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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28화 (28/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28화제논이 밝은 얼굴로 황당한 소식을 전해왔다.

“사표를 냈어요, 공녀님.”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저는 집사가 아닐 예정이랍니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 손에는 얼음을 동동 띄운 딸기 에이드를 들고 있었다.

“제가 당신의 좋은 어른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 힉슨 경보다 더 좋은 어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비올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소설 〈벨라투의 그림자> 속에서 비올라와 제논은 후반부까지 호흡을 맞추는 동료다.

갑자기 사표라니?

너무 거대한 요소가 바뀌어 버리는데?

‘사표는 무슨 사표야!’

머리가 많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일단 딸기 에이드는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제논의 사표 수리는 거부되었다.

총집사 칼튼 선에서 정리되었다.

‘의무 기간인 7년을 채우지 않았네.’

‘그래도 사표를 내고 싶다면 계약서대로 이행하게.’

‘위약금은 100억 달리아네.’

의자에 앉은 비올라는 황당해서 웃고 말았다.

‘100억 달리아?’

달리아는 한국의 원과 비슷한 단위였다.

그러니까 100억 달리아는 한국 돈 100억 원과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계약을 했단 말이야?’

소설 속에는 계약의 세부 사항까지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처음 알았다.

이유를 들어보니,

‘사표를 낼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계약 해지에 대한 내용은 보지 않았어요.

‘그 외의 조건이 너무 좋았거든요.’

라고 했다.

비올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지면 안 돼.’

소설을 뒤틀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변수를 많이 만들면 안 된다.

까딱 잘못하면 목이 댕겅! 날아가는 세상이다.

조심스레 조금씩, 야금야금 바꿔가야 한다.

제논이 방 안에 들어왔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딸기 에이드가 들려 있었다.

“아쉽게 됐네요.”

“그러게.”

퍽이나 아쉽겠다!

소설에도 직접 언급된다.

제논만큼 유능한 집사는 거의 없다고.

‘저 유능한 집사가, 진짜로 계약서를 안 봤을 리 없잖아.’

계약 내용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표를 내는 초강수를 둔 것 같았다.

총집사가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을 거고, 수리해 준다 하더라도 위약금을 낼 수 없을 테니까.

티 나지 않게 시험하랬더니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시험하는 것 같았다.

‘역시 뛰어난 캐릭터야.”

계략에 또 넘어갈 뻔했어.

정신을 차리자.

제논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쟤는 연기를 왜 저렇게 잘하는 거야?’

그리고,

‘딸기 에이드는 장인이라고 해도 되겠네.’

비올라가 빨대를 쪽쪽 빨았다.

딸기 에이드는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딸기 에이드는 21세기 지구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입맛까지 어려지는 바람에, 제논이 만들어주는 딸기 에이드는 감동 그 자체였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넌 집사에서 해방될 수 없어.”

“그럴 것 같네요.”

“그러니 유능한 집사로서 내 옆에 있어.”

“물론입니다.”

제논이 품 안에서 수첩을 하나 꺼냈다.

“그런데 보고드릴 것이 하나 있는데요.”

“보고?”

“그게….”

제논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말하기가 조금 애매한 듯했다.

“괜찮으니 말해봐.”

“공녀님의 개 말인데요.”

“툰드라?”

“네. 매일같이 죽도록 얻어맞는데도 성미를 못 죽였다고 합니다. 저 러다 죽을 것 같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요.”

“죽이지는 않을 거야.”

“제가 옆에서 봤는데, 정말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더라고요.”

제논도 조금 걱정되는 듯했다.

겨울 성 내에서의 살인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아무리 힉슨이라고 해도, 겨울 성내에서 살인하면 참수당한다.

“아냐. 안 죽여. 죽기 직전까지만 때릴 거야.”

소설에서도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었다.

저 구타를 통해 툰드라는 훌륭하게 성장할 거다.

소설로 봐서 전부 아는 내용이었다. 비올라는 여유로웠다.

제논의 눈이 가늘어졌다.

“힉슨 경을 완전히 믿으시는군요?”

“믿어. 내 개를 죽이지는 않겠지.

내 건데.”

“그렇겠네요.”

제논이 보기에 비올라는 힉슨을 완벽하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논은 순간, 자기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제게 감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의 이름은.

‘말로만 듣던 질투입니까?’

왜 힉슨만 그토록 믿고 계신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영웅이기는 하나, 3년간 폐인처럼 지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힉슨만 그렇게 신뢰해 준단 말인가.

‘제가, 힉슨 경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습니까?’

제논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비올라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 너는 집사로서 내 옆에 있어.

비올라 벨라투가 원하는 건 유능한 집사로서의 제논이었다.

그렇다면 집사 제논이 되어주면 된다.

마음을 다잡았다.

비올라 벨라투는 지극히 벨라투스러운 벨라투.

벨라투가 원하는 집사가 되어야 했다.

질투는 집사로서 전혀 필요 없는 감정이다.

스스로 그 감정을 도려내기로 작정했다.

“그래도 한번, 연무장에 들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왜?”

“힉슨 경이, 공녀님의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인지.

뭔가 일러바치는 기분인데.

힉슨을 약간 싫어하는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기분 탓이겠지?

최근 좀 이상하게 굴기는 했지만 그건 시험이 분명했고,

‘제논은 감정이 거의 없는 캐릭터니까.’

아마 기분 탓이겠지.

비올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

결국 비올라는 승낙했다.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툰드라가 어떻게 수련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럭무럭 잘 크고 있을지.

실제로 맞는 걸 보면 속상할 거 같은데.’

강한준의 얼굴을 하고 있는 툰드라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이윽고 연무장에 도착했다.

비올라는 황당한 시선으로 연무장안을 살펴봤다.

‘엥? 왜?’

비첸과 툰드라가 무지막지한 살기를 내뿜으며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황당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뾰족뾰족한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끝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피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또 살벌해? 무슨 일이지?’

한쪽 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있던 힉슨이 가까이 다가왔다.

“어. 왔냐?”

“쟤네 왜 싸워?”

“대련이야, 대련.”

“저게 대련이라고?”

저렇게 무지막지한 살기가 느껴지 는데?

“어어. 대련이야. 신경 꺼도 돼.”

힉슨이 쿡쿡대며 웃다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봐라. 살 빠졌지? 좀 멋있어졌냐?”

저기서는 살벌한 칼춤이 벌어지고 있는데 힉슨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괜찮……… 겠지?’

일단 힉슨은 정신 차린 상태다. 믿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좀 멋있어졌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아저씨. 미안한데 나 어제 환영만찬회 갔다 왔어.”

“뭔 소리야?”

“아저씨한테는 불행하게도 거기 우리 아빠 있었어.”

헤론 공작과 비교하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오징어가 되어버린다.

최애라는 콩깍지가 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사실이기도 했다.

헤론 공작의 미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위 사람을 못난이로 만드는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

“아빠랑 비교하면 아저씨 오징어야.”

“처음 듣는 신박한 표현인데 신기하리만치 기분이 나쁘군. 찰떡같이 이해되는 것이 아주 별로야.”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말이야.”

힉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또 다른 부분을 짚었다.

“우리 아빠라고 했냐?”

“응. 헤론 벨라투 공작님.”

“언제부터 ‘우리 아빠야? 그렇게 많이 친해졌냐?”

“아빠가 친해질 수 있는 타입의 사람이야?”

“역시 그렇지?”

“응.”

“안 친하지?”

“친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그럼, 그럼. 친해지기 까다로운 녀석이기는 해.”

힉슨은 어딘가 만족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근데, 쟤네 왜 싸우고 있냐니까?”

“대련이라니까?”

비첸과 툰드라가 대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련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살기등등했다.

비첸은 나무로 만든 단검을, 툰드라는 장검을 들고 있었다.

만약 저 무기들이 나무가 아니었다.

면 둘 중 하나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힉슨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장난스레 물었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 거 같냐?”

“질문을 똑바로 해줘.”

“뭔 말이야?”

“평소의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는 거야, 아니면 지금 저 상황에서 누가 이기겠냐는 거야?”

힉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 꼬맹이 봐라?’

범상치 않은 여자애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핵심 포인트를 이렇게 콕짚어낼 줄은 몰랐다.

지금 저 상황.

1. 그러니까 공간이 모두 뚫려 있고,

2. 상대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3. 생명에 지장이 없는 나무칼로 대련을 펼치고 있는 상황.

그리고,

4. 툰드라가 검술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이 상황을 뜻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달라지면, 결과도 다르게 나올 거다.

비올라는 그걸 짚었다.

한아린은 소설 독자로서 봤던 내용을 읊어주었다.

“오늘은 비첸이 이기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비첸이 더 세니까.”

남주 툰드라는 엄청난 자질과 재능을 타고났다.

소설에서 말하는 천재다.

그렇다고 비첸이 재능적으로, 툰드라에 비해 크게 뒤처지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비첸은 태어나면서부터 훈련받았어. 벨라투 순혈이기도 하고, 지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럼 왜 ‘지금 저 상황’이라고 콕짚은 거야?”

어느새 힉슨의 표정에서 장난기가다 사라졌다.

비올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야 비첸과 툰드라의 검술이 서로 다르니까.”

힉슨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지금 공작저에 ‘입양된 막내딸의 통찰력’에 관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다른 능력보다도 통찰력이 가장 뛰어난 아이라는 소문이었다.

“어떻게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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