 마음을 사로잡는 101가지 방법이라는 허무맹랑한 책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정도였다.」

21세 한아린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TV나 핸드폰으로 잘난 얼굴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더 절 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친 미모야.

정돈되지 않아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검은색 앞머리.

흘러내린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

어딘지 모르게 사이한 기운을 머금은 검은색 눈동자는, 색기를 넘어 요기(妖氣)를 흘리는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콧날에 그보다 더 날카로운 턱선은 이 남자의 날 선 예민함을 한껏 드러내는 것 같기도 했다.

독 가시를 가진 백합꽃이 이런 느낌일까?

손을 뻗어 만지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그 아름다움에 취해 손을 뻗게 될 것만 같은 꽃.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어?’

비올라는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아버지가 잘생긴 건 알겠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상대는 천살 공작. 헤론 벨라투다.

하마터면 현실에서 덕질하듯 바라볼 뻔했다.

“뭘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보지?”

아무래도 이미 바라본 모양이다.

“제 아버지가 될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실례예요?”

존댓말과 반말.

뭘 할까 고민했는데, 보는 사람도 많고 하니 존댓말을 하기로 했다.

“실례지.”

“왜요?”

“아버지가 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헤론 공작의 뒤에 서 있던 총집사칼튼이 서류 하나를 건넸다.

헤론이 그 서류를 보여주었다.

“어제부로, 너는 서류상으로도 완벽한 내 딸이 되었다.”

“감사를 표해야 하나요?”

헤론 벨라투는 고분고분하고 말 잘듣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먹이를 스스로 찾아 먹을 수 있는 맹수를 좋아한다.

위축된 사자보다는, 달려드는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절대 쫄지 말자.’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왕이면 감사를 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왜요?”

순간, 헤론 벨라투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왜요라는 질문이 잦구나.”

“두 번 했는데요.”

헤론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비올라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무표정한 얼굴인데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휘둘러 목을 댕겅! 잘라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이면 충분히 잦지.”

저 말이, ‘칼질 두 번이면 충분히 목을 잘라낼 수 있지’처럼 들렸다.

비올라는 독자답게, 헤론 벨라투를 덕질했던 한아린답게, 이 상황을 타 개해 가려고 했다.

좀 더 여유롭고 냉철하며 오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아버지도 제게 원하는 게 있어서 데려오신 거잖아요. 마치 어머니들과 정략적으로 결혼한 것처럼’ 이렇게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오늘은 한아린의 식욕이 비올라의 육체를 이겼다.

‘그만둬, 손! 나쁜 손!’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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