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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43화 (43/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43화힉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아저씨, 괜찮아요. 언니는 나를 해치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라.”

힉슨의 왕방울만 한 눈이 푸르르떨렸다.

“서운하다, 비올라.”

비올라는 순간 힉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운해?

뭐가?

힉슨의 얼굴을 봤다.

‘진짜 서운해하고 있잖아?’

왜 저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니. 난 아저씨를 믿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해.”

“근데 왜 나도 가래?”

“언니랑 둘이 얘기하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왜 빼냐고. 섭섭하다.”

힉슨은 마치 ‘아빠, 나 남자 친구 생겼어!‘라고 말을 하는 어린 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섭섭해도 어쩔 수 없어.”

“왜 단호해?”

“단호하면 안 돼?”

“안 되면 좋겠는데.”

힉슨은 결국 후우~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툰드라 쪽을 쳐다보았다.

역시 만만한 건 툰드라였다.

“안 되겠다. 우린 뜨거운 몸의 대화를 해야겠어.”

“아저씨. 내 개한테 화풀이하지 마.”

“화풀이 아니고, 훈련.”

“근데 왜 눈에 살기가 번뜩여?”

“……티 났냐? 으하핫!”

그런데 툰드라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힉슨은 비올라에게 서운했고, 툰드라에게는 강력한 충격 요법이었다.

요새 계속 자극받는다.

3공자 쿤도를 만났을 때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말 믿음직한 반려견이었다.

면, 나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 거야.’

단둘이 얘기를 한다.

그것을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나 역시도 그 다른 사람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건 내가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비올라가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누나를 잃었을 때 손을 내밀어줬었다.

‘언젠가는, 내가 주인님께 손을 내밀어 드릴게요. 믿을 수 있는 반려 견이 되어서.’

그러니까, 강해져야 했다.

진지한 눈으로 스승에게 말했다.

“거칠게 부탁드립니다.”

***

비올라는 메데이아와 단둘이 남았다.

메데이아는 검을 갈무리하고서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여전히 또래에 비해서는 작은 체구.

가냘프고 여려 보였다.

‘어린 시절 너무 못 먹었다지?”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니. 언니가 말했죠, 언니가 적이었다면 전 절명했을 거라고.”

“그래.”

“그걸 제가 몰랐다고 생각하세요?”

“알았겠지?”

“맞아요. 알고 있었어요.”

만약 비올라가 ‘검은 벨라투’ 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런 말은 허황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올라는 이미 자격 검증을 마친 상태다.

입양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그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산적을 토벌하는 전과까지 세웠다.

물론 실제로는 힉슨과 툰드라가 알아서 한 거지만, 메데이아는 거기까지는 몰랐다.

“그런데도 제가 왜 그렇게 무모하게 달려들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왜 그랬니?”

“언니를 믿었기 때문이에요.”

“나를 믿을 만한 객관적인 정황이나 증거가 있어?”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가 마음 독하게 먹었으면, 2공자와 3공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비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면, 아마 2공자와 3공자는 이미 시체로 발견되었을 거다.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겠지.

“언니.”

다시 한번 메데이아를 불렀다.

메데이아는 이 ‘언니’라는 호칭이 싫지 않았다.

비올라에게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왜 자신을 향해 저토록 맹목적인 믿음과 호의를 보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치적인 계산일까?”

철혈의 벨라투.

천 개의 가면을 쓸 줄 아는 벨라 투.

그렇기에 이렇게 가면을 쓰고 다가오고 있는 걸까?

“저는 늘 가면을 쓰고 살아요.”

“알아.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

비올라가 잠시 메데이아의 눈을 쳐다보았다.

메데이아의 눈은 붉은색.

붉은 보석을 세공한 것만 같았다.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언니는 잘 알잖아요.”

“모르겠구나.”

메데이아야말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벨라투의 1공녀의 모습으로, 메데이아는 혈육을 죽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녀는 벨라투와 자신의 가족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강해지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언니가 솔직해지지 않겠다면, 제가 먼저 솔직해질게요.”

“…….”

“저는 이게 싫어요.”

“뭐가?”

“혈육 간의 전쟁. 후계자가 되기 위한 각종 권모술수와 암투, 다 싫어요. 저는 늘 가족을 바라왔어요.

제가 꿈꾸고 동경하던 가족의 모습은 이렇지 않아요.”

메데이아의 표정이 굳었다.

루비 같은 붉은 눈에서 진득한 살 기가 흘러나왔다.

“비올라. 벨라투스럽지 않구나.”

“그야, 저는 벨라투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저는 지극히 평범히 태어나 버려진 어린아이였으니까요.”

솔직히 비올라는 찔끔 놀랐다.

메데이아는 제국에서도 인정받은 1급 기사.

그중에서도 검제에게 한 개의 별을 하사받은 1성 기사다.

1성 기사가 내뿜는 살기는 비첸이 내뿜는 살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비올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온 세계에 끝없는 어둠이 내리는 것 같았다.

어둠으로 만들어진 늪 속에 가라앉아 숨이 막혀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 세계에서 작가의 설정값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위축되지 않았다.

“저는 입양 딸이잖아요.”

“그것이 네 투정의 참작 요소가 되지는 않지. 입양 딸이 된 걸 후회라도 하는 모양이구나.”

“아뇨. 벨라투는 좋은 곳이에요. 제가 원래 있던 곳보다 훨씬. 제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 죽었고, 아버지는 저를 버렸어요. 형제는 없었고요. 벨라투에 오기 전, 저는 너무너무 힘들고 외로웠어요.”

말을 하다 보니 괜스레 감정이 북받쳤다.

애써 무시하고 잊고 있는데, 치유되지 못한 감정의 편린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비올라의 심장을 긁어댔다.

“그나마 제게 힘이 되어주었던 유일했던 사람도 저를 두고 죽어버렸어요.”

가족처럼 자랐고, 좋아했던 강한준도 교통사고로 죽었다.

사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게 누군데?”

“그건…….”

아차 싶었다.

말을 하다 보니 울컥해서 말이 너무 많이 나와 버렸다.

“그게, 힉슨 아저씨의 딸이겠구나.”

메데이아는 납득했다.

“그래. 네가 아저씨랑 친해진 이유가 딸과 관련되었다고 했었지.”

메데이아는 조금은 누그러진 눈빛으로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공작가의 1공녀로 태어난 자신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았구나.

철혈의 공녀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냥 그렇지는 않구나.

‘천 개의 가면…….’

메데이아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다.

남들이 무어라 말해도, 그녀의 가치관과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철혈의 벨라투가 가면이라는 뜻이니?”

“네. 언니처럼요.”

메데이아 역시 늘 가면을 쓴다.

완벽한 공녀가 되기 위하여.

누구보다 더 완벽한 공녀가 되어 결국 벨라투를 집어삼키기 위하여.

그래서 이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파괴해 버리기 위하여.

“내가 가면을 썼다고 확신하는구나.”

“네.”

“왜?”

“환영 만찬회에서부터 느꼈어요.

언니는 호기심이 아니라 걱정의 시선으로 절 보고 있었어요.”

메데이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비올라의 말이 맞았다.

메데이아는 비올라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었다.

「‘일곱 살이라 들었는데, 많이 작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텐데. 괜찮으려나?’

‘내 눈앞에서 죽으면 가슴 아플 텐데.」

비올라는 그 속마음을 소설로 모두 읽었다.

비올라가 계속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눈빛이 너무 달라서 티가 났어요.”

“……”

“제가 잘못 봤나요?”

“글쎄.”

“그랬다면 제 실수겠죠. 언니 앞에서 이렇게 흐트러지고 나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저는 곧 무너지겠네요.

벨라투로서 실격일 테니.”

메데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비올라와의 대면을 선택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올라는 이왕 내친김에 할 말을 다 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언니. 저는 옛날부터 언니를 동경했어요.”

“옛날부터?”

“빈민가에도 벨라투의 하얀 삭풍이 부니까요.”

하얀 삭풍이라는 이명이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는 소리였다.

“제가 언니를 잘못 봤고, 잘못 파악해서,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여도 괜찮아요.”

“그래도 저는 언니가 제 언니였으면 좋겠어요.”

비올라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이쯤이면 반응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곧 현실이 되었다.

메데이아가 결국 웃고 말았다.

“당돌하구나.”

“제가 실수한 건가요?”

“아니.”

메데이아가 비올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살짝 안아주었다.

“벨라투가 된 것을 축하해.”

“……고마워요.”

비올라는 문득 메데이아의 체온이 느껴졌다.

‘따뜻하네.”

소설로 봤을 때부터 호감이 있던 캐릭터여서 그런가.

메데이아의 품이 유독 따뜻했다.

메데이아의 마음을 움직이려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꾸며냈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아닌 것 같아.’

비올라 벨라투가 된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3년보다 더 오래전.

한아린으로 살았던 그 시절이 오히려 꿈같은 느낌이었다.

‘한준 오빠의 얼굴이 없었다면, 더 아득한 옛날의 꿈처럼 느껴졌겠지.’

자꾸만 한아린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툰드라의 얼굴 때문에, 한아린으로서의 기억이 생생할 뿐이었다.

이제는 비올라 벨라투에 더 익숙한 몸이 되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한테는.

옛날 한아린도 그랬고.

지금 비올라 벨라투도 그랬다.

‘가족이 필요해.’

그리고 그건 원래 몸의 주인.

소설 속 비올라 벨라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가족이었던 적이 있나요?”

“너는 훌륭한 벨라투로 자라주었다.

가족이라니. 너와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렇죠. 저와 어울리지 않죠.”

비올라가 물었다.

“저도, 언니 안아도 돼요?”

“그래.”

비올라가 발뒤꿈치를 들었다.

메데이아의 품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고, 더 넓었다.

엄마 캥거루 주머니 속에 쏙 들어온 아기 캥거루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언니는 이제 제 언니가 되어 주시는 거죠?”

“나는 3년 전, 네가 겨울성에 들어온 이래로, 계속해서 네 언니였어.”

“그 언니 말구요. 벨라투 언니 말고요.”

메데이아는 비올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모른 척했다.

어딘지 모르게, 저 철혈의 공녀라고 소문난 아이가 귀여워 보였다.

또래의 열 살보다 더 작은 열 살.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 내 동생.

“메데이아 언니가 되어주세요.”

벨라투를 빼버렸다.

벨라투로서의 언니가 아닌, 진짜 언니가 되어달라는 말이었다.

메데이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모습과 상황조차도, 이 어린 공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상황일까?

‘아냐.’

메데이아는 메데이아 스스로의 눈을 믿었다.

이 아이는 연기하는 게 아니었다.

‘제가 원래 있던 곳보다 훨씬. 제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 죽었고, 아버지는 저를 버렸어요. 형제는 없었고요. 벨라투에 오기 전, 저는 너무 힘들고 외로웠어요.

결코 연기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만약 연기라 할지라도, 그러면 정말로 훌륭하게 가면을 쓴 것일 터.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이게 네 진짜 모습이면 좋겠구나.’

언니가 되어달라며 자신에게 안긴이 아이의 모습이, 진짜 비올라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는 건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메데이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1성 기사 메데이아조차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했다.

“아버지.”

겨울성의 군주.

헤론 벨라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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