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50화세알 자작가의 장남.
열여섯 살 젤톤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소식지는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겨울성 남문에 걸린 귀족가의 수급.)
〈젤톤은 무엇을 잘못하였나?>
굉장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행보였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재판이나 상황 파악이 우선시되었는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 비올라조차도 공작이 이렇게 파격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다.
공작은 그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요즘 쥐새끼들이 겁 없이 설치는군, 감히 겨울성에서.”
그리고 직접 목을 베어버렸다.
마치 일벌백계하듯 겨울성의 남문에 목을 걸어 전시했다.
일부 귀족들이 반발했으나 헤론 공작은 그 반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부 귀족들은 반발.
또 일부 귀족들은 침묵했다.
헤론 공작이 대단히 잘했다고 말하는 귀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평민들 사이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자네는 괜찮나?”
“그으럼! 나는 겨울성의 시민 아닌가.”
“어떻게 된 거야? 소식지 내용이 사실이야?”
“비올라 공녀께서 반려검을 보내주셨어.”
“직접 말인가?”
“그래. 그분께서 우리 집 단골이시거든.”
“단골이라는 이유로 반려검을 보내 주셨다고?”
“예끼! 그럴 리가겨울성의 주인 중 한 명으로서, 겨울성의 시민을 보호해 주신 것이지! 나는 겨울성의 시민이니까!”
겨울성 내 평민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들의 주인인 벨라투 공작가가 자신들을 위하여 귀족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것은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 평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겨울성은 결코 겨울성의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일의 중추에는 ‘반려 검’이 있었다.
반려검 툰드라.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젤톤 놈의 사지를 잘라 버렸다.
지?”
“아, 아니, 그, 그건……….”
그렇지는 않았다.
젤톤을 체포하기는 했으나 툰드라가 직접 젤톤을 죽이지는 않았다.
“겨울성의 시민을 괴롭히는 놈들은 그렇게 당해도 싸지.”
“암, 그렇고말고.”
소문이 약간 와전되어 퍼졌다.
겨울성의 시민을 괴롭히는 것을 목격한 비올라가 그녀의 하수인인 툰드라를 보내 즉결 처분해 버렸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역시 소문이 틀리지 않았어.”
“무슨 소문?”
“철혈 공녀. 누구보다 벨라투스러운 벨라투, 벨라투의 입양 공녀님에 대한 소문 말일세.”
비올라가 전혀 모르는 곳에서, 비올라에 대한 칭송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
헤론의 집무실.
어느덧 밤 11시가 넘은 고요한 시각.
마법 촛불의 주홍빛이 공작의 뺨에 닿았다.
비올라는 주황빛으로 물든 공작의 뺨을 바라보면서, 치마 속에 숨겨진 다리를 달달 떨었다.
‘날 왜 부른 거지?’
불러놓고서는 30분째 침묵 중이다.
30분 동안 서류에 서명하고 있는 데, 비올라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왜지?’
겨울성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이유로 자작가의 아들조차 목을 베어버린 인간이다.
집무실에서 목을 베어버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자리에 왠지 피 냄새가 진득하게 배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불러놓고 말이 없어!’
30여 분이 흘렀을 때.
공작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왜 불렀느냐?”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요.
아버지가 날 불렀으니 그냥 왔지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요, 엉엉.
그렇지만 합당한 대답을 생각해 내야 했다.
이번에 다시 느꼈다.
헤론은 분명 이 세계의 절대자였고, 절대자에게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세계에 떨어졌으니 적응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세알 자작가의 장남을 왜 죽이셨나요?”
“네가 그것을 원하는 것 같아서.”
네?
제가요?
비올라는 오래간만에 머리가 멍해졌다.
‘왜, 저렇게 생각했지?”
어딘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다.
사실 젤톤의 질이 나쁜 건 맞지만 죽을죄를 저지른 건 또 아니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가 보지?”
헤론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올라는 어딘지 모르게 두려웠다.
저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눈빛이 가슴속에 확! 박히는 것 같았다.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내가?’
왜 저렇게 말하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후계 경쟁에 뛰어든다고 해석했구나.’
그 키워드가 힌트가 되었다.
비올라는 왜 헤론 공작이 일을 이렇게 크게 벌였는지 알 것 같았다.
“맞아요.”
아니요. 맞지 않아요.
저는 이렇게 일이 커지길 바라지는 않았어요.
적당히 어디 한두 군데 부러뜨리고 보낼 줄 알았다고요.
재판도 없이 자작가의 아들을 죽일줄이야.
공작이 턱을 괴고 앉았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비올라의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발 기대하지 말아주라!
라는 속마음과는 별개로 비올라는 비올라 벨라투로서의 말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겨울성은 늘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해 왔어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해졌고, 겨울성의 날카로운 칼끝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죠.
그러니 젤톤 같은 망나니가 감히 겨울성 내에서 살인을 저지르겠다 호언장담을 했던 거고요.”
“그래서?”
“저는 경고하고 싶었어요. 겨울성에서 벨라투의 권위를 무시한 자의 말로를.”
그것은 세상을 향한 경고였다.
……라고 해석되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아무튼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침묵할 귀족들은 침묵할 것이고.”
“…….”
“반발할 귀족은 반발할 거예요.”
“그것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저는 하얀 벨라투로서, 적과 동지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거든요.”
공작이 피식 웃었다.
“침묵하는 놈들은 우리의 잠재적 동료이고, 반발하는 놈들은 잠재적적이라는 얘기냐?”
“아뇨.”
비올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죠.”
“어째서?”
“저는 아버지의 처사가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적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비올라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쨌든 당신의 행위는 불법이었어!
라고 말을 하는 꼴이니까.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 거야.’
원작을 읽어서 안다.
헤론은 결코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폭군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그것을 티 내지 않느라 극한의 인내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침묵하는 놈들은 겁쟁이. 그리고 반발하는 놈들은 겁을 상실한 미친놈이겠죠.”
“그 어느 쪽도 동료가 아니에요.
겨울성은 오롯이 겨울성일 뿐. 동료는 필요하지 않죠.”
실로 광오한 말이지만 헤론이 좋아하는 말이기도 했다.
헤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준 뒤, 본론을 꺼냈다.
“그러나 겁쟁이보다는 미친놈이 더 마음에 드네요.”
헤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1공녀 메데이아 이후로 이토록 만족스러운 대화를 하는 자식은 없었다.
심지어 메데이아와 대화할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반발하는 귀족가 중, 세알 자작가 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면서, 지난 행적이 깨끗한 자들. 저는 그자들을 품을 예정이에요.”
“훗날, 네가 벨라투를 지배하게 된다면 말이냐?”
비올라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뇨. 저 말고요.
우리 언니요, 메데이아 언니.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그 언니가 진짜 세거든요. 저는 옆에서 잘 돕다가 꿀 빨 예정이거든요.
“네.”
…..
젠장.
이게 아닌데.
“좋은 마음가짐이다.”
“또한.”
비올라는 울고 싶었지만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세알 자작 내외의 자식 사랑은 유별난 부분이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느냐?”
“저도 열두 살에 사교계에 입성해야 하잖아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 대해서는 미리 공부한다는 의미였다.
‘공부한 게 아니고 소설로 봐서 아는 거지만.’
아무튼 소설 내용에 따르면 자작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소설과 좀 다르게 진행되긴 했지만 언젠가 세알 자작가와 벨라투 공작가는 부딪칠 운명이었다.
“세알 자작가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거예요.”
소설 속에서도 그렇다.
자작가의 아들 젤톤은 비첸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내 아들의 원수인 벨라투 공작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알 자작가는 겨울성을 향해 진군한다.
병력의 규모가 겨우 500명 내외였고, 그들은 겨울성 남문에서 모조리 사살당한다.
소설 속에서 헤론 공작은 세알 자작을 칭찬했다.
「“네 행동은 옳았다.”」
아들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이렇게라도 달려들며 발악하는 것이 부모로서 옳은 행동이다.
소설 속 헤론의 생각이었다.
「“다만, 왜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게 달려들었지?”
“그것은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이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냐?”
“인간은 누구나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있소. 그 어리석음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헤론은 세알 자작을 참형 대신 교수형에 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헤론은 자작을 잃은 세알 자작가에 금전적, 무력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세알 자작 부인 배 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세알 자작 부인은 그 아이의 이름을 ‘벵가스’라 지었다.
벵가스는 복수라는 뜻이었다.」
훗날 이 벵가스는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 벨라투 공작가의 적이 된다… 라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었다.
참 가지가지 하는 세계관이다.
아버지를 죽여 제르미 팔라일이라는 강대한 적을 탄생시키고, 형과 아들을 모두 죽여 벵가스 세알이라는 또 다른 적을 만드는 세계관.
〈벨라투의 그림자>는 이런 세계관이었다.
헤론이 물었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제국에 중재를 부탁할 거예요.”
“그리고?”
“제국은 중재에 응하지 않겠죠.”
“왜?”
“굳이 실리가 없으니까요. 제국이 실리가 없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리는 없어요.”
“그래도 명분은 세알 자작가에 있지 않겠느냐?”
“겨울성의 법칙을 먼저 어긴 자는 젤톤이잖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헤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네 낙을 빼앗으려 했지.”
“네?”
비올라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에그타르트, 네가 좋아하는 것 아니더냐?”
“그렇긴…… 하죠.”
비올라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제국에게도 외면당한 세알 자작가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될 거예요.”
“어떤 최후의 선택 말이냐?”
“자식을 잃고 가만히 있을 부모가 있을까요?”
“보통 가만히 있겠지. 상대가 겨울 성이라면.”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세알 자작은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분명히 그는 겨울성을 향해 진군할 거예요.”
헤론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자는 명예롭게 죽여줘야겠군.”
아뇨.
그러면 대마법사 벵가스라는 적이 생겨요.
적어도 그건 막읍시다, 아버지.
그자가 확실히 진군할 것 같으냐?
죽음을 각오하고서?”
“인간은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원작 속 세일 자작이 했던 말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있소. 그 어리석음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비올라가 말했다.
“저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싶어요.”
나의 찬란한 노후를 위해.
가늘고 긴 깨끗한 삶을 위하여.
벵가스라는 대마법사의 탄생을 막기 위하여!
“저를 특사로 보내주세요. 세알 자작가에 다녀오고 싶어요.”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할 수도 있다.
벨라투답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얀 벨라투로서의 능력을 증명해낼게요. 폭풍 요새에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