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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80화 (80/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80화

“비올라 공녀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만….”

“물어봐.”

“혹시 대형견을 키우십니까?”

“대형견?”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웬 대형견?

“예. 문밖에서 주인이 오기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아. 이름은 툰드라야.”

“……그렇군요.”

에르사는 툰드라에 대해 잘은 모른다.

집사로 활동한 지 이제 갓 1년이 되었고, 1년 동안 헤라와 함께 거의 벨라투가 밖을 돌아다니며 집사로서의 일을 배웠다.

헤라는 하얀 벨라투이자 테라 상단의 주인이었으며, 그에 따라 외부일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소망하는 반려검의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런 느낌일 줄은 몰랐다.

문밖 너머의 기척은 분명히 가련한 강아지의 것이었다.

마나를 통해 기척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다.

대형견 한 마리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가 어떤 정도인데?”

에르사는 마나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었고 마나를 통해 상대의 감정 상태를 일부나마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에르사는 그것을 일컬어 ‘마나가 속삭인다’ 라고 표현했다.

“마나가 속삭임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자면….”

에르사는 눈을 감았다.

마나의 속삭임에 더욱 집중하여 문밖의 기척을 읽어냈다.

“언제 와요? 왜 나 혼자 둬요? 빨리 와요, 보고 싶어요, 나 여기 있는데.”

“……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하나 너머일 뿐인데도 저러고 있단다.

비올라는 약간 황당했다.

개로 삼는다고 했더니 진짜 강아지처럼 굴 줄이야.

“진짜 그런 속삭임이 들린단 말이지.”

“네. 들려요. 그런데 툰드라에게서는 아주 특별한 형태의 속삭임이 느껴져요. 본인도 제대로 모르는 감정같아요. 말하자면……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비올라는 점점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본능이란다.

본인이 모르는 감정을 가지고서 그냥 문 앞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 .

리고 있단다.

‘무슨 지가 진짜 개야?’

툰드라의 상태는 그야말로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는 어린 강아지 상태인 것 같았다.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반려검, 실제로 그 기운을 경험하니 굉장히 재미있네요. 문밖에서 비올라 공녀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에르사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이런 느낌의 속삭임은 처음이었다.

본능적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본능적인 기다림’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

“이 본능적인 기다림 자체가 영혼어딘가 아주 깊은 곳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마치 비올라 공녀님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그러라고 만들어진 사람.”

“…내 개니까.”

“아뇨.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예비된 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비올라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툰드라는 강한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비올라 자신을 위해 예비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네 특별한 감상은 잘 들었어. 아주 잠깐, 문밖 너머 사람의 기척을 읽어낸 것치고는 지나치게 디테일하네.”

“혹시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에르사가 허리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채 말했다.

“다만 저는 이 특별한 속삭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린 거랍니다.”

에르사는 이 특별한 형태의 속삭임.

그러니까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된 본능적인 외침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고 있더라고요.”

반려검 툰드라가 비올라에게 맹목적인 감정을 보이듯.

에르사는 그녀의 딸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툰드라가 비올라를 위해 예비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듯.

에르사 자신은 딸을 위해 준비된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비올라가 피식 웃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이렇게?”

에르사의 몸이 흠칫했다.

잠든 딸의 머리맡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늘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똑같은 말을 비올라로부터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네 딸은 행복했겠네.”

“공녀님도 마나의 속삭임이 들리시나요?”

“안 들려.”

냄새는 느껴져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네가 어떻게 언니의 집사가 되었는지 경위 정도는 알고 있어. 특별한 속삭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고, 네가 그것을 외치고 있다고 했으니, 네가 딸에게 무슨 말을 하며 살아왔을지, 네가 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정도는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잖아.”

“………그렇군요.”

“어쨌든 내 말은 진심이었어. 네 딸은 행복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에르사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일이 바빠서.

네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서.

엄마는 네가 더 행복하면 좋겠으니까.

그래서 밤낮없이 일했다.

그래서 딸과의 시간을 희생해야 했었다.

추억을 희생한 엄마가 정말 좋은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네 딸은 행복했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엄마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든든하거든.”

비올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거짓말 아니야. 내가 잘 알아.”

한아린일 때부터 절절하게 느껴왔다.

남들에게 다 있는 엄마 아빠가, 나한테만 없었다.

없어서 더 잘 알았다.

“마나의 속삭임이 들린다고 했지?

내 감정이 느껴져?”

순간, 에르사의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무엇인가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에르사의 가슴을 때렸다.

열두 살 비올라가 경험한 무수한 시간들이 에르사 자신을 때리는 것 같았다.

12년의 시간이 12년 같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깊고 어두웠다.

‘마치…… 툰드라처럼.’

’툰드라와 비슷한 것 같았다.

툰드라가 아주 오래전부터 비올라를 위해 예비된 사람인 것 같았던 것처럼.

비올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사람 같았다.

둘 다.

마치 다른 인생을 경험한 것처럼 감정이 깊고 뜨거웠다.

“나는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지만 네 딸은 달라. 네가 옆에 있을 때는 한없이 든든했을 거고, 네가 며칠씩 집을 비우면 한없이 두려웠을 거야.

있다 없으면 더 힘들고, 없다 있으면 더 행복하거든.”

“…….”

“네 딸은 무섭고 외롭기도 했겠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하고 즐거웠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헤라는 팔짱을 끼고서 비올라와 에르사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맨 처음 대화는 에르사가 주도했으나 어느샌가 비올라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있었다.

그런데 비올라가 말을 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네. 우연치고는 묘해.”

비올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힉슨 경도 딸을 잃었고, 에르사도 딸을 잃었네. 그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재칼 경의 아들인 제르미도 납치되었었고.”

빈민가나 치안이 나쁜 곳에서의 납치 및 인신매매는 워낙에 흔한 일이다.

그러나 힉슨과 에르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빈민가에서 살지도 않았고 툰드라처럼 외진 산골 마을에서 살지도 않았다.

게다가 힉슨과 에르사는 뛰어난 무인이었다.

“그냥. 그렇다고.”

***

비올라가 마차를 타고 떠난 후, 툰드라는 한참이나 멍하니 앞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냐?”

실제로 툰드라는 멍했다.

집사도 같이 가고, 심지어는 세이 반 마르코스라는 작자도 같이 가는데.

왜 나는 같이 가지 못할까.

나도 같이 가고 싶다.

지금이라도 같이 간다고 말하면, 공녀님이 싫어하실까?

공녀님이 싫은 건 싫어.

근데 같이 가고 싶은데. 어떡하지?

여긴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며 멍하니 마차가 사라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야! 스승의 말 안 들려?”

기다려 주는 것도 1, 2분이지.

너무 오래 저러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스승님. 혹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요?”

“한 시간 22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제 주인이 떠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반려견이라. 내가 말 안 걸었으면 하루 내내 그러고 서 있었겠다?”

“이러한 현상을 분리 불안이라 합니다. 책에서 봤습니다.”

“그래. 어련하시겠냐?”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낸들 아냐? 옷이랑 장신구를 사러간다고 하니까 금방 오겠지?”

“산세가 많이 험하다고 하던데요.”

“설마 걱정하는 거냐?”

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힉슨 입장에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 비올라를 걱정한다고? 걔가 하얀 벨라투로 전향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었으면 너 정도는 찜 쪄 먹었어. 그깟 산세 험한 게 무슨 대수라고.”

“그건 그렇지만…….”

“정신 차려, 자식아.”

힉슨이 툰드라의 뒤통수를 탁! 때렸다.

사실 힉슨은 툰드라의 마음 자체는 충분히 이해했다.

힉슨은 귀부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반려인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반려견 심리 백서(반반백서)‘라는 책을 비밀리에 구해서 탐독하는 중이었다.

[제7장. 반려견의 속마음.

반려견은 주인을 늘 걱정한다. 주인이 외출하면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그립고 보고 싶으면서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반려견의 습성이다.

그것이 심해지면 분리 불안이라 표현한다.]

그 내용을 떠올린 힉슨은 머리가 아파왔다.

‘지가 무슨 진짜 개야?”

힉슨이 물었다.

“야. 너 혹시 반반백서 아냐?”

“예. 제가 읽고 있는 책입니다. 분리 불안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훌륭한 명서더군요.”

힉슨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편, 비올라 일행은 3일이나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에르사가 안내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를 두고 이동관문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동 관문을 타고 이동했다.

파르아산 근처의 소도시 에피에르에 도착했다.

“여기서 하루 휴식을 취한 뒤 내일은 마법사와의 미팅이 있습니다.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하루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9시.

헤라와 비올라가 1층 로비로 내려 갔다.

이곳에서 마법사와의 미팅이 있을 예정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제6마탑 소속 대마도사 멀룬 님의 12방계에 속해수련했었던 크롬슨이라고 합…….”

로브를 뒤집어쓰고 오른손에 크리스털 지팡이를 든 남자였다.

그 남자는 황당한 듯 로브 모자를 뒤로 넘겼다.

나이는 약 40세 전후.

마법사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크게 유별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남자였다.

“이봐. 집사.”

에르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유명한 벨라투의 공녀님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뭐야, 이 새파랗게 어린 핏덩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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