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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24화 (24/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24화무려 천살 공작이 이끄는 벨라투가의 시험대.

이 시험대에서 탈락하면 어김없이 폐기 처분될 거다.

‘후우.’

깊게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커다란 문이 열리며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제논과 함께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벨라투가의 제7공녀. 비올라 벨라 투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6공녀가 아닌, 7공녀로 호명했다.

소설과 똑같았다.

비올라가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비올라를 7공녀로 호명한 집사가 보였다.

사실상 공작가의 시험은 여기서부터였다.

잘못된 것을 즉석에서 바로잡는지, 바로잡지 않는지.

바로 잡는다면 얼마나 ‘벨라투답게 바로잡는지.

‘진짜 비올라랑 똑같이는 못 해.’

원작 속 비올라는 날렵하게 움직여 집사의 목을 찌른다.

그와 똑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가 없다.

괜히 따라 했다가는 허점만 노출할 수도 있었다.

대신 비올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또각또각.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속에서 비올라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천히 집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원작대로라면 저 집사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비올라는 원작을 조금 비틀었다.

‘저건 진짜 집사가 아니야.’

사람이 아니다.

인형술사가 다루는 인형이다.

「집사의 왼손 넷째 손가락에는 가느다란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반짝이는 실이 보였다.

비올라가 잠자코 그 앞에 섰다.

품속에 있던 단도를 천천히 꺼내 아주 여유롭게 휘둘렀다.

획!

굉장히 성의 없는 태도였다.

비올라에게 주어진 단도는 벨라투공작가의 공방에서 만든 특제 단검이었다.

서슬 퍼런 예기가 서려 있는 명품.

비록 대충 휘두른 단도이기는 하지만 실을 끊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툭!

실이 끊어졌다.

집사 인형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인형인 걸 알고 있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제 저 머리를 밟으면 되겠지.’

사람 짓밟는 게 어렵지, 인형 짓밟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꾸욱!

비올라가 일부러 집사 인형의 머리 위에 한 발을 올렸다. 지그시 짓밟았다.

어젯밤 거울 보고 엄청 열심히 연습했다.

웃었다.

“이런 장난, 재미없는데.”

입술을 말아 올리고 웃었다.

웃음으로 긴장을 숨기며 뒤쪽의 한 남자를 쳐다봤다.

“세이반 마르코스.”

「인형을 조종했던 사람은 인형술사세이반 마르코스였다.」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저만치 앞 기다란 테이블에는 비올라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모두 앉아 있는 상태.

헤론 벨라투 공작.

이사벨라 공작 부인.

오늘의 에피소드는 철저하게 공작과 이사벨라 공작 부인.

그리고 비올라까지. 셋이서 이야기를 꾸려간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그때 세이반이 가까이 다가왔다.

“오호호.”

세이반이 몇 발자국 걸어오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비올라 앞까지 다가온 세이반이 허리를 숙였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공녀님.”

“결례인 줄은 아나 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자결이라도 할래?”

비올라가 단도를 건네는 듯한 시늉을 했다.

세이반이 손을 내저었다.

“그 정도의 중죄는 아닌 거 같네요. 호호호, 여기 좀 봐주세요.”

세이반이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미세한 상처들이 보였다.

비올라가 잠결에 휘두른 가위에 당한 상처들이었다.

“이 정도면 죗값을 치른 걸로 쳐주시면 어떨까요? 저 진짜 죽을 뻔했는데.”

세이반 마르코스가 공작 쪽을 쳐다봤다.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 옮겼다.

공작을 한 번 쳐다봤다.

비올라 자신을 입양해 온 남자이자 겨울 성의 주인.

검은색 앞머리와 눈동자가 인상적인 저 미남자는, 정말로 잘생겼다.

최애캐를 바라보는 비올라의 시선에 깊은 호감이 담겼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저 외모는 사기 아닌가요?’

어지간한 잘못은 모조리 용서할 수 있는 면책권이 저 얼굴이다.

한아린 자신이 이 소설에 빙의 것보다, 저 아버지의 외모가 더 개연성이 없다고 느꼈다. 세상에 저런 아빠가 어디 있어.

‘참으로 잘생겼네요, 최애캐 씨.’

헤론은 소설 속 설정인 ‘진안’을 통해 비올라의 눈에 담긴 호감을 읽어냈다.

그 호감을 애써 무시했다.

저런 호감 따위.

벨라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올라. 그만하고 앉거라.”

비올라가 몸을 돌렸다. 사뿐사뿐.

조심스레 걸었다.

단도를 다시 품에 넣고 드레스 양옆을 붙잡았다.

형제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비젠의 설렘 가득한 표정도 보였다.

그래왔듯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제논이 의자를 당겨주었다.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비올라의 자리는 헤론 공작과 이사벨라 공작 부인을 마주 보는 자리였다.

직사각형 끝자리.

주인공의 자리였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은 하얀 면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비올라는 소설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다. 이사벨라가 먼저 질문을 가장한 시험을 던진다.

「“6공녀. 두 가지 질문을 하지요.”」

그래서 비올라는 먼저 선수 쳤다.

기세를 먼저 잡아야 했다. 진짜 비올라가 아닌 한아린 비올라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 최선을 다해야 했다.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단순히 저를 환영하기 위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일부러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저를 일방적으로 데려온 건 아버지의 독단이니.”

“………..”

“벨라투로서의 제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비올라가 면사에 가려진 이사벨라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 집안의 또 다른 주인 두 분께서 검증하셔야 할 텐데.”

또 다른 주인 두 분.

두 명의 공작 부인을 뜻한다.

누구를 죽이는 것도 못하고, 죽기도 싫다.

그래서 선택했다.

‘몸으로 나를 증명하지 못할 것 같으면, 머리로라도 나를 증명해야 해’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면 죽는다.

다행히 한아린은 소설 〈벨라투의 그림자>의 내용을 훤히 꿰고 있었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맞아요. 영특하네요, 6공녀.”

건가요?‘라고 비꼬는 것 같았다.

비올라의 태도에 이사벨라 공작 부인은 아주 잠깐 당황했다.

뭐라고요?”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무, 무서워!’

비올라는 일부러 이사벨라 공작 부인만 쳐다봤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의 얼굴은 면사에 가려져 있고 눈빛이 완전히 보이 지는 않으니까 좀 나았다.

‘그래. 이사벨라만 쳐다보자.”

러 죽여 버리라는 뜻이잖아요?”

일부러 요사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곳은 겨울 성의 절대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니까 죽이면 안될 테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 죽여도 되는 ‘인형’ 이었겠죠. 맞나요, 어머니?”

“계속 말해봐요.”

“최측근이 아닌 자가 이상하게 끼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인형을 조종하는 자일 테고, 결국 세이반 마르코스, 겨울 성의 인형술사가 범인일 거예요.”

비올라는 마치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세이반 마르코스가,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독단행동을 했을 리 없잖아요? 다시 말해 세이반 마르코스의 행동은 곧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겠지요.”

세이반 마르코스 쪽을 쳐다봤다.

“그래서 안 죽였어요. 설명이 됐나요, 어머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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