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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83화 (83/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83화비올라의 눈에 짙은 눈썹을 가진한 미남자가 보였다.

짙고 또렷한 눈매와 쌍꺼풀.

오뚝한 콧날과 조각 같은 턱선을 가진 그는 척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푸른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의 제복은 면이나 폴리 등이 아닌 가죽 소재로 되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더웠다.

「그는 루이바르텐가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늘 루이바르텐가 특유의 로고가 새겨진 푸른 제복을 입고 다녔다.」

루이바르텐가.

파에르 자작령에서도 아주 유명하고 유서 깊은 명인 가문이었다.

루이바르텐가에서 생산하는 모든 물품은 명품이라 불리며 부르는 게 값이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일컬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고 표현하였는데, 훗날 이는 모델 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세르폰.

루이바르텐가의 차남이었다.

‘세알 자작가를 파탄 낼 뻔했던 요주의 인물.’

세알 자작 부인을 유혹하여 세알자작가를 파탄 내고, 훗날 대마법사벵가스를 탄생시키는 희대의 바람둥이.

‘얼굴은 진짜 잘생겼네.”

훤칠하게 큰 키와 뽀얀 피부.

외모만 보면 확실히 혼자만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림체가 달라.

게다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제복차림 때문에 눈에 확 띄기까지 했다.

제논이 물었다.

“공녀님? 아는 분이라도 발견하셨나요?”

“아니.”

비올라는 세르폰에게서 시선을 거 두었다.

비올라는 세르폰이라는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혐오에 가깝게 싫어했다.

‘손꼽을 정도로 지독한 바람둥이.

세르폰이라는 캐릭터는 잘난 외모와 뛰어난 화술.

그리고 몸에 밴 매너를 바탕으로 많은 여인을 유혹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 “세상의 모든 레이디는 사랑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어요.”」

다만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던 한아린에게는 느끼함을 넘어 다소 끔찍하고 민망한 멘트를 많이 던지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까 당신도 날 좋아하는 게 당연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도둑이 틀림없어요.

하늘의 모든 별을 훔쳐서 당신의 눈에 넣었으니.”」

파르아산에 존재하는 쉼터들은 대부분 커다란 오두막 형식을 띠고 있었다.

방이 제대로 나누어져 있지도 않았고 아주 커다란 방 하나에 모든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곳에 불과했다.

많은 영애가 세르폰을 힐끗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얘들아, 저쪽에는 눈길도 주지 마.

쟤 가정 파탄이 취미야.’ 세르폰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은 외롭고 소외된 부인들이더군요.”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군요, 후작 부인.”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원작 속에서 세알 자작가가 비극을 맞이하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세르폰에 대한 질 낮은 소문이 귀족가 사이에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무투(武鬪)의 명가 브란디아 공작가의 안주인인 푸릴케공작 부인까지 유혹하여 밤을 함께 보내기에 이른다.

그것이 그의 최후의 밤이었다.

최후의 밤을 보낸 그는 결국 브란 디아 공작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브란디아 공작은 단 한 번의 주먹으로 세르폰의 두개골을 부숴 버리 는데, 죽기 직전 세르폰은 통쾌하게 웃었다.

「“당신이 부인을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부인을 외롭고 초라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외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결정적이 차이입니다.”

“당신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기술을 익혔고, 나는 여인을 상대하는 다정한 마음을 익혔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그 유명한 ‘세르폰의 유언을 남긴다.

「“이 땅의 모든 여인을 위하여 나의 죽음을 바칩니다.”

“그대들은 자유롭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비올라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어도 한아린의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했던가.

한아린의 관점에서 세르폰은 그저 여자라면 물불 안 가리고 유혹하여 함께 밤을 보내는 바람둥이에 불과했다.

근데 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까.

‘우리 쪽이 아니겠지?’

그런데 느껴졌다.

세르폰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레이디의 눈동자에 취해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군요.”

세르폰의 시선이 에르사를 향하고 있었다.

**

세르폰이 제자리로 돌아간 뒤, 제 논이 말했다.

“공녀님. 세르폰 공자의 제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세르폰은 비올라 일행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파르아 자작령에는 입구가 세 개가 존재했다.

이름하여 골드 로드와 실버 로드.

그리고 브론즈 로드였다.

골드 로드는 오로지 파르아 자작령의 명가와 그 직계 존속들.

그리고 그들의 초대를 직접 받은 이들만이 빠르게 출입할 수 있는 문이었다.

그 어떤 고위 귀족이라 할지라도 파르아 자작령에 속한 명가의 초대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었다.

이것은 파르아 자작령을 선포했던 황제의 지엄한 지상 명령이었고, 설령 당대의 황제라 할지라도 허락 없이 골드 로드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헤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올라. 너라면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왜?”

“너는 분명 철혈의 공녀이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세르폰의 제안은 분명 파격적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비올라 일행을 ‘루이바르텐가의 손님’으로 대우하겠다는 것이었다.

“입장 수속과 관련된 절차를 모조리 무시할 수 있고 적어도 3일 정도의 시간은 더 확보할 수 있는 데다가, 파르아 자작령 내에서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는 제안이잖아.

루이바르텐가의 상점에서도 VIP 대접을 받을 거고.”

세르폰 공자와 함께라면 그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원래 비올라 일행은 실버 로드를 통해 파르아 자작령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실버 로드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입장 경로였다.

대부분의 귀족이 이 길을 이용하였다.

비올라가 말했다.

“나는 세르폰 공자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킥.”

헤라는 또 웃고 말았다.

저런 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올라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에르사에게 개수작을 부리는 게 뻔히 보이잖아.”

“그러면 안 돼?”

“안 되지.”

“왜?”

세르폰은 비올라 일행을 가문의 초대 손님으로 대접하는 대신, 에르사와 데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건 안 될 말인데.’

비올라는 에르사의 사정도 다 알고 있고 세르폰의 성향도 다 안다.

비올라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에르사도 물었다.

“어째서 안 되는 건지 여쭤보아도 괜찮을까요?”

“내 언니. 헤라가 불행해질 것이 싫으니까.”

헤라와 에르사의 몸이 동시에 움찔했다.

그녀들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내 불행?”

“저희 공녀님의 불행이요?”

두 여인의 시선이 비올라를 향했다.

헤라는 마냥 기쁘지 않은 듯했다.

“마음과 말은 고맙지만, 내 불행을 네가 어떻게 판단한다는 거지?”

헤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대답을 신중하게 해줘, 비올라.”

어찌 보면 헤라에게 모욕적인 말일수도 있었다.

세르폰의 제안이 어째서 헤라를 불행하게 만든단 말인가.

비올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헤라 역시 벨라투였다.

충분한 근거와 명분이 없다면, 비올라의 말은 벨라투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말이기도 했다.

스스로 불행을 통제할 수 없는 나 약한 벨라투라는 말로도 해석되니까.

“나는 언니는 믿어. 그렇지만 에르사는 아직 그만큼 못 믿어.”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네 잘못은 아니야. 잘못은 네 전 남편이 했지.”

비올라는 에르사라는 캐릭터가 왜 혼자서 딸을 키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힉슨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들도 많이 있었지만, 반대로 에르사의 남편같이 무능하고 최악인 캐릭터들도 존재했다.

에르사의 남편은 임신한 에르사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 어떤 독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에르사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에르사가 산적들로부터 남편을 구해냈을 때였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뛰어난 무인이었던 에르사는 위험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산적들로부터 남편을 구해냈고, 그 과정에서 에르사는 꽤 깊은 상처를 입었다.

독자였던 한아린은 그 캐릭터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에르사가 남편에게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감사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그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에르사에게 상처를 준다.

「“당신은 정숙하지 못해. 여인의 몸으로 사내들 흉내나 내고 말이야.”」

그날 밤.

남편은 에르사가 잠든 틈에 도망친다.

“이건 내 생각인데, 네 남편이 도망치던 그 어두운 밤. 너는 잠들지 않았어.”

에르사는 기감이 뛰어난 무인이었다.

그런 무인이 남편이 도망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비올라는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있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말을 이었다.

“너는 두꺼운 이불 속에서 그냥 숨죽여 울고 있었겠지.”

“그 비겁하고 옹졸한 놈의 잘못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실수해서. 너무 무서운 모습을 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했을 거야.”

정확한 지적에 에르사는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만약 나였다면 그자의 혀를 잘라버렸을 거야. 그런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숨죽여 울면서, 그냥 그놈이 떠나가게 두었어. 왜 그랬을까? 그건 네가 그 형편없는 놈을 사랑했기 때문이야.”

한 가지는 확실히 해주었다.

“네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야.”

그 말이 그녀의 심장에 깊이 박혔다.

에르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 잘못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그놈을 죽여 버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비올라는 가슴이 아팠다.

에르사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데, 왜 그 가슴속에 아물지 않는 피멍을 이고살아간단 말인가.

나쁜 놈은 그놈이다.

“울지 마. 네 사랑은 숭고했어. 너는 엄마였고, 위대했어.”

그녀는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언젠가 그놈을 만나게 되면 혀를 잘라줄게.”

한아린 입장에서 에르사는 너무 아름다워서 바보 같은 캐릭터였다.

“나는 네 상처가 느껴져.”

가족에게 버림받는 그 비참한 기분.

비올라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큰지.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그 고통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그와의 분신을 그토록 사랑했지. 어리석게도.”

헤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에르사는 어리석고.”

에르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에르사의 눈빛이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을 들켜 버린 사자 같았다.

“지나치게 따뜻해.”

“검귀에게 따뜻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내 눈에는 세르폰이 감히 그 상처를 덮어주는 척을 할 것 같았어. 에르사의 어리석고 따뜻한 부분을 노려서.”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세르폰은 에르사에게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것이고, 정과 사랑에 굶주린 에르사는 그 달콤함에 잠시 취하게 될 것이다.

잠깐의 꿀을 선물한 세르폰은 또다른 꽃을 찾아 떠나가겠지.

세알 자작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전지적이나 다름없는 독자 시점에서 보았을 때 기정사실이었다.

“나는 내 언니의 사람이 또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여기까지가 사람 비올라로서 한 말이었고, 비올라 벨라투로서의 말을 꺼냈다.

“정확히는 집사로서의 역할에 지장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잠시 생각에 잠겼던 비올라가 입을 열었다.

“언니. 에르사를 잠시만 빌려줄 수 있겠어? 둘이서 할 얘기가 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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