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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32화 (32/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32화마치 헤라가 자신의 본모습 한아린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서운 뱀의 눈동자가 온몸을 훑는 것 같았다.

“폭발 직전의 광기를 숨기기가 많이 힘들겠어.”

“…응?

“사실은 더 날뛰고 싶잖아.”

내가?

“더 흉폭하게 칼춤을 추고, 독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

“………..”

어, 잠깐만.

내가요?

비올라의 침묵을, 헤라는 다르게 생각했다.

암묵적 동의라고 생각했다.

“용케 잘 참고 있네.”

“하긴. 지나치게 피를 탐하는 자는 벨라투가 아니라 그저 살인귀일 뿐이지.”

벨라투와 살인귀는 다르다.

살인귀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지만, 벨라투는 지배자다.

지배자는 지배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 면에 있어서 비올라는 합격이었다.

광기를 제어하며 지배자답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제어할 수 없는 광기는 파멸로 이끌지만, 제어 가능한 광기는 진정한 벨라투의 필수 덕목이다.

“제논이 이렇게 보고했다지? 광기를 제어할 이성 또한 갖추고 있다라고.”

“어떻게 알았어?”

“그 내용을 집사들끼리 공유했거든.”

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논이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준 게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어.”

“나를 직접 본 지금, 언니 생각은 어떤데?”

“정확한 점수였네.”

헤라의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나도 비올라, 네가 마음에 들었어.”

비올라는 약간 당황했다.

생각보다 급전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헤라가 손을 뻗어 비올라의 볼을 어루만졌다.

“얼굴도 내 취향이고.”

이쯤 되니 오히려 황당한 사람은 비올라였다.

‘아니. 이거 아니야.’

정신 차려야 했다.

지금 주도권이 헤라에게 넘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헤라는 영리하다.

이쪽을 완전히 인정하는 척하면서 시험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헤라는 절대자를 원해.’

헤라는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절대자를 원했다.

어차피 진짜 절대자는 첫째 언니와 둘째 오빠가 알아서 할 거다.

그건 그들의 몫이다.

지금은 그냥 절대자 ‘같은 모습만 보여주면 되었다.

비올라가 헤라의 손을 탁! 쳐냈다.

그러고서 헤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내 예쁜 언니.”

비올라의 살벌한 눈빛이 헤라의 눈을 향했다.

헤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는 저 손이, 언제든 자신의 목을 파고들 것 같은 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물론 비올라가 거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원작 속 비올라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서 흉내만 냈다.

그런 공포감을 주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비올라가 말했다.

“선 넘지 마.”

“내가 언니를 선택하는 거야.”

그 어감에 살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비올라의 본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살기였다.

헤라가 움찔 놀랐다.

그녀는 몸이 많이 불편했지만, 살기를 느끼는 기감은 타고났다.

‘이 어마어마한 살기는 뭐지?’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대한 마나가 느껴져.’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다만, 살기를 내뿜는 주체인 비올라는 자신의 살기와 마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언니가 날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알아들어?”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

헤라가 고개를 한 번 살짝 끄덕였다.

비올라를 힐끗 올려다봤다.

비올라의 모습은, 헤라가 평소 동경하던 모습이었다.

힘과 지략을 동시에 갖췄고, 그 누구에게도 위축되지 않는 모습.

절대자에 합당한 태도와 자세.

그러한 태도와 자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타고난 재능.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감출 수 있는 음흉함과 계략까지.’

비올라에게서 그 모든 것이 느껴졌다.

헤라는 가슴이 갑갑했다.

‘숨쉬기가 힘들어.’

이것이 비올라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존재감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비올라는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한편, 비올라는 남몰래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원작 속 비올라 흉내 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좀 어색하지 않았으려

‘오늘….

나?’

오늘 연기는 좀 어색했던 거 같기도 한데.

약간의 걱정을 뒤로하고서 싱긋 웃었다.

“우린 좋은 자매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헤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너는 확실히 첫째 언니나 둘째 오빠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해. 아직은 말이야.”

아직 너무 어리다.

입지 기반도 없다시피 하다.

외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이미 첫째와 둘째와는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겨우 일곱 살이잖아.’

첫째와 둘째도 일곱 살일 때에 이정도는 아니었다. 그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했다.

‘살기만으로 숨을 못 쉬게 만들 정도라니.’

제대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그런데 비올라가 한마디를 더했다.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주면 좋겠어.”

헤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저 말. 저 말은 따뜻했다.

따뜻함을 보이고 있으나 비굴하지는 않았다.

애정에 목말라 있지도 않고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뭐라고?”

“좋은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부자 언니. 내가 진짜 잘해줄게.

우리. 친하게 지내자!

“따뜻하네. 비올라.”

비올라가 방심하지 않았듯, 헤라도 방심하지 않았다.

똑똑한 헤라는 헤라만의 방식으로 비올라의 따스함을 해석해 냈다.

‘따뜻한 말투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는 거겠지.’

벨라투에게 있어 좋은 ‘가족’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족’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벨라투의 ‘좋은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장점을 취해 이득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존재가 좋은 가족이다.

비올라의 말은 그걸 암시하고 있었다.

‘그 따뜻함이 마음에 들어.’

헤라가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비올라는 저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길하다고 느꼈다.

다음 날.

헤라가 다시 찾아왔다.

“나와 잠깐 갈 곳이 있는데, 괜찮겠어?”

“갈 곳?”

헤라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응. 우리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어서.”

***

소설 속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

영리한 토끼는 헤라를 뜻하는 말이었다.

헤라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일찍부터 체감했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대비책을 미리 마련해 놨다.

「계절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는 ‘테라 상단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4공녀 헤라는 겨울 성에서는 흔한 얼음이 남쪽 지방에서는 귀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다.

「얼음을 녹지 않은 상태로 운송하기 위하여 마법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4공녀 헤라는 마법사를 동원하여 테라 상단을 만들었다.

그녀가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비올라는 원작 내용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헤라가 함께 가자고 한 곳이 ‘테라 상단’ 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었다.

‘너와 나.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어서.’

‘비밀?’

‘집사에게도 비밀이야. 나는 너와 단둘이 그곳을 가고 싶어. 내가 비밀스럽게 가꾸고 있는 내 전력을 보여줄게.’

‘집사도 모른다고?’

‘응. 비밀이야. 몰래 키우고 있는 상단이야.’

‘아버지는?’

‘아버지도 모르셔.’

‘왜 비밀로 했는데?’

‘보이지 않는 칼이, 보이는 칼보다 무서우니까.’

원래 비올라와 헤라는 친해지지 않는다.

원작에 이런 내용은 없었다.

한아린은 원작의 도움 없이, 한아린 스스로 이 상황을 풀어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게 문제였다.

‘집사에게 비밀일 리 없잖아.”

집사가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겨울 성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버지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모른다고 얘기했다.

‘아버지가 모른다고? 겨울 성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네.’

그러면 이건 비올라 자신에 대한 시험이려나.

무슨 시험이지.

혹시라도 계략인가.

음험한 계략이라는 생각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뒤통수가 일상인 세계니까.’

비올라도 비올라 나름대로 대비하기로 했다.

*

헤라가 남긴 쪽지를 살펴보았다.

[오후 3시 18분. 나는 서쪽 문으로 나갈 거야.

비올라 너는 40분 후에 남쪽 문으로 나와. 계절 교차로에서 만나자.

꼭 혼자 와야 해.]

비올라는 혼자서 공작저를 벗어났다.

그 누구도 일곱 살짜리 영애가 혼자서 움직이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나를 혼자 내보낸다고?’

집사도 없는데.

‘헤라가 미리 손을 써놓았나 보네.”

아마 문지기들을 미리 구워삶아 놓은 것 같았다.

작중 헤라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었다.

‘가볼까.’

걸음을 옮겼다.

계절 교차로,

겨울 성 내에서 세 번째로 큰 교차로였다.

사람과 물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대로를 따라 수많은 건물이 솟아 있는 번화가였다.

다만, 이 번화가 뒤로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골목들이 얽혀 있었다.

대로는 화려하지만 바로 옆 이면 도로는 낙후된 곳.

겨울 성의 빈부 격차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계절교차로였다.

‘지도를 보면…….’

이쪽인 것 같았다.

지도를 따라 걸었다.

‘왼쪽으로 갔다가.’

저만치 앞.

허름한 술집이 하나 보였다.

[달밤.]

아직 낮이라 영업은 안 하는 것 같았다.

‘달밤을 등지고 걸어갔다가, 오른쪽 두 번째 골목.

여기를 지나면 2층짜리 작은 건물이 나온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이 없네?’

막힌 곳이었다.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건물 대신 벽이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끼익—

달밤의 나무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복면을 쓴 사람들이 네 명 걸어 나왔다. 손에는 살벌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복면을 쓴 남자가 말했다.

“이 좁고 허름한 골목에, 귀한 영애께서 어쩐 일로?”

“혼자 왔다가 길을 잃으셨나 봐.”

한 남자는 커다란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찰스 말이 맞지? 여기서 기다리면 얼빠진 영애 한두 명쯤은 얻을 수 있다고.”

“그러게나 말이야. 이틀 만에 큰 수확인걸?”

네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마치 부모님 원수라도 만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값나가는 것들뿐이군.”

“뿐이겠습니까? 귀족 영애 아닙니까?”

마치 들으라는 듯 쑥덕거렸다.

“그렇지. 보호자가 없는 귀족 영애는 아주 비싼 보물이야.”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노예 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노예는 몰락 귀족의 자녀들이었다.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 성 치안이 워낙 좋으니.”

“경비대 놈들이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납치해서 남쪽으로 가죠.”

네 남자가 비올라를 둘러쌌다.

그때,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복면 여러분.”

한아린은 이 소설의 독자였다.

헤라에 대해서 헤라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비올라가 치맛단을 붙잡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제 이름은 비올라 벨라투라고 해요.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어요.”

한아린은 한아린 방식대로 소설을 풀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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