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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8화 (18/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18화비올라의 명령에 따라 툰드라에게도 좋은 방과 음식이 주어졌다.

제논이 똑똑, 노크하고서 툰드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논의 오른손에는 은쟁반이 들려있었다.

“사료입니다, 장난감 강아지 씨.”

“툰드라라고 불러줘.”

“그러지요.”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책상 위의 쪽지를 하나 발견했다.

“이건 무엇입니까?”

글자가 보였다.

반려라는 글자였다.

“아버지는 늘, 꿈을 꾸라고 하셨어..

꿈은 이루어진다고.”

늘 글자로 적고 그것을 읊으라고 했다.

그러면 그 꿈은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줬었다.

“그것이 반려와 무슨 상관인가요?”

“요즘 귀족가에서, 키우는 개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흐음. 글쎄요?”

조금 열린 창 사이로,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쳤다.

휘이잉-귀곡성이 일었다.

툰드라의 앞머리가 바람결에 휘날렸다.

찬 공기가 바닥에 내려앉고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비록 어리다 할지라도, 분위기와 아우라만큼은 이 세계관 속 주인공다웠다.

“반려견.”

“반려견이요?”

툰드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남주만의 높은 포부를 밝혔다.

“그래. 나는 반려견이 될 거야. 그게 내가 새로이 꾸게 된 꿈이야.”

그렇게 정했다.

검을 열심히 배우고 사내로 인정받으면.

나의 은인인 비올라 공녀님의 반려 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암흑 속에 작은 빛줄기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반려견이 꿈이라고요?”

“맞아.”

반려(伴侶).

짝이 되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반려’라는 말이 툰드라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제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의 반려견이라. 꽤 훌륭한 야망이네요.”

“그렇지?”

“좋은 꿈을 갖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툰드라.”

“고마워.”

제논은 진심으로 축하했고, 툰드라는 진지하게 축하를 받았다.

같은 시각.

비올라는 이불을 끌어 올렸다.

“오늘 뭔가 으스스한 것이 춥네.”

***

다음 날, 비올라는 제논과 함께 공작저의 별관으로 향했다.

제논이 설명했다.

“공작저의 별관에는 수많은 손님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알아.”

보통 그렇다. 이 정도 규모의 대저택에는 늘 별관들이 존재하고, 그곳에는 많은 손님이 있다.

그 대저택의 위명에 따라 손님들도 갈린다.

벨라투 공작가의 손님으로 머물 수 있는 자들.

그들 역시 범상치 않은 자가 대부 분이다.

대상인, 명가의 후인, 뛰어난 기사, 훌륭한 마법사 등등.

그중에서도 힉슨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벨라투 공작과 어린 시절, 전쟁터를 함께 누볐다고 알려진 힉슨은 한 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지금은 술에 절어 사는 망나니가 됐지만.

만약 힉슨이 공작의 전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별관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그랬던 힉슨이 우연히 툰드라를 발견하게 되고, 툰드라에게 자신의 검술을 가르친다.

힉슨도 툰드라를 가르치면서 구원받는, 그런 서사를 가진 캐릭터였다.

“공녀님께서 찾으시는 힉슨 경은 한때 영웅이라 불렸던 위인이나”

“알아. 네가 준 별관 부록에서 봤어.”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그런데 왜 하필 힉슨 경인가요?”

그야, 원래 소설 속에서 그렇게 하니까. 힉슨에게 배운 툰드라는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하며 급성장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비올라가 입술을 말아 올리고 웃었다.

“내 개가 충실한 사냥개가 될 때까지. 견제받으면 안 되잖아.”

“아. 그래서 힉슨 경이군요.”

힉슨은 별관의 망나니다. 옛날의 영웅일 뿐, 지금은 술에 찌든 주정뱅이.

누구도 견제하지 않는다.

주정뱅이에게 검을 배우는 공녀의 개.

그저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력은 진짜거든.”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예전에 봤어.”

“어디서요?”

소설 속.

“빈민가에서.”

“그렇군요.”

제논도 알고 있다. 몇 년 전, 힉슨경이 빈민가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서. 아마 그때 봤다는 것 같았다.

당시 힉슨 경의 검술을 읽어냈단 얘기인가요?’

비올라가 만약 제논의 속마음을 읽었다면,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니요.

소설로 봤는데요.

아무튼 제논은 생각했다.

‘힉슨 경의 검술 경지를 읽어내고, 얼굴도 정확하게 기억했다는 얘기.’

몇 년 전이라면, 아마 공녀의 나이가 서너 살 언저리일 텐데 말이다.

엄청난 기억력과 눈썰미였다. 역시 범상치 않았다.

제논은 흡족한 마음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면 별관 쪽 공터에서 술을 드시고 있을 겁니다.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공녀님.”

***

비올라는 소설 속 내용을 떠올렸다.

「힉슨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컸다. 힉슨의 유일한 바람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구해내는 것이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

힉슨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식칼을 집어 들었다.

「열네 살의 힉슨은 살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바깥세상에는 제2, 제3의 아버지들이 있었다.

아버지보다 더한 자가 많았다.

아버지로부터 탈출했는데, 어찌 보면 세상은 아버지보다 더 끔찍했다.

「힉슨은 다짐했다.

‘내가 강해져야 해.」

힉슨은 강해졌다.

방랑 기사들을 쫓아다니면서 검술을 배웠고, 각 검술 도장들을 찾아다니면서 검술가들을 꺾었다.

그는 강해졌다. 그리고 헤론 벨라 투와 친구가 된 뒤, 전쟁터를 누비며 전쟁 영웅으로 거듭났다.

언젠가, 어렸던 헤론이 힉슨에게 물었었다.

「 “힉슨, 네 꿈은 뭐지?”」

힉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따뜻한 남편이자,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

“남편? 아버지?”

“그래. 내가 사랑하는, 또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내 꿈이다.”

“조촐하다 못해 한심하고 비루한 꿈이군.”

그날, 힉슨과 헤론은 네 시간 동안 싸웠다.

그 다툼에서 힉슨은 배에 큰 부상을 입었고 헤론은 팔을 크게 다쳤다.

몇 년이 흘렀을 때. 헤론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꿈을 이뤘군.”

“그래.”

힉슨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낳았다.

「“일단, 축하는 하도록 하지.”

“여전히 네 눈에, 나는 한심한가?”

“조촐하긴 하지만, 한심하다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

둘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

힉슨이 말했다.

「“나는 이제 전쟁에서 빠진다.”」

헤론은 동의했다.

힉슨이라는 강력한 전우가 전쟁에서 빠지는 것은 아쉽지만, 헤론은 힉슨의 진심을 존중했다.

몇 년 동안 봐왔다.

친구는 꿈꿨다.

가정이라는 안식처.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것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친구다.

그 꿈을 존중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힉슨의 딸이 납치를 당했다. 힉슨이 딸을 찾으러 나선 사이, 그의 아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힉슨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한날에 모두 잃고 주정뱅이가 되어버렸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

제논의 말이 맞았다.

“아. 저기 공터에 힉슨 경이 앉아 있네요.”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제논은 여기 기다려.”

“술에 취한 힉슨 경은 위험합니다.

공녀님. 눈에 뵈는 게 없어 광견(狂犬)이라고 불립니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별관의 사람도 여럿 다치게 만들었다.

공작이 여지껏 힉슨을 살려두고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난 괜찮아.”

“공녀님이 크게 다칠까 염려되는 것이 아니라.”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혹시 공녀님에게 해를 가하면, 제는 힉슨 경의 두 다리를 잘라 버릴 예정이거든요.”

“그래도 한때. 저는 힉슨 경을 존경했던 편입니다.”

비올라가 제논을 바라보았다. 제논과 눈을 마주쳤다.

“제논?”

“죄송합니다.”

“시험하려면 티 안 나게 하라고 했지?”

제논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티 안 나게 하려고 하는데, 공녀님 눈치가 너무 빠르셔서요.”

이것 참.

난감하네요.

그 말을 삼켰다. 시험이 맞았다.

‘공녀님에게 해를 가하면’이라는 것이 시험이었다.

벨라투의 공녀는 그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두려움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마지막 경고야.”

벨라투답게 행동했다.

“한 번만 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집사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겠어.”

제논에게는 그 어떤 경고보다 무서운 말이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제논을 뒤로한 채. 비올라는 힉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힉슨은 술병을 집어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대뜸 돌직구를 날렸다.

“아저씨. 그런다고 죽은 딸이 돌아와?”

힉슨이 휙! 고개를 돌렸다.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물든 눈은 마치 마약을 한 것 같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뭐야, 이 미친 꼬맹이는!”

확실히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비올라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회슨이 술병을 집어 들었다.

술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양 볼과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비올라를 때릴 것처럼 굴었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을 모양새였다.

혀가 잔뜩 꼬인 힉슨이 말했다.

“꺼져.”

비올라가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힉슨의 몸과 거의 밀착하다시피 가까워졌다.

“아저씨.”

비올라가 힉슨을 올려다봤다.

“당신 딸은 죽었어.”

“이 미친 것이!”

힉슨이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비올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 떨려 죽을 것 같았다.

‘지, 진짜 치진 않겠지?’

힉슨은 절대 어린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인사불성이 되었어도, 어린아이에게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그것을 평생토록지켜온 캐릭터다.

그렇지만 한때 영웅이었던 힉슨의 눈빛을 받아내려니,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설정값을 믿는다!’

무서웠지만 참았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두려움을 감췄다.

공중에 올라간 힉슨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꺼지라고 했다.”

결국 힉슨은 비올라를 때리지 않았다.

비올라는 무심한 얼굴로, 혹은 한 심한 것을 쳐다보는 것 같은 얼굴로 힉슨을 계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딸을 죽인 게 누군지 알려 줘?”

“뭐?”

마침 봄바람답지 않은, 이상하게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내가 봤거든.”

비올라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바람 결에 흩날렸다.

마침 비올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웃고 있었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 연출되었다.

그 표정과, 비올라의 생기 없는 아름다움이 만나 미묘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그야말로 벨라투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것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다.

다만, 타고난 표정과 분위기가 그랬다.

힉슨과 눈이 마주쳤다. 비올라가 가다시 말했다.

“아저씨 딸을 죽인 게 누군지 알려 줄까?”

비올라는 아린의 방식으로 소설을 풀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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