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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69화 (69/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69화그의 이름은 켈-베론이었다.

정령 중 켈이 성이고 베론이 이름이었다.

정령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이름을 갖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켈’의 성을 가지고 태어난 정령들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네 성이 뭐야?]

[내 성은 켈이야.]

[우와. 정말 켈-이야?]

정령들은 새로운 켈-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럼 네가 커서 정령 왕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너는 어떤 정령 왕이 되고 싶어?]

[나는 아주아주 위대하고 강력하고 엄청 멋있는 정령 왕이 될 거야.]

‘켈’의 성을 가지고 태어난 정령들은 정령 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령이었다.

몇몇 정령은 켈-베론의 존재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름이 베론이라고?]

[응. 켈-베론.]

[베론이라는 이름이 너무 불길한데.]

[베론은 악마들의 이름이잖아.]

정령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는 이름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베론이었다.

베론은 아주 오래전 정마 대전에서 정령들을 학살한 고위 마족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베론이라는 이름은 불길하고 두려운 것으로 통했다.

[켈의 성과 베론의 이름을 이은 정령이라니?]

[끔찍한 피의 정령 왕이 되는 거 아니야?]

갓 태어난 켈베론은 느낄 수 있었다.

정령계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정령들은 켈-베론을 싫어했다.

켈베론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정령계를 탈출하고 싶었다.

마침 정령 문이 보였고 켈베론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문밖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위대한 정령 왕이 될 거다!]

슬프게도 그 어떤 정령도 켈베론을 잡지 않았다.

켈베론은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정령 왕이 될 정령이니까.

이런 걸로 슬퍼하면 위대하지 않다.

고 자부했다.

“음?”

그런데 어떤 소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소녀에게 호기심이 있었다.

“정령 친화력이 뭐 저렇게 높아?”

정령이 보는 세상은 인간이 보는 세상과는 좀 달랐다.

켈베론에게 있어서 소녀는 거인처럼 보였다.

“장난을 좀 쳐볼까?”

그래서 소녀에게 다가가 장난을 쳐봤다.

기억을 읽고 환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으어어어억!”

그런데 켈베론은 자신의 몸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엄청난 흡입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소녀의 정신 세계에 갇혀 버렸다.

정령 친화력이 너무 높아서 정령을 빨아들여 버린 상황이었다.

“사, 살려줘!”

이곳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이 소녀의 정신 세계를 부숴야 했다.

부수든,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든.

그래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헤집어야 했다.

‘이, 이거다!’

한국.

교통사고.

응급실.

강한준.

사실 이것들이 뭔지도 잘 몰랐다.

어떻게든 뚫어내야 했다.

여기서 흡수되어 소멸할 수는 없었다.

“나는 태어난 지 여덟 시간밖에 안된 켈-베론이다!”

위대한 정령 왕이 될 자가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살아났다.

켈베론은 저 거인처럼 보이는 소녀가 조금 두려웠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으, 으억!’

목에 단도가 닿았을 때는 정말 무서웠다.

또 저 무시무시한 세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결국 켈베론은 비올라가 시키는 대로 안내했다.

‘치, 치욕스러워.”

위대한 정령 왕이 될 자신의 뒤통수를 부여잡다니.

머리카락이 전부 빠져 버릴 것 같았다.

‘두고 보자!’

정령계의 힘이 조금만 돌아오면!

그러면 아주 무섭게 혼을 내주겠어!

정령의 힘이 조금 복구되었을 때 무시무시하게 혼을 내려고 했으나, 그는 제르미에게 제압당했다.

‘이, 이건 또 뭐야!’

정령의 눈으로 본 제르미는 개미처 럼 작았다.

정령 친화도가 낮아서 그랬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또 거인처럼 커져 있었다.

인간들에게 존재한다는 마나인 것 같았다.

“얌전히 있어.”

“트, 특별히 그렇게 해주지.”

켈베론은 두렵지 않은 척 무덤덤한 척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시선은 제르미의 검을 향했다.

인간들의 마도 병기는 참 무서운 거구나.

위대한 정령 왕이 될 때까지는 참아야겠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법진이 활성화되었다.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이 활성화되자 켈베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자신감이 차올랐다.

“무섭게 혼을 내주마!”

마치 정령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웅혼한 기운과 강대한 권능이 자신의 몸에 깃드는 것 같았다.

“너희 둘은 감히 켈베론의 뒤통수를 잡아끈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후후후.

위대한 정령 왕 후보.

줄여서 정령후의 힘을 보여주마!

“내가 바로 정령후…… 응?”

그러나 그의 호기로운 외침은 끝을 맺지 못했다.

“어어어어어?”

어딘가에 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린 정령후 켈베론은 알지 못했다.

정령 친화도가 말도 안 되게 높은 인간의 주변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

마법진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소설로는 많이 봤던 것이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현대의 화려한 조명에 익숙한 비올라이기에 아주 놀랄 것은 또 아니었다.

대신 정령이 떠들어대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뭐라는 거야?’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열심히 외치고는 있는데 이곳의 마나 파동이 너무 심해서 안 들렸다.

아기들의 옹알이처럼 들릴 뿐이었다.

‘음?’

비올라가 놀란 건 마법진의 활성화가 아니었다.

‘이게 뭐야?’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푸른 머리 정령이 비올라 앞으로 끌려왔다.

“내 이름은 켈베론, 나와 계약하겠어?”

비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영 어색하고 이상했다.

마치 말을 하기 싫은데 억지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계약? 갑자기?”

“나와 계약하겠어?”

켈베론은 다른 말은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마법진이 윙윙거리며 마나를 뿜어 댔고 정령계로부터 거대한 정령력이 새어 나왔다.

“다시 물을게. 나와 계약하겠어?”

그런데 문득, 비올라는 이상함을 느꼈다.

켈베론이라는 이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켈베론?’

비올라가 고개를 번쩍 들고 켈베론을 쳐다보았다.

푸른 머리. 푸른 눈동자.

‘헉, 그 켈베론이 이 켈베론이야?’

켈베론.

이 정령은 굉장히 유명한 정령이었다.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무자비하고 강력한 악당 중 한 명인 ‘하이 디’를 수호하는 정령.

‘물의 정령 왕?’

하이디는 잔학무도한 범죄 행위와 학살을 여러 번 저지른다.

제국에서도 추포령을 내려 쫓았고, 심지어 몇 번이나 하이디를 생포했었다.

‘생포가 끝이었지.’

그 어떤 마도 병기와 마법, 무기로도 하이디를 공격할 수 없었다.

물의 정령 왕인 켈베론이 하이디를 수호했기 때문이다.

‘그 켈베론이 이 켈베론이야?’

비올라가 미소 지었다.

“물론이지.”

그 말에 켈베론은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왜, 왜 계약을 이렇게 쉽게 해!

나는 널 무시무시하게 혼내겠다고 선언했단 말이야.

‘이, 이거 아닌데?’

사실 켈베론은 비올라가 두려웠다.

아까 정신 세계에 갇혀 허우적댈 때는 익사하는 줄 알았다.

물의 정령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무서운 기분.

비올라와 계약하면 그 기분을 또 느끼게 될 것 같았다.

비올라라는 거대한 심해에 갇혀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저 미소가 악마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다, 다, 다, 다시 확인할게. 정말 계약할 거야?”

비올라는 조금 의아했다.

켈베론은 계약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비올라 자신을 좀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난 켈베론을 좋아해.”

“왜, 왜?”

그야.

훗날 정령 왕이 되어서 계약자를 수호해 주는 수호령이니까!

“좋아하면 안 돼?”

“나, 나는 네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려 했는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렴 어때.

물의 정령 왕이 먼저 계약을 제시했다.

이건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거다.

“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비올라가 또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르미는 조금 황당했다.

‘비올라가 웃네?”

가면을 쓰고 농락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웃는 것 같았다.

제르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켈베론을 관찰했다.

켈베론의 어느 부분이 비올라의 마음에 쏙 든 것일까?

비올라가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웃는 것은 처음 봤다.

비올라와 친해지고 싶은 제르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염색을 해야 하나?’

푸른색 머리카락으로 염색하면 비올라가 좋아해 주려나?

제르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계약하자, 켈베론.”

***

쏴아아—

켈베론의 몸이 녹아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렸다가 거대한 물방울이 되어 비올라의 몸을 덮었다.

포근하네.’

물속에 갇힌 느낌이지만 숨을 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온몸으로 스파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속 세계…… 뭐 그런 건가?’

어느덧 제르미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따뜻한 바닷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랑 계약이 완료됐…… 어.”

어딘지 모르게 켈베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비올라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와의 계약이 싫어? 계약하면 정령으로서의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뽀글뽀글.

앞에서 물방울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아까 소년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는 어딘지 두려워하며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아, 아무튼 우리는 계약이 완료됐고, 나는 네 수호 정령이 됐어.”

“좋은 일이네.”

비올라가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켈베론은 히, 힉! 기함을 토하며 뒤로 멀어졌다.

“소, 손은 됐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남녀가 유별한데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정령에도 성별이 있어?”

켈베론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게. 나한테는 성별이 없지.”

켈베론은 비올라가 더욱더 두려워졌다.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 신생 정령이 스스로 성별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남성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버렸다.

‘이게 다… 네 말도 안 되는 정령 친화력 때문이잖아!’

저 정신 세계에 갇혔고, 그 정신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강한준’을 건드렸다.

‘강한준’은 그 정신 세계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준’은 남성체였고 그 기억이 지금의 켈베론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쳐 버렸다.

켈베론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놈의 오기가 뭐라고.’

처음 정신 세계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도대체 한국이 뭐야?]

[그러면 네가 강한준?]

일부러 오기를 부리며 굳이 비올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의 켈베론은 스스로 두려움을 마주하여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정령 왕이 될 사내…… 아니. 아니지. 정령 왕이 될 정령이니까!’

그렇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이제 도망칠 수도 없다.

까딱 잘못하면 계약자의 정신 세계에 빨려 들어가 교통사고를 당할 것 같았다.

한편, 계약자가 된 비올라는 켈베론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켈베론은 분명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어마어마한 악당인 하이디를 수호하는 위대한 수호령. 켈베론은 그런 수호령이 되어주어야 했다.

행복하고 안전한 노후를 위하여!

“켈베론.”

켈베론을 따뜻하게 어르고 달랠 방법.

독자였던 비올라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왜, 왜?”

“인간과 계약하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였어?”

켈베론은 생각해 봤다.

해보고 싶은 거.

분명히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말하기 부끄러웠다.

위대한 정령 왕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원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소박한 소원 같은 거 없어.”

“소박하다고는 말 안 했는데.”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우리 같이 예쁜 꽃에 물 주지 않을래? 우리 집에 엄청 큰 마거리트꽃밭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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