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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51화 (51/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51화툰드라는 자꾸만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손에는 에그타르트 열 개가 들려있었다.

언젠가 비올라가 이렇게 말했었다.

‘열 개 정도는 먹을 수 있지.’

마침 딱 열 개다.

‘맛있게 드시려나?’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만든 에그타르트다.

비올라가 이걸 먹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좋아하시면 좋겠는데.”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신이 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비올라와 관계된 일이면 하나부터 열까지 괜히 다 신경 쓰였다.

화내시진 않겠지?’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 온 에그타르트니까 좋아하실 거다.

에그타르트의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맛있겠다.

군침이 절로 고였다.

사실 툰드라도 이 에그타르트를 정말 좋아한다.

비올라가 좋아하니까 늘 양보할 뿐이었다.

겨울성 외 다른 곳에는 맛보지 못할 맛이었고, 겨울성에 아줄레지아가 있어서 다행일 정도였다.

똑똑.

노크하고 비올라의 방에 들어갔다.

“에그타르트 열 개입니다. 아줄레지아의 사장이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비올라는 좋아했다.

쌉싸름한 청귤 차를 내오라고 한 뒤, 에그타르트와 곁들여 먹었다.

앙!

덥석!

벌써 네 개째였다.

“툰드라. 너도 앉아.”

“개가 어찌 주인의 식탁에 앉겠어요?”

툰드라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비올라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비올라는 그게 불편했다.

그래서 벨라투답게, 살벌하게 말했다.

“나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거 불쾌해.”

“죄송합니다.”

툰드라는 그 자세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의자에 앉은 비올라보다 눈높이가 낮아졌다.

약간 명령을 잘못 내린 모양이다.

‘으.’

더 불편해졌다.

‘그냥 좀 앉지.

툰드라는 지나치게 예의범절에 집착하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튼 똥고집.

여기서 더 억지를 부려 내 앞에 앉으라고도 명령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상한 데서 고집부리는 게 한준 오빠랑 똑같네.’

한준도 꼭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렸다.

굳게 앙다문 입술.

불쾌하다고 했더니 그걸 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무릎을 꿇고 땅만 쳐다보고 있는 저 융통성 별로인 모습.

무릎이 저릴 텐데 티를 하나도 내지 않는 저 모습.

‘왜 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빠랑 똑같이 굴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그랬다.

한아린의 기억 속 한준의 모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툰드라는 열일곱 살이 되었고, 기억 속 강한준의 모습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오빠도 단거 엄청 좋아했는데.”

보육원에서는 초콜릿 킬러라고 불릴 정도였다.

“너도 하나 줄까?”

“개가 어찌 주인과 함께 식사를 하겠어요? 저는 그저 주인님과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워요.”

“……너 단거 좋아하지 않아?”

“단거 싫어합니다.”

근데 왜 침을 꿀꺽 삼켜.

근데 왜 콧구멍을 벌렁거려.

“진짜 싫어해?”

“네. 싫어합니다.”

비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봐도 좋아하는 게 뻔한데, 굳이 싫어한단다.

“나 거짓말하는 개 싫다.”

움찔.

툰드라의 몸이 떨렸다.

“다시 물을게. 단거 좋아하지?”

툰드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꽤나 난처했다.

이제 와서 단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아까 거짓말을 한 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또 싫어한다고 말하자니 비올라가 실망할 것 같다.

“입 벌려.”

비올라는 툰드라의 입에 강제로 에그타르트를 하나 집어넣었다.

툰드라는 반응하지 못했다.

에그타르트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가사하미다(감사합니다).”

“내 앞에서 솔직하게 굴어.”

“에(네).”

툰드라의 입가에 달걀 크림이 조금 묻었다.

툰드라는 잔뜩 긴장했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귀엽네.’

어린 시절의 오빠도 이랬을까.

기억 속 열다섯 살 강한준은 굉장히 컸었는데, 지금의 비올라가 보면 별로 크지 않았다.

한아린의 정신을 가진 비올라가 보기에 툰드라는 정말 어린 강한준 같았다.

‘뭐라고 해야 얘가 좀 더 날 편하게 대할까?’

편하게 대하라고 말한다 해서 편하게 대할 리는 없다.

〈벨라투의 그림자) 세계에 맞게 각색해서 말했다.

“너는 개야. 알지?”

“네.”

“사람과 개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알려주시면 공부할게요.

극도로 공손하게 대답하는 모양새를 보자 뭔가 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깊은 생각을 해야 하고, 개는 깊은 생각을 안 해도 돼.”

……”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행복하면 행복하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그냥 솔직하게 굴면 돼. 개잖아. 개가 뭘 그렇게 많은 걸 고려하고 생각하는 거야?”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고.

단걸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뭐가 저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네 정체성을 똑바로 해. 알겠어?”

***

툰드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비올라의 말이 모두 맞았다.

개는 개다.

개가 사람인 척하면 안 된다.

‘나를 혼내신 거야.’

혼이 났다.

그러면 변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솔직하게 행동하는 거야, 개처럼.’

비올라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툰드라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지만 비올라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음 날.

또다시 비올라를 찾았다.

마침 비올라는 제논과 함께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주인님께 드리려고요.”

개처럼 굴기로 했다.

한 번 혼이 나고 가르침을 받은 반려검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비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꽃?”

하얀 꽃이 담긴 화병이었다.

제논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거리트 꽃이군요.”

마거리트는 순백색 꽃잎을 가졌으면서 중심부의 화심은 노란빛을 띠는 꽃이었다.

비올라의 눈이 화병에 닿았다.

“주인님께서 길가에 핀 이 꽃을 유심히 보던 것이 기억이 났거든요.”

“툰드라. 당신은 이 꽃의 꽃말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툰드라는 당당했다.

꽃말 같은 건 모른다.

그냥 비올라의 눈이 저 꽃에 닿았던 게 기억났을 뿐이다.

그래서 가져다드리고 싶었다.

비올라가 중얼거렸다.

“진실한 사랑. 예언. 비밀을 밝히다.”

“공녀님은 꽃말 공부도 하시나요?”

비올라는 화병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왜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한준 오빠가 나한테 준 부적이었는데.’

‘이거 너 가져.

‘이걸 갖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온대.

당시 한준은 이 꽃의 이름도 몰랐다.

그냥 예뻐서 가져왔다고 했다.

보육원 생활이 힘들었던 한아린에게 마거리트는 부적이 되어주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사전을 찾아본적이 있었다.

[마거리트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예언, 사랑을 점친다, 비밀을 밝힌다’입니다.]

그래서 한아린은 남몰래 설렜었다.

어린 시절의 강한준이 꽃을 통해 자신에게 고백했다는 황당한 상상까지 했었다.

근데 오빠. 옛날에 나한테 마거리 트 꽃 선물해 줬잖아.’

아. 내가 그랬어?’

‘응. 나한텐 부적이었어.’

‘부적을 한두 개 줬어야지. 네가 워낙 울보라서.’

‘오빠 마거리트의 꽃말 알아?’

‘글쎄? 뭔데?’

사실 나도 몰라.’

한아린은 알지만 모른 척했었다.

괜히 설레발 친 게 부끄러워서 말이다.

제논이 말했다.

“보아하니 꽃말은 전혀 모르는 것 같군요.”

“몰랐습니다만,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제논?”

“아뇨. 공녀님께서 문제 삼지 않으신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제논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런데 화병에 특수한 마법 처리가 되어 있네요. 이런 건 비쌀 텐데요.”

“저도 벨라투의 봉급을 받습니다.”

지난 3년간, 툰드라는 벨라투 공작가로부터 봉급을 받았다.

이건 제논의 배려였다.

비올라 공녀를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소한의 품위 유지비를 책정해 주었다.

“이 정도 물건이면 3년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하겠는데요?”

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3년의 노력을 선물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중입니다.”

부디 비올라가 좋아하면 좋겠다.

행복하면 좋겠다.

즐거우면 좋겠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

‘좋아하실까?’

그 생각이 들어 비올라의 눈치를 살폈다.

비올라는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했다.

오묘한 표정으로 서서 마거리트 화병을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이것도 우연일까?

강한준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꽃을 선물했다.

‘하필이면 마거리트에, 하필이면 꽃말도 몰라.’

왜 강한준과 저렇게 똑같이 구는 걸까.

‘너는 오빠가 아니잖아.’

비올라가 입을 열었다.

강한준이 아닌데 자꾸 강한준이 보인다.

스스로도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한준 오빠가 아니야.’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쌀쌀맞게 말했다.

“3년의 노력을, 무기나 방어구에 쓰는 게 어땠을까? 개면 개답게. 이빨을 날카롭게 다듬어.”

툰드라를 향한 독설이면서 비올라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하얀 벨라투 비올라의 공식적인 두번째 임무가 떨어졌다.

‘올 게 왔네.’

비올라 본인이 직접 나서서 요청했던 임무.

헤론 공작이 비올라의 요청을 받아 들였다.

‘내가 살다 살다 특사로 파견되는 날이 오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두 번째였다.

폭풍 요새에도 갔었으니까.

가늘고 길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열두 살에 또 특사 파견이라니.

‘아무튼.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뭔가 자꾸 커다란 일들에 개입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래도 훗날 대마법사 벵거스가 등장하는 것보다는 지금 특사로 고생하는 것이 낫겠지, 아마도.

벨라투의 특사 파견 소식은 여러 소식지에서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었으며 세계 각지로 비올라에 관한 소문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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