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87화약 1년 전.
카를로는 대륙 북방에 위치한 ‘난 쟁이들의 버려진 광산’을 찾았다.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광물인 린다를 보았다는 목격담 때문이었다.
검은빛이 번쩍번쩍 난다고 했다.
검은빛이 나는 린다는 1,000년에 한 번 구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희귀 광물이었다.
카를로는 반드시 린다를 얻고 싶었다.
광산 입구 앞.
‘왠지 불길한데.”
동굴 형태의 입구로부터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광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광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것은 ‘뮤지니아’라는 꽃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뮤지니아는 식인 꽃으로서 노래로 사람을 현혹하여 다가오게 만든 뒤집어삼키는 꽃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때, 도와준 사람이 헤라와 헤라의 집사였다.
헤라의 집사가 뮤지니아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으, 으허어억!”
휠체어에 앉은 헤라는 나자빠진 카를로를 보며 말했다.
“호위기사도 없이 이곳을 찾는 얼간이가 있었네요.”
겨우 정신을 차린 카를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 여긴 도대체………?”
“버려진 광산의 심부, 당신은 루이 바르텐의 수석 디자이너님인가요?”
헤라는 경고했다.
“돌아가는 게 좋을 거예요. 벨라투의 4공녀가 광석 하나 얻자고 이곳으로 온 게 아니니.”
“안 됩니다. 저는 린다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럼 좋을 대로 하세요.”
뮤지니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마물 비하스가 존재하지만 그런 것쯤은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그 말은 삼켰다.
그리고 7일 뒤.
“으아아악!”
카를로는 마물 비하스를 만났다.
비하스는 얼굴 없는 사신이라 불리는 상급 마물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한 길목에서 그는 헤라와 다시 마주쳤다.
“사, 사, 살려주세요.”
“제 임무는 비하스의 존재 유무를 살피고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본가에서 보다 강한 무인들이 토벌대로 참여하게 된다.
“저는 비하스와 싸울 이유가 없지요. 비하스는 지나치게 위험한 마물이니까. 저는 비하스를 확인했으니 이제 돌아가면 돼요.”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선택은 그대가 했습니다.
헤라는 발길을 돌리려 했다.
카를로 수석은 여기서 죽겠지만 헤라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비하스와 싸울 수도 없었다.
집사 혼자서 비하스를 토벌하기는 어려웠다.
“돌아가자.”
그러나 헤라의 집사는 헤라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카를로 디자이너. 그대는 목숨으로 은혜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집사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헤라를 끝까지 도울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마침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임자도 알아낸 상태였다.
검귀(劍鬼)를 집사로 선택하십시오.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자신이 없어져야 검귀가 집사로 들어올 수 있다.
자신이 헤라의 유일한 오점이라 생각했다.
‘비올라 공녀였다면 진작에 저를 내쳤겠지요.
그러나 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헤라에게 집사는 충성을 맹세했다.
또한 루이바르텐의 수석 디자이너는 훗날, 공녀님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입니다.
결국 그는 비하스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고, 헤라와 카를로를 광산 밖까지 안내했다.
“헤라 공녀님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마치 헤라가 명령해서 카를로를 구해준 것처럼 연출했다.
모든 임무를 끝마친 집사는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헤라는 울지 않았다.
휠체어에서 내려 절뚝거리며 걸어가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헤라의 얼굴에 빗물이 죽죽 흘러내렸다.
“날 도우세요, 카를로,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당신을 찢어 죽이고 싶으니.”
땅을 파는 그녀의 손톱 밑에 피가 잔뜩 맺혔다.
헤라는 외투를 벗어 집사의 무덤에 덮어주었다.
‘멍청한 것.
헤라는 집사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었다.
집사의 능력이 다른 집사들에 비해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헤라에게는 세상에 두 명밖에 없는 친구였다.
무덤 앞에서 한참이나 묵념을 올린 카를로가 힘겹게 말했다.
“제 욕심이 누군가를 죽이게 될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집사를 모욕하지 마세요.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
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구명을 받았다.
“보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헤라 공녀님을 제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모시겠습니다.”
그게 카를로와 헤라의 첫 만남이었다.
***
카를로는 당장에라도 세르폰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갈기고 싶었다.
‘저 개 같은 망나니가 이따위 사고를 쳐!’
1년간 헤라를 경험해 왔다.
헤라는 무서운 공녀였다.
카를로는 파르아 자작령에 속한 명가의 일원 중 벨라투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헤라 공녀를 모욕했던 자들의 결말은 끔찍했다.
그녀를 모욕했던 자들은 하나같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사업과 가정이 파괴되었다.
단적인 예로, 1년 전 멸문한 프라 디아 가문이 대표적이었다.
“공자님.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는 제가 손님들을 맞이 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세요. 어차피 4층은 수석 디자이너님의 소관이니.”
세르폰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비올라도 괜히 식은땀을 흘렸다.
세르폰이 벗어나고 사용인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자 카를로가 넙죽 엎드렸다.
“헤라 공녀님,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비올라도 헤라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이 살벌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비록 그놈이 개 같은 망나니기는 하나, 루이바르텐의 직계입니다. 제가 살면서 이 죗값을 갚아 나갈 테니, 그놈을 용서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제야 헤라가 빙그레 웃었다.
“내 동생이 사교계에 데뷔할 거예요.”
“원하는 것을 말씀만 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제, 제 공방으로 모시겠습니다.”
***
마법진을 통과하자 굉장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루이바르텐가의 본점의 아래층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사치품들이 즐비할 줄 알았는데.’
넓긴 했지만 낡은 공방 같은 느낌이었다.
낡은 테이블이 몇 개 보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카를로 수석 디자 이너의 작업 공간인 것 같았다.
작업 공간을 지나치자 깔끔한 공간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으로 꾸며진 이곳은 아래층처럼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깔끔하게 정돈된 쇼룸같았다.
“차를 내어드릴까요?”
간단하게 티타임을 가졌다.
헤라는 따뜻한 홍차를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를로 디자이너님, 저는 디자이너님의 초대장이 있는데 왜 굳이 세르폰 공자의 안내를 받았을까요?”
딸기 에이드를 마시던 비올라의 몸이 움찔했다.
사실 비올라도 궁금했다.
왜 굳이 세르폰과 함께 이동했을까?
세르폰이 비록 루이바르텐가의 차남이라고는 하지만, 카를로 수석 디자이너의 명성과 명예에는 발끝에도 못 미친다.
‘엥? 왜 날 봐?’
헤라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 비올라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네가 답을 말해줘, 동생아.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방심했다.
그래. 여기는 〈벨라투의 그림자>
세계 속이었다.
헤라 언니가 내 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데.
비올라는 괜히 여유로운 척 딸기 에이드를 천천히 마셨다.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헤라가 빙그레 웃었다.
“널 시험하려는 의도는 아니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꼴깍꼴깍.
비올라는 딸기 에이드를 천천히 마시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이 카를로의 눈에는 살인귀처럼 보였다.
“그냥 나는 내 동생을 카를로 디자 이너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탁.
비올라가 빈 잔을 내려놓았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비올라에게 집중되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테라 상단의 주인이자 벨라투의 4공녀인 언니가 듣도 보도 못한 마법사를 데려오다니. 일부러 칠칠찮은 마법사를 데려와서 에르사가 다스리게 했지.”
비올라가 에르사 쪽을 쳐다보았다.
비올라와 눈을 마주친 에르사가 빙긋 웃어 보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될 건 안 돼.
에르사의 과격한 교육이 통했던 것은, 애초에 크롬슨이 연약한 심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굳은 심지와 정말로 강한 자존심을 가진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을 방법이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언니가 크롬슨이라는 마법사를 애초에 물색하여 찾아냈던 거야. 에르사의 방법이 통할 수 있는 상대. 그리고 힘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며 굴복할 것 같은 상대.”
“역시 다 알고 있었구나.”
아니다.
방금 겨우 생각해 냈다.
“그런 상대를 고른 뒤, 언니는 7번 쉼터로 향했어. 그곳에 세르폰 공자가 있다는 사실도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을 거야.”
결국 헤라의 뜻대로 세르폰이 다가왔고 접점을 만들었다.
“세르폰 공자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을 거야. 아. 상대하기 쉬운 벨라투구나.”
벨라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수행원들을 통해 벨라투를 파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행하는 마법사가 그 모양그 꼴이었다.
돈을 받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며 하산했었으니까.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마탑 소속의 마법사.
“그래서 우리에 대한 경계를 늦추고, 더 쉬이 대했어. 만만한 우리에게 VIP 대접을 해주겠다며 접근했지. 그 과정에서 에르사한테 수작도 좀 부리고.”
이 모든 건 얕잡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헤라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여기까지 모두 언니가 의도했어.”
작품의 독자로서 여기까지는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마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모르겠어.’
더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다음은 뭐라고 해야 하지?’
찰나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고 난 뒤, 비올라가 입을 열었다.