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53화 3일간 이어진 일곱 번의 습격.
그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 벨라투의 특사(비올라)가 세알 자작가에 순조로이 도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당히 훈련된 습격자들.
고도로 훈련된 자들은 아니었다.
그 정도 고급 인력을 쓸 일은 아니라는 뜻이고, 꼬리를 밟히기 싫다는 것이기도 했다.
‘벨라투와 세알 자작가가 화해하는 것이 싫으면서, 이쪽에는 고급 인력을 보내지 않는 미지의 세력이라고 하면.
그런 악의 세력이 하나 존재했다.
소설 속에서는 자신들을 일컬어 ‘열풍(熱風)‘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은 힉슨의 딸과 제르미를 납치한 세력이기도 했다.
물론 호기심 왕성한 제르미는 반쯤 자의로 납치당해 준 거긴 하지만….’
소설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제르미는 순순히 납치에 응했다.」
그 호기심이 벨라투가와 팔라일가를 극단적으로 틀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튼 그들은 겨울성과 벨라투를 고립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거 헤론의 믿음직한 전우였던 힉슨을 망가뜨렸던 거고,
‘이쪽에는 고급 인력을 안 보냈고, 대신 세알 자작가 쪽에 고급 인력을 보낼 거야.’
저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 세알 자작가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지.’
그리고 그것을 비올라 자신에게 덮어씌울 것이다.
‘열풍’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 그 시간에 맞추어 세알 자작가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들겠네.”
“잉? 그게 무슨 소리냐?”
“일곱 번이나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을 보내서 우릴 막고 있잖아. 우리의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거야.”
“왜?”
“벨라투가 고립되길 원하는 세력이 있어.”
힉슨은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벨라투가 망하길 바라는 인간들은 널리고 널렸지. 그럼 그런 놈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확신하는 거냐?”
“응. 시간을 계산하는 건 맞아. 문제는 정확히 그 시간에 맞추어 세알자작가를 몰살시킬 수 있느냐는 거야. 물리적으로 힘들겠지? 그만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게 불과 1, 2분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니까. 그사이 우리가 도착해서 증거라도 잡게 되면 난처해질 테니까.”
제논이 비올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치 빠른 그는 비올라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보고 들으라는 소리군요.’
제논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2년 전 비올라가 하얀 벨라투를 선택했을 때, 제논은 솔직히 당황했었다.
누구보다 검은 벨라투에 어울리는 사람이 하얀 벨라투를 선택한다고 하니.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여태까지의 하얀 벨라투와는 너무 다르네요.’
검은 벨라투가 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얀 벨라투를 선택했던 과거의 후계자들과는 결 자체가 달랐다.
누구보다 검은 벨라투로서의 능력이 뛰어나지만, 하얀 벨라투로서의 능력이 그보다 더 뛰어나다.
지금 그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제논이 물었다.
“그러면 그들은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한 다른 방법을 사용하겠군요?”
“그래.”
“혹시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시한맹독.”
현대의 시한폭탄과 비슷한 개념의 독이 몇 가지 존재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급작스레 독이 퍼져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그중에서도 증거가 남지 않을 만한 독은 크게 세 종류. 칠음절독, 열화맹독, 사흘극락독.”
제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힉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저건 또 언제 공부했대?’
벨라투의 후계자들은 독을 직접 공부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들은 독을 공부하고 파훼법을 찾는 대신, 몸에 극독을 주입하여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운다.
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할 필요도 없다.
독을 공부할 시간에 칼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것이 벨라투의 후 계자들이었다.
“너 독은 언제 익혔어?”
“하얀 벨라투잖아. 공부 열심히 해야지.”
훗날 ‘열풍’이 주로 사용하는 독이 저 세 독이다.
‘독마녀가 나중에 엄청 사용하거든.’
독마녀 세르실카.
이 소설 속에는 비올라를 제외한 2대 악녀가 존재하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고, 그에 따라 소설 속에는 상당히 디테일한 설명이 있었다.
“허.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녀석 이네. 그래서? 무슨 독을 쓸 것 같은데? 칠음 뭐시기?”
“칠음절독은 추운 지방 혹은 겨울에만 사용할 수 있는 독이니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
“그럼 열화 뭐시기?”
“열화맹독은 고작 세알 자작가에 쓰기에는 너무 비싸.”
비싸다는 것은 곧 재료가 희귀하다는 얘기이며, 세알 자작가의 식솔들을 몰살시킬 정도의 양을 구하면 꼬리가 밟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추적당하고 싶지 않을 거야.”
이미 힉슨과 폭풍 검 재칼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그들은 더욱더 음지로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러니 추적을 당할 만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결국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사흘극락독이겠지.”
“그건 또 뭐냐? 난 처음 듣는다.”
“사흘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몽롱해져. 그리고 사흘 후에 잠을 자면서 죽게 돼.”
“그런 독이 있어?”
“응. 만들기도 쉽고 효과도 확실한 편이야. 가격도 저렴할뿐더러 증거도 별로 안 남아.”
“완벽한 독이네?”
“근데 그렇지만은 않아.”
비올라가 제논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논은 그 이유에 대해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제논이 숨을 한 번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효과도 확실하고 저렴하지만, 해독이 너무 쉽습니다.”
효과가 발휘되려면 무려 3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3일의 시간 동안 이상을 느낀다면 해독을 해버리면 된다.
독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
“따라서 그저 환각성 마약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편입니다.”
“지금 같은 타이밍에 쓰기 딱 좋잖아. 지금 세알 자작가는 엄청 분주하고 바쁠 거야. 무려 벨라투의 특사가, 그것도 공녀가 직접 내려오고 있으니까. 게다가 세알 자작 내외는 아들을 잃은 충격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거고.”
“그러니까 사흘 뭐시기를 사용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눈치 빠른 몇몇이나 기사들은 빼고, 나머지 인원에게 사용하겠지. 그리고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죽어가는 그들을 칼로 찌를 거야. 범행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야.
타이밍 맞추기도 좋고.”
“그걸 우리에게 뒤집어씌운다?”
“응.”
비올라가 툰드라를 지목했다.
“툰드라, 지금부터 쉬지 말고 뛰어.
혼자 세알 자작가로 가.”
***
툰드라가 도착했을 때는 한발 늦은 뒤였다.
‘주인님 말이 맞네.’
세알 자작가에 몰래 잠입했다.
세알 자작가의 식솔들은 대부분 독에 중독되어 헤롱거리고 있었다.
‘개중 멀쩡한 몇몇이 있기는 한데.”
저들이 오히려 악의 축 같았다.
비올라의 말을 떠올렸다.
‘멀쩡한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들을 의심하고 조심해. 그들이 독을 탔을 확률이 높아.’
비올라의 말이 맞았다.
날카로운 기도가 느껴졌다.
‘숫자는 여덟 정도인가.’
툰드라는 비올라의 말을 충실히 이 행했다.
어둠을 틈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한자리에 모여 자고 있는 네 명을 죽였다.
‘기습이라 쉬웠는데.’
이제 저들도 이상한 기류를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이다!’
순찰을 돌고 있던 한 사람을 공격했지만 함정이었다.
‘윽!’
어깨를 찔렸다.
그렇지만 툰드라는 그 상태로 상대의 목을 쳤다.
어깨를 내주고 목을 취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아직도 셋이 남았다.
모두 처리해야 비올라가 편해진다.
그날 밤.
결국 툰드라는 비올라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헉…… 헉…!’
임무를 완수한 그도 정상은 아니었다.
비올라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 무리를 많이 했다.
‘좀 어지럽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툰드라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세알 자작을 찾았다.
“자작님.”
두터운 이불에서 누군가가 뒤척거렸다.
그가 말했다.
“썩 꺼지거라. 이 야밤에 웬 놈이냐?”
“죄송합니다.”
비올라가 가르쳐 주었다.
‘만약 진짜 세알 자작이라면 당연히 몸을 일으킬 거야.’
‘그렇지만 가짜라면 얼굴을 숨기고 꺼지라고 할 거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또 가르쳐줬었다.
‘절대 방심하지 마. 네가 몸을 돌렸을 때 뒤에서 급습할 테니.’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겠다고 대답하고 물러서는 척하면서 먼저 기습해.’
툰드라는 그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물러가겠습니다.”
몸을 돌리는 척했다.
그러곤 기습하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었다면 당장에라도 기습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이불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당연히 세알 자작이 아니었다.
검끝이 툰드라의 목에 닿았다.
툭!
그 누군가는 땅에 쓰러졌다.
툰드라가 쓰러진 누군가의 뒷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너네만 독 쓸 줄 아는 거 아니야.”
원작과 달라졌다.
원작 속 툰드라는 독침이나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패도를 숭상하는 파괴적인 검을 사용하는 설정값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런 그가 독과 독침술을 익혔다.
‘주인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주인님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혼자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홀로서기를 위해 강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나는 주인님의 반려견이니까.’
반려하기 위하여.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했고, 지금의 툰드라는 원작 속 툰드라보다 더 절실했다.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출혈량이 너무 많았다.
‘어지러워.’
그렇지만 임무는 끝까지 완수해야 했다.
그는 팔뚝에 독침을 찔러 넣었다.
‘끝까지 해낸다.
일시적으로 각성을 시켜주는 효과를 가진 독침이었다.
그의 무의식이 생각했다.
‘내 주인님을 위해서.”
툰드라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 벽앞으로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쩌적-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고 그 뒤에는 의자에 포박된 세알 자작이 있었다.
“공녀님의 말씀대로네요.”
비올라가 가르쳐 줬다.
‘세알 자작은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 사흘극락독을 알아차릴 거야. 그러니까 미리 손을 써놨겠지. 어딘가에 포박해서 감금해 놨을 거야.’
으읍! 읍!
세알 자작이 몸부림쳤다.
“몇 시간 뒤면 공녀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툰드라가 세알 자작을 풀어주었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피를 너무 많이 쏟아낸 터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셔서, 칭찬해 주면 좋겠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임무를 놓치지 않았다.
“레몬과 식초, 그리고 중급 이상의 알미누 가루를 1:1:1의 비율로 섞어 해독제를 만드세요. 당신들은 중독된 상태입니…….”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몇 시간 뒤.
비올라와 힉슨, 제논이 세알 자작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