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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36화 (36/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36화 3년 전.

공작은 이렇게 말

했었다.

‘열 살이 되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더 이상 논하지 않도록 한다.

3년이 지난 지금.

비올라가 말했다.

“열 살이 되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제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라거나 쫓아내라는 명령이었겠죠?”

“정확히 봤구나.”

“그럼 3년이 흐른 지금. 그 명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나?”

헤론 벨라투는 이 대화가 굉장히 성가시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저는 그때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곡창 지대인 메이플 마을을 멧돼지로부터 지켜주겠다고요.”

“너는 그 약속을 훌륭히 이행했지.”

“그 방법이 굉장히 특이했었는데, 아버지는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어요?”

헤론 벨라투의 방식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멧돼지 무리를 쫓아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생을 선택했다.

멧돼지 무리가 창궐하게 된 것은 야산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비올라가 건드린 부분은 그것이었다.

“저는 특수한 환경에서 붉은 입 지렁이와 이빨 두더지의 교배종을 만들어냈고, 그 교배종은 야산들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어요.”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았을 뿐, 헤론 벨라투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토약이 비옥해지면서 멧돼지들의 먹이도 풍부해졌고, 더 이상 인가로 내려오지 않아도 되었고요.”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염려했다.

멧돼지의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결국에 또다시 마을을 침범하지 않을까.

간혹 마물로 변이된 멧돼지도 나타나면서 그 불안감은 극에 달했었다.

“그 이후, 칸트 산맥의 중간 포식 자인 눈꽃 표범이 서식지를 이동하면서 생태계는 밸런스를 맞춰갔어요.”

“네 공적을 치하하고 싶은 게냐?”

“아뇨.”

비올라는 쪼그리고 앉았다.

만개한 해당화가 보였다.

얼핏 보면 무궁화와 비슷하게 생긴 그 꽃은 분홍색과 보라색 그 중간쯤의 오묘한 색깔로 이 정원을 뒤덮고 있었다.

노란 꽃술 사이로 벌들이 열심히 날아다니고 있었고.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꽃잎과 초록 줄기들은 마치 잔잔한 물결 같기도 했다.

‘예쁘다.’

소설 속 묘사로만 봤을 때와 직접 볼 때는 많이 달랐다.

소설 속 묘사는 실제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바람결에 비올라의 머리카락도 함께 나부꼈다.

헤론 벨라투는 물끄러미 비올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그림이 담긴 액자 속 풍경 같았다.

평소와는 아주 많이 다른, 따뜻한 눈망울로 꽃밭을 바라보던 비올라가 말했다.

“사실 제가 해낸 건 대단한 거잖아요. 일부 학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빨 지렁이’의 기원을 찾고 있다.

고 들었어요. 우연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건 저는 생명 합성 마도공학에 한 획을 그었잖아요.”

헤론이 인상을 찡그렸다.

“서론이 길구나.”

“그런데 왜 아버지는 그걸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으셨을까요?”

“벨라투로서의 업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비올라는 헤론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비올라는 ‘검은 벨라투’가 될 아이다.

벨라투가는 크게 두 가지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무력을 담당하는 검은 벨라투.

지략을 담당하는 하얀 벨라투.

3년 전 비올라가 달성했던 일은 검은 벨라투보다 하얀 벨라투에 가까운 일이었다.

생명 마도공학을 이용하여 키메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하여 자연 생태계를 복원해 냈다.

멧돼지를 말살시키는 대신 더 좋은 방법으로 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런데 헤론은 그 사실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가 검은 벨라투가 되길 원하시죠?”

“내가 널 입양한 이유를 기억하느냐?”

“네. 제 재능 때문이잖아요.”

살인에 대한 재능.

그것 때문에 비올라를 입양하여 비올라 벨라투로 만들었다.

비올라가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아빠.”

비올라의 말투는 늘 묘했다.

예의를 갖춰 늘 아버지라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헤론은 아빠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올라의 말투는 자연스러웠고 거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빠라는 그 호칭이 좋게 다가올 정도였다.

다른 자식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이었다.

“아빠가 제 재능을 알아봐 주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그 재능보다, 하얀 벨라투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면요?”

“비올라. 네 검은 벨라투로서의 재능은 메데이아에 비견될 정도다.”

헤론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했다.

“내가 너를 데려왔을 때, 너는 내 친자식들의 영양분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너를 보며 자극받기를 바랐지.”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적이네요.”

사실 충격적이지 않았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빙의한 게 충격이지, 저런 아버지에게 입양된 게 충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검은 벨라투로 성장하길 원한다.”

“하얀 벨라투로서의 재능이 훨씬 뛰어난데도요?”

“너는 입양 첫날부터 검은 벨라투로서의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제논, 비첸과의 만남.

힉슨, 툰드라와의 인연에 이어 환영 만찬회에서의 모습까지.

“만약 제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하얀 벨라투로 진로를 잡고 싶다면요?”

하얀 벨라투는 벨라투가의 지략을 담당한다.

지략과 더불어 내부의 상황들. 이를테면 금전과 관련된 부서 등을 총 괄하게 된다.

검은 벨라투가 대외적인 일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하얀 벨라투는 대내적인 일들을 모두 처리한다.

얼핏 보면 둘 다 중요해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얀 벨라투는 적통이라 하기 어렵다. 잘 알고 있겠지?”

벨라투는 철혈의 공작가로서, 지략보다는 무력이 더 중요한 가문이다.

자원해서 하얀 벨라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거나, 자신의 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그때 하얀 벨라투의 자리를 받아들 이게 된다.

그들은 가문 내 실권을 가지기는 하지만, 평생을 검은 벨라투의 무시와 괄시 속에 살아가게 되는 비운의 조연들이다.

대신 그들에게는 특혜 아닌 특혜도 지원된다.

‘형제들과의 살육 경쟁을 피할 수 있어.’

검은 벨라투는 형제들 간 피 튀기는 후계자 경쟁을 해야 한다.

하얀 벨라투는 그런 경쟁이 필요 없다.

형제들에게 무시는 받을지언정, 개죽음당할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개죽음보다는 괄시가 낫지!”

비올라가 계속 말했다.

“제 검은 벨라투로서의 재능과 자질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헤론 벨라투도 부정하지는 못했다.

환영 만찬회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헤론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저는 후계 경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작 속 비올라와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원작 속 비올라는 여기서 검은 벨라투로서의 성장을 명확하게 약속한다.

“뛰어난 장수는 적장의 목을 여럿벨 수 있어요.”

“………..”

“그러나 뛰어난 군사(軍師 군기를 장악하고 군대를 운용하며 군사 작전을 짜는 사람)는 왕과 군대를 함락시키죠.”

“…….”

“내 손과 발이 백 명을 죽인다면, 내 머리와 입이 만 명을 죽일 수 있어요.”

과정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결론은 똑같이 냈다.

「“아버지가 천살 공작이니, 저는 만살공녀면 되겠지요.”

“아버지가 천살 공작이니, 저는 만살 공녀면 되겠지요.”

*****

헤론은 서재로 돌아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저는 만 명을 죽일 수 있지만, 또한 만 명의 내 사람들을 살리겠어요.

말을 하던 비올라는 한 손에 해당화를 들고 있었다.

초록빛 넘실거리는 물결 가운데 홀로 떠 있는 작은 보물섬 같은 느낌이었다.

‘하얀 벨라투라.’

역사상, 열 살이 되자마자 하얀 벨라투를 자원한 사람은 몇 없었다.

그중 한 명이 헤라였고, 또 한 명이 비올라였다.

헤라는 예상했었지만 비올라조차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헤론이 제논을 호출했다.

“제논3년 전. 비올라가 2억 달리 아를 받아 갔던 것을 알고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상세한 보고 자료도 이미 만들어놓았는데. 드릴까요?”

그 당시에는 헤론이 일부러 보고 자료를 받지 않았다.

열 살이 된 이후,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를 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져와.”

제논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보고 자료를 올렸다.

한참이나 보고 자료를 읽던 헤론이 저도 모르게 크흠, 하고 신음성을 내뱉었다.

지난 3년 동안.

비올라가 2억 달리아를 어떻게 썼는지.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모두 적혀 있었다.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모시는 공녀님이어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대단하죠?”

“……비올라를 데려오도록.”

“알겠습니다.”

제논이 비올라의 방을 찾았다.

제논은 비올라의 손이 굉장히 더럽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무엇을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손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닦아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비올라는 제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버지께 나에 관한 보고 올렸어?”

“네. 공작님께서 먼저 하문하시더라고요.”

“그래.”

올 것이 왔다.

지난 3년간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읊어주기로 했다.

그러면 하얀 벨라투가 되는 것에 절대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명분도, 실익도, 모두 가져왔으니까.

공작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제논이 문을 열어주었고, 비올라는 천천히 걸어 공작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공작은 비올라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물었다.

“등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느냐?”

공작은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저것이 암기일 리는 없고, 혹여 암기라 할지라도 저렇게 대놓고 숨겨오는 것은 벨라투로서 실격이다.

비올라가 잠시 머뭇거렸다.

헤론 공작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무엇을 숨기고 있냐고 물었다.”

주변의 공기가 모두 바늘로 변한 것 같았다.

공기 대신 바늘이 살갗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거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화관을 내밀었다.

해당화로 만든 화관이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만들어봤어요.”

공작이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종류의 선물이었다.

그 선물을 입양된 딸에게 받게 될 줄도 몰랐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바늘이 사라졌다.

“제가 실수했나요?”

공작은 한참이나 비올라를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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