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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25화 (25/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25화이사벨라 공작 부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상을 너무 벗어났다.

뭐랄까.

당한 기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7공녀라는 한 단어를 듣고 저기까지 다 알아차렸다고?’

사실 이사벨라도 비올라의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아마 집사 인형을 찌르리라.

그런데 비올라의 반응은 그 예상치를 한참 웃돌았다.

‘인형을 찌른 게 아니라, 실을 잘라 버렸어. 모두 다 알고 있다는듯.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형을 조종하는 자의 정체까지 단번에 알아맞혔다.

너무나 정확하게 다 알아냈다.

‘말도 안 되는 통찰력을…… 타고난 거야.’

충격적이었다.

더더군다나 비올라는 이제 일곱 살이다.

‘아이는 위험해.’

일곱 살이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게다가 헤론 공작이 ‘훌륭하다’라고 칭찬했다.

사실 이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이 공작을 쳐다보았다.

“당신이 칭찬을 하시다니.”

“칭찬받을 일을 했으니까.”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작의 다섯 자녀 중, 공작의 칭찬을 가끔이라도 듣는 이는 1공녀밖에 없었으니까.

공작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었다.

그런데 칭찬했다.

그것도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시사하는 바가 컸다.

후계 경쟁에 가장 늦게 뛰어들겠지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시작하는 셈이었다.

공작 부인이 다시 물었다.

“두 번째 질문은 의미가 없을까요?”

“당신 뜻대로 하시오. 두 개의 질문은 부인의 권리요.”

“이미 당신께서 칭찬을 하셨으니,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아.

이대로 끝나면 안 되는데.

그래서 비올라가 선수 쳤다.

“두 번째 질문은 뻔하죠.”

어차피 소설로 봐서 다 아는 내용이다.

“감히, 왜, 공작님과 공작 부인 앞에서 무기를 휘둘렀냐는 질문 아닌가요?”

비올라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순간, 또다시 만찬회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비올라의 말은 정확했다.

이사벨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 어린 공녀가 거기까지 예상하고 왔을 줄은 몰랐다.

‘그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거지?’

괜스레.

질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그만.”

헤론이 말했다. 헤론의 시선이 비올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저 모습.

정말 벨라투다운 모습이다.

이사벨라의 시선을 단 한 차례도 피하지 않았다.

이사벨라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우며, 칭찬받아 마땅한 태도와 모양새였다.

‘그런데 나는 왜.’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비올라는 지금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벨라투를 보고 있다.

제논의 말대로, 어쩌면 저 아이는 ‘진보된 벨라투’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전당방히!’

‘전당방히!‘를 말하던 그 어린애가 다시 떠올랐다.

에그타르트를 내밀던 그 손이 떠올랐다.

그 손을 가진 꼬맹이가 오늘도 호감이 잔뜩 서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었다.

‘이유 없는 호감. 나를 향한 맹목적인 호의.’

공작의 진안에는 그것이 읽힌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호감.’

벨라투스러운 벨라투.

저 철저하게 계산적인 아이가 왜 그런 비논리적인 호감을 갖고 있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은.’

저 맹목적이고 이상한 호의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벨라투 공작으로 살아오면서 저렇게 ‘이유 없는 호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공작에게 호의를 보이는 자는 모두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그런 이유가 없었다.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한다라.”

그게 싫지가 않았다.

겨울 성의 군주이자 벨라투 공작으로서 군림하면서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왜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공작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 벨라투의 경사다. 그러므로 나는 기분이 좋은 것일 뿐이다. 제 아이의 영문 모를 호감과는 관계없이.’

누구보다 벨라투다운 아이를 입양했으니, 그것은 벨라투가의 경사 아니겠는가.

공작은 이성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공작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사벨라가 그 깊은 눈빛을 읽어냈다.

공작의 심리 상태를 오해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깊이 흡족해할 줄이야.’

만약 비올라가 일곱 살이 아니라 열일곱 살이었다면, 후계 구도에 엄청나게 큰 파장을 몰고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곱 살이어서 다행이었다.

이윽고 헤론이 입을 열었다.

“환영 선물을 가져오도록.”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

총집사 칼튼이었다.

그가 허리를 숙였다.

“총집사 칼튼, 인사드립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쟁반이 하나 들려있었다.

거기에는 각기 색깔이 다른 액체가 찰랑거리는 포션 병이 놓여져 있었다.

포션의 숫자는 도합 다섯 개.

소설 속 내용이 떠올랐다.

「공작가의 마지막 시험은 ‘의심하는 능력과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심지’였다.」

다섯 개 모두가 독약이다.

그것도 극독. 마시면 죽는다.

즉, 아무것도 마시면 안 된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이사벨라 공작 부인이 말했다.

“자, 비올라. 내 막내딸이 될 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요.”

“저 액체들이요?”

“효능은 모두 다르지만, 비올라의 몸에 굉장히 좋은 영약들로 구성되어 있는 포션들이랍니다.”

「“왜 내가 이따위 것들을 마셔야 하죠?」

원작 속 비올라는 쟁반 자체를 땅에 떨어뜨려 버린다.

그리고 살벌한 태도로 이렇게 말을 한다.

「“왜 시험받는 느낌이 들까요?”

“내 의사조차 묻지 않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공작님일 텐데요.”

원작 속 비올라는 공작을 향해 무지막지한 살기를 내뿜는다.

그러고서는 여주답게 큰 사고를 쳐버린다.

「“내가 당신보다 강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베어버렸을 거 야」

주인공이라서 다행이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아마 큰일이 났을 거다.

비올라는 조금 다르게 가보기로 했다.

좀 더 한아린에게 맞게.

“저를 위한 선물이라. 그것참 고맙네요.”

총집사 칼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칼튼은 허리와 무릎을 굽혀 비올라와 높이를 맞춰주었다.

“공녀님께서 어떤 색깔의 영약을 드실까요?”

칼튼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올라는 안다.

총집사 칼튼은 과거 아주 유명한 살수 출신이다.

헤론 공작을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그 수하가 되어버린 인물.

지금은 헤론 공작의 가장 믿음직한 충신이다.

비올라는 저만치 멀리 앉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

헤론 공작을 향해 말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다.

“저를 7공녀라 호명했던 그 시점부터. 이곳은 환영 만찬이 아니라 비올라 벨라투의 자격을 시험하는 장소였죠.”

원작 속 비올라는 이곳을 뒤엎었다. 말하자면 큰 사고를 쳐버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아린은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일부러 피식 웃었다.

“비올라 벨라투에게서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알 것 같네요.”

비올라는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병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땅으로 떨어뜨렸다.

쨍그랑!

커다란 소리와 함께 포션 병이 깨졌다.

원작 속 비올라는 전부 부싶지만 한아린 비올라는 하나만 깨뜨렸다.

“이런 모습을 원하나요?”

붉은색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몇 방울이 비올라의 발에 튀었다.

아, 앗 뜨뜨! 앗, 뜨거워!

어우씨. 발 다 타는 줄 알았네.

비올라는 가까스로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벨라투의 성을 가진 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사벨라 공작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조언이네요. 누가 그랬죠?”

“제 집사가요.”

“좋은 집사를 두었군요.”

제논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은 채 비올라 옆에 꿇어앉아 깨진 포션 조각과 포션을 닦아냈다.

얼굴을 숙이고 유리 파편을 치우고 있는데,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품 안에서 연고를 하나 꺼내 비올라의 정강이에 살짝 발라주었다.

연고를 발라주는 손길이 굉장히 섬세했다.

비올라가 보라색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 들어 올렸다.

“그런데 왠지 이거. 그리운 냄새가 나네요. 마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요.”

비올라는 발견할 수 있었다.

헤론 공작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

비올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보라색 포션이 헤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내 ‘라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 열어볼까요?”

이 약육강식의 야생에서 살아남기위하여, 비올라는 도박수를 던지기로 했다.

***

「헤론 공작이 그토록 차갑고 기계적으로 변해갔던 것은, 15년 전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나서부터였다.」

헤론 공작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15년 전에 사망했다.

작중에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헤론 공작은 푸른 달빛이 서린 서재에 앉아 그녀의 이름을 홀로 중얼거리곤 했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엘.」

그녀는 매우 뛰어난 연금술사이자 포션 제작자였다.

차(茶)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물의 마술사라고도 불렸다.

「그녀가 숨을 거두던 날. 라엘은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외로운 내 사람.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그녀는 병에 걸려 죽었다. 희귀병에 걸렸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보라색 포션 ‘비올라’를 만들었다.」

등장인물 ‘비올라’의 이름은 이 포션에서 따왔다.

그녀가 숨을 거두기 직전. 포션’비올라’를 공작에게 건넸다.

「“이걸 마시면 당신도 죽어요.”

“외로운 내 사람. 나와 함께 따스한 곳으로 떠나요.”

“같이 죽으면 덜 아파.”

아내인 라엘을 너무나 사랑했었던 헤론 공작은 그 독약을 마시고 자살할 뻔했다.

그걸 막은 사람이 저기 저 총집사칼튼이다.

‘아무튼 제정신인 사람이 없는 세계관이야.’

같이 자살하자며 남편에게 독약을 건네는 여자나, 그걸 또 받아들이는 남편이나.

심지어 그 남편은 독약의 이름을 따서 입양 딸의 이름을 지었다.

뭐 하나 정상인 게 없는 것 같다.

제정신이 없는 세계관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실해졌다.

헤론 공작이 물었다.

“뭐 하는 거지?”

“독약인 거 아는데요.”

유리병을 흔들어봤다.

포도 주스 같은 액체가 찰랑거렸다.

“이거는 왠지 먹어보고 싶어요.”

제논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공녀님? 그건 다섯 가지 포션 중에서도 가장 극독인데요.”

“그러니까.”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물론 속으로는 죽을 것 같았다.

도박수를 던지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이게 나를 불러. 마치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담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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