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49화
“이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공자님.”
그 말에 제르미조차 흠칫 놀랐다.
저런 대답은 평민이 귀족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평민이 저렇게 대답하는 건 ‘매우 정당한 명분’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매우……… 정당한 명분이라.’
제르미가 느끼기에 매우 정당한 명분은 없었다.
평민이 저렇게 대답하려면 어지간 한 명분 가지고는 안 된다.
제르미가 보기에는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 ‘저 사장의 손가락이라도 잘리게 되면…….’
그렇게 되면 이 맛있는 에그타르트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는 비올라 공녀의 단골집이잖아?’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평민이다.
어쩔 수 없다.
이 세계는 귀족보다 평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니까.
어딜 가도 귀족보다는 평민이 많다.
‘저 녀석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네.’
이곳은 마음에 드는 곳이다.
다음에 또 찾을 용의가 있다.
그러니까 이곳이 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귀족 소년이 말했다.
“겨울성 안이라고 기고만장한 꼴이 아주 꼴사납구나.”
“그렇게 보였다면 죄송합니다만, 원칙은 원칙인지라.”
“원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소년이 성큼성큼 걸어가 사장의 따귀를 때렸다.
딱!
마나는 운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련을 하기는 했는지, 사장의 뺨이 금방 부풀어 올랐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 남은 거 다 구워 와.”
“죄송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철혈 공녀께서도 즐겨 찾으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도 줄을 서고 두 개만 구입해 주십니다. 제가 만약 공자님께 세 개 이상의 에그타르트를 팔게 된다면, 그분을 무시해 버리는 셈이 됩니다.”
소년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뚫린 입이라고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구나.”
사장이 철혈 공녀를 언급하는 이유는 잘 알겠다.
그 유명한 벨라투 가문의 공녀가 자신의 뒷배에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감히 나를 협박해, 쓰레기 같은 놈이?”
“협박이 아닙니다.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공자님.”
“닥쳐라. 오늘 밤, 네놈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제르미는 문밖의 기척을 느껴보았다.
비올라 공녀 일행이 아직 밖에 있는 것 같았다.
‘흠. 그렇다면.
여기도 마음에 들고, 비올라도 마음에 들었다.
‘점수 좀 따놓을까?’
언젠가 정식으로 인사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단골집 사장님을 도와준 착한 검술가 정도. 그 정도면 족할 것 같았다.
제르미가 앞으로 나섰다.
“그쯤 하시죠.”
***
세알 자작가의 장남. 올해로 열여 섯 살이 된 젤톤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자신의 영지에서는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것들이 자꾸만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댔다.
“네놈은 또 뭐냐?”
복장을 보아하니 귀족가는 아닌 것 같았다.
낡은 검을 차고 있으니 귀족 출신일 수도 있기는 하나, 결코 작위가 있는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는 아닐 것이다.
“저는 견습 기사 지망생 제르미라고 합니다.”
“제르미?”
제르미는 본명을 속이지는 않았다.
제르미라는 이름이 희귀한 이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꼴에 같잖은 것들이 전부 설치는군.”
제르미가 화사하게 웃었다.
행색의 누추함으로 가려지지 않는 화사한 미소가 태양처럼 떠올랐다.
“같잖은 것한테 맞으면 안 아프시려나.”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제르미는 폭풍 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검을 뽑았다.
스릉!
낡은 검 면과는 어울리지 않는 맑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검 끝이 젤톤의 목에 닿았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피가 났을 것이다.
“무엄하다!”
젤톤 뒤에서 젤톤을 수행하던 기사도 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 검은 더 이상 검이라고 볼 수 없었다.
기사의 눈이 커졌다.
‘어, 언제?’
검이 반 토막 나서 땅에 떨어졌다.
기사는 절단면을 살펴봤다.
‘절단면이 깨끗해.’
검을 휘두르는 걸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검이 잘려 나갔고, 잘려 나간 검의 절단면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명장이 만든 세기의 명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잘못 걸렸다.’
행색은 누추하지만 절대로 평범한 신분의 사람이 아니다.
최소 9급 이상의 기사가 분명했다.
가끔 있다.
저렇게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실력 좋은 기사가.
“어때요? 더 이상 행패를 부리면 안 되겠죠?”
“내, 내일이 나의 생일이니, 좋은 뜻으로 용서해 주겠다.”
젤톤은 헹! 하고서 몸을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저놈은 도대체 뭐야.’
식욕이 뚝 떨어졌다.
상급 기사를 처음 본다.
상급 기사의 실력을 눈앞에서 직접보니 무서웠다.
‘빨리 벗어나자.
바깥에는 예쁘장한 여자애 한 명과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도 하나 보였다.
젤톤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불량한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도 닫혔겠다.
이제 더 이상은 무섭지 않았다.
“비켜.”
이것이 마치 사나운 야성의 남자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발걸음이었다.
이렇게 거칠게 굴어야 남자의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열여섯 살 젤톤은 그런 줄 알았다.
비올라는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에효.
어딜 가나 저런 애들은 꼭 있다.
저래야 센 줄 아는 어린애들.
비올라의 정신 연령으로 봤을 때, 저놈은 아직 철이 덜 든 어린애였다.
다만.
반려검 툰드라의 눈이 이글거렸다.
***
제르미는 점수를 땄다고 여겼다.
‘헤헤.’
문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비올라는 이미 다 느꼈을 거다.
‘제가 단골집 사장님 구해준 겁니다, 비올라 공녀.’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자부했다.
하나 남은 에그타르트를 천천히 즐겼다.
‘최선을 다해 발도를 했으니.’
꽤 만족스러운 발도였다.
아마 비올라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을 거다.
이 정도 발도술을 보여주었으면 적어도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튼 잘됐어.’
귀족의 품위조차 없는 얼간이 덕택에 점수를 크게 땄다고 생각했다.
한편, 비올라는 공작저를 향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위험한 세상이야.
벌어진 문틈 사이로 봤다.
제르미의 깔끔한 발도술을.
특별한 기술이 없는, 그저 단순한 발도(發刀)였다.
‘ ‘너무 빨라.’
역시 친해지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조심스레 물었다.
“툰드라, 제르미의 발도 봤지?”
“예.”
“어땠어?”
“빨랐어요.”
“너보다?”
툰드라는 잠시 생각했다.
이건 주인의 시험이자 평가라고 생각했다.
차분히 대답했다.
“속도 면에서는 저보다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툰드라가 열의를 활활 불태우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비올라는 그런 툰드라를 외면한 채 공작저를 향해 계속 걸음을 옮겼다.
‘툰드라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라.’
역시.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이다.
‘위험해. 거리를 둬야겠어.’
***
숙소로 돌아온 젤톤은 자신의 호위기사에게 호된 채찍질을 가했다.
“네놈의 임무가 뭐야?”
“공자님을 호위하는 것입니다.”
“근데?”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그러라고 네놈한테 돈을 주는 줄 알아?”
젤톤은 한참이나 채찍질을 했고, 호위 기사는 묵묵히 감수했다.
한참 후.
젤톤은 제풀에 지쳐 채찍을 놓치고 말았다.
“헉…… 헉…!”
“죄송합니다, 공자님.”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제대로 된 호위를 하지 못했고, 그것은 자신의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기사가 기사답게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밤.
젤톤이 호위 기사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그놈의 집. 찾아냈겠지?”
“네.”
젤톤은 늘 귀한 존재라고 교육받으면서 자라왔다.
‘너는 훌륭한 아이란다.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란다.’
‘너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배웠다.
젤톤의 어머니가 늘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것이 젤톤에게는 독이 되었다.
“잡으러 간다.”
“이곳은 겨울성입니다, 공자님.”
“겨울성 밖에서 죽이면 되잖아. 끌고 가서.”
호위 기사는 젤톤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명령을 받았으면 그 명령을 받든다.
그게 기사로서 맞는 방식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묻고 싶었다.
‘제르미라는 소년을 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평민 앞에서 모욕을 준 사람은 제르미였다.
그렇다면 제르미에게 복수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왜 사장이 죽어야만 하는가?
‘평민치고 불손하기는 했습니다 .
만…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벨라투의 철혈 공녀조차도 이곳의 원칙을 지킨다는데.
젤톤이 그 원칙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사장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 명령을 따라야 합니까?”
그렇지만 따라야 했다.
그게 기사로서 맞다고 생각했다.
저벅저벅.
밤거리를 걸었다.
겨울성의 밤거리는 평화롭고 조용했다.
곳곳에 술에 취해 널브러진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다.
“공자님. 저들이 저토록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다는 건……”
“품위도 교양도 없는 머저리들이라는 뜻이겠지.”
그게 아닙니다.
이곳의 치안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겨울성 밖에서 사장을 죽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경계가 삼엄할 테니까요.
그 말은 삼켰다.
어차피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릴 인물이니까.
겨울성 외곽 쪽.
평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집 중에서 대문이 제법 큰 집이 하나 보였다.
“이 집이 확실하겠지?”
“맞습니다.”
“부숴.”
나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평민 주제에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아?”
작은 정원이 있었다.
“도대체 겨울성 평민 놈들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평민의 집에 정원이 있는 건 처음 본다.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평민에게는 지나치게 사치였다.
“누가 보면 귀족 집인 줄 알겠어.
그러니 목이 그렇게 빳빳했겠지.”
저만치 앞.
다섯 칸짜리 계단이 있었다.
그곳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금발의 소년이었다.
“너도 목이 빳빳한데.”
“넌 또 뭐야?”
“나? 개가 꿈인 용병.”
금발의 소년은 툰드라였다.
용병이라는 말에 젤톤이 흥! 코웃음을 쳤다.
“뭔 개소리야?”
“여긴 왜 왔냐?”
“용병 주제에 혀가 짧구나.”
“너도 짧잖아, 등신아.”
젤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용병에게 이런 모욕을 받을 줄이야.
안 그래도 예민하던 차에 잘됐다.
“네놈도 함께 죽여주마.”
“죽인다고? 여긴 겨울성인데?”
“그따위 것. 내가 알까 보냐!”
젤톤이 손가락으로 툰드라를 가리켰다.
“기절시켜. 겨울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죽여 버린다.”
이쪽 기사는 무려 2급 견습 기사다.
용병 나부랭이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
…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반대였다.
챙그랑!
마치 유리 깨지듯, 호위 기사의 검이 박살 나버렸다.
‘뭐야, 이건 또?’
호위 기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기상점에서 급하게 산 검이라지만 이렇게 쉽게 깨질 물건은 아니었다.
검이 아예 박살이 나버렸다.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분명히 네가 먼저 죽인다고 했다.
이거 정당방위야.”
툰드라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검을 휘둘렀다.
“감히 주인님의 최애 가게를 건드려?”
비올라는 에그타르트를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그 행복을 이놈이 망치려고 했다.
검 옆면으로 젤톤과 호위 기사를 기절시켜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은 겨울성의 권역이니까.
쉽네.’
매일 비첸 같은 괴물과 대련을 하다 보니, 이런 놈들 처리는 굉장히 쉬웠다.
문이 열리고 아줄레지아의 사장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가게에서 파는 거 말고.”
가게에서 파는 걸 주면 원칙에서 어긋난다.
하지만 집에서 구운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집에서 따로 구운 에그타르트 열개. 그거면 공녀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백 개라도 구워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툰드라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았다.
속으로 굉장히 기뻐했다.
‘열 개면… 주인님께서 기뻐하시겠지? 나 잘했지?’
그걸 생각하니 설렜다.
비올라가 맛있게 먹는 모습, 행복한 모습, 그걸 보는 것이 툰드라의 행복이었다.
“특별히 맛있게 부탁합니다.
“물론입니다!”
이틀 후,
세알 자작가의 하나뿐인 아들이 처형당했다.
겨울성의 남쪽 성문 앞에 목이 내 걸렸다.
그리고 놀라운 소문이 겨울성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철혈 공녀. 비올라 벨라투와 관련한 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