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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37화 (37/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37화

“실수지. 그따위 것이 선물이라니.”

“그따위 것이요?”

그따위 것이라니.

이 아버지 말하는 것 좀 보소.

안 되겠어.

화관으로 혼내줘야겠어.

비올라가 화관을 들고 헤론에게 걸어갔다.

은밀한 살수의 움직임도 아니었고, 효율적인 보법을 밟지도 않았다.

그냥 걸어갔다.

딸이 아버지에게 걸어가는 데 만살공녀의 움직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요.”

두 손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흙투성이 손을 보여주며 헤론 앞에 섰다.

의자에 앉은 헤론보다, 서 있는 비올라가 더 작았다.

비올라는 까치발을 들고서 헤론의 머리 위에 화관을 얹었다.

비올라가 까르르 웃으며 손뼉을 쳤다.

“멋있어요.”

역시 내 최애캐야.

저 미모에 화관이라니.

순정 만화에 나올 것만 같네요, 아버지.

해당화 화관과 헤론 벨라투.

둘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고, 그래서 더 잘 어울렸다.

헤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다.

아니.

나쁘지 않다.

기분이 나빠야 한다.

아니.

굳이 그래야 하나.

헤론 벨라투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타입의 자식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헤론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는 이런 곱상한 짓을 하지 않아.”

어머. 판타지 세계스러운 얘기를 하시네, 우리 최애캐 씨.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데요.”

“……”

“무지 예뻐요.”

귀족가의 여식들은 저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에게는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천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올라가 헤헤 웃었다.

“보람 있었다.”

흙투성이가 된 딸의 손을 봤다.

마음이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헤론은 잠자코 손을 들어 올려 화관을 만져보았다.

“웃음이 헤프구나.”

순간.

비올라가 눈에 힘을 줬다.

살기 흉흉한 눈빛을 하고서 헤론을 쳐다봤다.

빙의된 지 어언 3년.

비올라는 살성을 타고난 살인귀 꿈 나무 캐릭터였다.

이 천재적인 몸뚱이 덕택에 이 정도는 가능했다.

비올라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제 평소 모습 아시잖아요.”

평소에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환영 만찬회 이후, 비올라는 철혈공녀라는 이명이 생겼다.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벨라투의 입양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비올라는 열심히 벨라투를 연기했다.

헤론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

비올라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3년 전 에그타르트를 내밀었던 손.

지금은 흙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면서 다시 헤헤 웃었다.

“딱 아빠 앞에서만이에요.”

비올라가 햇살처럼 밝게 웃었다.

“아빠 앞에서만인데. 이런 모습 보이면 안 돼요? 저는 벨라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생활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빠 앞에서는 딸이어도 되잖아요.”

빙의 3년 차.

비올라는 판타지 세계에 완벽히 적응했다.

*

칼튼은 벨라투 공작가의 총집사다.

헤론 벨라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으며 공작 부인을 제외하면 현재까지는 공작가의 이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에게는 특권이 하나 존재했다.

칼튼이 생각하기에 굉장히 귀중한 정보 혹은 급한 정보를 전달할 경우, 노크 없이 공작의 집무실에 들어올 수 있다.

이 방식은 전쟁의 산물이었다.

1초를 다투는 전장에서 노크는 사치였으니까.

그 전통이 여태껏 이어져 왔다.

벌컥.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칼튼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칼튼의 눈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공작… 님?”

공작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이것쯤은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듯.

매우 평온한 표정과 여유로운 태도로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머리에는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해당화로 만든 화관.

헤론은 혹여 망가질세라 화관을 살포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지?”

칼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공작님께서 화관을?’

혹시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벨라투공작가의 위신에 금이 갈 뻔했다.

그 유명한 천살 공작의 머리 위에 화관이라니.

꽃장식이라니!

천살 공작이라 불리는 사내의 머리 위에 화관이라니!

게다가 지금 당황하셨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오랫동안 공작을 모셔온 칼튼은 직감할 수 있었다.

공작은 지금 당황한 상태다.

이해할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칼튼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촌각을 다툴 정도의 긴급한 보고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마침 보고 내용이 비올라와도 관련이 있었다.

“비올라 공녀님과도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보고 올릴까요?”

헤론이 비올라에게 물었다.

“하얀 벨라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지금 이 시점에, 칼튼이 내게 급하게 보고를 올릴 만한 내용이 뭐가 있는지 유추해 보거라.”

“3년 전, 2억 달리아의 행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헤론이 칼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눈을 의심했던 칼튼은 이제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하얀 벨라투?’

철혈 공녀 비올라 벨라투가?

그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저 벨라 투가 하얀 벨라투가 되기로 작정했다고?

“칼튼. 너답지 않군.”

“죄, 죄송합니다.”

칼튼은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대답했다.

“맞습니다. 2억 달리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럼 비올라. 네가 먼저 말해보도록.”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

비올라는 헤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2억 달리아가 있어. 현찰 2억 달리아. 내 현찰을 담보로 제국 은행에서 1억 달리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을 거야.

2억을 담보로 1억을 더 빌렸다.

그리고 1억을 헤라에게 넘겨주었다.

헤라가 요구했던 것이 1억 달리아였으니까.

‘나머지 2억 달리아는 샤이크 황무지의 땅을 매입할 거야.’

샤이크 황무지.

겨울 성과 남부 대도시 가르니아사이에 위치한 임야였다.

버려진 땅이었고, 활용 가치가 전혀 없는 땅이었다.

통칭 샤이크 황무지라 불리던 그 땅은 척박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으며, 가끔은 표범이 출몰하기도 해서 효용 가치가 전혀 없는 땅이었어요.”

“그랬지. 재무부의 집사들이 기함을 토했었다.”

비올라가 칼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지금은 시세가 어떻게 되나요?”

“…현재 제국 공시지가로 일곱배가 넘게 상승하였으며, 시장 가격으로는 열 배가 넘게 상승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2억 달리아가 20억 달리아가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땅을 내놓지 않아 가치는 급상승 중입니다. 한데……

대부분을 비올라 공녀가 소유 중입니다.”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하얀 벨라투로서의 자격이 입증되었을까요?”

“왜, 그곳에 땅을 샀지?”

그야 소설에서 다 봤으니까요.

비올라는 웃음을 삼켰다.

「제국의 황제들은 의도적으로 겨울 성을 고립시켜 왔다.」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겨울 성과 대륙의 소통을 너무 원활하게 만들면 두 가지 위험성이 생긴다.

혹시라도 겨울 성이 무너졌을 때.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마물들이 대륙까지 쉽게 침범할 수 있다는것.

혹은 겨울 성의 벨라투가 반역을 마음먹었을 때.

벨라투는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들이라는 것.

그래서 제국은 벨라투에게 늘 ‘최강의 방패’라는 명예를 부여하는 대신.

겨울 성을 늘 척박하고 위험한 곳으로 내버려 두었다.

“겨울 성은 늘 외로웠어요. 이해해요. 정치적인 결정이니까. 겨울 성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수록, 벨라 투를 비롯한 겨울 성의 용맹한 전사들은 더욱더 똘똘 뭉치게 되잖아요.”

겨울 성의 사람들은 태생부터 다르다.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인류를 지켜 낸다.

겨울 성 출신은 그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그 사명감을 가지고서 강인한 전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제국을 향한 칼을 겨누지 않았다.

태생부터 그들의 적은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의 마물들이었다.

“제국 입장에서는 너무 좋죠. 마물도 막아내고, 위험천만한 겨울 성의 인물들이 반역을 꿈꾸지 않도록 해주니까.”

“그것이 2억 달리아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

칼튼에게 말했다.

“종이와 펜을 좀 주시겠어요?”

종이와 펜을 받아 든 비올라가 대략적인 지도를 그렸다.

“…하여 거점 도시들과 겨울 성을 세로로 잇는 축을 그려보면, 여기가 제격이잖아요.”

세로축을 기점으로 하여 거점 도시들이 여럿 산재해 있었다.

“결국 도시와 도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도시들과의 연계성이 중요하거든요. 도시들이 연결되었을 때, 그 시너지가 폭발하니까요.”

“…….”

“그래서 저는 샤이크 황무지의 땅을 대거 매입했어요. 버려진 땅이라 아주 쌌구요. 그리고 보다시피 이렇게 됐죠.”

칼튼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칼튼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보고를 올렸다.

“방금 전. 제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대륙 중심 모나크로부터 겨울 성을 잇는 거대한 무역 로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비올라가 말을 받았다.

“3년 전, 제국의 뛰어난 대신이 통치하기 시작했다죠?”

그는 정치적인 이유들보다, 제국의 안녕과 백성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셀리나.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재무 대신이 되어 제국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행보를 보면 늘 백성들을 위해왔어요. 빈민가에서조차 그 그녀를 칭송하는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였어요.”

“…….”

“그 사람이라면, 언젠가 황제를 설득하여 겨울 성과 제국을 잇는 길을 만들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게 제국을 위한 길이니까.”

“이유가 그뿐인가?”

“아니요. 제논이 드린 보고 자료에 있을 거예요. 제국의 성장률이 마이 너스를 기록했고, 인플레이션이 예고되어 있던 상황이었어요. 시중에 풀린 돈은 많은데, 그 돈의 향방이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화폐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

결과적으로,

“제국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려 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빙그레 웃었다.

“그 시점이 3년 정도 후가 되겠다.

고 예상했고요.”

물론 다 소설에서 본 내용입니다.

정확히 오늘.

제국에서 공식 발표가 나거든요.

“그래서 이 시점에 발맞추어, 하얀 벨라투가 되겠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어때요?”

헤론과 칼튼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말이 좋아 열 배지, 수익률로 치면 무려 1,000%에 이른다.

특히 총집사 칼튼은 큰 충격에 아무 말도 못 했다.

2억 달리아를 20억 달리아로 만들었어.’

그런데 이게 계속 상승 중이다.

충격에 휩싸인 칼튼을 내버려 둔 채,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제국의 모든 일을 셀리나 대신 혼자서 하지는 않잖아요.”

셀리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제국 대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다소 강압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여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황제와 왕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세상이다.

“그래서 힘이 없는 자가 그 땅을 가지고 있다면 모조리 빼앗겼을지도 몰라요.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었을지도 모르죠.”

비올라가 다시 웃었다.

아버지를 향한 눈동자에는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와.

이럴 때만큼은 믿음직해.

우리 아빠가 무려 헤론 공작이셔.

“그런데 제가 아빠 딸이라서요.”

벨라투의 정점.

겨울 성의 주인이자 북방의 방패인 헤론 벨라투다.

그의 딸이 매입한 땅을 강제적으로 빼앗을 수는 없을 터.

그의 딸을 암살할 수도 없다.

“제국의 황제조차도 함부로 빼앗지 못하겠죠. 제 아버지가 헤론 벨라투인데.”

치마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제가 아빠 딸이라서 다행이에요.”

책상 아래에 가려진 헤론의 손가락 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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