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16화 화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명품 에그 타르트를 눈으로만 볼때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창문을 타고 넘실넘실 날아 든 봄바람이 문제였다.
봄바람에는 폭신폭신한 에그 타르트의 달콤한 냄새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에그타르트를 집어 올렸다.
앙.
덥석.
하나를 또 통째로 입에 넣었다.
‘으으음. 이 맛이야……!’
그리고 1초 후 지옥을 경험했다.
총집사 칼튼마저도 황당하다는 듯 비올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제논마저도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비올라를 쳐다봤다.
일단 이 폭신폭신한 에그 타르트가 입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거 아닌데?’
이렇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일 줄이야.
비올라는 황망한 마음을 숨긴 채 두 손가락으로 에그 타르트를 집어들었다.
일은 벌어졌고, 수습은 해야 했다.
“하나 줄게요.”
헤론 공작 쪽으로 넘겨주었다.
“엄청 맛있어요.”
“날 주는 건가?”
“네, 특별히.”
“상당히 아까워 보이는데?”
“아까워요.”
“그럼 왜 날 주지?”
“일단은 아빠잖아요.”
헤론 벨라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비올라는 순간 움찔했다.
저 손에 독이 든 단검이 들려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헤론의 검지가 비올라의 볼에 닿았다.
스윽~
먼지를 닦아내듯 무심한 손길로 비올라의 볼을 닦아냈다.
“제논, 예절 교육을 확실히 시키도록. 입에 이렇게 뭘 묻히고 먹는 벨라투는 처음 보는군.”
헤론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에는 노란 크림이 가득 묻어 있었다.
헤론은 냅킨으로 크림을 닦아냈다.
헤론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가지만 묻지, 비올라.”
“네.”
“겨울성의 모든 사람은, 나를 보면 경의를 표한다.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비올라가 앉은 채 헤론 공작을 올려다봤다.
에그 타르트를 완전히 삼키지 못했다.
덕분에 입은 여전히 바빴다.
오물오물.
명품 에그 타르트가 입속에서 녹아내렸다.
없어지는 것이 아쉬워 혀를 살살굴려 아껴 먹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비올라가 말했다.
남주 툰드라에게는 툰드라 맞춤형 대화가 있고, 헤론에게는 헤론 맞춤형 대화가 있는 법이다.
“그게 아버지가 원하는 거예요?”
“…….”
“아버지가 원하는 거라면 저도 그렇게 할게요.”
사실 헤론 벨라투 공작은 저런 걸 시킨 적이 없다.
어린 시절 헤론 벨라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었다.
한때 영웅을 꿈꿨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냉엄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방법만으로 겨울 성의 군주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마물을 죽여야 했으며, 천살공작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그리고 결국 겨울성을 이만큼 키워냈다.
북쪽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는 대륙 최강의 방패가 되었다.
사람들은 헤론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헤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 라엘이었다.
그녀는 헤론을 천살(千殺)의 헤론이 아닌, 사람 헤론으로 대했다.
라엘은 늘 물어주었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요?’
‘아니. 원하지 않았소.”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건, 안 할래요.”
라엘 앞에서, 헤론은 유일하게 사람 헤론일 수 있었다.
“근데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네,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거라면, 안 할래요.”
입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에그 타르트를 꿀꺽 삼켰다.
한참이나 비올라를 바라보던 공작이 다시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가면이냐?”
순간, 비올라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가면이라는 건지. 그렇지만 금방 이해했다.
아뇨. 가면 아니고,
몸이 제멋대로 막 움직이는 건데요.
‘그렇게 대답했다가는 큰일 나겠지?’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공녀.
헤론 공작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렇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일단은 침묵을 유지했다.
무언의 긍정을 하는 것처럼.
“제논이 그러더구나. 가면을 쓰고 상대를 쥐락펴락할 줄 아는 일곱 살 짜리 공녀라고.”
“후하게 점수를 줬네요.”
“가면을 쓰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모름지기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면을 쓸 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너는 순혈도 아니니.”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가면은 틀렸다.”
“…….”
“벨라투는, 벨라투다워야 한다. 알겠느냐?”
귀여움을 연기하는 것은 벨라투의 방식이 아니다.
넌 귀여우면 안 된다. 그따위 것으로는 벨라투의 성을 얻을 수 없다.
헤론은 그 말까지 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비올라는 헤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하거라.”
“진짜 아빠가 되어달라는 말. 거짓말 아니에요.”
한아린은 헤론이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다.
지금의 헤론 공작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헤론 공작이다.
처음부터 저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를 소중히 대해줘요.”
가만히 듣고 있던 칼튼은 순간 몸에 힘이 풀려 쓰러질 뻔했다.
공작을 모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저런 투정 같은 말은 처음 듣는다.
소중히 대해달라니. 벨라투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느 벨라투가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앞으로 나섰다.
지금 공녀를 죽이거나 베었다가는 공작저에 흉흉한 소문이 돈다.
“벨라투답지 않습니다, 공녀님. 언행을 조심하여 주십시오.”
그러다 공녀님 죽어요.
칼튼은 진심으로 비올라가 조금 걱정됐다.
하지만 한아린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무시무시한 최애캐는 7중첩결계 마법이 걸린 야수의 관’에서 비밀리에 귀여운 고슴도치를 키우신다고! 너넨 아무도 모르지!”
등장인물들은 모르고 독자들만 아는 설정이었다.
심지어 소설 내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공작님은 귀여움에 약하셔.
그러나 예전에 작가가 설정집을 공개했었고, 거기에는 분명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내용은 작가님의 블로 그를 뒤져서 소설의 설정집을 열일곱 번 정도는 정주행할 정도의 진성독자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난 안 되겠지만. ’비올라는 귀여움을 연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 몸뚱이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설정상 ‘살성(殺星)‘을 타고난 천혜의 살인귀 꿈나무.
귀여우려야 귀여울 수 없는 몸이다.
귀여움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절대 귀여울 수는 없어. 그러니까 귀여운 척 대신, 감성적인 접근법으로 다가가는 거야.’
줄타기를 잘 해야 했다.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그 오묘한 선이 있다.
‘찐독자만이 알 수 있는 그 미묘한 기준선이 있으니까!’
조금 아쉽기는 했다.
비올라라는 캐릭터가 귀엽다는 설정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됐다. 쓸데없는 생각 말자.’
헤론 공작은 비올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환영 만찬회에서 보자꾸나.”
비올라가 치맛단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부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
공작은 마차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았다.
창문 밖에는 어린아이들이 구슬을 튕기며 놀고 있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유독 저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칼튼.”
“네, 공작님.”
“어린아이의 볼은 원래 그렇게 폭신폭신한가?”
“살이 연하여 날이 무딘 날붙이에도 잘 베이는 편이기는 합니다. 대신 회복도 빠릅니다.”
왜요? 베시게요?
칼튼의 마음이 조금 어려워졌다.
아직 어리니 조금 더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떨까요?
칼튼은 헤론 공작의 최측근이다.
헤론 공작의 속마음을 자신 있게 읽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공작님은 열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어떤 경우에도 죽이지 않으십니다.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6공녀. 그러니 제발 정신 차리시길.’
좀 더 벨라투다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늘처럼 흐트러진 모습. 공작님께서는 싫어하신다.
칼튼은 그렇게 확신했다.
공작이 또 물었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입에 먹을 것을 묻히면서 먹나?”
칼튼은 조금 심각해졌다.
공작님께서 아무래도 큰 실망을 하신 모양이다.
명문 귀족가인 벨라투에서 태어나 정규 예절 교육을 받은 다섯 명의 자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 같다.
‘비호를 해드려야겠어.’
그래서 책임의 화살을 제논에게 돌렸다.
“제논이 아직 예절 교육을 시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총집사로서, 제논을 잘 타이르겠습니다.”
“…….”
공작이 또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칼튼은 공작이 언짢아서 그렇다고 확신했다.
얼마 후, 공작이 다시 물었다.
“총집사의 눈에는 그런 행동들이 귀엽게 보이나?”
그럼 그렇지.
역시 기분이 언짢으시군.
칼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귀엽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벨라투와 귀여움이라는 단어는 물과 기름이라는 단어보다 더 상극이다.
‘제논 녀석. 혼이 좀 나겠어.’
제논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공녀라고 치켜세웠는데, 지금 보니 공작님께서 많이 실망하신 것 같다.
“당치도 않습니다.”
“…….”
“몸가짐이 서툴렀을 뿐입니다.”
그래도 공작저에 온 지 며칠 안된 어린아이다.
벌써 내치기에는 아까운 감이 있었다.
다시 한번 간곡한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말했다.
“다만, 나이가 많이 어리고 겨울성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좀 더 주시는 것이 좋다고 사료됩니다. 아직 공작님께서 허락하신 10일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공작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칼튼과의 대화는 끝냈다.
칼튼의 말이 맞다.
그저 몸가짐이 서툰 것뿐이다.
분명히 그런 것이다.
공작의 눈동자에 아까 오동통한 볼에 닿았던 손가락이 담겼다.
그 감촉이 떠올랐다.
이 손으로 크림을 닦아줬었다.
노오란 크림이 묻어 있었다.
에그 타르트를 향한 집념 어린 눈빛도 기억났다.
비올라가 신기했다.
‘하나 줄게요.
‘네, 특별히.’
‘그게 아버지가 원하는 거예요?’
그 모든 것이 가면인가.
‘진짜 아빠가 되어달라는 말. 거짓말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를 소중히 대해줘요.
헤론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응?
그 모습을 지켜본 칼튼은 의아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 내 공녀를 내치거나 베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으신 것 같군요, 공작님.”
“나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계략을 펼치는 어린아이는 오랜만이라.”
헤론 공작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그 꼬맹이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는 제논의 보고를 신뢰했다.
그 광기를 철저히 감춘 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여요’ 라는 듯한 모습의 가면을 썼다.
헤론이 피식 웃었다.
“앙큼하군.”
그런데 칼튼은 거기서부터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