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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35화 (35/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35화

“용돈 핑계 삼아, 아버지가 보고 싶기도 했고요.”

헤론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작중 설정된 ‘진안’이 비올라의 속마음과 진심을 간파했다.

‘진심이다?’

비올라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진심이었다.

사실 틀린 관찰은 아니었다.

최애캐를 보고 싶어 했던 아린의 덕심은 진짜였으니까.

또, 이유는 없지만 진심 어린 호감이군.’

헤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인 자신을 보고 싶었다라.

‘전혀 달갑지 않군.

헤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어째서?”

“잘생겼잖아요.”

칼튼은 속으로 기함했다.

최근 15년간, 저런 말은 처음 들었다.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떨어뜨릴 뻔했다.

공작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가 필요하지?”

“1억 달리아요.”

일반적인 서민들의 평균 월 급여가 300만 달리아 정도 된다.

서민들이 한 푼도 안 쓰고 3년 내내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다만, 이곳은 공작가였다.

“제가 열두 살이 되면 원래 받을 수 있는 돈이잖아요.”

후계자 후보들은 열두 살이 되면 1억 달리아를 받는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는 후보자들의 마음이다.

그걸 미리 가불해 달라는 얘기였다.

공작가에서는 한 번밖에 없던 요구였다.

그나마 한 번 있었던 것이 헤라였었는데, 헤라는 해당 1억 달리아를 어떻게 투자하여 불릴지를 상세하게 보고했었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무엇을 할 생각이지?”

“돈을 벌 생각이에요.”

“레버리지를 이용하겠다?”

자산 투자로부터의 수익 증대를 위해 차입 자본(부채)을 끌어다가 자산 매입에 나서는 투자 전략을 총칭하는 말이다.

아마도 이 어린 딸은 레버리지의 개념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헤라 언니에게 힘을 실어주려고요.”

헤라를 내 편으로 만든 뒤 1공녀인 메데이아 라인을 탄다.

해피 엔딩으로 향하는 하이 패스다.

“왜?”

“능력 있는 우군을 만드는 것 역시, 벨라투다운 일 아닌가요? 어차피 헤라 언니는 후계자가 될 수 없으니 내 편으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어요.”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물론 공짜로 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너는 무엇을 제시할 테냐?”

“곧 4월이 다가오잖아요. 마물 멧돼지 무리가 기승을 부릴 때죠. 메이플 마을이 늘 큰 피해를 입는다고 들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구나.”

“네. 안 그러면 목 잘릴 거 같아서요.”

공작이 저도 모르게 끓, 웃었다.

당당하고 뻔뻔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복숭앗빛 뺨이 또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마물 멧돼지 문제를 제가 해결할 게요. 그럼 능력 증명이 되는 건가요?”

“자신 있느냐?”

“네.”

“나의 시간은 귀하다.”

“알아요.”

비올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실패하면 제 목을 내놓을게요.”

칼튼이 다시 한번 크흠, 헛기침을 했다.

비올라 공녀가 조금 지나친 것 같았다. 목을 내놓는다니.

칼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녀님. 그런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만에 하나 실패하면?

공작은 정말로 비올라를 죽일 것이다.

딸을 입양한 뒤 얼마 되지도 않아 참수해 버린다면, 세간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 것이다.

겨울 성과 헤론 공작의 위신에 금이 간다.

공작이 말했다.

“재미있군.”

“기브 앤 테이크. 좋아하시죠?”

비올라는 거침이 없었다.

이게 아린이 파악한 공작 맞춤형 대화법이었다.

비올라가 손을 내밀었다.

“돈 먼저 주세요. 제가 더 중한 것을 걸었으니.”

저는 목숨을 걸었으니, 아버지는 돈을 먼저 주세요.

그런 의미였다.

공작은 비올라가 내민 손을 보았다.

손이 고사리처럼 작고 앙증맞았다.

저 앙증맞은 손바닥으로 1억 달리 아를 용돈으로 내놓으란다.

“1억 달리아라고 했느냐?”

“네.”

“2억 달리아를 주지.”

공작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

공작은 서류에 서명하다 말고 멈추었다.

‘용돈 핑계 삼아, 아버지가 보고 싶기도 했고요.

레버리지의 개념을 가져와 헤라에게 투자하겠단다.

헤론 공작은 비올라의 선택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부채는 또 다른 자산이 되어주니까.

헤론의 이성은 그런 부분을 직시했다.

‘그런데…….’

원래는 그런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사리 같던 손이 떠올랐다.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 앙큼한 손만 떠오르는가.

‘그 손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아주 작았지.’

꼭 쥐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마치 바싹 마른 낙엽처럼.

‘이상하군.

자꾸만 그 복숭앗빛 뺨이 떠오르고, 에그타르트를 집어 먹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랬다가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왜 이렇게 물러지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물렀다.

아마도 라엘의 그 뻔뻔하고 당당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말했다.

“비올라를 지켜보거라.”

“알겠습니다.”

“만약 나를 기망한 것이라면.”

헤론 벨라투가 벨라투답게, 겨울 성의 주인답게 말했다.

“열 살이 되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더 이상 논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입양딸 본연의 목적.

순혈들을 자극시키기 위한 제물로서 소비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공작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이 좋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고,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저만치 아래.

비올라가 짧은 다리로 총총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발걸음이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용돈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했다.

자신이 물러진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잘 해내야 할 것이다.

공작의 눈이 섬뜩한 살기를 품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이 무사하지 못할테니.

굳이 애써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는 여전히 입덕을 부정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겨울 성에도 봄이 찾아왔고, 비올라는 열 살이 되었다.

***

겨울 성의 열 살.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열 살부터는 겨울 성의 절대 법칙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겨울 성 밖에서 피습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제일 신난 사람은 5공자 비첸이었다.

꽝!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비올라! 임무 다녀왔어!”

열한 살이 된 비첸은 어느새 키가 훌쩍 컸다.

비첸은 지난 5개월간 외부에서의 임무를 맡아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왔다.

“임무를 끝내자마자 여기로 온 거야?”

“응!”

해맑게 대답하지 말아주라.

“아버지께 보고는 올렸어?”

“이제 하려고.”

거짓말하지 마.

뜨끔 하는 거 다 보였어.

“집사한테 떠넘길 생각이었지?”

“아, 아냐, 그런 거.”

비첸이 코를 슥-문지르며 헤헤웃었다.

지난 3년간 비첸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원작 속 비첸에 비해 많이 유해졌다.

적어도 비올라에 한해서는 말이다.

비올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빠.”

“왜?”

“여전히 나를 짓눌러버리고 후계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비첸이 움찔, 몸을 떨었다.

“무, 물론이지.”

“나는 이제 열 살이 되었고, 오빠도 합법적으로 나와 후계 경쟁을 할 수 있어.”

“헤헤.”

“그러려면 오빠가 5공자로서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해 주면 좋겠어.”

비올라에게 있어 비첸은 든든한 우군이어야 했다.

우군으로서 제대로 성장해 줘야 했다.

“나는 오빠가 벨라투의 5공자답게 굴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오빠를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비첸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니까 오빠. 얼른 가서 보고부터 드리고 와.”

“알았어! 갔다 올게!”

비첸이 또 문을 꽝! 닫았다.

21세 아린이 보기에는 여전히 철부지 어린애 같았다.

옆에 서 있던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비첸 공자님은 비올라 공녀님이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 같네요.”

“제논이 보기에도 그래?”

“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눈에 살기가 많이 사라지셨어요.”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네. 비올라 공녀님을 향한 호기심은 그대로인 것 같고, 이성과 감성에 괴리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이성은 ‘비올라와 생사 결전을 치러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감성은 ‘비올라와 안 싸우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공녀님께서 의도하신 건가요?”

“글쎄.”

비올라는 대답을 흐렸다.

의도한 게 맞다. 지난 3년간 열심히 노력했고 덕분에 생각한 대로, 혹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비첸이 장기 임무에서 돌아왔다.

이제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질 차례다.

‘5월 12일.’

겨울 성은 봄, 여름, 가을이 굉장히 짧다.

짧은 시간 동안 드라마틱하게 계절이 변한다.

5월 한 달을 봄으로 치고, 6월 한 달을 여름으로 치며, 7월 한 달을 가을로 친다.

다음 에피소드는 ‘봄의 정원’이었다.

살인귀 꿈나무로 무럭무럭 자라 열살이 된 비올라와 천살 공작 헤론의 비밀스러운 만남.

여기서 비올라는 자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비올라는 진정한 비올라 벨라투로 거듭나며, 후계 자로서 성장할 것을 공고히 선포하게 된다.

원작 속 비올라는 이렇게 말하며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 “아버지가 천살 공작이니, 저는 만살공녀면 되겠지요.”」

5월 12일이 되었다.

5월이 되면, 공작은 공작저 내에 있는 해당화 정원에서 30분씩 산책을 하며 명상을 하곤 했다.

이곳은 그가 사랑했던 라엘과 함께 거닐던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비올라와 벨라투가 만났다.

“일부러 찾아온 건가?”

“네.”

“어째서?”

원작 속 비올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저는 3년 전 오늘을 기억해요.”

“3년 전 오늘?”

3년 전 오늘.

비올라가 공작에게 당당히 1억 달리아를 요구하던 날이었다.

“그날. 아버지께서 총집사에게 뭐라고 했을지,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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