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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52화 (52/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52화벨라투에서 특사를 보낸다는 것.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이슈가 되었다.

“그 소식 들었어? 벨라투 공작가에서 특사를 보낸대.”

“벨라투에서?”

“세알 자작의 아들을 죽였다나 뭐 라나.”

“그만한 일로 특사를 보내?”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서 겨울성은 무시무시한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자작가의 자제 한 명쯤 죽인다고 해서 특사까지 보낼 곳은 아니었다.

“근데 특사로 보내는 사람이 열두살짜리 꼬맹인가 봐.”

“야, 야. 말조심해. 꼬맹이라니!”

남자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 소문 몰라?”

“무슨 소문?”

“천살 공작이 5년 전, 마녀를 입양했다는 소문.”

“마녀?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잘은 몰라. 일곱 살에 산적들을 죽이고 살점을 뜯어먹었다. 아.

그리고 환영 만찬회인가? 거기서 악마의 피를 마셨다나 봐.”

일곱 살에 산적을 죽인 건 비올라가 아니라 비첸이었다.

비올라는 단순히 툰드라를 구해 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악마의 피를 마신 적도 없다.

악마의 피가 아니라 포션 ‘비올라’를 마셨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문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와전되고 와전되고 또 와전되었다.

“입조심하자고.”

“그, 그래. 그러지.”

비올라에 관한 소문은 와전되고 또 와전되었다.

본인이 듣는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법한 소문들이 대륙 각지에 조금씩 퍼져 나갔다.

다만, 비올라 벨라투에 대하여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었다.

3년 전부터 제국 내부의 대소사를 처리하기 시작한 대신 셀리나였다.

셀리나가 말했다.

“겨울성 내부에서는 비올라 벨라투라는 아이가 꽤 큰 호감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더군.”

“철혈의 벨라투이면서 겨울성의 백성들을 상당히 아끼는 것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겨울성 백성들은 스스로를 시민이라 일컬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37세에 재무 대신이 된 그녀는 이제 모나크 제국의 2인자였다.

2인자가 높임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검의 황제 넬라크 프로이츠 칼리 번.

그는 가벼운 차림으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물었다.

“그 아이가 열두 살이라고 했나?”

“맞습니다.”

“대신이 그 아이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지?”

“5년 전, 벨라투의 환영 만찬회 때부터입니다. 화려한 등장으로 단숨에 벨라투로 인정받았고…….”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골든 로드를 개발할 땅을 선점하여 크게 이득을 본 아이이기도 합니다.”

“우연이었나?”

“우연일 확률이 가장 높지만, 한편으로는 우연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어째서?”

“그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현금을 확보하여 그곳에 몰빵했거든요.”

황제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주변을 살펴봤다.

“몰빵이라니. 체통을 좀.”

“둘밖에 없는데 뭐가 어떻습니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법이지.”

“저는 안 샙니다. 새는 거 보셨습니까?”

“말이나 못 하면.”

셀리나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사뿐사뿐 걸어가 황제 옆에 앉았다.

“폐하. 저는 일단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손을 황제의 손 위에 포갔다.

황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귀여우셔.

황제는 분명 뛰어난 사람이었다.

적어도 검에 관한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실제로 검의 황제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 우물만 판 덕택에 다른 것에는 숙맥이었다.

셀리나가 보는 황제는 제법 귀여운 편에 속했다.

“세, 셀리나. 지금은 보고 중 아니 오?”

“손잡고 보고 올리지 말라는 제국 법이 존재했던가요?”

“그, 그건…….”

“정 싫으시면 그런 법을 만들면 되겠지요. 제국의 태양은 폐하뿐이니.”

“만, 만들겠다고 한 적은 없소.”

“그러면 손잡고 보고해도 될까요?”

“하, 하시오.”

“말은 왜 자꾸 더듬으세요?”

“그야.”

넬라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셀리나의 손이 닿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귀여우세요.”

“나는 황제요.”

“황제는 귀여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보, 보고나 하시오.

셀리나는 빙그레 웃은 뒤 보고를 이어갔다.

“통찰력과 분석력이 아주아주 뛰어난 아이입니다. 이번 폭풍 요새와의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했죠. 미공자라 불리는 제르미 공자도 비올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심장이 콩닥거려서 보고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폐하. 제 말 듣고 계시지요?”

“듣고 있소.”

셀리나가 황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셀리나의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황제는 콩콩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발가락에 힘을 꽉 줬다.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 1만의 군세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이번에 세알 자작가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지켜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제 예상에 의하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비올라 공녀가 세알 자작령에 도착하기 전에, 세알 자작은 시체가 되어 있을 것 같거든요. 운이 나쁘면 비올라는 세알 자작을 살해한 살인 용의자가 될 것 같아요.”

***

제논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신발 끈이 풀어졌습니다, 공녀님.”

비올라는 가만히 서서 앉은 제논을 쳐다봤다.

제논은 다정한 손길로 가죽 신발끈의 매듭을 다시 매주었다.

“오랜 시간 말을 타야 하고 척박한 산길도 지나야 합니다. 이렇게 묶어야 풀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쳐 드렸지요?”

“배우지는 않았어.”

일방적으로 가르쳐 줬을 뿐이다.

‘아니, 신발 끈 묶는 데 마나 술식이 왜 필요한 건데?”

마나 술식을 활용하여 마나를 불어 넣고, 특수한 방법을 이용하여 마무리하는 이 매듭. 비올라는 이걸 배울 수가 없었다.

‘난 원래 매듭을 잘 못 맨다고.’

강한준에게 매일 잔소리 들었었다.

‘넌 아직도 신발 끈을 그렇게 못묶어?’

‘몰라. 어렵단 말이야.’

‘신발 끈 묶는 게?’

그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공부를 잘하는 거 보면 바보는 아닌데. 왜 신발 끈은 이렇게 못 묶을까?’

‘아씨. 놀리지 마라!

‘뭐, 괜찮아. 사람이 하나쯤은 흠이 있는 법이지. 근데 신발 끈을 못 묶는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오빠!’

그만 놀리라고, 나도 내가 답답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강한준이 허리를 숙였다.

‘어휴. 그냥 내가 해줄게.’

그때 이후로 그는 아린의 신발 끈을 늘 묶어줬었다.

비올라가 뻔뻔하게 말했다.

“네가 해주면 되잖아.”

“제가요?”

“그래. 네가.”

이상하게 매듭법은 잘 모르겠다.

배워도 배워도 까먹는다.

그럴 바에야 그냥 아예 안 배우는 게 낫다.

배웠는데 못 하는 것과 아예 안배운 건 다른 문제니까.

‘벨라투가 이것도 못 하면 이상하잖아.”

벨라투는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그것이 벨라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매듭법을 배우지 않기로 했다.

괜히 허점을 드러내기 싫으니까.

그런데 제논이 조금 이상했다.

평소보다 더 밝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얼굴에 태양이 떠오른 것 같았다.

“기쁘네요.”

응? 뭐가?

“제가 늘 해드릴게요. 공녀님 옆에서.”

이게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인가.

비올라는 속으로만 고개를 갸웃했다.

“공녀님 곁을 허락받은 것 같아 기뻐요.”

제논의 도움을 받아 말 위에 올라 탔다.

매듭은 잘 못 묶어도 승마는 꽤 익숙해졌다.

‘마차로 가면 좋을 텐데..

세알 자작령까지의 길은 마차로 가기에는 너무 험했다.

대로도 있기는 했지만 대로를 따라 움직이면 족히 한 달은 걸렸다.

그래서 산맥을 관통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공녀님도 아시다시피 세알 자작령까지 가기 위하여 크고 작은 산맥들 여덟 개를 통과해야 합니다.”

“알아.”

“아마 여러 번의 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중에는 산적 같은 어중이떠중이도 있을 거고, 벨라투가의 적도 있을 거다.

‘애초에 아버지의 이명이 천살 공작이니.’

천 명을 죽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적어도 천 명에게는 원수라는 얘기였다.

‘그 가족이나 친구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거다.

그래서 성장하지 않은, 어린 벨라 투는 늘 위협에 시달린다.

그 위험을 극복하는 것도 벨라투가의 임무이기도 했다.

실제로 암살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

벨라투가의 모두가 그 위험을 스스로 헤쳐 나왔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비올라!”

저기 저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는 비첸 같은 경우는, ‘히히! 약한 놈은 다 죽어!‘라며 천진난만하게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챙!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쳤다.

툰드라가 발검하여 비첸의 손에 들린 암기를 막아냈다.

“쳇. 또 너냐?”

비첸은 아쉽다는 듯 손에 들린 단도를 회수했다.

비올라는 직감했다.

툰드라가 없었으면 여러 번 죽었을 거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냉철하게 말했다.

“나를 죽이려면, 내 개부터 밟고 올라와.”

“응.”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비첸을 보자 비올라는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모자란 건지 착한 건지.

“나도 임무만 없었으면 비올라랑 같이 갔을 텐데.”

비첸은 거기까지 말한 뒤 다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굉장히 빨리 달렸는데 비첸 뒤로 흙먼지가 휘날렸다.

비올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쟤는 임무 때문에 바쁠 텐데, 굳이 왜 왔을까?’

저렇게 빨리 달리면 체력 소모가 심하다.

체력 소모를 감수하면서 빨리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주 바쁘다는 얘기가 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한 번 찔러보고 가는 건지.

‘ ‘내가 그렇게 찌르고 싶게 생겼나?’

그냥 동생이 보고 싶어서 왔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

비올라는 출발 직전.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시 공작저로 말 머리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놓고 온 게 생각났어.”

“제가 가져올까요?”

“내가 갈 거야.”

제논은 못 가져온다.

놓고 온 게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습격이 많을 거 같으니까.’

아무래도 제논의 말을 듣고 나니 불안해졌다.

그래서 힉슨을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힉슨에 제논에 툰드라까지.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을 거다.

“엥? 나? 나는 좀 그런데……….”

“왜?”

“그게….”

힉슨이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내가 좀 두들겨 했거든.”

“왜?”

“음.”

힉슨은 그 커다란 손으로 뒤통수를 멋쩍게 긁었다.

“내 첫사랑한테 고백해서.”

“사귀는 중이었어?”

“아니?”

“그러니까, 사귀지도 않는데,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해서 했다고?”

“그땐 어렸잖냐.”

힉슨은 비올라의 시선을 계속 피했다.

거짓말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사실을 말하자니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사과는 했어?”

“그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좀, 그게, 그러니까…….”

“사과 안 했네.”

힉슨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그 일을 지금 와서 아는 척하는 게 서로 더 민망하지 않겠는가.

“때린 사람이 이 정도로 기억하면, 맞은 사람의 가슴에는 피멍으로 남아 있어.”

“에잉, 남자 놈이 설마 그러겠어?”

“남자는 여자든, 맞으면 아파.”

힉슨은 공, 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가슴속에 깊이 든 피멍은 시간을 아무리 발라도 낫지 않아. 아저씨도 그렇잖아.”

힉슨은 비올라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 힉슨도 알고 있다.

힉슨의 가슴속에도 큰 피멍이 맺혀 있으니까.

괜찮은 척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딸의 얼굴은 점점 더 또렷해져 간다.

“그러니까 진심을 다해 사과해. 그 기회를 줄게.”

결국 힉슨도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3일이 흘렀다.

제논이 피 묻은 단검을 슥-닦아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보다 습격의 빈도가 많이 높은 것 같아요.”

힉슨도 동의했다.

“꽤 훈련받은 놈들인 것 같단 말이지.”

3일 동안 무려 일곱 번의 습격이 있었다.

산맥에 들어온 건 이틀째니까, 사실상 이틀 동안 일곱 번의 습격이 이어진 셈이다.

“그렇고 그런 그냥 산적 놈들은 분명히 아냐. 비올라. 너 나 몰래 어디 가서 사람 죽이고 다녔냐?”

“아니, 그런 적 없어.”

비올라는 생각에 잠겼다.

‘제논이라면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알고 있지만 말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벨라투로서의 자격을 소리 없이 검증하기 위하여.

‘그렇다면 나는… 답을 말해야 해’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새로운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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