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56화
“묻겠습니다. 제 아버지의 선택이 틀렸나요?”
“틀리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자작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비올라는 순간, 세알 자작의 몸이 많이 작아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축되고 초라했다.
소설 속에서 말하던 ‘죽음을 불사할 만큼의 올곧은 신념을 가진 귀족’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들의 탈선을 이미 알고 있을 줄이야.
소설 속에서는 언급된 적이 없었다.
‘젤톤은 비첸에게 죽고, 세알 자작은 헤론에게 죽고.’
그게 소설 속 내용이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전혀 모르는 척 굴었던 거야?’
비올라는 잠자코 흐느끼는 세알 자작을 쳐다보았다.
계속 보다 보니 알 것 같기도 했다.
‘귀족 세알 자작보다, 아버지 세알자작이고 싶었던 거야.’
아버지는 아들이 탈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흑마법에 몸을 팔았다는 그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였던 그는 자신의 신념조차 무시하고 아들을 벌하지 못했던 거네.”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미 젤톤은 죽었다.
다시 말해 세알은 아들을 잃음으로써 그 죗값을 치렀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젤톤에게는 아버지가 있었네요.”
흐느끼던 세알 자작이 비올라를 쳐다보았다.
비올라의 말이 의외였다.
‘아버지가 있었다.
세알 자작이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늘 나무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
단단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과한 애정과 사랑을 쏟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에요.”
비올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혹자는 말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지만 부모에게 버려진 한아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당연하지 않았다.
모두가 가지고 있어서 당연한 줄 알지만, 한아린에게는 그 당연한 게 없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방법은 조금 그릇되었을지 몰라도, 자작님의 마음이 숭고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비올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비록 잘못된 부정(父情)이라 할지라도 자작의 사랑은 진짜였다.
‘나는 판사가 아니야.’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흐느끼고 있는, 이미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고, 그건 합당한 벌이 되었겠지.”
이미 그 죗값을 치른 사람을 다그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군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자작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젤톤 공자는 늘 든든했을 거예요.
그러니 겨울성에서 배짱을 부릴 수 있었겠죠.”
흑마법의 부작용만은 아니었을 거다.
젤톤은 자신의 아버지를 믿었다.
그게 나쁜 방향으로 발현이 되어서 그렇지, 아버지에 대한 믿음 자체는 확실했다.
“자작님은 신뢰받던 아버지였어요.”
제게도 그런 아버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제 아버지는 백 밤 자고 찾으러 온다고 해놓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저는 자작님을 판단하지 않을게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에는 공감해요. 자작님이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따뜻한 아버지였던 것은 맞는 것 같네요.”
비올라가 자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자신의 치부를 들킨 자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작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 손은 굉장히 작았지만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올라의 존재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벨라투의 특사, 비올라 벨라투가 전합니다. 벨라투는 젤톤의 흑마법과, 그것을 방치한 세알 자작가에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작가는 이미 가장 크고 괴로운 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작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특사로서 말을 하고 있는 공녀다.
지금의 저 말은 벨라투가가 세알가에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예의를 취했다.
“저. 비올라 벨라투는 아버지로서의 숭고한 마음과, 아버지로서의 선택을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세알 자작가에도 요청합니다.”
비올라가 무릎을 굽혔다.
세알 자작과 눈높이를 같이 했다.
“제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지 않으렵니까?”
세알 자작의 몸이 움찔했다.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제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입장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겨울성을 다스리는 위대한 군주이자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는 최초의 방패이며 벨라투의 수장이시지만, 그전에 사람 헤론이며, 여러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아버지는, 젤톤과 그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공작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제 아버지는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자작가의 명예는 땅에 곤두박질칠 테니까요. 제가 하는 모든 말은 제 스스로 생각해 낸 말입니다.”
소설이랑 작가님의 설정집을 보고요.
아버지한테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 맞는 말일 거예요.
어쨌든 작가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니까.
“그러니 판단은 온전히 자작님의 선택입니다.”
비올라가 몸을 일으켰다.
스르르 손을 뺐다.
“특사제 요청을 받아들이신다.
면, 벨라투와 세알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성립될 것입니다. 받아들지 않으신다면, 벨라투와 세알은 적이 되겠지요. 세알은 벨라투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대신 한 가지를 약속해 주었다.
“혹여 전쟁을 선포할지라도, 자작가의 명예는 지켜 드릴 것입니다.”
헤론 벨라투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세알은 죽이되, 벨라투에게 전쟁을 걸어온 그 기개를 높이 사서 명예는 지켜주었을 것이다.
제논이 남몰래 웃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네요.”
사실상 세알 자작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세알 자작이 ‘이미 알고 있었다’라고 자백한 순간부터, 승기는 비올라에게 있었다.
요청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비올라의 말은 통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세알 자작에게 선택권을 준 것 같지만, 사실상 선택권은 벨라투에게 있군요.’
세알 자작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 자세로 한참이나 엉엉 울었다.
그것은 자책의 눈물이었다.
그릇된 아비의 사랑이 아들을 망쳐버렸다는 자성의 눈물.
“감겨 있던 제 눈을 다시 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올라 벨라투공녀.”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아들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세알 자작을 더욱 괴롭게 했다.
“그리고…….”
벨라투 공녀가 아닌 사람 비올라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아버지였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 말은 목이 메어 나오지 않았다.
***
이틀이 흘렀다.
제논은 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마법 통신을 이용하여 간이 보고를 올릴 예정입니다. 정식 보고는 돌아가서 직접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공녀님.”
“나한테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
너는 네 일 해.”
“그래도 공녀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걸요?”
제논이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제논 네 마음에는 들었어?”
“제가 감히 어찌 그것을 판단하겠습니까?”
“판단해 봐.”
제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더 이상 아름다운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벨라투의 권위와 명예를 잃지 않으면서, 세알 자작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세알자작 쪽에서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제논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공녀님의 가면에 진심으로 감탄하였습니다.”
“가면?”
“네. 공녀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릇되었지만 숭고한 부정이라.”
제논은 당연히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숭고한 것이어도 그릇되었다면, 더 이상 숭고하지 않다.
‘제가 여태껏 봐온 공녀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벨라투 공녀라면 그렇다.
저분은 그 유명한 철혈의 벨라투다.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을 근거로 행동하시는 분.
‘어떻게 하면 상대를 철저하게 농락하고 함락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러한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보고서. 보여 드릴까요?”
“그 보고서가 나를 위한 거야?”
비올라는 제논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원작 속에서도 끝까지 비올라를 시험하는 사람이 제논이다.
저렇게 사람 좋은 표정과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대뜸 보여달라고 하면 실망하겠지.
제논이 대답했다.
“보고서는 공작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럼 너는 네일 해.”
“보여 드리고 싶은데……….”
제논은 진심이었다.
비올라에 대한 시험 따위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논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저. 지금, 칭찬받고 싶은 겁니까?’
이렇게 보고서를 잘 썼습니다.
그러니 보고 칭찬해 주세요.
그런 기분이었다.
제논 스스로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날 밤.
제논은 마법 통신구를 사용하여 보고서를 전송했다.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상대의 감성을 건드려 회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판단됩니다.
정반대 편의 인간상. 다시 말해, ‘공감 능력이 매우 높고 따뜻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인간상’을 철저하게 연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올라 벨라투 공녀는 하얀 벨라투로서의 능력이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였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자작의 귀를 자른 대범함과 실력을 보았을 때, 검은 벨라투로서의 능력도 매우 출중하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하얀 벨라투로서의 철저한 계산 속에 이루어진 계획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검은 벨라투로서의 능력도, 하얀 벨라투로서의 능력도, 모두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집사 제논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분명히 합니다.]
보고서를 전송한 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응?’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저만치 아래.
누군가의 기운이 느껴졌다.
적어도 세알 자작가의 기운은 아니었다.
이 기운은 분명 훈련받은 자의 것이었다.
‘누구?’
그 기운이 비올라의 침실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